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노예 무역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장이다. 16~19세기까지 적어도 150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대서양을 건너는 노예선에서 죽어갔다. ... 노예 상인들은 얼음 장수의 사업 모형에 따라 자신들의 화물을 취급했다. 즉 화물의 일정 비율이 운반 중에 으레 없어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노예 무역으로 죽어간 아프리카인의 수는 적어도 1700만 명이고, 어쩌면 6500만 명에 육박한다. 노예 무역은 운송 중에 사람들을 죽였을 뿐더러, 생생한 육체를 끊임없이 공급함으로써 소유주들이 노예를 죽도록 부려 먹고 새 노예로 교체하도록 장려했다. 상대적으로 건강한 노예들도 채찍질, 강간, 절단, 가족과의 생이별, 즉결 처형의 그늘에서 살아갔다. 시대를 불문하고 일부 소유주들은 노예와 개인적으로 친해진 뒤에는 그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노예들의 뜻에 따른 경우도 있었다. 중세 유럽을 비롯한 일부 장소에서는 노예제가 차츰 농노와 소작제로 바뀌었다. 사람들을 속박해 두는 것보다 풀어 주고 세금을 거두는 편이 더 쌌기 때문이거나, 국가가 약해서 소유주들의 재산권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도로서의 노예 소유에 반대하는 대중 운동은 18세기 초에야 일어났고, 이후 급속히 그 관습을 멸종으로 몰아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노예제를 끝내려면 총과 법이 필요한 때가 많았다. 한때 가장 왕성한 노예 무역 국가였던 영국은 1807년에 노예 무역을 법으로 금했고, 1833년에는 제국 전체에서 폐지했다. 1840년대에는 경제 제재와 해군력의 4분의 1 가량을 투입하면서까지 다른 나라들에게도 노예 무역에서 발을 빼라고 압력을 가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미국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던 전쟁이 끝난 1865년, 노예제는 헌법 수정 제13조에 따라 폐지되었다. 다른 나라들은 그 전에 폐지한 곳이 많았고, 프랑스는 멋쩍게도 두 번이나 폐지했다. 처음은 1794년 프랑스 혁명의 여파에서였고, 1802년에 나폴레옹이 다시 허락한 뒤 1848년에 제2공화정에서 두 번째로 폐지되었다. 다른 나라들도 신속히 뒤따랐다. ... 폐지 선언은 18세기 말부터 폭발적으로 늘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이성의 시대와 계몽주의는 여러 폭력적 제도를 갑작스럽게 끝장냈다. 반면에 또 다른 두 가지 폭력은 지속력이 강했고, 이후에도 200년 동안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자행되었다. 폭정, 그리고 주요국 사이의 전쟁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18세기에 시범적으로 실시된 민주주의들은 복잡한 신기술의 1.0버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영국의 실행은 강도가 약했고, 프랑스의 실행은 지독한 재앙이었고, 미국의 실행에는 흠이 있었다. 배우 아이스티는 토머스 제퍼슨의 헌법 초안을 검토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라는 말로 그 흠을 멋지게 꼬집었다. "보자. 발언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깜둥이는 소유할 수 있음. ...... 괜찮은 걸!" 그러나 모든 형태의 민주주의는 그 설계를 개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민주주의는 비록 제한적이기는 해도 종교 재판, 잔인한 처벌, 전제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을 규정해 두었고, 그 영역이 스스로를 확장할 수단도 포함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자명한 진리로 믿는 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미국 독립 선언서의 이 발언은, 비록 당시에는 위선으로 보였을지라도, 그로부터 87년 뒤에 노예제를 끝장낼 때나 그보다 또 한 세기 뒤에 다른 인종적 탄압을 불식시킬 때 사람들이 끄집어내어 내세울 근거가 되었다. 그것은 헌법에 내장된 권리 확장 장치였다. 세상에 풀려난 민주주의의 이상은 갈수록 널리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정부의 등장 이래로 가장 효율적인 폭력 감소 요인이 되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전쟁을 반대하는 도덕적 논거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에서 이 논리(반전)는 채택되지 못했다. ... 하나는 남이 존재한다는 문제다. 어떤 나라가 전쟁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하지만 이웃 나라는 계속한다고 하자. 그 나라의 쇠스랑은 이웃의 창에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고, 그 나라는 침략군을 맞이하는 입장에 처할 것이다. ... 반전 정서가 세력을 얻으려면, 동시에 많은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쳐야 한다. 그리고 경제적, 정치적 제도를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 전쟁 없는 미래라는 전망은 모두들 갑자기 착해져서 계속 그렇게 살기를 희망하는 데 의존할 수밖에 없다. 평화주의는 이성의 시대와 계몽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기특하지만 효과 없는 정서였던 것이 실제적 의제를 지닌 운동으로 진화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셰익스피어의 팔스타프는 역사상 너무나 많은 폭력의 근원이었던 명예의 관념에 대해서 문학 역사상 가장 훌륭한 분석을 선보인다. 할 왕자가 "자네는 신에게 죽음을 빚졌네." 라고 말하면서 전투에 나갈 것을 종용하자, 팔스타프는 이런 생각에 빠진다. -아직 기한이 안 됐어. 그전에 미리 갚기는 싫다고. 독촉도 받지 않았는데 이렇게 일찌감치 나서서 갚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래, 그런 건 상관없는 일이지. 다만 명예가 나를 찔러 댈 뿐. 그래, 하지만 내가 나설 때 그 명예란 놈이 손을 떼면 어떡한다? 명예가 잘린 다리를 도로 붙여 주나? 어림없지. 팔은? 어림없지. 부상의 고통을 없애 주나? 어림없지. 그러면 명예란 놈은 수술의 재주가 전혀 없단 말인가? 없고말고. 그러면 명예란 대체 무엇이지? 말일 뿐이지. 그러면 명예란 말은 대체 무엇이지? 공기일 뿐이지. 계산이 나오는군! 누가 명예를 갖고 있지? 요전 수요일에 죽은 그 놈이지. 그가 그걸 느낄까? 아니지. 그가 그 소리를 들을까? 아니지. 그러면 그것은 느껴지지도 않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지. 죽은 사람에게는. 그렇다면 명예란 것이 산 사람과는 함께 살지 않는단 말인가? 바로 그거야. 왜지? 사람들의 험담이 그걸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내게 그것은 필요 없어. 명예란 묘비에 새겨진 비문일 뿐. 이것으로 내 교리문답은 끝내겠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전쟁의 위선과 비열함을 암시한 풍자와 더불어, 18세기에는 전쟁의 비합리성과 회피 가능성을 주장한 이론들이 등장했다. 선두에 선 것은 온화한 상업 이론이었다. 상업의 포지티브섬 이득이 전쟁의 제로섬 혹은 네거티브섬 비용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 대관절 왜 돈과 피를 흘려가며 타국을 침략해 재물을 약탈한단 말인가? 더 적은 비용으로 그것을 사 올 수 있고, 우리도 그들에게 팔 수 있는데? 생 피에르 신부(1713년), 몽테스키외(1748년), 애덤 스미스(1776년), 조지 워싱턴(1788년), 이마누엘 칸트(1795년) 등은 자유 무역이 각국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하나로 묶음으로써 상대의 안녕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무역을 찬양했다.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조만간 모든 사람들에게 상업 정신이 전파될 것이다. 그것은 전쟁과 공존할 수 없다. ...... 따라서 국가들은 엄격한 도덕적 동기에서는 아닐지라도, 어쨌든 고결한 평화의 대의를 장려할 수밖에 없다." 퀘이커 교도들은 노예제 폐지 조직을 만들었던 것처럼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 조직을 만들었다. 퀘이커파가 비폭력에 헌신한 것은 신이 개개인의 생명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신앙 때문이었지만, 그들이 금욕적인 기술 파괴주의자가 아니라 영향력 있는 사업가였다는 점도 대의에 전혀 손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갖가지 활동 중에서도 특히 런던 로이즈 보험 협회, 바클레이스 은행, 펜실베이니아 식민지를 세웠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당시의 반전 문건들 중에서 제일 주목할 만한 것은 칸트의 1795년 에세이 <영구 평화론>이다. 칸트는 몽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에세이의 제목에 대한 자조적 고백으로부터 글을 시작했는데, 어느 여관의 간판에 묘지 사진과 함께 그 말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어 칸트는 영구 평화를 향한 여섯 단계의 예비 조치를 설명하고, 세 가지 포괄적 원칙을 설명했다. 예비 단계는 다음과 같다. 평화 조약에서 전쟁이라는 선택지를 아예 없앨 것, 국가가 다른 국가를 흡수하지 말 것, 상비군을 폐지할 것, 정부가 돈을 빌려 전쟁 자금을 대지 말 것,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개입하지 말 것, 교전국들은 암살, 독살, 반역 선동 등 향후의 평화에 대한 신뢰를 해치는 전술을 피할 것. 칸트의 '절대 조항'들은 더 흥미롭다.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해 굳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다른 글에서 "비뚤어진 나뭇가지와도 같은 인간성에서는 진정으로 곧바른 것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쓰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홉스식 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전쟁이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공공연한 적대감이 항시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쟁의 위협이 상존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 상태를 의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서로의 적대감에 대해 안전을 확보하려면 그저 적대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나라들이 이웃 나라들에게 안전을 약속하지 않는 한(이런 일은 문명국가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나라들은 안전을 요구하는 이 이웃 나라를 적으로 취급할 것이다. 칸트는 이어 영구 평화의 세가지 조건을 개괄했다. 첫째, 국가들은 민주 국가여야 한다. ... 칸트는 두 가지 이유에서 민주 국가들은 서로 잘 싸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민주 국가가 애초에 비폭력을 기초로 설계된 정부('순수한 법 개념에서 생겨난 정부') 형태이기 때문이다. 민주 정부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힘을 행사한다. 칸트는 또 민주국가가 다른 나라를 다룰 때도 이 원칙을 외면화하기 쉽다고 추론했다. 나른 나라라고 해서 자국 국민보다 더 무력 지배를 받아 마땅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점으로, 민주 국가는 전쟁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전쟁의 이득은 지도자들에게 돌아가지만 그 대가는 국민들이 치르기 때문이다. ... 칸트가 꼽은 영구 평화의 두 번째 조건은 "각국의 법률이 자유 국가들의 연방에 기초할 것"이었다. 그는 "국가 연맹"이라고도 표현했다. 일종의 국제 리바이어던인 이 연방은 분쟁에 대해 객관적인 제삼자의 심판을 제공한다. ... 영구 평화의 세 번째 조건은 '보편적 환대' 혹은 '세계 시민권'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 군대를 끌고 가지 않은 이상 다른 나라에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통과 상업처럼 국경을 넘는 '평화적 관계'가 세계 인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엮음으로써 '한 장소에서의 권리 침해가 전 세계에서 느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점진적인 감수성 변환은 그 변화를 붓으로 적어서 실행하지 않는 이상 현실의 관행을 바꾸지 못할 때가 많다. 노예 무역 폐지는 도덕적으로 동요한 사람들이 권력자를 설득하여 법을 통과시키고 총과 군함으로 법을 지키도록 만든 결과였다. 유혈 스포츠, 공개 교수형, 잔인한 처벌, 채무자 감옥도 결국 도덕 선동가들의 공개 토론에 감화된 입법가들의 법률 덕분에 금지되었다. 따라서 인도주의 혁명을 설명할 때 암묵적 규범이나 명시적인 도덕적 논증이냐 둘 중 하나로 결정할 필요는 없다. 두 요인은 서로 영향을 미쳤다. 감수성이 변했기 때문에 관습을 의문시하는 사상가들이 쉽게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들의 논리가 더 쉽게 청중을 확보하고 채택되었다. 논리는 권력 수단을 휘두르는 사람들을 설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술집이나 식탁의 일상적인 토론에도 끼어들어 전체 문화의 감수성에 스며듦으로써 한 번에 한 명씩 여론을 바꿨다. 그리고 위에서 어떤 관습을 법으로 금지한 탓에 일상에서 그 행위가 사라지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선택지들의 메뉴에서도 그 행위가 사라진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문명화 과정과 인도주의 혁명은 시기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문명화 과정을 추진했던 정부와 상업의 등장, 살인의 급격한 감소가 이미 수백 년 동안 진행된 와중에도, 사람들은 야만적 처벌, 왕의 권력, 폭력을 동원한 이단자 억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는 강력해질수록 더 잔인해졌다. 일례로 (처벌이 아니라) 자백을 끌어내기 위한 고문은 중세에 많은 나라가 로마법을 되살리면서 다시금 도입했다. 그러니 17세기와 18세기의 인도주의 정서를 가속한 요인은 그와는 다른 무엇이었을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한 대안은, 삶이 편해지면서 사람들이 좀 더 연민을 품게 되었다는 가설이다. 페인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면, 그래서 더 잘 먹고, 더 건강하고, 더 편해지면, 자신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남들의 생명도 더 귀하게 여기게 된다."고 추측했다. ... 물질적 풍요는 19세기 산업 혁명의 도래와 함께 비로소 상승세를 탔다. 1800년 이전에는 맬서스의 수학이 압도했다. 식량 생산이 늘더라도 늘어난 입을 먹이는 데 들어갔기 때문에 인구는 변함없이 가난했다는 뜻이다. 영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였다. 1200~1800년까지 경제적 풍요의 여러 잣대, 가령 소득, 일인당 칼로리, 일인당 단백질, 여성 한 명당 생존하는 자식 수 등은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도 상승세를 보이지 않았다. 수렵 채집 사회의 수준을 가까스로 웃도는 정도였다. 산업 혁명으로 더 효율적인 제조 기법이 도입되고 운하와 철도 같은 하부 구조가 건설된 뒤에야, 유럽 경제가 비로소 성장하기 시작했고 대중이 더 유복해졌다. 그에 반해 우리가 설명하려는 인도주의적 변화들은 17세기에 벌써 시작되었고, 18세기에 가장 집중되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산업 혁명 이전에 일찌감치 생산성이 증대했던 기술로는 책 생산 기술이 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1452년 이전에는 책을 일일이 손으로 써서 만들었다. 그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만 아니라 - 250쪽짜리 책에 해당하는 것을 생산하려면 37인-일이 소요되었다. - 재료와 에너지 면에서도 비효율적이었다. 필사한 글씨는 인쇄한 글씨보다 읽기 어렵기 때문에, 필사본은 더 커야 했다. 따라서 종이를 더 많이 썼고, 장정과 보관과 운송도 더 비쌌다. 구텐베르크 이후 200년 동안 출판은 최첨단 사업이었다. 인쇄와 제지의 생산성은 20배 넘게 높아졌는데 산업 혁명기 영국 경제의 전체 성장률보다 빠른 속도였다. 효율화된 출판 기술은 출간 붐을 일으켰다. 그림 4-9를 보자. 매년 출간되는 권수는 17세기에 상당히 늘었고, 18세기 말로 갈수록 치솟았다. 책은 귀족과 지식인만의 노리개가 아니었다. 문화 연구자 수잔 킨이 말했듯이 "18세기 말에는 런던과 지방 도시에 순회도서관이 널리 보급되었고, 그들이 빌려주는 책은 대부분 소설이었다." 책이 더 많아지고 싸지자, 독서의 유인이 커졌다. ... 그림 4-10클라크가 수집한 두 시계열 데이터가 표시되어 있다. 살펴보면 17세기에 영국의 식자율은 두 배가 되었고, 세기 말에는 영국 남성의 과반수가 읽고 쓸 줄 알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나는 인도주의 혁명의 개시를 거든 외생적 변화로서 쓰기와 읽기 능력의 성장이 제일 유력한 후보라고 생각한다. 마을과 친족으로 이루어진 비좁은 세상은 오감을 통해 접근할 수 있었고, 교회라는 유일한 정보 제공자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사람들, 장소들, 문화들, 사상들로 붐비는 변화무쌍한 만화경이 되었다. 그리고 정신의 확자은 여러 이유에서 대중의 감정과 신념에 좀 더 인간적인 면을 더해 주었을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모든 문화는 제 친족, 친구, 아기에 대해서는 공감으로 반응하면서도 그보다 더 넓은 범위의 이웃, 낯선 사람, 외부자, 그 밖의 감각 있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그런 반응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철학자 피터 싱어는 <확장하는 원 - 사회 생물학과 윤리>(번역서 제목은 '사회 생물학과 윤리'이다- 옮긴이)에서 인류가 자기 못지않게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의 범위를 역사적으로 점차 넓혀왔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의문이 떠오른다. 과연 무어시 감정 이입의 범위를 넓혔을까? 문해 능력의 확장이 좋은 후보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독서는 관첨 취하기(perspective-taking)의 기술이다. 당신의 머릿 속에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셈이다. 당신이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장면과 소리를 접하는 것은 물론, 그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잠시나마 그의 태도와 반응을 공유한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누군가의 관점을 채택한다는 의미의 '감정 이입(empathy)은 그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는 의미의 '감정 이입'과는 다르다. 그러나 전자는 자연스럽게 후자로 이어진다. 당신은 타인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그도 당신과 굉장히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은 어떤 일인칭, 현재 시제, 지속적인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남의 글을 읽는 버릇을 통해서 남의 생각 속으로, 나아가 그의 기쁨과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버릇을 갖게 된다고 말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칼을 뒤집어써서 얼굴이 흙빛이 된 남자, 불타는 장작을 밀어내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여자, 200번째 채찍질에 몸부림치는 남자, 이런 사람들의 관점으로 잠시나마 들어가 본다면, 우리가 그런 잔인한 짓을 누구에게든 꼭 가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인의 관점을 취하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도 사람들의 믿음을 바꿀 수 있다. 외국인, 탐험가, 역사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당연시되던 규범을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명시적인 관찰로 ('그것이 현재 우리 부족의 방식이야.') 바꾸는 것이다. 이런 자의식은 그 관행을 다른 방식으로 할 수는 없는지를 자문하게 되는 첫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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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캠퍼스는 사상의 복잡성뿐만 아니라 품질도 높인다. 은둔한 고립 상태에서는 갖가지 기이하고 유해한 사상이 곪기 쉽다. 그때 최고의 소독제는 햇빛이다. 나쁜 사상을 다른 사람들이 비판적 시선에 노출시키는 것은 그것이 시들어 죽어갈 계기를 제공하는 셈이다. 따라서 문예 공화국에서는 미신, 독단, 전설의 수명이 짧아진다. 범죄 통제와 국정 운영에 대한 나쁜 생각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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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성경을 문헌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인격적 신의 여지를 제거한 범신론을 발전시켰고 그래서 1656년에 유대인 공동체에서 제명 당했다. 사람들은 종교 재판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한 터라 그의 책이 주변 기독교인들에게 파문을 일으킬까 봐 염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는 그 사건이 딱히 비극은 아니었다. 만일 그가 고립된 마을에 살았다면 괴로웠겠지만, 그는 그저 짐을 싸 들고 다른 동네로 옮겼다가 다시 네덜란드의 관용적인 도시 레이덴으로 옮겼다. 그가 옮긴 곳의 작가, 사상가, 예술가 사회는 그를 환영했다. 존 로크도 1683년에 찰스 2세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샀을 때 암스테르담을 피신처로 이용했다. 르네 데카르트도 자주 주소를 바꿨다. 한 장소에서 머물다가 분위기가 격해지면 옮기는 식으로 홀란드와 스웨덴을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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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사람의 유입이 지니는 전복의 힘은 일찍이 정치적, 종교적 폭군에게 효과가 없었던 적이 없다. 폭군들이 말과 글과 조직을 억압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민주 국가들이 권리 장전에서 그 통로들을 보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도시와 문해력이 성장하기 전에는 해방적인 사상이 생겨나고 통합되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17세기와 18세기에 성장한 세계주의는 인도주의 혁명에 부분적으로 기여했다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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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달라도 인간의 기본 반응은 공통된다는 사실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다. 첫째, 그것은 보편적 본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공통의 기쁨과 고통, 공통의 추론 기법, 공통적인 어리석음에의 취약성이 (복수에의 갈망은 물론이다.) 다 포함될 것이다. ... 보편 심리의 또 다른 의미는, 전혀 다른 사람들끼리도 원칙적으로는 정신의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이성에 호소하여 당신을 설득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나와 당신이 둘 다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의거하여, 나와 당신이 둘 다 받아들이는 표준 논리와 증거를 이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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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책증정] 미술을 보는 다양한 방법, <그림을 삼킨 개>를 작가와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그믐 앤솔러지 클럽에서 읽고 있습니다
[그믐앤솔러지클럽] 3. [책증정] 일곱 빛깔로 길어올린 일곱 가지 이야기, 『한강』[그믐앤솔러지클럽] 2. [책증정] 6인 6색 신개념 고전 호러 『귀신새 우는 소리』[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
듣고 이야기했어요
[밀리의서재로 듣기]오디오북 수요일엔 기타학원[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팟캐스트/유튜브] 《AI시대의 다가올 15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같이 듣기
⏰ 그믐 라이브 채팅 : 최구실 작가와 함께한 시간 ~
103살 차이를 극복하는 연상연하 로맨스🫧 『남의 타임슬립』같이 읽어요💓
매달 다른 시인의 릴레이가 어느덧 12달을 채웠어요.
[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 12월] '오늘부터 일일'[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11월] '물끄러미' 〔날 수를 세는 책 읽기- 10월 ‘핸드백에 술을 숨긴 적이 있다’〕
어두운 달빛 아래, 셰익스피어를 읽었어요
[그믐밤] 35.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1탄 <햄릿>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
독서모임에 이어 북토크까지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스토리 수련회 : 첫번째 수련회 <호러의 모든 것> (with 김봉석)[책증정] 저자와 함께 읽기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오프라인북토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AI 에 관한 다양한 시선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결과물과 가치중립성의 이면[도서 증정]《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AI 메이커스> 편집자와 함께 읽기 /제프리 힌턴 '노벨상' 수상 기념[도서 증정] <먼저 온 미래>(장강명)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AI 이후의 세계 함께 읽기 모임
독자에게 “위로와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이희영
[도서 증정] 『안의 크기』의 저자 이희영 작가님,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이희영 장편소설 『BU 케어 보험』 함께 읽어요![선착순 마감 완료] 이희영 작가와 함께 신간 장편소설 《테스터》 읽기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만나는 철학자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책걸상 함께 읽기] #52.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도서 증정] 순수이성비판 길잡이 <괘씸한 철학 번역>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증정]《너를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니체가 말했다》 저자&편집자와 읽어요!
<피프티 피플> 인물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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