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깊이를]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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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48년의 이야기는 물론 전혀 복잡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책은 오랫동안 여러 이유로 이미 팔레스타인 문제와 해법에 다가서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인 이들뿐만 아니라 초심자까지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이 실체를 부정하고 세계로 하여금 망각하게 하려고 한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에 관한 단순하면서도 끔찍한 이야기이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제1장을 읽어가다 보면 벌써 '피꺼솟'하게 되는데요. 저자가 역사 속에 거의 완벽히 은닉되어 있단 사태의 일단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책이어서인지 승자와 패자의 문제가 곧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범벅되어 구분 자체가 혼란스러워지는 의도적 모호성을 이스라엘측에서 조장하고 있다는 혐의가 짙어지는 느낌입니다. 1장을 정리해 봅니다. 제1장은 '종족 청소'라는 개념 자체를 명확히 정의하는 데 할애되는데요, 저자는 드라젠 페트로비치 같은 학자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백과사전적 정의, 미국 국무부나 유엔의 정의까지 두루 살펴보며 종족 청소를 "특정 집단이 종교, 종족, 민족 등의 근거로 다른 집단을 주어진 영토에서 체계적으로 제거하려는 명확한 정책"으로 규정합니다. 이러한 정책은 폭력, 군사 작전, 추방, 학살은 물론이고 역사를 지우거나 주택을 파괴하고 난민 문제를 야기하는 등의 행위를 수반하며, 제네바 협약 위반에도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있죠. 저자는 이스라엘의 1948년 '플랜 달렛'에 담긴 구체적인 방법들(위협, 포위, 포격, 방화, 추방, 파괴, 지뢰 매설 등)이 앞서 살펴본 유엔의 종족 청소 정의와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계획을 수립한 정치 지도부와 이를 실행에 옮긴 군대의 관계, 저항 시 발생하는 학살 문제 등 페트로비치가 제시한 학술적 정의의 요소들 역시 팔레스타인 사례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요. 위키피디아와 같은 대중적인 정의에서도 종족 청소를 대규모 추방 범죄로 인식하기는 하지만, 종종 '추정되는(alleged)'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놓치지 않습니다. 국제 재판소의 기소 여부가 이 꼬리표를 떼는 기준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기소되지 않았다고 해서 명백한 반인도적 범죄가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며, 아르메니아 학살을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 (하기야 승자의 기록만이 역사로 남는 경우가 허다하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겠습니다만...) 종족 청소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 조약 등에서 반인도적 범죄 및 전쟁 범죄로 규정되어 있으며, 유고슬라비아나 르완다 같은 경우 특별 법정이 설치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저자는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역시 '추정되는' 목록에서 벗어나 명백한 반인도적 범죄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하게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는 그 가해자들이 다름 아닌 다비드 벤구리온과 그를 보좌한 소규모 집단인 '협의체(Consultancy)', 그리고 이갈 야딘, 모셰 다얀, 이츠하크 라빈, 시몬 아비단 같은 현장 지휘관들과 정보 장교들이라고 명확히 지목하고 있죠. 이들이 법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겠지만, 역사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는데요, '진부화 규칙(rule of obsolescence)'의 적용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하면서도, 이는 반드시 유엔 결의안 194호에 명시된 난민의 무조건적인 귀환권 실현과 연계되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시온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기원, 예를 들어 헤르츨부터 이어져 온 '이동' 개념이나 식민주의와의 연관성 등에 대해서는 칼리디, 마살하, 샤피르, 키멀링 같은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인정하며 간략하게만 언급하고 넘어갑니다. 저자 자신은 이데올로기의 뿌리보다는 종족 청소 계획이 얼마나 체계적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실행되었는지를 재구성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난 사람이 75만 명이라는 숫자는 절대적인 규모로는 작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당시 원주민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며 마을과 도시 절반이 파괴된 엄청난 비극이었음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그는 이처럼 명백하게 현대에 벌어진 범죄가 어떻게 전 세계의 집단 기억과 양심에서 거의 완전히 지워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 깊은 당혹감을 표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런 규모의 망각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하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기억마저 선택적으로 관리되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
와, 벌써 1장까지 촘촘히 읽으시고 이리도 상세하게 정리를 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저는 아직 서문을 읽는 중인데요. 올려주신 내용 찬찬히 참고하면서 바짝 읽어 볼게요!
저의 '렌즈'를 통해 정리한 것이기에 당연히 저자의 강조점마저도 제 나름의 해석이 개입돼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죠. ^^;; 해서 읽어가시면서 나름 마중물 역할을 할 수도 있겠으나 향팔님 감상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하게 되네요. 이미 시작하셨다니 반갑습니다. 분량 자체는 그닥 많지 않기도 하고 문장이 대체로 친절한(?) 편이어서 가독성도 꽤 좋은 듯합니다. ^^
이 계획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만 살아야 한다는 시온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충동이 낳은 불가피한 소산이자, 영국 내각이 위임 통치를 종식시키기로 결정한 뒤 현장에서 전개된 상황에 대한 대응이었다...시온주의 정책은 처음에 1947년 2월 팔레스타인의 공격에 대한 보복에 근거를 두었고, 1948년 3월에는 팔레스타인 땅 전역에서 종족 청소를 실행한다는 구상으로 전환되었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위에 수집한 문장이 플랜 D의 계획이 만들어진 동기이자 계기로 보이는데, 이스라엘은 지금의 상황도 그때와 (팔레스타인 공격에 대한 보복 --> 종족 청소를 실행한다는 구상으로 전환) 비슷하게 가져가려고 하는 걸까요?
2년 이상 진행됐던 가자 사태에 대해 초기 단계에서 무척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세계적인 제노사이드 단체 등에서도 이제는 작금의 상황이 학술적으로는 이미 제노사이드로 인정된다는 입장문을 최근 발표했습니다. 하마스의 무차별 테러 공격에 대한 반응으로 보기 힘든 인종학살과 인종청소에 대한 혐의가 그 어느 때보다 짙어지고 있죠. 말 그대로 하마스 척결은 핑계고 이를 기회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모두 추방한다는 것이 진짜 목적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소식과 관련한 보다 심층적인 논의는 [마무리 대화] (11월 19일~22일) 기간에 나누실 수 있겠습니다. ^^
시온주의 운동이 민족 국가를 창설하면서 벌인 전쟁이 <비극적이지만 불가피하게> 원주민의 <일부>를 추방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시온주의 운동의 주요 목표는 신생 국가를 위해 탐낸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종족 청소를 벌이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시온주의 운동은 처음부터 종족 청소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거죠?
네, 저자의 핵심적인 주장은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이라는 것이 팔레스타인과의 분쟁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파생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이미 국가 성립이라는 기획 이전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을 소위 '강에서 바다까지'(지중해에서 요르단 강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전역을 포괄하는 표현이겠죠)의 영역에서 전면적으로 몰아내려는 모종의 계획에 근거하고 있었다는 논지로 읽힙니다. 이러한 다소 충격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역사적 근거들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장들에서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서술에 의해 조작된 이야기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 수십만명이 신생 유대 국가를 파괴하기로 결심한 아랍 침략군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잠시 자기 집과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대규모로 <자발적 이주>를 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나는 종족 청소에 관여한 이들의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드러내기보다는 그들이 종족이 뒤섞인 지역을 한 종족의 순수한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얼마나 체계적인 계획을 세웠는지를 부각시키고자 한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p.36 1장<추정되는> 종족 청소?,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종족이 뒤섞인 지역을 한 종족의 순수한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얼마나 체계적인 계획을 세웠는지”… 이 문장을 읽으니 2차대전 중에 히틀러와 나치가 했던 짓이 생각나네요. 유대인 자신들도 바로 얼마 전까지 그런 일을 당했으면서, 어떻게 곧바로 팔레스타인에 같은 짓을 할 수 있는지….
향팔님 말씀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히틀러의 끔찍한 인종학살 및 인종청소의 가장 큰 희생자(유대인과는 규모 면에서 큰 차이가 있으나 동성애, 집시, 일부 폴란드인들도 상당수 희생되었죠) 집단이었으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박해한 계획적 움직임을 보면 무척 분노하게 됩니다. 아마도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가 너무나 커서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는 강력한 심리가 말도 안 되는 만행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네요.
나는 1948년에 관한 학문적 연구나 공적 토론의 근거로서 종족 청소 패러다임을 주장하고 이를 전쟁 패러다임 대신 활용하고자 한다. 나는 이제까지 종족 청소 패러다임이 부재했었기 때문에 재앙에 대한 부정이 지금까지 계속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시온주의 운동이 민족 국가를 창설하면서 벌인 전쟁이 ‘비극적이지만 불가피하게’ 원주민의 ‘일부’를 추방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시온주의 운동의 주요 목표는 신생 국가의 영역 확장을 위해 탐낸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종족 청소를 벌이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27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2장은 1장보다 내용이 살짝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정리하는 글도 길어질 수밖에 없겠습니다. ^^;;; 본격적으로 시온주의 이데올로기를 파헤쳐보는 시간일 뿐 시온주의 개념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해당 이념의 대강을 조망해 볼 수 있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현대 이스라엘국가의 성립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인데요, 시온주의라는 것의 이데올로기적 동기를 살펴보면 그 기원과 목표가 꽤나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 시온주의는 중부 및 동유럽에서 유대인의 민족 부흥 운동으로 출현했는데, 이는 당시 팽배했던 동화 압력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박해의 위험에 대한 일종의 조응이었달까요? 그러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운동 지도부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땅을 식민화하는 것과 민족 부흥이라는 목표를 결합하기로 결정짓기에 이릅니다. 시온주의는 유대교를 세속화하고 민족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성서 속 영토(소위 ‘이스라엘 땅’이라 불리는)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고, 이 오래된 땅을 새로운 민족주의 운동의 요람으로 재창조하려 했던 것이죠. 그 땅을 이미 차지하고 있던 ‘이방인’들, 즉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은 그들의 시각에서는 되찾아야 할 땅의 불법 점유자이거나, 심하게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마치 ‘비어 있는’ 땅의 배경처럼 간주되었는데, 원주민 팔레스타인인들은 보이지 않거나, 그저 정복하고 제거해야 할 자연의 일부 정도로 여겨졌으니 말입니다. 1918년 영국이 그 지역을 점령하기 전까지 시온주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식민주의적 실천이 뒤섞인 형태였으나,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의 고작 5%에 불과한 소수 세력이었을 뿐입니다. 일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일찌감치 유대 국가가 들어서 땅을 차지하고 원주민을 축출할 가능성을 감지하기도 했지만, 다른 이들은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거나 그저 유럽 빈민들의 일시적인 이동 정도로 치부했던 모양입니다. 오스만 정부에 유대인 이주를 제한해 달라고 요청하려는 시도도 없지는 않았구요. 표면적으로는 박해를 피해 ‘옛 조국을 되찾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좀 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이는 19세기 기독교 천년왕국설과 유럽 식민주의가 혼합된 결과물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합니다(실제로 당시 로이드 조지와 같은 독실한 기독교 정치인들은 이를 성스러운 계획의 일부로 보며 시온주의를 지지했다고 하네요). 초기 식민화 과정에서 내세웠던 사회주의적 특색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식 역사 서술 또한 최근에는 재평가되고 있는데, 실제로는 배타적인 유대 사회 건설이 주된 목표였으며, 심지어 노동당 운동이 종족 청소를 주도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초기 정착민들은 우선 땅을 구매하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데 집중했고, 팔레스타인 전체를 차지하여 민족 국가를 세우려는 구체적인 전략은 훗날 영국의 구상과 맞물리면서 발전하게 됩니다. 영국 위임 통치가 시작되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되는데, 1917년 밸푸어 선언은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고국 건설을 약속하면서도, 정작 그 땅에 살고 있던 비유대인 주민의 권리 보호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언급함으로써 갈등의 씨앗을 뿌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당연하게도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권 및 독립 열망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죠. 1920년대 말, 영국은 두 공동체를 대등하게 대표하는 정치 구조를 만들려 시도했지만, 실제 제안된 내용은 시온주의 이주자들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다수였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처음에는 이를 거부했지만, 계속되는 이민 증가를 우려하여 1928년에는 수용 의사를 밝혔는데, 이번에는 시온주의자들이 이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영국이 최소한의 약속조차 이행하지 않자 결국 1929년 팔레스타인 봉기가 일어나게 되구요. 더욱 큰 규모의 저항은 1936년에서 1939년 사이에 발생한 팔레스타인 대반란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노동당 정부가 팔레스타인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시온주의 로비로 무산되자 대규모 반란이 터져 나온 겁니다. 영국군은 3년에 걸쳐 잔인하게 반란을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망명하거나 제거되었으며 준군사 부대는 해산되었습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1947년 유대 군대가 수월하게 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하는 배경이 되어주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랄까요? 시온주의 계획은 점차 구체화되어 갑니다. 영국 필 위원회가 분할안을 권고했던 1937년에는 팔레스타인 땅의 일부를 받아들이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1942년 빌트모어 계획에서는 팔레스타인 전체를 요구하는 것으로 입장이 바뀝니다. 상황에 따라 요구하는 영토의 범위는 유동적이었으나, 민족 구성에 있어서만큼은 순수한 유대 국가를 창건한다는 핵심 목표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군사적 준비 태세 또한 착실히 갖추어 나갔습니다. 영국 위임 통치 당국은 시온주의 운동이 미래 국가 건설을 위한 독립적인 고립지(enclave)를 만드는 것을 사실상 허용했고, 1930년대 말에 이르러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외교적 해결이 실패할 경우 무력으로 땅을 차지할 준비를 본격화합니다. 효율적인 군사 조직(하가나) 건설과 해외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통한 재정 확보가 이루어졌죠. 특히 영국 장교였던 오드 찰스 윙게이트는 하가나를 단순한 방어 조직에서 공격적인 군사 조직으로 변모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데, 그는 유대인 부대에게 효과적인 전투 및 보복 기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하가나는 아랍 반란 진압 과정(영국군 배속)과 제2차 세계 대전(영국군 참전)을 통해 실전 경험을 쌓는 한편, 팔레스타인 마을들에 대한 감시와 정보원 침투 활동을 꾸준히 벌여나갔습니다. 이러한 군사적 준비와 병행하여 이루어진 것이 바로 ‘마을 파일’의 작성이었습니다. 히브리 대학 출신인 벤치온 루리아의 제안으로 유대 민족 기금(JNF) 주도 하에 모든 아랍 마을에 대한 상세 정보 파일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훗날 ‘땅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유대 민족 기금(JNF)은 팔레스타인 식민화의 주요 도구로서 토지 매입과 유대인 정착을 담당했는데, 특히 정착부장이었던 요세프 바이츠는 매입한 땅에서 팔레스타인 소작농들을 신속하게 추방하는 일을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바이츠는 이 마을 파일 기획을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민족적 기획’으로 전환하자고 열정적으로 제안했다고 하네요. 파일에는 각 마을의 지형, 도로 접근성, 토질, 샘물 위치, 주요 소득원, 사회-정치적 구성, 종교적 소속, 촌장의 이름, 남성 연령 분포 등 실로 방대한 정보가 기록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시온주의에 대한 ‘적대감’ 지수(이는 1936년 반란 참여 정도를 기준으로 매겨졌습니다)와 영국 및 유대인에 대항했던 인물들의 명단이 포함되었다는 점인데, 이 정보는 1948년 마을 점령 후 처형과 고문으로 이어지는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자료 수집에 참여했던 모셰 파스테르나크의 증언에 따르면, 이는 단순한 학술 조사가 아니라 마을 공격 방법을 파악하고 정보원 및 부역자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명백한 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군요. 이후 에즈라 다닌, 야코프 시모니 등이 참여하여 농경지 면적, 가구당 토지 보유량, 자동차 수, 상점주와 장인의 이름, 씨족 관계, 정치 성향, 공무원 명단, 사원과 이맘 정보 등 더욱 상세한 내용이 추가되었고, 최종 업데이트(1947년)는 소위 ‘지명 수배자’ 명단을 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 명단은 1948년 마을 점령 시 즉각적인 수색-체포 작전에 사용되었으며, 명단에 오른 이들은 현장에서 처형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선정 기준(민족 운동 참여 등)이 워낙 광범위하여 거의 모든 마을이 포함될 수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처럼 상세한 정보 덕분에 시온주의 군 사령부는 팔레스타인 측의 지도력 부재를 확신할 수 있었다고 하니(이가엘 야딘의 언급처럼 말이죠), 정보의 힘이란 실로 무서운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시온주의 지도부는 팔레스타인 저항력이 약화되었음을 인지하고, 영국 자체를 자신들의 땅 차지 계획에 있어 유일한 걸림돌로 여기게 됩니다(이는 1942년 빌트모어 계획에서 팔레스타인 전체를 요구했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유대 지도부는 영국을 몰아내기 위한 무장 운동에 착수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계속해서 입안했습니다. 지도자들은 공개 석상에서는 조심스러워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인 추방, 즉 ‘이동(Transfer)’을 논의하기 시작합니다. 요세프 바이츠는 이미 1940년에 이를 ‘권리’이자 ‘필수’라고 주장했고, 벤구리온 역시 1937년에 전쟁과 같은 ‘시의적절한 계기’가 필요하다고 보았으니, 1948년은 그들에게 바로 그 계기가 되었던 셈입니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시온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던 다비드 벤구리온은 특히 안보 및 방위 문제를 완전히 장악하며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를 실질적으로 지휘하게 됩니다. 그는 초기 필 위원회의 작은 규모 국가 제안을 수용하는 실용주의적 면모를 보이면서도, 최대한 많은 영토에서 유대인 주권을 확보하려는 목표를 놓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유대 국가 달성을 위해서는 무력 사용과 적절한 역사적 기회가 필요하다고 일찍부터 확신했던 그는, 다른 지도자들이 점진적인 토지 매입에 집중할 때 이것만으로는 부족함을 인지하고 장기적인 군사력 증강과 전략 수립에 몰두했습니다(심지어 모셰 샤레트 같은 온건파 지도자조차 유대인 정착과 팔레스타인인 추방을 연결지어 생각했을 정도이니,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만합니다). 빌트모어 계획(1942)으로 팔레스타인 전체 소유권을 주장했으나, 전후 영국 노동당 정부가 민주적 해법을 모색하려 하자 시온주의 세력은 영국에 대한 무장 공격(킹 데이비드 호텔 폭파 사건 등)으로 응수합니다. 벤구리온은 영국 철수가 임박했다고 판단하고, 팔레스타인의 약 80% 정도면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1946년 파리 회의에서는 다시 분할안으로 선회하며 팔레스타인의 ‘큰 덩어리’(80~90%)를 요구했는데, 이는 이후 60년간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기본 입장이 되었다고 하네요. 이 모든 협의 과정에서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의 저항 가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는데, 이는 1939년 반란 진압 이후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붕괴되었고 아랍 국가들 또한 주저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벤구리온은 ‘비타혼’(안보)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집착으로 안보 문제를 최우선시하며 시온주의 의사 결정 구조의 정점에 섰습니다. ‘비타혼’이라는 용어는 무기 구매에서부터 팔레스타인 정책, 심지어 도발적인 보복 행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만능 열쇠처럼 사용되었죠. 1946년 국방 장관직을 맡아 안보 관련 전권을 장악한 그는, 중요한 결정이 임박하자 공식적인 구조를 무시하고 비밀 조직에 의존하기 시작합니다. 영국은 결국 1947년 2월,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 반란에 대처할 능력 부재, 인도의 독립 결정, 전후 경제난 등 복합적인 이유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이관하고 철수를 결정합니다. 벤구리온은 이러한 영국 철수를 예상하고 이에 대비한 전략, 즉 플랜 C(기멜)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는 이전 계획들(플랜 A, B)의 수정본으로, 영국군 철수 즉시 팔레스타인 농촌과 도시 지역에서 공세 작전을 벌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표면적인 목적은 팔레스타인의 공격을 ‘억제’하고 유대인 정착촌 공격에 대한 ‘보복’이었지만, 그 내용은 실로 무시무시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정치 지도자, 선동가, 재정 지원자, 반유대인(으로 지목된 자), 고위 관리 등을 살해하고, 교통 및 생계 자원(우물, 방앗간 등)을 파괴하며, 인근 마을을 공격하고, 클럽이나 커피하우스 같은 공공장소를 공격하는 것 등을 포함했습니다. 이 계획에는 앞서 언급된 ‘마을 파일’의 정보를 적극 활용하도록 명시되어 있었으니, 그 치밀함이 섬뜩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만에 플랜 C는 더욱 가혹한 플랜 D(달렛)로 대체됩니다. 이 새로운 계획은 미래 유대 국가 영역 내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것이었는데, 팔레스타인인들의 협조나 저항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들을 자신들의 고국에서 체계적이고 전면적으로 추방할 것을 요구하는, 그야말로 종족 청소 계획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시온주의 기획은 박해를 피할 수 있는 유대인의 안식처이자 새로운 유대 민족주의의 요람인 순수한 유대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창건함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국가는 사회-정치적 구조만이 아니라 종족 구성에서도 순수한 유대 국가여야 했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단 하나 심각한 문제라면 영국인들이었다. 〈영국인들만 없었다면, 우리는 아랍의 폭동[1947년 유엔 분할 결의안에 대한 반발]을 한 달 만에 진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1장에서 여러 소스 (백과사전, 유엔, 위키피디아 등)에서 인용을 하며 종족 청소를 정의하는데 그 정의들의 핵심은 특정 지역, 혹은 국가를 한 민족만의 땅으로 만들려는 목적으로 그 땅에 살고 있던 다른 민족을 강제로 내쫓는 행위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종족 청소라는 개념의 명확한 정의와 그 것의 범죄성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서문과) 1장을 읽고, 성서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행위가 지금은 국제법으로 처벌받는 반인도적 범죄로 명확히 정의된다는 사실과, 이를 제대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저자의 주장대로,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단순한 '전쟁'의 틀에서 벗어나 '종족 청소'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2장을 읽어 보겠습니다.
전체적인 식민 정책의 방향은 아니었으나, 일제가 한때 조선인을 모두 만주로 내몰고 한반도 전체에 일본인을 이주시켜 식민(植民, 문자 그대로 '사람을 옮겨 심는다는...)하려 했다는 논의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천만다행스럽게도 그러한 논의는 논의에 그쳤습니다. 만약 그리 되었다면 우리가 민족의 터전을 되찾는 일이 훨씬 어려워졌겠죠. 인종청소 또는 종족청소는 적대적인 두 세력이 하나의 지역을 두고 경쟁할 때, 언제나 뿌리치기 어려운 위험한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이를 국제사회가 명확한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한 것은 아다지오님 말씀대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처럼 어떤 것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우리의 세계가 구체화하는 것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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