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거림

D-29
'본보기나 조언, 안내를 구하는 것은 하나의 중독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흥미로웠습니다. 평소 인생은 모방을 반복하는 일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는거군요. 어느 정도를 유지해야 적당한 것일까 궁금합니다. 결국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제 경험들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취향을 전시하고 다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겠다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스스로가 '본보기'로 인정받기 위해선 물건을 사고 입고 먹고 꾸며 만들어내는 컨텐츠가 필요합니다. 소비에 매여있는 기분인데 그걸 통해서 가능한 해방은 역설적입니다. 결국은 닮아버린 너와 나를 봅니다.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걸 전시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기때문입니다. 멀미가 날 정도로 압도되는 이 거대한 흐름에서 우린 어떻게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다른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이 책에 소개된 영화 하나 공유할게.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자유의 환영>이라는 영화야. 개인화된 소비나 인간적 유대의 해체에 대해 말하면서 작가는 이 영화를 언급해. 사교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식사가 가장 고립되고 비밀스러운 방어되는 행위로 그려진다고 설명하는데 너무 궁금해졌어. 요즘엔 너무 당연한 혼밥이 70년대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감독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였을까.
오늘까지 읽은 부분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알려 주세요.
미루기에 대한 여담. 보통 해야할 일을 제때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며 처리하지 않다가 결국 해내지 못하거나 시간에 쫒겨 대충 해내버리고 마는 나태함이나 무책임함과 연결하여 생각했던 미루기의 어원. '미룬다는 것은 어떤 것을 미래에 속한 것들 사이에 놓는다는 뜻이다' 현재에 있어야 할 것을 미래에 적극적으로 놓는 일이라는 것. 아무 의지가 없어 내쳐 꼼짝하지 못하는 권태가 아니라 어떤 노력이라는 사실.
이 책에서 처음 만난 단어나 완전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처음은 아닌데 새롭게 다가오는 개념은 아마도 다르게 다가오는 경험때문인가봅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잠시 목격한 일에 대해 생각하는 날들 가운데 알지 못하는 이의 죽음을 기사로 읽었어요. 죽음이라는 공통점 외엔 분명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지만 제 생각은 뒤죽박죽이 되고 엉켜버립니다. 우린 각자 무얼 미루면서 살아가는 걸까요? 이 책에서는 행복을 미뤄두는 일, 만족을 미뤄두는 일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확신할 수 없는 미래를 알게 되었기에 지연의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손쉬운 보상을 바라는 변화된 시대의 모습을 말합니다. 직업으로서 일을 대하는 태도도 당연히 달라졌고 행복이나 만족을 얻기 위한 소비는 개인화되어 갑니다. 이미 너무 익숙하게 제가 살아가는 일상이기에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인데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점점 느려집니다. 이런 현대사회의 특징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 마음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미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쉬태그나 키워드 3개를 이 책에 붙인다면?
#개인화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대응#역설#불안정성은 오늘날 도처에 있다
완독한 자신에게 주는 축하의 메시지를 적어주세요.
사회란 일단 '확실시되는' 의미란 없다는 것, 그 사회가 혼란을 바탕으로 살고 있다는 것, 사회 그 자체도 하나의 형식이지만 최종 고착되는 일이 없는 그러한 형식을 추구하는 일종의 혼란임을 스스로 알게 될 때, 진정 자율적이게 된다. ...민주주의와 개인성이 이루어낸 그 어떤 안전도 인간 조건의 만성화된 우발성과 불확실성과의 싸움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인간 조건을 인식하고 그 결과를 정면으로 대하는 데 달려 있다."
액체 현대 p.404,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일수 옮김
질문만 끝없이 퐁퐁 생성되는 답도 없는 책을 읽고 있는 건 아닌지 주저하면서 느리게 끝까지 왔습니다. 도우리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밑줄 친 문장들로 돌아가 다시 읽고 여전히 모르는 상태로 질문으로 답하기도 했습니다. 표류하는 날들에 안전한 말뚝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다시 떠내려갑니다. 정신을 차리고 자유롭게.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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