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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9
수우모임지기의 말
수우
“ 얼핏 보기엔 남성 지배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부모일수록 불평등이나 성폭력을 당할 일이 적은 아들을 키움으로써 어느 정도 안도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틀렸다. 여성 혐오로 얼룩진 사회에서 딸을 키운다는 것은 결국 불의와 불평등에 맞서 싸우겠다고 마음 먹는다는 뜻이다. 선한 쪽에 선다는 말이다. ”
『나의 아들은 페미니스트로 자랄 것이다』 31, 오렐리아 블랑 지음, 허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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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
“ 도대체 성차별 없는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사회의 남자 만들기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도 이런 움직임에 대한 저항이 강하다. 일단 우리 자신과 싸워야 한다. 가끔은 사랑하는 가족과 싸워야 하기도 한다. 그걸 참고 버텨야 평등이 찾아온다는 것ㅇ르 보여주려면 우리가 싸워야 한다. ”
『나의 아들은 페미니스트로 자랄 것이다』 35-36, 오렐리아 블랑 지음, 허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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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
자녀에 관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소극적이었고, 교육에 관한 언급도 많지 않았다. 세컨드 웨이브 페미니즘 당시 여성들은 순수하게 여성 해방에만 집중했다. 그들이 모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여성과 관련한 경험만을 다루었다. 그리고 교육 문제의 대상은 늘 여자아이였다. 눈앞의 여러 가지 문제로 남자아이의 교육은 논쟁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수우
세컨드 웨이브 페미니스트 어머니들은 아들 양육 방식을 두고 양가감정과 죄책감을 느낀다. 지나치게 페미니스트적인 방식으로 양육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충분히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에서 키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갈등으로 세컨드 웨이브 페미니즘 활동가들은 아들 교육에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전 세대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과 맞서 싸우고 다음 세대 교육의 큰 틀을 세워가면서 배우자와 함께 혁신적인 교육 방안을 실전에 응용했다. 이들은 아들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모범을 보였다. 집안일 분담과 폭력 문제다. 세컨드 웨이브 페미니즘 호라동가들은 아들이 공격적인 사람으로 자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들에게 전쟁과 싸움에 관한 장난감을 사 주지 않았다.
수우
지난 30년간의 논쟁과 남녀평등을 위한 정치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선할 점이 많다. 우리는 남자의 사고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여성의 위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수우
오늘날 우리는 남녀 할 것 없이 '내일을 위해 어떤 남자를 키우고 싶은가?라고 빈번히 질문한다. 여성을 강간하지 않고 폄하하지도 않으며, 당연한 이야기지만 때리지 않는 남자로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동시에, 남녀 간 힘의 역학 관게를 최소한이라도 이해하는 소년, 그리고 자기 위치에서나마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소년으로 키우기를 소망한다.
수우
“ 크건 작건, 극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이건 슬픈 신파이건 간에 여성을 향한 폭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분명 성차별적인 농담이나 장난, 길거리 성희롱, 부부 사이 학대나 집단적인 여성 살해(여아 낙태)같은 문제는 그 심각한 정도가 다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는 모두 한 제도의 서로 다른 얼굴들이다. 가부장제. 바로 남성에게만 권력이 주어진 사회 집단의 유지 방식이다. 8,000년도 더 지난 옛 예술 작품에서부터 가부장제는 성차별적인 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 남ㅁ자들이 먹을 것을 제공하고, 남자에 비해 열등한 여자들은 대가로 다른 역할을 맡아야만 한다는 개념 말이다.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을 합법화하고 유지해 온 이 집단의식은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불평등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에서 1944년에야 허용된 여성 참정권 같은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이, 작가가 이 책을 쓰고 있던 2017년에도 여성 총리는 오로지 16명, 전 세계 지도자의 8.3%ㄹ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성은 정체 노동의 66%를, 식량 생산량의 50%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소득은 고작 10%, 소유 재산은 1%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한 결과로, 여성은 지구상 빈곤 인구의 대략 70%를 차지한다.
성차별은 분명 권력의 문제다. 남자라고 누구나 권력을 누리며 모두가 여성을 억압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남성이 아니라 사회 집단으로서의 남성이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피부색이나 성 정체성, 빈곤 정도, 장애 유무에 따라 사회 격차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와 반대로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성차별적인 생각이나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착한 편'과 '나쁜 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이 있을 뿐이다. 가부장제가 우리를 길들이고, 우리 행동 양식에 영향을 주고, 인간 관계를 지배한다. 개개인 모두가 자신이 속한 사회 계층에서, 스스로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 남성 지배 체제의 여성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남성 지배의 실재를 깨닫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남성 지배 사회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란 걸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남성 지배 사회란 사회적 세뇌의 결실이며 오랜 세월을 거쳐 완성된 제도지만 불변의 존재도 아니다. 이런 성차별적 시스템의 얽힌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 진정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성별에 상관없이 우리가 서로 동등한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평등하다는 것은 비슷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로 존재하건, 존재 여부가 미심쩍건 간에 남녀의 차이점을 불평등과 차별, 폭력의 근거로 삼는 것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평등을 갈망한다는 뜻이다. 법률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일상 터전에서 실질적인 평등을 원한다는 뜻이다. ...
내가 바라는 페미니즘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너그러운 페미니즘이다. 저마다의 처지를 이해하는 개성 있는 페미니즘이고 여성 개개인의 자주적 결정을 인정하는 줏대 있는 페미니즘이다. '여성 해방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어떻게 처신하라든가 어떤 옷을 입으라는 등의 조언을 하는 것은 당연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는 모든 이가 비난도 차별도 폭력도 가하는 일 없이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살기를 꿈꾸며, 그런 날이 오기를 갈망한다. ”
『나의 아들은 페미니스트로 자랄 것이다』 11-13, 오렐리아 블랑 지음, 허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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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
우리가 진정으로 평등한 관점에서 다음 세대를 교육하지 않는다면 성차별을 어떻게 끝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아들을 페미니스트 소년으로 키우고 싶다. 그렇다면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성차별에 반대하는 소년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그러나 지난 10년동안 우리는 여자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걱정해왔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그런 획기적인 발전을 겪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할까?
이 책은 바로 그 취재의 결실이다. 이 책은 일상에서 구체적인 도움이 되도록 주변을 돌아보게 해주고, 현명하게 나이 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페미니스트 교육법은 결코 남자아이들을 엄격한 기치 아래 훈련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남자아이들에게 그들만의 엉뚱함과 기발함을 발전시킬 기회를 주는 것이며, 진정한 자유를 키워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남녀 모두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지키고, 그 뒷일을 도모해 나갈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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