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깊이를]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D-29
나는 종족 청소에 관여한 이들의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드러내기보다는 그들이 종족이 뒤섞인 지역을 한 종족의 순수한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얼마나 체계적인 계획을 세웠는지를 부각시키고자 한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p.36 1장<추정되는> 종족 청소?,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종족이 뒤섞인 지역을 한 종족의 순수한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얼마나 체계적인 계획을 세웠는지”… 이 문장을 읽으니 2차대전 중에 히틀러와 나치가 했던 짓이 생각나네요. 유대인 자신들도 바로 얼마 전까지 그런 일을 당했으면서, 어떻게 곧바로 팔레스타인에 같은 짓을 할 수 있는지….
향팔님 말씀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히틀러의 끔찍한 인종학살 및 인종청소의 가장 큰 희생자(유대인과는 규모 면에서 큰 차이가 있으나 동성애, 집시, 일부 폴란드인들도 상당수 희생되었죠) 집단이었으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박해한 계획적 움직임을 보면 무척 분노하게 됩니다. 아마도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가 너무나 커서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는 강력한 심리가 말도 안 되는 만행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네요.
나는 1948년에 관한 학문적 연구나 공적 토론의 근거로서 종족 청소 패러다임을 주장하고 이를 전쟁 패러다임 대신 활용하고자 한다. 나는 이제까지 종족 청소 패러다임이 부재했었기 때문에 재앙에 대한 부정이 지금까지 계속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시온주의 운동이 민족 국가를 창설하면서 벌인 전쟁이 ‘비극적이지만 불가피하게’ 원주민의 ‘일부’를 추방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시온주의 운동의 주요 목표는 신생 국가의 영역 확장을 위해 탐낸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종족 청소를 벌이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27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2장은 1장보다 내용이 살짝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정리하는 글도 길어질 수밖에 없겠습니다. ^^;;; 본격적으로 시온주의 이데올로기를 파헤쳐보는 시간일 뿐 시온주의 개념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해당 이념의 대강을 조망해 볼 수 있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현대 이스라엘국가의 성립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인데요, 시온주의라는 것의 이데올로기적 동기를 살펴보면 그 기원과 목표가 꽤나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 시온주의는 중부 및 동유럽에서 유대인의 민족 부흥 운동으로 출현했는데, 이는 당시 팽배했던 동화 압력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박해의 위험에 대한 일종의 조응이었달까요? 그러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운동 지도부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땅을 식민화하는 것과 민족 부흥이라는 목표를 결합하기로 결정짓기에 이릅니다. 시온주의는 유대교를 세속화하고 민족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성서 속 영토(소위 ‘이스라엘 땅’이라 불리는)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고, 이 오래된 땅을 새로운 민족주의 운동의 요람으로 재창조하려 했던 것이죠. 그 땅을 이미 차지하고 있던 ‘이방인’들, 즉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은 그들의 시각에서는 되찾아야 할 땅의 불법 점유자이거나, 심하게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마치 ‘비어 있는’ 땅의 배경처럼 간주되었는데, 원주민 팔레스타인인들은 보이지 않거나, 그저 정복하고 제거해야 할 자연의 일부 정도로 여겨졌으니 말입니다. 1918년 영국이 그 지역을 점령하기 전까지 시온주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식민주의적 실천이 뒤섞인 형태였으나,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의 고작 5%에 불과한 소수 세력이었을 뿐입니다. 일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일찌감치 유대 국가가 들어서 땅을 차지하고 원주민을 축출할 가능성을 감지하기도 했지만, 다른 이들은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거나 그저 유럽 빈민들의 일시적인 이동 정도로 치부했던 모양입니다. 오스만 정부에 유대인 이주를 제한해 달라고 요청하려는 시도도 없지는 않았구요. 표면적으로는 박해를 피해 ‘옛 조국을 되찾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좀 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이는 19세기 기독교 천년왕국설과 유럽 식민주의가 혼합된 결과물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합니다(실제로 당시 로이드 조지와 같은 독실한 기독교 정치인들은 이를 성스러운 계획의 일부로 보며 시온주의를 지지했다고 하네요). 초기 식민화 과정에서 내세웠던 사회주의적 특색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식 역사 서술 또한 최근에는 재평가되고 있는데, 실제로는 배타적인 유대 사회 건설이 주된 목표였으며, 심지어 노동당 운동이 종족 청소를 주도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초기 정착민들은 우선 땅을 구매하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데 집중했고, 팔레스타인 전체를 차지하여 민족 국가를 세우려는 구체적인 전략은 훗날 영국의 구상과 맞물리면서 발전하게 됩니다. 영국 위임 통치가 시작되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되는데, 1917년 밸푸어 선언은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고국 건설을 약속하면서도, 정작 그 땅에 살고 있던 비유대인 주민의 권리 보호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언급함으로써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당연하게도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권 및 독립 열망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죠. 1920년대 말, 영국은 두 공동체를 대등하게 대표하는 정치 구조를 만들려 시도했지만, 실제 제안된 내용은 시온주의 이주자들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다수였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처음에는 이를 거부했지만, 계속되는 이민 증가를 우려하여 1928년에는 수용 의사를 밝혔는데, 이번에는 시온주의자들이 이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영국이 최소한의 약속조차 이행하지 않자 결국 1929년 팔레스타인 봉기가 일어나게 되구요. 더욱 큰 규모의 저항은 1936년에서 1939년 사이에 발생한 팔레스타인 대반란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노동당 정부가 팔레스타인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시온주의 로비로 무산되자 대규모 반란이 터져 나온 겁니다. 영국군은 3년에 걸쳐 잔인하게 반란을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망명하거나 제거되었으며 준군사 부대는 해산되었습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1947년 유대 군대가 수월하게 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하는 배경이 되어주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랄까요? 시온주의 계획은 점차 구체화되어 갑니다. 영국 필 위원회가 분할안을 권고했던 1937년에는 팔레스타인 땅의 일부를 받아들이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1942년 빌트모어 계획에서는 팔레스타인 전체를 요구하는 것으로 입장이 바뀝니다. 상황에 따라 요구하는 영토의 범위는 유동적이었으나, 민족 구성에 있어서만큼은 순수한 유대 국가를 창건한다는 핵심 목표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군사적 준비 태세 또한 착실히 갖추어 나갔습니다. 영국 위임 통치 당국은 시온주의 운동이 미래 국가 건설을 위한 독립적인 고립지(enclave)를 만드는 것을 사실상 허용했고, 1930년대 말에 이르러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외교적 해결이 실패할 경우 무력으로 땅을 차지할 준비를 본격화합니다. 효율적인 군사 조직(하가나) 건설과 해외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통한 재정 확보가 이루어졌죠. 특히 영국 장교였던 오드 찰스 윙게이트는 하가나를 단순한 방어 조직에서 공격적인 군사 조직으로 변모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데, 그는 유대인 부대에게 효과적인 전투 및 보복 기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하가나는 아랍 반란 진압 과정(영국군 배속)과 제2차 세계 대전(영국군 참전)을 통해 실전 경험을 쌓는 한편, 팔레스타인 마을들에 대한 감시와 정보원 침투 활동을 꾸준히 벌여나갔습니다. 이러한 군사적 준비와 병행하여 이루어진 것이 바로 ‘마을 파일’의 작성이었습니다. 히브리 대학 출신인 벤치온 루리아의 제안으로 유대 민족 기금(JNF) 주도 하에 모든 아랍 마을에 대한 상세 정보 파일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훗날 ‘땅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유대 민족 기금(JNF)은 팔레스타인 식민화의 주요 도구로서 토지 매입과 유대인 정착을 담당했는데, 특히 정착부장이었던 요세프 바이츠는 매입한 땅에서 팔레스타인 소작농들을 신속하게 추방하는 일을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바이츠는 이 마을 파일 기획을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민족적 기획’으로 전환하자고 열정적으로 제안했다고 하네요. 파일에는 각 마을의 지형, 도로 접근성, 토질, 샘물 위치, 주요 소득원, 사회-정치적 구성, 종교적 소속, 촌장의 이름, 남성 연령 분포 등 실로 방대한 정보가 기록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시온주의에 대한 ‘적대감’ 지수(이는 1936년 반란 참여 정도를 기준으로 매겨졌습니다)와 영국 및 유대인에 대항했던 인물들의 명단이 포함되었다는 점인데, 이 정보는 1948년 마을 점령 후 처형과 고문으로 이어지는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자료 수집에 참여했던 모셰 파스테르나크의 증언에 따르면, 이는 단순한 학술 조사가 아니라 마을 공격 방법을 파악하고 정보원 및 부역자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명백한 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군요. 이후 에즈라 다닌, 야코프 시모니 등이 참여하여 농경지 면적, 가구당 토지 보유량, 자동차 수, 상점주와 장인의 이름, 씨족 관계, 정치 성향, 공무원 명단, 사원과 이맘 정보 등 더욱 상세한 내용이 추가되었고, 최종 업데이트(1947년)는 소위 ‘지명 수배자’ 명단을 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 명단은 1948년 마을 점령 시 즉각적인 수색-체포 작전에 사용되었으며, 명단에 오른 이들은 현장에서 처형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선정 기준(민족 운동 참여 등)이 워낙 광범위하여 거의 모든 마을이 포함될 수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처럼 상세한 정보 덕분에 시온주의 군 사령부는 팔레스타인 측의 지도력 부재를 확신할 수 있었다고 하니(이가엘 야딘의 언급처럼 말이죠), 정보의 힘이란 실로 무서운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시온주의 지도부는 팔레스타인 저항력이 약화되었음을 인지하고, 영국 자체를 자신들의 땅 차지 계획에 있어 유일한 걸림돌로 여기게 됩니다(이는 1942년 빌트모어 계획에서 팔레스타인 전체를 요구했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유대 지도부는 영국을 몰아내기 위한 무장 운동에 착수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계속해서 입안했습니다. 지도자들은 공개 석상에서는 조심스러워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인 추방, 즉 ‘이동(Transfer)’을 논의하기 시작합니다. 요세프 바이츠는 이미 1940년에 이를 ‘권리’이자 ‘필수’라고 주장했고, 벤구리온 역시 1937년에 전쟁과 같은 ‘시의적절한 계기’가 필요하다고 보았으니, 1948년은 그들에게 바로 그 계기가 되었던 셈입니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시온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던 다비드 벤구리온은 특히 안보 및 방위 문제를 완전히 장악하며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를 실질적으로 지휘하게 됩니다. 그는 초기 필 위원회의 작은 규모 국가 제안을 수용하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보이면서도, 최대한 많은 영토에서 유대인 주권을 확보하려는 목표를 놓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유대 국가 달성을 위해서는 무력 사용과 적절한 역사적 기회가 필요하다고 일찍부터 확신했던 그는, 다른 지도자들이 점진적인 토지 매입에 집중할 때 이것만으로는 부족함을 인지하고 장기적인 군사력 증강과 전략 수립에 몰두했습니다(심지어 모셰 샤레트 같은 온건파 지도자조차 유대인 정착과 팔레스타인인 추방을 연결지어 생각했을 정도이니,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만합니다). 빌트모어 계획(1942)으로 팔레스타인 전체 소유권을 주장했으나, 전후 영국 노동당 정부가 민주적 해법을 모색하려 하자 시온주의 세력은 영국에 대한 무장 공격(킹 데이비드 호텔 폭파 사건 등)으로 응수합니다. 벤구리온은 영국 철수가 임박했다고 판단하고, 팔레스타인의 약 80% 정도면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1946년 파리 회의에서는 다시 분할안으로 선회하며 팔레스타인의 ‘큰 덩어리’(80~90%)를 요구했는데, 이는 이후 60년간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기본 입장이 되었다고 하네요. 이 모든 협의 과정에서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의 저항 가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는데, 이는 1939년 반란 진압 이후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붕괴되었고 아랍 국가들 또한 주저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벤구리온은 ‘비타혼’(안보)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집착으로 안보 문제를 최우선시하며 시온주의 의사 결정 구조의 정점에 섰습니다. ‘비타혼’이라는 용어는 무기 구매에서부터 팔레스타인 정책, 심지어 도발적인 보복 행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만능 열쇠처럼 사용되었죠. 1946년 국방 장관직을 맡아 안보 관련 전권을 장악한 그는, 중요한 결정이 임박하자 공식적인 구조를 무시하고 비밀 조직에 의존하기 시작합니다. 영국은 결국 1947년 2월,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 반란에 대처할 능력 부재, 인도의 독립 결정, 전후 경제난 등 복합적인 이유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이관하고 철수를 결정합니다. 벤구리온은 이러한 영국 철수를 예상하고 이에 대비한 전략, 즉 플랜 C(기멜)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는 이전 계획들(플랜 A, B)의 수정본으로, 영국군 철수 즉시 팔레스타인 농촌과 도시 지역에서 공세 작전을 벌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표면적인 목적은 팔레스타인의 공격을 ‘억제’하고 유대인 정착촌 공격에 대한 ‘보복’이었지만, 그 내용은 실로 무시무시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정치 지도자, 선동가, 재정 지원자, 반유대인(으로 지목된 자), 고위 관리 등을 살해하고, 교통 및 생계 자원(우물, 방앗간 등)을 파괴하며, 인근 마을을 공격하고, 클럽이나 커피하우스 같은 공공장소를 공격하는 것 등을 포함했습니다. 이 계획에는 앞서 언급된 ‘마을 파일’의 정보를 적극 활용하도록 명시되어 있었으니, 그 치밀함이 섬뜩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만에 플랜 C는 더욱 가혹한 플랜 D(달렛)로 대체됩니다. 이 새로운 계획은 미래 유대 국가 영역 내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것이었는데, 팔레스타인인들의 협조나 저항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들을 자신들의 고국에서 체계적이고 전면적으로 추방할 것을 요구하는, 그야말로 종족 청소 계획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시온주의 기획은 박해를 피할 수 있는 유대인의 안식처이자 새로운 유대 민족주의의 요람인 순수한 유대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창건함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국가는 사회-정치적 구조만이 아니라 종족 구성에서도 순수한 유대 국가여야 했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단 하나 심각한 문제라면 영국인들이었다. 〈영국인들만 없었다면, 우리는 아랍의 폭동[1947년 유엔 분할 결의안에 대한 반발]을 한 달 만에 진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1장에서 여러 소스 (백과사전, 유엔, 위키피디아 등)에서 인용을 하며 종족 청소를 정의하는데 그 정의들의 핵심은 특정 지역, 혹은 국가를 한 민족만의 땅으로 만들려는 목적으로 그 땅에 살고 있던 다른 민족을 강제로 내쫓는 행위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종족 청소라는 개념의 명확한 정의와 그 것의 범죄성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서문과) 1장을 읽고, 성서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행위가 지금은 국제법으로 처벌받는 반인도적 범죄로 명확히 정의된다는 사실과, 이를 제대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저자의 주장대로,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단순한 '전쟁'의 틀에서 벗어나 '종족 청소'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2장을 읽어 보겠습니다.
전체적인 식민 정책의 방향은 아니었으나, 일제가 한때 조선인을 모두 만주로 내몰고 한반도 전체에 일본인을 이주시켜 식민(植民, 문자 그대로 '사람을 옮겨 심는다는...)하려 했다는 논의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천만다행스럽게도 그러한 논의는 논의에 그쳤습니다. 만약 그리 되었다면 우리가 민족의 터전을 되찾는 일이 훨씬 어려워졌겠죠. 인종청소 또는 종족청소는 적대적인 두 세력이 하나의 지역을 두고 경쟁할 때, 언제나 뿌리치기 어려운 위험한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이를 국제사회가 명확한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한 것은 아다지오님 말씀대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처럼 어떤 것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우리의 세계가 구체화하는 것일테니까요.
종족 청소란 특정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종교, 종족, 민족 등에서 유래하는 근거에 입각해서 주어진 영토에서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명확한 정책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이런 정책은 폭력을 수반하며 흔히 군사 작전과 연결된다. 종족 청소는 차별에서 절멸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수단에 의해 달성되어야 하며, 인권 침해와 국제법 위반을 초래한다. (드라젠 페트로비치, 1994)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1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종족 청소는 여러 종족이 섞여 있는 나라에서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쫓아내 난민으로 만드는 한편 그들을 쫓아낸 집을 파괴함으로써 나라를 균일화하려는 시도이다. 분명 종합적인 계획이 존재할 테지만, 종족 청소를 벌이는 부대의 대부분은 직접적인 명령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전에 이미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청소 작전과 동시에 대량 학살이 벌어지지만,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이것이 집단 학살 계획의 일부는 아니다. 대량 학살은 추방 대상인 주민들의 탈주를 가속화하기 위한 핵심 전술이다. 쫓겨난 사람들은 나중에 이 나라의 공식적, 대중적 역사에서 지워지고 집단적 기억에서 삭제된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4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영국 위임 통치 당국은 처음부터 시온주의 운동이 팔레스타인에 미래 국가를 위한 하부 구조로서 독립적인 고립지를 만들게 놔두었고, 1930년대 말 시온주의 운동 지도자들은 유대인의 배타적 독점이라는 추상적 전망을 좀 더 구체적인 계획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외교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양도받는 데 실패할 경우에 결국 무력으로 땅을 차지하기 위한 시온주의의 준비 태세 중에는 - 시온주의에 동조하는 영국 장교들의 도움을 받아 - 효율적인 군사조직을 건설하고 충분한 재정 자원을 확보하는 일도 들어 있었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전통적으로 한 구획의 토지나 심지어 마을 전체의 소유권이 바뀌는 경우에도 농민이나 마을 사람이 이사를 갈 필요는 없었다. 팔레스타인은 농업 사회였고, 새로운 지주는 땅을 계속 경작하려면 소작농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온주의가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바이츠는 종종 가장 가까운 참모들을 대동하고 새로 매입한 토지를 직접 찾으면서 새로운 유대인 지주들에게 지역 소작농을 내쫓으라고 부추겼다.
마을을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이런 제안을 한 것은 히브리 대학 출신의 젊은 역사학자 벤치온 루리아였다. 그는 모든 아랍 마을의 자세한 명부가 있으면 유용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유대 민족 기금에 이런 목록 작성을 맡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땅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유대 민족 기금을 장래에 벌어지는 종족 청소에 가담시키자는 그의 독창적 기획은 이후 이어진 추방 계획에 더 많은 추진력과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벤구리온의 플랜C는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시온주의라는걸 사전적 정의로만 알고 있었는데, 종교나 종교에 따른 신념이라는게 인간성의 바닥을 보여주는것 같아 실망스럽고 처참합니다.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은 마치 요새와 같은 정착촌을 중심으로 기존의 선주민 영역을 파괴하고 침범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식인데요. 일반적인 서양 식민주의나 일본의 조선 침략과 비교해도 훨씬 더 불리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인도차이나를 식민지배했던 프랑스인도 아프리카 몇몇 지역을 집어삼켰던 독일도 모두 돌아갈 자신의 본국이 있었지만 이들 유대인들은 돌아갈 나라가 없다는 것이 근본적 차이죠. 그렇기에 그 어떤 식민제국의 점령활동보다 더욱 근본적인 종족 청소의 방향을 잡을 수 밖에 없었겠구요. 그런 배경 탓에 불과 몇 해 전 자신들이 당했던 반인도적 범죄를 또 다른 힘없는 민족을 상대로 저지르게 된 것이겠죠. 말씀하신대로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인간성의 바닥'을 보여준다고 밖에는 볼 수 없네요. ㅠㅠ
“유대인들은 돌아갈 나라가 없다는 것이 근본적 차이”라는 말씀을 읽으니, 아 이게 정말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침 요즘 강유원 선생님 팟캐스트를 통해 리처드 오버리의 <피와 폐허>를 읽고 있거든요. 오늘은 2차대전 중 벌어진 유대인 저항에 관한 꼭지를 읽었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과도 관련이 있는 듯해 공유해 봅니다.
유럽 유대인 민간 공동체들의 저항은 다른 모든 형태의 저항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국가 해방을 위해 투쟁하거나 전후 국가가 어떠해야 하느냐를 놓고 서로 싸운 저항단체나 파르티잔 조직과 달리, 유럽 유대인은 유대 민족을 절멸시키려는 전쟁에 전념하는 정권을 마주하고 있었다. […] 유럽 유대인에게는 투쟁해서 얻어낼 만한 유대 국가나 정치적 미래가 없었다.
피와 폐허 1~2 세트 - 전2권 1138쪽, 리처드 오버리 지음, 이재만 옮김
피와 폐허 1~2 세트 - 전2권2차 세계대전 연구를 선도해온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의 《피와 폐허》는 2차대전의 기원, 경과, 여파를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한다. 2022년 군사사 웰링턴 공작 메달을 수상하고 전 세계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받은 책으로, 2차대전을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게 한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겪었던 끔찍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던 간절함이, 죄 없는 다른 민족에게 또 다른 만행을 저지르는 이유가 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통탄스러운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어려서부터 세계대전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아직 이 책은 접해보지 못했네요. 상당한 두께의 책이지만 기회가 닿으면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플랜 C는 이런 식의 응징 행동에 포함되는 내용을 분명하게 설명했다. 팔레스타인 정치 지도부를 죽일 것. 팔레스타인 선동자들과 재정 지원자들을 죽일 것. 유대인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죽일 것. 팔레스타인 고위 관리와 공무원들[위임 통치 체제에 참여한 이들]을 죽일 것. 팔레스타인의 교통을 손상시킬 것. 우물, 방앗간 등 팔레스타인의 생계 자원을 손상시킬 것. 향후 공격에 조력할 공산이 큰 인근의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할 것. 팔레스타인 클럽, 커피하우스, 만남의 장소 등을 공격할 것.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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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AK과 함께 <코스모스> 읽고 미국 현지 NASA 탐방까지!
코스모스, 이제는 읽을 때가 되었다!
내 맘대로 골라보는《최고의 책》
[그믐밤] 42. 당신이 고른 21세기 최고의 책은 무엇인가요? [그믐밤] 17. 내 맘대로 올해의 책 @북티크
🎨책과 함께 떠나는 미술관 여행
[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책증정] 미술을 보는 다양한 방법, <그림을 삼킨 개>를 작가와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오늘날, 한국은?
🤬👺《극한 갈등:분노와 증오의 블랙홀에서 살아남는 법》 출간 전 독서모임![서평단 모집] 음모론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에 투여하는 치료제! 『숫자 한국』[책 증정_삼프레스] 모두의 주거 여정 비추는 집 이야기 『스위트 홈』 저자와 함께 읽기
책을 들어요! 👂
[밀리의서재로 듣기]오디오북 수요일엔 기타학원[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Nina의 해외에서 혼자 읽기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위화의 [인생]강석경 작가의 [툰드라]한 강 작가의 소설집 [여수의 사랑]
⏰ 그믐 라이브 채팅 : 12월 10일 (수) 저녁 7시, 저자 최구실 작가와 함께!
103살 차이를 극복하는 연상연하 로맨스🫧 『남의 타임슬립』같이 읽어요💓
비문학 모임 후기를 모았습니다
[독서모임 아름 비문학 모임 8기 1회] 2025년 9월, 크리스틴 로젠, <경험의 멸종> 모임 후기[독서모임 아름 비문학 모임 8기 2회] 2025년 10월, 김성우,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모임 후기[비문학 모임 8기 3회] 2025년 11월, 파코 칼보,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 모임 후기
중화문학도서관을 아시나요?
[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12월의 책 <엑스>, 도널드 웨스트레이, 오픈하우스[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11월의 책 <말뚝들>, 김홍, 한겨레출판[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9월의 책 <옐로페이스>, R.F.쿠앙, 문학사상 [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7월의 책 <혼모노>, 성해나, 창비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나의 인생책을 소개합니다
[인생책 5문5답] 47. 이자연 에디터[인생책 5문5답] 39. 레몬레몬[인생책 5문5답] 18. 윤성훈 클레이하우스 대표[인생책 5문5답] 44. Why I write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만나는 철학자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책걸상 함께 읽기] #52.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도서 증정] 순수이성비판 길잡이 <괘씸한 철학 번역>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증정]《너를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니체가 말했다》 저자&편집자와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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