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혼자 읽기

D-29
고전과 바다에 대한 작품을 쓴 영국 작가이자 영국왕립문학협회 특별회원인 애덤 니컬슨의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21일 동안 혼자 읽는 1인 모임입니다. 내후년에 지중해를 여행할 계획이 있는데 그 전에 예습을 한다는 느낌으로 읽어보려 합니다. 488쪽짜리 책인데 틈틈이 밑줄 친 구절들 올리면서 가볼까 해요. 전자책으로 읽을 예정이라 페이지 표시는 따로 하지 않을게요.
[ 그러니 만약 당신이 호메로스의 시가 왜,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 시점에 생겨나게 되었으며, 그의 시가 지금 우리에게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그토록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 두 질문을 향한 대답은 한 가지, 호메로스는 유럽인들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를 말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흔히 접할 수 있는 대답은 아닐 수도 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모두 기원전 8세기 전후에 창작되었다는 게 지금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기는 ‘그리스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불리는 그리스의 초기 철기시대다. 이전 500여 년 동안은 전반적으로 그리스 문명이 작은 지역들로 흩어져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시기였고, 에게 해에는 버려진 섬들이 많았다. 한두 개의 섬이 그대로 살아남아 근동 지역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긴 했어도 그리스 초기에 지어진 멋진 궁전들은 모두 폐허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앞으로 설명하게 될 여러 원인 덕분에 기원전 8세기에는 전반적으로 빠르게 활기를 되찾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스와 인근 섬의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활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오로지 수입에만 의존해야 했던 주석으로 청동을 만드는 기술이 4세기 만에 처음으로 부활되었다. 식민지가 건설되고 무역과 조선造船 기술이 발달했으며 경기장, 화폐, 사원, 도시가 만들어졌다. 올림피아에서는 그리스 지역 전체가 참가하는 경기가 열렸으며(이는 기원전 776년에 시작되어 이후 하나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도자기에 사람 형상을 사방에서 보이도록 그려 넣는 기술과 글쓰기 기법이 발달했다. 또 최초로 성문화된 법전이 만들어졌고 시기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역사 기록이 시작되었으며, 도시국가를 만들기 위한 여러 실험들이 최초로 행해지고 있었다. 이처럼 기원전 8세기에 에게 해에서 새롭게 부활한 문명의 여러 모습들은 모두 전혀 예기치 않게 나타난 현상들이었다. ]
[ 그러나 나는 다르게 본다. 나의 호메로스는 1,000년은 더 거슬러 올라간 시기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의 힘과 시는 기원전 8세기 무렵 에게 문명이 싹튼 몇몇 도시국가의 변화된 환경에서 나온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훨씬 더 거대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기원전 2000년 전후의 수 세기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혼합되어 빚어진 하나의 결정체로서 초기 그리스 문명이 탄생되던 그 순간에 말이다. 두 세계 가운데 하나는 흑해의 북쪽과 서쪽 지역을 아우르는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절반쯤은 유목민적인 특성에서 나온 영웅주의 문화가 중심인 세계였고, 다른 하나는 지중해 동부에서 나타난 세련되고 중앙집권적이며 문헌을 사용해서 정보를 주고받는 도시와 왕궁이 중심인 세계였다. 그리스적인 것―결국에는 유럽적인 것이 된 특성―은 이 두 세계가 서로 만나 혼합되어 새롭게 만들어진 결과물인 것처럼, 호메로스 역시 이 두 문화가 조우한 흔적이다. 『일리아스』에서는 트로이에서 일어난 전쟁과 좌절과 궁극적으로는 화해를, 『오디세이아』에서는 유연성과 통합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호메로스에서는 두 세계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고통에 따른 절박한 느낌이 묻어나며, 언제까지나 변치 않을 것처럼 확고부동해 보였던 원칙들이 흔들리는 시대의 물음들에 직접 응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분명치 않아진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 국가와 영웅,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인생은 변함없이 무한한 가치를 지닌 그 무엇인가, 아니면 그저 찰나적이고 가망 없이 무가치한 것일 뿐인가? ]
[ 나는 호메로스의 시가 한 민족―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장차 그리스인이 될 민족―이 지중해 땅에 도래한 사건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신화라는 설명이 옳다고 생각한다. 호메로스의 시는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복잡하고 불안한 상태에 있었던 당시 그리스 정신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신화다. 그리스에서 싹튼 문명은 청동기시대의 북부 초원과도, 또 근동 지역의 전제적 관료주의와도 다른, 두 가지 특징이 융합된 모습이었다. 호메로스는 인간의 탄생설화나 자연세계의 창조설화가 아닌, 그리스인이 스스로를 규정한 사고방식, 그리스인을 그리스인답게 만든 정신적 틀의 탄생설화이며, 나는 그 정신적 틀을 지금의 유럽인들이 여러 면에서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호메로스가 묘사한 난관투성이인 세상 역시 지금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
[ 나는 서사시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던져주는 의의는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뜻에서 이 책을 썼다. 서사시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활동,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불러내는 행위가 아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것은 어차피 세 세대만 지나고 나면 모두 사라져버리고 만다. 우리도 그 경험이 부드러운 감정과 결부된 것이건 강렬한 충동과 결부된 것이건 간에 자신의 조부모와 관련된 거라면 조금은 기억하지만, 그 이전 세대가 경험한 정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 않는가? 또, 서사시는 무슨 역사 기록물도 아니다. 역사 기록이란 게 지금 우리로서는 거의 접근하기 힘든 과거의 한 순간에 발생한 일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말하는 거라면 말이다. 서사시는 단순히 기억을 전달하는 행위 이후에, 그리고 역사 기술 이전에 발명된 것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제3의 공간을 차지한다. 서사시는 ‘기억하기’라는 활동이 갖는 질적인 특성을 역사가 대상으로 삼는 시간의 범위에까지 확장시키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
[ 나는 열여섯 시간을 내리 잤다. 다음 날 저녁, 바다쇠오리 호는 아일랜드 선창가에 묶여 있었고, 나는 위대한 미국 시인이자 학자인 로버트 페이글스가 번역한 『오디세이아』를 손에 든 채로 선실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어렸을 때는 호메로스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그리스어 시간에 호메로스의 시가 나오긴 했지만 마치 그게 무슨 수학의 한 분야이기라도 한 것처럼 배웠기 때문이다. 선생이 초록 칠판에다 기호를 그려 놓으면 우리는 한 줄 한 줄, 마치 생선뼈를 발라내듯 그 뜻을 찾아냈다. 고대에 쓰이던 어휘들, 길고 짧은 음절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시구들, 따분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신들. 마치 점심시간에 누군가가 자세하게 설명하는 전날 꾼 꿈 이야기 같았다. 대체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거기에 무슨 인생이 들어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렇게 머나먼 곳의 이야기를 지금 우리의 인생, 우리 자신의 욕망과 근심이라는 당면한 현실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그리스어가 얼마나 어렵고 낯설었던지 그 언어가 내게는 그저 모호함이라는 하나의 감옥이나 다를 바 없었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나는 기쁜 마음으로 호메로스와 작별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내내 호메로스는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존재였다. ]
[ 그런데 이제 내 앞에 페이글스가 옮겨놓은 글이 있었다. 딱히 무슨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내가 북대서양을 항해할 때 혹시 읽어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그의 『오디세이아』 번역본을 배로 가지고 왔던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인생의 중반기에 들어선 남자인 내게 불현듯 이 시가 그때, 그곳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는 그 목소리를 듣는 이의 마음속 지리를 묘사했고, 구석구석 거대한 은유로 점철되어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지중해가 아니라 한 인간이 삶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욕망을 항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들은 저 멀리 있는 창조자가 아니고 우리 안에 있는 요소들이었다. 분별력의 결핍으로 인한 무자비함, 변덕스럽고 일시적인 흥미, 무심함, 시시때때로 튀어나오는 이기심, 기만, 땅이 뒤흔들릴 정도로 쿵쿵거리며 걷는 것, 이 모든 것들이. ]
[ 그날 저녁에 이어 아일랜드 서쪽 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내내 나는 계속 페이글스의 호메로스를 읽었다. 갈수록 호메로스가 인생의 안내서로, 심지어 일종의 경전으로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바다는 당신을 집어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있다. 어느 지점에선가, 그간 탁월한 책략으로 오디세우스의 삶에 관여해온 헤르메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광대한 저 바다를 가로질러 가려 할 자 누가 있으리? 도시도 하나 없는 곳이거늘.”11 그러나 그 안에는 각양각색의 매혹적인 섬들이 있고, 그 속에는 꿈도 꾸지 못할 쾌락이, 사랑스런 여자들과 탐스러운 과일이, 애써 일할 필요가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땅이, 낙원 같은 곳들이 널려 있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연히 그곳에 당도한 인간인 오디세우스를 유혹하고 위협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하나같이 나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신 칼립소가 7년 동안 밤마다 그와 잠자리를 함께하고, 키르케는 1년 내내 그에게 맛있는 저녁을 먹여준다. 마침내 그의 선원 중 하나가 그에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물어올 때까지. 선원은 오디세우스가 줄곧 그러고만 있다면 그들 중 아무도 고향 집을 두 번 다시 못 보게 될 거라고, 그게 그가 원하는 바냐고 묻는다. ]
[ 어떤 면에서 나는 『오디세이아』를 자신의 죽음을 관통해서 항해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읽었다. 죽음 같은 바다, 죽음 같은 섬들을 떠돌던 그가 시의 한가운데에 이르러서는 죽은 자들의 세상인 하데스까지 가게 되고, 그를 사랑하는 고향의 가족들은 그가 죽었다고, 머나먼 어느 해변에서 하얀 뼈 무더기가 되어 썩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들이 귀에 들리자, 그는 도무지 참지 못하고 자기가 입고 있던 “바다 빛” 망토에 머리를 파묻은 채 자신이 잃어버리고 만 모든 것들을 생각하며 운다. ]
[ 그 여름에 헤브리디스 제도, 오크니, 페로스 제도를 향해 북쪽으로 항해하면서 내가 사랑에 빠지고 만 사람은 바로 오디세우스였다. 복잡한 면모를 지녔으며 변덕스럽고 술수가 뛰어난 인간, 페이글스의 표현에 따르면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인간”이다. 이 말은 그리스어 단어 ‘폴리트로포스polytropos’를 번역한 말로 ‘궤도를 이탈하는 사람’ ‘끝없이 고통을 겪는 사람’ ‘망망대해에서 비탄에 빠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오디세우스의 인생 자체가 뒤틀린 인생이고, 어쩌면 그게 그의 운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결코 단호한 의지라는 지고의 평온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의 여정에서 나타나는 섬들은 전부 그 자신의 실패를 상징한다. 고향 이타카는 마침내 그런 실패들이 극복될, 갈망에 찬 순간이리라. 그럼에도 오디세우스라는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그가 느끼고 겪는 이런 혼란 때문일 것이다. ]
[ 오디세우스는 단순한 희생양이 아니다. 그는 고통을 겪을지언정 절대 무릎 꿇지 않는다. 유연성과 끝없는 활력이야말로 그의 미덕인 것이다. 뭔가가 누르면 구부러지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며, 바로 그 절반쯤은 내어주는 힘이 내게는 한 인간의 아름다운 모델로 다가왔다. 그는 항해, 용의주도함,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 바위 피하기, 이야기 들려주기, 속임수, 살아남기의 명수다. 필요에 따라 단호하고 매섭고 파괴적인 사람이 될 줄도 알고, 영리하고 재미있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될 줄도 안다. 이 두 가지 특성들 가운데 꼭 하나만을 골라야 할 필요는 없다. 오디세우스는 이 모든 것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 셰익스피어와 성경처럼 우리 모두는 이 이야기를 미리 다 알고 있다. 그런데 특별히 한 가지가 그 여름 바다쇠오리 호에 올라탄 나를 후려쳤다. 우리는 전날 밤 늦게 애론 제도(아일랜드 서쪽 해안 갤웨이 만 입구에 위치한 세 개의 섬 _옮긴이)를 떠나왔고, 밤새도록 조지가 컴컴한 갤웨이 만 북쪽 해안을 따라 배를 몰았다. 새벽녘에 교대했던 이른 아침, 내 손에는 차가 담긴 컵이 들려 있었고 아일랜드 본토 위로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
[ 세이렌이 오디세우스를 향해 노래하자, 이제 오디세우스는 그 아름다움과 위안을 갈망하기 시작한다. 페이글스에 따르면, 그의 심장이 그걸 느끼고 싶어서 “두근두근 고동치고” 오디세우스는 눈짓으로 선원들에게 자신을 풀어달라고 애걸한다. 하지만 선원들은 그의 뜻대로 해주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애원한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선원들은 오디세우스가 묶인 밧줄을 더 단단히 죄고, 노를 저어 그곳을 빠져나온다. 호메로스가 이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시킨 이야기도 없다. 오디세우스의 “날랜” 배처럼, 장면 전체는 40행 만에 휙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처럼 간단하게 묘사된 이야기가 이토록 널리 파문을 일으키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세이렌의 노래가 부드럽게 유혹하는 듯한 곡조 같은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세이렌이 노래한 것은 바로 『일리아스』였다. ]
[ 이 사람들이 견뎌내야만 했던 그 모든 고통을. 트로이의 드넓은 평원에서 신의 뜻에 따라 풍요로운 대지에서 벌어진 그 모든 일들을, 우리는 전부 다 알고 있어요.   세이렌은 찬란했던 과거를 노래한다. 그런데 그게 바로 무덤이다. 세이렌은 오디세우스의 과거 모습을 그린 영웅담으로 그를 유혹하려 한다. 여러 해 동안 온갖 시련을 겪고 떠돌다가 ‘숨겨진 것’을 뜻하는 칼립소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망각의 여신의 팔에 안겨 여정을 중단하고 있던 오디세우스는 다시 활기찬 세상, 그가 트로이에서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단순하고 명징한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애타는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 점에서 세이렌의 전략은 정확히 적중했다. 그들은 오디세우스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갈망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명백한 영웅이 되고 싶다는 희망에 불 지펴진 그는 자신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이 시는 물론, 선원들도 바보가 아니다. 선원들은 오디세우스를 배에다 더 단단히 묶어둔다. 그들은 향수의 환영, 영웅적인 삶이 가능했던 옛날 세계에 대한 동경에 걸려 난파하지 않을 것이다. 『오디세이아』라는 작품이 인식하고 있듯이, 세상에서 잘 살아나가려면 향수에 저항해야만 하니까. 우리가 이미 올라타고 있는 배에 머물러야 하고, 현재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하며,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멈추지 않고 계속 돛대를 적절히 조종해야 하며, 돛이 제대로 바람을 타고 갈 수 있도록 그게 얼마나 부풀었는지,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는지, 돛의 아랫부분을 지지하는 봉재가 제 위치에서 이탈해버리지는 않는지 매 순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현재 삶의 혼돈과 속임수와 어려움에 열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빛나는 과거에서 찾을 수 있는 달콤한 단순함에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그날, 호메로스와 세이렌과 로버트 페이글스가 한 목소리로 내게 해준 말이었다. ]
[ 여러 종류의 번역본으로 읽어볼수록, 그리고 그리스어 사전을 찾아가며 번역본의 조각들을 서로 끼워 맞춰 이해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내게는 호메로스가 점점 더 인생 안내서처럼 느껴졌다. 실수투성이에다 제멋대로이고 허영덩어리인 인간의 실체를 아는, 그러면서도 고결하고 진실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자각의 한 형태가 여기에 있었다. 『일리아스』에 쓴 포프의 서문이나 호메로스 번역에 대한 매슈 아널드의 유명한 강의문을 읽기 전에 나는 호메로스의 시가 불타오르는 인간 정신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순식간에 활활 타올라서 밤새 덜그럭거리며 돌아가는 엔진 바퀴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듯 작은 깨달음의 불티가 끊임없이 튕겨 나오는 영혼의 불덩어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호메로스의 시는 빠르고 방대하고 폭력적이며 위험투성이다. 그러나 그 모든 불꽃 속에는 언제나 따듯한 인간미가 들어 있다. ]
[ 무슨 형이상학적인 수준에서가 아니라 호메로스가 구체적으로 사용하는 시어들 때문에 그렇다는 것인데,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추수할 수 없는 바다” 같은 시구가 아름다운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 표현은, 호메로스에서 운율에 맞추어 여러 차례 등장하는 완벽하며 정형화된 또 다른 시구인 “추수하는 대지”라는 말과 대칭으로 한 쌍을 이룬다. 그런데 그 표현이 왜 아름답다는 걸까? 그 이유는 그 표현이 해변에 서서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저 앞에 놓인 소금사막의 무자비한 척박함을 상상하는 감성을 잘 압축하여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 바깥에 있는 모든 것들이 거꾸로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을 응시한다. 그 문구는, 당신이 그 적의를 내다보고 서 있는 동안 당신 등 뒤에는 육지가 주는 모든 풍요가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표현인 것이다. 올리브, 포도, 안전한 집, 방금 베어낸 건초 냄새, 추수한 밀과 보리로 꽉 찬 창고, 타작해놓은 곡물, 그 곡물들을 꽉꽉 채워 담은 자루들이 그득한 곡물창고, 곡물가루, 아침으로 먹는 빵이나 꿀 혹은 기름처럼 육지에서 거둬들인 그 모든 것들이. ‘추수할 수 없는 바다’―그리스어로는 ‘폰토스 아트리게토스pontos atrygetos’라는 두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바로 지상에서의 삶의 조건을 응축해놓은 지혜의 표현이다. 그 말은 그저 명백한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고통스러움과 동시에 계시적이기도 한 현실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식을 제시해주고 있기도 하다. 사실, 호메로스의 모든 것은 그 문구 하나에 다 들어 있다. 그 표현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두 서사시에 여러 차례, 종종 가슴 저미게 등장한다. ]
[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이란 뜻을 지닌 이름인 텔레마코스는 이 아래에서 나이 든 여인 에우리클레이아Eurycleia를 만난다. 그녀는 텔레마코스가 어렸을 때 그를 먹이고 양육하는 유모였다. 이제 텔레마코스는 남자가 되었고, 에우리클레이아는 이 모든 지상의 소중한 과실들을 돌보고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텔레마코스는 에우리클레이아에게 작은 여행 항아리들에는 최상의 포도주를, 가죽 자루들에는 보릿가루를 담아달라고 부탁한다. 육지의 좋은 것들을 바다로 가지고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우리클레이아―뭐든 돌보는 일에 능숙한 유모의 이 이름에는 ‘명성이 자자하다’라는 뜻이 있다―는 아버지가 죽으러 간 곳으로 텔레마코스가 가는 게 두렵다. 텔레마코스가 그녀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슬픔에 겨워 통곡을 하다가 갑자기 그를 향해 마치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생각인 양 거침없이 말을 쏟아낸다. ]
[ 아, 도련님, 어쩌자고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 품게 되었나이까? 오디세우스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의 외아들이신 도련님께서 대체 넓디넓은 이 세상 어디로 떠돌겠다는 거예요? 오디세우스는 죽었어요. 저 머나먼 낯선 땅에서 죽었어요. 안 돼요, 이곳에, 도련님이 다스려야 할 이 땅에 남아 있어요. 무엇 때문에 사서 고통을 겪으며 저 ‘추수할 수 없는 바다’를 떠돌려 한단 말인가요? ]
[ 이보다 더 명백한 것은 없다. 추수할 수 없는 바다는 가서는 안 되는 곳, 죽음의 영역이다. 오디세우스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을 때(그 귀향에는 에우리클레이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호메로스는 바다를 한 단어와 동격으로 부른다. 바로 ‘악惡’이다. 여기서 그녀가 방랑을 표현할 때 쓰는 표현도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예컨대 ‘알라오마이alaomai’에는 뱃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걸인이나 객사한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
[ 그리스인들에게는 신체가 모든 관심사다. 젊은 전사는 아킬레우스의 무릎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기도하고, 그러다 곧바로 칼이 간을 쑥 찌르고 들어오고, 몸의 갈라진 틈새로 간이 흘러나오며, 검은 피가 전사의 허벅지를 흥건히 적시고, “죽음의 어둠이 그의 두 눈을 덮는다.” 몸이 처한 현실을 매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호메로스의 벌거벗음이야말로 그의 힘인 것이다. ]
[ 문화적 편의상으로는 호메로스가 하나의 고전으로 말끔한 옷을 입고 있을지 몰라도, 사실 그것은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그는 타자성 그 자체로, 무람없고 남성적이고 장대하고 거칠고 거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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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증정/굿즈] 소설 《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을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그믐북클럽] 4. <유인원과의 산책> 읽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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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개정증보판원미동 사람들GO여행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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