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8.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D-29
모르는 단어도 많고 역사적 배경은 더 모르는데 많은 분들의 댓글을 도움받아 겨우 주말에 완독했네요^^ 이번주 출장과 마감해야할 일들이 많아서 미리 읽었는데 리더십 뿐만 아니라 제 인생 속에서 의도와 결과적 행동의 방향, 그리고 사회적 함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저는 특히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정말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가끔은 회의실에서 서로 마스크 쓰고 서로 삿대질하고 소리지르기까지 하던 시기를 지나왔는데 그때 각 과의 각 분야의 사람의 의견을 되도록 다 들어보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요. 살면서 여러 '장'을 맡았지만 그때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그때는 좀 다각적인 의견충돌과 이익상충이 있어서 복잡할 뿐이지만 자신의 의견에 대한 정당성이 다소 약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에게 너무 낯설은 상황이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황에서 혼란은 있었지만 자신의 의견에 대해 확신할 만한 근거는 없었으니까요) 결국에는 어떤 공통된 목적을 통해 합의를 유도할 수 있었는데요.. 만약 목적 조차 공통되지 않고 그저 서로를 배척하는 데로 목적이 와전되며 자신의 주장에 대해 실질적 근거는 없지만 정당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으로만 충만했다면 (게다가 실질적 리더는 자기 자신의 안위만 관심있다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여기서는 기축옥사로 마무리지었지만 나중에 북인 남인으로 또 나뉘고 조선사를 읽어보면 한숨이 나올 만 하네요. 의도와 도덕적 정당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행동으로 나타나는 결과 또한 도외시 되어선 안 되겠습니다. 가끔 보건이든 교육이든 경제든 정책들이 실무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모여 탁상공론에서 나온 것 같은 경우 정말 이 사람들은 의도만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정치인들이 이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생각했던 것은 역사적 유적들을 제가 정말 아무 생각없이 그냥 스쳐지나갔구나.. 한 생각입니다. 더불어 한국사와 동양철학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지금 '최소한의 윤리'를 읽기 시작했는데 작가분은 성리학은 아니라 원시유교, 특히 맹자 사상을 주로 보고 있네요. 실은 전 성리학에 대해 너무 몰라서 성리학도 왜 그렇게 조선에서 중요시되었는지 궁금해져서 지금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한국의 유교화 과정'도 병렬독서 중입니다.) 여러분들 덧글 덕분에 아직 한국에 대한 제 공부도 경험도 거의 외국인 수준으로 너무 미흡한 걸 깨달았네요. 감사합니다~
@borumis 흔히 성리학은 12세기에 남송의 주희(주자)가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재정리해서 체계화한 유학을 말합니다. 성리학을 주자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주자가 정리하고 주를 단 판본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바로 맹자를 공자의 반열에 올린 학자가 바로 주자예요. 제가 방송에서 이권우 선생님께 원시 유교와 조선 시대 유학자를 사로잡은 성리학 사이의 차이를 물었었는데, 이 선생님께서는 맹자를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이기에 주자의 해석 즉 성리학에서도 탁월한 점이 많아서 둘을 구분하기도 어렵고, 또 성리학은 버려야 할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고민은 왜 이렇게 훌륭한 사상을 공부하던 이들이 이 모양으로 실천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게 고민해야 할 문제죠. 애초 사상(이데올로기가)이 문제인지, 그 행위자가 문제인지.
저도 이 부분이 늘 궁금했어요. 같은 유교에 뿌리를 두었는데도 조선시대 성리학의 실천은 왜 다른 방향을 가게 되었는지 말이죠.
시의 (바르게 설정된 시대적 과제) 를 아는 것. 실공(현실에서의 기시적 성과)을 힘쓰는 것. "이이는 개인의 선한 이념이나 의도가 아닌 사회적 결과에 대한 책임이야말로 정치적 책임의 요체임을 분명히 했다" 시대를 가로질러 통하는 말 같아서 와닿네요. 개인 신념(이념)에 대한 책임을 너머 사회적 결과에 대한 책임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비슷한 상황이네요. 쉽게 달성하기 어려워야 이상인 것이겠지요.
정개청 옥사가 성립되는 과정은 ‘필연적인 우연’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처음에 역적을 고발하라는 조정 명령이 내려왔을 때, 다수의 나주 유생들은 지역 내에 역적이 없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사사로운 목적을 가진 소수의 유생들이 그런 다수의 의견을 간단히 뒤집어 버렸다. 소수가 홍여순 같은 고위층의 사적 욕망에 호응하고, 윤우신 같은 중간 책임자들이 무책임할 때 조직은 곧 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전환되었다. 조직 내에서 고위층의 사적 욕망에 부응하는 소수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383쪽, 이정철 지음
또, 정개청이 의금부 옥에 있을 때, 그의 죄목이 변질되는 과정 역시 전형적이다. 그에 대한 심문은 최초 고발 사유에 대한 심문이 아닌 표적수사로 진행되었다. ‘사안’이 아닌 ‘사람’이 심문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요인은 결국 사람이고, 그러한 전환을 정치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혼자 져야 할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런 면에서 정철은 정개청 사건에 대해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383-384쪽, 이정철 지음
선한 의도나 윤리가 정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이는 이것을 정확히 지적했다. 그는 자신의 본격적 정치론인 「만언봉사」를 이렇게 시작한다. "정치는 시의時宜를 아는 것이 귀하고 일은 실공實功을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치를 하면서 시의를 모르고 일을 당하여 실공을 힘쓰지 않으면, 비록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서로 만나도 성과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의는 바르게 설정된 시대적 과제를, 실공은 현실에서의 가시적 성과를 뜻한다. 그는 개인의 선한 신념이나 의도가 아닌 사회적 결과에 대한 책임이야말로 정치적 책임의 요체임을 분명히 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정철 지음
@밥심 @부엌의토토 아, 신기한 경험을 하셨네요. 저는 전라남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담양 쪽에 송강과 관련된 유적이 꽤 있어요. 송강정 또 정철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소쇄원 등. (소쇄원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 이런 곳에서 그런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지었단 말이지, 어렸을 때 그곳을 방문하고서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 캠프 이런 곳에 참여하면 필수 답사 코스가 소쇄원과 송강정 등이었거든요.) 나중에 광주, 담양 가실 일 있을 때 한번 들러보세요~
소쇄원은 옛날에 가본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기억이 안 나네요. 좋은 계절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오래전 남도맛기행 하면서 담양 죽녹원엔 가봤는데 소쇄원을 들르지 않았네요.(왜그랬는지 ㅎㅎ) 이번에 책도 읽었으니 언제고 꼭 가야겠어요.
오, YG님 전라남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셨다니, 저는 어릴 때 광주에 살았었는데도 정작 소쇄원과 송강정을 가본 적이 없네요. 아니면 가봤는데, 기억을 못 하는 것일지도요(워낙 어릴 때 살았던 터라...). 다음 달에도 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어 광주를 가는데, 시간이 가능하면 한 번 들러봐야겠어요:) 저도 담양 죽녹원만 가봤다지요( @향팔 님 찌찌뽕).
@연해 @향팔 아, 저는 죽녹원은 못 가본 것 같은데. (가 봤어도 기억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 연해 님 어린 시절 광주에 사셨군요. 저는 목포에서 살았고, 고등학교만 광주 근처에서 다녔어요. 고등학교 때 주말마다 광주 가서 많이 놀았습니다. 하하하!
오! 농담 아닌 농담(이게 무슨 말인지...)이지만, 나이대를 가늠해보면요. 과거에 광주에서 알게 모르게 지나쳤을지도 몰라요. YG님 고등학생 시절 나이가 제가 꼬꼬마 시절 광주 살 때 나이랑 얼추... (쿨럭) 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저는 부모님 고향이 광주인데, 태어나기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꼬꼬마 시절에는 광주, 그 뒤로는 경상도 창원에서도 오래 살았었답니다. 여기저기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서울에 산 지는 이제 20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쓰고 나니 tmi...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쇄원, 송강정 체크!
화제로 지정된 대화
다들 마무리하고 계시지만, 그래도 읽기표대로 진도는 나가봅니다. 오늘 11월 25일 화요일은 4부 7장 '정개청 옥사'를 마저 읽습니다. 388쪽부터 407쪽까지입니다. 저는 예전에 읽었을 때는 이 부분이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은 사족 같았는데, 이번에는 4부가 유난히 마음에 밟히네요. 정개청도 최영경도요.
정개청은 선조 시대에 명멸했던 수많은 인물 중에서도 이채를 띤다. 그 특색은 단순히 개인적인 특성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시대 상황과도 긴밀히 연결되었다. 어찌 보면 그는 19세기 초 격렬한 이념적, 사회적 변동을 바탕으로 스탕달이 쓴 소설 『적과 흑』(1830)에 나오는 주인공 쥘리앵 소렐과 비슷한 면이 있다. 선조 시대는 새로운 학문 ‘도학’이 학문적 현실적 권위를 공인받은 시기이다. 새로운 권위는 새로운 인물을 통해서 기존 권위를 무력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는 극히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중년 이후 최고 수준의 학자이자 선생으로 떠올랐다. 그의 제자들이나 그가 친교를 맺은 인물들이 대개 명문 혹은, 적어도 양반 가문 출신이었던 것은 그의 신분적 배경과 뚜렷이 대비되었다. 새로운 학문 경향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의 이름이 『선조 실록』에 나오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부 7장, 389~390쪽, 이정철 지음
나주에서 비롯된 정개청을 둘러싼 갈등은 그가 가진 두 가지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그가 미천한 향리 가문 출신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데도 높은 수준의 도학 이해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그가 획득한 새로운 학문은 신분상 약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명문 사대부 가문 제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여전히 사장과 문사는 과거 급제를 위해서 중요한 학술적 기능이었다. 학문의 목적이 과거 급제이고, 도학 이해가 아닌 관료 지위가 지배 신분의 조건이라면 새로운 경향인 도학은 필수적이지 않았다. 다수의 유생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홍천경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정개청을 둘러싼 갈등은 향권, 즉 지방 고을 내의 주도권을 둘러싼 지역적 갈등일 뿐만 아니라, 신분적 갈등임과 동시에 당대의 학문적 경향 사이의 갈등이기도 했다. (4부 7장, 407쪽)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4부 7장, 407쪽, 이정철 지음
참, 흥미로운 벽돌 책 후보 가운데 재야 역사학자 딜런 유 선생님께서 쓰신『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뿌리와이파리)이라는 종잡을 수 없는 신간도 있습니다. 저는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연말에 읽을 책으로 찜해 뒀어요!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370여 년 전 조선의 해안에 불시착하여 17세기 전 지구적 소빙기의 혹독한 겨울을 넘기기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밥을 얻어먹었다던 사람들, 그 사람들처럼 넓은 바다를 건너 지구의 이쪽저쪽을 왔다갔다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인연을 맺었던 바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와, 진짜로 재미있는 책의 기운이 솔솔 느껴지는데요. 목차도 뭔가 통통 튀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 ㅎㅎ 뿌리와이파리는 좋은 책들을 많이 내주는 것 같아요.
우와 이 책 정말 재미있어 보이네요! 저도 찜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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