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확실히는 몰라. 어떤 의미에서 그건 자네한테 달린 일이니까."
"환각을 말하는 건가?"
"아니, 그건 실제로 눈앞에 존재한다네. 잊지 말게. 절대 공격하면 안 된다는 걸."
『솔라리스』 p.29~3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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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수납장의 문제 부착된 폭이 좁은 거울에 방의 단면이 비치고 있었다. 불현듯 거울 속에서 어떤 움직임이 곁눈질로 포착되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알고 보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었다. ”
『솔라리스』 p.36,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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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그물 모양의 러닝셔츠와 팬티만 입고 있던 나는 그조차 모두 벗어던지고 샤워기를 향해 돌진했다. 물을 뒤집어쓰니 안도감이 들었다. 강렬하게 퍼붓는 뜨거운 물줄기 아래에서 나는 과장된 몸짓으로 물을 튀겨 가며, 코를 킁킁거리고, 살가죽을 문질러 댔다. 정거장에 떠돌고 있는 섬뜩하고 불안한 기운을 애써 떨쳐 버리기 위해서였다. ”
『솔라리스』 p.3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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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주인공이 샤워를 하러 들어가는 이 상황이 왠지 인상 깊었는데요. 사실 샤워나 목욕을 하는 순간은 오히려 사람이 가장 무방비해지고 취약한 순간이죠. 어떤 보호구도 가림막도 없이 노출되니까요. 불길한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따듯한 물로 긴장을 풀고 싶어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태로 몸을 씻을 주인공의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무서운 영화나 소설 등을 보고 나면 그 상황이나 분위기가 생각날 때가 있죠. 저는 특히 샤워나 머리를 감으려고 눈을 감으면 그런 기억이나 장면이 떠올라 허겁지겁 몸을 씻을 때가 있거든요. 딱 그 기분과 상황이 생각나서 더 몰입이 되는 문장이었습니다.
은화
책의 26p에서는 스나우트가 자신을 '생쥐'라고 소개하는 데 이 말이 무슨 의미일까 처음에 궁금해하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지금 다시 읽으면서 느낀건데 생쥐는 보통 위험을 느끼면 잘 숨는 동물이죠.
하지만 스나우트를 비롯한 대원들은 정거장이라는 공간에 숨어있음에도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막다른 구멍에 몰려있는 상황도 겹쳐서 보입니다. 지구로 돌아가지 않는 한 솔라리스와 정거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있는 신세로 보였어요.
그리고 생쥐는 실험용 동물로도 쓰이죠... 솔라리스에 온 연구자들이 솔라리스를 대상으로 여러 연구와 실험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솔라리스가 인간들을 역으로 관찰하고 실험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밥심
생쥐에 대해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은화님 글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네요.
꽃의요정
저도 생쥐는 뭔가 의미가 있을 거 같았는데 잘 생각하며 읽어야겠어요
밥심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영화 <사이코>의 샤워 장면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네요. 무슨 사진일까요?
은화
앗, 사실 그냥 구글에서 찾다가 위에 떠있던 이미지 아무거나 가져온 겁니다 ㅎㅎㅎ 뭔가 음울하거나 불안한 느낌을 주는 샤워 사진을 찾았는데 말씀하신대로 <사이코>가 가장 먼저 뜨더라고요. 왠지 사이코는 작품을 모르더라도 샤워씬이 워낙 유명하여 아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 일부러 아무 사진이나 가져왔어요.
육체와 정신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 가장 마음이 편하고 안전한 공간(보통 집이죠)에서 몸을 씻는데, 정작 그 순간이 가장 취약한 때라는 게 뭔가 역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꽃의요정
약간 다른 얘기지만 제가 매일 운동을 가서 피트니스에서 샤워를 하는데요.
종종 피트니스 샤워장에서 싸운다는 얘기를 들어요.
근데 그게 벌거벗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싸우더라도 서로의 몸을 보며 싸우고 싶진 않아 공중 목욕탕에선 싸울 일을 절대 만들지 않습니다.(평소에도 잘 싸운다는 건 아니에용)
은화님의 샤워할 때의 공포 얘기를 보고 갑자기 제가 생각하는 샤워장 공포가 떠올라 글을 올려봅니다 ㅎㅎ
밥심
근데 싸움의 원인이 뭘까요?
(피트니스에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일인)
은화
저도 아직까지는 싸우거나, 싸움을 목격한 적도 없지만 다른 사람들 얘기나 인터넷 사례를 보면 공용품(운동용 또는 샤워용 수건) 사용 가지고 싸우는 경우도 있고, 개인 소지물을 누가 몰래 썼네 마네 훔쳐갔네 하는 문제로 싸우기도 하고요. 자주는 아니지만 운동기구를 썼을 때 다음 사람 배려해서 자기 흔적(땀) 정리를 안하고 갈 경우 누군가가 지적하다가 싸우기도 하나 보더라고요.
샤워장은 아무래도 여러 명이 들어가다 보니.. 샤워할 때 본인의 습관(?)이 있는 분들이 있어서 그걸로 불쾌해하거나 지적하다가 싸움이 번지는 경우도 있고, 사용하고 난 후 뒷처리 문제(씻고 나와서 옷 갈아입거나 말릴 때 바닥에 물기라든지)로 싸우기도 하고요.
꽃의요정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보통 남성분들은 절대 이해못하는 자리싸움입니다. 가끔 상주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사람이 없을땐 상관없지만 사람이 많아 샤워를 못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자리에 본인물건만 갖다 놓고 탕에 갔다 사우나 들어갔다 하며 나타나지 않다가 누군가 그 자리가 오래 비어 있어 샤워라도 할라치면 번개처럼 등장하셔서 본인자리라며 비키라고 하시는 거죠. 그럼 그때부터 '여기에 전세냈냐'가 시작됩니다.
아시겠지만, 한국의 목욕탕 문화는 남성 여성이 아주 다릅니다. 저희 남편은 이런저런 얘기듣고 막 화까지 내더라고요. ㅎㅎ
좀 창피합니다만 그래서 수건도 남성분들은 자유롭게 쓰라고 탕앞에 두는 반면 여성분들은 배급시스템인 것도 있고요(요샌 안 그러지만 집에 그렇게 들고 간다는 컥).
밥심
동네 센터의 아쿠아로빅 수업을 신청했던 지인이 첫날 앞줄에 섰다가 기존 회원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고 신입답게 제일 뒷줄로 물러나 운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샤워장에서도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텃세와 자리싸움은 역시 어느 곳에나 있는 오래된 현상인가 봅니다.
서비스업을 하는 사장님들 대단하다고 생각되는게 이렇게 별나고 다양한 사람들 비위를 맞춰가며 사업을 하시니까요. 전 절대 못할 것 같아요.
은화
우리 인간이 수많은 종의 표본을 줄줄이 꿰고 있다는 듯한 논조이지만, 실제로 솔라리스는 무게가 1700억 톤에 달하는 단 하나의 개체에 불과하다.
『솔라리스』 p.4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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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처음 읽을 때 흥미진진해서 집중해서 읽느라 책을 생각하며 읽으려고 1주차 부분을 다시 펴 들었어요. 다시 펼쳐보니 스나우트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말을 제대로 못했는지도 이해가 갔습니다.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읽을 때와, 일어난 사건을 인지하고 읽을 때의 느낌이 뭔가 다르게 다가오네요.
은화
이 문제는 결국 '원과 똑같은 면적의 정사각형을 구하는 문제'의 현대판이 되어 버렸다.
『솔라리스』 p.56~5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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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원과 똑같은 면적의 정사각형을 구하는 문제라는 게 무슨 말인지 궁금해서 좀 찾아봤습니다.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부터 시작된 문제인데, 직선 자와 콤파스만을 이용해 말 그대로 원과 넓이과 같은 정사각형을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해요.
굉장히 오래된 질문으로 아낙사고라스가 제기하였고 실제로 이것이 수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으나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이 19세기에 들어서야 증명되었다고 하네요.
수학적인 내용은... 제가 수학을 못하는 관계로 설명을 드리지 못하지만.. 대신 이 질문이 고대 세계에서 어떤 철학적 의미가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습니다. (수학적 역사와 증명은 첨부된 링크를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원의 원주율은 3.14...로 정수가 아닐 뿐더러 그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무한소수입니다. 시작과 끝이 맞물려서 영원히 회전하는 원은 그 무한성과 순환 때문에 여러 문명권에서 다양한 상징으로 쓰였고요. 현실에서도 '완벽한' 원을 그리는 건 불가능하기에 원은 예전부터 초월적인 것 또는 이상적이거나 천상/신적 개념과도 맞물려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 정사각형은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동일하고, 그 자체로 불변하는 견고한 도형으로서 현실적인 가치 또는 '실제'의 개념에 대응되었다고 합니다.
초월적인 원과 현실적인 정사각형이 같은 면적으로서 표현될 수 있는가 또는 불가능한가는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이상과 현실 또는 하늘과 땅이 합일/화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해요. 사원이나 종교적 건물에 사각형과 반원 또는 원의 공간이 결합된 형태가 많은 이유는 건축공학적 기법 외에도 그런 의미들이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고대~중세의 상당한 기간 동안에는 학문이 지식 그 자체보다는 종교/가치관과 뒤섞여 세계를 이해하는 틀이었기에 이런 개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책에서 작가가 문장에서 말하고자 한 의미는 두 가지 뜻을 모두 담은 것 같네요.
1) 오랜 세월 해결하지 못한 난제, 2) 결코 조화될 수 없는 개념
<2천년 넘게 수학자들을 괴롭힌 수학 난제, EBS컬렉션-사이언스>
https://www.youtube.com/watch?v=rGgNj0k0SQs
꽃의요정
오!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개념인데 정말 신기하네요. 게다가 상징하는 바도 크고요.
밥심
전 유리수의 곱으로 계산되는 정사각형 면적과 무리수 파이가 들어가는 원의 면적이 같을 수 없으므로 해결하기 불가능한 문제라는 뜻이군 하고 가볍게 넘어갔는데 은화 님은 더 파보셨네요. 물론 이 파트가 소설치고는 치열한 학술적 논쟁을 다룬 부분이어서겠지만 독서를 저에 비해 상당히 세밀하게 하시는 것 같아 제 건성건성 독서 스타일에 대해 반성하게 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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