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이는 즉위 초에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대신들이 선조에게 잘못된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구신의 수구적 생각이 개혁이 지체되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오판이었다. 선조는 누구 말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프롤로그, p.30,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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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토토
“ 낭천제도는 선조 2년 이탁이 이조판서가 되어서 새롭게 실시한 인사추천제도였다. 선조 즉위 초 분위기는 마치 정치 혁신이 진행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구체제 청산이 국정 쇄신의 첫 번째 과제였다. 인사 제도는 핵심적인 개혁 대상이었다.
이후 박순이 이조 판서가 되어서는 "학행이 있는 선비는 곧장 6품으로 나가게 하는 의논을 정하였"다. 선조초년에 이탁과 박순이 주도하여 성립시킨 낭천제도는 조정에서 신진사림의 세력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이이는 자신의 《석담일기》에 이때 선조가 낭천을 폐지하도록 한 것에 대해 "임금의 뜻이 (신진)사류의 하는 바를 싫어했기 때문에 하교가 이러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실제로 한 달여 뒤 선조는 직접 인사 전형을 주관하면서 이조에 "과격한 사람을 쓰지 말고 순우한 사람을 힘써 취하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젊은 사류에 대한 선조의 부정적 입장 표명이었다. 사실 선조가 가장 싫어한 사람이 '강경하고 과격한 사람'이었다. 물론 자기 입장과 느낌이 기준이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1장47~49쪽, 이정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