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8.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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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이 책[심경]이 정작 중국에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유독 조선 학자들이 몹시 중시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성리학 그 자체의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거의 전적으로 16세기 전반 조선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 때문이었다. 철학의 문제가 아닌 현실의 문제였던 것이다. 조선의 사림은 16세기 전반에 정치사회적으로 훈척세력과의 대결을 현실 조건으로 하여 형성되고 성장하였다. 당시의 현실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사화이다. 많은 무고하고 올바른 사림 성향 인물들이 사화에서 희생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림의 학문이자 조선의 성리학인 도학이 태동하고 형성되었다. 사림은 그 무고한 희생자들의 희생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 했고, 현실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무리들이 올바르지 않음을 증명해야 했다. 이러한 현실의 필요에 따라 도학에 몇 가지 특징이 각인되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17쪽, 이정철 지음
도학은 개인에게 도덕적 주체성을 강조했다. 성리학적 언어로 말하면, 그것은 기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인욕에 빠질 위험을 제거함으로써, 선한 인간 본성인 이의 확립과 그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인간의 내면세계, 특히 그 도덕적 측면에 대한 수양을 강조하게 된다. 그 결과 수양의 주체인 심을 중시하게 되었고, 수양 방법으로 경에 주목하였다. 요컨대 정치적 현실이 엄혹하기에, 그것을 이겨나가기 위해서 강력한 정신무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경은 ‘삼감’, ‘절제’ 같은 것이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것의 반대편에 있는 태도이다. 경은 이후 조선 성리학의 핵심 가치가 되었다. 그에 따라 특정한 인간형이 형성되었다. 경을 내면화한 인간형이다. 그것은 매우 절제하고, 비타협적이고, 역경을 헤쳐 나가는 굳센 의지를 지닌 인간형이다. 이러한 인간형을 길러 내는 데 적합한 책이 바로 『심경』이다. (418쪽) 선조 대 당쟁 과정에는 최영경과 비슷한 유형의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도덕적 원칙에 투철하고, 시비 분별에 민감했다. 이 시대의 이상적, 혹은 표준적 인간형을 만들어 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한 권의 책을 고르라면 『심경』을 들어야 한다. (419쪽)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정철 지음
이준경은 신진들이 다른 사람에게 잘못이 없고 또 법에 어긋나지 않아도 자신들과 한마디만 맞지 않으면 배척하여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이이는 이준경의 이 지적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그러고 나서 붕당의 존재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그 당이 군자당인지 소인당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스스로에 대한 대단한 도덕적 자신감이었다. ‘군자’들은 당을 지어도 문제가 안 되고, 자신들 모두가 군자라는 말이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22쪽, 이정철 지음
이이는 일종의 인지부조화 상태에 있었다. 이이에게 사림은 부패하고 부도덕한 구세력을 물리친 정의로운 집단이다. 그 집단 구성원 사이에 사소한 오해와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인 입장 차이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사림은 정치집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실천 공동체에 가깝다. 하지만 현실의 사림집단은 이미 이이의 그런 인식을 넘어서 정치화되고 있었다. 이이는 그것을 몰랐거나 혹은,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이의 사림에 대한 인식 역시 과거 특정 시기에 고착되어 있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26쪽, 이정철 지음
분열을 정당화하는 기제는 스스로 확신한 도덕적 정당성이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정철 지음
"시비와 원칙에 민감한 젊고 비타협적인 지식인들이 그들이다." 책을 시작할때 이런 결론일줄은 잘 몰랐지만, 생각해보면 흔히 마주치는 형국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처음 동서분당은 세대갈등 같기도 합니다. (지금도 있는ㅋㅋ) 어려운 책이었지만, 벽돌책 두께는 아니었기에 완독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500년 세월이 시대 문화, 언어의 간극으로 와닿기도 했구요. (저자님 입장에서는 쉽게 쓰려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싶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ㅎㅎ) 의무교육으로 이름은 아는 조선의 유명인이 선조 때 이렇게나 많았구나 싶네요. 의무교육이라 시험에 나오는 겉핧기만 조금 기억하는데, 그 시절의 사건을 상세히 들여다 보는 기이한 경험을 해봤네요. 진화를 하는 생물로써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필연인것 같습니다. 12월도 또 새로운 세상을 만날 기대를 해봅니다. 누가 떡 골라주는 걸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기축옥사는 선조 8년 이후 사림세력 분열이 가져온 파국이다. 15년 동안 이어진 갈등은 동서 간 분열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계미삼찬 후에는 그 갈등 양상이 훨씬 더 격화되었다. 2년 넘게 지속된 기축옥사는, 그때까지 당파 간에 나타났었던 상황을 집약적이고 강도 높게 반복했다. 그중에서도 최영경 옥사는 기축옥사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 준다. 선조를 포함해서 아무도 상황에 대해서 책임지려는 생각은 없었고, 갈등의 기억들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5쪽, 이정철 지음
최영경 죽음에 대한 책임 문제 이외에도 최영경 옥사는 또 하나의 상황을 보여 준다. 최영경 자신이 대단히 선명한 당파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사망한 지 6년이 넘은 이이, 옥사 이전까지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정철에 대해서 대단한 적의를 드러냈다. 정철이 주도한 심문의 첫 대면부터 시작해서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그는 정철에게 분명한 적대감을 표했다. 역설적이게도 희생자 최영경은 ‘가해자’와 전혀 다르지 않은 상황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5쪽, 이정철 지음
따지고 보면 기축옥사 자체가 어느 순간부터는 누구도 통제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되었다. 선조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부8장464쪽, 이정철 지음
기축옥사는 선조 8년 이후 사림 세력 분열이 가져온 파국이다. 15년 동안 이어진 갈등은 동서 간 분열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계미삼찬 후에는 그 갈등 양상이 훨씬 더 격화되었다. 2년 넘게 지속된 기축옥사는 그때까지 당파 간에 나타났었던 상황을 집약적이고 강도 높게 반복했다. 그중에서도 최영경 옥사는 기축옥사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선조를 포함해서 아무도 상황에 대해서 책임지려는 생각은 없었고 갈등의 기억들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최영경 죽음에 대한 책임 문제 이외에도 최영경 옥사는 또 하나의 상황을 보여준다. 최영경 자신이 대단히 선명한 당파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사망한 지 6년이 넘은 이이, 옥사 이전까지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정철에 대해서 대단한 적의를 드러냈다. 정철이 주도한 신문의 첫 대면부터 시작해서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그는 정철에게 분명한 적대감을 표했다. 역설적이게도 희생자 최영경은 가해자와 전혀 다르지 않은 상황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부8장465쪽, 이정철 지음
에필로그 사림의 실패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그 중심 인물들의 비극적 종말을 통해서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선조와 오래, 그리고 끝까지 잘 지낸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선조는 늘 명망 있는 인물을 정치적으로 소비했다. 사림은 왜 분열했을까? 물론 어떤 시대의 정치에도 나타나기 마련인 정치 권력에 대한 욕망의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림의 분열은 스스로에 대한 강력한 도덕적 확신에 기인했다. 분열을 정당화하는 기제는 스스로 확실한 도덕적 정당성이었다. 선조 대 정치 세력 간 분열은 정치적 욕망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다른 일부는 도덕적 확신에 따른 행동의 결과이기도 했다. 도덕적 확신에 찬 사림은 결국 그것보다 더 강력했던 권력에 대한 욕망의 자장으로 빨려들고 마침내 함몰되었다. 그들은 정치 세력 간의 시비가 아닌 민생 개혁에 대한 추구가 자신들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지 못했다. 역설적이기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그들 중 극소수가 살아남아 그것을 이해하게 된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6~470쪽, 이정철 지음
저도 극적으로 완독했습니다. 뒤에 인물 설명들 빼고요. ㅎㅎ 각 인물들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요즘 정치인들과 비슷한 분들이 몇분 계셔서 그때나 지금이나 하며 읽었습니다. 다음 책도 기대가 큽니다. YG님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들 역시 국정개혁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 김우옹은 이이와 함께 여러 번 국정개혁을 요청했다. 류성룡도 개혁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우선순위 면에서 당파 간 시비와 정사를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현실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늘 행동의 우선순위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안 했든, 다른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해서 못했든 결과는 같다. 그 결과 사림은 분열했고, 그것은 선조의 독재로 이어졌다. 16세기 내내 사림 다수의 희생과 인내로 열린 정치적 공간은 결국 선조의 독재로 귀결되고 말았다. 현상적으로는 선조의 독재가 더 두드러져 보이지만, 그것은 사림 분열의 종속변수였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9쪽, 이정철 지음
사림은 왜 분열했을까? 물론 어떤 시대의 정치에도 나타나기 마련인 정치권력에 대한 욕망이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림의 분열은 스스로에 대한 강력한 도덕적 확신에 기인했다. 분열을 정당화하는 기제는 스스로 확신한 도덕적 정당성이었다. 그들은 공론의 이름으로 갈등했고 분열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69쪽, 이정철 지음
젊은 사림이 가졌던 강렬한 도덕적 확신은 역설적이지만 앞 시대 훈척정치가 물려준 유산이다. 그들이 가진 도덕적 신념은 그 자체로 정당할 뿐 아니라, 불의하고 강력했던 권력을 물리친 정치적 참호이자 무기였다. 도덕적 올바름에 대한 신념으로 불의한 권력을 물리친 과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시기에 주조된 이기론이나 『심경』에 대한 이해에 그러한 도덕적 신념이 담겼다. 이것들에 대한 학습 즉, 도학이 그 시대의 표준적 지식이 되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한 지식은 고유한 인간형을 만들어 냈다. 시비와 원칙에 민감한 젊고 비타협적인 지식인들이 그들이다. 정철과 최영경은 서로를 미워했지만, 흥미롭게도 그들에 대한 친구들의 평가는 비슷하다.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치고, 다른 사람 의견을 구차히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비단 두 사람만의 특징은 아니다. 이 시기 인물들에 대한 평에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쳤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70쪽, 이정철 지음
도덕적 확신에 찬 사림은 결국 그것보다 더 강력했던 권력에 대한 욕망의 자장으로 빨려들고 마침내 함몰되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70쪽, 이정철 지음
책을 다 읽고나서 뒤에 실린 연표를 훑어보는데 아뿔싸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이수 사건이 뭐지! 정희적이 쓴 차자라니 그게 어떤 거였지? 할 수 없이 책을 다시 넘겨보고 모임 첫 글로 올라가서 여러 분들께서 남겨주신 글과 문장들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하하하! 어차피 재대출도 해왔겠다, 이번 주말은 복습을 하면서 보내겠습니다. 조선 역사책을 처음 읽는 거라 초반에는 어렵고 적응이 안 되었지만 3부, 4부는 푸욱 빠져들어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이 시대 역사에 관해 앞으로 더 많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동기가 작동하기 시작했어요. YG님께서 담아주신 책들 중에서 <조선의 힘>,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 <사화와 반정의 시대>를 먼저 읽어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네, 오늘 11월 28일 '최영경 옥사'와 에필로그를 끝으로 함께 읽기를 마무리합니다. @꽃의요정 @향팔 님도 완독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주말까지 감상 나눌게요. 제가 이번 주에 경황이 없어서, 내일 정도에 다음 벽돌 책 함께 읽기 예고도 올리겠습니다.
제가 사는 이천에는 기묘사화 때 선비들이 내려와 은거하며 정자에 모여 학문을 논했다는 '육괴정'이 있어요. 그중 한 사람이 모재 김안국이라고 들었는데 이번 책에서 그 이름이 나오니까 반갑고도 괜히 정신이 번쩍 나는 것 같았어요. 중학교 다닐 때 근처엔 우암 송시열 묘와 화양서원이 있었고요. 이래저래 관심이 많았지만, 책은 어려웠어요. 한국사 배울 게 참 많네요. 등장인물이 많은 데다가 사건 하나에 구구절절 일화도 많고, 낯선 말도 꽤 있어 사전도 자주 들여다보았어요. 그럼에도 긴가민가... 그래도 오랜만에 역사를 읽는 시간 보내서 좋았어요. 학창 시절에 붕당정치 나오는 부분부터는 너무 어려웠었는데, 이번 책에도 세세한 이야기가 많으니 헉헉대다 책장만 넘기기도 했어요. 읽고 나서 프롤로그를 다시 읽고, 그들의 정치적 입장이 무얼까, 제가 보기엔 세운 뜻을 실천하기보다는 자리다툼(권력욕)에만 치중하고 상대에 대한 배타적 입장으로 일관한 것 같아서 안타까웠어요. 거기에 모종의 사건에 임해서 객관적 근거를 내세우기는커녕 삼인성호 격으로 말을 지어서 정치적이고 감정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타협과 이해를 전제하지 않은 풍토에서 사화, 기축옥사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급기야 전쟁마저 치렀나 싶어요. 매번 책으로 생각거리를 던져주시는 @YG 님 그지없이 고마워요! 함께 소중한 의견 나누어주신 회원님들께도 고마워요. 다음 책을 또 기대하며^^ 횡설수설했어요.
@부엌의토토 님, 즐겁게 참여해주셔서 또 따뜻한 감사 인사도 고맙습니다. 12월에도 또 다른 벽돌 책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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