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깊이를]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D-29
역사적으로 보면, 나치 정권의 홀로코스트만이 아니라 천수백 년에 걸쳐 유럽 곳곳에서 주기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학살과 추방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다시 말해 반유대주의의 역사는 유럽사의 한 축을 이룹니다. 이에 비해 사라센 제국과 오스만 제국에서는 유대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다만 오스만 제국에서도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는 등 일정한 차별이 존재했기에 ‘상대적’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한편 팔레스타인은 20세기에 자행된 유대인 박해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지역임에도 그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습니다. 만약 유럽이 스스로의 죄책감을 덜고자 했다면, 그들의 영토 (이를테면 독일의 한두 개 주) 를 할애해 유대인 국가의 수립을 지원했어야 마땅했겠죠.
비타혼(bitachon, 안보)은 그때나 지금이나 시온주의 지도자들, 후에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해외 무기 구매에서 다른 정당과의 내부 투쟁, 미래 국가를 위한 준비, 팔레스타인 현지 주민들에 대해 채택한 정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쟁점을 감추고 수많은 핵심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메타 용어이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71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중동 지역 차원의 범아랍 기구인 아랍 연맹(Arab League)과 아랍 고등 위원회(맹아 형태의 팔레스타인 정부)는 유엔 결의안에 앞서 운스콥과의 교섭을 보이콧하기로 결정했으며, 1947년 11월 이후 결의안을 실행하는 최선의 방법에 관한 협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시온주의 지도부는 자신 있고 손쉽게 이런 공백 상태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방법에 관해 신속하게 유엔과 양자 간 대화 틀을 구성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79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유엔과의 협력을 거부하기로 한 게 이해는 됩니다. 유엔의 분할 계획이 너무나 부당한 내용이니만큼 그때 그들 입장에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선택이 결국은 시온주의 세력을 도와주는 꼴밖에 안 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요. (@책읽는생활 님께서도 말씀하셨던 것처럼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분할안을 거부했든 수용했든간에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 같기도 하고… 이 대목은 제 머리로는 판단하기가 참 어렵네요.
역사에 가정은 없겠죠. 다만 일본 사례를 떠올리면, 안중근 의사가 정한론과 결이 다른 노선을 보이던 일본의 정치 거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일이 오히려 한국의 패망을 몇 년 앞당겼다는 식의 논리가 있지요. 설령 그가 정한론의 과격성을 경계하고, 일본 제국의 장래를 고려해 대한제국의 국체를 보호국 수준으로는 유지하려 했다고 해도, 그것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를 죽였든 그렇지 않았든, 우리의 독립은 상실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팔레스타인 분할안 역시, 그 자체가 팔레스타인 측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고, 이를 빌미로 오늘까지 “평화를 원치 않는 쪽은 팔레스타인”이라는 핑계를 이스라엘이 대고 있죠. 그러나 향팔님 말씀처럼, 애초에 침략하는 쪽의 의지가 상대의 절멸이나 사실상 완전한 추방에 가까웠다면, 이쪽이 무엇을 선택했는지는 큰 상관이 없었을 겁니다. 이 지점이, 침략의 대상이 되었던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ㅠㅠ
아랍과 팔레스타인이 분할 계획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벤구리온과 시온주의 지도부는 유엔 계획이 수용되는 바로 그날 이 계획은 효력을 잃게 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 물론 팔레스타인 유대 국가의 적법성을 인정한 조항은 예외였다. 벤구리온은 팔레스타인과 아랍이 거부한다고 가정하면 경계선은 “분할 결의안이 아니라 힘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에 사는 아랍인들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86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이제 하나의 공식이 드러난다. 벤구리온이 전면에 등장하는 기구의 중요성이 작을수록, 이 지도자는 분할 결의안을 더 지지했다. 그리고 중요한 토론의 장일수록 그는 분할 결의안에 대한 경멸적인 거부를 더욱 완강하게 증명했다. 안보 문제에 관해 그에게 조언하는 특별 기구인 방위 위원회에서 그는 분할 결의안을 즉각 기각했고, 1947년 10월 7일에 이미 ─ 유엔 결의안 제181호가 채택되기도 전에 ─ 그는 협의체 동료들로 이루어진 측근 그룹에게 아랍이 유엔과의 협력을 거부하는 것을 감안할 때, “미래 유대 국가의 영토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86-87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앞에서도 여러 분께서 말씀하셨지만, 이 대목을 읽으면서 벤구리온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영리하고 치밀한지 다시금 느꼈습니다. 정말 무서운 인간이에요 ㄷㄷ
이스라엘의 주류 역사서는 여전히 벤구리온의 ‘종족청소 의도’를 거의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결과 대다수 이스라엘 국민 다수는 그가 유엔 결의안을 충실히 따르며 자위적/방어적 군사행동만 지시한 인물로 이해하고 있죠. 그러나 팔레스타인 전역을 단계적으로 장악하려 했다는 그의 초기 구상과 관련한 방대한 증거를 외면하는 현실은 참으로 답답합니다.
3장 요약 및 느낌 1947년 팔레스타인의 문제가 영국에서 유엔으로 넘어가고 운스콥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이 내놓은 유엔 결의안 181호가 나온 때를 기점으로 해서 유대인 공동체와 팔레스타인 공동체 사이의 긴장과 충돌은 완화되기는커녕 고조됩니다. 이유는 이 결의안이 국제적 중재의 규칙을 모조리 무시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의지를 전적으로 배제한 분할 정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유엔은 분할 정책을 지지했는데 그 것이 내포한 다음과 같은 여러 문제들을 무시합니다. 1.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인구가 팔레스타인 인구에 비해 훨씬 적었고 그들의 거주지도 도시에 집중되어 있어 지역을 분할하여 균일화한 민족을 각각 배치시키는 것은 해법이 불가능한 문제였습니다. 2. 유대인의 토지 소유권은 6퍼센트에 불과했기에 논리적으로는 유대인에게 주어지는 땅이 10퍼센트 정도가 공정하다고 볼 수 있으나 절반이 넘는 땅을 유대인에게 할당하였습니다. 3.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매우 부당하게 되어가는 현실에 분노한 대중들을 대변하여 분할 정책에 반대했기에 운스콥을 보이콧했고 어떤 협의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4. 이를 기회로 팔레스타인의 입장이 배제된 시온주의자들과 유엔의 대화틀 속에서 결의안이 확정되고 실행됩니다. 벤구리온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유엔 결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팔레스타인 땅의 대부분과 아주 소수의 팔레스타인만이 미래 유대국가에 포함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에 결의안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세울 수 있는 권리를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것은 중요했기에 결의안을 수용했고 수용하는 동시에 거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이 거부할 경우 결의안이 아닌 힘으로 분할의 경계선을 결정하겠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거부가 확인된 후 그는 비공식적 기관인 협의체와 은밀하게 회의를 열고 종족 추방의 계획을 세웁니다. 3장을 다 읽고 나서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국제 기구가 얼마나 철저히 시온주의자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요구를 무시했는가,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이 달린 일에 얼마나 무관심하게 부도덕하게 대처하였나하는 인식과 통탄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다지오님의 '유대 국가 설립을 위한 국제적 승인 확보가 최우선이었다'는 요약글을 읽으니, 국제 정세에 밝았던 유럽계 유대인들이 외교적으로 무력했던 팔레스타인인들에 비해 얼마나 유리한 위치에 있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결국 유엔은 팔레스타인이 수용할 수 없는 중재안을 내놓았고, 유대 국가는 이를 빌미로 사실상의 '인종 청소'를 자행했으니, 이들은 한통속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정의로운 해법을 찾기는 불가능했겠지만, 훗날이라도 세계가 이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팔레스타인의 민족자결권을 제대로 인정하는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핵심을 짚어주시는 요약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챕터는 분량이 상당하여 어떻게 읽고 계신지 사뭇 궁금합니다. 그래도 하루가 통째로 남아있으니 여유롭게 끝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일정에 맞추어 제4장 '마스터플랜을 완성하다'의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이 장은 1947년 11월부터 1948년 3월까지 시온주의 지도부가 팔레스타인인 추방이라는 구체적인 계획, 즉 소위 '플랜 달렛(Plan Dalet)'을 완성하는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1947년 2월 영국의 철수 결정부터 1948년 5월 이스라엘 독립 선포 및 아랍 군대의 진입까지 이어지는 주요 사건들을 요약하면서 시작하는데, 저자는 당시 시온주의 전략을 움직인 두 가지 동력이 있었다고 제시합니다. 그 하나는 팔레스타인 정치 및 군사 체제의 분열과 아랍 세계의 혼란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건이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배타적인 유대 국가라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독특한 '역사적 기회'가 열렸다는 일종의 본능적 욕구였을 공산이 큽니다. 저자는 1948년 3월을 기점으로 전략이 전환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전의 활동은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어찌어찌 설명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물론 그조차 억지스럽습니다만 ^^;), 3월 이후(영국 위임 통치 종료 두 달 전)에는 '플랜 달렛'을 통해 팔레스타인 땅을 무력으로 차지하고 원주민을 쫓아내겠다는 구조적(structural) 계획이 공개적으로 선언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겠죠. 시온주의 지도부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팔레스타인 땅을 획득하되, 그곳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의 수는 가급적 줄이는 것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래 국가의 영토는 가장 멀리 떨어져 고립된 유대인 정착촌을 기준으로 정해졌으며,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단계는 트랜스요르단의 압둘라 국왕과의 비밀 교섭이었을 겁니다. 이 합의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분할하여 유대 국가가 80%, 요르단이 20%(요르단강 서안)를 차지하기로 했으니, 이는 가장 강력한 아랍 군대였던 요르단 군단을 사실상 중립화시키는 전략적 수순이었겠죠. 이러한 요르단의 배신행위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저는 또 우리 역사가 떠오르더군요. 조미수호조약으로 상호 방위의 의무가 있는 미국이 일본과의 뒷거래(가쓰라-태프트 밀약)를 통해 자신들의 태평양에서의 패권을 인정받는 대신 조선을 일본에 내어준 그 비열한 외교게임이 이렇게 반세기후에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게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 몹시 씁쓸했습니다. 게다가 요르단은 같은 아랍민족이라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랄까요. 성공적인 소위 '종족 청소'를 위한 세 번째 단계는 압도적인 군사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1948년 전쟁 직전 유대 군대는 약 5만 명에 달했지만 팔레스타인 비정규 준군사 부대는 7,000명에 불과했고 아랍 세계의 지원병은 1,000명(이후 3,000명으로 증가)에 그쳤으니 병력의 불균형은 명약관화합니다. 유대 측은 하가나, 팔마흐 등 잘 훈련되고 중무기(체코슬로바키아 등에서 대규모 도입)까지 갖춘 군대를 보유했던 반면, 벤구리온은 '제2의 홀로코스트'라는 공개적 선전과는 달리 사적으로는 군사적 우위를 확신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가 모셰 샤레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전체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밝힌 것을 보면 말이죠. 아랍의 개입은 5월 15일에야 이루어졌고, 그전 5개월 반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셈입니다. 저자는 시온주의 지도부가 소위 '인구 균형' 문제를 재앙으로 인식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들이 탐낸 영토에는 10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과 60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으니, 벤구리온이 1947년 12월 3일 연설에서 유대 국가가 안정되려면 유대인이 최소 80%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겠죠(??). 그는 이미 11월 2일 팔레스타인인들을 '제5열'로 규정하며 "대량 체포하거나 추방할 수 있는데, 추방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는 플랜 달렛이 현장 상황에 대한 임시적 대응이 아니라, '순수한 유대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적 목표에 기반한 명확한 청사진이었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셈입니다. 목표(탈아랍화)는 분명했고, 수단은 점차 발전했을 뿐이라는 것이겠죠. 1947년 12월, 시온주의 지도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상 상태로의 복귀' 열망에 직면했는데, 이러한 수동적인 태도는 추방을 위한 '구실'을 제공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불안한' 문제였을 공산이 큽니다. 아랍 해방군(ALA) 지원병들의 등장은 바로 이 구실을 제공한 셈이 되었죠. 12월 31일부터 1월 2일까지 열린 소위 '긴 세미나(Long Seminar)'에서 전략은 '타그물(보복)'에서 '요츠마(주도적 계획)'로 전환됩니다. 요세프 바이츠는 "지금이야말로 그자들을 없애 버릴 때가 아닙니까?"라고 주장하며 '이동 위원회' 구성을 허가받았고, 이가엘 야딘은 '보복'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공세'를 취할 것을 제안했으며, 이갈 알론은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다고 해도 '연좌제'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벤구리온은 더 공세적인 정책을 승인하면서, '무고한 사람'과 '범죄인'을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모든 공격은 점령과 파괴와 추방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해서 가차 없이 피해를 줄 필요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긴 세미나' 이후, '무력 정찰'이라는 명목하에 데이르 아윱 등이 공격당했고, 이갈 알론은 명령을 어기고 키사스 마을을 공격했지만 벤구리온은 이를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사적으로는 성공적인 작전으로 평가했다고 하니, 그 이중적 태도가 놀랍습니다. 하이파에서는 유대인 정착민들이 아랍 동네로 폭발물 드럼통을 굴리고 불타는 기름을 쏟아부었으며, 발라드 알셰이크 학살을 통해서는 영국군의 묵인을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리프타와 끼사리야 일대의 마을들은 1, 2월에 걸쳐 청소되었고, 사사 마을에서는 저항이 없었음에도 팔마흐 부대가 주택을 파괴하고 60명 이상의 주민을 살해했습니다. 이 대목은 일단 최소한의 합리화 구실만 확보되면 여성과 어린이 모두 포함한 학살극을 벌이는 작금의 가자 제노사이드의 시초를 보는 듯하여 끔찍하더군요. 마침내 1948년 3월 10일 수요일, 플랜 달렛(플랜 D)이 최종 완성되어 암호명 '여호수아(Yehoshua)' 작전으로 현장 부대에 하달됩니다. 이 계획은 명시적으로 마을 파괴와 주민 추방을 지시했는데, "이 작전은... 마을과... 인구 중심지를 (불을 지르고, 폭파하고, 잔해에 지뢰를 심는 식으로) 파괴하거나... 저항을 하는 경우에 무장 세력을 쓸어버리고 주민들은 국가 경계선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는 팔레스타인 농촌과 도시 지역 모두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추방 마스터플랜이었던 셈입니다. 저자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전달된 '정치적 판본'과 현장 지휘관들에게 하달된 '군사적 판본'이 달랐다고 지적하는데, 군사적 판본은 영국 위임 통치 종료를 기다리지 않고 즉각적인 실행을 명령했다는 점에서 그 기만성이 드러납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1948년 4월이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한 '전환점'이라는 이스라엘의 공식 역사 서술을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4월은 단지 1947년 12월부터 이미 시작된 종족 청소 작전이 그저 체계적이고 거대한 규모로 실행되는 단계로 넘어간 것일 뿐이라는, 다소 불편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1948년에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친 것이 팔레스타인 원주민에게 그 땅을 찾아주고자 한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노나먹으려고 그랬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정확하게는 저 자신의 순진함에 대한 충격이랄까요.) 생각해보면 요르단이나 이라크 같은 나라는 영국이랑 붙어먹은 대가로 나라를 하사받은 왕들이 지배하고 있었으니 크게 이상할 것도 없지만요. (시리아도 프랑스가 제멋대로 만든 국가라고 하니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아요.) 4장에 나오는 마을 습격과 파괴의 이야기를 읽으니 (특히 사사 마을의 학살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책읽는생활 님 말씀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살이 떠올라 심란합니다. 하마스가 테러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한편 이해가 되어요.
보통 사람들끼리는 종교든 인종이든 상관없이 그냥 잘 살고 있는 마을을 나라에서 건드리는건 정치적인 목적이라는 글을 보고, 정치도 인간이 하는건데 도대체 왜 이러나 싶었어요.
그러게요. 종교나 민족이 달라도 마을에서 평화롭게 어울려 살았고, 심지어는 아랍인과 유대인이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면서 노동쟁의도 공동으로 벌였다는데…. 하룻밤 사이에 우리 집과 동네가 돌조각밖에 남지 않고, 가족들은 살해당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장 집도 절도 없이 쫓겨난다 생각하니 너무 아찔하고 끔찍합니다.
최근 <만들어진 유대인>이라는 책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족 청소가 본격화하기 전인 1930~40년대에는, 팔레스타인 도시 지역에서 영국 제국주의에 함께 항거하는 좌익 단체도 있었고 말씀하신 대로 노동 운동도 함께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이들이 '특정 종족이 모든 헤게모니를 쥐어야 한다'는 이념으로 전쟁을 시작하자마자, 끔찍한 비극 속에 빠져버린 거죠.
오, <만들어진 유대인>도 읽어보고 싶네요. 예전에 정의길 기자의 책 <유대인, 발명된 신화>를 읽고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많은데, <만들어진 유대인>은 그와 비슷한 주제에서 출발하여 더욱 깊이 나아간 책인 듯합니다.
유대인, 발명된 신화 -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역사상 가장 오래된 증오’, 유대인 문제를 통해 차별과 혐오, 타자화의 논리와 문제점을 고발하는 책. 추방, 유배, 이산, 귀환 등으로 요약되는 ‘유대인 신화’는 기독교 세계가 유대인이란 ‘타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했음을 밝힌다.
만들어진 유대인“유대 민족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24개국 번역, 전 세계 언론과 학자들로부터 크게 주목 받은 문제작. 오늘날 다시 득세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서다.
네, 거의 같은 문제의식에 바탕한 책인 듯싶네요. 두 작품 모두 시오니스트들의 팔레스타인 식민화 근거가 되는, '고대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종족적 지속성 및 연결성'을 허구로 보는 시각을 공유하니까요. 한마디로, 작금의 현대 국가 이스라엘 성립 배경이 마치 우리가 20세기에 난데없이 단군 신화와 고구려 역사를 근거로 중국 동북지역 주민들을 몰살하고 그 자리에 한민족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시도처럼 황당한 사태임을 밝히는 책들이란 점에서 말이죠.
이 책 각장의 초반에 짧게 소개되는 유고 내전의 종족 청소와 학살 사례를 보면, 갑작스럽게 불거진 종족주의 충돌이 얼마나 끔찍한지 여실히 깨닫게 됩니다. 불과 어제까지 같은 마을에서 평화롭게 이웃으로 살던 보스니아인들이 세르비아인에 의해 학살당하는 모습은,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더없이 기괴하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왔겠죠.
말씀하신 대로, 서구 열강의 지원을 받는 중동 신생국 지도자들의 소극적 움직임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어지는 5장에서는 요르단 국왕뿐 아니라 아랍 각국 집권자들이 당시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얼마나 집단적으로 외면했는지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 요르단이나 이집트의 상황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이웃 국가들이 지난 수십 년간 미국과 서방 세계의 지원에 의존하는 행태를 더욱 심화해왔기 때문이죠.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수북탐독]9. 버드캐칭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안의 크기』의 저자 이희영 작가님,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1일 오프라인 북토크 예정!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SOAK과 함께 <코스모스> 읽고 미국 현지 NASA 탐방까지!
코스모스, 이제는 읽을 때가 되었다!
내 맘대로 골라보는《최고의 책》
[그믐밤] 42. 당신이 고른 21세기 최고의 책은 무엇인가요? [그믐밤] 17. 내 맘대로 올해의 책 @북티크
🎨책과 함께 떠나는 미술관 여행
[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책증정] 미술을 보는 다양한 방법, <그림을 삼킨 개>를 작가와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오늘날, 한국은?
🤬👺《극한 갈등:분노와 증오의 블랙홀에서 살아남는 법》 출간 전 독서모임![서평단 모집] 음모론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에 투여하는 치료제! 『숫자 한국』[책 증정_삼프레스] 모두의 주거 여정 비추는 집 이야기 『스위트 홈』 저자와 함께 읽기
책을 들어요! 👂
[밀리의서재로 듣기]오디오북 수요일엔 기타학원[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Nina의 해외에서 혼자 읽기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위화의 [인생]강석경 작가의 [툰드라]한 강 작가의 소설집 [여수의 사랑]
⏰ 그믐 라이브 채팅 : 12월 10일 (수) 저녁 7시, 저자 최구실 작가와 함께!
103살 차이를 극복하는 연상연하 로맨스🫧 『남의 타임슬립』같이 읽어요💓
비문학 모임 후기를 모았습니다
[독서모임 아름 비문학 모임 8기 1회] 2025년 9월, 크리스틴 로젠, <경험의 멸종> 모임 후기[독서모임 아름 비문학 모임 8기 2회] 2025년 10월, 김성우,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모임 후기[비문학 모임 8기 3회] 2025년 11월, 파코 칼보,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 모임 후기
중화문학도서관을 아시나요?
[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12월의 책 <엑스>, 도널드 웨스트레이, 오픈하우스[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11월의 책 <말뚝들>, 김홍, 한겨레출판[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9월의 책 <옐로페이스>, R.F.쿠앙, 문학사상 [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7월의 책 <혼모노>, 성해나, 창비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나의 인생책을 소개합니다
[인생책 5문5답] 47. 이자연 에디터[인생책 5문5답] 39. 레몬레몬[인생책 5문5답] 18. 윤성훈 클레이하우스 대표[인생책 5문5답] 44. Why I write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만나는 철학자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책걸상 함께 읽기] #52.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도서 증정] 순수이성비판 길잡이 <괘씸한 철학 번역>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증정]《너를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니체가 말했다》 저자&편집자와 읽어요!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