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보르헤스 읽기] 『또 다른 심문들』 1부 같이 읽어요

D-29
오스카 와일드라는 이름은 허허벌판 위에 세워진 도시들을 떠오르게 만들고, 그가 누린 영광은 형벌과 옥살이와 직결된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기본적으로 행복의 맛이 묻어난다. 이와는 반대로, 강건한 신체와 정신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체스터턴의 값진 작품은 늘 악몽이 되어 버릴 여지를 지니고 있다. 악마적인 것과 공포가 그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낫다고 생각되는 부분마저도 독자를 경악으로 몰고 가니 말이다. 체스터턴이 유년을 되살리고 싶어 하는 어른이라면, 와일드는 온갖 불운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순수함을 지켜 가는 어른이다.
또 다른 심문들 14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정경원 외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체스터턴에 대하여] 체스터턴이 문학적 생애 전반에 걸쳐서 일종의 카프카적인 악몽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라는, 다소 독특한 해석을 내놓는 에세이입니다. 체스터턴은 19세기 라파엘전파가 재현한 '이상적인 중세의 이미지'를 신봉했던 가톨릭 신자였습니다(간략히 라파엘전파란 15세기 초 르네상스로 돌아가고자 했던 19세기 영국의 미술 사조입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런던을 "작고, 희고, 깨끗"한 공간으로 묘사합니다. 흔히들 체스터턴을 휘트먼과 묶어서,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견지했던 낙관적인 가톨릭 작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보르헤스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체스터턴을 볼 때, 그가 표면적으로 내비친 신념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가 인생 전체에서 보여준 경향성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체스터턴이 악몽적인 것에 푹 빠져 있었다는 것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경악에 찬 천지의 창조를 상정"했으며,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작품을 썼습니다. 그는 눈이 세 개인 사람을 내세우고, 날개가 세 개인 새를 등장시키며, 사면이 거울로 된 감옥을 묘사하고, 새를 잡아먹고 잎사귀 대신 깃털이 돋아나는 나무를 상상합니다. 체스터턴의 작품에는 에드거 앨런 포나 프란츠 카프카가 어른거립니다. '나'라는 수렁 속에는 뭔가 악몽으로 변하려는 것이 들어 있으며, 우리 인격 속에는 은밀하고 맹목적인 구석이 있다고 믿는 겁니다. 체스터턴은 일견 낙관적인 가톨릭 교도의 삶을 내세웠지만 내심 카프카적인 몽상에 이끌렸기에 그의 문학적 밑바닥에는 이 두 가지가 늘 긴장 상태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이 내면적 투쟁이 상징적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브라운 신부의 모험담이며, 각각의 이야기는 "이성에 기대어 설명할 길 없는 사실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이성'이란 가톨릭적인 믿음입니다. 에세이의 말미에서 보르헤스는 체스터턴이라는 문학적 과실의 겉껍질과 과육을 말합니다. 표면적으로 체스터턴은 가톨릭 교도로서 17세기 청교도인의 고전인 ⟪천로역정⟫의 서사를 따릅니다. 즉 고난을 거쳐 구원에 이르는 여정에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진정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카프카의 단편소설 ⟨법 앞에서⟩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극도의 아이러니와 악몽 같은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좀더 세심하게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감히 체스터턴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으며, 속으로 늘 갈망하던 것과 다른 것을 바라는 척 하면서 헛물켜는 세월을 보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체스터턴의 문학적 성취란 오히려 정통적인 가톨릭 교도의 옷을 입고서 카프카적인 것을 갈망했다는 데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체스터턴은 카프카가 아닌 체스터턴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체스터턴은 휘트먼처럼 존재한다는 자체가 너무 경이로워서 어떠한 불행을 겪더라도 범우주적 차원의 감사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체스터턴이 그렇게 믿었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체스터턴을 그렇게만 이해한다는 것은 그를 좁게 보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한 사람의 신념이란 일련의 정신적, 감정적 여정의 종착지일 따름이며 한 인간은 인생의 과정 전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또 다른 심문들 147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정경원 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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