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낀점
내 핏줄에서 수천 개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듯한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시끄러울까? 정신없을까? 조화된 박자로 연주하는 듯한 소리는 감미로울까.
인간의 몸 속에 각각 자아를 가진 존재들이 문명을 만들어 살고있다는 내용에 조석 작가의 웹툰 「행성인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주인공이 몸 속 문명의 파괴를 시도했으나 결국 하나가 되며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인간의 몸이 지배받는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문명은 앞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게 될까?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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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질은 왜 세포들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을까
“난 우주, 슈퍼 모신이라고.” (p.43)
처음엔 두려워했지만, 이와 같이 표현한 거 보면 본인이 만든 존재에 대해 모성애와 같은 감정을 느낀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이 더 나은 존재로 보이고 있음을 느끼며 그런 우월함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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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정말로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지
주인공은 버질을 죽이며 제노사이드, 즉, 문명에 대한 파괴를 시도했으나 이미 세포들이 몸에 들어온 상태였다. 결론적으론, 제노사이드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할수 있을 것 같다.
[도서 증정] <탄젠트>(그렉 베어) 편집자,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
D-29

지구의서재

막내마케터뇨니
하루하루, 우리의 개별성은 축소된다. 우리는 정녕 거대하고 서투른 공룡이다. 우리의 기억은 수십억에 달하는 그들에게 장악되었고, 개성은 변형된 혈액을 타고 널리 퍼졌다.
『탄젠트』 56-57, 그렉 베어 지음, 유소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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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마케터뇨니
<느낀 점>
곱씹을수록 단순한 SF가 아니라 거대한 사회소설처럼 느껴졌습니다. 인간이 세포에 잠식되어 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사라지는 장면은 단순한 호러를 넘어 사회에 던지는 경고 같았어요. 개인이 사라지고 거대한 집단에 흡수되어 가는 모습에 대한 비유 같달까요. 읽으면서 온몸에 살갗이 예민해졌던 소설이었습니다.
<버질은 왜 세포들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을까요?>
: "날 잘 대해줄 거야. 난 예전의 버질 울람 이상의 존재니까. 나는 우주, 슈퍼 모신이라고." 이 문장에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직접 제작한 바이오칩으로 세포를 변형시킨 버질은 스스로를 연구원 그 이상의 존재로 인식합니다. 이 혁명의 가치를 누구보다 확신한 버질이 과연 세포를 포기할 수 있었을까요? 연구실을 되찾고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현실에서 '세포'는 그 간절함의 증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정말로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시나요?>
: 세포 군집들이 '수천 개의 문명, 수조 개의 지적 생명체, 은하계'의 의미를 가지는 만큼 '나'는 제노사이드를 저지른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나'에게도 그 세포가 침투된 상황에서 '블러드 뮤직'은 시작되었고, 결국 학살을 성공시키는 데는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막내마케터뇨니
안녕하세요 여러분! 막내 마케터 뇨니입니다🐣 첫 번째 단편 <블러드 뮤직> 재밌게 읽고 계시나요? 혼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혼란스러움이 컸는데, 독자님들의 다양한 감상을 읽으니까 버질의 심리와 책의 메시지를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특히, 버질이 세포에 대한 집착이 모성애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라는 해석에 "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1주차 미션이 끝나는 날인데요! 아직 문장 수집을 못한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인상 깊은 문장을 공유해 주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허블
11/12(수)~11/18(화) 02 <죽은 자의 길>, 03 <슈뢰딩거의 전염병>
🧡미션
(필수) 인상 깊은 문장을 발췌와 함께 느낀점을 적어주세요!
(선택) <죽은 자의 길> 주인공은 왜 트럭 짐칸의 사람들을 풀어주었을까요?
(선택) <슈뢰딩거의 전염병> 과연 어떤 것에 대한 믿음만으로 세계는 유의미하게 변할 수 있을까요?
<죽은 자의 길>
사후세계라는 개념은는 종교의 형태로 인류 문명과 언제나 함께해 왔습니다.
그렉 베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 개념을 통해 우리는 어디까지 타인을 포용할 수 있을지 도전합니다.
<슈뢰딩거의 전염병>
양자역학을 다루는 대표적인 고전 SF,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찾아서>의 저서 존 그리빈은 이 작품의 영감이 된 것으로 그렉 베어의 이 단편을 꼽았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감염된 상태일까요?
도중 참여도 가능한 <탄젠트> 읽기! 함께해 보아요!

borori
그 모든 고백 속에서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고, 죄의 사연 하나하나에 화답하는 메아리 가 느껴졌다.
『탄젠트』 죽은 자의 길 p.92, 그렉 베어 지음, 유소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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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ori
아아.. 대장이 하청을 주고 있을 줄이야.
‘죽은 자의 길’ 분류 과정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일일이 질문을 하고 사람들을 놓아주고 있다고 느꼈다. 아마 빌딩 꼭대기에서 만나 대화를 이어가며 점점 더 확신이 가득해졌으리라 생각됐다.
‘슈뢰딩거의 전염병’을 읽으며 믿음과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을 직접 실현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그 불확정성의 원리 측정 유무에 따른 강한 믿음으로 이어진 결정에 그럴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서서히 동화되어 놀라웠습니다. 읽고 있는 나는 어쩌지?! 인류를 위해?!! 깊이 몰입되어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역시 모두 미친 것 같단 생각이 가장 강력했다.

막내마케터뇨니
“ 인간의 영혼. 폐기물은 계속 쌓여. 들여놓고 보니 불량인 영혼들, 만성적으로 고용 불가한 영혼들. 조직의 큰 계획을 따라가지 않거나 엇나가고. 동료들과 손발이 안 맞고. 그런 부류 있잖나.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건가? 그냥 내보낼 수가 없지, 파괴 불가라는 건 농담이 아니라서. ”
『탄젠트』 99, 그렉 베어 지음, 유소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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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마케터뇨니
인간의 영혼을 폐기물로 규정하고, 죽은 자들을 ‘낮은 길’과 ‘높은 길’로 나누어 운송하는 세계의 질서를 보며 묘한 반발감을 느꼈다. 영혼이란 본래 존엄한 어떤 것이 아니라, ‘불량품’처럼 분류되고 처리되는 시스템이 너무나 폭력적이었고... 내가 영혼 운전사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그들의 아우성을 직접 듣고도 지옥행으로 보낼 수 있을까? 아 무렇지 않게, 죄책감 없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허블
일이기 때문에 신념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지만 실제로 꽤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주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직종이 그렇죠. 변호사나, 의사 같은, 인권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직업은 인간 개인의 인간성이 어떻든 간에 '직업이기 때문에' 그 개체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해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회를 어떻게든 굴러가게끔 하기 위해 우리는 직업이라는 역할을 서로에게 부여하며 질서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일지라도, 커다란 질서를 위해서라면 누군가의 희생을 눈감아버리는 선택적 용인에 대해 (그 희생이 심지어 변호사나, 의사나, 트럭운전수의 죄책감과 정신건강악화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어떻게 보면 트럭운전수일 수 있으니까요.

막내마케터뇨니
지옥은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탄젠트』 100, 그렉 베어 지음, 유소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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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마케터뇨니
이 문장에 멈칫했던 이유는, 결국 그 ‘길’은 초월적인 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체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주체 역시 인간이며, 그들의 무게를 견디는 것도 인간이라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영혼을 실어 낮은 길로 가는 그 짐칸에 나도 언제든 탈 수 있다는 생각. 억울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어떤 쪽으로 분류될까?’, ‘내가 걷는 길은 낮은 길인가, 높은 길인가?’ 하는 질문이 오래 남는다.

막내마케터뇨니
🐣<죽은 자의 길> 주인공은 왜 트럭 짐칸의 사람들을 풀어주었을까요?
단순한 연민이나 순간적인 반항보다는 ‘영혼 분류’라는 체계의 깊은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낮은 길로 배정된 사람들이 정말로 그 길을 가야만 하는 존재들인지, 아니면 누군가(예컨대 하느님의 오른팔) 권력의 기준에 의해 선별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 그 시스템이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모른 척할 수 없었고 결국 그는 짐칸을 푸는 행동으로 나아갔다.
🐣<슈뢰딩거의 전염병> 과연 어떤 것에 대한 믿음만으로 세계는 유의미하게 변할 수 있을까요?
‘믿음’에는 현실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역학에서 관찰과 믿음은 단순한 정신 작용이 아니라 상태를 ‘결정’해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마티가 결국 살해당한 뒤 그 흔적마저 완전히 사라지는 사건은 ‘믿음’이 하나의 현실을 밀어 올린 결과다. 그 전개가 갑작스럽고 기이하긴 했지만... 이 짧은 이야기가 ‘믿음’의 실체를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지구의서재
“ 인생에는 언제나 남자를 낮은 길로, 운전석이 아니라 짐칸 신세가 되도록 유혹하는 뭔가가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 약점이 있다. 무엇 때문에 신은 우리 각자에게 그 작은 결함을 내렸을까. 크리스털의 작은 흠집처럼, 그 흠을 세게 누르면 결정 전체가 산산조각 나고 마는 결함을. ”
『탄젠트』 「죽은 자의 길」, 그렉 베어 지음, 유소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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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서재
✍🏻느낀 점
인간은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다. 끝없이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신은 그 작은 결함을 우리에게 주지 않았을까. 신에겐 작은 결함이지만, 우리 스스로에겐 아주 큰 결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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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길> 주인공은 왜 트럭 짐칸의 사람들을 풀어주었을까요?
윗사람을 만나고, 이 지옥이 잘못 되었다고 느꼈을 것 같다. 잘 살고 있던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이 곳. 이 곳을 반대하고 없애자는 마음으로 풀어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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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전염병> 과연 어떤 것에 대한 믿음만으로 세계는 유의미하게 변할 수 있을까요?
있다. 가장 쉽고 가까운 예로는, 신앙을 예로 들을 수 있겠다. 아무것도 없고 절망 밖에 없는 삶이라 생각했을지라도 '신이 있다'고 믿는 순간 세상이 유의미하게 바뀐다. 그렇듯 슈뢰딩거의 전염병에서도 '이 전염병이 진짜 있다'고 믿는 순간 전염병은 있게 되는 것이다.
르누아르
우리 모두 약점이 있다. 무엇 때문에 신은 우리 각자에게 그 작은 결함을 내렸을까. 크리스털의 작은 흠집처럼, 그 흠을 세게 누르면 결정 전체가 산산조각 나고 마는 결함을.
『탄젠트』 죽은 자의 길 p.77, 그렉 베어 지음, 유소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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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느낀점.
소설 속에서 존은 운영주체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고, 낮은 길로 갈 영혼, 높은 길로 갈 영혼을 선별하는 일 또한 인간이 하는 일임을 알게됩니다. 그래서 선별과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죠. 이 소설에서 중요한 메세지 중 하나가 사람은 누구나 약점,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대장의 오른팔이라 하더라도..!).

허블
'완벽'이라는 개념은,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개념일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상상과 포장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완벽을 추구하지만, 반대로 공장에서 찍어낸 완벽한 그릇보다 장인이 손으로 만든 수제 그릇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이 아이러니 속에서 어떤 면을 바라보며 살아갈지, 우리의 약점이라 생각되는 부분이 과연 약점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문장을 꼽아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르누아르
🦋 <죽은 자의 길> 주인공은 왜 트럭 짐칸의 사람들을 풀어주었을까요?
낮은 길로 향하던 사람들 중에는 도서관 사서 등 낮은 길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낮은 길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길에서 벗어나 높은 길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이러한 행동은 인간에 의한 낮은 길과 높은 길로의 선별과정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행했던 선을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생각들었습니다.
🦋 <슈뢰딩거의 전염병> 과연 어떤 것에 대한 믿음만으로 세계는 유의미하게 변할 수 있을까
양자역학의 중첩상태와 믿음의 상관관계가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감염여부는 확률적으로 반반이고, 그 결과를 관측하는 것은 아프다는 믿음이 아닌 인류의 집단 사망으로 관측되는게 아닐지..? 그러한 경우 개개인의 믿음이 관측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허블
👁<슈뢰딩거의 전염병에 대한 담론>
어떤 믿음 하나가 인간사를 바꾼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우월한 인종이 존재한다는 믿음, 종교가 다른 사람들은 삿된 것이라는 믿음, 피부색이 달라서, 말이 어눌해서, 늙어서, 냄새가 나서, 몸을 떨어서,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는 갖은 이유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가 없을 거라는 믿음.
이 믿음으로 덮인 이 사회는 그 실체를 기어코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로 인해 덮인, 일종의 슈뢰딩거의 상자가 아닐까요?
그렉 베어는 SF작가중에서도 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증거로, 그렉 베어의 작품에는 인종차별, 독재, 정상성에 대한 집착 및 여성혐오에 대한 작가만의 시선이 녹아 있습니다.
우리의 내밀한 심리 안에서 잠들어 있는 '안전하고 싶기에 남을 배척하는' 본능을 건드리는 그의 작품을 읽으며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회의 곪은 부분을 드러내고 모두가 목도하게끔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단기적으로 다가올 '상식이 깨지는' 충격과 공포에 대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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