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깊이를]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D-29
8장 9장에 대한 저의 감상을 써봅니다. 모임지기님께서 올려주시는 훌륭한 요약이 있으니 제 요약까지 올릴 필요는 없겠다라는 생각에.. ^^;; 8장을 읽고, 이스라엘이 말하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시각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관점이 과연 정당한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라고 불리는 이들을 악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폭력이 군인 간의 대립이 아닌 민간인을 겨냥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마스도 전 세계적으로 비난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선이 이중 잣대로 느껴지더군요. 이스라엘이 전쟁의 이름으로 지속하는, 즉 수행하다 불가피하게 발생했다고 말하는 '사상자(Casualties)'라고 불리는 민간인 살상 행위 또한 테러리즘과 똑같이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입니다. 오히려 국가의 체계적인 실행이기에 훨씬 강한 파괴력을 가졌음에도, 다른 힘센 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의 범죄는 계속 묻히고 쌓여 왔으며, 이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얼마나 쉽게 '테러리즘'으로 규정되고, 이것이 더 큰 보복의 구실로 사용될 수 있는지 타당하게 의심해 볼 수 있었습니다. 9장을 읽고 이스라엘이 쫓아 낸 사람들 뿐 아니라 그 땅에 남은 사람들에게까지 한 잔학한 행동들, 즉 수용소 감금, 강제 노동, 강간, 약탈, 학살, 게토로 몰아넣기 등 수없이 많은 범죄 행위를 보며 그 악랄함과 사악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쫓아 낸 것만이 아니라 빼앗은 땅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한 일들도 교묘하게 세계의 눈을 피해 속임수로 이루어진 것을 이 장을 통해 알게 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이웃 나라에 재정착시키는 방안을 내고 그들의 토지와 자산을 우선 ‘수탁’ 한다는 명분으로 소유의 결정을 미루었습니다. 그러다 기회가 왔을 때 강탈하고 소유하여 유대인 정착촌과 숲으로 뒤덮어버리는 비열함을 보입니다. 이런 일들이 온갖 증거에도 어떻게 은폐될 수 있는지 놀라우면서도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는 쪽에 대한 무조건적 동의와 약자에 대한 무관심이 이렇게 악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참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다지오님의 깔끔한 요약본으로 '복습'하던 재미도 쏠쏠했지만, 이번엔 감상 위주로 깨달은 점을 공유해주셔서 함께 이런저런 생각을 할 기회를 주시니 좋네요. 확실히 침략국가가 국적마저 모호한 피침략 민족의 저항을 아주 쉽게 '테러리즘'으로 규정하는 것은, 점령지 민중의 '무장저항'을 정당한 것으로 보는 국제법과는 무척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식민지 조선의 항일 무장 단체나 과거 남아공 백인 정권의 폭압에 맞서던 흑인 단체들, 그리고 현재 하마스까지 거의 모든 무장 저항 세력은 자동적으로 테러리스트 단체로 꼬리표를 달게 되죠. 만약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었다면 포로가 된 적군은 제네바 협약에 의한 전쟁포로로 대우 받겠지만, 이 경우는 그저 테러리스트로 지목당하여 최소한의 인권마저 짓밟히기 일쑤죠. 과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군에 맞서 싸웠던 오마르 카드르라는 소년이 어른이 되도록 적법한 절차 없이 관타나모 테러리스트 수용시설에 감금되어 고문까지 당한 것은 매우 유명한 예죠. 단지 어느 국가의 정식 군대가 아닌 텔레반이라는 '테러집단'에 속한 소년병이었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유전무죄'가 아니라 '유국무죄(有國無罪), 무국유죄(無國有罪)'네요. 나라 없는 설움이 이토록 참혹한 지경에 이른 예는 쉽게 찾아보기 힘듭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불법 감금되어 고초를 겪은 소년 이야기를 하시니 이 책이 떠오르네요. 관타나모 최연소 수감자 무함마드 엘-고라니의 실화를 그린 그래픽노블이라고 해서 예전에 킵해 뒀던 책인데요, 아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관타나모 키드 - 관타나모 수용소 최연소 수감자 무함마드 엘-고라니 실화 오디세이인권 블랙홀, 관타나모 미군 기지 수용소의 역사상 최연소 수감자 무함마드 엘-고라니(Mohammed El-Gharani)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그래픽노블이다. 주인공 무함마드의 삶을 통해 21세기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글로벌사우스에 남긴 거대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역사적으로 고발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평범하지만 위대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낸 역사 그래픽노블 수작이다.
찾아보니 제가 예로 들었던 '오마르 카드르'보다 더욱 억울한 사연이네요!! 초보적인 군사 기술이나마 익히고 실제로 미군과 교전을 벌였던 카드르와는 달리, 엘-고라니의 경우 사원에서 기도하다가 끌려간 케이스군요. 소위 인권 선진국이라 불리는 서방 각국의 '인권'이라는 것이, 결국 자국민만을 위한 위선적이고 선별적인 인권임이 드러나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한꺼번에 자산을 강탈했을 때 국제 사회의 분노가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새로 획득한 자산의 ‘수탁 기구’를 임명했다. 자산의 최종적인 운명에 대한 결정을 미결로 남겨 둔 것이다. 과거에 시온주의가 전형적으로 보인 행동을 연상시키는 이런 ‘실용적인’ 해법은 나중에 ‘전략적인’ 결정으로 바뀔 때까지(즉 강탈된 자산의 지위가 재규정될 때까지) 이스라엘의 정책이 되었다. 따라서 수탁 기구는 이스라엘 정부가 유엔 결의안 제194호의 내용, 즉 모든 난민에게 귀환을 허용하거나 보상을, 또는 둘 다를 해주어야 한다는 요구에 따른 악영향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구였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59-360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추방된 팔레스타인인들의 모든 개인적, 집단적 재산을 수탁 기구가 보관하게 함으로써 정부는 나중에 이 자산을 공공이나 민간의 유대인 집단이나 개인에게 매각할 수 있었고 실제로 매각했다. 소유권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그럴듯한 구실을 붙여서 말이다. 게다가 정부가 팔레스타인 소유주에게서 몰수한 토지를 직접 관리하게 된 바로 그 순간 토지는 국유지가 되었다. 법적으로 유대 국가의 소유가 된 이 토지는 이제 아랍인에게 매각할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60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다시 말해, 유대 민족 기금의 진짜 임무는 그 자리에 심은 나무만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역사 서사를 통해서도 팔레스타인의 가시적인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유대 민족 기금 웹 사이트에서나 공원 자체에서나 아주 정교한 시청각 장비로 시온주의의 공식적인 서사를 보여주면서 어떤 장소든 유대 민족과 ‘이스라엘 땅’의 민족적인 메타 서사라는 맥락 속에 자리매김된다. 이런 서사는 시온주의가 스스로 발명한 유대 민족의 과거와 모순되는 모든 역사를 대체하기 위해 동원하는 익숙한 신화─시온주의가 당도하기 전에 팔레스타인은 ‘아무도 살지 않는 불모의’ 땅이었다는 신화─를 계속 낭송한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80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드디어 일란 파페의 <팔레스타인 비극사> 읽기 대장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11장과 12장은 분량 면에서는 다소 가벼워 보일지 몰라도 그 내용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의 뿌리를 건드리고 있어 책장을 넘기는 손끝이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저자는 1948년의 인종 청소, 즉 나크바를 부정하는 것이 어떻게 평화라는 이름의 기만적인 협상 과정을 망가뜨려 왔는지 그리고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어떻게 고립된 요새로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우선 소위 평화 협상 과정이라 불리는 것들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그 시작부터 뒤틀려 있음을 알게 됩니다. 1948년 이후 유엔은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UNRWA를 설립했지만 이는 난민들의 귀환이라는 정치적 권리보다는 단순한 구호와 일자리 제공에 치중함으로써 유대인 난민 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분리하려는 시온주의자들의 입맛에 딱 맞는 처사였습니다. 하지만 난민 수용소는 역설적으로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요람이 되었고 결국 1948년의 비극을 시정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귀환권 요구는 PLO를 통해 구체화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유엔이나 미국 심지어 이스라엘 내부 일부에서도 난민 귀환을 평화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벤구리온의 영토 분할 욕심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1967년 전쟁 이후 미국의 주도로 진행된 평화 과정은 철저히 힘의 논리에 따른 것으로 이스라엘은 갈등의 원인을 1967년 점령으로 축소하고 1948년의 나크바와 난민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서 치워버리는 전략을 고수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걸었던 오슬로 협정이나 캠프 데이비드 협상 역시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슬로 협정은 가장 중요한 귀환권이나 예루살렘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는 함정을 가지고 있었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스라엘이 제안한 것은 사실상 난민 문제를 배제하고 영토의 일부만 돌려주겠다는 기만적인 반투스탄식 국가 건설에 불과했습니다. 아라파트가 이를 거부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음에도 그는 평화를 깬 전쟁광으로 낙인찍혀야 했죠. 이스라엘이 이토록 집요하게 1948년의 기억을 지우려 하고 귀환권을 봉쇄하려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나크바를 인정하는 순간 시온주의 기획 전체의 도덕적 정당성이 무너지고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견고한 자아상이 파괴될 것이라는 공포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묘사하는 요새 이스라엘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 아니라 제거하거나 통제해야 할 인구학적 위협으로 간주합니다. 2003년에 통과된 결혼 금지법은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시민과 결혼해 거주권을 얻는 것을 막음으로써 그들을 시민이 아닌 위험 요소로 규정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건국 초기부터 유대인 다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원주민을 몰아내려 했던 시온주의의 인구학적 강박이 여전히, 아니 더 교묘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네타냐후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아랍 인구의 증가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암적인 존재로 여기며 분리 장벽을 세우고 법적 차별을 통해 유대인만의 요새를 구축하려 합니다. 이러한 요새화 전략은 중세 십자군 국가나 과거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연상시킵니다. 아랍 세계라는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백인들의 요새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핵무기와 군사력 그리고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유대인이라도 아랍계인 미즈라히 유대인들은 이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고 더욱더 강렬한 요새의 수호자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인구학적 균형은 이미 팔레스타인 쪽으로 기울고 있으며 무력으로 유지되는 요새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단호하고도 명료합니다. 유일한 해법은 이스라엘이 배타적인 유대 국가라는 간판을 내리고 모든 시민을 위한 민주 국가로 거듭나는 것뿐입니다. 1948년의 인종 청소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난민들의 귀환을 보장하는 것만이 피로 얼룩진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시작점이라는 것입니다. 시온주의라는 배타적 이데올로기가 멈추지 않는 한 인종 청소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경고가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이제 책은 덮었지만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의 뉴스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은 기간에는 예고해드린대로 책 밖의 현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뉴스들을 통해 우리의 대화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책을 다 읽었습니다. 1948년의 '종족 청소'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화해는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12장에서는 이스라엘이 토지 관리, 평화 협상 과정, 그리고 국가의 입법과 정책을 통해 어떻게 나크바의 진실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부정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저자는 이 책(2006년)에서 팔레스타인에 또다시 나크바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요. 지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이 바로 그 나크바의 재현이네요. 마음이 쓰립니다.
맞습니다. 이 책에서 경고한 '제2의 나크바(Nakba)'가 더욱 심각하고 광범위한 규모로 재현되는 것이 지금의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를 관통하는 현실인 듯합니다. 가자 지구의 건물 대다수는 잔해만 남긴 채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서안 지구의 불법 정착촌은 현재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그 영역을 잠식해 나가고 있습니다. 불과 며칠 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절대로 성립 불가능하다고 못 박은 바 있으니, 1948년에 시작된 종족 청소(Ethnic Cleansing)는 바야흐로 그 완성을 목전에 둔 듯합니다. 하지만 고향에서 한번 쫓겨나면 영영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절실히 체감하는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민중은, 이토록 계속되는 학살의 현장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으려 합니다. 자신의 땅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그들의 굳건한 의지가 너무도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뉴스 (1) https://www.bbc.com/news/articles/cwykze63r2xo 인간의 잔혹성이라는 게 무릇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폭력 행위를 정당화할 '이념적 도구' 하나만 쥐어주면 그 끝은 늘 끔찍한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허다하죠. 이게 중세의 광신(狂信)이든, 근대의 민족주의든, 아니면 오늘날 성서적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오만함이든, 그 발로(發露)는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달까요. 최근 BBC를 통해 전해진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소식들을 보건대, 인간 문명은 단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기사는 상단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올리브 수확철, 즉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평범한 생존의 일상이 진행되는 순간조차도 그 폭력은 어김없이 나타났다니 말이죠.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CHA)은 지난 한 달(10월)에만 260건이 넘는 정착민 공격을 기록했답니다. 2006년 모니터링을 시작한 이래 최고치라니, 기록을 남기는 인간의 습성은 결국 '얼마나 더 끔찍해졌는지'를 증명하는 용도일 뿐인가 싶네요. 폭력의 대상은 약자일수록, 그리고 무방비할수록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인간의 습성은 변함이 없죠. 55세 팔레스타인 여성은 올리브를 따다 몽둥이와 부츠로 구타당하는 영상까지 공개되었다니, 폭력의 대상은 힘없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향합니다. 모스크 방화(放火)까지 서슴지 않은 것은 폭력이 이제 물리적 몸뿐만 아니라 정신적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죠. 이 폭력의 광풍으로 3,2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니, 우리가 일란 파페의 책을 통해 거듭 보게 된 '강제 이주'라는 야만적 행태가 21세기에도 유효하다는 현실이 그저 서글픕니다. 더 끔찍한 것은 이 모든 야만이 '시스템' 속에서 보호받는다는 것입니다. 인권 단체의 기록에 따르면 지난 20년 간 팔레스타인인을 향한 이스라엘인의 범죄 수사 중 93% 이상이 기소 없이 종결되었다니, 법(法)이 정의의 보루가 아닌 특정 집단의 면죄부로 기능한다는 명백한 증거죠. 인과율의 상실입니다. 이스라엘 군 지도부가 정착민의 폭력을 '레드 라인'으로 규정하며 결단력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지만, 이미 극우파 국가안보부 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 같은 자가 10만 개 이상의 무기를 배포하고 정착촌 합병을 촉구하고 나선 마당에 군부의 경고가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중앙 사령관을 향한 협박성 낙서("우리는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비 블루스")가 보여주듯, 권력의 주변부인 줄 알았던 이들이 이제는 아예 권력의 중심부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형국입니다. 군 지도부가 행정 구금(재판 없이 구금하는 권한)을 복원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작년에 유대인에게 사용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은 이 상황이 이미 법치(法治)의 영역을 넘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영역으로 깊숙이 침투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권력의 충돌과 이념의 과잉입니다. 한쪽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지만, 다른 한쪽은 자신의 우월한 신념을 관철시키려는 파괴적인 '놀이'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폭력은 언제나 그렇듯, 자신들의 몫이 아닌 것을 가지려 할 때 가장 흉악해집니다. 문명(文明)의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야만(野蠻)입니다.
종족 청소의 끔찍한 이야기들은 이스라엘의 공식적이고 대중적인 역사 이야기에 아무런 곤란도 야기하지 않았다.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져 버렸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257p,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이스라엘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지만, 우리가 저지른 베트남에서의 만행도 잊지 말고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전용사인 분들은 우린 그런 짓을 저지른 적이 없다며 억울해 하신다고 하는데, 베트남 주민들의 증언을 기록한 책을 읽고 반성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억의 전쟁참전군인이었던 할아버지의 기억에서부터 출발해 베트남 중부의 수많은 증오비와 위령비를 지나 비석 너머의 이야기에 닿기까지, 그리고 50년 넘게 그 이야기를 품어온 ‘사람’을 만나기까지 영화 〈기억의 전쟁〉 제작팀이 걸어온 5년여의 여정을 책에 담았다.
기억의 전쟁베트남 중부에는 1968년에 있었던 학살의 기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매년 음력 2월이면 마을 곳곳에 향이 피워진다. 마을 주민이 한날 한시에 집단 학살 당했던 날, 그로부터 지금까지 살아 남은 이들은 ‘따이한(한국군) 제사’를 지낸다. 1960년대, 한국은 미국의 동맹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 그러나 한국은 그 전쟁으로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기억할 뿐이다. 살아 남은 이들의 기억은 공적 기억이 되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고 있다. 전쟁의 기억이, 기억의 전쟁이 된다.
꽃의 요정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는 집중하지만, 정작 '우리 편'인 미군과 한국군을 위해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운영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사과는커녕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타인의 만행에는 분노하면서 정작 스스로 저지른 과오에는 눈을 감는 우리 사회의 모순된 현실이죠. 언급하신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 사건은 가해자들의 증언과 증거가 차고 넘칩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한국 사법부가 피해자들에게 일부 배상 판결까지 내렸음에도, 정부는 60여 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공식 사과를 한 번도 발표한 적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베트남 쪽에서도 외교적으로 복잡한 사안이 얽혀 있어 한국 정부의 사죄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내'가 당한 과거사를 바로잡으려면 '남'에게 내가 저지른 잘못 또한 외면해서는 안 되겠죠. 비록 팔레스타인 문제는 현재진행형인 반면 우리군의 학살은 '과거사'라는 차이가 있지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한다면 미래의 비극을 방지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본질에 있어서는 같은 일이겠죠.
"돈 말고 한국 정부의 사과를 달라"는 제하의 한국일보 기사 링크 공유합니다. 기사 제목이 우리 징용피해자분들과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심정과 오버랩되는 듯하여 무척 씁쓸하네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21315040000760
이스라엘이 1948년에 쫓아낸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집에 돌아올 수 있는 권리는 같은 해 12월 유엔 총회에서 인정을 받았다. 이 권리는 국제법에 확고하게 바탕을 둔 것이며 모든 보편적인 정의 개념과 일치한다. 아마 더욱 놀라운 점은, 11장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 권리가 현실 정치의 면에서도 타당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추방하는 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렇게 종족 청소를 인정하는 것이 함축하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2000년에 오슬로 구상이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권을 둘러싸고 결렬된 데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말이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418-419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2023년 10월 7일은 1948년의 사태가 단순히 오래된 역사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물론 하마스가 주도한 이스라엘 남부 공격이 반세기가 넘는 축출과 점령, 정확히 말하면 식민화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그 대신 하마스는 이란의 대리인이자 또한 나치스나 ISIS와 똑같은 세력이며, 순전히 야만적인 반유대주의에 따라 움직인다고 주장하지요. (오늘날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전 당시에 ISIS를 바로 코앞에 두고도 오히려 흡족해한 사실을 편리하게 무시해버립니다.) 하지만 이런 서사를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은 10월 7일에 벌어진 용납할 수 없는 민간인 공격을 더 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점령당한 채 살았는지 인정해야 한다고요.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11쪽, 한국어판 서문,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제 생각에 이 역사는 1948년보다 훨씬 더 거슬러올라갑니다. 시온주의는 출발점에서부터 정착민 식민주의 운동으로서, 정착민들을 위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 땅에 사는 원주민들을 쫓아냈습니다. 1948년은 시온주의 운동이 줄곧 바라던 기회를 제공했고, 전쟁의 혼돈 속에서 시온주의 세력은 팔레스타인 인구 절반 이상을 쫓아내고 마을 수백 곳을 파괴했습니다. 이 과정의 일부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창설했습니다─지금 돌무더기로 변해버린 바로 그곳이지요.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중부와 남부에서 강제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 수십만 명을 흡수하기 위한 난민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집트가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난민들이지요. 마지막 난민들은 1948년 말 이스라엘이 파괴하고 불태우고 철거한 가자지구 근처 마을들에서 쫓겨난 이들입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공격한 수많은 정착촌은 그 파괴된 마을들의 폐허 위에 세워진 곳들입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11-12쪽, 한국어판 서문,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우리는 이스라엘이 단순한 자위 행동을 하거나 위협을 진정시키려고 하는 게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을 구실로 활용해서 가자지구에서 종족 청소를 강화하고, 심지어 유대 정착민들의 공격을 강화하는 식으로 요르단강 서안에서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마스의 행동이 정당화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하마스는 민간인을 살해하고, 인질로 잡는 등 전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아침에 이스라엘 국경을 침범한 젊은이들은 빗발치는 폭격 아래서 자란 이들입니다. 2006년, 2008~9년, 2014년, 2021년에 거듭 폭격을 겪었지요. 21세기의 폭탄은 여러분이 역사책에서 읽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파괴적입니다. 이 젊은이들은 폭력과 무력의 언어, 점령 권력이 인간의 존엄성을 비하하는 언어를 배웠습니다. 그렇다고 이번 행동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정의 없이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12-13쪽, 한국어판 서문,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하마스 공격 직후에 당연하게도 이스라엘은 세계 각국 정부로부터 거의 만장일치로 공감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에펠탑을 비롯한 서방 세계 전역의 주요 랜드마크마다 희생자들과 연대하는 의미로 이스라엘 국기가 밝게 빛났습니다. 이스라엘 당국은 이런 공감을 가자지구에 사는 200만 주민 전체에 집단적 징벌을 가해도 된다는 백지수표로 해석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맹렬하게 폭격하고, 구호 활동을 봉쇄하고, 핵심 기반 시설을 파괴하자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제 사법 재판소는 2024년 1월 이스라엘이 저지른 일부 행동은 제노사이드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국제법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13쪽, 한국어판 서문,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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