“ 나는 지금 신을 만들어 낸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서 그로 인해 생겨난 신의 불완전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닐세.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불완전함 자체가 자신의 가장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특성인 그런 신을 말하는 거야. 자신의 전지전능에 한계를 가진 신, 스스로의 행위가 불러올 결과를 예견하다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자신이 촉발한 일련의 사건들에 겁먹기도 하는 그런 신 말일세. 그러니까 불구와 같은 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면서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신. 그 신은 시계를 만들어 냈지만, 그걸로 측정할 시간을 만들지는 못했지. 주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해 체계나 장치를 만들긴 했지만, 그것들이 과도해져서 목적 자체를 배반해 버린 거야. 무한을 창조했지만, 자신의 능력의 척도여야 할 무한이 결국 자신의 끝없는 패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 버린 거지.
…
내가 보기에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신은 바로 그런 신이야. 자신이 겪는 고통을 구원이라 떠벌리지 않고 아무도 구원하지 않는 신.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존재할 뿐인 신 말일세.
- 캘빈. ”
『솔라리스』 430, 435,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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