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저도 28일 오프라인 책 이야기 모임이 너무 기대가 되네요!! 히히
[책 증정_삼프레스] 모두의 주거 여정 비추는 집 이야기 『스위트 홈』 저자와 함께 읽기
D-29

구경자
밍묭
사기치고 감방 좀 살면서 또 그렇게 장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더라고요 여기가.
『스위트 홈 -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주거 여정 이야기』 177, 오지은 지음
문장모음 보기

수북강녕
내집마련이 어려운 현실에서, 소소한? 위법을 통해 아파트를 마련하려 했던 가정의 공포를 그린 단편 영화가 문득 생각나 공유합니다
임필성 감독 연출, 전도연 배우 주연의 『보금자리』라는 작품입니다 20분 남짓 짧은 영상이에요 불 끄고 보시는 것 추천합니다 섬뜩함 주의입니다
https://naver.me/xOdq9sNx

SooHey
저 지난번에 불륜방(?;;)에서 @수북강녕 님이 추천해주신 이영애 나오는 영화 보고 이 영화가 리스트에 같이 떠 있어서 봤는데 섬뜩하다기보다 너무 슬펐습니다.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랄까..ㅜㅜ
밍묭
혹시 아직도 혼자 힘들어하는 피해자분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어요. 돈보다 그분 자신이 더 소중한 사람이라고. 제발 자책하지 말라고요.
『스위트 홈 -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주거 여정 이야기』 214, 오지은 지음
문장모음 보기
느티나무
내 돈으로 삼겹살이라는 걸 사 먹는 날에 처음으로 콜라를 시켰어요. 그 다음부턴 20대 내내 식당에서는 무조건 콜라를 시켰는데, 나름의 해방 의식이었단 거 같아요.
『스위트 홈 -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주거 여정 이야기』 p78, 오지은 지음
문장모음 보기
느티나무
“ 보증금이라는 돈은 저한텐 인생이었거든요. 그 돈은 연극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여태껏 버티고 견뎠던 제 인내의 합이니까요. 그 인생이 전세사기고 무너지는것 같아서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다른 피해자분도 아마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에요.이번 사태 후에도 전세사기가 방치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커지는 빚을 다음엔 누가 또 감당하게 될까요? ”
『스위트 홈 -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주거 여정 이야기』 p97, 오지은 지음
문장모음 보기
밍묭
집은 주인의 경험을 반영하는 공간 같아요.저는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그걸 잊지 않으려고 집에 펼쳐놓거든요. 그러니 집은 경험할 때마다 계속 변모하는 공간이기도 하죠.
『스위트 홈 -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주거 여정 이야기』 282, 오지은 지음
문장모음 보기
화제로 지정된 대화

구경자
영화 보금자리를 보고 왔는데... 마지막 엔딩크레딧 배경 음악이 홈 스위트 홈을 불안하고 불편한 음악으로 변형한 곡이더라고요. 저도 (디자이너도) 스위트 홈을 제작하면서 역시 같은 음악을 같은 느낌으로 이야기와 엮으려고 했는데. 한국사회에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이슈와 관련해서, 집과 관련해서 던지고 있는 다양한 측면의 이야기적 질문들이만들어지고 축적되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이렇게 계속 이야기가 축적되면 언젠가는 정말 좋은 쪽으로 세상이 나아가기는 할까 하는 질문도 들고요.. 아마도 그렇겠죠??? 당장이아니더라도요.
모임은 어느 새 3주차로 접어들고 있는데 여러 분들이 이 이야기와 연결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추천해주셔서 참 좋습니다. (사실 이미 책을 다 읽으신 분들도 있지 만! ㅋㅋ) 거의 완독에 가까워지는 3주차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나눠보면 어떨까 싶어 아래 질문을 드렸습니다!
1. 책을 읽으면서 든 주택임대차 계약, 혹은 주택임대차 정책과 관련되어 궁금한 것들이 생겼다면 남겨주세요.
2. 그밖에 책 기획부터 제작 완료까지, 책을 둘러싼 궁금증이 생기셨다면 뭐든 남겨주세요.

수북강녕
1. 주택임대차계약, 부동산 정책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제도나 정책 중에도 복잡하고 어려운 점이 없지 않겠지만, 실제로 삶 전반에 어마어마한 타격이나 손실을 입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부동산 문제는 자칫하면 평생 번 재산을 날릴 수도 있고, 거주 공간 없이 길에 나앉을 수도 있는 문제인데, 보통 사람이 알 수 없는 규정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금융 보험 상품도 복잡하지만 일대일 계약보다는 그래도 신뢰 가능한 기관과의 보편적인 상호 작용이 많고, 전재산을 넣는 위험은 부동산보다 덜하지 않나 싶어요
2. "등기부등본도 확인 안 했어?"라는 비난 섞인 책임 전가, "젊으니 다시 일어서라"는 무책임한 조언은 비단 전세사기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늦은 밤, 어두운 골목에서 폭행을 당했다 해서 그곳을 지나간 사람의 잘못이 아니고, 짧은 치마를 입었거나 술을 마셨다 해서 위법적인 범죄 행위를 당해도 되는 것이 아니죠 직장 상사나 시어머니가 극대노해 폭압적인 언행을 했다 하면 "니가 어쨌길래?"라는 반응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그건 결코, 다시는 이런 피해를 겪지 말라는 걱정으로 원인을 제거하려는 도움의 질문이 아니더라고요 원인은 내가 아니라 가해자 쪽에 있는데, (물론 조심하면 좋지만) 피해자, 약자 쪽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습성이 강한 것 같아요
3. 독특할 만큼 작은 판형, 인터뷰 요약 부분과 실제 인터뷰이의 독백 부분, 양쪽의 글씨체가 다르게 표현된 것이 좋았습니다 가독성을 더 높여 주었어요 책이 많으면 이사할 때 짐이 되곤 하는데요, 전월세로 자주 옮겨 다녀야 하는 경우 자켓 주머니에 넣은 채 이사할 수 있는 크기로 여겨졌습니다!

bookhunter
1 주택임대차계약이나 부동산 정책이 어렵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복잡하더라구요. 평생을 고생해서 모은 돈을 전세 보증금으로 쓴 건데 그걸 돌려받을 방법이 없다는게 너무 화가 나요. 세입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더 없을까 ? 전세말고 더 나은 방법은 없나 ? 읽는 내내 고민하게 되는 부분들이었습니다.
밍묭
완독했습니다! 전세로 살아본 경험이 없다 보니 잘 몰랐던 부분들이 많았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전세 사기의 민낯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알게 된 느낌이에요.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조차 전세 사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고, 그럼에도 뚜렷한 대책조차 없다는 점이 마음 아팠습니다. 하루빨리 전세 제도가 개선되어, 제목처럼 모두가 진짜 '스위트 홈'에 살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구경자
그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책 제목이 몇 번 수정되면서 '스위트 홈'으로 결정되었는데 이 책은 이 제목이 맞다는 생각이 밍묭님 피드백을 보면서 한 번 더 드네요. 히히

소또
“ 나를 쉬게 하는 기억들. 나의 집은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모든 시간 속에 있는 것 같다. 이야기가 끝 난 뒤 남은 두개의 빈 찻잔, 세마리의 오리가 사는 천변, 애 리조나의 별빛들, 화초에 돋아난 싹을 발견한 어느 아침.
그러고 보면 나는 자주 집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이렇게나 도처에 널린 집을 ”
『[큰글자도서] 우리의 여름에게』 르트루바유 증, p.110, 최지은 지음

[큰글자도서] 우리의 여름에게첫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로 단숨에 주목받는 젊은 시인으로 활약하며 독자에게 두루 사랑받아온 최지은이 첫번째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를 창비 에세이& 시리즈로 출간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생의 슬픔과 행복을 다정히 보듬는 특유의 필치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번 에세이에서 작가는 자신의 유년기를 내밀한 고백의 목소리로 풀어놓으며 감동을 선사한다.
책장 바로가기
문장모음 보기

소또
대른 책을 읽다가 문득 이 문장에서 스위트홈 생각이 나서 공유합니다.ㅎㅎ

구경자
책의 판형이 제작자와 소비자 사이에 그런 의미 전달로 되었다니 너무 좋네요. 디자인 전반에 대한 것은 디자이너 제안을 따라 의견을 주고받으며 작업했는데요. 특히 판형에 대한 디자이너의 생각이 굳건했고, 그 생각에 반하는 합리적인 주장과 근거는 딱히 찾을 수 없어 제안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책 판형에 대한 선입관'이라는 위험부담은 감수하면서 책을 받아들게 되는 사람들에겐 어떤 감정이 들까, 궁금했습니다!

bookhunter
1 후자입니다. 피해를 직접 입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2 저희 집도 가난한 시절이 있었어요 주택에 살았었는데 구조가 특이해서 화장실만 이층?으로 동떨어져 있고 계단도 높이가 높아서 어린나이에 화장실 가려면 높은 계단을 올라서 가야해서 힘들었어요 ㅋㅋㅋ 그러고 사정이 나아져서 아파트로 이사갔을때 집이 너무 좋아서 신났어요 이제보명 걍 평범한 집인데 말이죠
3 저는 집순이라 대체로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하고 취미활동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수북강녕
“ - 정창식(1982) "로프를 타는 순간이 편할 때도 있어요" -
"세입자라서 슬픈" 상황에 갑자기 닥친 건 임대인의 탓도,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임대차 3법' 발표 직후 상당수 임대인이 임차인의 계약 갱신을 거절했다. 본인이나 직계존비속이 실거주할 경우엔 임대인이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할 수 있다는 '법의 구멍'이 임차인을 대거 전세시장으로토해냈다. 매물이 귀해 하루가 달리 가격이 뛰는 전세시장에서 '두더지 게임'을 하듯 전셋집을 잡고 놓치고 찾고 놓치느라 "세입자는 집을 고를 수 없었다." 신중할수록 보증금 부담이 늘어나는 시장 상황에서 산달을 앞둔 부부가 완전히 안전하게 들어갈 집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이었다. 급등한 시세에 대출은 필수였다. 버팀목 대출을 끌어와 들어간 다가구 집에 HUG 전세보증보험까지 나오진 않았다. p.220-221
정부와 은행은 즉시 '일시 상환'이라는 칼을 무섭게 빼들었고, 위험에 빠진 4인 가족의 재정 상황은 더 궁지로 몰렸다. 집은 경매로 넘어가 급속도로 낙찰되더니 새 전세 임차인들 이삿날을 일괄 통보했다. p.222
회사 택시를 모시던 아버지도 개인택시를 하시면서부터는 부모님 벌이가 다 좋아지셨어요. 그런데 IMF가 터진 거죠.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수입이 거의 안 되셨는지 개인택시를 처분하고 버스 회사 직원으로 들어가셨어요. 결국 어머니도 분식집을 접으셨죠. 거의 10년 하신 가게인데, 음식점 같은 데로 일을 나가신 걸로 기억해요. 영화 「기생충」 속 반지하가 이사한 우리 반지하 집이랑 너무 똑같더라고요. 특히나 화장실 구조가요. 물도 잘 안 내려가거니와 벌레가 진짜 끝없이 나왔어요.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에 곱등이 같은 것들, 정말 질색이었죠. 비 많이 오면 발목까지 집에 물이 차고요. 근데 집이 어렵다고 위축되진 않았던 거 같아요. 좋은 부모님이었던 거죠. 심적으로도 힘드셨을 텐데... (중략) 반지하 집에서 군대를 갔는데 제대할 때 다행히 부모님이 집을 취득한 상태였어요. 형편이 확 핀 건 모르겠고, 지인들이 싼 매물을 알려줘서 앞뒤 안 보고 사셨을 거예요. 축대 위에 있어서 전망이 참 좋았어요. 작았고요. 옥탑방이 있어서 거긴 세를 받고, 우리 네 식구는 방 두 개짜리 1층에 살았거든요. 마당이라고 하긴 좀 뭐해도 집 앞에 두 평 정도 되는 공간에 수도 있어서 거기서 빨래할 수 있고, 감나무도 있었어요. 방을 혼자 써 본 게 3년 정도? 작은방을 형이랑 같이 쓰다가 형이 결혼했거든요. 잘 때마다 불 끄라고 시키는 사람 없고, 좋은 점미 많더라고요. 좋아하는 영화 밤새도록 보고. 진짜 많이 봤어요. p.226-227
어떤 사람은 말해요. 애초에 규모를 확 줄여서 훨씬 작은 전셋집으로 가야 하지 않았냐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이라는 건 참 쉽죠. 살림살이를 다 처분하는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래요. 식구는 더 늘었고요. (중략) 정작 근본 원인은 그대로 두고 괜한 피해자 탓하는 건 아무 소용없어요. 조건 맞는 집 찾는 건 잘못이 아니죠. 알릴 수만 있다면, 전국 8도 어디든 내 얼굴 내 목소리를 다 팔아서라도 다 알리고 싶었어요. 피해 초기만 해도 이렇다 할 정부 대책은 없고 우리만 절실하니까. p.240
한국은 부동산으로 부를 불리는 구조잖아요. (중략) 은행 같은 금융 기관은 손쉽게 짐을 덜고, 피해자 개인만 소리 없이 무너지던 문제니까. 허술한 제도에 기가 차요. 개선까지 갈 길이 먼데 당장 피해 회복에도 소극적으로 나오는 책임자들 보면... 피해자들이 그냥 제풀에 지쳐 보기하길 바라는 거잖아요. p.241 ”
『스위트 홈 -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주거 여정 이야기』 p.220-222/226-227/240-241, 오지은 지음
문장모음 보기

수북강녕
“ - 이재호(1991) "'신혼 닭꼬치'의 기쁨을 빼앗긴 집" -
하숙집, 월세방, 기숙사를 거치며 주거 생활비 절반 이상을 스스로 해낸 대학 생활은 일종의 독립 예행이었다. 고됐지만 자유로운 날들이었다. '식당 집 아들'이라는 정체성 아닌 정체성을 벗어난 시공간에서 펼쳐진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초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마다 남은 '소심함'의 기록은 깨졌고, 또래 친구는 물론 아르바이트로 대한 손님의 기억도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 진학 때 목표대로 대학 시절을 착실히 보낸 재호 씨는 예상대로 취업했고, 빠르게 생활비 빚을 청산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차곡차곡 모은 돈이 마중물로 쌓일 즈음 독립했다. 여자 친구와 함께 살 집이었다. (중략) 연말엔 본격적으로 결혼식장을 잡고 있을 줄 알았는데,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이웃집 전세사기 소식이 청천벽력처럼 전해지고, 임대인은 잠적 상태였다. 계약 때만 해도 부동산에서 추앙했던 그의 재력은 실상 텅 빈 껍데기였음이 점점 드러났다. p.248
"결혼을 앞둔 청년은 파혼을 겪었고, 임산부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유산했습니다. 피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분도, 암 투병 중에 병세가 악화된 피해자도 있습니다. 법의 판단이 부디 전세사기 범죄에 대한 경고로 남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요구합니다." p.251-252
"집주인이 망하면 이 동네가 아니라 수원이 다 망하는 거예요." 이렇게 진짜 말했어요. 수원에 가진 건물만 어마어마하게 많은 임대인이라면서. 다른 건물들에 비하면 근저당도 낮게 설정된 거라고 했고요. 중개인이 그렇다니까 안심했죠. p.266
스트레스가 심하면 어떻게 되는지 처음 알았네요. 얼마 전에 집에 실려 들어왔거든요. 저도 모르게 버스 정류장에서 잠이 들어서 부모님 쪽으로 연락이 갔대요. 한동안 정신 나갔던 거죠. (중략) 주변 사람들이 너무 걱정할까 봐 일단은 혼자서 이겨내려고요. (중략) 오늘 와이프는 사실 친구 결혼식 청첩장을 받으러 갔어요. 그래서 오늘 인터뷰한 건데, 마음이 좀 그래요. 우리도 결혼식 계획을 벌써 잡으려고 했다가 전세사기로 힘들어진 상황이다 보니까, 생각을 비우려고 해도 쉽지 않아요. 내년이나 내후년쯤엔 결혼할 수 있을까요? 애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어렵게 됐어요. 어느 틈에 계속 빚만 늘어났으니까요. p.268-269 ”
『스위트 홈 -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주거 여정 이야기』 p.251-252/266/268-269, 오지은 지음
문장모음 보기

수북강녕
“ - 하정(1977) "집은 새로운 경험으로 계속 변모하는, 공간 -
글쓰고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상도 제법 타던 재능으로 아버지 사회생활에도 힘을 보탠 딸이건만 칭찬이나 격려받은 기억은 없다. '성평등' '여성의 사회 진출' 같은 단어조차 낯선 시절 가정을 이룬 부모에게 '어차피 시집'으로 귀결될 세 번째 여자애의 재능이나 장래 희망에 관심 둘 여력은 없었다. 성차별이 문화인 시대, 귀한 막내 남동생과 기 센 두 언니 사이의 셋째 딸인 하정 씨는 집에서 다만 조용히 자랐다. 딸이라서, 셋째라서, 맘 높고 연필 한 자루 놓을 곳도 점유할 수 없는 집을 벗어난 건 그럼에도 곧잘 했던 공부 덕이다. 무슨 꿈이나 진로 고민이 아니라 대입 그 자체가 혹여 거절될까봐, 장학금을 주는 대학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학했다. p.273-274
집에서 아무것도 아닌 애로 자라서인지 늘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아무 맛도 없는 물이 어디로는 흘러갈 수 있는 것처럼요. p.290
캠프힐은 각국 자원봉사자들을 받는 장애인 공동체예요. 저는 아일랜드로 갔어요. 단체에서 구매한 교외의 집들이 지역에 여러 채 있고, 그 집에 원주민인 장애인이랑 임시 거주자인 자원봉사자들이 같이 살면서 일하면서 생활했어요. 공동체 자체가 집이면서 생산도 하는데, 작은 사회나 마찬가지거든요. 중요한 건 우리가 같이 사는 곳이 시설이 아니라 집이라는 거고, 저같은 봉사자 두 명과 원주민인 장애인이 같이 정말 집다운 집에서 살았어요. 목장, 농장, 빵집 등등에 배치돼서 서로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지켜보고 서로 돕고요. .(중략) 일터는 잘만 돌아가고, 집은 다들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잘해놓고 살아요. 가구는 다 원목에, 침구도 정말 폭신폭신했어요. 누가 거주하든 정서에 좋은 영향을 주도록 꼼꼼히 설계된 결과라고 하더라고요. 생활의 모든 요소가 원주민과 봉사자를 차별하지 않고요. 마을에서 채소를 직접 기르기도 하지만 작더라도 집마다 유리 온실에서 식물 돌보고, 동물도 같이 사는 게 거기선 당연한 일상이에요. '사는 환경이 좋아야 된다'는 게 단체가 중요시했던 가치였어요. 그래야 행복하고, 안정을 취할 수 있다고요. 저는 집을 돌보는 기본적인 일을 캠프힐에서 다 배웠어요. 제가 봉사자로 갔다가 오히려 사는 방법을 거저 얻어 온 거죠. p.293-295
보증보험은 부동산 중개인이 강력하게 권유해서, 사용할 일이 없길 바라면서 가입했어요. 근저당 9천만원 잡혔던 건 싹 정리하고 들어왔고요. 저도 대출해야 해서 근저당 또 설정하면 계약 해지한다는 특약까지 걸었으니까 임차인 입장에서 할 건 다 하고 계약한 거예요. 보증금은 매매가랑 같은 2억 6천이었는데 어차피 시세가 다 그랬고요. 계약하고 바로 확정일자 받고, 전입신고도 문제없이 했어요. (중략) 입주한 지 딱 2개월만에 새로 9천만원 근저당이 잡혔더라고요. 은행에서 전화로 알려주니까 알았지, 안 그랬으면 몰랐을 거예요. 누가 이사 2개월 만에 등기부 떼겠어요. 진짜 웃긴 일이죠. 집 주인이 집 담보로 대출하면 세입자도 위험해지는데, 이걸 알릴 의무가 없다는 게요. p.301
집이 죄책감 덩어리가 됐거든요. 나갈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고. 집에 있으면 집 구할 때 거친 단계 단계를 떠올리면서 내가 '안 한' 게 뭐였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책하고 계속 자책하는 거죠. '왜 제대로 안 알아봤지?' '명함 받고서 왜 전화를 안 해봤지?' '근저당 다시 잡은 거 알았을 때 바로 계약 파기를 했어야 하는데' 그게 진짜 지옥이에요. 따지고 보면 내가 잘못한 건 없는데, 우리 다 제도 안에서 움직였잖아요. 가해자가 정밀하게 나를 타겟팅해서 어렵게 성공시킨 사기도 아니고 그냥 대충 망쳐 놨는데 다들 재수없이 막 걸렸고요. 그 많은 사람이 어디에서 오는 돌인지도 알 수 없이 다 돌을 맞은 건, 그러기 너무 쉬운 구조니까요. 말을 거의 못 했죠. 정신 나가서요. p.305 ”
『스위트 홈 -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주거 여정 이야기』 p.273-274/290/293-295/301/305, 오지은 지음
문장모음 보기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