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점진적인 감수성 변환은 그 변화를 붓으로 적어서 실행하지 않는 이상 현실의 관행을 바꾸지 못할 때가 많다. 노예 무역 폐지는 도덕적으로 동요한 사람들이 권력자를 설득하여 법을 통과시키고 총과 군함으로 법을 지키도록 만든 결과였다. 유혈 스포츠, 공개 교수형, 잔인한 처벌, 채무자 감옥도 결국 도덕 선동가들의 공개 토론에 감화된 입법가들의 법률 덕분에 금지되었다. 따라서 인도주의 혁명을 설명할 때 암묵적 규범이나 명시적인 도덕적 논증이냐 둘 중 하나로 결정할 필요는 없다. 두 요인은 서로 영향을 미쳤다. 감수성이 변했기 때문에 관습을 의문시하는 사상가들이 쉽게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들의 논리가 더 쉽게 청중을 확보하고 채택되었다. 논리는 권력 수단을 휘두르는 사람들을 설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술집이나 식탁의 일상적인 토론에도 끼어들어 전체 문화의 감수성에 스며듦으로써 한 번에 한 명씩 여론을 바꿨다. 그리고 위에서 어떤 관습을 법으로 금지한 탓에 일상에서 그 행위가 사라지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선택지들의 메뉴에서도 그 행위가 사라진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문명화 과정과 인도주의 혁명은 시기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문명화 과정을 추진했던 정부와 상업의 등장, 살인의 급격한 감소가 이미 수백 년 동안 진행된 와중에도, 사람들은 야만적 처벌, 왕의 권력, 폭력을 동원한 이단자 억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는 강력해질수록 더 잔인해졌다. 일례로 (처벌이 아니라) 자백을 끌어내기 위한 고문은 중세에 많은 나라가 로마법을 되살리면서 다시금 도입했다. 그러니 17세기와 18세기의 인도주의 정서를 가속한 요인은 그와는 다른 무엇이었을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한 대안은, 삶이 편해지면서 사람들이 좀 더 연민을 품게 되었다는 가설이다. 페인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면, 그래서 더 잘 먹고, 더 건강하고, 더 편해지면, 자신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남들의 생명도 더 귀하게 여기게 된다."고 추측했다. ... 물질적 풍요는 19세기 산업 혁명의 도래와 함께 비로소 상승세를 탔다. 1800년 이전에는 맬서스의 수학이 압도했다. 식량 생산이 늘더라도 늘어난 입을 먹이는 데 들어갔기 때문에 인구는 변함없이 가난했다는 뜻이다. 영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였다. 1200~1800년까지 경제적 풍요의 여러 잣대, 가령 소득, 일인당 칼로리, 일인당 단백질, 여성 한 명당 생존하는 자식 수 등은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도 상승세를 보이지 않았다. 수렵 채집 사회의 수준을 가까스로 웃도는 정도였다. 산업 혁명으로 더 효율적인 제조 기법이 도입되고 운하와 철도 같은 하부 구조가 건설된 뒤에야, 유럽 경제가 비로소 성장하기 시작했고 대중이 더 유복해졌다. 그에 반해 우리가 설명하려는 인도주의적 변화들은 17세기에 벌써 시작되었고, 18세기에 가장 집중되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산업 혁명 이전에 일찌감치 생산성이 증대했던 기술로는 책 생산 기술이 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1452년 이전에는 책을 일일이 손으로 써서 만들었다. 그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만 아니라 - 250쪽짜리 책에 해당하는 것을 생산하려면 37인-일이 소요되었다. - 재료와 에너지 면에서도 비효율적이었다. 필사한 글씨는 인쇄한 글씨보다 읽기 어렵기 때문에, 필사본은 더 커야 했다. 따라서 종이를 더 많이 썼고, 장정과 보관과 운송도 더 비쌌다. 구텐베르크 이후 200년 동안 출판은 최첨단 사업이었다. 인쇄와 제지의 생산성은 20배 넘게 높아졌는데 산업 혁명기 영국 경제의 전체 성장률보다 빠른 속도였다. 효율화된 출판 기술은 출간 붐을 일으켰다. 그림 4-9를 보자. 매년 출간되는 권수는 17세기에 상당히 늘었고, 18세기 말로 갈수록 치솟았다. 책은 귀족과 지식인만의 노리개가 아니었다. 문화 연구자 수잔 킨이 말했듯이 "18세기 말에는 런던과 지방 도시에 순회도서관이 널리 보급되었고, 그들이 빌려주는 책은 대부분 소설이었다." 책이 더 많아지고 싸지자, 독서의 유인이 커졌다. ... 그림 4-10클라크가 수집한 두 시계열 데이터가 표시되어 있다. 살펴보면 17세기에 영국의 식자율은 두 배가 되었고, 세기 말에는 영국 남성의 과반수가 읽고 쓸 줄 알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나는 인도주의 혁명의 개시를 거든 외생적 변화로서 쓰기와 읽기 능력의 성장이 제일 유력한 후보라고 생각한다. 마을과 친족으로 이루어진 비좁은 세상은 오감을 통해 접근할 수 있었고, 교회라는 유일한 정보 제공자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사람들, 장소들, 문화들, 사상들로 붐비는 변화무쌍한 만화경이 되었다. 그리고 정신의 확자은 여러 이유에서 대중의 감정과 신념에 좀 더 인간적인 면을 더해 주었을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모든 문화는 제 친족, 친구, 아기에 대해서는 공감으로 반응하면서도 그보다 더 넓은 범위의 이웃, 낯선 사람, 외부자, 그 밖의 감각 있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그런 반응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철학자 피터 싱어는 <확장하는 원 - 사회 생물학과 윤리>(번역서 제목은 '사회 생물학과 윤리'이다- 옮긴이)에서 인류가 자기 못지않게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의 범위를 역사적으로 점차 넓혀왔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의문이 떠오른다. 과연 무어시 감정 이입의 범위를 넓혔을까? 문해 능력의 확장이 좋은 후보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독서는 관첨 취하기(perspective-taking)의 기술이다. 당신의 머릿 속에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셈이다. 당신이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장면과 소리를 접하는 것은 물론, 그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잠시나마 그의 태도와 반응을 공유한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누군가의 관점을 채택한다는 의미의 '감정 이입(empathy)은 그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는 의미의 '감정 이입'과는 다르다. 그러나 전자는 자연스럽게 후자로 이어진다. 당신은 타인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그도 당신과 굉장히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은 어떤 일인칭, 현재 시제, 지속적인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남의 글을 읽는 버릇을 통해서 남의 생각 속으로, 나아가 그의 기쁨과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버릇을 갖게 된다고 말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칼을 뒤집어써서 얼굴이 흙빛이 된 남자, 불타는 장작을 밀어내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여자, 200번째 채찍질에 몸부림치는 남자, 이런 사람들의 관점으로 잠시나마 들어가 본다면, 우리가 그런 잔인한 짓을 누구에게든 꼭 가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인의 관점을 취하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도 사람들의 믿음을 바꿀 수 있다. 외국인, 탐험가, 역사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당연시되던 규범을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명시적인 관찰로 ('그것이 현재 우리 부족의 방식이야.') 바꾸는 것이다. 이런 자의식은 그 관행을 다른 방식으로 할 수는 없는지를 자문하게 되는 첫 단계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지구촌 캠퍼스는 사상의 복잡성뿐만 아니라 품질도 높인다. 은둔한 고립 상태에서는 갖가지 기이하고 유해한 사상이 곪기 쉽다. 그때 최고의 소독제는 햇빛이다. 나쁜 사상을 다른 사람들이 비판적 시선에 노출시키는 것은 그것이 시들어 죽어갈 계기를 제공하는 셈이다. 따라서 문예 공화국에서는 미신, 독단, 전설의 수명이 짧아진다. 범죄 통제와 국정 운영에 대한 나쁜 생각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스피노자는 성경을 문헌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인격적 신의 여지를 제거한 범신론을 발전시켰고 그래서 1656년에 유대인 공동체에서 제명 당했다. 사람들은 종교 재판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한 터라 그의 책이 주변 기독교인들에게 파문을 일으킬까 봐 염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는 그 사건이 딱히 비극은 아니었다. 만일 그가 고립된 마을에 살았다면 괴로웠겠지만, 그는 그저 짐을 싸 들고 다른 동네로 옮겼다가 다시 네덜란드의 관용적인 도시 레이덴으로 옮겼다. 그가 옮긴 곳의 작가, 사상가, 예술가 사회는 그를 환영했다. 존 로크도 1683년에 찰스 2세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샀을 때 암스테르담을 피신처로 이용했다. 르네 데카르트도 자주 주소를 바꿨다. 한 장소에서 머물다가 분위기가 격해지면 옮기는 식으로 홀란드와 스웨덴을 오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정보와 사람의 유입이 지니는 전복의 힘은 일찍이 정치적, 종교적 폭군에게 효과가 없었던 적이 없다. 폭군들이 말과 글과 조직을 억압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민주 국가들이 권리 장전에서 그 통로들을 보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도시와 문해력이 성장하기 전에는 해방적인 사상이 생겨나고 통합되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17세기와 18세기에 성장한 세계주의는 인도주의 혁명에 부분적으로 기여했다고 할 만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문화가 달라도 인간의 기본 반응은 공통된다는 사실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다. 첫째, 그것은 보편적 본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공통의 기쁨과 고통, 공통의 추론 기법, 공통적인 어리석음에의 취약성이 (복수에의 갈망은 물론이다.) 다 포함될 것이다. ... 보편 심리의 또 다른 의미는, 전혀 다른 사람들끼리도 원칙적으로는 정신의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이성에 호소하여 당신을 설득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나와 당신이 둘 다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의거하여, 나와 당신이 둘 다 받아들이는 표준 논리와 증거를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도덕성이란 웬 복수심 강한 신이 불러 주었거나 어떤 책에 적혀 있는 임의적인 규제들의 집합이 아니다. 특정 문화와 부족의 관습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관점을 바꿔 본 결과이다. 이 세상에 허락된 포지티브섬 게임의 기회이다. 세계의 주요 종교들이 발견한 여러 형태의 황금률에 이런 도덕의 기초가 드러나 있다. 스피노자가 말한 영원의 관점(Viewpoint of Eternity), 칸트의 정언 명령(Categorical Imprerative), 홉스와 루소의 사회적 계약(Social Contract), 로크와 제퍼슨이 말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자명한 진실'에도 드러나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메디슨은 이렇게 물었다. "정부란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큰 고찰이 아니고 달리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인간 본성의 악덕들에 잘 대응하도록 민주주의를 설계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특히 지도자의 권력 남용 유혹에 대비해야 했다. 미국 혁명가들인간 본성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점이야말로 프랑스 혁명가들과 제일 크게 다른 점이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혁명가들은 낭만적이게도 자신들이 인간의 한계를 없애고 있다고 믿었다. ... 나는 <빈 서판>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두 극단적인 전망이 - 결점에 체념하는 비극적 전망과 결점을 부정하는 유토피아적 전망 - 정치적 우파와 좌파 이데올로기의 깊은 괴리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현대 과학에 비추어 인간 본성을 더 잘 이해함으로써 둘 중 어느 쪽보다도 더 세련된 정치로 가는 길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인간의 마음은 빈 서판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정치 체제도 지도자를 신격화하거나 시민을 개조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에는 자기 참조적이고 수정 가능하고 조합론적인 추론 체계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제 한계를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 시대 인간들의 추론에 흠이나 오류가 있었다고 해서 계몽주의적 인도주의의 엔진인 합리성 자체를 반박할 수는 없다. 이성은 늘 한 발 물러설 수 있다. 늘 결함에 주목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그 결함에 넘어가지 않도록 규칙을 수정할 수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반계몽주의는 19세기에 세를 떨친 여러 낭만적 운동들의 원천이었다. 그중 일부는 예술에 영향을 미쳐, 숭고한 음악과 시를 남겼다. 다른 일부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되어, 폭력의 감소세를 뒤집는 끔찍한 사건들을 낳았다. '피와 흙(blood and soil)'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전투적 민족주의가 그런 이데올로기였는데, 민족 집단과 그 유래가 된 땅은 독특한 도덕적 특징을 지닌 유기적 총체이며 그 장엄함과 영광이 개별 구성원들의 생명과 행복보다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20세기는 인류가 영영 타락으로 빠져든 세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20세기의 도덕적 경향성은 폭력을 꺼리는 인도주의였다. 그 경향성은 계몽 시대에 시작되었고, 점증하는 파괴력의 주체들과 결합된 반계몽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잠깐 가려졌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 기세를 되찾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20세기 폭력적 사망 건수가 이전보다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20세기의 인구 자체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1950년의 세계 인구는 25억 명이었다. 그것은 1800년의 약 2.5배에 해당하고, 1600년의 4.5배, 1300년의 7배, 기원후 1년의 15배이다. 그러니 우리가 가령 1600년의 전쟁과 20세기 중반 전쟁의 파괴력을 비교하려면 1600년의 사망자 수에 4.5를 곱해야 한다. ... 가용성 편향과 20세기 인구 폭발을 바로잡는다면, 즉 역사책을 파헤쳐서 당시의 세계 인구에 따라 사망자 수를 조정한다면, 20세기의 잔학 행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많은 전쟁과 학살을 만나게 된다. 다음 표는 화이트가 '(아마도) 인간이 서로에게 행한 나쁜 짓 주 최악의 20(여)가지'라고 부른 목록이다. ... 아마도 많은 독자는 (우리가 아는 한) 인간이 서로에게 행한 최악의 나쁜 짓 21건 중 14건이 20세기 이전 사건들이라는 점에 놀랐으리라. 더구나 이것은 절대 숫자로 따진 것이다. 인구에 대한 비로 조정하면, 20세기의 잔학 행위 중에서 딱 하나만 상위 10건에 포함된다. 역사상 최악의 잔학행위는 안녹산의 난과 내전이었다. 당나라에서 8년 동안 벌어졌던 그 사건 때문에, 인구 조사에 의하면 당시 총 인구의 3분의 2가 희생되었다. 그것은 당시 세계 인구의 6분의 1이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한편 내러티브 역사학에 따르면 옛 문명들도 충분히 엄청난 규모의 학살을 저지를 수 있었다. 기술적 후진성은 장애물이 아니었다. 오늘날 르완다나 캄보디아만 보아도 마체테나 굶주림과 같은 저차원의 기술로 어마어마한 수를 죽이지 않았는가. 먼 옛날의 살인 기술이 죄다 단순한 기술이었던 것만도 아니다. 전투 무기는 당대 최신 기술을 자랑하는 게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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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송 과정에서는 사건들의 간격이 지수적으로 분포된다. 달리 말해, 긴 간격일수록 더 적게 발생한다. 이것은 무작위로 발생하는 사건들이 마치 무리 지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건들이 고르게 분포되려면 오히려 비무작위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 이런 인지적 착각에 처음 주목한 사람은 수학자 윌리엄 펠러였다. 그는 1968년에 쓴 확률 교과서의 고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훈련 받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무작위성이 규칙성, 혹은 무리 짓는 경향성으로 보인다." ... 전쟁의 시기에 대해 리처드슨이 발견한 중요한 사실은 그 시작이 무작위적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전쟁의 신인 마르스가 매 순간 주위를 굴려, 1이 두 개 나오면 두 나라를 골라 전쟁을 시킨 것과 마찬가지다. ... 전재의 이런 푸아송적 특징은 역사에서 가상의 무리들로 이루어진 별자리를 찾아내는 내러티브를 망가뜨린다. 또한 인류 역사에서 거대한 패턴, 주기, 변증법을 찾는 이론들을 당황시킨다. 사실, 끔찍한 충돌이 한 번 벌어졌다고 해서 세계가 전쟁에 지쳐 평화로운 소강상태를 맞는 일은 없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설령 전쟁이 장기간에 걸쳐 무작위로 분포하더라도, 가끔은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일례로 제1차 세계 대저니 발발함으로써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과 비슷한 전쟁이 터질 확률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우리가 통계로 사고할 때, 특히 무리 짓기 망상을 인식할 때, 역사의 이런 일관된 내러티브를 과장하기 쉽다. 주기, 크레셴도, 충돌 경로 같은 역사적 세력 때문에 그 사건은 반드시 일어나야 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확률들이 다 갖춰져 있었더라도, 대단히 우연한 어떤 사건들이 없었다면 규모 6이나 7의 사망자를 내는 전쟁은 터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우연은 우리가 역사의 테이프를 되감아 다시 돌린다면 그때도 똑같이 발생하란 법이 없다. 1999년에 화이트는 그해에 가장 자주 이야기되었던 질문에 답해 보았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였을까?" 라는 질문이었다. 화이트의 선택은 가브릴로 프린치프였다. 대관절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누구야? 프린치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보스니아를 방문했을 때 그를 암살했던 19세기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였다. 일련의 실수들과 사고들이 이어지는 바람에 대공이 프린치프의 저격 거리 안에 들어왔던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나치 집단 살해도 마찬가지다. 6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집단 살해 연구자들은 사회학자 밀턴 힘벨파브의 1984년 에세이 제목에 대체로 동의한다. "히틀러가 없다면 홀로코스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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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멘렉투라/도서 증정] 나의 첫, 브랜딩 레슨 - 내 브랜드를 만들어보아요.스토리 탐험단 세번째 여정 '히트 메이커스'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일과 나 사이에 바로 서는 법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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