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깊이를]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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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넘게 지속된 가자에서의 살육전에도, G7 국가들은 초기에는 침묵을 지키다가 가자 전체가 파괴되고 수많은 어린이들이 처참하게 희생되어 여론이 악화하자, 그제야 조금씩 이스라엘의 '자제'를 촉구하는 등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독일과 영국 등이 공격용 무기에 한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에 약간의 제한을 두기 시작했다는 정도인데요. 이 또한 미국의 변함없는 무기 공급에 의해 그 의미가 크게 퇴색하게 되죠. 아직도 서구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위선적 태도는 약 80여 년 전 온갖 학살극이 난무하던 '나크바'의 시대와 달라진 점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ㅠㅠ
필리스트 - 끝나지 않은 팔레스타인 이야기2013년 역사 만화 <아! 팔레스타인>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역사를 균형감 있게 들려주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이끌었던 원혜진 작가가 7년 만에 만화 <필리스트: 끝나지 않은 팔레스타인 이야기>로 돌아왔다.
아, <필리스트> 읽어봤는데 너무 슬펐어요. 나지 알 알리의 카툰집 <열한 살의 한잘라>도 추천합니다.
열한 살의 한잘라 - 팔레스타인의 양심, 나지 알 알리 카툰집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인 시사만화가 나지 알 알리의 카툰집. 팔레스타인의 현실과 이스라엘의 야만, 아랍 세계와 미국의 위선을 한 컷 만평에 예리하게 담아 낸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집이다. 작품마다 배경을 설명하는 글과 주석을 덧붙였다.
카툰집이라니 더 궁금해지네요 꼭 읽어보겠습니다!
오.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여겨지기 쉬운 중동 문제, 특히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우리 작가의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의미가 있겠네요. 소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겪은 재앙의 주된 책임은 영국 위임 통치에 있습니다.” 아크레 인근 수흐마타 출신 난민인 자말 카두라의 말이다. 그는 평생 동안 이런 배신감을 안고 살았고, 2001년 영국 상하 양원에서 공동으로 구성한 팔레스타인 난민에 관한 중동 조사 위원회에서 다시 배신감을 표현했다. 위원회에 출석해서 증언을 한 다른 난민들도 카두라와 같은 비통함과 비난을 쏟아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224-225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영국은 1948년 5월 14일 자정에 종료된 위임 통치 기간 중에 자국 병사들과 관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종족 청소가 벌어지도록 용인했으며, 유엔의 개입 시도를 방해했다. 유엔이 제대로 개입했다면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숨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5월 15일 이후 유엔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포기한 과정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유엔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분할하고 그들의 안녕과 생명을 유대인들 손에 넘겨주었다. 19세기 말 이래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땅을 자기 땅이라고 여기면서 차지하려 한 유대인들에게 말이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226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새벽이라 이미 7장을 읽기 시작해야 하지만 지난 며칠간 다소 바쁘게 생활한 관계로.. ^^;;; 이제야 6장을 정리해 봅니다. 제6장에서는 1948년 5월의 소위 '가짜 전쟁'과 '진짜 전쟁'을 다루고 있는데요, 이러한 논의는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폭력의 현상을 고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흥미롭다고 느꼈습니다. 이 논의의 제목은 요르단 아랍 군단의 영국인 사령관 존 글럽 파샤가 당시 전쟁을 '가짜 전쟁(Phony War)'이라 폄하한 데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아랍 군대의 전투 준비가 지극히 부실했을 뿐 아니라, 가장 강력하다던 요르단 군대마저 시온주의 지도부와 모종의 암묵적 관계성 속에 있었기 때문일 공산이 큽니다. 그렇다면 저자가 규정하는 '진짜 전쟁'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과 아랍 정규군 간의 그럴듯한 전투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아랍 군대의 무기력함을 방패막이 삼아 실제로는 무방비 상태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대상으로 수행한 종족 청소 작전, 바로 그것이었던 셈입니다. 벤구리온 역시 아랍 정규군과의 대결을 우려하면서도 '팔레스타인 청소'를 여전히 플랜 달렛의 주요 목표로 견지했다고 하니, 이 이중적 상황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유해보게 됩니다. 실제로 5월에 개입한 아랍 군대가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할 만한 수준이었는가 하면,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상세히 분석하는 듯합니다. 요르단의 압둘라 국왕은 이미 유대 국가와의 비밀 협정에 따라 군대의 활동을 요르단강 서안 방어로 한정시켰고, 이집트 역시 파견된 병력의 절반은 훈련받지 않은 지원병에 불과했다고 하죠. 시리아나 레바논의 군대는 소극적이거나 미미한 수준이었으며, 이라크마저 요르단의 지침을 따르는 형국이었으니 (비록 일부 장교들이 와디 아라 같은 마을을 방어하려 애쓰긴 했지만 말입니다 ^^;), 소위 '아랍 정규군'이라는 존재는 유엔이 아랍 국가로 지정한 지역을 방어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죠. 이러한 무기력함의 구조 속에서, 이스라엘이 '생존을 위한 전쟁'이라는 신화를 내세우며 실제로는 정규군 상대와 민간인 청소라는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수행할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저자는 '아랍의 침략'이 시작되자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발적으로' 도망쳤다는 이스라엘의 건국 신화를 강하게 반박하는데요. 이미 5월 15일 이전에 약 25만 명이 추방된 상태였으니, 그날은 그저 종족 청소 작전이 계속된 또 다른 날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5월 14일 이후로는 '정화'라는 용어가 군사 명령에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벤구리온의 '협의체'는 아랍 정규군과의 대치 상황 속에서도 이 청소 작전을 지속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령 텔아비브와 하이파 사이 해안 평야의 64개 마을을 청소하는 임무를 받은 알렉산드로니 여단의 경우가 대표적일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유대인 정착촌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단 두 곳(푸레이디스, 지스르알자르까)만을 남겼을 뿐이죠. 이 장에서는 특히 5월 22일 밤 자행된 탄투라 학살을 핵심 사건으로 상세히 다루는데, 항복을 거부한 1,500명의 주민들은 도주로 없이 포위되었다고 합니다. 점령 후 남자들은 여자 및 아이들과 분리되어 해변으로 끌려갔고, 정보 장교 심숀 마시비츠의 감독 하에 명단에 따라 10세에서 50세 사이 남성들에 대한 조직적인 처형이 자행되었다고 하네요. 조직적 처형 외에도 군인들이 마을에 진입하며 무차별 총격을 가했으며, 일부 이스라엘 군인들은 아군 사상자에 대한 보복으로 포로들을 무리 지어 처형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생존자들은 85명에서 125명이 처형되었다고 증언했고, 한 유대인 목격자는 230구의 시체를 집단 매장했다고 하니, 그 참혹함의 본질을 짐작하게 합니다. 골라니 여단이나 이르군, 키르야티 여단(이들은 주로 미즈라히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폭약 대신 불도저를 사용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츠하크 라빈이 지휘한 하렐 여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대들이 '플랜 달렛'에 따라 '청소(le-taher)'와 '파괴(le-hashmid)'라는 구분된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갈릴리 서부에서는 '예히암 호송대'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벤아미 작전'이 수행되었는데, 바사(Bassa) 마을에서 저항했다는 이유로 젊은 남성들이 교회 앞에서 처형당하는 등 특히 잔인했다고 합니다. 벤구리온은 팔레스타인인 비율이 96%였던 이 지역이 '해방되었다'고 의회에 자랑스럽게 보고했다고 하니, '해방'이라는 언어의 기만성에 대해 다시금 사유해보게 됩니다. 결국 5월 말까지 종족 청소는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이스라엘이 소위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른 것이 아니라, 아랍 정규군과의 '가짜 전쟁'이라는 일종의 연극을 방패막이 삼아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진짜 전쟁'을 수행했음을 결론짓고 있는 셈입니다.
내쫓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 새로 온 이들이자 식민화 기획의 일원이라는 사실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사례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벌어진 종족 청소의 식민주의 역사와 관련된다. 이곳에서도 백인 정착민들이 일상적으로 이런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35p,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팔레스타인인 수십 만 명이 이미 무력으로 쫓겨났고, 전쟁 첫 주에 수만 명이 또 쫓겨났다. 당시 대다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1948년 5월 15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 아니었다. 이미 5개월도 전에 시작된 종족 청소의 끔찍한 달력에 추가된 하루에 불과했던 것이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233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제가 바빠서 읽기와 요약의 진도가 늦었네요 ^^;; 4장 5장의 요약과 저의 느낌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4장에서 저자는 플랜 달렛의 마스터 플랜 단계를 (1947년 12월부터 1948년 3월까지) 서술합니다. 벤구리온과 협의체 구성원들은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단계별로 구상하고 계획합니다. 1. 팔레스타인 양쪽 끝에 고립된 정착촌을 사이에 둔 땅으로 유대 국가 영토를 정하고 2. 서안 지구를 요르단에게 양보함으로써 강한 군대를 보유한 요르단의 개입을 막고 아랍 지원군의 군사력을 최소화합니다. 3. 유대 국가 수립에 필요한 군사 조직을 구성하고 병력과 중무기를 준비합니다. 1947년 12월부터 개시된 팔레스타인 마을의 공격 활동에 본군 하가나뿐 아니라 극단적인 무장 단체 이르군, 스탠갱도 동원됩니다.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에 보복하는 형식으로 공격이 이루어지지만 위협과 공세로 방식을 전환합니다. 마을 파괴, 주민 추방, 집 폭파등의 높아진 잔학행위에도 수수방관하는 영국과 국제 반응을 주시하며 종족 청소 준비의 다음 단계를 실행합니다. 공개적으로는 벤구리온과 협의체의 <긴 세미나> 회의에서 범죄인과 무고한 자를 가리지 않고 마을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종족 청소) 의견에 모두 동의합니다. 아랍 군대가 팔레스타인에 진입해 호위대 35명을 매복 살해한 것은 시온주의자들에게 더 큰 공격의 구실을 주게 됩니다. 벤구리온의 대중을 향한 연설에서는 지금의 사태가 유대인 공동체를 파괴하고 없애려는 제 2의 홀로코스트 시도라고 선전하지만 실제는 달랐고 협의체 회의에서는 종족 청소의 최종안인 플랜 D가 만들어집니다. 4장을 읽고 벤구리온과 협의체가 보복, 위협, 더 센 공격으로 단계를 높여가며 아랍 세계, 영국, 국제적 반응을 계속 시험했다는 것은 이 모두가 계산된 과정이었음을 알려 줍니다. 또한 유대 공동체 주민들과 세계에 선전한 상황(제2의 홀로코스트)과 실제의 사태가 너무나 달랐음에도 곤경에 처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도와줄 외부의 세력이 전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 지금의 팔레스타인 상황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5장은 플랜 달렛이 본격적으로 도시와 농촌들에 실행되는 단계를 서술한 장으로 대규모 청소가 이루어지며 누룩 작전, 가위 작전, 폭파, 불 붙은 기름, 연료 흘려보내기, 수원에 장티푸스 균 풀기등 온갖 방법을 총동원되어 대혼란 속에서 팔레스타인들이 쫓겨 나가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야파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의 중재 가운데 질서있게 추방됩니다.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의 파괴와 학살이 이루어지는데 한 곳에서는 10-30세사이의 남자들이 포로 소용소로 보내지고 다른 곳에서는 10-50세 사이의 남자들이 즉결 처형되기도 합니다. 포로 수용소가 부족하지 않던 때에도 사람들을 대규모로 잡은 경우에 대량학살이 벌어집니다. 드루즈인, 체르케스인 종족은 유대 세력에 합류하여 시온주의 운동에 가담합니다. 아랍 국가들은 지원군 파견 문제를 지역차원의 기구에 맡기며 소극적 대응의 모습을 보입니다. 미국 국무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국제 신탁통치를 제안하나 이스라엘 인민위원회가 거부하고 로비집단의 압력으로 실현되지 못합니다. 법질서를 지키지 못하고 추방을 방관한 영국, 분할안의 시행을 감독하지 못한 무능한 유엔, 요르단강 서안의 병합을 위해 이스라엘에 비밀리에 협력한 요르단 왕가등을 볼때 당시 유대인 공동체가 위험에 처해 있었다는 이스라엘의 서사는 사실이 아님이 확실히 드러납니다. 실상이 이러한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나 아랍군을 <나치스>라고 부르며 이스라엘과 미국 여론에 <제2 홀로코스트> 신화를 심는데 성공합니다. 5장에서도 4장과 마찬가지로 <종족 청소>의 실행 과정에 거의 아무런 방해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실제가 명백히 이스라엘의 범죄행위를 드러내는데 아직까지 이스라엘의 눈가리고 아웅하는 서사가 먹히고 있다는 생각에 참담함을 느낍니다. 의식있는 군인들에게 <shoot and cry>라는 방법으로 면죄의식을 치르게 하면서까지 종족청소의 과정을 진행했다는 것이 지도부의 잔인함과 치밀함을 모두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 책은 대체로 안타까운 사건의 전개로 일관합니다. 그중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따로 있습니다. 당시 가장 강력한 이스라엘 지원 세력이었던 미국의 국무부는, 분할안이 야기할 유혈 폭력 사태를 정확히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유엔 감독하의 위임통치안을 대안으로 제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다지오님이 정리해주신 대로, 이러한 외교적 노력은 이스라엘의 로비에 의해 좌절되고 말죠. 이것이 더욱 소름 끼치는 이유는, 지금도 AIPAC 같은 이스라엘 로비가 이스라엘의 어떠한 잔혹 행위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가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의 시초를 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로 제7장까지 마쳤으니 반환점을 돌아 첫 번째 챕터를 마치게 되었네요. 이 장은 1948년 6월에서 9월 사이에 일어난 일을 다루는데요. 드디어 잠시 총성이 멈추는 듯한 정전이 1, 2차에 걸쳐 이루어집니다만 그야말로 말뿐인 정전이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종족 청소는 중단 없이 확대/지속됩니다. 이스라엘 측은 유엔이 중재한 1차 정전을 ‘활용’하여 이미 주민들을 몰살하거나 추방한 마을들을 파괴하는 기회로 사용합니다. 이 시기 마자르, 페이자, 부레이르 등의 수많은 마을이 파괴되죠. 이는 벤구리온이 6월 초 작성한 일기에도 잘 드러납니다. 일기에서 그는 점령한 마을, 토지 규모, 추방된 인구 목록 등을 꼼꼼히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랍계 은행의 자산, 아랍 주민들이 운영하는 상점 등에서 물품을 몰수하는 등 ‘전리품’ 확보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6월 16일 신생 이스라엘 정부는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서 쫓겨난 피란민들의 귀환을 막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밀어붙이게 되는데요. 이는 지금까지 세계를 떠돌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비극이 공식화됨을 의미합니다. 1차 정전이 종료된 7월 8일부로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가장 격렬하고 대대적인 청소 작전이 개시됩니다. 이 시기 약 7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추가로 추방당합니다. 다하미시 사원의 학살에 이어 벤구리온은 5만여 명의 주민들을 중동의 혹서가 기승을 부리는 7월에 물도 먹을 것도 없이 무조건 추방을 명령합니다. 요르단강 서안을 향해 도보로 이동해야 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노약자가 탈수와 기아로 사망합니다. 이 대목을 읽다가 유대인 자신들이 이미 나치에 의해 죽음의 행군을 경험하고서도 이런 똑같은 짓을 다른 민족을 상대로 저지른 것은 실로 납득하기 어려운 역사의 아이러니란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병사들은 이렇게 떠나는 이들의 금붙이와 귀중품을 체계적으로 약탈했다고 하니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죠. 리드에서 추방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라믈라도 항복 직후 리드 주민들과 함께 추방되었습니다. 1차 정전 기간의 가장 두드러지는 군사 작전으로는 나사렛과 갈릴리에서의 데켈 작전을 들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는 지상군 중심의 학살과 종족 청소가 주로 자행되었다면 일명 야자수(데켈) 작전부터는 공중으로부터의 폭격을 통한 소위 ‘공중 청소’가 시작됩니다. 이는 지상군 투입 전에 주민들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작전의 결과 나사렛을 점령하였으나 기독교 성지가 몰려 있는 나사렛에서는 다른 지역보다는 덜 잔혹한 ‘청소 작전’이 벌어집니다. 벤구리온이 “전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며 초기 사령관이었던 카르밀의 주민 추방 명령을 직접 철회했기 때문입니다. 2차 정전은 7월 18일 발효되었으나 이스라엘군은 이를 즉각적으로 위반합니다. 정전은 단지 국제사회의 비난을 누그러뜨리는 연막 전술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죠. 정전 기간 동안 소위 ‘경찰관 작전’을 수립하여 실행에 옮깁니다. 이스라엘 군은 정전 중임에도 하이파 남쪽 해안의 3개 마을을 공격했고 유엔을 속이기 위해서 ‘경찰관 작전’으로 해당 군사 행위를 호도했다고 하네요. 이때 남부의 네게브 지역까지 청소 작전을 확대하여 7월 말까지 이스라엘의 침략 행위는 더욱 공고화합니다. 이어서 9월까지 이스라엘은 정전을 이용해 내부의 ‘고립 지대’마저 소탕을 완료합니다. 이로써 10월에 있을 갈릴리 북부와 네게브 남부의 ‘최종 청소’ 작전을 위한 준비가 끝나게 됩니다. 책을 마치고 이어질 팔레스타인 현재 상황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때 더욱 깊이 다루게 되겠지만 정전 기간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을 분산시키고 오히려 자신들의 군사 목표를 지속적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실행하는 점은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초 발효된 휴전 합의를 공식적으로 파기하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으로 가자 이곳저곳을 폭격하여 지난 한 달간 어린이를 포함한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도 80여 년 전 과거와 완전히 판박이처럼 닮아있어 경악스럽습니다. 이제 8장으로 넘어갑니다.
두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요르단강 서안까지 물과 음식도 없이 행군을 강요받았다. 도중에 많은 이들이 갈증과 굶주림으로 죽어나갔다. 몇백 명만이 두 도시에 남는 게 허용되었기 때문에, 또 인근 마을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두 도시로 몸을 피했다는 점을 감안해서 라빈은 총 5만 명이 이런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이동된’ 것으로 추산했다. 또다시 피할 길 없는 질문이 제기된다. 홀로코스트가 벌어지고 3년 뒤에 이 비참한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유대인들의 마음속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까?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289-290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6장,7장을 읽고 내용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6장의 제목은 '진짜 전쟁과 가짜 전쟁'입니다. 가짜 전쟁이라 함은 전쟁의 모양을 갖추고는 있지만 명분만을 내세운, 일종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전쟁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시작하기 전부터 팔레스타인 땅의 요르단 서안 부분을 할당받는 조건으로 중립을 지키기로 비밀 협상을 하고, 다른 아랍 국가마저 요르단이 이스라엘과 합의를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요르단 국왕을 아랍 정규군의 총사령관으로 신임했습니다. 1948년 5월 15일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세웁니다. 저자는 이 날이 종족 청소와 관련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종족 청소의 시작은 전 해 12월에 시작되어 계속 진행되고 있었으니까요. 이스라엘 건국의 날을 계기로 아랍 정규군이 결성되어 이스라엘과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군대를 상대하기엔 역량과 의지가 매우 부족했고, 이스라엘은 몇몇 고립 지대를 빼고 어렵지 않게 두 전선(아랍 군대를 상대하는 동시에 청소 작전을 지속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청소 작전의 한 단계로 벌어진 탄투라 학살을 저자는 비중 있게 다룹니다. 데이르야신 학살만큼 관심을 받지 못한 탄투라 학살에서의 처형의 참혹함을 생존자들의 생생한 기억을 통해 묘사합니다. 포로들을 해안에 모아 놓고 병사들이 사령관에게 자신의 친척이 전쟁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리면 5~7명의 무리를 데려가 총살하라고 명령하고, 형제가 죽었을 경우에는 더 많은 무리를 데려가 죽이게 했습니다. 종족 청소에 맞서 저항에 성공한 일부 마을들은 더 잔인하게 복수를 당합니다. 이렇게 정당한 방어와 저항을 구실로 삼아 종족 청소를 실행하며 남과 북으로 점령해 가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7장은 6월부터 9월까지 청소가 확대된 시기로, 1차 정전과 2차 정전이 발효된 때, 그리고 정전의 사이에서도 종족 청소가 계속되었음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공군기가 증강되어 공중 폭격을 시작한 때이기도 합니다. 공중 폭격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의 마을이 점령되기도 전에 이웃 나라나 근접해 있는 도시로 피신해야 했고, 이 때문에 종족 청소가 속도와 용이함을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전의 이름은 예전의 '가위'나 '빗자루' 같은 파괴나 청소를 상기시키는 단어에서 '야자수'나 '삼나무' 같은 나무 이름으로 바뀝니다. 정전 동안에도 점령되고 사람들을 추방시킨 지역을 완전히 파괴하거나 유대 국가 할당 지역에 있는 아랍 사람들을 내쫓는 작업에 몰두하는 방법으로, 유엔 옵서버나 세계의 감시나 이목 아래에서도 ‘청소’의 단계를 진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야자수 작전'은 나사렛과 주변 마을을 점령하는 데 초점을 맞춘 작전으로, 마을은 비워져 추방된 사람들의 다수가 나사렛으로 피신합니다. 오늘날 나사렛 주민의 60%가 난민이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 노골적인 청소의 단어 3가지가 사용되며, 모두 종족 청소의 정의에 들어맞는 단어입니다. 종족이 섞여서 사는 마을일 경우에 무슬림들은 추방되고, 기독교인들이나 드루즈인들은 다른 비워진 마을로 이동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구 이동을 하게 됨으로써 샤파아므르 같은 도시는 거대 도시가 됩니다. 하이파 남쪽의 고립 지역에서는 끈질긴 저항으로 점령하기가 어려운 마을들이 있었는데, 지속적 시도와 '경찰관 작전'으로 끝내 주민들이 쫓겨납니다. 흥미롭게도 크파르람이란 곳에서는 사마리아인 몇 명이 있었는데, 원래 유대인들이었지만 당시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들이 그 땅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보인 것이 아니라, 반환해야 하는 땅으로서만 보였을 것입니다. 5월에 유대의 땅으로 삼지 못한 고립된 지역들마저 샅샅이 공격하여 비우고, 정전의 시기에도 학살과 추방에 속도를 낸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의 공식 주장과는 다르게 점령의 의도와 계획과 실행의 조화를 이룬 체계적 군사 폭력임이 드러나는 장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추방을 면한 마을이나 도시들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구성에, 자신의 소유를 빼앗기고 집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의 난민들이 많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일목요연한 정리 감사드립니다. 고대로부터 별다른 이동 없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켜왔던 원래 주민들의 경우 대체로 성경시대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진짜' 유대인에 가까운 종족일 가능성이 높겠죠. 요약하시면서 언급된 내용처럼 사마리아라 불리는 지방의 많은 원주민들이 실은 성경시대부터 줄곧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이니 오히려 이 경우 종족을 앞세운 종족청소가 무색한 일이 되고 마는 거죠. 자세히 살펴보면 볼수록 온갖 모순이 난무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만행이 소위 '정전'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공분을 자아낼 만합니다. 이는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을 어느 정도 고려해 이루어진 일이었겠죠.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의 지지가 오늘날처럼 맹목적인 성질은 아니어서 그랬겠지만 이를 역으로 이용했다면 사태를 뒤집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적 상상을 해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학살 사태를 서방 언론에 최대한 알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오늘날처럼 아동과 여성을 상대로 한 무차별 대량 살육전이 실시간으로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생중계되다시피 하는데도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전면적 군사 지원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그때라고 달랐을까 싶기도 합니다.
진도가 다소 밀렸는데요. 곧 9장도 정리해보겠습니다. ^^;;; 8장은 제목부터가 ‘임무 완수’인데요. 몇 가지 작전을 축으로 팔레스타인 북부(갈릴리)와 남부(네게브)를 장악하면서 ‘인종 청소’를 마무리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점령지인 가자와 서안 지구가 아닌) 국민 900만 명 중 약 200여만 명이 아랍계, 즉 팔레스타인 사람들인데요. 이 지역 역사에 관심 갖는 많은 분들이 의아해하는 점이 바로 20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국민의 존재일 겁니다. 저자도 이를 규명하려고 했지만 정확한 이유를 밝히기는 어렵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합니다. 아마도 몇몇 지역 군 지휘관들의 임의 조치들이 각각 상이한 결과를 낳았다고 상정할 수밖에 없겠죠. 48년 10월까지의 갈릴리는 파우지 알까우끄지가 지휘하는 아랍 해방군의 지원을 받는 팔레스타인 지원병들이 일부 지역을 사수하고 있던 상황이라, 이 지역 전체를 이스라엘의 손아귀에 넣는 작전인 히람 작전이 개시됩니다. 이때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마을들이 절대적 전력의 열세 속에서도 용감히 공동으로 저항합니다. 이스라엘군이 뿌려댄 1만 장의 항복 권유도 무시하고 싸웠죠. 이는 이스라엘군의 항복 권유에 항복 후 안전 보장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았던 것도 큰 역할을 했겠죠. 그야말로 항복한 후에 학살이 자행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요. 이렇듯 격렬한 저항에도 이스라엘은 압도적 화력을 집중하여 아랍 해방군과 현지 저항 세력을 2주 만에 무너뜨리고 맙니다. 이후 선별적 추방이 이루어집니다. 드루즈인들은 이스라엘에 협력하고 안전 보장을 받았으나 대부분의 기독교도와 무슬림들은 추방되었습니다. 10월 31일 갈릴리 지방 전체가 유대인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지만, 저자는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이 은폐하고 있는 여러 잔혹한 전쟁 범죄가 히람 작전 중 벌어졌음을 독자에게 각인합니다. 사사, 사프사프, 훌라와 살리하(레바논 남부) 등지에서는 어린 소녀를 비롯하여 다수의 성폭행 사건이 있었고, 레바논 남부의 두 지역에서는 각각 80명 이상, 그리고 100명 이상의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당합니다. 놀랍지도 않지만 이들 전쟁 범죄에 대한 차고 넘치는 정황 증거들과 증언에도 불구하고 처벌받은 자들은 없었고, 그나마 35명을 학살한 혐의로 기소된 쉬무엘 라히스는 7년 형을 받고도 즉시 사면되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게 됩니다. 이렇듯 온갖 반인도적 전쟁 범죄로 얼룩진 종족 청소의 이면에는 원주민들에 대한 거짓 약속도 포함되어 있었죠. 기독교인 마을이었던 이끄리트와 크파르비르임 두 마을에서는 2주 안에 돌아오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항복하였으나 이들의 귀환은 폭력적으로 저지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들 마을의 주민들은 1951년 이스라엘 대법원으로부터 귀환 권리를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군의 대대적인 마을 파괴 탓에 결국 물리적으로 귀환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어버리기도 했죠. 8장은 제목 그대로 이스라엘 정부와 군이 마지막까지 치밀한 인종 청소 작전을 전개했고, 이로 인해 절대다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삶의 보금자리가 뿌리째 뽑혀 나간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임.무.완.료.
이 2주일은 오늘날 와디아라를 구한 영웅적 투쟁과 더불어 나크바 당시 팔레스타인이 벌인 저항 역사에서 인상적인 장으로 손꼽힌다. […] 종족 청소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마을들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이스라엘 군사력에 용감하게 맞서면서 잠시나마 요새를 구축하고 포위해 들어오는 이스라엘 군대에 저항했다. 현지 젊은이들과 아랍 해방군 잔여 세력이 뒤섞여서 1~2주 동안 참호를 방어하면서 빈약한 무기로 버티다가 결국 공격자들의 힘에 무릎을 꿇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06-307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와디아라 전투에서 언급된 이라크 장교들처럼, 그들은 모두 팔레스타인의 영웅, 아니 인류의 영웅을 다룬 책에 기입되어야 마땅하다. 종족 청소가 벌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서구 일반은 그들을 익명으로 뭉뚱그려서 아랍 반란자나 테러리스트로 언급한다 ─ 1980년대까지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에서 싸운 팔레스타인인들, 그리고 1987년과 2000년에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이스라엘 점령에 대항한 두 차례 봉기를 이끈 이들을 다루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식민화, 추방, 점령을 당한 사람들을 악마시하고 그들을 식민화, 추방, 점령한 바로 그 사람들을 미화하는 현실을 뒤바꾸기 위해서는 이 책보다 훨씬 더 많은 게 필요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07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탄투라의 경우처럼, 마을에 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주검을 모아서 땅에 묻었다. 노인 몇 명과 남자애 다섯이었다. 사프사프는 아랍어로 ‘수양버들’을 뜻한다. 잔학 행위에 관한 주요 증인인 무함마드 압둘라 에지하임은 현재 노인으로 지금도 에인힐와의 난민 수용소에 산다. 그가 사는 작은 오두막은 거의 60년 전에 처음 거기 도착했을 때 그가 심은 수양버들로 둘러싸여 있다. 사프사프가 남긴 유일한 흔적이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13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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