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조 11년(1578)은 동서 간 갈등의 누적된 힘이 갈등 구조 자체를 변형시키기 시작한 시점이다. 75쪽
이 시기에 동인세력이 확대되는 흐름에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세 가지 양상이 나타났다.
첫째는 동인과 서인이 정과 사, 즉 바름과 간사함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본래 동인과 서인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입장이 다를 뿐 정사로 구분되지는 않았다.
둘째는 구신 중에서 동인의 뒤늦게 가담한 사람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서인을 공격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보상받으려 했다. 때문에 그 말이 더욱 공격적이었다.
셋째는 이전까지 비교적 중립적 입장에 있었던 김우옹, 이발, 류성룡 같은 인물들이 당파적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던 점이다. 77~78쪽
' 동서분당'과 '이수의 옥사'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도 있다. '이수의 옥사'를 통해서 동인과 서인이 확실하게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구신 출신으로 뒤늦게 동인에 합류한 인사들의 역할이 컸다. 83쪽
두 사람은 이수 사건이 동인의 서인에 대한 정치적 공격임을 부정했다. 이에 대해서 이이는 "전후 시비를 들어보지 않고 오로지 옥사만 성립시키려 힘썼다.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류성룡 이발 같은 무리도 이와 같이 행동한단 말인가! 남에게 알려질까 걱정이다."라고 기록하였다(1581년). 이이는 두 사람에 대한 실망을 넘어서 사림의 장래에 대해서 깊이 우려했다. 이이에게 사림은 여전히 하나의 사림이었다. 85쪽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2장선조11~13년 대립구도의 성립,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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