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8.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D-29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그 이름을 워낙 많이 들어보기도 했고, 김호동 선생님의 완역본이 나와 있다고 해서 ‘언젠가 읽어봐야지’ 생각도 해봤었던 반면, 최부의 표해록은 그 존재 자체를 이번 독서로 처음 알았네요. 표류의 사연도 참 극적인데 말이죠. 책에 그림으로 나와 있는 최부의 귀국 항로를 보면서 ‘아 나는 정말 우리 역사나 우리 책에 대해 너무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개청 옥사가 성립되는 과정은 ‘필연적인 우연’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처음에 역적을 고발하라는 조정 명령이 내려왔을 때, 다수의 나주 유생들은 지역 내에 역적이 없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사사로운 목적을 가진 소수의 유생들이 그런 다수의 의견을 간단히 뒤집어 버렸다. 소수가 홍여순 같은 고위층의 사적 욕망에 호응하고, 윤우신 같은 중간 책임자들이 무책임할 때 조직은 곧 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전환되었다. 조직 내에서 고위층의 사적 욕망에 부응하는 소수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부 7장, 383쪽, 이정철 지음
이 대목 읽으면서, 지금 정국이 정국인지라 여러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지인 선생님께서도 보수랑은 거리가 먼 분이신데, 지난 정부에서 큰 연구비를 따시는 바람에 (그 과정이 아주 정당했는데도) 지금 새 정부에서 고초를 겪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어느 세상이나 비슷해요;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요인은 결국 사람이고, 그러한 전환을 정치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혼자 져야 할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런 면에서 정철은 정개청 사건에 대해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부 7장, 383~384쪽, 이정철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항상 매월 20일이 넘어서면 또 다음 주에는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이 됩니다. 계속해서 몇 권 만지작거리는 책이 있긴 한데. 일단 일순위로 꼽고 있는 책은 내년(2026년)이 푸코 탄생 100주년이더라고요. 푸코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이자 지금까지 여러 현대 사상에 영향을 주고 있으니 이런 계기에 그의 삶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또 과학-역사에 더해서 목록에 변화를 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해서 꼽아보고 있답니다. 디디에 에리봉의 푸코 평전은 1989년에 나왔지만 현재까지도 여전히 '가장 권위 있는 푸코 평전'으로 꼽히는 책이고, 평전 자체로도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평전을 쓴 에리봉 역시 문제적 인물이니 연말에 여러 얘기를 나눠볼 수 있을 듯한데, 어떠신가요?
미셸 푸코, 1926~198420세기 문제적 철학자 푸코에 대한 가장 내밀하고 충실한 평전. <그린비 인물 시리즈 he-story>의 첫 책으로 소개하는 이 책, <미셸 푸코>는 2011년 프랑스에서 개정증보판(초판은 1989년)으로 새롭게 출간된 <미셸 푸코>를 완역함으로써, 그동안 독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푸코의 지적 초상을 그 어떤 책보다 흥미롭고 다채롭게, 내밀하게 보여 준다.
안타깝게도 이 책 역시 한국어판 이북은 없어요; 하지만 영어판 이북(원서는 프랑스어판)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외국에 계시거나 영어책 읽기가 수월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앗 이 작가 혹시 랭스로 되돌아가다 (Retour a Reims) 작가 아닌가요? 아직 푸코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관심은 많습니다. 다만, 전 철학자에 대한 평전보다는 철학자의 책 자체를 먼저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해요. 저번에 조지 오웰의 책도 그렇지만 작가의 글과 삶을 좀 분리해서 따로 본 후에 합쳐서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서요.
네, 맞아요. 『랭스로 돌아가다』도 역작이죠. 푸코 평전 시작하기 전에 읽어보셔도 좋을 듯해요.
랭스로 되돌아가다푸코 평전 및 레비-스트로스와의 대담집 등을 펴내고, 성적 지배 체계와 소수자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해온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
아 혹시 영어판 이북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아마존에서는 불어판 밖에 못 찾겠는데.. 그런데 지금 불어판을 몇 페이지 읽어보니 확실히 현대에 쓴 글이어서 문장이 읽기 괜찮네요. 에리봉의 문체 좋습니다. 그리고 웬지 그의 '랭스로 되돌아가다'가 생각나네요.
오, 지난번에도 말씀해주셨던 책이네요. <일인분의 안락함>을 읽을 때 푸코의 생명정치 개념에 관해 써주셨던 글도 언뜻 생각나고요. 그때 푸코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잘되었네요. 같이 읽으면 좋겠어요!
오, 지난번에도 말씀해주셨던 책이네요. 2. @향팔 님 말씀처럼, 지~~난 모임에서 이 책 말씀하셨다가 다른 책으로 선정됐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도 이 책 좋아요. 푸코 탄생 100주년을 미리(?) 기념하며, 2025년의 마지막 벽돌 책 모임('2025년'의 마지막입니다. 표현의 오해가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벽돌 책 모임이여 영원하ㄹ...)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내년이 100주년이군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아 기대됩니다. :)
@도롱 님, 12월에 함께 읽을 벽돌 책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재야에서 특정 인물을 비판할 때는 대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조정 중신이 대상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지역사회에 있는 특정한 인물들을 중앙에 탄핵하는 것은 잘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이를 통해서, 상소에서 진짜 탄핵하려는 대상은 나사침 부자임을 알 수 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373, 이정철 지음
마을 풍속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불손한 백성에 대해 처벌 권한을 갖는다는 것을 뜻했고, 향리를 감찰한다는 것은 행정을 빌미로 자신들에게 무례하게 구는 향리 즉, 아전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에 지방 수령은 아무런 개인적 연고가 없는 지역에 임명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따라서 수령 입장에서는 지역 우지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따지고 보면 유향소라는 이름의 조직은 없지만, 오늘날도 이런 모임 내지 인간관계망은 지역마다 존재한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381, 이정철 지음
정개청 옥사가 성립되는 과정은 '필연적인 우연'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383, 이정철 지음
조직 내에서 고위층의 사적 욕망에 부응하는 소수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 정개청이 의금부 옥에 있을 때 그의 죄목이 변질되는 과정 역시 전형적이다. 그에 대한 심문은 최초 고발 사유에 대한 심문이 아닌 표적수사로 진행되었다. '사안'이 아닌 '사람'이 심문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요인은 결국 사람이고, 그러한 전환을 정치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383, 이정철 지음
정개청을 공격한 측의 핵심 논리 두 가지는 '배절의'와 '배사론'이었다. 절의와 스승을 배반했다는 말이다. ... 전자가 드러난 공격의 논리였다면, 후자는 드러내지 않은 공격의 이유였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388, 이정철 지음
새로운 권위는 새로운 인물을 통해서 기존 권위를 무력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는 극히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중년 이후 최고 수준의 학자이자 선생으로 떠올랐다. ... 그런데 새로운 권위가 기존 권위를 갈등 없이 대체하는 경우 역시 별로 없다. 더구나 새로운 권위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계층 출신 인물을 통해서 등장할 때 그 갈등은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도학의 등장과 정개청이란 한미한 집안 출신 인물이 결합된 것이 정개청 사건의 본질적 측면 중 하나이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390, 이정철 지음
작가 분이 스탕달의 '적과 흑' 주인공에 비교한 게 딱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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