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이런 힘(진보적 사상과 감수성의 변화)이 융합되어,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생겨났다. 생명과 행복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는 이데올로기, 이성과 증거를 사용하여 제도를 설계하는 이데올로기. 이런 이데올로기를 휴머니즘(humanism)이나 인권(human rights)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고, 이 이데올로기가 18세기 후반 서구인의 삶에 갑작스럽게 미친 충격을 인도주의 혁명 (Humanitarian Revolution)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요즘은 계몽주의(Enlightment)를 조소하듯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좌파의 '비판 이론가'들은 계몽주의가 20세기 재앙의 원인이었다고 비난한다. 바티칸과 미국 지적 우파의 보수적 신정주의자들은 계몽주의의 관용적 세속주의를 버리고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도덕적으로 더 명료한 주세 가톨릭의 원칙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온건한 세속적 작가들조차 계몽주의를 샌님들의 복수였다고 여기며, 인간을 요정과도 같은 합리적 행위자라고 믿었던 순진한 신념이라고 폄훼한다. 이런 황당한 기억 상실과 배은망덕이 가능한 것은 역사의 자연스러운 눈속임 때문이다. 1장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과거의 잔학 행위 이면에 있었던 현식을 망각의 구덩이에 던져 버린 채, 오직 진부한 관용어구나 상징으로만 그것을 기억한다. 이 장의 서두가 지나치게 시각적이었는가? 나는 계몽주의가 끝장낸 옛 현실이 어땠는지를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그랬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인간 제물은 매혹적인 신화, 그 이상이었다. 2000년 전의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게르만 부족이 그 풍습을 따르는 것을 실제로 목격했다고 썼다. 플루타르코스는 카르타고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을 묘사했다. 오늘날 관광객은 그곳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그을린 유해를 볼 수 있다. 인간 제물은 하와이, 스칸디나비아, 잉카, 켈트(습지에서 발견된 린도맨을 기억하는가?) 전통 부족들에서도 기록되었다. 멕시코의 아즈텍, 인도 동남부의 콘드, 서아프리카의 아샨티, 베닌, 아호메 사람들 사이에서도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었고, 수천 명씩 희생되곤 했다. 매슈 화이트는 1440~1524년 사이에 아즈텍에서 매일 약 40명이 희생되었다고 추정했다. 기간 전체로는 120만 명인 셈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정치학자 제임스 페인은 폭력의 역사를 다룬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에서 이런 의견을 냈다. 고대에는 고통과 죽음이 너무나 흔했기 때문에 고대인들이 타인의 생명에 낮은 가치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는 풍습이라면, 설령 그 대가가 타인의 목숨을 바치는 것일지라도, 그런 행위에 대한 문턱이 낮아졌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 풍습(인간 제물)이 저절로 사라졌다.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원전 600년경에 폐지되었고, 그리스 로마, 중국, 일본에서는 그로부터 몇 백 년 뒤에 폐지되었다. 국가가 문해능력을 갖추며 성숙해지자, 왜인지는 몰라도 결국 사람들은 인간 제물을 포기했다. 한 가지 설명은 엘리트의 문해 능력, 역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이웃 사회와의 접촉이 결합함으로써 사람들이 피에 굶주린 신이라는 가설은 틀렸다고 판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처녀를 화산에 던져도 병이 낫거나, 적에게 이기거나, 날씨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추론해 냈다. 또 다른 설명도 있다. 페인은 이쪽을 선호하는데, 사람들이 좀 더 부유하고 예측 가능한 삶을 살게 되면서 숙명론이 좀먹었고, 타인의 생명에 대한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두 이론 모두 가능성이 있지만, 증명하기는 둘 다 어렵다. 인간 제물 폐지와 맞물렸던 과학적, 경제적 변화를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프랑스와 독일의 마녀사냥꾼들은 (15세기) 이후 200년 동안 6만~10만 명에 이르는 마녀들을 죽였다.(85퍼센트가 여성이었다.). 처형은 보통 화형이었고, 사전에 고문을 가하여 죄를 고백시켰다. 아기를 잡아먹었다거나, 배를 난파시켰다거나, 작물을 파괴했다거나, 안식일에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녔다거나, 악마와 교접했다거나, 악마인 연인을 개나 고양이로 변신시켰다거나, 평범한 남자에게 음경이 사라졌다고 믿게 만듦으로써 불능으로 만들었다거나 하는 죄목이었다. 마녀 고발의 심리는 또 다른 피의 비방으로 변질되었다.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유월절에 기독교인의 아이를 죽여 그 피로 무교병을 만든다는 헛소문이 빈번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탓에 주세, 영국, 프랑스, 독일, 북해 저지대 국가들에서 유대인이 수천 명 학살되어, 해당 지역의 유대 인구가 몰살하기도 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중세와 근대 초기 기독교 세계에서 이단자와 불신자를 박해하느라 낸 희생자의 수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20세기가 유독 폭력적인 시대라는 통념을 뒤엎는다. ... 1095~1208년 사이, 십자군이 소집되었다. 십자군은 무슬림 투르크에게서 예루살렘을 수복하는 '정당한 전쟁'을 치름으로써 죄를 사하고 천국행 티켓을 얻으려 했다. 십자군은 행군하는 도중에 만난 유대 마을들을 파괴했다. 니카이아, 안티오케이아, 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프를 포위하여 약탈한 뒤, 무슬림과 유대 인구를 모조리 학살했다. 럼멜은 사망자 수를 100만 명으로 추정한다. 다시 세계 인구는 약 4억 명으로 20세기 중반의 6분의 1쯤이었으니, 십자군 학살의 사망자 수를 오늘날의 인구에 대한 비율로 계산하면 약 600만 명이다. 나치의 유대인 집단 살해에 맞먹는 셈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이 전쟁들(1520~1648년 사이의 종교전쟁)의 사망률은 어마어마했다. 30년 전재에서는 오늘날 독일에 해당하는 지역의 대부분이 초토화되었고, 인구는 3분의 1 가까이 줄었다. 럼멜은 사망자를 575만 명으로 보는데, 당시 세계 인구에 대한 비율로 계산하면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 사망률의 두 배가 넘고 제 2차 세계 대전 사망률과 엇비슷하다. 역사학자 사이먼 샤마는 영국 내전으로 50만 명가량이 죽었다고 추정하는데, 비율로 따지면 제1차 세계 대전보다 큰 손실이다. 유럽인들은 17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릇된 미신적 신념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대한 열의를 잃었다. 30년 전쟁을 마감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은 모든 지방 군주가 제 나라를 개신교 국가나 가톨릭 국가로 결정할 수 있고 소수 교파도 그 속에서 그럭저럭 평화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종교재판소는 17세기부터 기세가 꺾였고, 18세기에 더욱 쇠퇴하여, 1834년과 1821년에 각각 문을 닫았다.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종교적 살해를 그만두었다. 기독교 세계의 여러 분파들은 지금까지도 간헐적으로 작은 충돌을 일으키지만(북아일랜드의 개신교와 가톨릭, 발칸 반도의 카톨릭과 정교회), 오늘날의 분쟁은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인종적이거나 정치적이다. 유대인은 1790년대부터 서구 사회에서 동등한 법적 권리를 인정받았다. 처음에는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에서였고, 이후 한 세기에 걸쳐서 유럽의 나머지 지역에서도 그렇게 되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한가지 짐작되는 요인은, 사람들이 인간의 생명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존중은 일면 정서적 변화였다. 사람들에게 타인의 고통과 즐거움에 동일시하는 습관이 생겨난 것이었다. 그러나 또 어떤 면에서는 지적, 도덕적 변화였다. 영혼에 가치를 두는 태도가 생명에 가치를 두는 태도로 바뀐 것이었다. 영혼의 신성함이라는 교리는 얼핏 고상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대단히 해롭다. ... 영혼이 아니라 생명을 도덕적 가치의 소재지로 여기는 점진적 변화를 거든 것은 회의주의와 이성의 득세였다. 누구도 삶과 죽음의 차이나 고통의 존재 따위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불멸의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간 뒤에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신념을 지니려면 세뇌가 필요하다. 이성의 시대라고 불리는 17세기는 작가들이 경험과 논리로써 신념을 정당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런 주장은 영혼과 구원에 대한 교리를 잠식했고, 남들에게 칼을 겨눠 (혹은 유다의 요람 따위를 써서) 못 믿을 일을 믿게끔 강요해야 한다는 정책을 무너뜨렸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나는 그림 4-2와 이 장의 다른 그래프들에서 18세기의 시작과 끝을 표시해 두었다. 이 놀라운 역사적 시기에 얼마나 많은 인도주의 개혁이 개시되었는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또 다른 개혁은 동물에 대한 잔인한 행위를 금한 것이었다. 1789년에 제러미 벤담은 지금까지도 동물 보호 운동의 표어로 쓰이는 문장을 통해서 동물권의 논리를 설명했다. "문제는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다. 그들이 말할 수 있는가 없는가도 아니다. 그들이 고통을 느끼는가 아닌가이다." 1800년에는 곰 곯리기를 금지하는 최초의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었다. 1822년에 의회는 '가축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고, 1835년에는 보호 범위를 황소, 곰, 개, 고양이까지 넓혔다. 계몽 시대에 생겨난 인도주의 운동들이 으레 그랬듯이, 동물에 대한 잔인함에 반대하는 운동은 권리 혁명의 시대였던 20세기 후반에 두 번째 바람을 탔다. 2005년에는 영국에서 최후까지 남은 법적 유혈 스포츠, 즉 여우 사냥이 금지되어 절정을 이루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1783년에 영국이 낙하식 교수형을 도입하고 1792년에 프랑스가 단두대를 도입했을 때, 그것은 도덕적 발전이었다. 피해자의 의식을 순식간에 앗아 가는 처형은 괴로움을 질질 끄는 처형보다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처형은 극심한 폭력이었다. ... 18세기가 끝날 무렵, 사형이 사형 길에 올랐다. 예로부터 시끌벅적한 축제나 마찬가지였던 공개 교수형은 영국에서 1783년에 폐지되었다. 교수대에 시체를 전시해 두던 관행은 1834년에 폐지되었고, 222건이었던 사형 죄목은 1861년에 4건으로 줄었다. 19세기에는 많은 유럽 국가가 살인과 반역죄 이외의 다른 범죄들에 대해서 사형집행을 그만두었고, 결국 거의 모든 서구 국가들이 사형 자체를 폐지했다. 그림 4-3을 보면 이야기가 빠르다. 현재 유럽의 53개 국가 중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일반적인 범죄에 대한 사형 언도를 폐지했다 (한 줌의 국가들은 반역과 심각한 군사적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사형을 명시하고 있다.). 사형 폐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속되었지만, 한참 전부터 인기를 잃었다. 가령 네덜란드는 1982년 공식적으로 사형을 폐지했지만, 1860년 이래 한 명도 처형하지 않았다. 국가가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한 때와 공식적으로 사형을 폐지한 때 사이의 간격은 평균 50년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대부분의 문명 역사에서, 노예 제도는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었다. 히브리 성경과 기독교 성경은 노예제를 변호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문명사회에 꼭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제도로 정당화했다. 민주정을 표방했던 아테네에서도 페리클레스의 시대에 인구의 35퍼센트가 노예였다. 로마 공화국에서도 그랬다. 노예는 언제나 중요한 전리품이었고, 나라 없는 사람들은 인종을 막론하고 노예로 붙잡힐 위험에 시달렸다. 노예라는 뜻의 단어 슬레이브(slave)는 슬라브(Slav)에서 왔는데, 사전이 알려 주듯이 '중세에 슬라브 사람들이 노예로 널리 포획되고 부려졌기 때문이다.' 국가와 군대는 노예 포획 장치로 기능하지 않을 때는 자기 백성들의 노예화 방지 장치로 기능했다. ... 아프리카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에게 노예로 잡히기 한참 전부터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노예로 잡혔고,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에게도 예속되었다. 그런 나라들은 최근 들어서야 노예제를 법적으로 폐지했다. 카타르는 1952년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맨은 1962년에, 모리타니는 1980년에 폐지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노예 무역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장이다. 16~19세기까지 적어도 150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대서양을 건너는 노예선에서 죽어갔다. ... 노예 상인들은 얼음 장수의 사업 모형에 따라 자신들의 화물을 취급했다. 즉 화물의 일정 비율이 운반 중에 으레 없어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노예 무역으로 죽어간 아프리카인의 수는 적어도 1700만 명이고, 어쩌면 6500만 명에 육박한다. 노예 무역은 운송 중에 사람들을 죽였을 뿐더러, 생생한 육체를 끊임없이 공급함으로써 소유주들이 노예를 죽도록 부려 먹고 새 노예로 교체하도록 장려했다. 상대적으로 건강한 노예들도 채찍질, 강간, 절단, 가족과의 생이별, 즉결 처형의 그늘에서 살아갔다. 시대를 불문하고 일부 소유주들은 노예와 개인적으로 친해진 뒤에는 그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노예들의 뜻에 따른 경우도 있었다. 중세 유럽을 비롯한 일부 장소에서는 노예제가 차츰 농노와 소작제로 바뀌었다. 사람들을 속박해 두는 것보다 풀어 주고 세금을 거두는 편이 더 쌌기 때문이거나, 국가가 약해서 소유주들의 재산권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도로서의 노예 소유에 반대하는 대중 운동은 18세기 초에야 일어났고, 이후 급속히 그 관습을 멸종으로 몰아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노예제를 끝내려면 총과 법이 필요한 때가 많았다. 한때 가장 왕성한 노예 무역 국가였던 영국은 1807년에 노예 무역을 법으로 금했고, 1833년에는 제국 전체에서 폐지했다. 1840년대에는 경제 제재와 해군력의 4분의 1 가량을 투입하면서까지 다른 나라들에게도 노예 무역에서 발을 빼라고 압력을 가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미국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던 전쟁이 끝난 1865년, 노예제는 헌법 수정 제13조에 따라 폐지되었다. 다른 나라들은 그 전에 폐지한 곳이 많았고, 프랑스는 멋쩍게도 두 번이나 폐지했다. 처음은 1794년 프랑스 혁명의 여파에서였고, 1802년에 나폴레옹이 다시 허락한 뒤 1848년에 제2공화정에서 두 번째로 폐지되었다. 다른 나라들도 신속히 뒤따랐다. ... 폐지 선언은 18세기 말부터 폭발적으로 늘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이성의 시대와 계몽주의는 여러 폭력적 제도를 갑작스럽게 끝장냈다. 반면에 또 다른 두 가지 폭력은 지속력이 강했고, 이후에도 200년 동안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자행되었다. 폭정, 그리고 주요국 사이의 전쟁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18세기에 시범적으로 실시된 민주주의들은 복잡한 신기술의 1.0버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영국의 실행은 강도가 약했고, 프랑스의 실행은 지독한 재앙이었고, 미국의 실행에는 흠이 있었다. 배우 아이스티는 토머스 제퍼슨의 헌법 초안을 검토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라는 말로 그 흠을 멋지게 꼬집었다. "보자. 발언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깜둥이는 소유할 수 있음. ...... 괜찮은 걸!" 그러나 모든 형태의 민주주의는 그 설계를 개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민주주의는 비록 제한적이기는 해도 종교 재판, 잔인한 처벌, 전제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을 규정해 두었고, 그 영역이 스스로를 확장할 수단도 포함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자명한 진리로 믿는 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미국 독립 선언서의 이 발언은, 비록 당시에는 위선으로 보였을지라도, 그로부터 87년 뒤에 노예제를 끝장낼 때나 그보다 또 한 세기 뒤에 다른 인종적 탄압을 불식시킬 때 사람들이 끄집어내어 내세울 근거가 되었다. 그것은 헌법에 내장된 권리 확장 장치였다. 세상에 풀려난 민주주의의 이상은 갈수록 널리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정부의 등장 이래로 가장 효율적인 폭력 감소 요인이 되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전쟁을 반대하는 도덕적 논거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에서 이 논리(반전)는 채택되지 못했다. ... 하나는 남이 존재한다는 문제다. 어떤 나라가 전쟁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하지만 이웃 나라는 계속한다고 하자. 그 나라의 쇠스랑은 이웃의 창에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고, 그 나라는 침략군을 맞이하는 입장에 처할 것이다. ... 반전 정서가 세력을 얻으려면, 동시에 많은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쳐야 한다. 그리고 경제적, 정치적 제도를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 전쟁 없는 미래라는 전망은 모두들 갑자기 착해져서 계속 그렇게 살기를 희망하는 데 의존할 수밖에 없다. 평화주의는 이성의 시대와 계몽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기특하지만 효과 없는 정서였던 것이 실제적 의제를 지닌 운동으로 진화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셰익스피어의 팔스타프는 역사상 너무나 많은 폭력의 근원이었던 명예의 관념에 대해서 문학 역사상 가장 훌륭한 분석을 선보인다. 할 왕자가 "자네는 신에게 죽음을 빚졌네." 라고 말하면서 전투에 나갈 것을 종용하자, 팔스타프는 이런 생각에 빠진다. -아직 기한이 안 됐어. 그전에 미리 갚기는 싫다고. 독촉도 받지 않았는데 이렇게 일찌감치 나서서 갚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래, 그런 건 상관없는 일이지. 다만 명예가 나를 찔러 댈 뿐. 그래, 하지만 내가 나설 때 그 명예란 놈이 손을 떼면 어떡한다? 명예가 잘린 다리를 도로 붙여 주나? 어림없지. 팔은? 어림없지. 부상의 고통을 없애 주나? 어림없지. 그러면 명예란 놈은 수술의 재주가 전혀 없단 말인가? 없고말고. 그러면 명예란 대체 무엇이지? 말일 뿐이지. 그러면 명예란 말은 대체 무엇이지? 공기일 뿐이지. 계산이 나오는군! 누가 명예를 갖고 있지? 요전 수요일에 죽은 그 놈이지. 그가 그걸 느낄까? 아니지. 그가 그 소리를 들을까? 아니지. 그러면 그것은 느껴지지도 않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지. 죽은 사람에게는. 그렇다면 명예란 것이 산 사람과는 함께 살지 않는단 말인가? 바로 그거야. 왜지? 사람들의 험담이 그걸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내게 그것은 필요 없어. 명예란 묘비에 새겨진 비문일 뿐. 이것으로 내 교리문답은 끝내겠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전쟁의 위선과 비열함을 암시한 풍자와 더불어, 18세기에는 전쟁의 비합리성과 회피 가능성을 주장한 이론들이 등장했다. 선두에 선 것은 온화한 상업 이론이었다. 상업의 포지티브섬 이득이 전쟁의 제로섬 혹은 네거티브섬 비용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 대관절 왜 돈과 피를 흘려가며 타국을 침략해 재물을 약탈한단 말인가? 더 적은 비용으로 그것을 사 올 수 있고, 우리도 그들에게 팔 수 있는데? 생 피에르 신부(1713년), 몽테스키외(1748년), 애덤 스미스(1776년), 조지 워싱턴(1788년), 이마누엘 칸트(1795년) 등은 자유 무역이 각국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하나로 묶음으로써 상대의 안녕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무역을 찬양했다.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조만간 모든 사람들에게 상업 정신이 전파될 것이다. 그것은 전쟁과 공존할 수 없다. ...... 따라서 국가들은 엄격한 도덕적 동기에서는 아닐지라도, 어쨌든 고결한 평화의 대의를 장려할 수밖에 없다." 퀘이커 교도들은 노예제 폐지 조직을 만들었던 것처럼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 조직을 만들었다. 퀘이커파가 비폭력에 헌신한 것은 신이 개개인의 생명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신앙 때문이었지만, 그들이 금욕적인 기술 파괴주의자가 아니라 영향력 있는 사업가였다는 점도 대의에 전혀 손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갖가지 활동 중에서도 특히 런던 로이즈 보험 협회, 바클레이스 은행, 펜실베이니아 식민지를 세웠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당시의 반전 문건들 중에서 제일 주목할 만한 것은 칸트의 1795년 에세이 <영구 평화론>이다. 칸트는 몽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에세이의 제목에 대한 자조적 고백으로부터 글을 시작했는데, 어느 여관의 간판에 묘지 사진과 함께 그 말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어 칸트는 영구 평화를 향한 여섯 단계의 예비 조치를 설명하고, 세 가지 포괄적 원칙을 설명했다. 예비 단계는 다음과 같다. 평화 조약에서 전쟁이라는 선택지를 아예 없앨 것, 국가가 다른 국가를 흡수하지 말 것, 상비군을 폐지할 것, 정부가 돈을 빌려 전쟁 자금을 대지 말 것,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개입하지 말 것, 교전국들은 암살, 독살, 반역 선동 등 향후의 평화에 대한 신뢰를 해치는 전술을 피할 것. 칸트의 '절대 조항'들은 더 흥미롭다.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해 굳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다른 글에서 "비뚤어진 나뭇가지와도 같은 인간성에서는 진정으로 곧바른 것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쓰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홉스식 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전쟁이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공공연한 적대감이 항시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쟁의 위협이 상존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 상태를 의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서로의 적대감에 대해 안전을 확보하려면 그저 적대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나라들이 이웃 나라들에게 안전을 약속하지 않는 한(이런 일은 문명국가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나라들은 안전을 요구하는 이 이웃 나라를 적으로 취급할 것이다. 칸트는 이어 영구 평화의 세가지 조건을 개괄했다. 첫째, 국가들은 민주 국가여야 한다. ... 칸트는 두 가지 이유에서 민주 국가들은 서로 잘 싸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민주 국가가 애초에 비폭력을 기초로 설계된 정부('순수한 법 개념에서 생겨난 정부') 형태이기 때문이다. 민주 정부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힘을 행사한다. 칸트는 또 민주국가가 다른 나라를 다룰 때도 이 원칙을 외면화하기 쉽다고 추론했다. 나른 나라라고 해서 자국 국민보다 더 무력 지배를 받아 마땅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점으로, 민주 국가는 전쟁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전쟁의 이득은 지도자들에게 돌아가지만 그 대가는 국민들이 치르기 때문이다. ... 칸트가 꼽은 영구 평화의 두 번째 조건은 "각국의 법률이 자유 국가들의 연방에 기초할 것"이었다. 그는 "국가 연맹"이라고도 표현했다. 일종의 국제 리바이어던인 이 연방은 분쟁에 대해 객관적인 제삼자의 심판을 제공한다. ... 영구 평화의 세 번째 조건은 '보편적 환대' 혹은 '세계 시민권'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 군대를 끌고 가지 않은 이상 다른 나라에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통과 상업처럼 국경을 넘는 '평화적 관계'가 세계 인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엮음으로써 '한 장소에서의 권리 침해가 전 세계에서 느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괴담 좋아하시는 분들 여기로!
[그믐앤솔러지클럽] 4. [책증정] 도시괴담을 좋아하신다면 『절대, 금지구역』으로 오세요 [책증정] 조선판 다크 판타지 어떤데👀『암행』 정명섭 작가가 풀어주는 조선 괴담[책증정]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함께 읽어요!!
🎵 책으로 듣는 음악
<모차르트 평전> 함께 읽으실래요? [김영사/책증정] 대화도 음악이 된다! <내일 음악이 사라진다면> 함께 읽어요[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차무진 작가와 <어떤, 클래식>을 읽어 보아요. [그믐밤] 33. 나를 기록하는 인터뷰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수북플러스] 7. 무성음악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그믐이 자신 있게 고른 이 시대의 고전
[그믐클래식 2025] 1월, 일리아스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그믐클래식 2025] 3월, 군주론 [그믐클래식 2025] 4월, 프랑켄슈타인
ifrain과 함께 천천히 읽는 과학책
[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1부[도서증정][김세진 일러스트레이터+박숭현 과학자와 함께 읽는]<극지로 온 엉뚱한 질문들>
[그믐연뮤클럽] X [웰다잉 오디세이 2026]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계속계속 책읽기 by Kiara
2024.01.19. <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2024.01.17. <참 괜찮은 눈이 온다 _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2024.01.16. <이 별이 마음에 들어> 김하율2024.01.14. <각자 도사 사회> 송병기2026.01.01. <아무튼, 데모> 정보라2026.01.02. <버드 캐칭>
박산호 작가의 인터뷰집
[웰다잉 오디세이 2026] 2. 죽음을 인터뷰하다 책 증정 [박산호 x 조영주] 인터뷰집 <다르게 걷기>를 함께 읽어요 [책 증정] <이대로 살아도 좋아>를 박산호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책방연희>북클럽도 많관부!
[책방연희 북클럽] 정보라, 최의택 작가와 함께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 읽기정명섭 작가와 <어차피 우리 집도 아니잖아>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읽기
함께 읽은 논어 vs 혼자 읽은 논어
[벽돌책 독파] 주자와 다산의 대결 <두 개의 논어> 편집자와 함께 읽기 《논어》 혼자 읽기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희곡 함께 읽을 친구, 당근에선 못 찾았지만 그믐에는 있다!
플레이플레이땡땡땡
걸리버가 세상에 나온지 3백년이 되었습니다
[그믐밤] 44. <걸리버 여행기> 출간 300주년, 새로운 세상 상상하기 [마포독서가문] 서로서로 & 조은이책: <걸리버 여행기>로 20일간 여행을 떠나요!<서울국제도서전> 함께 기대하며 나누는 설렘, 그리고 책으로 가득 채울 특별한 시간!걸리버가 안내하는 날카로운 통찰에 대하여
<코스모스> 꼭 읽게 해 드리겠습니다!
2026년 새해 첫 책은 코스모스! 코스모스, 이제는 읽을 때가 되었다![인생 과학책] '코스모스'를 완독할 수 있을까?
김규식의 시대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1. <김규식과 그의 시대> (1)[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소설로 읽는 인류세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1회차-마션[소설로 기후위기/인류세 읽기] 『야성의 부름』 잭 런던, 1903.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속에 심는 작은 씨앗
[루멘렉투라/도서 증정] 나의 첫, 브랜딩 레슨 - 내 브랜드를 만들어보아요.스토리 탐험단 세번째 여정 '히트 메이커스'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일과 나 사이에 바로 서는 법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함께 읽기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