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깊이를]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D-29
오.. 저야 말로 감사하죠. 덕분에 유엔 결의안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이렇듯 미온적으로 나오는 데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는듯 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미국 정치권에 엄청난 자금을 살포하며 로비를 진행하기 때문이겠죠. 또 다른, 어쩌면 가장중요한 이유는, '유대인은 홀로코스트를 이겨내고 호전적인 '아랍의 바다' 한가운데서도 익사하지 않고 꿋꿋이 독립 의지를 불태우며 조상의 땅을 지켜낸 영웅적인 민족'이라는 서사를 미국 국민 대다수가 너무나 오랫동안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기도 하죠. 결국 정치인들은 표에 움직이는 존재들이니까요.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최근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여론이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겠죠. 이제는 실시간으로 이스라엘의 만행이 틱톡과 유튜브를 가득 메우는 상황이니까요. 특히나 40대 이하 젊은층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압도적이라고 하니 미래를 지켜봐야겠네요.
이스라엘군은 1949년 4월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했지만, 1978년과 1982년의 경우처럼, 1948년 팔레스타인에서 벌인 종족 청소를 레바논 남부까지 확대한 점령은 수많은 증오를 낳고 복수 감정을 부채질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26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악명높은 헤즈볼라도 원래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맞서 창설된 조직이라고 알고 있어요. 1987년 인티파다 과정에서 하마스가 창설된 것처럼요. 이스라엘의 만행이 쌓아올린 분노와 좌절이 결국은 이슬람주의의 극단적 저항을 불러온 셈이네요.
그렇죠 이스라엘은 언제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을 테러리즘으로 몰아가면서 비폭력적이고 정치적인 해결을 원하는 사람들을 억압해 왔죠. 그러니 말할 것도 없이 점점 더 과격한 운동 방식을 취하는 단체들이 반사 이익을 얻게 되는 거겠구요. 지금 가자에서 벌어지 살육도 1948년 전쟁 이후로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는데 결국 거기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앞으로도 더 과격한 무장 봉기로 맞서는 '전사'로 커 가겠죠. 가자와 서안 지구에 있는 약 40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모두 죽이거나 내쫓을 생각이 아니라면 이스라엘은 결국 스스로의 안보를 더 큰 위험으로 몰아가고 있는 셈이죠. 이스라엘이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하는 것만이 장기적인 희망을 담보한다는 길이라는 것을 언제쯤 깨닫게 될지 너무 답답하네요.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이 각종 테러를 벌인다고 욕할 자격이 있나 싶습니다.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갖은 폭력에 노출시켜 키워 놓고, 왜 그런 폭력적인 어른으로 자랐느냐고 욕하는 꼴이잖아요. 이스라엘 정부를 설득할 방법이 정말 없는 건가요? 아니면 이스라엘 정부만 저러는 건지 이스라엘 국민들 생각도 똑같은 건지 알고 싶습니다.
일단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의 빌미를 제공한 하마스의, 민간인(어린이를 비롯한 노약자 포함)에 대한 테러 공격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비인도적 행위였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국제법(비록 유명무실할지라도)상 점령지의 민중은 침략자에 맞서 무장투쟁을 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있습니다. 소급 적용이 힘들기는 하지만, 일제에 대항하여 싸웠던 식민지 조선의 독립군도 지금의 국제법상으로는 반란 세력이 아니라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행사했던 무장 저항이었죠. 그러나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발생하는 이스라엘 군대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무력 시위나 저항은 이스라엘에 의해 무조건 '테러리즘'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중동 지역에서 자신들만이 유일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어필하고 있죠. 문제는 자신들이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인 서안지구에서, 남아공의 아파르헤이트 이상의 인종분리정책을 50년이 넘게 이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내에서도 아랍계 시민들에 대한 제도적, 문화적 차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통제하는 전 지역에 사는 이들의 기본권을 민족 배경으로 차등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스라엘이 결코 민주적 국가가 아니라는 강력한 방증입니다. 최근 이스라엘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자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모두 추방해야 한다는 (문자 그대로의 종족청소) 여론이 압도적 다수로 나왔습니다. 이것만 봐도 이스라엘 국민과 지금의 극우 연립 정부의 색깔 차이는 크지 않은 듯합니다. 다만 작금 네타냐후의 극우 정권이 '유대계' 이스라엘인들의 시민적 권리까지 침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 현 정권을 반대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종적 우월감과 그들에 대한 혐오는 좌우를 막론하고 엄청나게 팽배한 상태로 보입니다.
그 결과 가자 사람들은 피란민이든 토박이 주민이든 간에 이스라엘의 공중 폭격을 가장 오랫동안 당한 피해자가 되었다─1948년부터 현재까지.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27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장갑차에 탄 군인들이 자동 무기와 박격포를 발포하면서 반원을 그리며 마을로 진입했다. 이스라엘군은 정해진 방식에 따라 3면에서 마을을 에워싸고 동쪽 방면만 열어 두었다. 1시간 안에 6,000명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마을 사람들이 도망치지 않자 군인들은 차량에서 뛰어내려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사원으로 몸을 피하거나 인근의 성스러운 동굴인 이라끄 알자그로 도망쳤다. 다음날 과감히 마을로 돌아온 촌장은 사원에 주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거리에는 더 많은 주검이 있었는데, 남녀노소 시체 가운데는 촌장의 아버지도 있었다. 동굴로 간 촌장은 입구가 수십 구의 시체로 막혀 있는 것을 보았다. 촌장이 일일이 세어보니 455명이 행방불명이었는데, 그중 170명 정도가 어린아이와 여자였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31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이번에는 9장과 10장을 모두 정리해 봅니다. (진도가 밀린 터라... ^^;;) 9장의 주요 내용은 1948년 대대적으로 전개된 '종족 청소'에 의한 대규모 추방 이후, 팔레스타인 땅에 남은 이들에게 가해진 학대 행위와 투옥 그리고 재산 몰수 및 군정에 의한 폭압적 상황을 다룹니다. 1949년 한 해 동안 8천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비인도적 환경의 포로 수용 시설에 감금되었으며, 도시에 남은 이들도 신체적 학대, 재산 약탈, 성지 훼손, 기본권의 침해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들이 겪었던 비인도적인 투옥의 기록을 전하는 부분에서 분노하지 않을 독자는 많지 않겠죠. 10세에서 50세 사이의 팔레스타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빗 작전', '증류' 작전 같은 체계적인 수색·체포 작전을 벌였고, 하이파의 다니엘 스트리트 11번지에 존재했던 심문 센터는 마치 군사 독재 시절의 남영동 대공분실 같은 참혹함이 지배했을 겁니다. 한마디로 아무런 원칙도 근거도 없이 불특정 인구를 대상으로 무차별적 예비 검속에 고문까지 자행하는 상황이었다고 보입니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이 기간 자행된 살육전은 지금도 그 온전한 진상을 파악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점령 두 달 뒤 적십자 대표단이 야파에서 발견한 시체 더미는 점령 후 이스라엘이 오히려 더욱 아무 거리낌 없이 종족 학살을 자행했음을 드러냅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 정부가 아랍인들을 위해 남겨둔 식량(설탕, 밀가루 등)을 압류하여 바로 유대인 정착촌으로 보낸 행위는, 이스라엘 점령 당국이 단순한 절도범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공적인 약탈뿐 아니라 이스라엘군 병사들의 사적인 약탈도 극에 달해, 야파의 군정 장관 이츠하크 히지크는 통제 불능의 약탈 행위와 병사들의 만연한 구타가 멈추지 않는 상황을 항의하다 7월 말 사임할 정도였죠. 당시의 한 조사 보고서는 구타와 고문을 '악의보다는 무지에서 기인한 규율 위반 정도'로 치부했는데요. 이 정도 무지라면 '악의'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어리둥절하네요. 이어서 하이파가 게토화하여 5천여 명의 아랍 주민들이 도시의 가장 빈곤한 구역인 와디니스나스로 강제 이주당합니다. 심지어 이주 비용마저 이들이 직접 내게 했을 뿐 아니라, 와디니스나스에 감금된 후에도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약탈을 이어갔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수없이 많은 강간 사건이 발생한 것도 분노를 자아냅니다. 여러 성폭력 사건 중 알려진 것만 해도 여럿인데,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고작 12세의 팔레스타인 소녀를 납치해 강간 살해한 것인데요. 이 사건으로 체포된 가해자는 22명에 이르렀고, 이 중 소녀를 직접 살해한 살인범은 고작 2년 형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이렇듯 극단적인 잔학 행위에 대한 이스라엘 측의 솜방망이 처벌은 결국 오늘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만행에 대한 면죄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 행위 뒤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산(약 1억 파운드 추산) 몰수가 이루어졌고, 아랍인들을 추방한 후 남겨진 농경지(350만 두남 이상)도 모두 이스라엘이 수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미 국무부가 1949년 봄 난민 귀환 문제를 잠시 압박하기도 했으나, 벤구리온은 아랍인이 떠난 빈집과 땅에 유대인 이민자들을 재빨리 정착시켜 이러한 압력에 대응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아직도 변함없이 서안 지구에서 오늘 이 시간에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미래에 국가를 건설할 최소한의 물리적 조건마저 파괴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욱이 오랜 세월 성지였던 팔레스타인의 종교 시설을 임의로 파괴하고 용도를 변경하여, 유대교를 제외한 현지의 성지를 훼손하고 모독한 사태는 사람뿐 아니라 한 민족의 고유한 문화적 배경을 철저히 말살한다는 측면에서 제노사이드 혐의를 벗어날 수 없는 만행입니다. 이어지는 10장에서는 나크바의 기억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지워지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옛 지명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히브리어로 된 새로운 지명이 주어집니다. 1949년 벤구리온이 재소집한 소위 '명명 위원회'라는 기관이 체계적으로 아랍어로 된 토착 지역명을 갈아치웁니다. 이러한 팔레스타인 고유 문화 지우기는 숲을 조성하는 사업에서 절정에 달하는데요. 오늘날 이스라엘의 숲을 이루는 수종의 10퍼센트만이 1948년 이전에 존재했던 것들이고, 지금은 대부분이 소나무와 삼나무 등 유럽(자신들의 실질적 고향)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수종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런데 JNF가 심은 소나무가 토양에 적응하지 못하고 쪼개지자, 56년 전 뿌리 뽑힌 줄 알았던 올리브나무가 그 사이를 뚫고 다시 자라나는 생명력을 보여준 부분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이렇듯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의 자연 풍경까지 무리하게 변화시키면서까지 치밀하게 팔레스타인 땅을 유럽적 분위기로 바꾸었던 이스라엘은, 식민주의를 더욱 가속화하는 여러 법적 장치를 마련합니다. 1950년의 '부재지주 자산법'은, 쫓겨난 뒤 귀환길이 막혀 돌아오지 못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수탁 기구'를 통해 도둑질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1953년의 '유대민족기금법'은 JNF에 독립적 지주 지위를 부여했고, 1960년 '이스라엘 토지법' 및 '토지 담당국법'은 JNF가 국가 토지(이스라엘 전체 토지의 90% 이상)의 대부분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JNF 헌장은 비유대인에게 토지를 매도 또는 임대하는 것을 금지하므로, 아랍인들이 실질적으로 토지를 되찾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것입니다. '1967년 농업 정착법'은 이러한 일련의 토지 강탈을 완성하는 법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비유대인에게 토지를 재임대하거나 가장 중요한 수자원의 할당량을 양도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법으로, 비유대인 즉 모든 원주민의 토지 이용을 불가능한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법적 추방 정책은 타지에서 온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전토를 강탈하고 그 위에 정착 식민지를 건설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9장과 10장은 전쟁 후 이스라엘이 얼마나 신속히 남의 땅을 자기 땅으로 만들어 갔으며, 이러한 상황이 80여 년 가까운 현재에는 엄청나게 빼내기 힘든 '대못'이 되어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의를 가로막고 있는지 분노하게 됩니다.
9장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성지와 사원, 귀중한 건축 예술품들을 파괴하는 내용을 보고 있자니,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저지른 바미얀 석불 등의 문화유산 파괴 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레반의 만행은 널리 알려져 세계적인 공분을 일으켰지만, 이스라엘의 만행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다르네요.
한 민족 고유의 풍경에는 산과 바다와 같은 자연물도 있지만 수 세기 또는 그 이상을 전해온 정신적 유물들이 있죠. 일제가 조선 통치를 위한 위엄을 갖추기 위해 한 나라의 정궁을 훼손하고 총독부를 지었듯이, 민족의 연속성을 끊어놓기 위해 그 민족의 종교·문화적 시설을 파괴하고 욕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문화 파괴적 행태가, 시오니스트 지도부는 처음부터 팔레스타인인들과 공존할 마음이 없었다는 심증을 굳히게 하죠. 게다가 향팔님 말씀처럼 서방의 지원을 받는 세력은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마저 별다른 국제사회의 제재 없이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은 무척 통탄할 노릇이네요
8장 9장에 대한 저의 감상을 써봅니다. 모임지기님께서 올려주시는 훌륭한 요약이 있으니 제 요약까지 올릴 필요는 없겠다라는 생각에.. ^^;; 8장을 읽고, 이스라엘이 말하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시각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관점이 과연 정당한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라고 불리는 이들을 악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폭력이 군인 간의 대립이 아닌 민간인을 겨냥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마스도 전 세계적으로 비난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선이 이중 잣대로 느껴지더군요. 이스라엘이 전쟁의 이름으로 지속하는, 즉 수행하다 불가피하게 발생했다고 말하는 '사상자(Casualties)'라고 불리는 민간인 살상 행위 또한 테러리즘과 똑같이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입니다. 오히려 국가의 체계적인 실행이기에 훨씬 강한 파괴력을 가졌음에도, 다른 힘센 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의 범죄는 계속 묻히고 쌓여 왔으며, 이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얼마나 쉽게 '테러리즘'으로 규정되고, 이것이 더 큰 보복의 구실로 사용될 수 있는지 타당하게 의심해 볼 수 있었습니다. 9장을 읽고 이스라엘이 쫓아 낸 사람들 뿐 아니라 그 땅에 남은 사람들에게까지 한 잔학한 행동들, 즉 수용소 감금, 강제 노동, 강간, 약탈, 학살, 게토로 몰아넣기 등 수없이 많은 범죄 행위를 보며 그 악랄함과 사악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쫓아 낸 것만이 아니라 빼앗은 땅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한 일들도 교묘하게 세계의 눈을 피해 속임수로 이루어진 것을 이 장을 통해 알게 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이웃 나라에 재정착시키는 방안을 내고 그들의 토지와 자산을 우선 ‘수탁’ 한다는 명분으로 소유의 결정을 미루었습니다. 그러다 기회가 왔을 때 강탈하고 소유하여 유대인 정착촌과 숲으로 뒤덮어버리는 비열함을 보입니다. 이런 일들이 온갖 증거에도 어떻게 은폐될 수 있는지 놀라우면서도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는 쪽에 대한 무조건적 동의와 약자에 대한 무관심이 이렇게 악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참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다지오님의 깔끔한 요약본으로 '복습'하던 재미도 쏠쏠했지만, 이번엔 감상 위주로 깨달은 점을 공유해주셔서 함께 이런저런 생각을 할 기회를 주시니 좋네요. 확실히 침략국가가 국적마저 모호한 피침략 민족의 저항을 아주 쉽게 '테러리즘'으로 규정하는 것은, 점령지 민중의 '무장저항'을 정당한 것으로 보는 국제법과는 무척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식민지 조선의 항일 무장 단체나 과거 남아공 백인 정권의 폭압에 맞서던 흑인 단체들, 그리고 현재 하마스까지 거의 모든 무장 저항 세력은 자동적으로 테러리스트 단체로 꼬리표를 달게 되죠. 만약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었다면 포로가 된 적군은 제네바 협약에 의한 전쟁포로로 대우 받겠지만, 이 경우는 그저 테러리스트로 지목당하여 최소한의 인권마저 짓밟히기 일쑤죠. 과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군에 맞서 싸웠던 오마르 카드르라는 소년이 어른이 되도록 적법한 절차 없이 관타나모 테러리스트 수용시설에 감금되어 고문까지 당한 것은 매우 유명한 예죠. 단지 어느 국가의 정식 군대가 아닌 텔레반이라는 '테러집단'에 속한 소년병이었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유전무죄'가 아니라 '유국무죄(有國無罪), 무국유죄(無國有罪)'네요. 나라 없는 설움이 이토록 참혹한 지경에 이른 예는 쉽게 찾아보기 힘듭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불법 감금되어 고초를 겪은 소년 이야기를 하시니 이 책이 떠오르네요. 관타나모 최연소 수감자 무함마드 엘-고라니의 실화를 그린 그래픽노블이라고 해서 예전에 킵해 뒀던 책인데요, 아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관타나모 키드 - 관타나모 수용소 최연소 수감자 무함마드 엘-고라니 실화 오디세이인권 블랙홀, 관타나모 미군 기지 수용소의 역사상 최연소 수감자 무함마드 엘-고라니(Mohammed El-Gharani)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그래픽노블이다. 주인공 무함마드의 삶을 통해 21세기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글로벌사우스에 남긴 거대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역사적으로 고발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평범하지만 위대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낸 역사 그래픽노블 수작이다.
찾아보니 제가 예로 들었던 '오마르 카드르'보다 더욱 억울한 사연이네요!! 초보적인 군사 기술이나마 익히고 실제로 미군과 교전을 벌였던 카드르와는 달리, 엘-고라니의 경우 사원에서 기도하다가 끌려간 케이스군요. 소위 인권 선진국이라 불리는 서방 각국의 '인권'이라는 것이, 결국 자국민만을 위한 위선적이고 선별적인 인권임이 드러나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한꺼번에 자산을 강탈했을 때 국제 사회의 분노가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새로 획득한 자산의 ‘수탁 기구’를 임명했다. 자산의 최종적인 운명에 대한 결정을 미결로 남겨 둔 것이다. 과거에 시온주의가 전형적으로 보인 행동을 연상시키는 이런 ‘실용적인’ 해법은 나중에 ‘전략적인’ 결정으로 바뀔 때까지(즉 강탈된 자산의 지위가 재규정될 때까지) 이스라엘의 정책이 되었다. 따라서 수탁 기구는 이스라엘 정부가 유엔 결의안 제194호의 내용, 즉 모든 난민에게 귀환을 허용하거나 보상을, 또는 둘 다를 해주어야 한다는 요구에 따른 악영향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구였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59-360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추방된 팔레스타인인들의 모든 개인적, 집단적 재산을 수탁 기구가 보관하게 함으로써 정부는 나중에 이 자산을 공공이나 민간의 유대인 집단이나 개인에게 매각할 수 있었고 실제로 매각했다. 소유권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그럴듯한 구실을 붙여서 말이다. 게다가 정부가 팔레스타인 소유주에게서 몰수한 토지를 직접 관리하게 된 바로 그 순간 토지는 국유지가 되었다. 법적으로 유대 국가의 소유가 된 이 토지는 이제 아랍인에게 매각할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60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다시 말해, 유대 민족 기금의 진짜 임무는 그 자리에 심은 나무만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역사 서사를 통해서도 팔레스타인의 가시적인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유대 민족 기금 웹 사이트에서나 공원 자체에서나 아주 정교한 시청각 장비로 시온주의의 공식적인 서사를 보여주면서 어떤 장소든 유대 민족과 ‘이스라엘 땅’의 민족적인 메타 서사라는 맥락 속에 자리매김된다. 이런 서사는 시온주의가 스스로 발명한 유대 민족의 과거와 모순되는 모든 역사를 대체하기 위해 동원하는 익숙한 신화─시온주의가 당도하기 전에 팔레스타인은 ‘아무도 살지 않는 불모의’ 땅이었다는 신화─를 계속 낭송한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380쪽, 일란 파페 지음, 유강은 옮김
드디어 일란 파페의 <팔레스타인 비극사> 읽기 대장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11장과 12장은 분량 면에서는 다소 가벼워 보일지 몰라도 그 내용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의 뿌리를 건드리고 있어 책장을 넘기는 손끝이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저자는 1948년의 인종 청소, 즉 나크바를 부정하는 것이 어떻게 평화라는 이름의 기만적인 협상 과정을 망가뜨려 왔는지 그리고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어떻게 고립된 요새로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우선 소위 평화 협상 과정이라 불리는 것들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그 시작부터 뒤틀려 있음을 알게 됩니다. 1948년 이후 유엔은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UNRWA를 설립했지만 이는 난민들의 귀환이라는 정치적 권리보다는 단순한 구호와 일자리 제공에 치중함으로써 유대인 난민 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분리하려는 시온주의자들의 입맛에 딱 맞는 처사였습니다. 하지만 난민 수용소는 역설적으로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요람이 되었고 결국 1948년의 비극을 시정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귀환권 요구는 PLO를 통해 구체화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유엔이나 미국 심지어 이스라엘 내부 일부에서도 난민 귀환을 평화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벤구리온의 영토 분할 욕심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1967년 전쟁 이후 미국의 주도로 진행된 평화 과정은 철저히 힘의 논리에 따른 것으로 이스라엘은 갈등의 원인을 1967년 점령으로 축소하고 1948년의 나크바와 난민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서 치워버리는 전략을 고수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걸었던 오슬로 협정이나 캠프 데이비드 협상 역시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슬로 협정은 가장 중요한 귀환권이나 예루살렘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는 함정을 가지고 있었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스라엘이 제안한 것은 사실상 난민 문제를 배제하고 영토의 일부만 돌려주겠다는 기만적인 반투스탄식 국가 건설에 불과했습니다. 아라파트가 이를 거부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음에도 그는 평화를 깬 전쟁광으로 낙인찍혀야 했죠. 이스라엘이 이토록 집요하게 1948년의 기억을 지우려 하고 귀환권을 봉쇄하려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나크바를 인정하는 순간 시온주의 기획 전체의 도덕적 정당성이 무너지고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견고한 자아상이 파괴될 것이라는 공포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묘사하는 요새 이스라엘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 아니라 제거하거나 통제해야 할 인구학적 위협으로 간주합니다. 2003년에 통과된 결혼 금지법은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시민과 결혼해 거주권을 얻는 것을 막음으로써 그들을 시민이 아닌 위험 요소로 규정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건국 초기부터 유대인 다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원주민을 몰아내려 했던 시온주의의 인구학적 강박이 여전히, 아니 더 교묘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네타냐후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아랍 인구의 증가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암적인 존재로 여기며 분리 장벽을 세우고 법적 차별을 통해 유대인만의 요새를 구축하려 합니다. 이러한 요새화 전략은 중세 십자군 국가나 과거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연상시킵니다. 아랍 세계라는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백인들의 요새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핵무기와 군사력 그리고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유대인이라도 아랍계인 미즈라히 유대인들은 이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고 더욱더 강렬한 요새의 수호자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인구학적 균형은 이미 팔레스타인 쪽으로 기울고 있으며 무력으로 유지되는 요새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단호하고도 명료합니다. 유일한 해법은 이스라엘이 배타적인 유대 국가라는 간판을 내리고 모든 시민을 위한 민주 국가로 거듭나는 것뿐입니다. 1948년의 인종 청소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난민들의 귀환을 보장하는 것만이 피로 얼룩진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시작점이라는 것입니다. 시온주의라는 배타적 이데올로기가 멈추지 않는 한 인종 청소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경고가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이제 책은 덮었지만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의 뉴스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은 기간에는 예고해드린대로 책 밖의 현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뉴스들을 통해 우리의 대화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책을 다 읽었습니다. 1948년의 '종족 청소'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화해는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12장에서는 이스라엘이 토지 관리, 평화 협상 과정, 그리고 국가의 입법과 정책을 통해 어떻게 나크바의 진실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부정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저자는 이 책(2006년)에서 팔레스타인에 또다시 나크바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요. 지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이 바로 그 나크바의 재현이네요. 마음이 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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