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은 현재 진행되는 치명적 복수의 악순환들 중에서도 가장 골치 아픈 사례로 불린다. 폴리애나라도 감히 해결의 실마리를 안다는 주장을 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화해의 심리를 적용하자면, 적어도 그 해결책의 모습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소설가 아모스 오즈의 전망이 옳은 듯하다. -비극은 두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해결책이 있고, 체홉의 해결책이 있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결말에서는 무대에 시체들이 나뒹굴고, 아마도 저 높은 곳 어딘가에 정의가 어른거릴 것이다. 반면에 체홉의 비극에서는 모든 인물들이 환멸을 느끼고 씁쓸해지고, 상심하고, 실망하고, 철저히 망가진 상태로 끝나지만, 여전히 모두가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셰익스피어식이 아니라 체홉식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비극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인정하기 괴롭지만, 인간의 본성에는 타인의 고통에서 만족을 느끼는 동기가 적어도 네 가지 존재한다. 첫째는 생명의 허약함에 기괴하게 매료되는 현상으로 마카버(macabre)라는 단어로 잘 표현된다. 소년들이 메뚜기 다리를 뜯어내는 것, 확대경으로 개미를 태워 죽이는 것이 이런 심리이다. 어른들이 교통사고 현장에서 목을 빼고 구경하는 것이나 - 그 때문에 몇 킬로미터씩 교통 정체를 일으키는 악덕이다. - 유혈적 오락을 읽고 보기 위해서 가용 소득의 일부를 지출하는 것도 이런 심리이다. 그 궁극의 동기는 아마도 자신의 안전을 포함하여 생명계 전체를 지배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이런 관음증의 암묵적 교훈은 '저 차의 핸들이 잘못 꺾이거나 저 집의 대문이 열려 있지만 않았어도 저 일이 내게 벌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일지 모른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세 경쟁이다. 강자의 몰락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가 당신을 괴롭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위가 아니라 아래를 볼 때는 당신이 필요에 따라 그들에게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안심이 될 텐데, 힘의 궁극의 형태는 뭐니 뭐니 해도 내 뜻대로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능력이다. ... 내가 알기로는 아직 가학성에 대한 뇌 영상 연구는 없었지만, 가학성의 옅은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남의 불행을 내심 즐기는 심리 - 옮긴이)를 살펴본 실험은 최근 등장했다. ... 피험자가 가상 경쟁자의 불행을 읽는 동안(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여성들의 불행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인간이 무언가를 원하고 좋아할 때 작동하는 탐색 회로의 일부인 줄무늬체가 도쿄의 밤거리처럼 환히 빛났다. ... 가학성의 세 번째 상황은 복수이다. 좀 더 건전하게 제삼자의 버전으로 바꾸면, 곧 정의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도덕적 처벌의 요점은 악당에게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고, 복수는 때로 달콤하다. 복수심은 뇌의 감정 이입 반응을 말 그대로 꺼 버린다. ... 마지막으로 성적인 가학성이 있다. 가학성 자체는 흔한 도착이 아니지만 - 사도마조히즘에 탐닉하는 사람들 중에서 사디즘보다 마조히즘에 빠진 사람이 훨씬 더 많다. - 온건한 형태의 지배와 퇴폐는 포르노에서 드물지 않다. ... 섹슈얼리티와 공격성의 회로들은 변연계에서 얽혀 있고, 둘 다 테스토스테론에 반응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셱터는 이렇게 설명했다. - [남성 연쇄 살인범의] 폭력 형태와 -공격성이 남근적이고, 침입적이고, 강탈적이고, (흔히 낯선 사람의 몸에서 만족을 느낀다는 점에서) 무차별적이다. - 남성의 전형적인 성행위 형태 사이에는 간과할 수 없는 유사성이 있다. 그러므로 가학적 절단 살인은 정상적인 남성 섹슈얼리티의 그로테스크한 왜곡으로 볼 수 있다. ...... 여성 사이코패스들의 타락상도 남성에 뒤지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그녀들은 잔혹한 침입에 흥분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낯선 사람의 몸을 남근적 물체로 침해하는 행위가 아니라 친밀과 애정을 그로테스크하고 가학적인 방식으로 흉내 내는 행위에서 흥분을 느낀다. 이를테면 자신을 믿는 환자에게 독이 든 약을 숟가락으로 떠먹이는 것, 침대에서 자는 아이를 질식시켜 죽이는 것이다. 한마디로 친구, 가족, 그 밖에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을 온화하게 시체로 바꿔 버리는 것이다. 돌보면서 죽이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감정 이입이 공격성의 제동 장치가 되려면 타인의 마음으로 들어가 보는 버릇만으로는 부족하다. 가학적 범죄자도 가끔 피해자가 어떤 상황에서 가장 괴로워하는지를 직관으로 읽어 내는 변태적 재주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감정 이입에 더불어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일치시키는 능력도 필요한데, 이것은 감정 이입이라기보다는 공감이나 연민이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또한 바우마이스터는 공감에 또 하나의 감정이 끼어들어야만 가학적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죄책감이다. 바우마이스터는 죄책감이 사후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죄책감을 예기적이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죄책감을 느낄 듯한 예감 때문에 그 행동을 꺼린다. 가학성의 또 다른 제동 장치는 문화적 터부이다. 고의로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는 공감으로 억제하는 것은 둘째 치고 애초에 선택지로 생각할 수조차 없다는 믿음이다. ... 그러나 아마도 가학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억제 장치는 좀 더 원초적인 것, 즉 남을 해지는 것에 대한 본능적 반감이다. 대부분의 영장류는 다른 개체가 고통에 겨워 지르는 비명 소리를 싫어한다. 동료가 충격을 겪는 것을 소리로 듣거나 볼 때는 음식도 안 먹으려 한다. 원숭이가 도덕적 가책을 느끼기 때문은 아니다. 동료를 미치게 만드는 무언가가 두렵기 때문이다(동료가 경고 신호를 낸 외부 위협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가학성에 이런 장벽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우회로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 가학성이 없을 테니까. 가장 조잡한 우회로는 광란극에서 드러난다. 일시적으로 적을 궤멸시킬 기회가 열리고, 손수 해를 끼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유예되는 상황이다. 반면에 가장 세련된 우회로는 자발적으로 반감을 일시 유예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 능력 때문에 가상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 우리 뇌의 일부분은 우리가 지어낸 이야기에 흠뻑 빠지도록 허락하며, 약간의 가상적 가학성에 탐닉하는 것까지 허락한다. 그러나 뇌의 나머지 부분은 이것이 그저 지어낸 이야기일 뿐임을 줄곧 환기시키므로, 억제 장치가 즐거움을 망치지는 않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가학성은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취향이다. 조사 담당 경찰관이나 간수 같은 정부 고문자들의 경력은 우리의 직관과는 반대되는 궤적으로 발전한다. 언뜻 신참일수록 열의에 넘쳐 과도하게 고문하고 베테랑일수록 유용한 정보를 최대한 끌어낼 만큼만 세심하게 고문의 정도를 조정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베테랑일수록 목적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고문한다. 그들은 그 일을 즐기게 된다. ... 연쇄 살인범들도 첫 살인에서는 동요와 불쾌감을 겪고, 사후에는 실망감을 겪는다. 상상했던 것만큼 흥분되는 경험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취미가 살아나고, 다음 살인이 더 쉽고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그 뒤에는 중독이 되어 버린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갈수록 더 잔인해진다. ... 흔히들 인간은 폭력에 둔감해지기 쉽다고 말하지만, 고문 취향을 획득한 사람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바우마이스터는 심리학자 리처드 솔로몬의 동기 이론에서 착안하여, 가학성을 색각에 비유했다. 솔로몬은 인간의 감정이 보색처럼 쌍쌍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 솔로몬은 인간의 감정도 이처럼 맞대결하는 회로들의 균형을 통해 평형을 유지한다고 주장했다. 공포는 안심과, 황홀은 우울과, 허기는 포만과 균형을 이룬다. 다만, 감정 대비와 보색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다. 경험에 따라 변화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감정의 경우, 앞선 반응은 갈수록 약해지고 그것에 균형을 맞추는 충동은 갈수록 강해진다. 경험을 반복할수록 감정에 대한 반동이 감정 자체보다 더 예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 (번지점프에서) 공포가 안심으로 역전되는 순간이 가장 쾌락적이라고 가정하면, 우리가 예전과 같은 수준의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서는 점점 더 위험한 점프를 시도해야 한다. ... 이런 작용-반작용 역학은 첫 느낌이 긍정적인 것일 때도 마찬가지이다. 헤로인을 처음 맞은 사람은 황홀에 젖고, 금단 증상은 미약하다. 그러나 중독자가 될수록 쾌락은 약해지고, 금단 증상은 더 빨리 더 불쾌하게 다가온다. 그 때문에 중독자는 황홀을 맛보려고 약을 한다기보다 금단을 피하기 위해서 강박적으로 약을 하게 된다. 바우마이스터는 가학성도 비슷한 궤적을 따른다고 말했다. 공격자는 처음에 피해자를 해치는 데 거부감을 느끼지만, 불편한 감정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에는 안심되고 활기찬 반대의 감정이 찾아와서 균형을 맞춰 놓는다. 그런데 잔혹 행위가 거듭될수록 활기를 되찾는 과정이 점점 더 강력해지고, 거부감을 지우는 순간이 점점 더 빨리 다가온다. 종국에는 그것이 의식을 점령하여 온 과정이 즐거움, 짜릿함, 심지어 갈망으로 치우친다. 바우마이스터의 말마따나 쾌락은 역류하듯 닥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물론, 이런 길항 이론은 좀 거칠다.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사람들은 머리를 쿵쿵 찧다가 멈추는 순간이 너무나 기분 좋기 때문에 계속 머리를 찧을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실제로는 모든 경험이 첫 반응과 대항 반응의 긴장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고, 언제나 첫 반응이 갈수록 약해지고 두 번째 반응은 갈수록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심리학자 폴 로진은 무해한 피학성이라고 부를 만한 또 다른 후천적 피학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역설적 쾌락의 예로는 매운 고추나 시큼한 치즈나 신 포도주 따위를 먹는 것, 그리고 사우나, 스카이다이빙, 자동차 경주, 암벽 등반 등의 위험한 경험을 하는 것이 있다. 이런 것은 모두 성인의 취향이다. 초심자는 통증, 역겨움, 공포의 첫 반응을 극복해야만 감식가로 발전할 수 있다. 또한 이것들은 모두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노출을 점차 늘림으로써 익힐 수 있다. 이런 취향들의 공통점은 큰 잠재 이익(영양, 의료적 이득, 속도, 낯선 환경에 대한 지식)과 큰 잠재 위험(중독, 위험한 환경에의 노출, 사고)이 결합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취향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자신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즐거움이다. 자신이 재난을 당하지 않고서 얼마나 높이, 뜨겁게, 강하게, 빠르게,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를 단계적으로 탐사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궁극의 이득은 타고난 두려움과 조심성 때문에 원래 닫혀 있었던 경험 공간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영역을 열어젖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해한 피학성은 이런 지배 동기가 웃자란 것이다. 솔로몬과 바우마이스터가 지적했듯이, 거부감을 극복하는 과정도 이처럼 웃자라서 결국 갈망과 중독이 될 수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이데올로기적 폭력의 진정한 수수께끼는 심리 문제가 아니라 역학(疫學) 문제이다. 어떻게 유해한 이데올로기가 소수의 나르시시스트 광신자들에서 인구 전체로 퍼질까? 그리하여 모두가 기꺼이 그 계획을 수행하려고 나설까? 이데올로기적 믿음은 사악한 것은 물론이고 빤히 한심한 것도 많다. ... 집단은 수많은 병리적 사고를 품을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양극화이다. 의견이 엇비슷한 사람들을 한 집단으로 묶어서 심도 있게 의논하라고 하면, 사람들의 의견은 더 비슷하고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변한다. 진보적인 집단은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보수적인 집단은 더 보수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두 번째 집단적 병리 현상은 둔감화이다.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이 역학을 집단 사고(groupthink)라고 불렀다. 집단이 지도자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해 주고, 의견 차이를 억압하고, 사적인 의심을 검열하고, 내부의 합의에 모순되는 증거를 걸러 내는 현상이다. 세 번째는 집단 간 적개심이다. ... 이때 문제는 우리의 마음에서 집단이 고유한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 우리가 집단에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는 점, 내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우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현명한 판단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설령 구체적으로 정의된 어떤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는다. 스탠리 밀그램이 실시했던 권위에의 복종 실험에서 나온 중요한 교훈은 피험자들이 주변의 사회적 환경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이었다. ... 밀그램은 실험 전에 동료들, 학생들, 몇몇 정신과 의사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피험자들에게 동료 피험자에게 충격을 가하라고 지시하면, 그들은 그 명령을 어느 정도까지 따를까? 응답자들은 150볼트를 넘기는 피험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만장일치로 예측했고(실험에서 '위험 : 극심한 충격'이라는 경고가 붙어 있는 단계), 소수의 사이코패스만이 최대 충격치까지 높일 것이라고 예측했다('450볼트 - XXX'라고 표시된 단계). 그러나 실제로는 피험자의 65퍼센트가 최대 충격치까지 높였다. 피해자가 고통에 겨운 항의마저 멈추고 괴괴한 침묵에 빠진 지 한참 지난 수준이었다. 실험자가 중단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면, 피험자들은 아마 혼수상태(혹은 시체)로 보이는 피해자에게 이후에도 계속 충격을 가했을 것이다. 피험자의 성별, 연령, 직업은 이 비율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성격에 따라서만 아주 조금 편차가 있었다. 오히려 정말로 중요한 요인은 딴 사람이 근처에 있는가, 그리고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였다. 실험자가 한 방에 없고 전화나 녹음 메시지로 지침을 전달하면, 복종률이 낮아졌다. 피해자가 옆방이 아니라 한 방에 있을 때도 복종률이 낮아졌다. 피험자가 다른 피험자와 협력해서 작업해야 하는 경우(두 번째 사람은 실험 공모자였다.), 그가 순응을 거부하면 피험자도 거부했다. 반면에 그가 순응하면, 피험자의 90퍼센트가 덩달아 순응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2008년, 사회 심리학자 제리 버거는 요즘의 윤리 검열을 통과할 만한 방법을 떠올렸다. 그는 밀그램의 최초 실험에서 150볼트가 결정적인 지점이었다는 데 착안했다. 피해자가 통증을 호소하며 항의하기 시작하는 지점도 150볼트였다. 그 지점까지 줄곧 복종했던 피험자들 중 80퍼센트는 계기판의 최고 충격치까지 내처 나아갔다. 버거는 밀그램의 과정을 재현하되, 150볼트에서 실험을 멈췄다. 그리고 피험자들에게 즉시 실험에 관해 설명함으로써, 사람들이 내심 불안을 감춘 채 타인에게 계속 고문을 가하는 끔찍한 경험을 겪지 않도록 했다. 버거의 의문은 다음과 같았다. 지난 40년 동안은 반항이 유행이었다.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에요."라는 변명은 비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역사의식이 성장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 타인에게 고통을 가할까? 답은 '그렇다'였다. 피험자의 70퍼센트가 150볼트까지 진행했던 것이다. 만일 실험자가 그 이상을 허락했다면, 틀림없이 피험자의 대부분은 치명적 수준까지 진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밝은 면도 없지 않았다. 실험자에게 불복한 사람의 비율이 1960년대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당시에는 17.5퍼센트였지만 30퍼센트가 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성향을 거스르면서까지 타인을 해칠 것이다. 그것이 사회의 정당한 사업에 포함된다고 판단한다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순응이 본질상 비합리적인 일은 아니다. 여러 사람의 지혜가 한 사람보다 나은 법이고, 자신이 혼자서 다 생각해 낼 수 있는 천재라고 믿기보다는 수많은 사람의 소중한 지혜가 모인 문화의 지시를 믿는 편이 현명할 때가 많다. 또한 게임 이론가들이 협동 게임이라고 부르는 상황에서는 순응이 미덕이 될 수 있다. 달리 말해, 남들이 다 그렇게 선택한다는 사실 외에는 개인이 그렇게 선택할 합리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도로에서 오른쪽 차선으로 주행하느냐, 왼쪽 차선으로 주행하느냐 하는 문제가 고전적인 사례이다. ... 그러나 때로 순응은 개인에게는 이득을 주지만 집단 전체로는 병리 현상을 빚어낸다. 좋은 예로, 초기의 기술 표준이 임계 규모 이상의 사용자에게 전파됨으로써 기반을 다지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남들이 그것을 쓰니까 자신도 쓰는데, 그 때문에 더 우수한 경쟁자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영어 철자법, 쿼티 자판, VHS 비디오테이프,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소프트웨어들이 이런 '네트워크 외부성(network externality)' 때문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각각의 경우에 회의론자들도 있지만.). 또 다른 예는 베스트셀러 도서, 패션, 유행가, 할리우도 블록버스터가 예상 밖에 성공하는 경우이다. 이런 것을 무리짓기 행동이라고 부르든, 문화적 반향이라고 부르든,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부르든, 마태 효과라고 부르든, 사람들이 무리에 따르는 성향 때문에 집단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위 사례들에서 문화적 결과물들은 - 버그가 많은 소프트웨어, 그저 그런 소설, 1970년대 패션- 별로 해롭지 않은 편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사회적 역학의 한 종류로, 다원적 무지, 침묵의 나선, 애빌린의 역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분통 터지는 현상이 있다. 마지막 이름은 텍사스에 사는 어느 가족이 애빌린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는데, 찜통 같은 오후에 온 가족이 불쾌한 여행을 떠난 이유는 다들 남들이 가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서였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개인으로는 한심하게 생각하는 관행과 견해를 남들이 다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지지할 때가 있다. ... 조사에 따르면, 불량한 청년들이 동성애자를 괴롭히는 것, 미국 남부의 인종 차별, 이슬람 사회에서 순결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명예 살인, 프랑스와 스페인의 바스크 사람들이 ETA 테러 조직을 참아 주는 것도 모두 침묵의 나선 때문에 존속하는 관습이다.... 분별 있는 사람들 사이에 극단적 이데올로기가 뿌리 내리는 현상을 다원적 무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회 심리학자들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단순한 판단에서조차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았다. 심리학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한 또 다른 실험에서, 솔로몬 아시는 피험자들에게 영화 <가스등>에 나오는 딜레마를 들이댔다. 피험자는 여섯 명의 다른 피험자와 탁자에 둘러앉았다(물론 다른 사람들은 아시와 한 패였다.). 아시는 그들에게 길이가 다른 세 선분 중 표적 선분의 길이가 같은 것을 알아맞히라고 요구했다. 쉬운 문제였다. 그러나 피험자에 앞서 대답한 여섯 명의 공모자는 다들 빤히 틀린 답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실제 피험자 중 4분의 3은 제 눈을 거역하고 무리의 뜻을 쫓았다. 그러나 군중에게 광기가 전염되려면, 사적인 거짓말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다. 다원적 무지는 카드로 지은 집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가 말해 주듯이, 어린 소년 하나라도 침묵의 나선을 깨뜨리면 거짓 합의는 순식간에 파열된다. ... 그래서 사회학자 마이클 메이시는 강제라는 추가의 요소가 있어야만 다원적 무지가 어린 소년과 진실을 말하는 자들에 맞서서 강고하게 버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남들이 다 믿는다는 착각에서 가당찮은 신념을 맹세할 뿐 아니라, 맹세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처벌하기까지 한다. 그 역시 주된 이유는 남들이 강제를 바란다고 - 역시 착각이지만- 믿기 때문이다. 메이시와 동료들은 거짓된 순응과 거짓된 강제가 서로 강화함으로써 악순환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제임스 페인은 20세기에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에 장악된 과정이 공통된 순서를 따랐다고 말한 바 있다. 어느 경우든, 소수의 광신적 집단이 '폭력을 포함한 극단적 조치를 정당화하는 순진하고 격렬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고, 다음에는 폭력을 기꺼이 수행할 불량배를 모집했으며, 이후 점점 더 많은 인구를 겁박하여 묵인하게 만들었다. 메이시와 동료들은 밀그램이 처음 발견했던 또 다른 현상도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방대한 인구의 모든 구성원들이 상당히 짧은 인연의 사슬을 거쳐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연결된다는 현상이다. 대중적인 밈으로는 여섯 단계 분리 이론이라고 불린다. 세 연구자는 가상 사회에 소수의 장거리 연결을 무작위로 부여했다. 좀 더 짧은 단계 만에 다른 행위자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그 행위자들은 다른 동네의 순응도를 알 수 있었고, 거짓 합의의 미몽에서 깨어날 수 있었고, 순응과 강제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었다. 장거리 연결로 먼 동네들을 이은 결과, 광신자들의 강제는 흐지부지되었다. 그들이 충분히 많은 순응주의자들을 겁박하지 못하니, 파문이 온 사회를 삼킬 만큼 퍼지지 못했다. 이것을 보면, 발언과 이동의 자유가 허락되고 통신 채널이 잘 발달된 열린사회일수록 망상적 이데올로기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적지 않을까 하는 교훈이 절로 떠오른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도덕적 유리)중 하나는 완곡어법이다. 피해를 조금이나마 덜 비도덕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들로 포장하는 것이다. 1946년 에세이 <정치와 영어>에서, 조지 오웰은 정부가 관료적 어법으로 잔학 행위를 숨긴다고 폭로했다. - 우리 시대에는 정치 발언과 글이 대체로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데 쓰인다. ... 그러자면 그 논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야만스럽고 정당들이 공언한 목표와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정치의 언어는 주로 완곡어법, 논점 회피, 아니면 그저 애매모호한 표현으로만 구성될 수밖에 없다. 무방비 상태의 마을을 공중에서 폭격하고, 주민을 벌판으로 내쫓고, 가축을 기관총으로 쏘아 죽이고, 소이탄으로 집을 불태우는 것. 이런 짓을 평화화라고 부른다. 농민 수백만 명에게서 농장을 빼앗고, 그들이 몸뚱어리로 짊어질 수 있는 것만 지닌 채 터벅터벅 걸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는 것. 이런 짓을 인구 이동 또는 국경 조정이라고 부른다. ... 그런 행위를 지칭하면서도 그런 장면이 마음 속에 떠오르지 않게 하려면 이런 어법이 필요한 것이다. ... 도덕적 유리의 두 번째 메커니즘은 점진주의(gradualism)이다. 사람들은 어떤 야만 행위를 한 번에 해치우라면 못하지만, 한 발 한 발 다가가서 빠져들 수는 있다. 그 과정의 어느 시점에서도 자신의 기존의 규범에서 엄청나게 벗어난 일을 한다는 느낌이 안 들기 때문이다. 나치가 악명 높은 역사적 사례이다. ... 세 번째 유리의 메커니즘은 책임의 이동 혹은 확산이다. 밀그램 실험의 가짜 연구자는 어떤 일이 벌어지든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진다고 피험자들에게 강조했다. 이 대사를 바꿔서 피험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면, 순응률이 곤두박질쳤다. ... 역사적 사례와의 유사성은 뚜렷하다. 전범으로 고발된 자들은 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는 진부한 변명을 꺼낸다. 학살 지도자들은 군대, 암살대, 관료 등의 조직을 교묘하게 구성함으로써 누구도 자기 개인의 행동이 학살에 꼭 필요하거나 충분한 것이라고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평상시의 도덕적 판단을 무력화시키는 네 번째 방법은 거리 두기(distancing)이다. 사람들은 광란극에 휩쓸렸거나 가학성으로 침잠하지 않은 이상, 무고한 타인을 제 손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해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 그리고 5장에서 말했듯이,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라는 말은 사실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밝혀 두건대, 나도 감정 이입에 불만은 없다. 나도 감정 이입을 - 늘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책에서도 여러 차례 감정 이입을 호소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잔인한 처벌을 외면하고 전쟁의 인명 피해를 더 염려하게 된 까닭은 감정 이입의 확장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감정 이입은 점차 1960년대의 사랑처럼 되고 있다. 그것은 감상적인 이상이고, 무수한 캐치프레이즈로 칭송되지만(세상을 움직이는 것, 세상에 필요한 것,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 등등), 폭력을 감소시킨 요인으로서는 과대평가 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경쟁과 대리전 지원을 그만둔 것은 사랑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을 것이고, 감정 이입과도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 폭력의 감소는 감정 이입의 확장에도 약간은 빚을 졌겠지만, 그보다는 신중함, 이성, 공정성, 자기 통제, 규범과 터부, 인권 개념과 같은 더 냉철한 능력들에게 더 크게 빚졌다. ... 선한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들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서 우리를 폭력에서 멀어지게 하는지만을 설명해서는 안 되고, 그것들이 그 일에 자주 실패하는 이유까지도 설명해야 한다. 그것들이 역사적으로 점점 더 많이 발휘된 이유만을 설명해서는 안 되고, 그것들이 온전히 발휘되기까지 이토록 긴 세월이 걸린 이유도 설명해야 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감정 이입(empathy)이라는 단어는 만들어진 지 100년도 안 되었다. 미국 심리학자 에드워드 티치너가 만들었다고들 하는데, 그는 1909년 강연에서 처음 그 말을 썼다. 그러나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는 영국 작가 버넌 리가 1904년에 그 단어를 썼다고 나온다. 두 사람 모두 그 단어를 독일어 아인퓔룽(Einfühlung, 속을 느껴 본다는 뜻)에서 가져왔고, 일종의 심미적 감상을 뜻하는 표현으로 썼다. 그들에게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느끼거나 행사한다'는 뜻으로, 가령 우리가 마천루를 보면서 내 자신이 그것처럼 곧고 높게 서 있다고 상상하는 경우를 말한다. ... 감정 이입이라는 단어가 인기를 얻은 시점은 그 단어에 '공감(symtpathy)'이나 '연민(compassion)'과 더 비슷한 새로운 뜻이 생긴 시점과 일치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의 맹목성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인간과 인간의 제일 좋은 친구 사이의 유대를 이렇게 고찰했다. -인간과 개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 이들은 세상의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친밀한 유대로 맺어져 있다. 그러나 그 친근한 애정을 넘어선 영역에서는, 어느 쪽이든 상대의 삶에서 유의미한 것에 대해 너무나도 무감각하지 않은가 말이다! 인간은 개가 울타리 밑에 묻어 둔 뼈다귀나 나무와 가로등의 냄새에서 느끼는 황홀감에 무감각하고, 개는 인간이 문학과 예술에서 느끼는 기쁨에 무감각하다. 당신이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책보다도 감동적인 연애 소설을 읽으며 앉아 있을 때, 당신의 폭스테리어는 그 행동을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그가 비록 당신에 대한 호의로 가득하다지만, 당신의 행동은 그의 이해력을 철저히 넘어선다. 대체 왜 아무것도 못 느끼는 조각처럼 덩그러니 앉아만 있는 걸까! 차라리 자신을 산책에 데려가거나 막대기를 던져 주면 좋을 텐데! 무슨 괴상한 병에 걸렸기에 매일 몇 시간씩 그딴 것을 쥐고서 응시하는 걸까? 모든 움직임이 마비되고 생명의 의식이 깡그리 사라진 채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기만 해도 괴로움(distress)을 느낀다. ... 타인의 고통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타인의 안녕에 공감하여 염려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것은 종종 억누르고 싶을 정도로 원치 않는 반응이고,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성가신 기분이다. ... 감정은 전염성(contagious)이 있다. '웃어라, 그러면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라는 말도 있다. 시트콤에 웃음소리를 삽입하는 것, 실력 나쁜 코미디언이 회심의 대사 끝에 웃음소리를 모방한 드럼림숏을 끼워 넣는 것은 그 때문이다. ... 좀 더 약한 형태로는 갖가지 대리 반응이 있다. 우리가 운동선수의 부상에 공감하여 저도 모르게 찡그리는 것, 제임스 본드가 의자에 묶여 얻어맞는 장면에 저도 모르게 움찔하는 것 등이다. 운동 모방도 또 다른 사례인데, 아기에게 사과즙을 먹이면서 저도 모르게 함께 입을 벌리는 행동 등이다. 감정 이입의 팬들은 이런 전염이 인류의 복지에 제일 주효한 의미에서의 '감정 이입'을 낳는 기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중요시하는 의미의 감정 이입은 이것과는 다른 반응으로서, 차라리 공감적 관심, 줄여서 공감(sympathy)이라고 불러야 옳다. 공감은 타인의 쾌락과 고통을 인지한 뒤에 그의 안녕과 자신의 안녕을 나란히 놓는 데서 비롯된다. 공감과 감정 전염을 등치시키기가 쉽지만, 두 가지가 다른 것임을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다. 어떤 아이가 짖어 대는 개에 놀라 마구 울부짖는다면, 내 공감적 반응은 아이를 따라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안심시키고 보호하는 것이다. ... 그리고 우리의 감정 반응은 타인의 감정을 자동으로 베끼는 것이 아니며, 상대를 나와 한편으로 느끼는가 경쟁자로 느끼는가에 따라 180도로 바뀌곤 한다. 스포츠 팬이 홈경기를 볼 때는, 군중이 즐거워하면 자신도 즐겁고 군중이 낙담하면 자신도 낙담한다. 반면에 어웨이 경기를 볼 때는, 군중이 낙담하면 자신은 즐겁고 군중이 즐거워하면 자신은 낙담한다. 즉, 전염이 공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이 전염을 결정하는 상황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요즘의 감정 이입 열풍은 이런 다양한 의미들을 뒤섞어 감정 이입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한 데서 비롯한다. 거울 뉴런(mirror neuron)을 연민이라는 의미의 공감과 같은 말로 쓰는 요즘의 유행은 이 혼동의 결정체이다. 리프킨은 "감정 이입 뉴런이라고 불리는" 거울 뉴런이 "인간을 비롯한 여러 종에서 다른 개체의 상황을 자신의 상황처럼 느끼고 경험하게" 만든다고 썼다. ... 1992년, 신경 과학자 자코모 리촐라티와 동료들은 원숭이의 뇌에서 특별한 뉴런을 발견했다. 그 뉴런들은 원숭이가 직접 건포도를 집을 때도, 다른 사람이 건포도를 집는 모습을 관찰할 때도 활성화했다. 또 다른 뉴런들은 만지거나 찢는 다른 행동들에게 반응했는데, 역시 원숭이가 직접 수행하든 인지만 하든 모두 활성화했다. ... 인간에게도 거울 뉴런이 있다고 믿을 근거는 충분하다. 뇌 영상 시험에 따르면, 사람이 직접 움직일 때나 남이 움직이는 것을 볼 때 모두 활성화하는 부위가 마루엽과 아래이마엽에 있다. 거울 뉴런은 중요하기는 해도 아주 뜻밖의 발견은 아니다. 우리에게 행동을 실시하는 주체와 무관하게 하나의 행동을 늘 동이랗게 인식하는 능력이 없다면, 하나의 동사를 일인칭과 삼인칭으로 사용할 줄도 모를 테니까. ... 거울 뉴런 이론의 작은 문제는, 과학자들이 그것을 처음 발견한 붉은털원숭이가 감정 이입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고약한 종이라는 점이다(모방 능력도 없고, 언어는 물론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뒤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거울 뉴런이 뇌 영상 연구로 미루어 볼 때 공감적 관심과는 무관한 영역들에서 주로 발견된다는 점이다. 많은 인지 신경 과학자는 거울 뉴런이 행동의 관념을 정신적으로 표상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그마저도 반박이 따른다. 하물며 거울 뉴런이 인간만의 독특한 능력을 설명한다는 허황한 주장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미 기각했고, 요즘은 거울 뉴런이 활동을 공감 능력과 동일하게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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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이 자신 있게 고른 이 시대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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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1부[도서증정][김세진 일러스트레이터+박숭현 과학자와 함께 읽는]<극지로 온 엉뚱한 질문들>
[그믐연뮤클럽] X [웰다잉 오디세이 2026]
[그믐연뮤클럽] 9. 죽은 자를 묻고 그 삶을 이어갈 것인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계속계속 책읽기 by Kiara
2024.01.19. <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2024.01.17. <참 괜찮은 눈이 온다 _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2024.01.16. <이 별이 마음에 들어> 김하율2024.01.14. <각자 도사 사회> 송병기2026.01.01. <아무튼, 데모> 정보라2026.01.02. <버드 캐칭>
박산호 작가의 인터뷰집
[웰다잉 오디세이 2026] 2. 죽음을 인터뷰하다 책 증정 [박산호 x 조영주] 인터뷰집 <다르게 걷기>를 함께 읽어요 [책 증정] <이대로 살아도 좋아>를 박산호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책방연희>북클럽도 많관부!
[책방연희 북클럽] 정보라, 최의택 작가와 함께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 읽기정명섭 작가와 <어차피 우리 집도 아니잖아> 읽기[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책방연희X그믐] <책 읽다 절교할 뻔> 번외편 <내가 늙어버린 여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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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책 독파] 주자와 다산의 대결 <두 개의 논어> 편집자와 함께 읽기 《논어》 혼자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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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함께 읽을 친구, 당근에선 못 찾았지만 그믐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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