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8.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

D-29
우리 인간이 수많은 종의 표본을 줄줄이 꿰고 있다는 듯한 논조이지만, 실제로 솔라리스는 무게가 1700억 톤에 달하는 단 하나의 개체에 불과하다.
솔라리스 p.4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처음 읽을 때 흥미진진해서 집중해서 읽느라 책을 생각하며 읽으려고 1주차 부분을 다시 펴 들었어요. 다시 펼쳐보니 스나우트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말을 제대로 못했는지도 이해가 갔습니다.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읽을 때와, 일어난 사건을 인지하고 읽을 때의 느낌이 뭔가 다르게 다가오네요.
이 문제는 결국 '원과 똑같은 면적의 정사각형을 구하는 문제'의 현대판이 되어 버렸다.
솔라리스 p.56~5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원과 똑같은 면적의 정사각형을 구하는 문제라는 게 무슨 말인지 궁금해서 좀 찾아봤습니다.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부터 시작된 문제인데, 직선 자와 콤파스만을 이용해 말 그대로 원과 넓이과 같은 정사각형을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해요. 굉장히 오래된 질문으로 아낙사고라스가 제기하였고 실제로 이것이 수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으나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이 19세기에 들어서야 증명되었다고 하네요. 수학적인 내용은... 제가 수학을 못하는 관계로 설명을 드리지 못하지만.. 대신 이 질문이 고대 세계에서 어떤 철학적 의미가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습니다. (수학적 역사와 증명은 첨부된 링크를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원의 원주율은 3.14...로 정수가 아닐 뿐더러 그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무한소수입니다. 시작과 끝이 맞물려서 영원히 회전하는 원은 그 무한성과 순환 때문에 여러 문명권에서 다양한 상징으로 쓰였고요. 현실에서도 '완벽한' 원을 그리는 건 불가능하기에 원은 예전부터 초월적인 것 또는 이상적이거나 천상/신적 개념과도 맞물려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 정사각형은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동일하고, 그 자체로 불변하는 견고한 도형으로서 현실적인 가치 또는 '실제'의 개념에 대응되었다고 합니다. 초월적인 원과 현실적인 정사각형이 같은 면적으로서 표현될 수 있는가 또는 불가능한가는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이상과 현실 또는 하늘과 땅이 합일/화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해요. 사원이나 종교적 건물에 사각형과 반원 또는 원의 공간이 결합된 형태가 많은 이유는 건축공학적 기법 외에도 그런 의미들이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고대~중세의 상당한 기간 동안에는 학문이 지식 그 자체보다는 종교/가치관과 뒤섞여 세계를 이해하는 틀이었기에 이런 개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책에서 작가가 문장에서 말하고자 한 의미는 두 가지 뜻을 모두 담은 것 같네요. 1) 오랜 세월 해결하지 못한 난제, 2) 결코 조화될 수 없는 개념 <2천년 넘게 수학자들을 괴롭힌 수학 난제, EBS컬렉션-사이언스> https://www.youtube.com/watch?v=rGgNj0k0SQs
오!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개념인데 정말 신기하네요. 게다가 상징하는 바도 크고요.
전 유리수의 곱으로 계산되는 정사각형 면적과 무리수 파이가 들어가는 원의 면적이 같을 수 없으므로 해결하기 불가능한 문제라는 뜻이군 하고 가볍게 넘어갔는데 은화 님은 더 파보셨네요. 물론 이 파트가 소설치고는 치열한 학술적 논쟁을 다룬 부분이어서겠지만 독서를 저에 비해 상당히 세밀하게 하시는 것 같아 제 건성건성 독서 스타일에 대해 반성하게 됩니다. ㅎㅎ
이 부분이 오멜라스에서 나온 『솔라리스』(영역본을 중역)에는 빠져있네요. ㅠㅠ 문장 모음에 올려주신 걸 보고, 저는 이 부분을 읽은 기억이 안 나서 이상했는데... 영역본에서 이 부분이 아예 없었나봅니다. 어제 도서관에서 민음사판을 빌려서 앞부분을 다시 보는 중인데요, 뉘앙스도 꽤 다르고, 주인공 이름도 다르고, 내용도 문장을 새로 쓴 듯 다르네요. 영역본을 옮기다보니 그랬겠지만, 원전과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읽다가는 전혀 다른 소설을 읽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52쪽(민음사) 내용 "이러한 가설은 물질과 정신, 혹은 물질과 의시그이 상관 관계라는, 철학의 가장 오래된 화두를 부활시키는 작용을 했다. … 의식을 배제한 생각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솔라리스의 바다에서 관측된 일련의 과정들을 가리켜 ‘생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산을 가리켜 단지 하나의 거대한 돌덩이라고 지칭해도 무방할까, 그렇다면 행성은 거대한 산일 수 있는가. … 지구의 기준과는 다른 새로운 척도와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현상을 논할 수 있다. / 이 문제는 결국 ‘원과 똑같은 면적의 정사각형을 구하는 문제’의 현대판이 되어 버렸다."은 아주 중요한 것 같은데, 내용도 뉘앙스도 너무 다르네요. 번역서는 원전인지 아닌지 꼭 확인을 해봐야겠어요.
번역은 번역자에 따라서 많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지만 문장 자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원전 번역 여부와 관련이 있겠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원본의 특정 부분을 아예 들어낸 경우도 가끔 있어 원본을 읽고 싶은데, 세상의 언어가 너무 많네요. 역시 하나님이 내린 형벌이심이 분명합니다.
아.. 영역본에서도 해당 문장을 번역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오멜라스 중역본에도 내용이 없었던 거겠죠? 큰 줄거리의 전개는 같을지 몰라도 이런 부분에서 차이가 나면 책의 감상이 많이 다르겠네요. 영역본에서 왜 저 부분을 건너뛰었을까요..
나는 자가당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탈출은 불가능했다. 자기 뇌를 거치지 않고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아무도 자기 자신의 내적 상태를 외부에서 관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만큼 단순한 동시에 효과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앗다. … 만약 인공위성이 보내온 결과가 내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숫자는 절대로 내가 낸 숫자와 일치할 리가 없다. 내 정신은 정상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컴퓨터 없이는 혼자서 수개월 걸리는 계산을 암산만으로 풀 수는 없다. 그러므로 두 개의 해답이 일치한다는 것은 곧 스테이션의 컴퓨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는 실제로 그것을 사용했으니까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솔라리스 (양장, 한정판) p.7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
제가 읽고 있는 오멜라스에서 나온 번역본은 영어본을 옮긴 중역었군요. 그래서 등장인물 이름이 달랐네요. Kilmartin과 Cox의 영역본에서는 스나우트가 스노우로, 하레이가 레야로 되어 있어서 그렇게 옮겨졌나 봅니다. 민음사 책은 폴란드어 원전을 옮긴 것이고요! 얼른 도서관에 가야겠네요. (참고. 김상훈 번역이 읽기에 전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는요.ㅎㅎ)
솔라리스의 바다를 읽으면서 생각난 게 '아메바 바다'였습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2005년에 만든 <에일리언 플래닛>이라는 가상 다큐멘터리 영화는 다윈5라는 행성의 생태계를 묘사하는데요. 이 행성에는 거대한 크기의 바다가 있는데 솔라리스처럼 사실 물이 아니라, 젤리 형태의 유기체라는 설정입니다. <에일리언 플래닛>은 본래 작가 겸 아티스트인 '웨인 발로'가 1990년에 <여정(Expedition)>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과학소설에 기반한 영상물이에요. 웨인 발로는 평소에도 다양한 외계생명체나 외계행성의 가상 세계와 생태계를 상상하여 글이나 그림으로 그리는 창작자였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웨인 발로의 책에 있는 아메바 바다에 대한 삽화입니다. 두 번째 그림은 <에일리언 플래닛>에서 묘사되는 아메바 바다의 일부인데 먹이를 잡기 위해 공중으로 액체 촉수를 뻗어 붙잡으려는 모습입니다. 세 번째 그림은 아메바 바다의 크기인데 보라색 부분이 바다라는군요. 솔라리스처럼 행성 전체를 덮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상당한 크기입니다. 두 작품 모두 솔라리스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이후에 나왔으니, 어쩌면 스타니스와프 렘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재미있는 책과 다큐네요!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계 생명체를 상상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해도 지구생명체와 너무 비슷한. 우리 뇌와 독립해서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경험에서 분리된 상상도 그런 것 같네요.
젊어서 죽은 이들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법이다.
솔라리스 p.11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하는 수 없었다. 끝까지 이 꿈을 꾸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유쾌했던 기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두려웠다.
솔라리스 p.11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크리스! 크리스! 크리스!”
솔라리스 p.14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이 부분에서 소름이 쫙 돋았네요...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무음 처리 돼서 더 극적이었어요. 뭐 하지?하는 순간 조지 클루니가 문을 닫아 버리더라고요.
조지 클루니 출연 버전 영화에서 건질 거라고는 그의 섹시한 엉덩이 뿐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영화 괜찮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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