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도덕성이란 웬 복수심 강한 신이 불러 주었거나 어떤 책에 적혀 있는 임의적인 규제들의 집합이 아니다. 특정 문화와 부족의 관습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관점을 바꿔 본 결과이다. 이 세상에 허락된 포지티브섬 게임의 기회이다. 세계의 주요 종교들이 발견한 여러 형태의 황금률에 이런 도덕의 기초가 드러나 있다. 스피노자가 말한 영원의 관점(Viewpoint of Eternity), 칸트의 정언 명령(Categorical Imprerative), 홉스와 루소의 사회적 계약(Social Contract), 로크와 제퍼슨이 말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자명한 진실'에도 드러나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메디슨은 이렇게 물었다. "정부란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큰 고찰이 아니고 달리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인간 본성의 악덕들에 잘 대응하도록 민주주의를 설계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특히 지도자의 권력 남용 유혹에 대비해야 했다. 미국 혁명가들인간 본성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점이야말로 프랑스 혁명가들과 제일 크게 다른 점이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혁명가들은 낭만적이게도 자신들이 인간의 한계를 없애고 있다고 믿었다. ... 나는 <빈 서판>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두 극단적인 전망이 - 결점에 체념하는 비극적 전망과 결점을 부정하는 유토피아적 전망 - 정치적 우파와 좌파 이데올로기의 깊은 괴리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현대 과학에 비추어 인간 본성을 더 잘 이해함으로써 둘 중 어느 쪽보다도 더 세련된 정치로 가는 길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인간의 마음은 빈 서판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정치 체제도 지도자를 신격화하거나 시민을 개조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에는 자기 참조적이고 수정 가능하고 조합론적인 추론 체계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제 한계를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 시대 인간들의 추론에 흠이나 오류가 있었다고 해서 계몽주의적 인도주의의 엔진인 합리성 자체를 반박할 수는 없다. 이성은 늘 한 발 물러설 수 있다. 늘 결함에 주목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그 결함에 넘어가지 않도록 규칙을 수정할 수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반계몽주의는 19세기에 세를 떨친 여러 낭만적 운동들의 원천이었다. 그중 일부는 예술에 영향을 미쳐, 숭고한 음악과 시를 남겼다. 다른 일부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되어, 폭력의 감소세를 뒤집는 끔찍한 사건들을 낳았다. '피와 흙(blood and soil)'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전투적 민족주의가 그런 이데올로기였는데, 민족 집단과 그 유래가 된 땅은 독특한 도덕적 특징을 지닌 유기적 총체이며 그 장엄함과 영광이 개별 구성원들의 생명과 행복보다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20세기는 인류가 영영 타락으로 빠져든 세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20세기의 도덕적 경향성은 폭력을 꺼리는 인도주의였다. 그 경향성은 계몽 시대에 시작되었고, 점증하는 파괴력의 주체들과 결합된 반계몽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잠깐 가려졌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 기세를 되찾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20세기 폭력적 사망 건수가 이전보다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20세기의 인구 자체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1950년의 세계 인구는 25억 명이었다. 그것은 1800년의 약 2.5배에 해당하고, 1600년의 4.5배, 1300년의 7배, 기원후 1년의 15배이다. 그러니 우리가 가령 1600년의 전쟁과 20세기 중반 전쟁의 파괴력을 비교하려면 1600년의 사망자 수에 4.5를 곱해야 한다. ... 가용성 편향과 20세기 인구 폭발을 바로잡는다면, 즉 역사책을 파헤쳐서 당시의 세계 인구에 따라 사망자 수를 조정한다면, 20세기의 잔학 행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많은 전쟁과 학살을 만나게 된다. 다음 표는 화이트가 '(아마도) 인간이 서로에게 행한 나쁜 짓 주 최악의 20(여)가지'라고 부른 목록이다. ... 아마도 많은 독자는 (우리가 아는 한) 인간이 서로에게 행한 최악의 나쁜 짓 21건 중 14건이 20세기 이전 사건들이라는 점에 놀랐으리라. 더구나 이것은 절대 숫자로 따진 것이다. 인구에 대한 비로 조정하면, 20세기의 잔학 행위 중에서 딱 하나만 상위 10건에 포함된다. 역사상 최악의 잔학행위는 안녹산의 난과 내전이었다. 당나라에서 8년 동안 벌어졌던 그 사건 때문에, 인구 조사에 의하면 당시 총 인구의 3분의 2가 희생되었다. 그것은 당시 세계 인구의 6분의 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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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내러티브 역사학에 따르면 옛 문명들도 충분히 엄청난 규모의 학살을 저지를 수 있었다. 기술적 후진성은 장애물이 아니었다. 오늘날 르완다나 캄보디아만 보아도 마체테나 굶주림과 같은 저차원의 기술로 어마어마한 수를 죽이지 않았는가. 먼 옛날의 살인 기술이 죄다 단순한 기술이었던 것만도 아니다. 전투 무기는 당대 최신 기술을 자랑하는 게 보통이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푸아송 과정에서는 사건들의 간격이 지수적으로 분포된다. 달리 말해, 긴 간격일수록 더 적게 발생한다. 이것은 무작위로 발생하는 사건들이 마치 무리 지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건들이 고르게 분포되려면 오히려 비무작위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 이런 인지적 착각에 처음 주목한 사람은 수학자 윌리엄 펠러였다. 그는 1968년에 쓴 확률 교과서의 고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훈련 받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무작위성이 규칙성, 혹은 무리 짓는 경향성으로 보인다." ... 전쟁의 시기에 대해 리처드슨이 발견한 중요한 사실은 그 시작이 무작위적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전쟁의 신인 마르스가 매 순간 주위를 굴려, 1이 두 개 나오면 두 나라를 골라 전쟁을 시킨 것과 마찬가지다. ... 전재의 이런 푸아송적 특징은 역사에서 가상의 무리들로 이루어진 별자리를 찾아내는 내러티브를 망가뜨린다. 또한 인류 역사에서 거대한 패턴, 주기, 변증법을 찾는 이론들을 당황시킨다. 사실, 끔찍한 충돌이 한 번 벌어졌다고 해서 세계가 전쟁에 지쳐 평화로운 소강상태를 맞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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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전쟁이 장기간에 걸쳐 무작위로 분포하더라도, 가끔은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일례로 제1차 세계 대저니 발발함으로써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과 비슷한 전쟁이 터질 확률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우리가 통계로 사고할 때, 특히 무리 짓기 망상을 인식할 때, 역사의 이런 일관된 내러티브를 과장하기 쉽다. 주기, 크레셴도, 충돌 경로 같은 역사적 세력 때문에 그 사건은 반드시 일어나야 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확률들이 다 갖춰져 있었더라도, 대단히 우연한 어떤 사건들이 없었다면 규모 6이나 7의 사망자를 내는 전쟁은 터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우연은 우리가 역사의 테이프를 되감아 다시 돌린다면 그때도 똑같이 발생하란 법이 없다. 1999년에 화이트는 그해에 가장 자주 이야기되었던 질문에 답해 보았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였을까?" 라는 질문이었다. 화이트의 선택은 가브릴로 프린치프였다. 대관절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누구야? 프린치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보스니아를 방문했을 때 그를 암살했던 19세기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였다. 일련의 실수들과 사고들이 이어지는 바람에 대공이 프린치프의 저격 거리 안에 들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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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집단 살해도 마찬가지다. 6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집단 살해 연구자들은 사회학자 밀턴 힘벨파브의 1984년 에세이 제목에 대체로 동의한다. "히틀러가 없다면 홀로코스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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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들은 멱함수 분포를 따르므로, 이 분포의 수학적 특징을 알면 전쟁의 속성과 발생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우선 전쟁 그래프와 같은 지수값을 지닌 멱함수 분포에서는 고정된 평균이 없다. '전형적인 전쟁'이란 없다는 말이다. 즉, 전쟁이 발발하면 우리가 예상하는 어떤 수준까지 사망자가 쌓인 뒤 이후에는 자연적으로 잦아들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평균적으로도 그렇지 않다. 또한 멱함수 분포는 척도가 없다. 로그-로그 그래프의 선을 위로 쫓든 아래로 쫓든, 모양이 늘 직선이다. 수학적으로 말한다면, 단위를 확대하거나 축소하더라도 분포의 모야이 늘 같다는 뜻이다. ... 이 상황을 전쟁으로 바꾸면 이렇다. 사망자 1000명의 작은 전쟁에서 사망자 1만 명의 중간 전쟁으로 갈 확률은 얼마일까? 그것은 사망자 1만 명의 중간 전쟁에서 사망자 10만 명의 큰 전쟁으로 갈 확률과 같고, 사망자 10만 명의 큰 전쟁에서 사망자 100만 명의 기록적인 전쟁으로 갈 확률과도 같으며, 기록적인 전쟁에서 세계 대전으로 갈 확률과도 같다. 마지막으로 멱함수 분포는 '꼬리가 두껍다.' 극단적인 값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존재한다는 뜻이다. ... 세계가 사망자 1억 명의 전쟁을 목격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고, 사망자 10억 명의 전쟁을 목격할 가능성은 그보다 더 낮다. 하지만 핵무기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의 겁에 질린 상상력과 멱함수의 수학이 동의하는 바, 그 가능성이 천문학적으로 낮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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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치명적 싸움들이 척도 없는 분포를 따른다는 점에서 전쟁의 추진력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직관적으로 보면, 그것은 규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싸우는 연합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역학, 그리하여 위협, 후퇴, 엄포, 교전, 확전, 버티기, 항복을 결정하게 만드는 게임 이론적 역학은 그 연합체가 거리의 불량배이든, 군벌이든, 강대국 군대이든 다 같게 적용된다. 이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서 연합체를 꾸리고, 그것이 더 큰 연합체로 뭉치고, 그것이 더 커지고, 이렇게 자연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차원에서든 연합체는 단 하나의 파벌이나 개인 때문에 전쟁터로 내몰릴 수 있다. 그 개인이 불량배 두목이든, 군사 지도자이든, 왕이든, 황제이든.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멱함수 분포를 낳는) 또 다른 메커니즘은 복잡계 과학이 제안했다. 복잡계 과학은 서로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음에도 비슷한 패턴으로 조직되는 구조들의 법칙을 연구한다. 복잡계 이론가들은 자기 조직적 임계성이라는 패턴을 드러내는 체계에 흥미가 있다. '임계성(criticality)'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최후의 지푸라기와 같다. 작은 입력이 갑자기 큰 출력을 낳는 것이다. ... 모래더미 위에 모래가 졸졸 쏟아지는 상황이 좋은 예이다. 이때 모래더미는 주기적으로 다양한 크기의 사태(沙汰)를 일으키는데, 사태들의 크기는 멱함수 분포를 따른다. 그러다가 경사가 너무 낮아져서 모래더미가 안정해지면 더 이상 사태가 일어나지 않지만,위에서 계속 모래가 졸졸 쏟아지기 때문에 금세 경사가 가팔라지고 금세 다시 사태가 일어난다. ... 그런 모형에서 국가는 이웃 국가를 정복하여 더 큰 국가가 된다. 숲에 떨어진 담배꽁초가 작은 덤불을 태우고 말 수도 있고 큰 산불로 번질 수도 있듯이, 국가들의 시뮬레이션에서 하나의 비안정화 사건이 소규모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고 세계 대전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시뮬레이션에서 전쟁의 파괴력은 교전국들과 그 동맹들의 영토 넓이에 주로 좌우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다르다. 양측의 지속 의지, 즉 상대가 먼저 무너질 때까지 버티겠다는 의지도 파괴력의 차이를 낳는 요인이다. 현대사에서 최악의 충돌들 중 일부는 이런 소모전이었다. 미국 남북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베트남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이 그랬다. 양쪽은 전쟁 기계의 아가리에 계속 인원과 군수품을 투입하면서 상대가 먼저 소진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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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전의 경우, 시간에 따라 비용 감수의 의지가 변하는 지도자를 상상할 수 있다. 충돌이 진행되고 결의가 강화되면 그는 점차 의지가 강해진다. 그의 모토는 이렇다. '우리 병사들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수 없으니, 우리는 계속 싸우리라.' 손실 회피, 매몰 비용의 오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불리는 이런 사고방식은 명백히 비합리적이지만, 사람들의 의사 결정에 놀랍도록 만연한 현상이다. ... 리처드슨의 데이터에는 전쟁이 치명적일수록 교전자들이 더 오래 싸운다는 증거가 있다. 전쟁이 발발한 후 몇 년째에 끝날 확률은 몇 년이 되었든 큰 전쟁보다 작은 전쟁이 더 높았다. 헌신이 증폭되는 현상은 '전쟁 상관관계 프로젝트'의 데이터에서도 드러났다. 긴 전쟁은 단지 길기 때문에 사망자가 많은 것이 아니었으며, 기간으로만 예측한 수준보다 더 큰 피해를 기록했다. ...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전쟁들은 한쪽이나 양쪽 지도자들이 명백히 비합리적인 손실 회피 전략을 고집한 탓에 그렇게까지 파괴적인 경우가 많았다. 히틀러는 제2차 세계 대전 최후의 몇 달 동안, 패배가 자명한 시점을 한참 넘겨서까지 광적으로 싸웠다. 일본도 그랬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에 점점 더 많은 자원을 쏟자, 파괴적 전쟁에 대한 대중의 생각을 반영한 이런 노래 가사가 씌어졌다. "우리는 거대한 진흙탕에 허리까지 빠졌네, 그런데도 저 바보는 계속 가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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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생물학자 장바티스트 미셸은 소모전에서 헌신의 확대가 멱함수 분포를 낳을 수 있다고 내게 알려 주었다. 지도자들이 이전의 헌실에 대한 일정 비율을 다음번에 투입한다고 가정하면 된다. 가령 이전까지 투입했던 병력의 10퍼센트를 다음 공세에 투입하는 식이다. 이처럼 일정 비율로 증가시키는 방식은 베버의 법칙이라는 유명한 심리학적 발견과 상통한다. 사람들은 기존 강도에 대해 일정 비율이 넘는 증가분만 알아차린다는 법칙이다. ... 리처드슨은 희생된 목숨도 이렇게 인식된다고 말했다. "평화로운 시기에 신문들은 영국 잠수함 테티스의 손실에 대해 며칠이나 유감을 표했지만, 전쟁 중에는 비슷한 손실을 간결하게만 발표했다. 이런 대비는 사람들이 증가분을 기존의 양에 대해 상대적으로 판단한다는 베버-페히너 원리의 예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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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18은 유럽에서 폭력적 충돌의 역사를 (임시적이지만) 최대한 살펴본 그림이다. 인구대비로 계산하더라도, 1950년까지 이어진 전반적 상승세가 사라지지 않았다. 유럽의 살상력이 인구 증가를 능가하여 커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혈적이었던 세 시기가 그래프에서 툭 튀어나와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포함된 사반세기를 제외할 때, 유럽에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위험했던 때는 종교전쟁들이 있었던 17세기 초였다. 다음은 제1차 세계 대전이 포함된 사반세기였고, 그 다음은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시기였다. 요컨대, 유럽의 조직적 폭력은 대충 이렇게 진행되었다. 1400년대에서 1600년까지는 낮지만 꾸준한 수준으로 충돌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종교 전쟁의 참극이 벌어졌고, 프랑스의 혼란이 지나간 뒤 1775년까지는 충돌이 덜컥대며 잦아들었다. 19세기 중후반은 눈에 띄는 소강상태였다. 그러다가 20세기에 헤모클리즘이 벌어졌고, 이후에는 바닥에 붙을 정도로 유례없이 낮아진 긴 평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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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현실에서 만연했을 뿐 아니라, 이론에서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하워드에 따르면, 통치 계층 사람들에게 "평화는 전쟁 사이의 짧은 막간"이었고 전쟁은 "거의 자동적인 행위이자 자연의 질서였다." 루어드에 따르면, 15세기와 16세기의 전투들은 사망률이 비교적 낮았지만, "설령 사망률이 높아도 그것이 통치자나 군사 지도자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사람들은 그것을 전쟁의 불가피한 대가로 여겼고, 그 자체로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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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형질은 다유전자형이기 때문에, 평균으로의 회귀라는 통계 법칙을 따른다. 부모의 용기와 지혜가 제아무리 특출한들 자신은 평균적으로 그보다 못하다는 법칙이다. (비평가 레베카 웨스트가 지적했듯이, 645년 역사의 합스부르크 왕조에서 '천재는 한명도 없었고, 유능한 통치자는 두 명뿐이었고, ...... 얼간이는 무수히 많았고, 저능아와 미치광이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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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어드는 1559년을 종교의 시대가 개막한 해로 정했다. 이 시대는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30년 전쟁이 끝난 1648년까지 이어졌다. ... 이시대가 살해의 신기록을 세웠던 것은 머스킷 총, 파이크 창, 대포와 같은 군사 기술의 발전 덕분이었지만, 그것이 살육의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 이후에도 기술의 살상력은 꾸준히 향상되었지만 사망자 수는 바닥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루어드는 대신 종교적 열정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전쟁이 민간인들에게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민간인은 (특히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라면) 소모해도 좋은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전쟁의 참혹성과 사망자를 늘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참혹한 유혈 행위를 신의 분노 탓으로 돌렸다. 알바 대공은 나르던 시를 정복하여 남성 인구를 모조리 죽이고는 (1572년), 그들이 뻣뻣하고 완고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신이 심판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대의 크롬웰도 마찬가지였다. ... 이 잔인한 역설 때문에, 신앙의 이름으로 싸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상대에게 인간미를 보여주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 종교 전쟁은 격렬했을 뿐 아니라 도무지 끝을 몰랐다. 외교사학자 개릿 매팅리는 당시에 전쟁 종결의 중요한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종교 쟁점이 정치 쟁점을 압도하자, 적국과의 타협은 이단이자 배신으로 보이게 되었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나누는 문제들은 더이상 타협 가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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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들은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이 종교 전쟁을 진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최초의 근대적 국제 질서를 구축했다고 본다. 유럽은 교황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명목상으로 다스리던 복잡한 조각보 지형에서 벗어나 주권 국가들로 구획 지어졌다. 주권 국가 시대에 부상한 국가들은 여전히 왕조와 종교에 얽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정부, 영토, 상업적 제국에 국가의 위신을 걸었다. 우리가 지금껏 살펴본 모든 통계에서 드러났던 교차하는 두 경향성, 즉 전쟁의 빈도가 점점 줄되 파괴력은 점점 더 커진 추세는 바로 이때, 주권 국가들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1648년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진행되어 온 과정의 정점에 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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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과 왕조의 시대에, 통치자들은 많은 농민들 무장시키고 전투 훈련을 시키는 것을 당연히 걱정스러워했다. (통치자들이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쩌나?"하고 자문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래서 대신 임시 변통으로 군대를 모집했다. 용병을 고용했고, 불량배나 건달처럼 돈으로 병역을 회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징집했다. ... 16세기와 17세기에 군사 혁명을 겪으면서, 국가들은 전문적인 상비군을 꾸렸다. 사회 밑바닥 사람들만이 아니라 사회의 위아래를 아울러서 남자들을 모집했다. 반복 훈련, 세뇌, 잔혹한 처벌을 섞어서 그들을 조직적 전투에 맞게 다듬었다. 규율, 극기, 용맹의 기율을 주입시켰다. 덕분에 그런 군대끼리 충돌하면 삽시간에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군사 역사학자 아자르 가트는 군사 '혁명'이 잘못된 이름이라고 본다. 사실은 점진적인 발달이었다는 것이다. 군대의 효율화는 몇 백 년에 걸쳐 그 밖의 모든 것을 효율화한 기술적, 조직적 변화의 일부였다. 어쩌면 전투의 살상력을 바싹 끌어올린 공은 그런 의미의 군사 혁명이 아니라 나폴레옹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나폴레옹은 양측이 병력을 보존하려고 애쓰면서 앉은 자리에서 싸우던 전투를,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적을 궤멸시키는 과감한 공격 전투로 바꾸었다. 또다른 '발전'은 산업 혁명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산업 혁명 덕분에 국가는 19세기부터 점점 더 많은 병력을 건사할 수 있었고, 그들을 더 신속하게 최전선으로 보낼 수 있었다. 재생 가능한 총알받이 공급원이 확보되자 소모전 게임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전쟁은 멱함수 분포에서 꼬리를 향해 더 멀리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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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책증정] 미술을 보는 다양한 방법, <그림을 삼킨 개>를 작가와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그믐 앤솔러지 클럽에서 읽고 있습니다
[그믐앤솔러지클럽] 3. [책증정] 일곱 빛깔로 길어올린 일곱 가지 이야기, 『한강』[그믐앤솔러지클럽] 2. [책증정] 6인 6색 신개념 고전 호러 『귀신새 우는 소리』[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
듣고 이야기했어요
[밀리의서재로 듣기]오디오북 수요일엔 기타학원[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팟캐스트/유튜브] 《AI시대의 다가올 15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같이 듣기
⏰ 그믐 라이브 채팅 : 최구실 작가와 함께한 시간 ~
103살 차이를 극복하는 연상연하 로맨스🫧 『남의 타임슬립』같이 읽어요💓
매달 다른 시인의 릴레이가 어느덧 12달을 채웠어요.
[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 12월] '오늘부터 일일'[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11월] '물끄러미' 〔날 수를 세는 책 읽기- 10월 ‘핸드백에 술을 숨긴 적이 있다’〕
어두운 달빛 아래, 셰익스피어를 읽었어요
[그믐밤] 35.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1탄 <햄릿>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
독서모임에 이어 북토크까지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스토리 수련회 : 첫번째 수련회 <호러의 모든 것> (with 김봉석)[책증정] 저자와 함께 읽기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오프라인북토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AI 에 관한 다양한 시선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결과물과 가치중립성의 이면[도서 증정]《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AI 메이커스> 편집자와 함께 읽기 /제프리 힌턴 '노벨상' 수상 기념[도서 증정] <먼저 온 미래>(장강명)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AI 이후의 세계 함께 읽기 모임
독자에게 “위로와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이희영
[도서 증정] 『안의 크기』의 저자 이희영 작가님,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이희영 장편소설 『BU 케어 보험』 함께 읽어요![선착순 마감 완료] 이희영 작가와 함께 신간 장편소설 《테스터》 읽기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만나는 철학자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책걸상 함께 읽기] #52.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도서 증정] 순수이성비판 길잡이 <괘씸한 철학 번역>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증정]《너를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니체가 말했다》 저자&편집자와 읽어요!
<피프티 피플> 인물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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