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s Search For Meaning

D-29
그믐 가입 후 첫 싱글챌린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싱글챌린지는 자신이 직접 정한 책으로 29일간 완독에 도전하는 과정입니다. 그믐의 안내자인 제가 앞으로 29일 동안 10개의 질문을 던질게요. 책을 성실히 읽고 모든 질문에 답하면 싱글챌린지 성공이에요. 29일간의 독서 마라톤, 저 도우리가 페이스메이커로 같이 뛰면서 함께 합니다. 그믐의 모든 회원들도 완독을 응원할거에요. 계속 미뤄 두기만 했던 책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싱글챌린지! 자신만의 싱글챌린지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로 접속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gather/create/solo/template
싱글챌린지로 왜 이 책을 왜 선택했나요?
20여년전부터 지인들에게 전해 듣거나 온라인서점, SNS에 뜨는 인상적인 문구들을 저장하면서 관심을 가져왔던 책인데 정독 완독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몇달 전부터 김새섬님의 팟캐스트를 듣다가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정독 완독을 하고 싶어 싱글 챌린지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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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8-10) 저자는 서문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기록한 <제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체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이론적으로 다룬 <제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의 기존 내용 구성에 책의 이론적인 결론을 갱신하려고 1984년 개정판에는 <3부 비극 속에 서의 낙관>를 추가했다고 하면서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라는 3부 제목은 ’비극적인 과거로부터 얻은 교훈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이 샘솟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붙여진 것이라고 소개한다. (P. 16 )고든 W. 올포트 (Gordon W. Allport)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 추천의 글에서 저술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프랭클 박사는 크고 작은 고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의 대답 속에서 정신과 치료에 중요하게 적용될 수 있는 어떤 지침들을 발견하곤 했다면서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엮어 하나의 확고한 형태를 갖춘 의미와 책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프랭클 박사가 독창적으로 고안해 낸 ‘실존적 분석', 즉 로고테라피의 목표이자 과제이며… 프랭클 박사는 로고테라피를 창안하는 계기가 됐던 프랭클 박사의 체험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P. 17) 고든 W. 올포트 (Gordon W. Allport)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 추천의 글 중에서 바로 여기서 우리는 실존주의의 중심적인 주제와 만난다. 즉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으려면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삶에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없다. 각자가 스스로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만약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프랭클 박사는 다음과 같은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 (P. 18) 고든 W. 올포트 (Gordon W. Allport)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 추천의 글 중에서 평범한 삶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인간적인 목표들을 강제수용소에서는 철저히 박탈당한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지닌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 뿐이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중에 적어도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외형적인 운명을 초월하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 준 사람들도 있었다. <제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에서 정신의학과 의사였던 저자는 수용소 죄수로서 강제수용소에 수용되면서 단계적으로 겪게 되는 충격, 무감각, 혐오, 모멸감, 굶주림, 죽음에 대한 공포 등에 대한 체험을 객관적인 거리두기를 하면서 기술하고 있다. (P. 69)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P. 70)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고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천사들은 한없는 영광 속에서 영원한 묵상에 잠겨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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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71) 그때도 내 마음은 여전히 아내의 영상에 매달려 있었다. (•••) 내가 깨달은 것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 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 주오. 사랑은 죽음만큼이나 강한 것이라오“ (P. 72)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이렇게 내면세계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수감자들은 멀리 과거로 도피해 자기 존재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으로부터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과거 일들을 회상했다.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작은 해프닝이나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 향수 어린 추억이 그들을 성스럽게 만들었으며, 때로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도 했다. 그들의 세계와 그들의 존재가 현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영혼은 그리움을 향해 먼 과거로 달려갔다. 이렇게 내적인 삶이 심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전혀 느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때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끔찍한 상 황을 완전히 잊기도 했다. (P. 74) 곧 닥쳐 올 절망적인 죽음에 대해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이 사방을 뒤덮은 음울한 빛을 뚫고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절망적이고 의미없는 세계를 뛰어넘는 것을 느꼈다. ‘삶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가’라는나의 질문 에 어디선가 '그렇다'라고 하는 활기찬 대답을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수평선 저 멀리 그림처럼 서 있던 농가에 붙이 들 어왔다. 바바리아의 동트는 새벽, 초라한 잿빛을 뚫고 불이 켜진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나니. Et lux in tenebris lucet.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났다. (P. 76) 강제 수용소 안에서의 예술 일반적으로 말해서 수용소 안에서 행해지는 예술 행위는 어떤 종류의 예술 행위든 간에 어느 정도 기괴한 측면을 띠고 있었다. 수용소 사람들이 예술과 관련된 행위에 깊은 감동을 받는 것은 음울한 현실과 예술 사이에 놓여 있는 엄청난 간극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 (P. 77) 나는 지금도 아우슈비츠에서 맞은 두 번째 밤을 생생하게 기억 한다. 그날 내가 왜 깊은 잠에서 깨어났는지를. (•••) 바이올린이 흐느끼듯 토해내는 애끓는 탱고 선율이 조용한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 바이올린이 흐느끼는 소리에 나도 덩달아 흐느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다른편 막사 어딘가에 누워있는 아내의 24번째 생일을 맞는 날이었다. (P. 77) 강제 수용소에서의 유머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P. 78)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려는 시도는 우리 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P. 80)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행복 수용소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일종의 소극적인 행복(쇼펜하우어가 '시련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했던)이었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상대적인 행복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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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 군중 속으로 (P.86 ~ P. 87)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 지닌 가치가 더 이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세계, 인간의 의지를 박탈하고, 그를 단지 처형(처음에 그를 이용할 대로 이용해 먹다가 육체의 마지막 한 점까지 이용하도록 계획된) 대상으로 전락시킨 세계, 이런 세계에서 개인의 자아는 끝내 그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 존재가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이나 의지가 없는 양 떼처럼 무리 지어 - 때로는 함께 몰려다니다가 때로는 서로 떨어져 - 다니게 된다. (…) 양떼인 우리들은 오로지 두 가지 생각만 한다. 어떻게 하면 저 무서운 개들을 피할까, 어떻게 하면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우리는 글자 그대로 군중 속에 자기 자신을 파묻으려고 애를 썼다. 이런 일은 대오를 형성할 때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 났다. (…) 가장 절박한 자기 보존의 법칙에 따라 의식적으로(도…) 우리는 나치 대원들의 눈에 뜨이지 않으려고 항상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나 혼자만의 공간 ((P. 88) 모든 일이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끄는 강요된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혼자 있게 되기를, 혼자서 사색에 잠길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들은 자기만의 개인적인 공간, 혼자 있는 고독을 열망했다. 소위 말하는 '요양소로 옮긴 후, 나는 한 번에 5분 정도 혼자 고독을 즐기는 흔치 않은 행운을 누리게 됐다. (…) 시신 여섯 구를 보관하려고 기둥 몇 개와 나뭇가지를 엮어서 세운 임시 천막에 배수관으로 통하는 구멍의 나무 뚜껑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곤 했다. 그냥 앉아서 꽃이 만발한 초록빛 산등성이를 바라보거나 철조망의 마름모꼴 그물눈 안에 들어가 있는 먼 바바리아의 푸른 언덕을 바라보았다. 나는 간절하게 꿈을 꾸었다. 그러면 내 마음은 북쪽에서 북서쪽, 나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구름뿐이었다. 옆에 있는 시체, 이가 득실거리는 그 시체도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번호로만 취급되는 사람들 (pp. 90~91) 수용소에서 사람 목숨이 얼마나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 중요한 것은 번호뿐이다. 오로지 죄수 번호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그 사람이 의미 있는 것이다. (…) 그 '번호'의 생명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그 번호 이면에 있는 것, 즉 그의 삶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 된다. 그의 운명과 그가 살아온 내력 그리고 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 수용소에 살아남은 사람들, 여전히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데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야만 했다. 그들은 절대로 감상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 이 전적으로 감시병들의 기분 - 운명의 노리개라고나 할까? -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그들 자신을 환경이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으로 만들었다. 운명의 장난 (P. 91) 아우슈비츠에 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위한 하나의 규칙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자 내 동료들도 모두 이 규칙에 따랐다. 나는 대체로 모든 종류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는 편 이다. 하지만 딱 꼬집어서 질문을 받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테헤란에서의 죽음'이라는 이야기 (P. 95) 돈 많고 권력 있는 페르시아 사람이 어느 날 하인과 함께 자기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방금 죽음의 신을 보았다고 했다. 죽음의 신이 자기를 데려가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하인은 주인에게 가장 빨리 달리는 말을 빌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 말을 타고 오늘 밤 안으로 갈 수 있는 테헤란으로 도망을 치겠다는 것이었다. 주인은 승낙했다. 하인이 허겁지겁 말을 타고 떠났다. 주인이 발길을 돌려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죽음의 신과 마주치게 됐다. 그러자 주인이 죽음의 신에게 물었다. "왜 그대는 내 하인을 겁주고 위협했는가?" 그러자 죽음의 신이 대답했다.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밤 그를 테헤란에서 만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그가 아직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을 뿐이죠.“ 운명을 가르는 결정 (P. 96)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일과 어떤 일이든지 앞장서서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것은 운명이 자기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운명에 영향을 주는 일을 피했고, 대신 운명이 자기에게 정해진 길을 가도록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심각한 무감각 현상이 팽배해 있었다. 무감각은 수감자들의 감정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확실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것은 생사를 가르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때도 운명이 자기 대신 결정해 주기를 원했다. 이렇게 어떤 일의 실행을 회피하는 태도는 수감자가 수용소에서 탈출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 몇 분 동안 - 이런 문제는 항상 몇 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 그는 지옥의 고문과 같은 고통을 경험한다. 탈출을 해야만 할까?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할까? (pp. 96~99) 저자 역시 운명을 가르는 결정을 해야 하는 고통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 전선이 수용소에 가까이 왔을 때 의사 출신 동료와 탈출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 마지막 순간 결연한 태도로 탈출시도를 번복한 이후(…) 탈출을 꿈꾸고 계획하던 내내-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는 내내 불편했던 감정이 사라졌고, (…) 그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내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pp. 91~103) 저자는 수용소에서 생존자로 풀려나기까지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체험했던 ‘테헤란에서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듯한 여러 에피소드들을 기술한다. -수용자들이 자기 자신을 구하고자 발버둥쳤지만, 결국 (운명의 장난처럼)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확인하는 데 그쳤을 뿐인 여러 (엇갈린 운명과도 같은) 에피소드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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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감각의 원인 (pp. 103~106) 수감자들의 무감각이 일종의 방어 기제였다는 것 외에 여기에는 또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굶주림과 수면 부족(이것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이 무감각 상태로 그들을 이끌었으며, 수감자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초조함이 이런 무감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 니코틴과 카페인 부족도 이런 무감각과 초조함의 원인이 됐다. 물질적인 요인 외에 정신적인 요인도 있었는데, 그것은 복합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열등의식에 시달렸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 '대단한 사람'이었거나 혹은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일반적인 수감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계층이 하락했다는 것을 느꼈다. (…)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에게서는 무감각 증세가 더욱 심하게 나 타났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지 않으면 전혀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 (pp. 107~108)강제 수용소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그런 환경에 직면한 인간에게는 자기 행동을 선택할 자유가 없단 말인가? 수용소 체험으로 나는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즉 무감각 증세를 극복하고 불안감을 제압한 경우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인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P. 109)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게 되는 것이다. 수용소에는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친해진 후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이 말을 자주 머릿속에 떠올렸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를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준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시련의 의미 (P. 110)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반면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를 제공한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나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 삶 (P.114)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글로 쓰거나 이야기할 때, 당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 한 저명한 연구 전문 심리학자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이런 삶을 ‘일시적인 삶provisional existence‘ 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 115)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 혹은 완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 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퇴행 현상을 볼 수 있다. (…) 실직한 광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그들이 아주 기이한 형태의 변형된 시간 감각 - 내면의 시간 -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 수감자 역시 기이한 '시간 감각'을 경험했다. 시시때때로 자행되는 폭력과 배고픔이 하루를 꽉 채우고 있는 수용소에서는 하루라는 작은 단위의 시간은 영원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보다 긴 단 위의 시간, 예를 들자면 일주일은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 (P. 117)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이것이 단지 예외적으로 어려운 외형적 상황일 뿐이며,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수용소의 어려운 상황을 자기 정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대신 스스로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경멸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과거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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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a의 해외에서 혼자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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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믐 라이브 채팅 : 12월 10일 (수) 저녁 7시, 저자 최구실 작가와 함께!
103살 차이를 극복하는 연상연하 로맨스🫧 『남의 타임슬립』같이 읽어요💓
비문학 모임 후기를 모았습니다
[독서모임 아름 비문학 모임 8기 1회] 2025년 9월, 크리스틴 로젠, <경험의 멸종> 모임 후기[독서모임 아름 비문학 모임 8기 2회] 2025년 10월, 김성우,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모임 후기[비문학 모임 8기 3회] 2025년 11월, 파코 칼보,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 모임 후기
중화문학도서관을 아시나요?
[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12월의 책 <엑스>, 도널드 웨스트레이, 오픈하우스[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11월의 책 <말뚝들>, 김홍, 한겨레출판[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9월의 책 <옐로페이스>, R.F.쿠앙, 문학사상 [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7월의 책 <혼모노>, 성해나, 창비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나의 인생책을 소개합니다
[인생책 5문5답] 47. 이자연 에디터[인생책 5문5답] 39. 레몬레몬[인생책 5문5답] 18. 윤성훈 클레이하우스 대표[인생책 5문5답] 44. Why I write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만나는 철학자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책걸상 함께 읽기] #52.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도서 증정] 순수이성비판 길잡이 <괘씸한 철학 번역>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증정]《너를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니체가 말했다》 저자&편집자와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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