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공감적 관심이라는 도덕적 이미의 감정 이입은 거울 뉴런의 자동 반사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끄고 켤 수 있는 반응이고, 심지어 역(逆) 감정 이입으로 도치될 수도 있다. 남이 기분 나쁠 때 나는 기분이 좋아지거나 그 역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역감정 이입의 유발 기제로는 복수가 있다. 스포츠 팬의 반응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데서 보듯이, 경쟁은 또 다른 유발 기제이다. ... 감정 전염, 모방, 대리 감정, 거울 뉴런 따위를 뜻하는 감정 이입을 통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계획의 문제는, 그것이 반드시 우리가 바라는 종류의 감정 이입을 일으킨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언제나 타인의 안녕을 염려하는 공감적 관심만을 일으킨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공감은 내생적 반응으로, 사람들의 관계 양식을 만들어내는 원인이라기보다는 그 결과이다. 우리가 그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고통에 대한 반응은 감정 이입일 수도 있고, 중립일 수도 있고, 심지어 역감정 이입일 수도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사실 연민이라는 뜻의 감정 이입과 긴밀한 뇌 조직은 겉질이나 겉질 하부 기관이 아니라 호르몬 전달 체계이다. 옥시토신은 시상하부에서 생산되는 작은 분자로, 편도와 줄무늬체를 비롯한 뇌의 감정 체계들에 작용한다. 또한 뇌하수체에 의해 혈류로 분비되어 몸 전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원래 옥시토신의 진화적 기능은 출산, 수유, 육아 같은 모성적 활동들을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와 지나치게 가까이 있을 때 느끼기 마련인 두려움을 줄여 주는 이 호르몬의 능력은 진화를 거치면서 다른 관계에까지 폭넓게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성적 각성 상태, 일부일처 종에서 이성애적 유대, 부부나 친구의 애정, 비혈연 개체들의 공감과 신뢰 등이다. 그래서 옥시토신을 포옹 호르몬(cuddle hormone)이라고도 부른다. 뱃슨은 옥시토신이 이처럼 다양한 인간 관계에서 사용된다는 점에 근거하여, 모성적 돌봄이 모든 공감 능력의 진화적 선조라고 제안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바우마이스터와 동료들은 내가 도덕성에 관한 절에서 설명할 구분법을 동원하여 이런 패턴을 설명했다. 그들에 따르면, 공감과 죄책감은 공동체 관계의 범위 내에서 작동한다. 교환 관계, 혹은 동등성 관계에서는 그런 감정이 덜 느껴진다. 우리가 지인, 이웃, 동료, 제휴자, 고객, 서비스 제공자와 맺는 관계가 교환 관계이다. 교환 관계를 규제하는 것은 공정성 규범이며, 여기에는 진심 어린 공감이 아니라 그냥 화기애애한 감정들이 수반된다. 우리가 그들을 해치거나 그들이 우리를 해치면, 명시적으로 벌금, 환불금, 배상금을 논하여 피해를 바로잡는 협상을 벌일 수 있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그들과 거리를 두거나 그들을 비난함으로써 마음의 괴로움을 던다. 그런데 교환 관계를 수선할 때 쓰이는 이런 사업적인 보상 협상은 공동체 관계에서는 보통 터부이다. 또한 공동체 관계를 끊는 선택에는 값비싼 대가가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관계를 수선할 때는 좀 더 어수선하지만 오래가는 감정 접착제, 즉 공감, 죄책감, 용서가 사용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렇다면, 우리가 공감의 범위를 밖으로 더 확장하여 아기, 복슬복슬한 동물, 공동체 관계로 묶인 사람들 외에 낯선 사람들까지 점점 더 많이 끌어안을 가능성이 있을까? 상호 이타주의 이론과 그것을 실천하는 전략들, 즉 팃포탯을 비롯하여 기타 첫 수에 협력하고 남이 배신하기 전에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착한' 전략들로부터 답을 예측해 볼 수 있겠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 착한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 더 쉽게 공감하는 경향성이 있을 것이다. 그 궁극의 (달리 말해 진화적인) 목표는 서로 유익한 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 필요는 귀여움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공감 유도 기제이다. 심지어 아기들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거나 괴로워하는 사람을 달래려고 애쓴다. ... 나는 요전 날 바닷가를 걷다가 뒤집힌 투구게를 발견했다. 게는 다리 10개를 공중에 쳐든 채 하릴없이 버둥대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뒤집어주었다. 그리고 녀석이 파도 속에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행복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선뜻 돕게 되는 상대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그들의 가치를 공유한다고 인식하거나 다른 유사성이 있다고 인식할 때는 큰 차이가 생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남의 고통을 지켜보는 자신의 괴로움을 덜기 위해서 이기적으로 돕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공감할 때는, 자신의 괴로움을 덜 수 있든 없든 상대의 고통을 덜겠다는 동기가 더 지배적이었다. 또 다른 실험에서, 뱃슨과 동료들은 도움의 두 번째 배후 동기를 시험해 보았다. 사회적으로 옳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다. ... 그 결과, 감정 이입을 많이 하는 피험자들은 어느 경우든 (일레인이 충격으로부터 풀려나면 ) 안도했지만, 감정 이입을 많이 하지 않는 피험자들은 자신이 공을 세워 그녀를 풀어 준 경우에만 안도감을 느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피험자들에게 글자 찾기 과제를 준 뒤 점수가 좋아야만 일레인을 대신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어떤 경우에는 그 과제가 쉽다고 믿게끔 했고 (그러면 피험자가 곤경을 모면하고자 일부러 나쁜 점수를 받기가 어렵다.) 다른 경우에는 어렵다고 믿게끔 했다(피험자가 일부러 점수를 나쁘게 받아서 희생 요청을 회피할 수 있다.). 그 결과 감정 이입을 많이 하지 않는 피험자들은 과제를 대강 수행했고, 어렵다고 여긴 과제에서 점수 가 더 나빴다. 반면에 감정 이입을 많이 하는 피험자들은 어려운 과제에서 더 잘했다. 자신이 일레인을 대신하려면 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감은 정말로 진정한 도덕적 관심, 즉 인간을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그 자체 목적으로 다루라는 칸트적 의미의 도덕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위의 경우에는, 남을 도움으로써 자신의 기분이 좋아지고 싶다는 목적을 위한 수단조차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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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지만, 공감은 보통 공동체 관계에서 표현된다. ... 그렇다면, 공동체 관계를 창조하는 인자라면 무엇이든지 공감도 창조할 것이다. 우리가 공동체 의식을 구축하는 첩경은 사람들에게 상위 목표를 주어 서로 협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로버스케이브 캠프 실험이 고전적인 사례로, 아이들은 진흙탕에 빠진 버스를 함께 끌어내야 했다.). 갈등 해소 워크샵은 대개 이 원칙에 따라 운영된다. 적대적인 참가자들을 친근한 분위기에서 한곳에 모아 서로 개인으로 친해지게 하고, 갈등 해소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상위의 목표를 안겨 주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상호 공감이 생겨난다. ... 그러나 이런 사례도 참가자들에게 협동을 강제하기는 마찬가지이고, 수십억 인구를 한곳에 모아 갈등 해소 워크샵을 벌인다는 발상은 당연히 현실적이지 못하다. 공감을 일으키는 외생적 기제로 가장 강력한 것은 아주 값싸고, 널리 적용되며,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픽션, 회고록, 자서전, 르포를 읽으면서 타인의 관점을 취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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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주 뒤, 피험자들은 난데없는 전화를 받았다. 교도소 개혁에 관한 여론 조사라고 했다(전화를 건 사람은 실험자의 공모자였지만, 그 사실을 눈치챈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조사 문항 중에 살인자에 대한 태도를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실험실에서 답했던 질문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시간적 거리를 두었더니, 관점 취하기의 효과가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2주 전에 제임스의 느낌을 상상했던 학생들이 살인죄 수감자들에게 눈에 띄게 관대했던 것이다. 설득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이런 지연된 영향을 가리켜 수면자 효과(sleeper effect)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도록 만드는 정보를 접하면 - 이 경우에는 살인자에 대한 온화한 감정 - 처음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그 영향을 인식하여 의식적으로 밀어내지만, 나중에 방어가 사라진 뒤에는 심경이 변한다. 이 연구의 결론은, 사람들이 어떤 집단을 몹시 싫어하더라도 그 속에 포함된 어느 낯선 구성원의 관점을 취하면서 그의 사연을 들으면 그는 물론이거니와 그가 대변하는 집단으로까지 진심으로 공감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지 몇 분 뒤에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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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많은 학자는, 대표적으로 수전 킨이 <감정 이입과 소설>에서 그랬듯이, 픽션이 도덕성을 고취시킨다는 가설에 발끈한다. 그들은 그것이 지나치게 평범하고, 치유적이고, 저속하고, 감상적이고, 오프라 윈프리다운 발상이라고 본다. ... 그러나 만일 가상의 경험이 현실의 경험과 비슷한 효과를 내지 않는다면 그 편이 더 놀라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두 가지를 기억에서 종종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픽션이 공감을 넓힌다는 것을 보여 준 실험이 소수나마 있다. .... 그리고 능숙한 작가의 손에서는 가상의 피해자가 현실의 피해자보다 더 많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문학 비평가 예멜얀 하케뮐데르는 <도덕 실험실>에서 이런 실험을 소개했다. 그는 피험자들에게 알제리 여성들의 고통을 다룬 글을 읽혔는데, 일부에게는 말리케 모케뎀의 소설 <추방자> 속 주인공의 관점을 취하게 했고, 나머지에게는 잰 굿윈의 폭로성 논픽션 <명예의 대가>를 읽혔다. 그 결과, 소설을 읽은 피험자들이 사실적 기록을 읽은 피험자들보다 알제리 여성들에게 더 많이 공감하여, 그들이 괴로움을 그들의 문화, 종교 유산으로 치부하는 태도를 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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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이입과 공정성의 상충은 실험실에서만 관찰되는 희한한 현상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 지도자와 정부 관료가 감정 이입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래서 친척과 벗에게만 다정하게 특권을 나눠 준다면, 낯선 사람들에게 냉정하게 분배할 때보다 사회에게는 큰 해가 된다. 족벌주의는 경찰, 정부, 기업의 능력을 약화시킨다. 게다가 여러 일족과 민족 집단이 삶의 필수 요소를 놓고 제로섬 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그런 경쟁은 쉽게 폭력으로 변질된다. 근대의 사회 제도들은 운영자들이 사회로부터 위임 받은 추상적 의무를 수행할 때 감정 이입의 유대를 초월해야만 제대로 돌아간다. 감정 이입의 또 다른 문제는,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이해를 두루 고려하는 힘이 되기에는 너무 편협하다는 것이다. 거울 뉴런이 있다지만, 감정 이입은 눈길이 닿는 모든 상대에게 공감하게끔 만드는 반사 반응이 아니다. 감정 이입은 우리가 상대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켜졌다 꺼졌다 하고, 아예 거꾸로 작동하기도 한다. 감정 이입은 귀여움, 잘생긴 외모, 혈연, 우정, 유사성, 공통의 유대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타인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감정 이입의 범위를 넓힐 수는 있지만, 뱃슨이 경고했듯이 그 정도는 크지 않은 편이고 효과가 일시적일 수도 있다. 낯선 사람을 친척이나 친구와 동등하게 느낄 정도로 우리의 감정 이입 기울기가 평평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20세기 최악의 유토피아적 이상과 다르지 않다. 그러려면 우리는 본성을 억눌러야 하는데, 그것은 달성할 수 없는 일인 동시에 바람직한 일인지조차 의심스럽다. 게다가 꼭 그럴 필요도 없다.감정 이입 범위가 확장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우리가 지구 상 모든 인간들의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그럴 시간과 에너지가 없으려니와, 감정 이입을 그렇게 얇게 퍼뜨리려다가는 감정이 소진되고 동정심이 지쳐 버리고 말 것이다. 구약성서는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신약성서는 적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아마도 우리가 이웃과 적을 사랑해야만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도덕적 논리일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적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나보다 다음과 같은 이상이 더 낫다고 믿는다. 이웃이나 적을 죽이지 마라, 설령 그들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역사적으로 실제 확장된 것은 감정 이입의 범위라기보다 권리의 범위이다.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고 전혀 다른 모습일지라도 모든 생명체가 피해와 착취를 겪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장된 것이다. 물론, 감정 이입은 그동안 간과된 집단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자는 통찰을 제공한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했다. 그러나 통찰만으로는 부족하다. 감정 이입이 실제로 중요하게 작용하려면, 그런 집단들에 대한 정책과 규범을 바꾸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 단계에서야 비로소 감정 이입이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관습적인 인명 피해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이 엘리트들의 결정과 대중의 상식적 지혜를 옳은 방향으로 기울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성에 관한 절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우리가 감정 이입을 얽어매는 내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도덕적 논증이 꼭 필요하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책과 규범이라야 한다. 그것이 제2의 본성이 되어, 감정 이입이 아예 필요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듯이, 감정 이입만으로도 부족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모든 조건이 같다면, 쾌락은 지금 당장 즐기는 것이 남는 장사이다. 우리가 돈을 빌려 주면서 이자를 요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 이자는 시간이 경과할수록 당신에게 돌아올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정도를 정확하게 보상해 주는데, 왜냐하면 가치가 감소하는 양상도 지수적이기 때문이다. ... 달리 말해, 합리적 행위자는 마땅히 내일을 할인해야 한다. 그래서 내일의 더 적은 쾌락 대신 오늘의 쾌락을 즐긴다. ... 그러나 우리 미래를 지나치게 할인하는 경우, 자기 탐닉은 비합리적인 행동이 된다. 미래의 자신이 멀쩡히 살아서 지금 아끼는 것을 즐길 수 있는데도 미래의 자신에게 실제보다 훨씬 낮은 가치를 매기는 경우이다. ... 지나친 자기 탐닉과 자기 통제 상실은 미래의 자신을 지나치게 할인하는 행동이다. 달리 말해, 지나치게 높은 이자율을 요구하고서는 그 수준이 되어야만 현재의 자신에게서 자원을 빼앗아 미래의 자신에게 할당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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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자기 통제 상실은 우리 신경계에 새겨진 과거의 할인율 때문에 벌어지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과거 선조들이 살았던 불확실한 세상에서는 지금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빨리 죽었고, 현재의 저축으로 미래의 이윤을 얻는 제도도 없었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노후 대비를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하면 다들 몇 년 안에 죽을 것처럼 저축을 너무 적게 한다. 행동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등이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이 사실에 근거한다. 그들은 정부가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이 경쟁하는 경기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국민들의 동의 하에. 최적 수준의 연금 저축을 모든 국민에게 기본적으로 부과하는 것이 한 예다. 개인이 선택적으로 가입하는 게 아니라 선택적으로 탈퇴하게 만드는 것이다. 몸에 나쁜 식품에는 판매세를 더 많이 부과하는 것도 또 다른 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현실에서는 시간적 임박성에 따라 선호가 바뀐다. 이것을 근시안적(myopic) 할인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밤중에 다음 날 아침 메뉴를 적어서 호텔 문손잡이에 걸어 놓을 때는 과일과 무지방 요구르트를 선택하지만, 아침에 뷔페에서 즉석에 고를 때는 베이컨과 크루아상을 선택하기 쉽다. 연구자들이 많은 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것을 보면, 생물체는 두 보상이 시간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먼저 올 작은 보상보다 나중에 올 큰 보상을 분별 있게 고를 줄 안다. ... 그러나 두 보상 중 하나가 현재와 아주 가까우면, 사람들은 작은 보상을 고른다. ... 시간 할인은 할인율이 적절할 때는 합리적이지만, 근시안적 할인으로 선호가 역전될 때는 어떤 면에서도 합리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모든 생물체는 근시안적이다. 수학을 좋아하는 경제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근시안적 선호 역전을 가리켜 합리적인 지수적(exponential) 할인 대신 쌍곡선적(hyperbolic) 할인을 시행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 이 현상은 근시안적 할인이 뇌의 두 체계가 벌이는 승강이에서 비롯한다는 심리 이론과도 일치한다. 뇌에는 당장의 보상에 대한 체계와 먼 미래 혹은 가상적 보상에 대한 체계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 심리학자 월터 미셜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근시안적 할인에 대한 유명한 실험을 한 뒤(아이들은 지금 마시멜로 하나를 먹는 것과 15분 뒤에 두 개를 먹는 것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했다.), 심리학자 재닛 멧칼프와 함께 즉각적 만족을 원하는 욕망은 뇌의 '뜨거운 체계'에서 나오고 기다리는 인내심은 '차가운 체계'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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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장의 앞부분에서 그 차갑고 뜨거운 체계를 살짝 살펴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변연계(그림 8-2에 주요 부분들이 나와 있다.)와 이마엽(그림 8-3)일 것이다. 변연계는 중간뇌에서 시상하부를 거쳐 편도로 이어지는 분노 회로, 공포 회로, 우세 회로를 포함한다. 중간뇌에서 시상하부를 거쳐 줄무늬체로 이어지면 도파민의 자극을 받는 탐색 회로도 포함한다. 이런 회로들은 모두 눈확겉질이나 이마엽의 다른 부분들과 양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이마엽은 그 감정 회로들의 활동을 조절하고, 그 회로들과 행동 통제 활동 사이에 개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기 통제는 변연계와 이마엽의 줄다리기로 설명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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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3에서 보듯이, 인간의 뇌는 앞쪽이 묵직하다. 큼직한 이마엽은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이 담당하는 자기 통제의 종류도 여러 가지이다. 이마엽 맨 뒤쪽에서 뒤통수엽과 맞닿은 부분은 근육을 통제하는 운동띠이다. 그 바로 앞은 운동 명령들을 조직하여 더 복잡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내는 운동앞 영역이다. 거울 뉴런이 처음 발견된 곳이 이 영역이었다. 이마엽 앞부분은 이마앞옆겉질이라고 하며, 우리가 앞에서 여러 차례 만났던 등쪽가쪽겉질, 눈확/배쪽안쪽겉질이 여기에 포함된다. 두 뇌반구의 맨 앞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이마극들도 포함된다. 이마극은 '이마엽의 이마엽'이라고 불리며, 등쪽가쪽이마앞엽겉질과 더불어 우리가 당장의 작은 보상보다 나중의 큰 보상을 선택할 때 활성화하는 부분이다. ... 이마엽이 손상된 환자들은 자극에 따라 곧이곧대로 행동한다. 그들 앞에 빗을 놓으면, 그들은 당장 그것을 집어서 머리카락을 빗는다. 그들 앞에 음식을 놓으면, 그들은 당장 그것을 입에 집어넣는다. ... 우리가 자극의 통제력에서 행동을 분리하려면, 즉 스스로의 목표와 계획에 부합하게 행동하려면, 이마엽이 온전해야 한다. ... 현재 신경 과학자들은 눈확겉질이 감정과 행동의 주요한 접점이라는 데 합의한다. 눈확겉질이 손상된 환자들은 충동적이고, 무책임하고, 산만하고,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하고, 때로 폭력적이다. 신경 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이 증후군을 감정 신호에 대한 무감각 탓으로 돌렸다. 다마지오가 보여 주었듯이, 그런 환자들에게 돈을 따거나 잃을 확률이 천차만별인 카드 게임을 시키면,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파괴적인 확률의 카드에 걸 때 식은땀을 흘리지 않았다. 식은땀처럼 감정이 추진하는 자기 통제는 - 걱정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 진화적으로 오래된 현상으로, 쥐처럼 눈확겉질이 잘 발달된 (그림 8-1을 보라.) 포유류들에게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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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보다 더 냉정하고 규칙에 의해 추진되는 자기 통제도 있다. 이런 자기 통제는 이마엽의 겉과 맨 앞부분이 담당하는데,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제일 많이 확대된 영역들이다. 등쪽가쪽겉질이 합리적인 비용 편익 계산에 관여한다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했다. 지연된 두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 폭주하는 전차를 지선으로 돌려 한 명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본선에서 달리도록 그냥 두어 다섯 명을 죽일 것인가 선택하는 문제 등이다. 한편 이마극은 명령의 위계에서 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 신경 과학자들은 우리가 인생의 상충하는 요구들 사이에서 유연하게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이마극 때문이라고 본다. 이마극은 우리가 멀티태스킹을 할 때, 새로운 문제를 살필 때, 잠시 중단했던 일을 재개할 때, 백일몽 상태와 주변 환경에 의식적으로 집중한 상태를 오갈 때 관여한다. 우리가 심적 서브루틴에 빠졌다가도 원래 하려던 주된 업무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이마극 덕분이다. ... 신경 과학자 에티엔 쾨클랭은 이마엽의 기능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마엽의 맨 뒤쪽은 자극에 반응하고, 가쪽이마엽겉질은 맥락에 반응하고, 이마극은 일화에 반응한다. 우리가 전화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수화기를 든다면,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침 친구 집에 있기 때문에 전화가 울리도록 그냥 놓아둔다면, 맥락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샤워하다가 고개를 내밀고서 전화가 울리면 받으라고 지시한다면, 우리는 일화에 반응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통제에는 여러 차원이 있고, 그중 어느 기능이 망가져도 충동적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지능을 제외할 경우,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의 전조로 자기 통제력만큼 정확한 것은 또 없다. ... 바우마이스터와 동료들은 자기 통제를 좀 다른 방식으로 측정해 보았다. 그들은 대학생들에게 아래의 문장에 대해서 자신의 자기 통제력을 점수로 매겨 보라고 했다. 나는 유혹을 잘 이긴다. 나는 속마음을 불쑥 말한다. 나는 절대로 통제력을 잃지 않는다. 나는 감정에 쉽게 휩쓸린다. 나는 쉽게 성질을 낸다. 나는 비밀을 잘 지키지 못한다. 나는 곰곰이 따진 뒤에 행동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나는 쾌락과 재미 때문에 할 일을 못할 때가 있다. 나는 시간을 잘 지킨다. 연구자들은 피험자들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특징에 체크하기 쉽다는 경향성을 감안하여 점수를 조정한 뒤, 여러 문항에 대한 반응을 하나의 수치로 통합하여 습관적 자기 통제력을 정량화했다. 그 결과, 점수가 높은 학생일수록 성적이 높았고, 섭식 장애가 적었고, 술을 덜 마셨고, 심인성 통증을 덜 느꼈고, 우울증, 불안증, 공포증, 편집증을 덜 겪었고, 자존감이 높았고, 양심적이었고, 가족과 관계가 좋았고, 안정된 우정을 경험했고, 나중에 뉘우칠 성관계를 적게 했고, 자신이 일부일처 관계에서 바람을 피우리라고 상상하지 않는 편이었고, 압박을 '해소'하거나 '바람을 뺄' 필요성을 덜 느꼈고, 죄책감은 더 느꼈지만 수치심은 덜 느꼈다. 자기 통제가 강한 사람들은 타인의 관점을 취하는 능력이 더 뛰어났고,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때 괴로움은 덜 느끼는 편이었다. 그러나 타인에게 더 공감하는 편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덜 공감하는 편도 아니었다. 흔히 자기 통제가 강한 사람은 꼬장꼬장하고, 억압되어 있고, 신경질적이고, 속으로 삭이고, 긴장되어 있고, 강박적이고, 혹은 심리 성적 발달 이론에서 항문기에 고착되어 있다는 통설이 있지만, 연구 결과는 그 반대였다. 자기 통제가 강한 사람일수록 더 나은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자기 통제 척도에서 상위를 차지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제일 건강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사람이 충동과 싸울 때는, 마치 힘쓰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기 통제에 관한 관용구는 힘의 개념을 끌어들인 것이 많다. 의지력, 의지의 힘, 강력한 의지, 자제력 등등. 언어학자 렌 탈미는 자기 통제의 언어가 역학 관계의 언어를 끌어 쓴다고 지적하며, 우리는 자기 통제력을 뇌 속의 작은 인간처럼 여기고 그 인간이 완강한 반대자와 물리적으로 승강이하는 것처럼 상상한다고 말했다. ... 그런데 많은 개념적 비유가 그렇듯이, 자기 통제는 물리적 노력이라는 비유에도 신경 생물학적으로 일말의 진실이 있었다. 바우마이스터와 동료들의 놀라운 실험에 따르면, 자기 통제력도 근육처럼 지친다. ... 이 연구에는 많은 반대가 제기 되었다. .... 바우마이스터 연구팀은 모든 반대를 확인해보았다. 연구진은 10년 동안 각종 실험을 더 실시하여, 의지력을 발휘해야 하는 작업이라면 거의 뭐든지 역시 의지력을 요구하는 다른 작업의 성과를 방해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 이 연구에서 드러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자기통제력을 행사하는 도중에는 개개인의 차이가 감춰진다는 것이다. 금주와 자기 통제를 폄훼했던 1960년대 대중문화가 '네 멋대로 해라' 라는 유명한 모토처럼 순응성까지 폄훼했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사회는 한 가지를 고집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다들 자기 통제를 발휘하여 그 한 가지를 해야 한다. 이처럼 자기 통제가 개인성을 평탄하게 만든다면, 에고가 고갈된 상황에서는 개인성이 도로 표출되지 않을까? 바우마이스터 연구진은 정확히 그런 현상을 목격했다. ... 바우마이스터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들이 - 특히 남자들이 - 의지력을 발휘해야만 성적 욕구를 통제할 수 있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통념도 사실이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인간은 자기 통제를 성찰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것을 향상시킬 방법도 함께 고민했다.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을 시켜 제 몸을 돛대에 묶었고, 선원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았다. 배가 좌초 하는 일 없이 안전하게 사이렌들의 유혹적인 노래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을 불리하게 만드는 기법을 가리켜 오디세우스 기법 혹은 율리시스 기법이라고 부른다. 예는 무수히 많다. 우리는 빈속으로 장 보러 가지 않는다. 브라우니, 담배, 술을 원하지 않을 때 그것을 내다 버린다. ... 물리적이라기보다 정신적인 자기 통제 전략도 있다. ... 폭력에 관해서라면, 모욕에 대한 인식을 재설정할 수 있다. 그것을 자신의 평판에 대한 참담한 공격으로 보는 대신, 아무런 효과가 없는 행위나 상대의 미성숙함을 보여 주는 행위로 여기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마."라는 조언, "녀석은 그냥 허풍 떠는 거야.", "쟤는 애라서 그래.", "그쪽 말대로 믿든가."라는 무시, "몽둥이와 돌멩이는 내 뼈를 부러뜨리지만 말은 나를 다치게 하지 못한다."는 속담 등은 모두 인식 재설정 전술이다.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경제학의 최적 이자율과 생물학의 최적 채집 전략을 끌어들여, 세 번째 자기 통제 조작 방법을 제안했다. 그들에 따르면, 생물체들에게는 마치 이자율을 조정하듯이 미래에 대한 할인율을 조정하는 내적 변수가 있다. 변수는 환경의 안정성과 자신의 기대 수명에 따라 조절된다. ...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자기 통제력을 북돋우는 네 번째 방법은 영양 상태, 정신, 건강을 개선하는 것이다. 큼직한 이마엽은 대사적으로 요구 사항이 많아, 글루코오스(포도당)를 비롯한 각종 영양소를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다. 바우마이스터는 자기 통제를 물리적 노력에 빗대는 비유를 더 밀어 붙여, 사람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거나 의지력을 발휘해야 하는 과제 때문에 에고가 고갈되면 혈당 글루코오스 농도가 곤두박질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때 설탕이 든 레모네이드를 마셔서 글루코오스 농도를 회복하면, 후속 과제에서 예의 그 슬럼프를 보이지 않았다(인공 감미료 아스파탐을 탄 레모네이드는 효과가 없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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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책 독파] 주자와 다산의 대결 <두 개의 논어> 편집자와 함께 읽기 《논어》 혼자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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