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보르헤스 읽기] 『또 다른 심문들』 1부 같이 읽어요

D-29
2025년에도 이어서 읽는 보르헤스의 아홉 번째 책입니다. 민음사 논픽션 전집판으로는 네 번째 책을 읽습니다. 함께 읽을 분들은 참여해주세요. 극단적으로 느리게 읽는 모임입니다😀 『또 다른 심문들』는 총 2부로 나뉘어 있으며, 이 모임에서는 1부의 산문들을 이어서 읽겠습니다. 번역도 찬찬히 살펴보면서 천천히 읽겠습니다. ⏤너새니얼 호손 93 ⏤상징으로서의 발레리 128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에 관한 수수께끼 132 ⏤오스카 와일드에 대하여 139 ⏤체스터턴에 대하여 146 ⏤맨 처음의 웰스 153 ⏤『비아타나토스』 159 ⏤파스칼 167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 174 ⏤카프카와 그의 선구자들 181 ⏤도서 예찬에 대하여 186 ⏤키츠의 나이팅게일 195 ⏤수수께끼들의 거울 202 ⏤두 권의 책 209 ⏤1944년 8월 23일 자 기사 217 ※ 한 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제 짤막한 감상을 남기겠습니다. 대화하실 때는 단편별로 [이 대화에 답하기] 기능을 활용해서 대화 타래를 엮어가요. ※ 지나간 글꼭지에 대한 언급도 얼마든 가능합니다. 나눠놓은 기간에 구애하지 마시고 [게시판] 기능을 활용해서 언제든 대화 타래에 동참해주세요. ※ 제 아이디를 탭 하고 [만든 모임]을 보시면 이전에 열렸던 모임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임에 대한 의견도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전 모임에서 워낙 게으름을 피우느라 읽지 못한 15개의 텍스트를 이어서 읽겠습니다. 사실 한참 전에 다 읽기는 했지만 어떤 말을 써야할지 뒤늦게 고민하다가 모임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제가 이 보르헤스 읽기 모임을 지속하는 데는 거창한 목적이 없습니다. 이 모임은 실시간으로 진행될 테지만 나중에라도 홀로 책을 읽게 될 사람을 상상하면서 만들었습니다. 아마 다들 이 책을 읽으면서 뜻모를 미진함이나 해소되지 않는 갑갑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이 모임이 조그만 이정표가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혼란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너새니얼 호손] 미국 문학의 특유의 환상성을 고찰한 에세이입니다. 일찍이 융(Jung)은 문학 창작이 꿈의 창작일 뿐 아니라 문학이 곧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보르헤스는 이 오래된 은유에서 너새니얼 호손이라는 소설가의 삶과 그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구한 문학적 내력을 고찰합니다. 이미 17세기 스페인의 공고라는 자신의 시에서 '꿈이야말로 극작가'라고 말했고, 과거 페르시아의 오마르 하이얌도 비슷한 은유를 든 적이 있습니다. 세계사란 범신론에서 말하는 무수한 신들이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기획하고 공연하고 관람했던 한 편의 연극이었다는 것입니다. 문학은 무의식이 연출하는 꿈과는 조금 다르며, 의도적이고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완벽히 통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꿈의 한 갈래입니다. 보르헤스 특유의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문학사는 꿈이라는 거대한 판게아에서 떨어져나온 한 조각입니다. 우리는 문학 안에서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너새니얼 호손은 거의 12년간 은둔하면서 환상 소설에 탐닉했습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문학적 히키코모리의 원형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히키코모리의 은둔이 무언가를 향한 극도의 '부정' 혹은 '거부' 행위를 나타낸다면, 호손의 은둔은 자기 상상에 몰입한 결과였습니다. 호손은 상상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은둔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알레고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변변찮은 아동 문학이랄 게 없는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이미 여섯 살 무렵에 ⟪천로역정⟫을 읽었습니다. 참고로 18-19세기에 ⟪천로역정⟫은 영미권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구원을 추구하는 인간의 여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알레고리 소설입니다. 심지어 그가 값을 치르고 산 첫 번째 책은 에드워드 스펜서의 알레고리 서사시 ⟪페어리 퀸⟫이었습니다. ⟪성경⟫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1842년 에드거 앨런 포는 호손의 단편에서 드러나는 알레고리 경향을 비판했습니다. 소설은 독자에게 즉각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줘야 한다는 것이 비판의 논지였습니다. 알레고리 소설은 이야기를 두 가지 층위로 구분하고, 표면적인 이야기 뒤에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숨기는 다소 뻔한 구조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때 독자는 소설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고 그 뒤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일종의 번역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숨겨진 의미라는 것도 청교도적인 경직성이 드러나는 도덕적 설교에 불과하기에 결국 이야기는 교훈성이 지배하게 됩니다. 직관적인 예술성은 사라집니다. 포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If the allegory ever establishes a fact, it is by dint of overturning a fiction.” 대강 번역하면 "알레고리는 허구를 희생하는 대가로 진리를 확보한다"입니다. 이런 포의 알레고리 비판은, 훗날 호손을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됩니다. 보르헤스의 에세이는 이런 비판 앞에 마주함으로써 비로소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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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st님의 대화: [너새니얼 호손] 미국 문학의 특유의 환상성을 고찰한 에세이입니다. 일찍이 융(Jung)은 문학 창작이 꿈의 창작일 뿐 아니라 문학이 곧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보르헤스는 이 오래된 은유에서 너새니얼 호손이라는 소설가의 삶과 그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구한 문학적 내력을 고찰합니다. 이미 17세기 스페인의 공고라는 자신의 시에서 '꿈이야말로 극작가'라고 말했고, 과거 페르시아의 오마르 하이얌도 비슷한 은유를 든 적이 있습니다. 세계사란 범신론에서 말하는 무수한 신들이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기획하고 공연하고 관람했던 한 편의 연극이었다는 것입니다. 문학은 무의식이 연출하는 꿈과는 조금 다르며, 의도적이고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완벽히 통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꿈의 한 갈래입니다. 보르헤스 특유의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문학사는 꿈이라는 거대한 판게아에서 떨어져나온 한 조각입니다. 우리는 문학 안에서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너새니얼 호손은 거의 12년간 은둔하면서 환상 소설에 탐닉했습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문학적 히키코모리의 원형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히키코모리의 은둔이 무언가를 향한 극도의 '부정' 혹은 '거부' 행위를 나타낸다면, 호손의 은둔은 자기 상상에 몰입한 결과였습니다. 호손은 상상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은둔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알레고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변변찮은 아동 문학이랄 게 없는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이미 여섯 살 무렵에 ⟪천로역정⟫을 읽었습니다. 참고로 18-19세기에 ⟪천로역정⟫은 영미권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구원을 추구하는 인간의 여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알레고리 소설입니다. 심지어 그가 값을 치르고 산 첫 번째 책은 에드워드 스펜서의 알레고리 서사시 ⟪페어리 퀸⟫이었습니다. ⟪성경⟫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1842년 에드거 앨런 포는 호손의 단편에서 드러나는 알레고리 경향을 비판했습니다. 소설은 독자에게 즉각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줘야 한다는 것이 비판의 논지였습니다. 알레고리 소설은 이야기를 두 가지 층위로 구분하고, 표면적인 이야기 뒤에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숨기는 다소 뻔한 구조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때 독자는 소설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고 그 뒤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일종의 번역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숨겨진 의미라는 것도 청교도적인 경직성이 드러나는 도덕적 설교에 불과하기에 결국 이야기는 교훈성이 지배하게 됩니다. 직관적인 예술성은 사라집니다. 포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If the allegory ever establishes a fact, it is by dint of overturning a fiction.” 대강 번역하면 "알레고리는 허구를 희생하는 대가로 진리를 확보한다"입니다. 이런 포의 알레고리 비판은, 훗날 호손을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됩니다. 보르헤스의 에세이는 이런 비판 앞에 마주함으로써 비로소 시작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이 글을 쓴 목적 두 가지를 밝힙니다. "첫 번째는 알레고리라는 장르가 과연 정당한가 하는 문제이고, 두 번째는 호손의 이야기들이 알레고리인가 하는 문제이다." 먼저 보르헤스는 알레고리를 둘러싼 유구한 논쟁사를 불러옵니다. 바로 알레고리를 비판한 크로체, 그리고 그것을 옹호한 체스터턴의 주장을 살펴봅니다. 크로체는 포와 비슷한 논지를 폅니다. 알레고리란 "가면 무도회"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 '피곤한 수수께끼'이자 '불필요한 동어반복'을 만들어낸다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신곡⟫에서 단테는 서사상으로는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기실 단테는 우리네 영혼이고 베르길리우스는 철학이나 이성이나 자연의 빛에 대응하며, 베아트리체는 신학이나 은총일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는 '작품이 진정 이렇게 도식적인 구조로 짜여졌는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하며, 실상 도식적인 것은 작품이나 알레고리 자체가 아닌 이런 해석은 아니었을까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과연, 크로체의 알레고리 비판을 두고, 체스터턴은 '언어의 자의성'으로 응수합니다. 현실은 무한히 복잡하고 미묘하며, 그런 '압도적인 규모'의 현실을 담아내기에 언어는 어떤 식으로든 미진하다는 것입니다. 알레고리를 경유하든 아니든 언어는 모두 "자의적인 장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어가 어떤 식으로든 자의적이며 관습적인 기호 체계라면, 알레고리라고 해서 유독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도 없습니다. 일상 언어나 알레고리나 똑같이 언어의 자의성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알레고리가 권장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현실은 압도적인 규모이기에 그것에 대응하는 부분적이고 개별적인 진리와 수단이 우리에게는 '전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칼은 도구이며 그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언어도 마찬가지여서 일상 언어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알레고리가 필요한 순간도 있습니다. 현실은 ⟪화엄경⟫에 나오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다르지 않아서, 다만 자기 위치에서 더듬는 다양한 손이 있을 따름입니다. 코끼리의 거칠거칠한 꼬리를 만지는 손은 무용하고 단단하고 매끄러운 상아를 만지는 손은 유용하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99) “사람은 자신의 영혼 속에 가을 숲속의 색깔들보다도 더욱 더 다채롭고 훨씬 더 무한하며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색깔들이 들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무수한 색깔들이, 뒤섞여서 변해버렸음에도, 투덜대는 소리와 괴성으로 가득한 자의적인 장치를 통해서 정확히 재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주식 중개인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은 하나같이 신기에 가까운 기억력과 조바심으로 가득한 번민을 담고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훗날 체스터턴은 파악할 수 없는 현실에 어떻게든 상응하는 언어가 있을 수 있다고 추론한다. 그 여러 가지 가운데 알레고리와 우화의 언어도 있다.
russist님의 대화: 보르헤스는 이 글을 쓴 목적 두 가지를 밝힙니다. "첫 번째는 알레고리라는 장르가 과연 정당한가 하는 문제이고, 두 번째는 호손의 이야기들이 알레고리인가 하는 문제이다." 먼저 보르헤스는 알레고리를 둘러싼 유구한 논쟁사를 불러옵니다. 바로 알레고리를 비판한 크로체, 그리고 그것을 옹호한 체스터턴의 주장을 살펴봅니다. 크로체는 포와 비슷한 논지를 폅니다. 알레고리란 "가면 무도회"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 '피곤한 수수께끼'이자 '불필요한 동어반복'을 만들어낸다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신곡⟫에서 단테는 서사상으로는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기실 단테는 우리네 영혼이고 베르길리우스는 철학이나 이성이나 자연의 빛에 대응하며, 베아트리체는 신학이나 은총일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는 '작품이 진정 이렇게 도식적인 구조로 짜여졌는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하며, 실상 도식적인 것은 작품이나 알레고리 자체가 아닌 이런 해석은 아니었을까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과연, 크로체의 알레고리 비판을 두고, 체스터턴은 '언어의 자의성'으로 응수합니다. 현실은 무한히 복잡하고 미묘하며, 그런 '압도적인 규모'의 현실을 담아내기에 언어는 어떤 식으로든 미진하다는 것입니다. 알레고리를 경유하든 아니든 언어는 모두 "자의적인 장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어가 어떤 식으로든 자의적이며 관습적인 기호 체계라면, 알레고리라고 해서 유독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도 없습니다. 일상 언어나 알레고리나 똑같이 언어의 자의성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알레고리가 권장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현실은 압도적인 규모이기에 그것에 대응하는 부분적이고 개별적인 진리와 수단이 우리에게는 '전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칼은 도구이며 그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언어도 마찬가지여서 일상 언어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알레고리가 필요한 순간도 있습니다. 현실은 ⟪화엄경⟫에 나오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다르지 않아서, 다만 자기 위치에서 더듬는 다양한 손이 있을 따름입니다. 코끼리의 거칠거칠한 꼬리를 만지는 손은 무용하고 단단하고 매끄러운 상아를 만지는 손은 유용하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99) “사람은 자신의 영혼 속에 가을 숲속의 색깔들보다도 더욱 더 다채롭고 훨씬 더 무한하며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색깔들이 들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무수한 색깔들이, 뒤섞여서 변해버렸음에도, 투덜대는 소리와 괴성으로 가득한 자의적인 장치를 통해서 정확히 재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주식 중개인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은 하나같이 신기에 가까운 기억력과 조바심으로 가득한 번민을 담고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훗날 체스터턴은 파악할 수 없는 현실에 어떻게든 상응하는 언어가 있을 수 있다고 추론한다. 그 여러 가지 가운데 알레고리와 우화의 언어도 있다.
체스터턴은 말합니다. 세상에는 "특별한 감정, 내적 감정, 혹은 일련의 유사한 감정이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가 있으며, 그것은 두 개의 기호로 제시될 수 있다고요. 모두 파악할 수 없는 현실에 대응하는 수단으로서 언어는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단테에게는 '베아트리체=신앙'이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로도, '신앙'으로도 오롯이 환원되지 않는 제삼의 '무언가'를 설득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씁니다. "알레고리는 단순한 도식이나, 차갑고 추상적인 유희로 환원되지 않을 수록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100쪽) 알레고리를 비판하는 쪽의 주장과 달리, 성공한 알레고리는 A를 말하기 위해서 B라는 동의어를 내세우지 않으며, A나 B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다층적인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A와 B를 모두 말합니다. 이때 표현된 '무언가'는 A로도 B로도 환원되지 않습니다. 앞서 ⟨케베도⟩에서도 언급한, 좋은 메타포의 정의를 떠올려보세요. 좋은 메타포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동화가 아닌 두 이미지의 충돌'이라고 했습니다. 두 관념 사이에 위계를 두지 않고 내/외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A는 B다"라고 말할 때도 A는 B에게 봉사하지 않으며, B 역시 A에게 봉사하지 않습니다. 다만 A와 B는 서로로 인해 풍성해질 따름입니다. 물론 호손의 모든 작품에서 이렇게 성공한 알레고리만 있었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도식적인 작품도 분명 있습니다. 보르헤스도 인정합니다. 호손은 "상상한 것 하나하나를 우화로 탄생시켜야 한다는 청교도적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재미난 상상력을 발휘하였으며, 청교도적 도덕률에 매여 있지 않은 채 순수한 환상을 확보했습니다. 호손은 "상상과 현실의 접촉"을 선호했습니다. 이 역시 유구한 역사적 내력이 있습니다. ⟪일리아스⟫에서 헬레나가 짜는 직물이 곧 전쟁과 그 전쟁이 초래할 불안이며 ⟪아이네이스⟫에서 아이네이아스는 어느 신전의 대리석 석판에서 자신이 참전한 전쟁 장면을 목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술이 현실의 반영물이자 복제품임을 확인합니다. 보르헤스는 호손이 이런 메타픽션의 장치 안에서 "한 사람은 곧 모든 사람"이 되는 범신론적 관념으로 기울었음을 봅니다. 호손의 소설에는 고유한 특징이 엿보입니다. 여느 소설가가 '인물'을 재현하기에 힘썼다면, 호손은 인물보다는 상상력이 우선인 사람이었습니다. 조지프 콘래드가 ⟪빅토리⟫에서 '스콤버그'라는 역동적인 인물을 창안했고,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라는 불멸의 인물을 고안해낸 것과 달리, 호손은 상황을 먼저 떠올리고 거기에 걸맞은 인물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기에 호손 작품의 백미는 등장인물보다는 서사와 그 구조에 눈길이 더 쏠릴 수밖에 없는 단편 소설입니다. 그중에서도 보르헤스는 단편 ⟨웨이크필드⟩를 으뜸으로 꼽습니다. 마치 12년 동안 은둔했던 자신의 인생을 연상케하는 기이한 이야기입니다. 요약하면, 어느날 아무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고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가까이에 거처를 정한 뒤,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장장 20년을 숨어 지낸 어느 영국인의 이야기입니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 이상한 이야기에서, 훗날 카프카와 멜빌이 만들어낸 "수수께끼 같은 형벌과 불가해한 죄악의 세계"를 봅니다. 지금의 우리는 카프카가 호손보다 연대기적으로 후대의 인물임을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카프카가 호손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호손과 카프카 이후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의 관점이 문제시되는 탓입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호손은 카프카를 경유해서 읽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연대기적 영향 관계를 뒤집습니다. 20세기 초의 카프카의 단편이 그토록 성공적이었으며 그러한 성공을 우리가 알기에, 그 이전의 인물인 호손의 단편에 우리가 주목하게 되었던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합니다. 카프카의 독해로 인해서 호손의 독해가 더욱 풍성해졌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카프카는 ⟨웨이크필드⟩ 읽기를 수정하고 정련한다."(111쪽)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만, 모든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며, 외려 좋은 현재는 과거를 재발견하게 한다는 전복적인 문학적 영향관계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잠정적으로 결론 내립니다. "위대한 작가는 선구자들을 창조한다."
russist님의 대화: 체스터턴은 말합니다. 세상에는 "특별한 감정, 내적 감정, 혹은 일련의 유사한 감정이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가 있으며, 그것은 두 개의 기호로 제시될 수 있다고요. 모두 파악할 수 없는 현실에 대응하는 수단으로서 언어는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단테에게는 '베아트리체=신앙'이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로도, '신앙'으로도 오롯이 환원되지 않는 제삼의 '무언가'를 설득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씁니다. "알레고리는 단순한 도식이나, 차갑고 추상적인 유희로 환원되지 않을 수록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100쪽) 알레고리를 비판하는 쪽의 주장과 달리, 성공한 알레고리는 A를 말하기 위해서 B라는 동의어를 내세우지 않으며, A나 B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다층적인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A와 B를 모두 말합니다. 이때 표현된 '무언가'는 A로도 B로도 환원되지 않습니다. 앞서 ⟨케베도⟩에서도 언급한, 좋은 메타포의 정의를 떠올려보세요. 좋은 메타포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동화가 아닌 두 이미지의 충돌'이라고 했습니다. 두 관념 사이에 위계를 두지 않고 내/외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A는 B다"라고 말할 때도 A는 B에게 봉사하지 않으며, B 역시 A에게 봉사하지 않습니다. 다만 A와 B는 서로로 인해 풍성해질 따름입니다. 물론 호손의 모든 작품에서 이렇게 성공한 알레고리만 있었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도식적인 작품도 분명 있습니다. 보르헤스도 인정합니다. 호손은 "상상한 것 하나하나를 우화로 탄생시켜야 한다는 청교도적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재미난 상상력을 발휘하였으며, 청교도적 도덕률에 매여 있지 않은 채 순수한 환상을 확보했습니다. 호손은 "상상과 현실의 접촉"을 선호했습니다. 이 역시 유구한 역사적 내력이 있습니다. ⟪일리아스⟫에서 헬레나가 짜는 직물이 곧 전쟁과 그 전쟁이 초래할 불안이며 ⟪아이네이스⟫에서 아이네이아스는 어느 신전의 대리석 석판에서 자신이 참전한 전쟁 장면을 목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술이 현실의 반영물이자 복제품임을 확인합니다. 보르헤스는 호손이 이런 메타픽션의 장치 안에서 "한 사람은 곧 모든 사람"이 되는 범신론적 관념으로 기울었음을 봅니다. 호손의 소설에는 고유한 특징이 엿보입니다. 여느 소설가가 '인물'을 재현하기에 힘썼다면, 호손은 인물보다는 상상력이 우선인 사람이었습니다. 조지프 콘래드가 ⟪빅토리⟫에서 '스콤버그'라는 역동적인 인물을 창안했고,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라는 불멸의 인물을 고안해낸 것과 달리, 호손은 상황을 먼저 떠올리고 거기에 걸맞은 인물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기에 호손 작품의 백미는 등장인물보다는 서사와 그 구조에 눈길이 더 쏠릴 수밖에 없는 단편 소설입니다. 그중에서도 보르헤스는 단편 ⟨웨이크필드⟩를 으뜸으로 꼽습니다. 마치 12년 동안 은둔했던 자신의 인생을 연상케하는 기이한 이야기입니다. 요약하면, 어느날 아무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고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가까이에 거처를 정한 뒤,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장장 20년을 숨어 지낸 어느 영국인의 이야기입니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 이상한 이야기에서, 훗날 카프카와 멜빌이 만들어낸 "수수께끼 같은 형벌과 불가해한 죄악의 세계"를 봅니다. 지금의 우리는 카프카가 호손보다 연대기적으로 후대의 인물임을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카프카가 호손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호손과 카프카 이후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의 관점이 문제시되는 탓입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호손은 카프카를 경유해서 읽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연대기적 영향 관계를 뒤집습니다. 20세기 초의 카프카의 단편이 그토록 성공적이었으며 그러한 성공을 우리가 알기에, 그 이전의 인물인 호손의 단편에 우리가 주목하게 되었던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합니다. 카프카의 독해로 인해서 호손의 독해가 더욱 풍성해졌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카프카는 ⟨웨이크필드⟩ 읽기를 수정하고 정련한다."(111쪽)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만, 모든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며, 외려 좋은 현재는 과거를 재발견하게 한다는 전복적인 문학적 영향관계를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잠정적으로 결론 내립니다. "위대한 작가는 선구자들을 창조한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선형적인 시간관을 기반으로 사고하며, 과거를 고찰하면서도 자꾸 그 영향관계를 '논증'합니다. 보르헤스는 과거를 살펴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인정하면서, 19세기 호손의 성공과 실패를 섬세하게 조명합니다. 호손은 1844년 ⟪지구라는 홀로코스트⟫(Earth's Holocaust)라는 문제적인 소설을 발표합니다. 이 알레고리 소설에서 인간들은 "불필요한 축적"에 지친 나머지 과거 자체를 일거에 말소하기에 이릅니다. 20세기라는 역사를 배워서 아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이 소설은 달리 읽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홀로코스트라는 단어에 씌인 그늘을 지나치게 잘 알기 때문입니다. 20세기 나치가 체계적으로 행했던 유대인 말살 행위를 의미하는 고유명사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1844년에 이 단어에는 지금과 같은 그늘이 없었다는 점을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홀로코스트는 종교적 번제(燔祭)를 일컫는 단어로, 그리스어 "holokauston"에 유래합니다. 풀어보자면 "holos"는 '완전한'이란 의미이고 "kauston"은 '태우기'라는 의미입니다. 합치면 '완전한 소각'이며, 종교적 의미의 정화(淨化)를 의미합니다. 호손은 소설에서 세상의 모든 축적물을 불태우면서도, 악마로 대변되는 한 남자를 등장시켜서 이렇게 말하도록 합니다. "사람의 마음, 마음, 그것은 모든 죄악의 진원지인 작지만 무한한 구체다." 여기서 우리는 관념론으로 개진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호손은 '마음'이라는 '작지만 무한한 구체'를 발견하고도, 칼뱅주의적인 해석, 즉 '원죄'로 끌려가고 맙니다. 모든 문제는 인간의 타락한 마음에 있기에 영적이고 종교적인 회개만이 진정한 해결책이라는 종교적 해석에 소설을 국한시키고 만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마음이 무한한 구체'이고 '세계가 정신적인 실재'라면, 우리는 물질적인 파괴를 넘어 언제든 세상을 재건할 수 있다는, 에머슨이 ⟨역사⟩에서 보여준 방식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찌보면 청교도의 혈통을 물려받은 호손에게는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선조들의 죄의식이 그로 하여금 글에 몰두하도록 만들었지만, 계속해서 글을 써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행위는 다시 한번 죄의식을 유발했습니다. 소설은 재현의 수단이고, 달리 우상을 짓는 행위였으며, 환영에 매달린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럼에도 호손은 타협안을 찾아내기에 이릅니다. 바로 자신의 작품을 우화로 만들고 교훈성을 삽입하는 것이었습니다. 보르헤스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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