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세계가 화학 무기를 치웠다면, 핵무기도 그럴 수 있을까? 최근, 미국을 상징하는 명사들이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이름의 이상주의적 성명서를 내놓았다. 그 상징들이란 '피터,폴,메리'가 아니라 조지 슐츠, 윌리엄 페리, 헨리 키신저, 샘 넌이었다. 슐츠는 레이건 행정부의 국무 장관이었다. 페리는 클린턴 시절 국방 장관이었다. 키신저는 닉슨과 포드 시절 안보 보좌관이자 국무 장관이었다. 넌은 상원 군사 위원회 위원장이었고, 오래전부터 국방에 가장 정통한 입법자로 명망이 났다. 이들 중 몽상적 이상주의자 소리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요즘은 이 계획을 글로벌 제로라고 부른다. 버락 오바마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연설에서 그들을 지지했고(오바마가 200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여러 이유 중 하나였다.), 여러 정책 두뇌 집단들이 실행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추진 일정은 네 단계로 구성될 것이다. 협의, 축소, 확인, 그리고 2030년에 최후의 탄두를 해체한다는 계획이다. ... 글로벌 제로 이면의 심리는 핵무기 사용의 터부를 소유의 터부로 확장하자는 것이다. ... 문제는, 어떻게 여기에서 거기까지 가느냐이다. 무기 해체 고정에는 취약한 기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남은 핵 세력들 중 하나가 확장주의적 광신자의 손아귀에 떨어지기 쉽다. ... 셸링, 존 도이치, 해럴드 브라운 등 일부 핵전략 전문가들은 핵 없는 세계의 가능성에 대해서, 심지어 그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한편 다른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일정표와 안전장치를 설계하여 그들의 반대에 대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영구 평화론>에서 칸트는 국가 지도자들이 더 착해지거나 온화해지지 않아도 전쟁 동기가 감소하게끔 만드는 세 가지 조건을 이야기했다. 첫째는 민주주의이다. 민주 정부는 국민들 사이의 갈등을 합의된 법률로써 해소시키도록 설계되었다. 민주 국가는 다른 국가를 대할 때도 이 윤리를 외면화한다. 또한 모든 민주 국가는 다른 민주 국가의 작동 방식을 잘 안다. 모름지기 민주 국간는 한 개인에 대한 숭배, 구세주에 대한 신념, 집단주의 사명 따위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모두 동일한 합리적 기초로부터 구축되었다. 그래서 민주 국가 사이에는 신뢰가 생기고, 신뢰는 서로 상대의 선제공격이 두려워서 자신이 선제공격을 하고 싶어 하는 홉스적 악순환의 싹을 자른다. 마지막으로 민주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에게 책임이 있으므로, 국민의 피와 부를 희생하여 제 영광을 높이는 한심한 전쟁을 덜 일으킨다. 오늘날 이 이론은 '민주주의 평화'라고 불린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유럽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민주주의는 놀라 만큼 뿌리가 얕다. 동쪽 절반은 1989년까지 공산주의 독재에 장악되었고,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는 1970년대까지 파시스트 독재 치하였다. 독일은 군사주의 군주국으로서 첫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역시 군주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손잡았다. 나중에는 나치 독재 하에서 다시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이때는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손잡았다. 프랑스도 민주주의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 다섯 번이나 시도해야 했고, 그 사이에는 군주국, 제국, 비시 정부로 존재했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많은 전문가는 민주주의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75년에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한은 이렇게 탄식했다.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는 19세기 군주제와 비슷한 처지가 되어 가고 있다. ..." ... 모이니한이 민주주의의 죽음을 선언한 해는 통치 형태들(민주주의, 독재, 혼합 정치)의 상대적 운명이 갈리는 고비였다. 그리고 실은 민주주의야말로 미래이 세상이었다. 선진국에서는 특히 그랬다. 남유럽은 1970년대에, 동유럽은 1990년대에 완전히 민주화되었다. 현재 유럽에서 독재로 분류되는 나라는 벨라루스뿐이고, 러시아 외에는 모두 어엿한 민주 국가들이다. 민주주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우세하고, 남한이나 대만처럼 태평양 지역 중에서도 발전된 나라에서 그렇다. 민주주의가 국제 평화에 기여하느냐 마느냐를 차치하더라도, 민주 국가는 자기 국민에게 최소한의 폭력을 가하는 정부 형태이기 때문에 그 득세는 그 자체로 폭력의 역사적 감소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다른 조건들이 모두 같을 때, 정말로 민주 국가들끼리는 군사 분쟁에 덜 휘말렸을까? 답은 확실하게 '그렇다'였다. 둘 중 덜 민주적인 나라가 완전한 독재 국가라면, 평균적인 위험 수준에 비해 분쟁 가능성이 두 배나 되었다. 둘 다 완전한 민주국가라면, 분쟁 가능성은 절반 이상 줄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팍스 아메리카나나 팍스 브리타니카의 징후는 전혀 없었다. 두 나라의 군사력이 세계 제일이었던 해가 그들이 여러 강대국 중 하나였던 해에 비해 더 평화롭지는 않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민주주의 평화는 간혹 자유주의 평화의 특수한 사례로 여겨진다. 이때 '자유주의'란 고전 자유주의를 뜻하지 않는다. 정치와 경제의 자유를 강조하는 입장을 말하지, 좌파 진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 평화 이론은 온화한 상업의 원리를 포함한다. 무역은 상호 이타주의의 한 형태로, 양쪽에게 포지티브섬 이득을 주고 서로 이기적인 이유에서 상대의 안녕을 바라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로버트 라이트는 협동의 역사적 확장을 살펴본 책 <넌제로>에서 상호성에 최고의 위치를 부여하며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가 일본을 폭격하지 말아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내 미니밴을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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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많은 역사학자는 무역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일반 법칙에 회의적이다. ... 분명, 고대와 중세에는 무역을 뒷받침하는 하부 구조가 개선된 것만으로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 배와 도로처럼 무역을 장려하는 기술은 약탈도 장려한다. 때로는 경로마저 같다. 당시 사람들은 '상대가 더 많으면 무역을, 우리가 더 많으면 약탈을'이라는 규칙을 따랐다. 나중에는 무역으로 얻을 이득이 너무나 탐난다는 이유로 저항하는 식민지와 약소국에게 함포를 들이대며 무역을 강제하기도 했다. 19세기 아편 전쟁이 악명 높은 사례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사실은 에인절도 강조했던 바이지만, 국가가 경제적 무익함을 이유로 전쟁을 피하는 것은 애초에 경제적 번영에 흥미가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많은 지도자는 국가적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혹은 유토피아 이데올로기를 실천하기 위해서, 혹은 자국의 입장에서 역사적으로 불공평했던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 약간의 번영쯤은 기꺼이 희생한다(약간이 아닐 때도 많다.). 국민들도 그런 지도자를 따르곤 한다. 심지어 민주 국가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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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를 '죽음의 상인'이나 '전쟁의 나리'로 불렀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자본주의 평화는 발상만으로도 충격이다. 저명한 평화 연구자 닐스 페테르 글레디치는 이 역설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2008년 국제 정치학회 회장 취임 연설에서 1960년대 평화 시위의 슬로건을 업데이트하여 이렇게 말했다. "전쟁은 관두고, 돈이나 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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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가 <영구 평화론>에서 상정한 '자유 국가들이 연방'은 국제적 리바이어던에는 한참 못 미치는 형태였다. 그것은 지구적인 초거대 정부라기보다는 차츰 범위를 넓혀가는 자유 공화국들의 클럽이고, 무력의 독점보다는 도덕적 정당성이라는 유연한 힘에 의존한다. 현대에 그가 동등한 것을 찾자면 오히려 정부 간 국제기구( IGO)이다. 참가국들에게 공통의 이해가 있는 분야에서 제한적으로나마 각국의 정책을 조정할 권한을 지닌 관료 기구를 뜻한다. 국제 조직 중 세계 평화에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단체는 유엔이 아니라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일 것이다. 프랑스, 서독,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가 1950년에 창설한 이 기구는 석탄과 철이라는 두 중요한 전략적 필수품의 시장을 감시하고 생산을 조절한다. 기구는 참가국들의 - 특히 서독의 - 역사적 경쟁심과 야심을 공통의 상업 행위 속에서 가라앉히려는 방안으로서 설계되었다. 석탄 철강 공동체는 유럽 경제 공동체의 무대를 닦았고, 그로부터 유럽 연합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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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평화는 국제 무대에서 정언 명령이 득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많은 국제 관계 연구가 이 생각에 콧방귀를 뀔 것이다. 편향되게도 '현실주의'라고 불리는 유력한 이론은 세계 정부가 부재한 상황일 때 국가들은 영원히 홉스식 무정부 상태로 존재한다고 본다. 지도자들은 사이코패스처럼 행동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고려하고, 도덕성이라는 감상적인 (그리고 자살적인) 생각에 따라 유화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현실주의를 변호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인간 본성의 결과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들이 기저에 깐 인간 본성 이론이란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8장과 9장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인간은 또한 도덕적 동물이다. 인간의 행동이 공평무사한 윤리적 분석에 비추어 도덕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행동은 감정, 규범, 터부를 기반으로 하는 도덕적 직관에 따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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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의 관점에서 본 보편 역사의 이념>이라는 글에서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 전쟁들, 긴장되고 쉴 새없는 대비, 그 때문에 평화로운 시절에조차 모든 국가가 내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고통. 자연은 이런 것을 수단으로 삼아서, 국가들이 모종의 조치를 시도하도록 이끈다. 처음에는 그 시도가 불완전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무수한 황폐와 격변과 심지어 내부의 힘을 모조리 소진하는 일까지 겪은 뒤에는, 야만적인 무법 상태를 등지려는 조치가 성공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 결론은 굳이 수많은 슬픈 경험을 겪지 않고도 이성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세데르만은 칸트의 이른바 '학습을 통한 평화'이론을 칸트의 '민주주의를 통한 평화' 이론과 통합하자고 제안한다. 민주 국가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가 처음에는 호전적인 상태에서 시작하고(강대국이 민주 국가가 된 예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국가이든 갑작스럽고 끔찍한 전쟁에 허를 찔릴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앙에서 배우는 능력은 민주 국가가 더 낫다. 정보에 대한 개방성과 지도자가 짊어진 의무 때문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긴 평화는 이런 종류(새로운 비관론을 부추긴 세 가지 조직적 폭력)까지 없애지는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이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장소'라는 인상을 받는다. 첫 번째 조직적 폭력은 강대국 간 전쟁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전쟁들을 아우른다. 특히 주목할 것은 내전,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이 주로 겪는 군부, 게릴라, 준군부의 전쟁이다. 이런 전쟁은 '케케묵은 증오'를 연료로 타오르는 '새로운 전쟁' 혹은 '저강도 충돌'이라고 불린다.... 우리가 살펴볼 두 번째 조직적 폭력은 특정 인종이나 정치 집단에 대한 대량 살해이다. 지난 100년은 '집단 살해의 시대' 혹은 '집단 살해의 세기'로 불린다. ... 세 번째는 테러이다. 미국이 2001년 9월 11일에 공격을 받은 뒤, 테러에 대한 두려움에서 거대한 관료주의가 생겨났고, 두 차례 해외 전쟁이 벌어졌고, 정계에서는 집착에 가까운 논의가 이어졌다. 테러 위협은 미국에게 '존재론적 위협'을 가한다고 했고, '우리 삶의 방식을 끝장' 내거나 '문명 자체를' 끝장 낼 수 있다고 했다. ... 정치학자들이 이런 종류의 파괴를 측정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인데, 분석 작업은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모든 종류의 살해들이 감소세였던 것이다. 감소는 극히 최근의 일이라서 -지난 20년 안짝이다.- 앞으로도 지속되리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우므로, 잠정성을 고려하는 의미에서 나는 이것을 새로운 평화(New Peace)라고 부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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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이 식민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벌인 전쟁은 대단히 파괴적일 수 있었다. 프랑스가 1946~1954년까지 베트남을 유지하려고 벌였던 전쟁이나(전투 사망자 37만 5000명)1954~1962년까지 알제리를 유지하려고 벌였던 전쟁이(전투 사망자 18만 2500명) 그랬다. 그러나 '세계 역사상 최대의 권력 이전'(냉전 종식) 이후에는 이런 전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이것은(1946~2008년까지 국가 기반 무력 충돌 그래프에서 국가간 전쟁 데이터) 세 개의 큼직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데, 각각이 이전보다는 얇아졌다. 첫 번째는 1950~1953년까지 벌어졌던 한국 전쟁을 포함한 영역이고(4년간 전투 사망자 100만 명), 다음은 1962~1975년까지 벌어졌던 베트남 전쟁을 포함한 영역이고(14년간 전투 사망자 160만 명), 마지막은 이란-이라크 전쟁을 포함한 영역이다(9년간 전투 사망자 64만 5000명). 냉전 종식 뒤에는 국가 간 전쟁이 두 건 눈에 띈다. 전투 사망자 2만 3000명의 제1차 걸프전과 사망자 5만 명의 1998~2000년 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 전쟁이다. 새 천 년의 첫 10년은 국가 간 전쟁이 드물었고, 대체로 짧았고, 전투 사망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인도-파키스탄과 에리트레아-지부티 충돌인데, 이것들은 연간 사망자 1000명이라는 엄격한 기준에서는 '전쟁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신속한 정권 교체도 이 시기에 포함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국가 간 전쟁이 꺼져가는 동안, 내전은 불붙었다. 그림 6-2에서 왼쪽의 큼지막한 진회색 쐐기를 보자. 그것은 주로 1946~1950년 중국 내전의 전투 사망자 120만 명 때문이다. 1980년대에도 좀 더 옅은 회색 덩어리가 꼭대기에 불룩 얹혀 있다. 여기에는 소련이 뒤를 봐주었던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전투 사망자 43만 5000명이 포함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구불구불 이어진 진회색 층은 앙골라, 보스니아, 체첸, 크로아티아, 엘살바도르,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이라크, 라이베리아, 모잠비크, 소말리아, 수단, 타지키스탄, 우간다 등에서 벌어졌던 작은 내전들의 합이다. 이조차도 2000년대에 더 가늘어져, 더 날씬한 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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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효과가 어떻든, 그런 경제 지표들과 그 밖의 '구조적 변수들'은 최근 내전 상황의 변동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변화가 너무 느리다. 가령 국가 인구 구성에서 젊은이와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그런 변수이다. 다만 그런 변수들의 효과는 그 나라의 통치 형태와 상호 작용한다. 사실 그래프에서 1960년대에 내전의 쐐기가 두꺼워진 데에는 명백한 유발 기제가 있었다. 바로 탈식민화이다.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를 정복하고 반란을 진압하면서 원주민들에게 가혹한 짓을 했지만, 제법 제대로 기능하는 경찰, 사법, 공공 서비스 하부 구조를 구축한 것도 사실이었다. 유럽인이 특정 인종 집단을 편애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주 관심사는 식민지 전체를 통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법과 질서를 제법 광범위하게 적용했다. ... 그랬던 식민 정부들이 떠나면서, 유능한 통치도 함께 사라졌다. 1990년대 중앙아시아와 발칸 반도에서도 수십 년 동안 그들을 지배했던 공산주의 연방이 갑자기 해산된 뒤에 이와 비슷한 반(半) 무정부 상태가 분출했다. 한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사람은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뒤에야 민족 간 폭력이 터진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옛날에 우리가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았던 까닭은 100미터마다 경찰관이 서서 우리가 서로 못 견디게 사랑하는지 확인했기 때문이죠."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신생 정부의 운영자는 독재자나 도둑 정치가일 때가 많았고, 가끔 정신 이상자도 있었다. 그들은 국가의 많은 부분을 무정부 상태로 버려두어, 사람들의 약탈과 갱 전쟁을 초래했다. 3장에서 폴리 위스너가 뉴기니의 비문명화 과정을 묘사했던 것과 비슷하다. .... 이 시절을 상징하는 존재는 중앙아프리카 제국의 장베델 보카사일 것이다. 과거에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이라고 불렸던 소국의 이름을 그가 그렇게 바꾸었다. 그는 아내가 17명이었고, 몸소 정적을 찔러 죽였고(인육을 먹었다는 소문도 있다.), 그의 제복을 본뜬 값비싼 의무 교복에 학생들이 항의하자 죽도록 구타했고, 황제로 자칭하는 대관식을 치르기 위해서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나라의 1년 세입에서 3분의 1을 쏟았다(황금 왕좌와 다이아몬드가 박힌 왕관까지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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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에는 많은 폭군이 강대국의 가호로 권좌를 지켰다. 강대국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니카라과의 아나스타시오 소모사에 대해서 했다는 말, "그는 개자식이지만 그래도 우리 개자식이라오." 라는 논리를 따랐다. 소련은 세계 공산주의 혁명을 전진시키려는 곳이라면 어느 체제에든 동정적이었고, 미국은 소련의 궤도에서 벗어나 있으려는 곳이라면 어느 체제에든 동정적이었다.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강대국들은 자국에게 석유와 광물을 공급하는 곳이라면 어느 체제하고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 두 후견국은 충돌이 얼른 끝나는 것보다는 끝내 자국의 피후견인이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그림 6-3에서, 1975년 무렵 내전이 두 번째로 팽창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는 포르투갈이 식민 제국을 해체한 때였고,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것을 보고서 세계 각지의 반란군들이 대담해진 때였다. 내전은 1991년에 51건으로 가장 많았는데, 바로 그해에 소련이 사라졌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냉전이 부추겼던 대리전들이 함께 사라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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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충돌의 감소분 중 대리전이 사라진 탓으로 볼 수 있는 것은 5분의 1뿐이다. 세계의 갈등을 지피는 연료 중 또 하나를 제거한 사건은 공산주의의 종말이다. 공산주의는 루어드가 명명한 이데올로기의 시대에 최후까지 남은 반인도주의적 강령이자 투쟁을 미화하는 강령이었다(새로 등장한 이슬람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이 장의 뒷부분에서 다루겠다.) 이데올로기는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하나같이 전쟁을 치명적 분포의 꼬리로 밀어붙인다. ... 마오쩌둥은 인민의 목숨이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우리는 인구가 아주 많다. 조금 잃어도 괜찮다. 그런들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한번은 그가 '조금'이 얼마인지 정량화해서 말했는데, 당시 중국 인구의 절반인 3억 명이었다. 그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인류에서도 그만큼의 비율을 기꺼이 희생하겠다고 말했다.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아 인류의 절반이 죽더라도, 나머지 절반은 제국주의가 남김없이 파괴되고 온 세계가 사회주의가 된 세상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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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권력이 승자 독식의 복권과 같을 경우, 특히 정부가 석유, 금, 다이아몬드, 전략적 금속 등의 횡재를 통제하는 경우에는 내전 취약성이 증폭된다. 이런 노다지는 축복이기는커녕 이른바 자원의 저주를 불러온다. 다른 말로 풍요의 역설, 바보의 금이라고도 한다. 재생 불가능하고 독점하기 쉬운 자원을 잔뜩 가진 나라는 경제 성장이 더디고 허접스러운 정부가 서고, 폭력이 더 많다 베네수엘라 정치인 후안 페레스 알폰소의 말마따나 '석유는 악마의 배설물'이다. 국가는 자원 때문에 저주에 걸릴지도 모른다. 자원은 그것을 독점한 사람에게, 대개는 통치 엘리트이지만 때로는 지방 군벌에게, 권력과 부를 몰아주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들러붙는 경쟁자를 쫓기에 급급할 뿐, 상호 의무 속에서 사회를 살찌우고 하나로 역을 상업망을 육성하는 데는 아무런 유인을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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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서재로 듣기]오디오북 수요일엔 기타학원[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팟캐스트/유튜브] 《AI시대의 다가올 15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같이 듣기
⏰ 그믐 라이브 채팅 : 최구실 작가와 함께한 시간 ~
103살 차이를 극복하는 연상연하 로맨스🫧 『남의 타임슬립』같이 읽어요💓
매달 다른 시인의 릴레이가 어느덧 12달을 채웠어요.
[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 12월] '오늘부터 일일'[날 수를 세는 책 읽기ㅡ11월] '물끄러미' 〔날 수를 세는 책 읽기- 10월 ‘핸드백에 술을 숨긴 적이 있다’〕
어두운 달빛 아래, 셰익스피어를 읽었어요
[그믐밤] 35.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1탄 <햄릿>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
독서모임에 이어 북토크까지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스토리 수련회 : 첫번째 수련회 <호러의 모든 것> (with 김봉석)[책증정] 저자와 함께 읽기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오프라인북토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AI 에 관한 다양한 시선들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결과물과 가치중립성의 이면[도서 증정]《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AI 메이커스> 편집자와 함께 읽기 /제프리 힌턴 '노벨상' 수상 기념[도서 증정] <먼저 온 미래>(장강명)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AI 이후의 세계 함께 읽기 모임
독자에게 “위로와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이희영
[도서 증정] 『안의 크기』의 저자 이희영 작가님,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이희영 장편소설 『BU 케어 보험』 함께 읽어요![선착순 마감 완료] 이희영 작가와 함께 신간 장편소설 《테스터》 읽기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만나는 철학자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책걸상 함께 읽기] #52.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도서 증정] 순수이성비판 길잡이 <괘씸한 철학 번역>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증정]《너를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니체가 말했다》 저자&편집자와 읽어요!
<피프티 피플> 인물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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