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그러면 최근의 범죄 감소를 설명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많은 사회 과학자가 시도했으나, 그들이 얻은 최선의 결론은 원인이 다중적이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원인들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너무나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두 가지 포괄적인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는 리바이어던이 더 강해졌고, 똑똑해졌고, 효율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둘째는 1960년대에 반문화가 전복하려고 애썼던 예의 문명화 과정이 제 방향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문명화 과정은 아예 새 국면에 접어들었던 것 같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투옥은 억제 효과가 있었다. 복잡한 통계보다 현실의 실험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1969년 몬트리올 경찰 파업에 주목해 보자. 경찰들이 근무지를 떠난 지 몇 시간 만에, 안전하기로 유명한 그 도시에서 은행 강도 6건, 방화 12건, 약탈 100여 건, 살인 2건이 벌어졌다. 곧 경찰들이 불려 와서 질서를 회복해야만 했다. 하지만 투옥 열풍이 범죄감소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물샐틈없을 만큼 확고하지는 않다. 우선, 감옥 열품은 1980년대에 시작되었지만 폭력 감소는 10년 뒤에야 시작되었다. 캐나다에서는 투옥 열풍이 없었는데도 폭력률이 낮아졌다. 물론 이런 사실이 투옥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이론을 반증하지는 않겠지만, 연구자는 추가의 가정을 덧붙일 수밖에 없다. 투옥 효과는 시간에 따라 누적되다가 임계를 넘어서면 국경을 건너서까지 넘친다거나 하는 식으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더 커지고 똑똑해진 경찰력이 실제로 범죄를 줄였을까? 여기에 대한 연구는 혼란스러운 변수들 때문에 사회 과학 연구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전형적인 사례이지만, 대충 큰 그림만 보자면 답은 '일부 그렇다'이다. 정확히 어떤 개혁이 솜씨를 부렸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여러 분석이 암시하는 바, 달라진 치안의 어떤 요소인가가 실제로 범죄를 줄였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깨진 유리창 이론에서) 단정한 환경이 책임감을 일깨우는 까닭에 대해서 (네덜란드의 세 )연구자들은 그것이 억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흐로닝언 경찰은 쓰레기 투기를 거의 처벌하지 않는다.) 사회적 규범을 신호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장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규칙을 지킨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1990년대 범죄율 폭락을 이해하려면, 궁극적으로는 규범의 변화를 살펴보아야 한다. 30년 전의 범죄 급증을 설명할 때도 규범의 변화가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미국에서는, 특히 뉴욕에서는 치안 개혁이 거의 틀림없이 폭력의 급감을 거들었지만, 캐나다와 서유럽은 미국 수준으로 감옥과 경찰을 증강하지 않았는데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비슷한 감소세를 겪었다. 덕분에 끈질긴 범죄 통계학자들 중에서도 일부는 손을 들었고, 측량하기 어려운 문화적, 심리적 변화가 설명의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만 결론 내렸다. 1990년대의 대대적인 범죄 감소는 재문명화 과정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감수성 변화의 일환이었다. 우선 1960년대의 얼빠진 생각들 중 일부가 매력을 잃었다. 공산주의의 몰락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 경제적, 인도적 파국을 깨우침으로써 혁명적 폭력에서 낭만성을 지웠고, 총구를 겨눠 부를 재분배한다는 지혜를 대해서도 의심을 품었다. 강간과 성적 학대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기분 좋다면 저질러라'라는 정서는 해방이기보다 불쾌하게 느껴졌다. 도심 폭력의 타락상은 - 운전자의 총기 난사에 걸음마 하는 아기들이 맞는 것, 십대들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던 교회에 불량배가 칼을 휘두르며 난입하는 것 - 더 이상 인종 차별이나 빈곤에 대한 반응으로서 이해할 만하다고 치부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 결과, 문명화 공세가 밀어닥쳤다. 7장에서 이야기하겠지만 1960년대가 남긴 긍정적 유산은 시민권, 여성권, 아동권, 동성애자 권리를 둘러싼 혁명이었다. 이 유산은 베이비붐 세대가 기성세대가 된 1990년대부터 세를 굳혔다. 강간, 폭행, 증오 범죄, 동성애자 괴롭히기, 아동 학대가 타파해야 할 표적이 되자, 법과 질서는 반동적 대의에서 진보적 대의로 재편되었다. 사람들이 취약한 집단을 위해 집, 직장, 학교, 거리를 안전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자 (가령 페미니스트들의 '밤을 되찾자' 시위), 모두에게 더 안전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지난 20년의 재문명화 과정은 단순히 중세 이래 서구를 휩쓸었던 문명화 흐름이 재개된 것만은 아니었다. 원래의 문명화 과정은 국가 통합과 상업 성장의 부산물이었지만, 최근의 범죄 감소는 대체로 사람들의 안녕을 도모하고자 의도적으로 설계한 문명화 공세들의 결과였다. 문명에 따르는 겉치레들이 우리가 진심으로 중시하는 감정 이입 및 자기 통제 능력과 분리된 것도 새로운 점이었다. 1990년대가 1960년대의 비문명화를 도로 뒤집지 않은 유일한 영역은 대중문화였다. 평크, 메탈, 고스, 그런지, 갱스터, 힙합 같은 최신 장르의 대중 음악가들에 비하면 롤링 스톤스는 여성 기독교 금주 협회처럼 보인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유혈 낭자하다. 마우스를 한 번만 클릭하면 제약이라고는 없는 포르노를 볼 수 있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전혀 새로운 폭력적 오락이 중요한 여가 활동이 되었다. 그러나 문화에서는 이처럼 퇴폐의 징후가 불어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오히려 폭력이 줄었다. 재문명화의 과정은 문화의 시계를 <오지와 해리엇> 시절로 되감지 않고도 어찌어찌 사회적 역기능의 파고를 되돌린 셈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카스 바우터르스는 만년의 엘리아스와 나눴던 대화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가 문명화 과정의 새 단계를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내가 앞에서 언급했던 장기적 탈형식화 경향성과 같은 말이다. 엘리아스가 '감정적 통제에 대한 통제된 비통제'라고 불렀던 것, 바우터르스가 제3의 천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 과정에서 생겨난다. 우리의 제1의 천성은 자연적인 삶을 다스리는 진화된 동기들로 이뤄져 있고, 제2의 천성은 문명사회에서 내면화된 관습들로 이뤄져 있다. 제3의 천성은 그런 관습들에 대한 의식적 고찰로 이뤄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고찰을 통해서 우리는 문화 규범 중 어떤 측면은 고수할 가치가 있고 어떤 측면은 효용이 다했는지를 평가한다. 수백 년 전 선조들은 자발성과 개인성의 징후를 모조리 찍어눌러야만 스스로를 문명화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비폭력의 규범이 공고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구식이 되어 버린 일부 금지들은 오히려 어겨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면, 요즘 여자들이 살갗을 많이 드러내거나 남자들이 공공장소에서 욕설을 하는 것은 문화적 퇴락의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회가 이미 철저히 문명화되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해도 남들이 괴롭히거나 공격할 걱정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소설가 로버트 하워드는 이렇게 말했다. "문명화된 인간은 미개인보다 더 무례하다. 버릇없이 굴어도 머리통이 쪼개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칼로 포크에 콩을 얹어도 되는 시대는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핑커가 왜 무례한지 알 것 같은 대목이다?😂),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고문을 동원한 처형은 지하 감옥에 숨겨지기는커녕 대중의 오락이었다. 구경꾼들은 피해자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광경을 보면서 환성을 올렸다. 바퀴에 부서진 몸, 교수대에 매달린 몸, 철창에 갇힌 채 방치되어 비바람을 맞으며 굶어 죽은 피해자의 썩어 가는 몸. 이런 것은 익숙한 일상 풍경이었다. (지금도 뮌스터 대성당과 같은 유럽의 몇몇 공공건물에는 그런 철창이 매달려 있다.). 고문은 또 참여 스포츠였다. 구경꾼들은 차꼬에 매인 피해자를 간질이고, 때리고, 절단하고, 돌로 치고, 진흙과 배설물을 짓이겨 질식하게 만들었다. 제도적 잔인함은 결코 유럽만의 일이 아니었다. 다른 문명들의 기록에도 수백만 명의 피해자에게 가해졌던 수백 가지 고문 기법들이 남아 있다. 아시리아, 페르시아, 셀레우코스, 로마, 중국, 힌두, 폴리네시아, 아즈텍, 많은 아프리카 왕국과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에. 잔혹한 살해와 처벌은 이스라엘, 그리스, 아랍, 오스만 투르크 사람들의 기록에도 남아 있다. 2장의 마지막에서 보았듯이, 최초의 복잡한 문명들은 사실상 모두 고문과 절단으로 피해자 없는 범죄를 처벌했던 전제주의 신정 정치였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이런 힘(진보적 사상과 감수성의 변화)이 융합되어,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생겨났다. 생명과 행복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는 이데올로기, 이성과 증거를 사용하여 제도를 설계하는 이데올로기. 이런 이데올로기를 휴머니즘(humanism)이나 인권(human rights)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고, 이 이데올로기가 18세기 후반 서구인의 삶에 갑작스럽게 미친 충격을 인도주의 혁명 (Humanitarian Revolution)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요즘은 계몽주의(Enlightment)를 조소하듯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좌파의 '비판 이론가'들은 계몽주의가 20세기 재앙의 원인이었다고 비난한다. 바티칸과 미국 지적 우파의 보수적 신정주의자들은 계몽주의의 관용적 세속주의를 버리고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도덕적으로 더 명료한 주세 가톨릭의 원칙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온건한 세속적 작가들조차 계몽주의를 샌님들의 복수였다고 여기며, 인간을 요정과도 같은 합리적 행위자라고 믿었던 순진한 신념이라고 폄훼한다. 이런 황당한 기억 상실과 배은망덕이 가능한 것은 역사의 자연스러운 눈속임 때문이다. 1장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과거의 잔학 행위 이면에 있었던 현식을 망각의 구덩이에 던져 버린 채, 오직 진부한 관용어구나 상징으로만 그것을 기억한다. 이 장의 서두가 지나치게 시각적이었는가? 나는 계몽주의가 끝장낸 옛 현실이 어땠는지를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그랬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인간 제물은 매혹적인 신화, 그 이상이었다. 2000년 전의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게르만 부족이 그 풍습을 따르는 것을 실제로 목격했다고 썼다. 플루타르코스는 카르타고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을 묘사했다. 오늘날 관광객은 그곳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그을린 유해를 볼 수 있다. 인간 제물은 하와이, 스칸디나비아, 잉카, 켈트(습지에서 발견된 린도맨을 기억하는가?) 전통 부족들에서도 기록되었다. 멕시코의 아즈텍, 인도 동남부의 콘드, 서아프리카의 아샨티, 베닌, 아호메 사람들 사이에서도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었고, 수천 명씩 희생되곤 했다. 매슈 화이트는 1440~1524년 사이에 아즈텍에서 매일 약 40명이 희생되었다고 추정했다. 기간 전체로는 120만 명인 셈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정치학자 제임스 페인은 폭력의 역사를 다룬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에서 이런 의견을 냈다. 고대에는 고통과 죽음이 너무나 흔했기 때문에 고대인들이 타인의 생명에 낮은 가치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는 풍습이라면, 설령 그 대가가 타인의 목숨을 바치는 것일지라도, 그런 행위에 대한 문턱이 낮아졌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 풍습(인간 제물)이 저절로 사라졌다.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원전 600년경에 폐지되었고, 그리스 로마, 중국, 일본에서는 그로부터 몇 백 년 뒤에 폐지되었다. 국가가 문해능력을 갖추며 성숙해지자, 왜인지는 몰라도 결국 사람들은 인간 제물을 포기했다. 한 가지 설명은 엘리트의 문해 능력, 역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이웃 사회와의 접촉이 결합함으로써 사람들이 피에 굶주린 신이라는 가설은 틀렸다고 판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처녀를 화산에 던져도 병이 낫거나, 적에게 이기거나, 날씨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추론해 냈다. 또 다른 설명도 있다. 페인은 이쪽을 선호하는데, 사람들이 좀 더 부유하고 예측 가능한 삶을 살게 되면서 숙명론이 좀먹었고, 타인의 생명에 대한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두 이론 모두 가능성이 있지만, 증명하기는 둘 다 어렵다. 인간 제물 폐지와 맞물렸던 과학적, 경제적 변화를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프랑스와 독일의 마녀사냥꾼들은 (15세기) 이후 200년 동안 6만~10만 명에 이르는 마녀들을 죽였다.(85퍼센트가 여성이었다.). 처형은 보통 화형이었고, 사전에 고문을 가하여 죄를 고백시켰다. 아기를 잡아먹었다거나, 배를 난파시켰다거나, 작물을 파괴했다거나, 안식일에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녔다거나, 악마와 교접했다거나, 악마인 연인을 개나 고양이로 변신시켰다거나, 평범한 남자에게 음경이 사라졌다고 믿게 만듦으로써 불능으로 만들었다거나 하는 죄목이었다. 마녀 고발의 심리는 또 다른 피의 비방으로 변질되었다.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유월절에 기독교인의 아이를 죽여 그 피로 무교병을 만든다는 헛소문이 빈번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탓에 주세, 영국, 프랑스, 독일, 북해 저지대 국가들에서 유대인이 수천 명 학살되어, 해당 지역의 유대 인구가 몰살하기도 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중세와 근대 초기 기독교 세계에서 이단자와 불신자를 박해하느라 낸 희생자의 수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20세기가 유독 폭력적인 시대라는 통념을 뒤엎는다. ... 1095~1208년 사이, 십자군이 소집되었다. 십자군은 무슬림 투르크에게서 예루살렘을 수복하는 '정당한 전쟁'을 치름으로써 죄를 사하고 천국행 티켓을 얻으려 했다. 십자군은 행군하는 도중에 만난 유대 마을들을 파괴했다. 니카이아, 안티오케이아, 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프를 포위하여 약탈한 뒤, 무슬림과 유대 인구를 모조리 학살했다. 럼멜은 사망자 수를 100만 명으로 추정한다. 다시 세계 인구는 약 4억 명으로 20세기 중반의 6분의 1쯤이었으니, 십자군 학살의 사망자 수를 오늘날의 인구에 대한 비율로 계산하면 약 600만 명이다. 나치의 유대인 집단 살해에 맞먹는 셈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이 전쟁들(1520~1648년 사이의 종교전쟁)의 사망률은 어마어마했다. 30년 전재에서는 오늘날 독일에 해당하는 지역의 대부분이 초토화되었고, 인구는 3분의 1 가까이 줄었다. 럼멜은 사망자를 575만 명으로 보는데, 당시 세계 인구에 대한 비율로 계산하면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 사망률의 두 배가 넘고 제 2차 세계 대전 사망률과 엇비슷하다. 역사학자 사이먼 샤마는 영국 내전으로 50만 명가량이 죽었다고 추정하는데, 비율로 따지면 제1차 세계 대전보다 큰 손실이다. 유럽인들은 17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릇된 미신적 신념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대한 열의를 잃었다. 30년 전쟁을 마감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은 모든 지방 군주가 제 나라를 개신교 국가나 가톨릭 국가로 결정할 수 있고 소수 교파도 그 속에서 그럭저럭 평화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종교재판소는 17세기부터 기세가 꺾였고, 18세기에 더욱 쇠퇴하여, 1834년과 1821년에 각각 문을 닫았다.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종교적 살해를 그만두었다. 기독교 세계의 여러 분파들은 지금까지도 간헐적으로 작은 충돌을 일으키지만(북아일랜드의 개신교와 가톨릭, 발칸 반도의 카톨릭과 정교회), 오늘날의 분쟁은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인종적이거나 정치적이다. 유대인은 1790년대부터 서구 사회에서 동등한 법적 권리를 인정받았다. 처음에는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에서였고, 이후 한 세기에 걸쳐서 유럽의 나머지 지역에서도 그렇게 되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한가지 짐작되는 요인은, 사람들이 인간의 생명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존중은 일면 정서적 변화였다. 사람들에게 타인의 고통과 즐거움에 동일시하는 습관이 생겨난 것이었다. 그러나 또 어떤 면에서는 지적, 도덕적 변화였다. 영혼에 가치를 두는 태도가 생명에 가치를 두는 태도로 바뀐 것이었다. 영혼의 신성함이라는 교리는 얼핏 고상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대단히 해롭다. ... 영혼이 아니라 생명을 도덕적 가치의 소재지로 여기는 점진적 변화를 거든 것은 회의주의와 이성의 득세였다. 누구도 삶과 죽음의 차이나 고통의 존재 따위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불멸의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간 뒤에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신념을 지니려면 세뇌가 필요하다. 이성의 시대라고 불리는 17세기는 작가들이 경험과 논리로써 신념을 정당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런 주장은 영혼과 구원에 대한 교리를 잠식했고, 남들에게 칼을 겨눠 (혹은 유다의 요람 따위를 써서) 못 믿을 일을 믿게끔 강요해야 한다는 정책을 무너뜨렸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나는 그림 4-2와 이 장의 다른 그래프들에서 18세기의 시작과 끝을 표시해 두었다. 이 놀라운 역사적 시기에 얼마나 많은 인도주의 개혁이 개시되었는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또 다른 개혁은 동물에 대한 잔인한 행위를 금한 것이었다. 1789년에 제러미 벤담은 지금까지도 동물 보호 운동의 표어로 쓰이는 문장을 통해서 동물권의 논리를 설명했다. "문제는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다. 그들이 말할 수 있는가 없는가도 아니다. 그들이 고통을 느끼는가 아닌가이다." 1800년에는 곰 곯리기를 금지하는 최초의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었다. 1822년에 의회는 '가축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고, 1835년에는 보호 범위를 황소, 곰, 개, 고양이까지 넓혔다. 계몽 시대에 생겨난 인도주의 운동들이 으레 그랬듯이, 동물에 대한 잔인함에 반대하는 운동은 권리 혁명의 시대였던 20세기 후반에 두 번째 바람을 탔다. 2005년에는 영국에서 최후까지 남은 법적 유혈 스포츠, 즉 여우 사냥이 금지되어 절정을 이루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1783년에 영국이 낙하식 교수형을 도입하고 1792년에 프랑스가 단두대를 도입했을 때, 그것은 도덕적 발전이었다. 피해자의 의식을 순식간에 앗아 가는 처형은 괴로움을 질질 끄는 처형보다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처형은 극심한 폭력이었다. ... 18세기가 끝날 무렵, 사형이 사형 길에 올랐다. 예로부터 시끌벅적한 축제나 마찬가지였던 공개 교수형은 영국에서 1783년에 폐지되었다. 교수대에 시체를 전시해 두던 관행은 1834년에 폐지되었고, 222건이었던 사형 죄목은 1861년에 4건으로 줄었다. 19세기에는 많은 유럽 국가가 살인과 반역죄 이외의 다른 범죄들에 대해서 사형집행을 그만두었고, 결국 거의 모든 서구 국가들이 사형 자체를 폐지했다. 그림 4-3을 보면 이야기가 빠르다. 현재 유럽의 53개 국가 중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일반적인 범죄에 대한 사형 언도를 폐지했다 (한 줌의 국가들은 반역과 심각한 군사적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사형을 명시하고 있다.). 사형 폐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속되었지만, 한참 전부터 인기를 잃었다. 가령 네덜란드는 1982년 공식적으로 사형을 폐지했지만, 1860년 이래 한 명도 처형하지 않았다. 국가가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한 때와 공식적으로 사형을 폐지한 때 사이의 간격은 평균 50년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대부분의 문명 역사에서, 노예 제도는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었다. 히브리 성경과 기독교 성경은 노예제를 변호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문명사회에 꼭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제도로 정당화했다. 민주정을 표방했던 아테네에서도 페리클레스의 시대에 인구의 35퍼센트가 노예였다. 로마 공화국에서도 그랬다. 노예는 언제나 중요한 전리품이었고, 나라 없는 사람들은 인종을 막론하고 노예로 붙잡힐 위험에 시달렸다. 노예라는 뜻의 단어 슬레이브(slave)는 슬라브(Slav)에서 왔는데, 사전이 알려 주듯이 '중세에 슬라브 사람들이 노예로 널리 포획되고 부려졌기 때문이다.' 국가와 군대는 노예 포획 장치로 기능하지 않을 때는 자기 백성들의 노예화 방지 장치로 기능했다. ... 아프리카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에게 노예로 잡히기 한참 전부터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노예로 잡혔고,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에게도 예속되었다. 그런 나라들은 최근 들어서야 노예제를 법적으로 폐지했다. 카타르는 1952년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맨은 1962년에, 모리타니는 1980년에 폐지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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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평전> 함께 읽으실래요? [김영사/책증정] 대화도 음악이 된다!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함께 읽어요[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차무진 작가와 <어떤, 클래식>을 읽어 보아요. [그믐밤] 33. 나를 기록하는 인터뷰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수북플러스] 7. 무성음악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그믐이 자신 있게 고른 이 시대의 고전
[그믐클래식 2025] 1월, 일리아스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그믐클래식 2025] 3월, 군주론 [그믐클래식 2025] 4월, 프랑켄슈타인
ifrain과 함께 천천히 읽는 과학책
[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1부[도서증정][김세진 일러스트레이터+박숭현 과학자와 함께 읽는]<극지로 온 엉뚱한 질문들>
[그믐연뮤클럽] X [웰다잉 오디세이 2026]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계속계속 책읽기 by Kiara
2024.01.19. <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2024.01.17. <참 괜찮은 눈이 온다 _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2024.01.16. <이 별이 마음에 들어> 김하율2024.01.14. <각자 도사 사회> 송병기2026.01.01. <아무튼, 데모> 정보라2026.01.02. <버드 캐칭>
박산호 작가의 인터뷰집
[웰다잉 오디세이 2026] 2. 죽음을 인터뷰하다 책 증정 [박산호 x 조영주] 인터뷰집 <다르게 걷기>를 함께 읽어요 [책 증정] <이대로 살아도 좋아>를 박산호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책방연희>북클럽도 많관부!
[책방연희 북클럽] 정보라, 최의택 작가와 함께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 읽기정명섭 작가와 <어차피 우리 집도 아니잖아>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읽기
함께 읽은 논어 vs 혼자 읽은 논어
[벽돌책 독파] 주자와 다산의 대결 <두 개의 논어> 편집자와 함께 읽기 《논어》 혼자 읽기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희곡 함께 읽을 친구, 당근에선 못 찾았지만 그믐에는 있다!
플레이플레이땡땡땡
걸리버가 세상에 나온지 3백년이 되었습니다
[그믐밤] 44. <걸리버 여행기> 출간 300주년, 새로운 세상 상상하기 [마포독서가문] 서로서로 & 조은이책: <걸리버 여행기>로 20일간 여행을 떠나요!<서울국제도서전> 함께 기대하며 나누는 설렘, 그리고 책으로 가득 채울 특별한 시간!걸리버가 안내하는 날카로운 통찰에 대하여
<코스모스> 꼭 읽게 해 드리겠습니다!
2026년 새해 첫 책은 코스모스! 코스모스, 이제는 읽을 때가 되었다![인생 과학책] '코스모스'를 완독할 수 있을까?
김규식의 시대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1. <김규식과 그의 시대> (1)[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소설로 읽는 인류세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1회차-마션[소설로 기후위기/인류세 읽기] 『야성의 부름』 잭 런던, 1903.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속에 심는 작은 씨앗
[루멘렉투라/도서 증정] 나의 첫, 브랜딩 레슨 - 내 브랜드를 만들어보아요.스토리 탐험단 세번째 여정 '히트 메이커스'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일과 나 사이에 바로 서는 법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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