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안그래도 이걸 읽고서 심경에 대해 궁금해졌어요. 제가 아는 심경은 반야심경이어서 불교 서적인데;; 찾아보니 심경이 주자학의 마음훈련 매뉴얼이라고 하네요.. 예나 지금이나 Mindfulness 관련 자기계발서는 인기였나..하고 섣부른 판단을 했다는.. 밀리의 서재에 이한우 역의 심경부주가 있어서 조금 읽어보았는데 어렵긴 하네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8.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D-29

borumis
aida
오늘 이 대목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아버지를 떠올렸어요. 밑에 @연해 님도 도덕적이다의 기준에 대한 의문을 남기셨지만, 우리 아버지의 올바름의 의미가 주변을 평생 힘들게 하시더라구요.
도학이 가르치는 "절제하고 비타협적이고 역경을 헤쳐 나가는 굳센 의지를 지닌 인간형"에 어찌하면 좀 맞닿아 있어서 생각이 났나 싶어요.
음식을 남길수 없고, 흐트러짐을 견디지 못하고 남의 신세를 지지 못하며 떳떳해야 하다보니 가족인 저도 흐트러짐은 내 잘못이고 실패는 얘기할수 없고 성취만을 알리게 되더라구요. 아버지의 기준을 먼저 가져다 검열하면 뭔가 변명하는 것 같고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의지가 부족해 보이게 만들더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비난을 하기도 어렵지요. 그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말할수는 없으니..
결국 그 올바르다의 기준이 절대적이라 어떤 수용도 할수 없다는 점에서 이미 선한 도덕기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저에게도 작게나마 그런 기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을 알아챌 때마다 다른 상황이 있을 수 있음을 사정이 있음을 생각해야 하는데 매 번 그러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열린 마음으로 살아야지를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거들떠 보지 않던 조선과 성리학이 배경인 책을 읽게 될 줄이야... 저의 열린 마음의 결과입니다. ㅎㅎㅎ

borumis
실은 저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理와 기氣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passion과 reason간의 관계처럼 받아들였는데요. 심경에서 말하는 인심人心(사람의 마음)과 도심道心(도리의 마음)도 그런 관계인 것 같습니다.
심경에서 정이천이 인심과 도심이 각각 사람의 욕심(인욕)과 하늘과도 같은 이치(천리)이라고 하자, 주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진실로 옳다. 단, 이것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한 사람의 마음이 도리에 맞으면 그것이 하늘과도 같은 이치요, 그 마음이 정욕을 따르면 그것이 사람의 욕심이다. 따라서 바로 그 둘이 나뉘는 지점에서 정확하게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오봉이 말하기를 '하늘과도 같은 이치와 사람의 욕심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같지만 그 속사정은 서로 다르다'고 했으니 이 설이 아주 좋다"
'행동'의 새폴스키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리사 펠드먼 배렛 처럼 사람의 마음은 그 상황적 문맥에 따라 선악으로 나뉘어진 것으로 보는 것 같았어요. 주자도 사람의 마음이 선악으로 갈라지는 부분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결과)보다는 속사정(의도, 또는 상황적 문맥)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본 것 같아요.

borumis
제가 벽돌책 모임을 하면서 생각한게 그 점이에요. 이렇게 다양한 책을 접할 줄이야.. YG님의 큐레이션 에 열린 마음이 이끌고 가는 길은 참 다양하고 넓은 세상인 듯 해요!

자몽에이드
영화 원더가 생각나네요.
옳은 것보다 친절한게 더 중요하다는 명대사와 함께요.
올바름의 기준은 반드시 있어야하고 중요하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더 중요한건 친절함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했어요. 반성과 함께^^; 주변에도 스스로에게도 친절한 하루 하루를 보내는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borumis
“ 이이는 이준경의 이 지적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그러고나서 붕당의 존재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그 당이 군자당인지 소인당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스스로에 대한 대단한 도덕적 자신감이었다. '군자'들은 당을 지어도 문제가 안 되고, 자신들 모두가 군자라는 말이다. 이때만 해도 이이는 공격하는 측의 선봉장이었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22,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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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사실 신진들에 대한 이준경의 비판은 정확했다. 자신만만하고 경험 없는 신진들의 태도와 활동의 핵심을 지적한 것이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23,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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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이이는 일종의 인지부조화 상태에 있었다. 이이에게 사림은 부패하고 부도덕한 구세력을 물리친 정의로운 집단이다. 그 집단 구성원 사이에 사소한 오해와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입장 차이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사림은 정치집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실천 공동체에 가깝다. 하지만 현실의 사림집단은 이미 이이의 그런 인식을 넘어서 정치화되고 있었다. 이이는 그것을 몰랐거나 혹은,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이의 사림에 대한 인식 역시 과거 특정 시기에 고착되어 있었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26,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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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늘 그렇듯이 집단 간 갈등이 고조되면, 집단 내에서 강경파가 힘을 얻게 마련이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27,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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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지금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풍토가 만연하죠..

borumis
“ 성혼의 말에는 대간들이 높은 식견을 가진 독립적이고 공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기대가 전제되어 있다. 그는 여전히 사림 주도의 이상적 정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4,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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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2년 넘게 지속된 기축옥사는, 그때까지 당파 간에 나타났었던 상황을 집약적이고 강도 높게 반복했다. 그중에서도 최영경 옥사는 기축옥사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선조를 포함해서 아무도 상황에 대해서 책임지려는 생각은 없었고, 갈등의 기억들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5,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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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역설적이게도 희생자 최영경은 '가해자'와 전혀 다르지 않은 상황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5,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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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그는 왕이라는 제도가 자신에게 제공한 것을 최대한 이용했고 또 누렸다. 하지만, 그,것을 토대로 가능한 공적 이상의 정책적 구현에 무관심했다. 선조는 정치 상황 및 그 결과에 대한 궁극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의식이 거의 없었다. 선조를 통해 정치적 힘과 책임은 분리되었고, 자연스럽게도 그것은 국정의 무정부적 상태를 초래했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8,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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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패한 인물의 배제를, 구시대의 극복 그 자체로 이해했던 것이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8,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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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현실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늘 행동의 우선순위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안 했든, 다른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해서 못했든 결과는 같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9,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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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분열을 정당화하는 기제는 스스로 확신한 도덕적 정당성이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9,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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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사실 이이는 희생자만은 아니다. 그가 이준경 등에게 취했던 태도와, 이발, 김우옹, 류성룡이 이이에게 취했던 태도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선조 7년을 기점으로 이이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해와 그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제 사림은 훈척에 대한 도덕적 비판자의 역할이 아닌 국정과 민생을 책임져야 하는, 다시 말해서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새로운 상황을 맞았던 것이다. 이이는 그것을 정확히 이해 했다. 문제는 이이만이 그것을 분명히 인식했다는 점이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9-470,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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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 선조 대 정치세력 간 분열은 정치적 욕망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다른 일부는 도덕적 확신에 따른 행동의 결과이기도 했다. 도덕적 확신에 찬 사람은 결국 그것보다 더 강력했던 권력에 대한 욕망의 자장으로 빨려들고 마침내 함몰되었다. 그들은 정치세력 간의 시비가 아닌 민생개혁에 대한 추구가 자신들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그들 중 극소수가 살아남아 그것을 이해하게 된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70,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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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모르는 단어도 많고 역사적 배경은 더 모르는데 많은 분들의 댓글을 도움받아 겨우 주말에 완독했네요^^
이번주 출장과 마감해야할 일들이 많아서 미리 읽었는데 리더십 뿐만 아니라 제 인생 속에서 의도와 결과적 행동의 방향, 그리고 사회적 함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저는 특히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정말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가끔은 회의실에서 서로 마스크 쓰고 서로 삿대질하고 소리지르기까지 하던 시기를 지나왔는데 그때 각 과의 각 분야의 사람의 의견을 되도록 다 들어보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요. 살면서 여러 '장'을 맡았지만 그때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그때는 좀 다각적인 의견충돌과 이익상충이 있어서 복잡할 뿐이지만 자신의 의견에 대한 정당성이 다소 약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에게 너무 낯설은 상황이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황에서 혼란은 있었지만 자신의 의견에 대해 확신할 만한 근거는 없었으니까요) 결국에는 어떤 공통된 목적을 통해 합의를 유도할 수 있었는데요..
만약 목적 조차 공통되지 않고 그저 서로를 배척하는 데로 목적이 와전되며 자신의 주장에 대해 실질적 근거는 없지만 정당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으로만 충만했다면 (게다가 실질적 리더는 자기 자신의 안위만 관심있다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여기서는 기축옥사로 마무리지었지만 나중에 북인 남인으로 또 나뉘고 조선사를 읽어보면 한숨이 나올 만 하네요. 의도와 도덕적 정당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행동으로 나타나는 결과 또한 도외시 되어선 안 되겠습니다.
가끔 보건이든 교육이든 경제든 정책들이 실무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모여 탁상공론에서 나온 것 같은 경우 정말 이 사람들은 의도만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정치인들이 이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생각했던 것은 역사적 유적들을 제가 정말 아무 생각없이 그냥 스쳐지나갔구나.. 한 생각입니다. 더불어 한국사와 동양철학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지금 '최소한의 윤리'를 읽기 시작했는데 작가분은 성리학은 아니라 원시유교, 특히 맹자 사상을 주로 보고 있네요. 실은 전 성리학에 대해 너무 몰라서 성리학도 왜 그렇게 조선에서 중요시되었는지 궁금해져서 지금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한국의 유교화 과정'도 병렬독서 중입니다.) 여러분들 덧글 덕분에 아직 한국에 대한 제 공부도 경험도 거의 외국인 수준으로 너무 미흡한 걸 깨달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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