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왕조는 건국 당시부터 공론을 중시했다. 성리학을 국가 운영 원리로 삼아 건국한 것이 그 이유이다. (…) 이 당시 공론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갈등 요소는 누가 공론의 주체인가 하는 문제였다.
조선 왕조를 통틀어 보면 공론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은 한결같지 않았다. 국초에는 국왕이나 조정 대신들이 공론의 주체로 인식되었다. 18세기(영조와 정조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서 공론이 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시기의 중간 즉 16, 17세기에는 공론이 아래 있고, 삼사, 심지어 성균관에 공론이 있다고 생각했다. 16세기는 국초의 공론 주체에 관한 인식이 바뀌던 시기였다. 주목할 것은 이 시기 격렬하게 이어졌던 사화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식이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2부 4장, 195~196쪽,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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