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콜리어는 "바닥의 국가들이 비록 우리와 함께 21세기를 살고는 있지만, 그들의 현실은 내전, 전염병, 무지가 횡행했던 14세기이다."라고 말했다. 문명화 과정의 목전이었던 그 무참한 세기와의 비유는 참으로 적절하다. 뮬러는 <전쟁의 자취>에서 오늘날 세계 무력 충돌의 대부분은 전문적인 군대들이 영토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보다는 젊은 무직자 무리가 군벌이나 지방 정치인을 섬기며 약탈, 겁박, 복수, 강간을 자행하는 경우이다. 중세 영주가 사적인 전쟁을 치르려고 모집했던 사회의 쓰레기들과 비슷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탈식민화로 인한 무정부적 비문명화 과정에서 내전이 급등했다면, 최근의 감소는 재문명화 과정을 반영할지도 모른다. 국민을 착취하기보다는 보호하고 섬기는 유능한 정부들이 생겨난 것이다. 많은 아프리카 나라는 보카사 스타일의 정신 이상자 대신 책임감있는 민주주의자를 권좌에 앉혔다. 넬슨 만델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전환에는 이데올로기 변화도 필요했다. 해당 국가만이 아니라 국제 사회가 폭넓게 변해야 했다. 역사학자 제라를 프루니에는 1960년대 아프리카에서 식민 지배로부터의 독립은 구세주적 이상이었다고 지적했다. 신생 국가는 주권 국가의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를테면 항공 노선, 과저, 나라 이름이 붙은 시설들이었다. '종속 이론가'들의 영향을 받은 나라도 많았다. 그 이론가들은 제3세계 정부가 세계 경제와의 접촉을 끊고 자급자족 산업과 농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요즘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그것을 극빈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긴다. 때로 경제 국수주의는 폭력 혁명을 미화하는 낭만적 군사주의와 결합했다. 1960년대의 두 아이콘이 그 흐름을 잘 상징한다. 부드러운 색깔로 화사하게 그려진 마오쩌둥의 초상과 날카로운 윤곽으로 늠름하게 묘사된 체 게바라의 초상이다. 영광스런 혁명가들의 독재가 인기를 잃으면, 민주 선거가 새 묘약이 되었다. 누구도 문명화 과정의 시시한 제도들, 즉 유능한 정부, 경찰력, 무역과 상업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하부 구조 따위에서 낭만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에 따르면 그런 제도들이야말로 만성적 폭력 감소에 꼭 필요한 선결 조건이고, 다른 모든 사회적 이득에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이점을, 지난 20년 동안 강대국, 기부국, 정부 간 국제기구(가령 아프리카 연합)가 강조했다. 이들은 무능한 폭군이 통제하는 나라를 배척하고, 처벌하고, 망신주고, 몇몇 경우에는 침공했다. 정부 부패를 추적하고 근절하는 조치들을 널리 시행했고, 세계 무역에서 개발 도상국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장벽을 확인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화려하지 않은 이런 조치들의 조합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내전의 횡행을 야기했던 개발 도상국 정부와 사회의 병리적 사고방식을 되돌렸을지도 모른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평화의 첫 지주인 민주주의가 내전의 횟수를 줄이지 못한다는 사실은 앞에서 말했다. 미덥지 못한 혼합 정치일 때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내전의 심각성만큼은 줄이는 듯하다. ... 민주주의 평화 이론의 두 번째 지주인 세계 경제에의 개방성은 이보다 더 강력하여, 내전의 확률과 심각성을 둘 다 끌어내리는 듯하다. 이때 개방성은 무역, 해외 투자, 조건부 원조, 전자 매체에의 접근성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칸트의 평화 이론은 평화의 무게를 세 지주 위에 얹었는데, 그 세 번째는 국제 조직이다. 그중에서도 내전 감소의 공을 크게 주장할 만한 조직이 있다. 국제 평화 유지군이다. ... ... 국제사회는 1980년대 말부터 평화 유지 작전을 늘렸다. 더 중요한 점으로, 평화 유지군 인원을 늘려 임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게 했다. 그 전환점은 냉전의 종식이었다. 강대국들은 마침내 대리전의 승리보다는 갈등의 종결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유엔이 갖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잘하고 있는 한 가지가 평화 유지군이다(유엔은 처음부터 전쟁을 예방하는 데는 성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 정치학자 버지니아 페이지 포트나는 <평화 유지군은 효력이 있는가?>에서, 책 제목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고 우렁찬 예스"라고 말했다. 포트나는 1944~1997년까지 115건의 내전 휴전에 대한 데이터를 모은 뒤, 평화 유지 작전이 전쟁의 재점화 가능성을 낮췄는지 살펴보았다. 데이터에는 유엔의 작전은 물론이고 NATO나 아프리카 연합과 같은 상설 기구들, 그리고 국가들의 임시 연합이 벌린 작전도 포함했다. 그녀에 따르면, 평화 유지군의 존재는 휴전 후 전쟁이 재발할 위험을 80퍼센트나 낮췄다. ... 소규모 파단도 평화 유지에 효과적일 수 있다. 상대의 선제공격이 두려워서 먼저 선제 공격을 하려 하는 홉스의 함정으로부터 양측을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평화 유지군의 간섭을 받아들인다는 행위 자체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겠다는 양측의 주장이 진지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값비싼 (따라서 믿을 만한) 신호이다. 일단 평화 유지군이 주둔하면, 협정이 이행되도록 감시함으로써 안전을 강화하고 양측에게 상대가 몰래 재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평화 유지군은 또 일상적인 치안 활동을 맡아, 자칫 복수의 악순환으로 격화할지도 모르는 작은 폭력 행위를 저지한다. ... 평화 유지 작전은 다른 수단을 통해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반란군이나 군벌에게 자금을 대는 밀매 무역을 박멸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데, 사실 자금을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같은 사람들일 때가 많다. 아니면, 평화를 지키는 지도자에게는 지역 개발 사업 자금을 주겠다고 유인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세력을 키우고 유권자들에게 인기를 끌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비국가 충돌은) 군벌, 민병대, 마피아, 반란 집단, 준군부 등이 종종 민족 집단과 연대하여 서로 싸우는 경우이다. 이런 충돌은 보통 실패한 국가에서 벌어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정부를 끌어들일 생각조차 않는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가 폭력의 독점에 실패했다는 뜻이니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비국가 충돌은 2002년부터 집계되기 시작했다. UCDP(스웨덴 웁살라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세계 분쟁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는 그해에 '비국가 충돌 데이터 집합'을 꾸리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세 가지 통찰을 얻었다. 첫째, 어떤 해에는 비국가 충돌이 국가 기반 충돌만큼 많았다. 이것은 공동체 간 전투가 만연했다는 징후라기보다는 전쟁이 그만큼 희소해졌다는 징후이다. 충돌의 대부분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에서 벌어졌다는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지만, 중동에서도 수가 늘고 있다(이라크가 두드러진다.) 둘째, 비국가 충돌은 정부가 관여하는 충돌보다 훨씬 적은 사망자를 낸다. 대략 4분의 1이다. 이것 역시 놀랍지 않다. 정부란 정의상 폭력의 사업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셋째, 2002~2008년까지 (2008년은 데이터 집합에서 제일 최근 년도이다.) 사망자 수는 대체로 감소했다. 2007년은 이라크에서 공동체 간 폭력이 가장 치명적이었던 해였는데도 말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비국가 충돌이 무력 충돌 희생자의 세계적 감소세에 대한 반례가 될 만큼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 같지 않다. 비국가 충돌은 새로운 평화의 반례가 아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집단 살해는 희생자 수만으로도 우리의 정신에 충격을 안긴다. 럼멜은 집단 살해의 피해를 헤아린 최초의 역사학자였는데,20세기에 정부에 의해 살해된 사람이 1억 6900만 명이었다는 추정치로 유명하다. 이 숫자는 지나치게 크게 잡은 것이지만, 20세기에 전쟁 사망자보다 국가 살해 사망자가 더 많았다는 주장에는 다른 전문가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매슈 화이트는 그동안 발표된 추정치들을 종합하여 검토한 결과, 국가 살해에서 8100만 명이 죽었고 인재로 간주할 수 있는 기근에서 4000만 명이 죽었다고 계산했다(주로 스탈린과 마오쩌둥 때문이었다.). 도합 1억 2100만 명이다. 한편 전쟁에서는 교전 중 군인 3700만 명과 민간이 2700만 명이 죽었고, 추가로 전쟁으로 인한 기근 때문에 1800만 명이 죽었다. 도합 8200만 명이다. (다만 화이트는 국가 살해 사망자의 절반쯤이 전쟁 중에 발생했고, 전쟁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런 학살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토록 많은 사람을 그토록 짧은 시간에 죽이려면 죽음의 대량 생산 기법이 필요하다. 이 점이 공포에 한 겹을 더 두른다. 나치의 가스실과 소각장은 언제까지나 집단 살해의 가장 충격적인 시각적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고출력의 살상을 자행하기 위해서 반드시 현대 화학과 철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 1972년 부룬디에서 투치 족이 후투 족을 집단 살해했을 때 (22년 뒤 르완다에서 거꾸로 벌어질 집단 살해의 전 단계였다.), 한 가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 기술이야 여러 가지가 있다. 이것저것 많다. 한 건물에, 감옥이라고 하자. 2000명을 몰아넣을 수도 있다. 그렇게 큼직한 방들이 있다. 그 건물을 잠근다. 그 속의 사람들은 보름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방치된다. 그 뒤에 문을 연다. 그러면 시체들이 있다. 그들은 맞은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다. 그냥 죽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내가 인간 집단도 다양한 과일들처럼 집단마다 공통된 속성이 있다고 말하면,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는 사람들은 새치름한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는 우리가 찬양할 어떤 문화적 다양성도 없을 것이고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어떤 민족적 특징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집단으로 뭉치는 것은 정말로 어떤 특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비록 통계적인 공유이지만 말이다. 그러니 특정 개인을 범주에 따라 일반화하는 것이 그 자체로 결함은 아니다. 요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정말로 백인들보다 복지 제도에 더 많이 의존한다. 유대인들은 정말로 앵글로색슨 사람들보다 평균 소득이 더 높다. 경영 전공 학생들은 정말로 예술 전공 학생들보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다. 어디까지나 평균적으로. 범주화의 문제는 이것이 종종 통계를 넘어선다는 데 있다. 일례로 우리는 압박을 느끼거나 주의가 산만하거나 감정적일 때, 범주가 근사적 성질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고서 마치 모든 남자, 여자, 아이에게 그 고정관념이 적용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또 다른 예로, 우리는 범주를 도덕화(moralize)하는 경향이 있다. 동지에게는 칭찬할 만한 특징들을 부여하고 적에게는 비난할 만한 특징들을 부여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인은 독일인보다 러시아인에게 긍정적인 특징이 많다고 여겼다. 그러나 냉전 중에는 거꾸로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집단을 본질화(essentialize)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에게 출생 직후, 부모가 바뀐 아기가 친부모의 언어와 양부모의 언어 중 무엇을 말하겠느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친부모의 언어라고 대답한다. 나이가 들면서는, 특정 민족이나 종교 집단 구성원들은 유사 생물학적인 본질을 공유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어떤 집단 살해는 편의의 문제에서 비롯한다. 원주민이 좋은 토지를 차지하고 있거나 물, 식량, 광물과 같은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고 하자. 침략자는 제가 그것을 갖고 싶다. 이때 원주민을 몰살하는 것은 잡목을 베거나 해충을 근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심리도 전혀 유별나지 않다. 그저 인간은 상대를 어떻게 범주화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공감을 껐다 켰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착민 집단 살해는 땅이나 노예를 편리하게 얻기 위한 일이었고, 희생자는 인간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었다. 그런 집단 살해의 예로는 미국 정착민들과 정부들이 수많은 원주민을 쫓아내고 학살했던 것, 벨기에 왕 레오폴2세가 콩고 자유국에서 아프리카 부족들을 탄압했던 것, 독일 식민주의자들이 서남아프리카에서 헤레로 족을 절멸시켰던 것, 수단 정부를 등에 업은 잔자위드 민병대가 2000년대에 다르푸르를 공격했던 것이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인간의 마음에는 본질주의적 습관이 있어, 사람들을 범주로 나눠 뭉뚱그린다. 그리고 그 범주 전체에 도덕 감정을 적용한다. .... 불행하게도 집단 살해에는 구성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솔제니친이 지적했듯이, 사람을 수백만 명 죽일 때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개인을 도덕화된 범주에 가두는 유토피아적 신념이 강력한 체제에 뿌리내리면, 그야말로 최대의 파괴력을 발휘한다. 집단 살해 사망자 수 분포에서 이데올로기들이 엄청난 이상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불화를 일으켰던 이데올로기로는 십자군 전쟁과 종교 전쟁을 일으켰던 기독교(중국 태평천국의 난도 먼 분파로 포함시킬 수 있다.), 프랑스 혁명에서 정치 살해를 일으켰던 혁명적 낭만주의, 오스만 투르크와 발칸의 집단 살해를 일으켰던 민족주의, 홀로코스트를 일으켰던 나치즘, 그리고 스탈린 치하 소련, 마오쩌둥 치하 중국, 폴 포트 치하 캄보디아에서 숙청, 추발, 테러 기근을 일으켰던 마르크스주의가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유토피아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 이유에서 집단 살해를 끌어들인다. 첫째, 유해한 공리주의의 계산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에서는 모두가 영원히 행복하므로, 그 도덕적 가치는 무한하다. 폭주하는 전차 때문에 다섯 명이 죽을 찰나인데, 전차를 지선으로 돌리면 한 명만 죽는다고 하자.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향을 돌리는 것이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절차를 돌림으로써 살릴 수 있는 목숨이 1억 명이라고 하자. 아니, 10억 명이라고 하자. 아니, 미래를 무한히 내다보아, 무한하다고 하자. 무한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몇 명을 희생하는 것이 허락될까? 수백만 명쯤은 나쁘지 않은 거래로 보일 수도 있다. ... 유토피아가 집단 살해를 일으킬 수 있는 두 번째 위험 인자는 그것이 깔끔한 청사진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에 존재의 이유가 있다. 인간은 어떨까? 글쎄, 인간 집단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완고하게, 아마도 근본주의적으로, 완벽한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가치를 고집할 것이다. ... 만일 당신이 깨끗한 종이에 완벽한 사회를 설계한다면, 당연히 이런 눈엣가시들을 계획에서부터 지우지 않겠는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집단 살해를 이해할 때는 지도자들의 동기가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심리적 요소들이 - 본질주의 사고방식, 탐욕과 두려움과 복수라는 홉스의 역학, 혐오를 비롯한 감정들의 도덕화, 유토피아 이데올로기에 느끼는 매력 - 온 인구를 단번에 휘어잡아 대량 살해를 부추기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집단들은 서로 꺼리고 불신하고 심지어 경멸하면서도 집단 살해 없이 언제까지나 공존할 수 있다. 인종 차별적 미국 나무에서 살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스라엘이나 그 점령지에서 사는 팔레스타인인,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프리카인을 떠올려 보자. 나치 독일 지역은 반유대주의가 수백 년 동안 고착된 곳이었지만, 히틀러와 소수의 광신적 심복들 외에는 유대인 근절을 좋은 생각으로 여긴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집단 살해가 실제로 자행될 때도, 인구의 소수만이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다. 보통 경찰, 군대, 민병대이다. 1세기에 타키투스는 이렇게 썼다. "소수의 사악한 선동, 좀 더 많은 사람의 축복, 모든 사람의 수동적 묵인 속에서 충격적인 범죄가 저질러졌다." 정치학자 벤저민 발렌티노는 <최후의 해결책>에서 20세기 집단 살해에서도 그런 분업이 적용되었다고 말했다. 지도자나 소규모 패거리가 집단 살해의 때가 왔다고 결정한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무장 세력에게 진격 명령을 내린다. 진심으로 믿는 사람, 순응주의자, 무뢰한이 (중세 군대처럼 범죄자, 부랑자, 청년 무직자 중에서 모집할 때가 많다.) 섞인 군대이다. 그들은 나머지 인구가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데, 8장에서 이야기할 사회 심리적 속성들 때문에 정말로 나머지 사람들은 대체로 방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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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에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이 피쿼트 족을 몰살한 사건이 있었다. 직후에 인크리스 매더 목사는 "오늘 우리가 이방의 영혼 600명을 지옥으로 보낸 데 대해" 신께 감사하자고 회중에게 청했다. 이렇게 집단 살해를 찬양해도 매더의 경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는 나중에 하버드 대학교의 학장이 되었다. 현재 내가 결연을 맺고 있는 기숙사는 그의 이름을 땄다(모토는 '인크리스 매더의 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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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게도, 최근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단 살해가 딱히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중세부터 군사적 기사도라는 것이 있기는 했다. 전쟁에서 민간인 살해를 금하는 기사도였으나, 효력은 없었다. 근대 초기에 에라스뮈스나 후고 그로티우스처럼 항의하는 사상가가 간간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단 살해에 대한 반대가 흔해진 것은 19세기 말부터였다. 이제 사람들은 미국 서부와 대영 제국에서 원주민이 가혹하게 다뤄지는 데 대해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런 시기였는데도, 미래의 '진보적' 대통령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886년에 이렇게 썼다. "나는 사람들의 말처럼 죽은 인디언만이 선량한 인디언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10명 중 9명은 그렇다고 믿는다. 열 번째에 대해서도 너무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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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까지만 해도 영어에는 집단 살해를 뜻하는 단어가 없었다. 그해에 폴란드 법학자 라파엘 렘킨은 나치의 통치에 대한 보고서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라는 말을 처음 썼다. ... 대중이 집단 살해의 공포를 새삼스레 깨우친 데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준 것이 적잖은 역할을 했다. 초크와 요나손은 이런 회고가 역사적으로 특이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집단 살해 생존자는 스스로를 모욕적인 패배자로 간주했다. 그 일에 관해 말하는 것은 역사의 가혹한 평결을 쓰라리게 상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새로운 인도주의적 감수성 덕분에 집단 살해는 인류에 대한 범죄가 되었고, 생존자들은 그 범죄를 고발하는 증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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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집단 살해의 궤적이 20세기 이전에, 도중에, 이후에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 .... 럼멜이 내린 국가 살해의 정의와 책 제목에 '정부에 의한 죽음'이라는 표현이 들었던 탓에, 20세기에 정부들이 국민을 1억 7000만 명 가까이 죽였다는 그의 결론은 무정부주의자들과 급진적 자유주의들에게 인기 있는 밈이 되었다. 그러나 '예방 가능한 죽음의 주된 원인은 정부'라는 명제는 럼멜의 데이터로부터 도출할 올바른 교훈이 못 된다. 우선 럼멜의 '정부'는 정의가 너무 느슨하다. 그는 민병대, 준군부, 군벌까지 포함했는데, 사실 그런 조직들은 과다한 정부 통치보다는 부족한 정부 통치의 신호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 그러므로 정부에 의한 사망자는 그 대안 체제에 의한 사망자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적어, 3분의 1쯤 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 모든 정부들이 일반적으로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이 아니고, 한 줌에 불과한 특정 종류의 정부들이 모든 희생자를 냈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41개 체제의 총 국가 살해 사망자 중 4분의 3을 단 네 정부가 발생시켰다. 럼멜은 이들을 천만 학살자(dekamegamurderer)라고 불렀다. 소련이 6200만 명, 중화 인민 공화국이 3500만 명, 나치 독일이 2100만 명, 1928~1949년 중국 국민 정부가 1000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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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6-8)를 보면, 냉전 이후 20년 동안 집단 살해는 재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량 살인의 봉우리들은 (1950년대 중국을 제외하고) 1960년대 중반과 1970년대 후반에 있다. 그 15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정치 살해(1965~1966년, '가장 위험한 해'로 불리며 사망자가 70만 명이었다.), 중국 문화 혁명 (1966~1975년, 60만 명가량), 부룬디에서 투시 족의 후투족 학살(1965~1973년, 14만 명), 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에서 저지른 학살(1971년, 170만 명가량), 수단에서 남북이 대립한 폭력 사태(1956~1972년, 50만 명가량), 우간다의 이디 아민 체제(1972~1979년, 15만 명가량), 캄보디아의 광기(1975~1979년, 250만 명), 베트남에서 보트피플의 추방으로 정점에 오른 10년간의 학살(1965~1975년, 50만 명가량)이 발생했다. 한편 냉전 이후 20년 동안에는 1992~1995년까지 보스니아 학살(사망자 22만 5000명), 르완다 학살(70만 명), 다르푸르 학살(2003년에서 2008년까지 37만 3000명)이 발생했다. 물론 이런 수치들은 잔혹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그래프가 보여 주듯이, 뚜렷한 감소세에서 잠깐 솟은 봉우리들이었을 뿐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하프는 오히려 (집단 살해를 일으키는) 다른 여섯 가지 인자를 발견했다. ... 첫째는 그 나라의 과거의 집단 살해 역사였다. ... 두번째 예측 인자는 근래의 정치적 불안정성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해, 근래 15년 동안 겪은 체제 위기, 민족 간 전쟁, 혁명전쟁 등이었다. 정부가 위협을 느끼면, 반항적이거나 오염을 일으키는 세력을 집단째 몰살하거나 보복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 세 번째 인자는 통치 엘리트가 소수 민족 집단에서 나온 상황이다. 그런 지도자는 통치력의 위태로움을 더 많이 걱정하기 때문이다. ... 나머지 세 예측 인자는 우리가 자유주의 평화 이론에서 익히 보았던 것들이다. 하프는 민주주의가 집단 살해 예방의 핵심 요인이라는 럼멜의 주장을 확인했다. 1955~2008년까지 독재 정부들이 집단 살해를 일으킬 가능성은 완전한 민주 정부나 부분적 민주 정부에 비해 3.5배였다. ... 또 다른 삼관왕은 무역에 대한 개방성이었다. 하프에 따르면, 국제 무역에 더 많이 의존하는 나라일수록 국가 간 전쟁의 가능성도 내전의 가능성도 더 낮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집단 살해도 덜 자행한다. ... 집단 살해의 마지막 예측 인자는 배타적 이데올로기이다. 특정 집단을 이상향의 장애물로 보아 '공인된 의무의 세계 바깥에' 두는 통치 엘리트는 좀 더 실용적이고 절충적인 통치 철학을 지닌 엘리트보다 집단 살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테러가 일으키는 공황과 테러가 일으키는 죽음의 불균형은 우연이 아니다. 테러(terror, 공포)라는 말 자체가 분명히 말해 주듯이, 공황이야말로 테러의 핵심이다. 테러리즘의 정의는 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누군가에게는 테러리스트,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유의 투사'라는 흔한 표현도 있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비국가 행위자가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고자 비교전자(민간인이나 비번인 군인)에게 사전에 계획된 폭력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 테러리스트는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대의를 좇아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타적이다. 그들은 불시에 은밀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비겁하다'는 평을 듣는다. 또한 그들은 소통을 추구한다. 그들은 선전과 주목을 원하고, 공포를 통해 그것을 이룬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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