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8.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

D-29
솔라리스를 읽고 느낀 저의 종합적인 감상은 '의미에 맞춰 살아가기 보다는 헤매더라도 의미를 찾아가는 삶'이었어요. 책에서 켈빈과 더불어 독자는 솔라리스의 모든 사건과 환경과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누군가의 해석의 방향으로 이해해야 할지, 아니면 그 이면에 다른 의미가 있는지 계속 고민하게 되죠. 우리는 살면서 하루에도 수많은 사물과 사건 그리고 인간과 스쳐가거나 그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상호작용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감정이나 판단 없이 대상을 인지하려 해도 결국 자신만의 관점과 이론으로 주변 세계를 해석하게 되죠.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만의 프레임으로만 세상과 주변을 볼 수밖에 없다면 인간이란 결국 무지에 휩싸인 채 사라지거나, 사물의 의미 중 극히 일부분만을 보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 말이죠. 우리 각자의 인생에 대한 해석은 불완전하고 옳지 않으며 한계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세계와 존재를 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상호교차와 교감을 통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나눌수록 '의미'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요. 복제된 하레이의 삶을 통해 그걸 응축해서 보여주죠. 자신의 생각과 자신만의 경험과 정체성이 없었지만 하레이는 복제물의 한계를 넘어 켈빈이 사랑할 수 있는 독립된 개체로서 그녀의 삶과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 받습니다. 하레이가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포기했다면 아마 그런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겠죠. 하레이는 이후 사라지지만 그녀를 통해 켈빈은 솔라리스에 남기로 하고, 자신이 남기로 한 선택의 의미를 찾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의미를 찾아가는 삶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네요.
그렇다면 이 모든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 “이걸 다 어디에 쓰려고요?”
솔라리스 266-26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솔라리스 바다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이렇게나 세세하고 길게 서술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이 문장을 보고 뒤통수를 딱 맞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예측을 할 수도 없고 목적이 뭔지도 알 수 없는 솔라리스의 바다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 이걸 뒤집어본다면, 그렇다면 예측을 할 수 있고 목적이 뭔지 안다면 우리는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혹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는 얘기가 될 것도 같아요. 그러니까 지구에 대비해 본다면, 지구에 존재하는 것들, 예측가능한 것들은 그 존재의 의미를 우리는 알고 있는가/안다고 생각하는가? 아직 다 못 읽었는데요. 다 읽고 쓰려다가, 짧게 소감 남겨봅니다. ^^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신선했던 아이디어는 솔라리스가 인간의 정신 세계를 혼령의 상태로 구현하는 것을 넘어 물질적으로 구현해냈다는 것입니다. 꿈이나 헛것을 보듯이 나타내게 하는 것은 그다지 신선하게 읽히지 않았을텐데 인간과 똑같은 육체로 나타나게 했고 더구나 그 존재가 자신의 정체를 몰라 괴로워하는 서사까지 부여했다는 점에서 놀랐습니다. 완독 후 그 점이 제일 인상깊었습니다.
주말에 제주 바다를 보고 왔는데 평소엔 아무 생각없이 바라봤던 바다가 솔라리스를 읽은 탓인지 좀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다지 파도가 세지 않았는데 잔물결도 굉장히 다양한 모양으로 변하고 빛의 반사에 따라 다른 색을 띠며, 흐르는 방향도 서로 엇갈리는 등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바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솔라리스의 파란 태양과 그 태양빛으로 인해 금속 빛으로 빛나는 바다의 묘사가 떠오르네요. 왠지 아마도 작가가 작품을 쓰기 전에 그리고 쓰면서 바다에 오랜 시간 그리고 자주 들러 바라봤을 것 같아요. 우리는 지구의 푸른 바다에 익숙한데 솔라리스의 검은 빛깔의 바다는 처음 마주한다면 소름 끼칠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 바다가 시시각각 변하고 무언가를 따라하고 의태한다면..
책을 다 읽고 나니 솔라리스의 바다를 다른 매체들에서 어떻게 묘사했을지 궁금하여 이미지를 찾아봤습니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우리의 머릿속 상상마다 각자의 형상을 갖고 있겠지만 글만으로는 떠올리기 어려웠던 그 광대함과 기이함을 단편적으로나마 공유해보고자 몇 가지 그림들을 가져왔습니다
솔라리스의 풍경입니다. 역시나 붉은 태양으로 인해 책을 읽는 내내 핏빛 또는 주홍빛 바다가 떠올랐는데 그런 이미지들이 많네요.
솔라리스의 신장체, 대칭체, 미모이드를 여러 아티스트들이 상상하여 그린 모습입니다.
화가 Bjørn Bjarre가 솔라리스를 읽고 상상하여 그려낸 바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머리로 상상한 대칭체에 가장 근접한 그림은 3번째 이미지였어요. 도저히 생명이 만들어 냈다고는 볼 수 없을만큼 각이 지고 대칭인 완벽한 구조물 또는 정다면체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떠올리며 읽었거든요. 보다 많은 그림들이 있기에 작가가 게시한 사이트 출처를 남겨놓았습니다. (https://www.bjarre.org/works/solaris.html)
폴란드 아티스트 Tomasz Daniec이 그린 솔라리스의 모습입니다. 이쪽은 훨씬 더 몽환적인 게 마치 꿈과 현실을 뒤섞은 불분명함을 표현한 것 같네요. (https://www.behance.net/gallery/34736259/Solaris?tracking_source=search_projects|solaris+stanislaw+lem&l=24)
이렇게 이미지들을 찾아볼 수 있는 거군요!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대단하네요! 역시 흑백 이미지가 강렬하네요~ ^^
두번째 그림은 외계인 엔지니어인가요? ㅎㅎ 음악 만들 때 쓰는 장비 앞에 외계인이 앉아 있는 거 같아요. ^^
엇, @꽃의요정 님 얘기를 읽고 보니 사람의 뒷모습 실루엣 같기도 하네요! 아마 정거장의 방송실?이 아닐까요? 정거장 안에 진짜 사람과 손님들이 뒤섞여 있다 보니 저게 사람일지, 사람이 아닐지 상상에 따라 달라지겠네요.
아~제가 상상한 풍경하고 비슷해요~! 색감과 뿔처럼 솟아난 이미지까지요.
@은화 님이 올려주신 여러 그림들을 보니 렘이 솔라리스를 써서 여러 예술가들에게 상상력을 뽐낼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을 반납해버러셔 @은화 님의 질문에 해당되는 부분을 확인하지 못해 답변을 못하겠네요. ㅋㅎ 2)번과 3)번 질문은 은화님처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고 중요한 인물인 손님과 뭔가 문제가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역시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경우에는 연장까지 해도 길어봐야 3주 정도이다 보니 중간에 좀 애매해지더라고요. 물음을 적을 때 생각하다 보니 이 책에서 스나우트의 존재감과 그의 역할도 좀 의미심장했어요. 처음 켈빈과 스나우트의 만남은 썩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으니까요. 이후에도 중간 중간 스나우트와 얘기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여전히 경계심을 품고 있는 묘사도 나오고요. 그러다가 켈빈이 하레이와 얽힌 과거의 사연을 고백하다가 순간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대화를 기점으로 이 둘이 조금씩 친구로 발전해가는 과정이 눈에 띄었습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겉으로 맴도는 대화가 아닌, 서로의 진심을 묻는 방향으로 대화가 깊어지는 게 보이더라고요. 켈빈의 시선에서 스나우트를 평가하다 보니 저는 한동안 그의 진정성이나 진의를 의심했거든요. 나중에 혹여나 스나우트가 어떤 사고를 일으키거나, 하레이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켈빈을 배신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했고요. 하지만 그런 걱정과 달리 오히려 켈빈과 함께 솔라리스에 남는 걸 보고 저 또한 스나우트라는 개인을 저만의 생각과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다고 느꼈어요.
모임의 마지막은 항상 책의 다른 겉표지들을 찾아 공유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기에 몇몇 이미지들을 가져왔습니다. 세번째 이미지는 1961년 당시 첫 출간 때의 커버였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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