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조는 동인과 서인의 갈등에서 자신이 어떤 편을 지지한 적이 없고, 이이와 성혼도 단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신하들 추천에 따라 등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자신은 이이가 오활하고 경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p. 277, 이정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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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
어떤 세력이 강한 지에 따라 왕도 주장을 순식간에 바꾸는 것이 정치인가 봅니다.
YG
@oh 완독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은 책이어서 읽자고 권했었는데 여러 생각을 하신 듯해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자몽에이드
넵^^ 즐거운 고생이었습니다. 다른분들 도움받아가며 제 눈높이에 맞게 앞으로도 잘 따라가볼게요.
밥심
완독 후에 이 책의 제목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선한 지식인이란 전제가 맞는건가 하는 문제죠. 과연 조선 선조 대 사림들이 선한 사람들이었나? 장강명 작가님이 <먼저 온 미래>에서 우리는 정의가 불명확한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쓴 대목이 생각나는데 도대체 ‘선하다’의 정의가 뭘까요? 도덕적으로 자신들이 옳고 자신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저놈들은 나쁜 패거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을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본능적으로 결국엔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믿는 사람이라, 이 책의 제목 전제부터가 잘 못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해
밥심님도 완독 축하드려요:)
(저도 진도 맞춰서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선하다'의 정의에 대한 말씀이 유독 인상 깊었어요.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말씀도요. 잊을만하면 제가 한 번씩 언급하는 새폴스키의 『행동』을 읽을 때,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유전적으로 타고 났다해도 환경과 맞으면 발현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발현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럼 그 사람은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 악하게 태어났어도 숨겨질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은(쓰고 나니 무슨 말장난 같네요).
여담이지만요. 제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도 몇 해 전인가, 토론 주제로 '소통'을 엄청 강조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 토론을 이어가면서 각자가 생각하는 소통의 정의가 다 다르다는 걸 깨닫고는 소통의 정의부터 다시 정하자고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게 조직이라는 집단의 정설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하하하).
밥심
소통이라.. 금요일 오후 잖아요. 우선 주말 재밌게 잘 지내고 다음주부터 소통 잘 해보죠. 하하.
borumis
오 밥심님도 완독 축하드립니다!
안그래도 아까 제 해결되지 않았던 질문들 중 하나가 그 '선' 또는 '도덕적'의 정의인데요..
만약에 다른 환경에 다른 사회적 구조라면? 예를 들어 그 선한 정치인이 이이같은 중간 급의 정치인이 아니라 선조처럼 더 위쪽 지도자라면? 상황이 좀 다르게 진행되었을까?
붕당을 화합하는 방법도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지만 어떻게 하면 선조를 더 좋은 지도자가 되도록 이끌고 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너무나 다양한데 반드시 선악 등 도덕적 잣대가 절대적이고 이분화되어야 할까 좀더 진실을 다층적으로 바라보고 선도 다각적인 방법으로 추구할 수는 없을까? 등등 아직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 투성이입니다.
어찌 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선은 '사회적 결과에 대한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