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조목조목 따지는 이이가 정치판에 신물이 났구나 싶네요.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민생 문제 해결에는 뒷전이고 꼬투리만 잡는 세력들에게 두 손 두 발 들고 집으로 가고 싶었겠어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8.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D-29

부엌의토토

연해
“ 이이는 선조에게 대신을 포함한 국왕 주변 고위관리들에게 물어서 자신에게 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그들이 동의 하면 출사하겠다는 뜻이다. 이이의 요청은 삼사 언관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이의 요청은 삼사가 공론의 독점적 주체임을 공공연히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p.196,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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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정치세력의 구도가 전처럼 ‘부도덕한 훈척대신’ 대 ‘도덕적인 사림’으로 나뉘어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사림 자체의 구조가 진화하여 ‘사림 대신’ 대 ‘사림 언관’으로 분화되었다. (..)
강경파 동인은 ‘사림 대신’을 ‘부도덕한 훈척’으로 보려했고, 이이는 ‘사림 대신’과 ‘사림 언관’을 포함하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려고 했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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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 "자기 마음대로 권세를 부리고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것은 신하로서는 극죄의 명칭이다…. 을사년 간신 무리가 상대를 반역으로 지목하고서도 기껏 파직이나 물러나게 할 것을 주장했던 것처럼 고작 파직을 청한다는 말인가…. 대간에게 소중한 것은 공론을 담당하는 것 뿐이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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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이이를 탄핵하는 삼사에 대한 선조의 말을 읽으면서 왜 후련하죠.. ㅎㅎㅎ
오늘 읽기 부분에서... 선비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이에 대한 설명은 대단해 보이지만 좀 답답하기는 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유자로서 산다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명분이 다 있어야 하는 것이고 떳떳해야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사람은 보이질 않고 껕데기만 남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아서 거리감을 느껴서일까요

YG
“ “대간에게 소중한 것은 공론을 담당하는 것뿐이다. 자기의 사사로움을 달성하기 위하여 배척과 모함을 일삼는다면 그것이 어디 대간으로서 할 일인가, 경들이 만약 이이를 일러 나라를 그르친 소인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죄를 분명히 밝혀 그를 물리쳐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를 공격하는 자가 소인이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2부 4장, 202쪽,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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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aida 이 책을 읽으면 선조에 대한 통념이 깨지죠? 명민하고 상황 판단도 빠른 편이었던 듯해요. 자기 보신에도 능하고. 요즘이라면, 아랫사람이라면 일 잘한다고 윗사람한테 예쁨받으면서 대기업 같으면 임원까지 올라갈 스타일?

oh
스스로 잘났다여기고 남들을 못하다여겼다고 절친 성혼이 대놓고 말해놓은 부분 기억에 남네요. 이이에 대한 우호적 입장에서 똑똑하고 올곧지만 순진한 이이가 약은 꾀를 내야하는 정치판에서 당한거라 생각했는데 사람의 마음을 살 생각도 노력도 없었던게 패착인듯요. 따지고 보면 결국 그게 정치력이니 정치력 부족 맞고요.
류성룡이 이이의 뜻에 동조하면서도 이이와 함께하길 꺼렸던 것도납득되네요.
성혼과 이이가 다른 학문적 배경차이로 다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는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독립적 성향도 좋지만 건강한 권위를 경험하며 자라는게 참 중요하다는 입장이어서 부모로서 다시한번 다짐하게 되네요.
성혼은 이이의 단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는데 절친인 그의 말이 이이에게는 닿지 않았나보네요.
"재주가 트였기 때문에 경솔한 병통이 있어 치밀한 기풍이 부족하다, 견고하고 응집된 역량이 부족하여 남이 모함하는 선동하는 말에 동요되곤 했다."
후일도모를 위해 지금은 물러나는 정치력이 이이는 없었지만 YG님은 다른 선택을 하신듯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11월 13일 목요일(2026학년도 수능 시험 보는 날이네요! 수험생 가족이 있다면 행운이 따르시길!)에는 2부 4장 '선조 16년: 계미삼찬'으로 넘어갑니다. 오늘은 175쪽부터 203쪽까지 읽습니다.
이미 선조 때 여진(후금, 청나라)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다는 사실부터 시작해서, 선조가 북방 여진족의 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이를 중용하죠. 여진족의 침략과 국정 개혁을 동시에 수행하려는 이이의 노력이 동인의 견제로 좌절되고 결국 이이는 낙향하고 (동인에게) 역풍이 부는 과정을 서술한 장입니다. 흥미진진하게 읽히죠?

YG
“ 경원부 사태(여진족 침략)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이이는 전부터 여러 차례 선조에게 했었다. 그는 국정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병란을 맞이해서 나라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것임을 경고했었다. 당시 조정에서 이런 가능성을 언급하며 국정 개혁을 통한 구체적인 대비를 주장한 사람은 이이 말고는 확인되지 않는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2부 4장, 179쪽,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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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6진 방어에 자원하여 만 3년을 채우면 서얼은 과거 시험을 볼 수 있고, 공사 노비는 천인 신분을 벗고 양인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사노비가 양인이 되었을 경우에는 공노비로 대신 충당하여, 사노비 주인에게 손해가 가지 않도록 조처했다. 선조는 이이의 안을 즉시 허락했다. 하지만 사헌부, 사간원 양사가 반대하여 이 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2부 4장, 182쪽,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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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선조 16년 4월 14일에 이이는 2차로 상소를 올렸다. 여기서 그는 1차 상소를 기초로 폐정 즉, 고쳐야 할 나쁜 정치를 혁신하기 위해 조정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을 네 가지로 압축했다. 공안을 개정하고, 군적을 고치고, 너무 작은 주 현을 합치고, 감사를 구임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 그의 네 가지 요구는 서로 잘 맞물려 있는 구조였다. 그 중심에 백성의 공물 부담 경감이라는 목적이 있었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2부 4장, 183쪽,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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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조선 왕조는 건국 당시부터 공론을 중시했다. 성리학을 국가 운영 원리로 삼아 건국한 것이 그 이유이다. (…) 이 당시 공론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갈등 요소는 누가 공론의 주체인가 하는 문제였다.
조선 왕조를 통틀어 보면 공론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은 한결같지 않았다. 국초에는 국왕이나 조정 대신들이 공론의 주체로 인식되었다. 18세 기(영조와 정조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서 공론이 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시기의 중간 즉 16, 17세기에는 공론이 아래 있고, 삼사, 심지어 성균관에 공론이 있다고 생각했다. 16세기는 국초의 공론 주체에 관한 인식이 바뀌던 시기였다. 주목할 것은 이 시기 격렬하게 이어졌던 사화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식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2부 4장, 195~196쪽,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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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 당시(선조 8년 1575년) 이이는 홍문관 부제학이었다. 역시 그때도 그는, 논의는 일 자체의 옳고 그른 것으로 판단할 뿐, 간관이 한 말인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것이 그의 본래 입장이었다. 언관 자리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공론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주체일 수 없다는 말이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2부 4장, 197쪽,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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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연해 @oh 님 덕담 감사합니다. 살다 보면, 아래와 같은 상황에서 판단이 쉽지 않더군요. 제가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께서 천주교 신자였는데 저한테 졸업 선물로 이 문구를 적어서 책갈피로 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으로 아셨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우리가 함께 읽는 책의 머리말에도 등장했던 라인홀드 니버의 아래와 같은 기도문(1932~1934년경)이 와전된 것이더라고요. 두 분도 지혜가 함께 하기를!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하느님, 저희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aida
바꿀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
바꿔야 할 것을 바꿀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
제가 신자는 아니지만, 어제 이 기도문을 보고 수능 치고 나온 아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수험생들에게 꼭 필요한 얘기네요.. 그리고 살아가는데 항상 필요한... 공유 감사합니다.

borumis
저도 어제 아이가 수능을 보느라 오늘에서야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네요..^^;; 살다보면 정말 선천적인 질병, 체질, 적성, 기질, 주어진 환경 등 바뀔 수 없는 게 많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자세는 바뀔 수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아이는 느리기도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매우 다른 아이여서 여러 방황과 고민 끝에 고등학교 자퇴했어요. 실은 저희 부부는 공부가 쉬운 편이었고 공부를 많이 했지만 둘다 딱히 공부를 잘 해야한다는 생각을 안 했고 아이도 공부에 대한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 굳이 대학에 가야하지 않다, 어떤 것이든 네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너 자신에 대한 믿음을 얻으면 좋겠다고 말해줬어요. 그런데 본인이 고민을 스스로 많이 하다가 스스로 검정고시를 본인이 보고 올해 좀 뒤늦게 수능을 보겠다고 다짐하고 여러 가지로 수시도 정시도 알아보며 스스로 지원 방법과 서류도 준비하고 공부법도 알아보며 수능 4일 전에 수학 범위 배우는 것을 마쳤답니다 ㅎㄷㄷ 아무도 안 도와주고 강요 안해도 스스로 선택한 길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적극적으로 배우고 집중하더라구요. 남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범위를 다 나간다지만..ㅎㅎㅎ 이렇게 뒤늦게 속성으로 공부한 것치고는 꽤 잘 보았지만 여전히 좀 아쉬운 점도 있고 자신이 스스로 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어 어제 재수하겠다고 했어요. 전 무엇보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만족했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멘탈이 탑재된 것 같아서 아이가 한층 더 성장한 것에 감사함을 느꼈어요.
저도 신자는 아니지만 라인홀트 니버의 이 스토익한 serenity prayer가 제 자신도 그리고 아이에게도 이 말을 여러번 다짐하곤 해요. 아이와 함께 본 애니메이션 '너의 색(kimi no iro)'에서도 이 serenity prayer가 나오고 영화 주제와 일맥상통하는데요. 링크의 1:11에서 나오지만 Heavenly father, I ask that you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that I cannot change... 이 영화 속의 아이들도 제 자신도 저희 아이들도 변할 수 없는 것과 변할 수 있는 것을 분별할 지혜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평화가 함께 하길 바랍니다. 저도 처음에 이게 성 프란치스코인 줄 알았다가 재활 프로그램에서 많이 사용되는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이라는 걸 알게 되고 이 책 프롤로그에서도 나온 니버의 책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을 읽게 되었어요. ^^;;
내 자신도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내 자신의 아이도 그렇지만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어찌 하겠습니까.. 지금으로써 최선을 다한 내 자신의 한계를 수용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고 이에 따라 물러설지 나아갈지 두쪽 다 용기를 필요로 하겠죠.
https://youtu.be/jjfRNOVeuO8?si=r8T1tJoCr5z5_Ohq

stella15
@aida 두 분 올해 수험생 부모셨군요. 수험생 본인도 힘들겠지만 지켜보는 부모님도 힘든건 마찬가지겠지요? 수고많으셨네요.
그렇지 않아도 저는 이번 주 <인간 극장>의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란 편을 봤습니다. 아이들 넷을 키우는 집인데 막내만 빼놓고 다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이었어요. 그집 내외도 아이 키우면서 왜 갈등이 없겠어요? 근데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하고 싶어하는 일은 적극 밀어주며 살더군요. 아이들도 남과 다른 길을 가기 때문에 그만큼 장래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을 많이 하더라구요.
어찌보면 우리나라는 교육 과잉의 시대를 살아 아이가 뭘 스스로 찾아가기 보다 부모가 먼저 좋다는 건 해 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나라죠. 이렇게 잘 살게되었는데도 청소년 자살률 1위는 탈출하지 못하고 있으니. 사실 공부 보단 사회 분위기가 더 문제인 것 같기도하고.
언젠가 배우 정우성이 자신이 고등학교를 자퇴했을 때 어머니가 아무 말씀도 안하셨다고 담담히 말하는데 웬지 제가 다 울컥했습니다. 저도 학교 때 학교에 불만이 많아 공부하곤 담쌓고 살았거든요. 그때 전 부모님의 마음은 헤아려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헤아렸어도 여전히 그렇게 살았을 것 같습니다. 공부는 누굴위해 하는 거 아니니까. 그래도 어찌어찌 아슬하게 마쳤습니다.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졸업 전날 학교에서 가지고 온 학사복과 학사모 보고 흐뭇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보셨던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ㅠㅠ
아, 너무 길어졌네요. 미안합니다.

borumis
맞아요. 실은 전 오히려 아이가 초등학생 이전에는 이것저것 다 시켜보고 다 해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정작 중학생 때는 코로나 때문에 직장에서 정신없었고 고등학교 때는 제가 뇌출혈로 쓰러지고나서 치료받느라 완전히 아이를 거의 방치했거든요. 그랬더니 아이가 생활도 공부도 스스로 어떻게든 부딪혀 보겠다는 자립심이 늘면서 더 신중해지기도 하면서 자신감도 늘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그만뒀을 때도 그리고 다시 뒤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 때도 응원하고 지지해줬지만 실은 제가 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럴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제게 없었구요. 전 아들이 무슨 서류를 제출했는지 어딜 알아보고 있는지 어떤 공부를 선택하는지 일절 손 놓고 본인이 결정하고 하게 해서 실은 어제 수능 도시락 싼 것 외에는 거의 해준 게 없어서 수험생 부모가 이렇게 편해도 되나;;했거든요. 그런데 그러고보니 아이도 시험이 끝나고 돌아오면서 결과가 어쨌든 간에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 정말 만족한다고 스스로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를 부르며 자신을 칭찬하더라구요. 칼릴 지브란의 시 중 우리는 활이고 우리 자녀들은 우리로부터 나아가는 살아있는 화살들이라고 하는 게 실감이 났어요. 우리는 그저 활시위를 풀어놓고 그들이 내일의 집을 향해 날아가기를 바라볼 뿐이죠. @stella15 님의 부모님도 그런 흐뭇하고 그저 감사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셨을 거에요.

연해
"우리는 그저 활시위를 풀어놓고 그들이 내일의 집 을 향해 날아가기를 바라볼 뿐이죠."라는 문장이 제 마음에 콕 박히네요. 벽돌 책 모임에서 종종 자녀분(의 학교생활) 이야기를 나눠주셨던 기억이 나기도 하는데요. 모든 결정을 온전히 존중하고, 지지해주시는 @borumis 님의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 위의 글에서는 '스스로'라는 단어가 정말 여러 번 등장하는데요. 저는 아이를 양육해 본 적은 없지만, 만약에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은 게 '자립'이라서 더 눈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아이의 행복을 바라기보다는 아이의 자립을 바라고 싶은.
그래서 "전 무엇보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만족했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멘탈이 탑재된 것 같아서 아이가 한층 더 성장한 것에 감사함을 느꼈어요."라는 말씀도 너무 따뜻하게 닿았습니다. 자녀분이 차근차근 현명하게 자신만의 길을 잘 찾아가실 것 같아요. 저 또한 잔잔히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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