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경제학자 개럿 존스는 지능과 죄수의 딜레마를 다른 경로로 연결했다. 그는 1959~2003년까지 대학에서 수행된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실험들을 모조리 수집했다. 총 피험자 수가 수천 명인 36개 실험을 분석한 결과, 평균 수학 능력 시험 점수가 높은 학교일수록 (이 점수는 IQ와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학생들이 더 기꺼이 협동했다. 요컨대, 서로 다른 두 조사의 결과는 일치했다. 이득을 예상할 수 있는 전형적인 상황에서 지능은 상호 협동을 장려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똑똑한 사회일수록 더 많이 협동하는 사회일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경제학자 브라이언 캐플런은 역시 종합 사회 조사 데이터에서 똑똑한 사람일수록 경제학자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교육, 소득, 성별, 정당, 정치적 지향을 통계적으로 제어하고도.). 똑똑한 사람일수록 이민, 자유 시장, 자유 무역에 공감했고, 보호주의, 일자리 창출 정책, 정부의 기업 규제에 덜 공감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이 놓인 영역을 더 넓게 조망하면, 이 입장에서 지능과 비례하는 방향일수록 역사적으로 더 평화로운 방향이었다고 주장할 만하다. 왜냐하면 경제학자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온화한 상업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입장은 교역의 포지티브섬 수익은 물론이거니와 확장하는 협동의 그물망에 뒤따르는 부수적 편익을 장려한다. 그리고 세상의 부를 제로섬 게임으로 간주하고자 한 집단이 부유해지려면 다른 집단이 희생되어야 한다고 보는 대중주의, 민족주의, 공산주의 사고방식과 대비된다. 역사적으로도 경제 지식이 부족하면 종종 민족적, 계층적 폭력으로 이어졌다. 못 가진 사람들은 가진 사람들의 재물을 강제로 몰수하고 그들의 탐욕을 처벌해야만 운명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7장에서 보았듯이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특히 서구에서는 인종 폭동과 집단 살해가 줄었는데, 어쩌면 이것은 경제에 대한 통찰이 증가한 현상과 관계있을지도 모른다(오히려 최근에는 그 시절에 비해 경제학 연구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보스턴 공립 도서관의 '준비된 민주주의' 이론(그곳 엔타블러처에는 이런 고무적인 문장이 새겨져 있다. "국가는 질서와 자유의 보호 장치로서 대중의 교양을 필요로 한다.")은 아직까지 사실로 확인된 바 없다. 성숙한 민주주의일수록 시민들이 더 학식있고 더 똑똑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려진 현상이지만, 성숙한 민주주의는 그 밖에도 좋은 것을 뭐든지 더 많이 갖고 있다.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더 민주적인 국가일수록 더 부유해서 더 많은 학교와 도서관을 갖추고, 덕분에 시민들이 더 많은 교육을 받아 더 똑똑해질지도 모른다. 똑똑함이 민주주의에 앞서지 않고 말이다. 심리학자 하이너 린데르만은 상호 지연 상관관계 분석이라는 사회 과학 기법으로 이 매듭을 풀었다(똑똑한 아이가 계몽된 성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던 영국의 연구도 이 기법을 썼다.). 여러 나라들의 민주주의 수준과 법치 수준에 점수를 매긴 데이터 집합이 여럿 존재한다. 각 나라 어린이들이 교육 받는 햇수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부 나라들에 대해서는 널리 쓰이는 지능 검사의 평균 점수를 알 수 있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수학 능력 검사들의 점수도 알 수 있다. 린데르만은 두 점수를 통합하여 하나의 지적 능력 지표를 산정했다. 그리고 나라마다 특정 시기 (1960~1972년)의 교육과 지적 능력이 다음 시기(1991~2003년)의 번영, 민주주의, 법치 수준을 얼마나 잘 예측하는지 확인해 보았다. 보스턴 공립 도서관 이론이 옳다면, 설령 앞 시기의 경제적 부와 같은 다른 변수들을 통제하더라도 상관관계가 강하게 나타나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점으로, 이 상관관계는 앞 시기 민주주의 및 법치와 다음 시기 교육 및 지적 능력의 상관관계보다도 더 강해야 한다. 과거가 현재의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 보스턴 공립 도서관의 조각가들에게 경의를 표하자! 다른 요인들이 같을 때, 과거의 교양과 지적 능력은 최근의 민주주의와 법치 수준을 (더불어 번영을) 잘 예측했다. 대조적으로, 과거의 부는 현재의 민주주의를 예측하는 지표가 되지 못했다(법치 수준은 약하게나마 예측했다.). 이때 학교 교육 기간보다는 지적 능력이 더 강력한 예측 지표였다. 린데르만에 따르면, 학교 교육은 지적 능력과 상관관계가 있을 때만 예측 지표가 된다. 그렇다면 교육을 통한 추론 능력 함양이 적어도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민주주의를 강화했다고 결론지어도 크게 무리가 아닐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정치학자 클레이턴 타인은 6장에서 보았던 제임스 피어론과 데이비드 레이틴의 데이터 집합 중 160개 나라와 49개 내전의 데이터를 골라 분석했다. 그 결과, 국가의 교육 수준을 나타내는 네 지표의 점수가 높을수록 - 국내 총생산에서 일차 교육에 투자하는 비율, 학령층 인구 중 일차 교육 기관에 등록한 비율, 청소년 인구 중 이차 교육 기관에 등록한 비율(특히 남성),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었지만)성인의 문해 능력 - 이듬해의 내전 가능성이 낮았다. 효과는 작지 않았다. 일차 교육 기관 등록률이 평균보다 표준 편차 이상 높은 나라들은 평균보다 표준 편차 이상 낮은 나라들보다 이듬해에 내전을 겪을 확률이 73퍼센트 더 낮았다. 물론 과거의 전쟁 경력, 일인당 소득, 인구, 산악 지형, 석유 수출, 민주주의와 준민주주의 수준, 인종 분열과 종교 분열 등등의 요인을 고정한 결과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발언의 IQ라는 것은 없지만, 테틀록을 비롯한 여러 정치 심리학자들은 통합 복잡성이라는 변수로 발언의 지적 균형, 뉘앙스, 세련됨을 평가한다. 통합 복잡성이 낮은 구문은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고 그것을 줄곧 강조할 뿐, 뉘앙스나 증거가 부족하다. 연구자들은 절대적으로, 언제나, 확실히, 분명히, 전적으로, 영원히, 반박할 수 없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의심할 수 없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등등의 표현이 쓰인 횟수를 헤아림으로써 최소 수준의 복잡성을 정량화한다. 보통, 거의, 그러나, 하지만, 아마도 등등의 단어가 쓰인 구문은 좀 더 미묘한 편이므로, 통합 복잡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판단된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관점을 보여 주는 구문은 점수가 더 높고, 연관성이나 교환 관계나 타협을 논하는 구문은 그보다 더 높고, 그보다 더 상위의 원칙과 체계를 끌여들여 그런 관계를 설명하는 구문은 가장 점수가 높다. 구문의 통합 복잡성은 그것을 쓴 사람의 지능과는 다른 문제이지만, 둘 사이에 상관관계는 있다. 사이먼턴에 따르면 적어도 미국 대통령들에서는 그랬다. 통합 복잡성은 폭력성과 관계가 있다. 평균적으로 통합 복잡성이 낮은 언어를 쓰는 사람일수록 좌절에 폭력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고, 전쟁 게임에서 쉽게 전쟁에 돌입한다. 테틀록은 심리학자 피터 슈에드펠드와 함께 20세기 정치적 위기들 중 평화롭게 끝난 사례(1948년 베를린 봉쇄, 쿠바 미사일 위기 등)와 전쟁으로 끝난 사례(제1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등)를 골라 당시 지도자들의 발언에서 통합 복잡성을 따져 보았다. 그 결과 통합 복잡성이 낮으면 전쟁이 따르기 쉬웠다. 특히 아랍과 이스라엘의 발언에서, 그리고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발언에서 수사적 단순성과 군사적 맞대결은 강한 연관 관계를 보였다. 이 상관관계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고집이 센 사람일수록 합의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 떠올릴 수도 있고, 아니면 호전적인 사람일수록 자신의 완고한 입장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일부러 단순한 수사를 동원할 수도 있다. 테틀록은 실험실과 현실의 연구들을 모두 검토하여, 두 역학이 모두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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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분야에서만큼은 정치인들이 정말로 플린 효과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 선거 토론이다. 2008년 텔레비전 토론을 시청했던 사람들은 단 두 마디로 내용을 요약할 수 있었다. '배관공 조'(오바마 대통령의 유세에서 세금 정책을 비판하는 말을 한 것이 방송을 타서 일약 유명인이 되었던 사람의 별명 - 옮긴이). 심리학자 윌리엄 고턴과 제니 딜스는 1960~2008년까지 토론에 나선 후보자들의 언어에 점수를 매겨, 경향성을 정량화했다. 그 결과 1992~2008년까지 전반적 세련도가 낮아졌고, 경제 관련 발언은 그보다 이른 1984년부터 질이 낮아졌다. 얄궂게도, 대선 토론의 세련도가 후퇴한 것은 정치 전략가들의 세련도가 발전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유세 기간의 막판에 벌어지는 텔레비전 토론은 부동층을 겨냥하는데, 그들은 유권자 중에서도 정보가 제일 없고 관심도 제일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인상적인 한 마디나 재치 있는 한 구절을 근거로 선택하기 때문에, 전략가들은 후보자에게 목표를 낮게 잡으라고 조언한다. 2000년과 2004년에는 부시에 맞선 민주당 후보들이 평범함에 평범함으로 맞대응한 탓에 토론 수준이 더욱 낮아졌다. 미국 정치 체계에 이렇게 악용할 수 있는 취약점이 있다는 사실은 평화가 증진되는 현대에 미국이 오히려 두 번의 지리한 전쟁에 말려든 까닭을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이성은 어떻게 이런 요구들을 만족시킬까? 그것은 이성이 무제한적인 조합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새로운 발상을 무수히 생성할 수 있는 엔진이다. 우리가 일단 기초적인 자기 이익 추구 능력과 타인과의 소통 능력을 갖추면, 다음에는 이성 고유의 논리가 이성을 더욱 추진한다. 그러다가 때가 무르익으면, 이성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이해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과거의 추론에서 결함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현재에 맞게 개선하는 것도 늘 이성의 몫이다. 여러분이 지금 내 논증에서 흠을 발견한다면, 그 흠을 지목하고 대안적 견해를 구축하게 만드는 것도 이성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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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다른 시나리오를 상상하자. 이번에는 우리에게 선택지가 주어진다. 내 새끼손가락 하나를 잃는 것과 중국인 1억 명이 죽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스미스는 이때 괴물 같은 선택을 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예상했다.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낯선 사람에 대한 감정 이입은 개인적 불행에 대한 괴로움보다 설득력이 한참 떨어지는 게 사실일진대, 왜 우리는 괴물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일까? 스미스는 이렇게 묻고, 우리의 선한 천사들을 비교함으로써 역설에 답했다. - 따라서, 자기애라는 최고의 강력한 충동에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성의 부드러운 힘들이 아니다. 자연이 발휘되는 것은 좀 더 강한 힘, 더 강력한 동기이다. 이성, 원칙, 양심, 짐승 속에 거하는 존재, 내면의 인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위대한 재판관이자 결정권자가 그것이다. 그는 우리가 타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할 때마다 나서서, 우리의 가장 몰염치한 충동마저 깜짝 놀라게 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이른다. 우리는 무수한 사람들 중 하나일 뿐, 어떤 면에서도 남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우리가 무조건 뻔뻔하게 자기만을 선호한다면 마땅히 남들의 분노, 혐오, 증오를 받을 것이라고. 우리는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자신과 자신에게 관계된 모든 일이 사실 얼마나 하찮은지를 깨우친다. 우리는 오로지 그 공평무사한 관찰자의 눈을 통해서만, 그릇된 자기애의 표출이라는 타고난 성향을 바로잡을 수 있다. 우리에게 관용의 타당성과 불의의 추악함을 보여 주는 것도 바로 그다. 남들이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자신의 가장 큰 이득마저도 단념해야 적절하다는 것을, 자신의 최대의 이득을 얻고자 남들을 해치는 일은 아무리 작은 피해라도 추한 짓이라는 것을, 바로 그가 우리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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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10장. 천사의 날개를 타고
자원 경쟁은 역사의 핵심적 역학이었지만, 폭력의 거시적 경향성에 관해서는 별다른 통찰을 주지 못한다. 지난 500년 동안 가장 파괴적이었던 분쟁들은 자원이 아니라 종교, 혁명, 민족주의, 파시즘, 공산주의 등등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불붙었다(5장). 그런 분쟁들이 알고 보면 텅스텐이나 다른 자원 때문이라는 주장을 누구도 완벽하게 반증할 수는 없겠지만, 자원 결정론은 아무리 증명하려고 노력해 봤자 괴짜 음모론으로 비칠 뿐이다. 힘의 균형에 대해서는,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나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처럼 판이 뒤집힌 상황이라도 세상이 미친 듯한 쟁탈전에 돌입하지는 않았다. 그런 사건은 선진국들의 긴 평화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개발 도상국들에게는 새로운 평화의 전조가 되었다. 두 사건의 뜻밖에 유쾌하게 끝났던 것도 자원의 발견이나 재분배와는 무관했다. 개발 도상국의 자원은 오히려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석유와 광물이 풍부한 나라들은 국민에게 나눠 줄 파이가 더 큰데도 가장 폭력적인 나라에 속했다(6장). ... 자원 경쟁은 자연의 상수가 아니다. 그것은 폭력을 비롯한 여러 사회적 힘들의 그물망에 내재된 요인이다. 사람들은 사회의 하부 구조와 사고방식에 따라 어떤 시기와 장소에는 완성품의 포지티브섬 교환을 선택하고, 또 다른 시기와 장소에는 원재료의 제로섬 경쟁을 선택한다. 후자는 사실상 네거티브섬 경쟁이다. 약탈한 원료의 가치에서 전쟁 비용을 빼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캐나다를 침공하여 오대호 항로나 귀중한 니켈 매장량을 압수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교역으로 그 편익을 누리는 마당에 굳이 왜 그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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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함과 비폭력의 긴밀한 상관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작용하는 상관관계가 있다. 국가 이전 부족들 중, 어업 자원과 사냥 자원이 풍부한 태평양 북서부와 같은 온대 지역의 정착 부족들에게 노예제, 계급제, 전사 문화가 있을 때가 많았다. ... 민주주의와 여타 인도주의적 개혁을 뒷받침했던 사상들은 18세기에 꽃피웠지만, 물질적 안녕은 그보다 상당히 늦게 발전하기 시작했다(4장). 서구에서는 19세기 산업 혁명과 더불어 비로소 부가 쌓였고, 건강과 수명은 19세기 말 공중 보건 혁명과 더불어 비로소 개선되었다. 좀 더 소규모로 보더라도, 부의 변동과 인권에 대한 관심의 변동은 주기가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미국 남부에서 면화 가격이 떨어지자 린치가 늘었다는 말이 있지만, 20세기 전반을 압도한 역사적 경향성은 린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준 것이었다. 광란의 1920년대에도, 대공황기에도,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7장). 내가 아는 한, 1950년대 말에 시작된 권리 혁명의 기세는 경기의 고저에 따라 오르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현대 사회의 부유함에 따라온 자동적인 결과도 아니었다. 아시아의 몇몇 잘 사는 나라들이 가정 폭력과 체벌을 상대적으로 많이 용인한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7장). 폭력 범죄율이 경제 지표를 밀접하게 쫓아가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20세기 살인율 감소는 번영의 지표들과 대체로 무관했다. ... 살인은 현금, 식량 따위의 물질적 동기보다는 모욕과 부정에 복수하려는 도덕적 동기에서 저질러질 때가 많으니까. 그런데 부와 폭력은 한 가지 측면에서만큼은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 경제 척도에서 바닥에 있는 나라들 간의 차이를 설명하는 대목이다(6장). 앞에서 보았듯이, 일인당 연간 국내 총생산이 1000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그 나라가 내부의 폭력 소요로 분열될 가능성이 치솟는다. 그러나 상관관계 이면의 인과 관계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돈으로는 많은 것을 살 수 있다. 국가가 돈이 없어 못 사는 것들 중 무엇이 폭력에 책임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개인 차원에서 영양과 건강이 나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국가 차원에서 괜찮은 학교, 경찰, 정부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6장). 그리고 전쟁은 역전된 개발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가난 때문에 전쟁이 났는지 전쟁 때문에 가난해졌는지 그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무신론자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베스트셀러에 붙은 부제, '종교는 어떻게 모든 것을 망치는가'는 지나친 말이다. 종교는 폭력의 역사에서 단일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다른 어떤 것의 역사에서도 종교는 단일한 세력이 아니었다. 우리가 종교라고 통칭하는 다종다양한 운동들은 그보다 최근에 등장한 세속적 제도들과 구별된다는 점 외에는 서로 공통점이 별로 없다. 그리고 종교적 믿음과 관습은 인류 역사의 내생적 요인들이다. 자신들은 그것을 신의 섭리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사의 지적, 사회적 흐름에 대한 반응들이었다. 그 흐름이 계몽적 방향으로 움직일 때는 종교들도 곧잘 그에 적응했다. 요즘 기독교 신자들이 구약의 피투성이 대목을 신중하게 무시하는 것이 뚜렷한 예다. 물론, 모두가 모르몬 교회처럼 적나라하게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1890년에 모르몬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일부다처제를 중단해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고(일부다처제가 유타 주의 연방 가입에 걸림돌이 되던 시기였다.), 1978년에는 그때껏 카인의 낙인을 지닌 인간으로 간주했던 흑인도 성직에 받아들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섬세한 적응들, 가령 종파 분리, 개혁 운동, 세계 교회 회의, 여타 자유주의 세력들도 종교를 인도주의의 파도에 휩쓸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종교가 폭력 세력이 되는 것은 원리주의 세력이 대세를 거슬러 부족적, 원위적, 청교도적 제약을 강제할 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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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학 변화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으로, 협동의 이득(이 경우에는 공격을 참는 것의 이득)을 보여 주는 전형적 모형인 죄수의 딜레마를 다시 떠올리자(8장). 그 이름표를 바꾸어, 평화주의자의 딜레마라고 부르자. ... 평화주의자의 딜레마는 아무리 과장해도 수학적 모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말로만 하는 설명을 보완하는 방법으로서 계속 이 모형을 언급할 것이다. 우리는 이 수치들에서 폭력의 이중적 비극을 읽을 수 있다. 첫 번째 비극적 요소는, 세상이 이런 보수 구조일 때 평화주의자가 되는 것은 비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점이다. 상대가 평화주의자라면, 나는 그의 취약성을 이용하고픈 유혹을 느낀다(승리의 10점이 평화의 5점보다 낫다.). 상대가 공격자라면, 나는 그에게 착취 당하는 희생자가 되느니(처참한 100의 손실을 겪는다.) 전쟁의 괴로움을 견디는 편이 낫다(50점의 손실이다.). 어느 쪽이든 공격이 합리적 선택이다. 두 번째 비극적 요소는, 피해자의 손실(이 경우 -100)이 공격자의 이득(10)과는 비교도 안되게 더 크다는 점이다. 양쪽이 죽을 때까지 끝장을 보는 싸움이 아닌 한, 공격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네거티브섬 게임이다. 승자가 이득을 좀 얻기는 하지만, 둘다 공격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정복자가 땅을 좀 얻어서 누리는 이익은 그가 그것을 훔치려고 죽인 사람들이 겪는 불이익에 비하면 하찮다. 강간범이 자신의 충동을 해소하는 그 찰나의 쾌락은 그가 피해자에게 일으키는 고통에 비하면 엄청나게 사소하다. 이런 비대칭은 엔트로피 법칙의 궁극적 결과이다. 우주의 모든 상태들 중 생명과 행복을 지지하는 형태로 정렬된 상태는 극소수이기 때문에, 행복한 상태를 장려하고 만들어 내는 일보다는 행복한 상태를 파괴하여 비참함을 만들어 내는 일이 언제나 더 쉽다. 요컨대, 공평한 관찰자가 더없이 냉정한 공리적 계산으로 전체적인 행복과 불행을 따진다면, 폭력은 늘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된다. 가해자의 행복보다 피해자의 불행이 더 크고, 따라서 세상의 총행복이 줄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공평한 관찰자의 초월적 관점에서 내려와 지상의 관계자들의 관점을 취하면, 폭력을 없애기가 왜 이리도 어려운지를 금세 알 수 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혼자만 평화주의를 선택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상대가 공격의 유혹을 느낀다면 자신만 끔찍한 대가를 치를 테니까. 평화주의,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미는 것, 칼을 두드려 쟁기를 만드는 것 등등의 도덕적 정서가 폭력을 일관되게 줄이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 '내가 아니라 남이 문제'라는 점 때문이다. 도덕적 정서는 상대도 나와 동시에 그 정서를 느낄 때만 효과가 있다. ... 폭력의 역사적 감소 요소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바로 이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요소들은 모두 평화주의자의 딜레마에서 보수 구조를 바꿈으로써 - 격자 속 수치들을 바꿈으로써 - 양측이 평화의 상호 이득을 누리는 왼쪽 위 칸으로 끌리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역사와 심리학에 비추어 볼 때, 나는 세상을 평화로운 방향으로 밀어붙인 다섯 가지 발견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리바이어던이 칼을 휘두를 때는, 그 힘을 얼마나 분별 있게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이득이 정해진다. 리바이어던은 피지배자들의 보수 행렬에서 '공격' 칸들에만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 리바이어던이 네 칸에 무차별적으로 벌금을 부과하고, 자신이 권력을 지키고자 피지배자들을 함부로 다룬다면, 피해를 방지하기는커녕 더 많은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2장과 4장). 정부가 보수 행렬에서 올바른 칸에만 적절한 힘을 조심스럽게 적용한다는 점이야말로 민주 국가가 독재 국가나 혼합 정치보다 나은 점이다. 그럴 때 평화주의자의 선택지는 달성할 수 없어 괴로운 꿈이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선택지로 바뀐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이론에서, 리바이어던과 온화한 상업은 유럽 문명화 과정의 두 추진력이었다(3장). 중세 후기부터 확장한 왕국들은 약탈을 처벌하고 정의를 국유화했음은 물론이요, 화폐나 계약 집행 제도와 같은 교환의 하부 구조들을 구축했다. 그런 하부 구조는 도로나 시계와 같은 기술의 발전, 그리고 이윤, 혁신, 경쟁을 억제했던 터부의 제거와 함께 상업의 매력을 더했다. 그래서 서로 싸우던 기사들이 상인, 장인, 관료로 교체되었다. 역사적 사실은 이 가설을 지지한다. 상업이 실제로 중세 후기부터 팽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 그때부터 폭력적 사망률이 추락했다는 범죄학적 사실도 이 가설을 지지한다(9장과 3장). 도시와 국가 같은 더 큰 연합체에서도 외양선, 새로운 금융 제도, 중상주의 정책의 쇠퇴에 힘입어 상업이 번성했다. 학자들은 18세기에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스페인처럼 이전까지 전쟁을 일삼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상업국으로 탈바꿈하여 말썽을 덜 일으킨 데에 이런 발달이 기여했다고 본다(5장). 그로부터 200년 뒤에는 중국과 베트남이 독재 공산주의에서 독재 자본주의로 변신하여, 과거 수십년 동안 그 나라들을 지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로 만들었던 이데올로기적 전쟁 의지를 약화시켰다. 그 밖의 나라들에서도 국가적 영광 추구에서 이윤 추구로의 가치 전환은 호전적인 영토 확장 운동의 기세를 꺾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5장과 6장). 이런 변화는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에 도덕적 파산 선고를 내리고 그 속박에서 풀려난 탓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한 경제가 제공하는 톡톡한 보상에 유혹된 탓일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여성 친화적 가치들은 왜 폭력을 줄일까? 남녀의 기본적인 생물학적 차이가 우리의 심리에 남긴 유산이 한 원인이다. 남자는 여성에 대한 성적 접근성을 높고 서로 경쟁하려는 동기가 크지만, 여자는 자식을 고아로 만들지도 모르는 그런 위험에서 물러나 있으려는 동기가 크다. 제로섬 경쟁에 집착하는 것은 늘 여자보다는 남자이다. 부족 사회와 기사 사회에서 여성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경쟁이든, 현대 사회에서 명예, 지위, 우세, 영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쟁이든 마찬가지이다. 평화주의자의 딜레마에서 승리의 보상과 패배의 대가 중 일부분이 - 가령 80퍼센트가- 남성의 자아를 부풀리는 결과와 손상시키는 결과에 해당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여성 행위자들이 선택지를 결정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이제 승리보다 평화가 더 매력적이고, 패배보다 전쟁의 대가가 더 크다. 평화주의자의 선택지가 거뜬히 이길 수 있다. 만일 폭력적 충돌에서 남자보다 더 피해를 입기 마련인 여자의 대가를 전쟁 칸에 반영한다면, 이보다 더 극적인 역전이 벌어질 것이다. 물론 의사 결정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완벽하게 외생적인 현상은 아니다. 흉포한 침입자가 언제라도 덮칠 수 있는 사회라면, 남자든 여자든 패배의 대가가 파국적일 것이다. 이때 표독한 군사적 가치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온화한 가치를 선택하는 것은 사실상 자살 행위이다. 따라서 여성의 이해를 존중하도록 기운 가치 체계란 이미 포식적 침략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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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폭력성 누수 요인은 동등한 남녀 인구이다. 미국 변경의 카우보이 마을이나 금광처럼 남자로만 이루어졌고 치안이 취약한 사회 환경은 거의 늘 폭력적이었다(3장). 서부가 거칠었던 것은, 젊은 남자들이 그곳에 다 몰렸지만 젊은 여자들은 동부에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더 사악한 이유에서 사회가 남자로만 채워질 수도 있다. 여자아이를 낙태하거나 출생 후 죽이는 관습 때문이다. 정치학자 발레리 허드슨과 안드레아 덴 부르는 <잉여의 남성, 평화의 결핍>이라는 논문에서, 중국의 전통적인 여아 살해가 진작부터 미혼 남성 인구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런 남자들은 다들 가난하다. 부유한 남자들만이 희소한 여자를 얻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그런 미혼 남성을 '헐벗은 가지(홀아비를 뜻하는 단어 光棍兒를 말한다. - 옮긴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무리 지어 떠돌아다니면서 자기들끼리 실랑이를 벌이고, 결투를 하고, 정착한 사람들에게 강도질을 하고, 겁을 준다. 그런 무리가 군대로 성장하여 지방 정부와 국가 정부를 위협할 수도 있다. 물론 정부 지도자들은 그런 갱을 폭력적으로 진압할 수도 있지만 그들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남자들의 도덕관에 친숙한 마초적 통치 철학을 택해야 할 때가 많다. 가장 좋기로는, 그들을 이주 노동자, 식민지 개척자, 병사로 다른 지역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들의 파괴적 에너지를 수출하는 셈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문해 능력, 도시화, 이동성, 대중 매체에의 접근성은 19세기와 20세기에 계속 향상되었다. 20세기 후반에는 이른바 지구촌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자기와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더 많이 인식하게 되었다(5장과 7장). 18세기의 문자 공화국과 독서 혁명이 인도주의 혁명을 부추겼듯이, 20세기의 지구촌과 전자 혁명은 긴 평화, 새로운 평화, 권리 혁명의 진행을 거들었을지도 모른다. 언론 보다가 시민권 운동, 반전 정서, 공산주의의 몰락을 가속화한 것 같다는 관찰을 확실히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관점-공감 연구들을 보자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람들이 세계주의 사회에서 섞여 살아가는 것과 인도주의 가치를 지지하는 것 사이에 통계적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 준 연구도 여럿 있었다(7장과 9장).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어쩌면 이성의 에스컬레이터 비유를 휘그적이고, 현재 중심적이고, 순진한 역사 해석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유행에 따라 무작위로 움직이는 이데올로기들에게 억지로 방향성을 입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실제로 일종의 휘그적 역사를 지지한다. 자유주의적 개혁들은 서유럽과 미국 해안 지역에서 생겨난 뒤에 시간 간격을 두고서 세계의 더 보수적인 지역으로 퍼진 경우가 많았다(4장, 6장, 7장). 그리고 역시 앞에서 말했듯이, 발달한 추론 능력과 협동, 민주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비폭력에 대한 포용성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었다. 심지어 인과 관계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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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감소를 이미 눈치챈 사람에게, 그 현상이 그토록 폭넓은 시간과 차원에서 그토록 풍부하게 존재했다는 점은 거의 미스터리로 느껴질 지경이다. ... 내 생각은 이렇다. 평화주의자의 딜레마는 우리가 이 미스터리를 최소한 명료하게 바라보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역사의 비무작위 방향성은 우리에게 도덕성과 목적성을 부여하는 현실의 특정 측면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우리 종은 그 딜레마를 안고 태어났다. 왜냐하면 개인마다 궁극의 이해가 다르고, 우리의 연약한 육체는 착취하기 알맞은 대상이고, 착취 당하느니 착취하자는 유혹 때문에 결국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충돌을 겪기 쉽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평화는 필패의 전략이고, 공동의 평화는 모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이 화나는 상황은 수학적 보수 구조에 내재한 속성이며, 그런 의미에서 현실의 속성이다. 그러니 고대 그리스인이 전쟁을 신들의 변덕 탓으로 돌린 것도, 히브리인과 기독교인이 도덕주의적 신성에 호소함으로써 신이 내세의 보수를 조정하여 현세에 사람들이 인식하는 유인 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믿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진화가 빚어낸 형태 그대로의 인간 본성은 행렬에서 왼쪽 위의 평화로운 칸으로 모두를 이동시키는 과제를 감당하지 못한다. 탐욕, 두려움, 우세, 정욕 등등의 동기들이 줄곧 우리를 공격 쪽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팃포탯 보복의 위협이라는 중요한 억제책이 있지만, 그것은 게임이 반복될 때만 협동을 가져온다. 게다가 현실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눈금이 자기 위주 편향으로 잘못 조정되어 있으므로, 팃포탯 위협이 안정적인 억제가 아니라 오히려 혈수의 악순환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 본성에는 평화의 칸으로 올라가려는 동기들도 포함되어 있다. 공감이나 자기 통제가 그렇다. 또한 우리에게는 언어를 포함한 소통의 통로들이 있고, 조합론적 추론이라는 개방된 사고 체계도 있다. 우리가 토론의 도가니에서 그 체계를 더욱 정련한다면, 나아가 문자를 비롯한 문화적 기억을 통해서 그 산물을 축적한다면, 우리는 보수 구조를 바꿀 전략을 개발함으로써 모두에게 평화의 칸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전략 중 하나로, 우리는 현실의 또 다른 추상적 속성에 초이성적으로 호소할 수 있다. 그 속성이란 관점의 교환 가능성, 즉 개인의 편협한 관점이 남들의 관점보다 결코 더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양측의 보수는 통합되고, 딜레마는 잠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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