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책임감 있는 지도자들 중에는 테러의 산수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도 있었다. 존 케리는 2004년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할 때 어쩌다 방심한 상태에서 <뉴욕 타임스>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테러리스트가 삶의 중심이 아니라 귀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법을 집행했던 몸으로서, 우리가 매춘을 근절하기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불법 도박 근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조직 범죄를 줄여서 상승세를 타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일상을 매일같이 위협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과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삶 자체가 위태로운 것은 아닙니다." 워싱턴에서는 정치인이 진실을 말하는 것을 개프(gaffe, 공식 석상의 실수)로 정의한다는 농담을 확인시키듯이, 조지 부시와 딕 체니는 이 발언을 맹공격하면서 케리가 '지도자로 부적격'이라고 비난했다. 케리는 얼른 발언을 철회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17~19세기까지 인도의 한 종파는 칼리 여신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여행자 수만 명을 목 졸라 죽였다. 이 집단들은 아무런 정치적 변화를 이루지 못했지만, 대신 젤롯(Zealot), 아사신(Assassin), 서그(Thug)라는 자신들의 이름을 후대에 남겼다.(오늘날은 각각 광신자, 암살자, 폭력단이라는 뜻으로 통한다. - 옮긴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만일 당신이 무정부주의자(anarchist)라는 단어에서 검게 빼입은 폭탄 투척자를 연상했다면, 당신은 20세기 초에 횡행했던 한 운동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행위의 프로파간다'를 실천한다는 명목으로 카페, 의회, 영사관, 은행에 폭탄을 던졌고,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 프랑스의 사디 카르노 대통령, 이탈리아의 움베르트 1세, 미국의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 수십명을 암살했다. 이런 이름과 이미지가 이토록 오래간다는 사실은 테러가 문화적 의식에 뿌리박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테러를 새 천 년의 현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부실한 것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낭만주의적 정치적 폭력에는 다양한 군대, 동맹, 연합, 여단, 당파, 전선이 저지른 수백 건의 폭탄 공격, 공중 납치, 총격이 있었다. 미국에는 흑인 해방군, 유대인 보호 연맹, 웨더언더그라운드(밥 딜런의 노래 가사 "바람의 방향은 기상 예보관이 없어도 알 수 있지."에서 딴 이름이다.), FALN(푸에르토리코 독립 단체),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공생 해방군(SLA)이 있었다. 1970년대에 SLA은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일화를 남겼다. 1974년에 그들은 신문 재벌의 상속년 패티 허스트를 납치한 뒤 세뇌시켜, 집단에 가입시켰다. 그녀는 '타냐'라는 가명을 만들고, 그들의 은행 강도질을 도왔다. 그리고 머리 일곱 개짜리 코브라가 그려진 SLA 깃발 앞에서 베레모를 쓰고 기관총을 든 전투 자세로 찍은 사진을 남겨, 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1970년대의 또 다른 상징적 이미지로는 리처드 닉슨이 백악관을 영원히 떠나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면서 V자를 그려 보이는 모습, 머리카락을 한껏 부풀린 비지스가 흰 폴리에스테르 디스코 양복을 입은 모습이 있다.). 같은 시기에 유럽에는 영국의 급진주의 IRA(아일랜드 공화국군)와 얼스터 자유군,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 독일의 바더-마인호프강, 스페인의 ETA(바스크 분리주의 단체)가 있었다. 일본에는 적군파가, 캐나다에는 퀘백 해방 전선이 있었다. 유럽인에게 테러는 삶의 배경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루이스 부뉴엘의 1977년 사랑 영화 <욕망의 모호한 대상>에는 자동차와 가게가 펑펑 터지는데도 등장인물들이 신경도 안 쓰는 농담 같은 대목이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국내 테러는 폴리에스테르 디스코 양복의 전철을 밟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테러 단체는 대부분 실패하고 모두 사라진다. ... 숫자는 이런 인상을 확인시켜 준다. 정치학자 맥스 에이브럼스는 2006년에 쓴 <왜 테러리즘은 효과가 없는가>에서, 미국 국무부가 2001년에 해외 테러 조직으로 규정했던 28개 단체를 살펴보았다. 대부분 수십 년의 활동 역사가 있는 단체들이었다. 순전히 전략적인 승리를 제쳐 둘 경우(언론의 관심, 새로운 지지자, 죄수 석방, 몸값 등이다.), 그들 중 세 곳만이 (7퍼센트) 목표를 달성했다. 헤즈볼라 1984년과 2000년에 레바논 남부에서 다국적 평화 유지군과 이스라엘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고, 타밀 반군이 1990년에 스리랑카 북동 해안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스리랑카는 2009년에 반군이 소탕되어 승리가 무위로 돌아갔으니, 테러 성공률은 42건 중 2건, 즉 5퍼센트도 못 되는 셈이다. 이것은 다른 형태의 정치적 압력보다 훨씬 못한 수준이다. 가령 경제 제재의 성공률은 약 3분의 1은 된다. 에이브럼스는 테러의 최근 역사를 훑은 뒤, 테러가 영토에 관한 제한적인 목표를 추구할 때는 간간이 성공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외세가 이미 점령에 시들한 상태일 때 그것을 몰아내는 경우인데,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유럽 강국들이 테러가 있든 없든 식민지에서 단체로 손 뗀 것이 좋은 예다. 반면에 테러가 과격한 목표를 달성한 예는 한 번도 없었다. 가령 온 나라에 어떤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겠다거나 거꾸로 어떤 이데올로기를 근절하겠다는 목표는 성공한 예가 없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테러 단체는 다른 방식으로도 스스로의 목을 조른다. 그들은 통 진전이 없고 사람들이 질린 것 같으면, 좌절한 나머지 전술을 격화시킨다. 더 뉴스거리가 될 만한 희생자를 노리는 것이다. 유명인이나 존경 받는 인물, 아니면 그저 많은 인원을. 그러면 틀림없이 이목은 끌지만, 그들의 의도했던 방향은 아니다. 오히려 지지자들마저 '지각없는 폭력'에 반감을 느껴 자금을 거두고, 은닉처를 제공하지 않고, 경찰에게 협조하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을 거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테러의 역사적 궤적은 종잡기 힘들다. 통계는 1970년 무렵에야 시작된다. ... 세계적으로 테러는 1970년대 말에 증가하며 1990년대에 감소했다. 그 까닭은 같은 시기에 내전과 집단 살해가 오르내린 까닭과 같다. 탈식민화 이후 민족주의 운동이 등장했고 냉전 중인 초강대국들이 대리전 삼아 그들을 지원했지만, 결국 소련이 몰락하면서 그런 움직임이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의 불룩한 봉우리는 주로 라틴 아메리카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이었다(엘살바도르, 니카라과, 페루, 콜롬비아). 1977~1984년까지 테러로 인한 인명 피해의 61퍼센트를 그들이 차지했다. ... 라틴 아메리카는 1985~1992년까지 두 번째 상승에서도 지분을 유지했다(전체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스리랑카의 타밀 반군 (15퍼센트), 인도, 필리핀, 모잠비크의 단체들도 가세했다. 인도와 필리핀의 테러 중 일부는 이슬람 단체의 소행이었지만, 아예 이슬람 국가에서 테러가 발생한 경우는 아주 적었다. 레바논에서 약 2퍼센트가, 파키스탄에서 1퍼센트가 발생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9/11 공격이 1997년 이래 테러의 감소세에 종지부를 찍었다. 최근에는 파키스탄이 반등에 기여했는데, 이것은 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불확실한 국경을 넘어 흘러넘친 여파였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9/11이 테러의 시대를 개막하지는 않았더라도, 이슬람 자살 테러의 시대를 예고했다고 주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9/11 비행기 납치범들은 그 과정에서 자신도 죽을 각오가 없이는 그런 짓을 할 수 없었다. 이후 자살 공격 발생률은 급상승했다. 1980년대에는 연간 5건 미만이었으나 1990년대에는 16건이었고, 2001~2005년 사이에는 180건이었다. 대부분 이슬람 단체의 소행이었고, 모두가 부분적으로나마 종교적 동기를 표현했다. 미국 대테러 센터의 최근 데이터를 따르면, 2008년에는 테러 집단의 소행으로 규정할 수 있는 공격의 총 사망자 중 3분의 2가까이를 이슬람 수니파 과격분자들이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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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들이 전투에서 죽음의 위험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또 있다. 진화 생물학자 J.B.S. 홀레인은 형제를 위해 목숨을 내놓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니요, 하지만 두 명의 형제와 여덟 명의 사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는 후에 혈연 선택, 포괄적 적응도, 혈연 이타주의라고 불리게 되는 현상을 언급한 것이었다. 자연 선택은 생물체로 하여금 혈연을 위해 희생하게 만드는 유전자를 선호한다. 다만 그 친척에게 돌아갈 이익이 생물체가 치르는 비용을 능가할 때만 그렇고, 이익은 촌수가 멀어질수록 감소한다. 이것은 그 유전자가 친척의 몸속에 있는 자신의 복사본들을 도움으로써 편협한 이기적 대안보다 장기적으로 더 큰 이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론을 단단히 오해한 비판자들은 생물체가 친족과의 유전자 공유 정도를 의식적으로 계산함으로써 제 DNA가 얻는 이들을 따진다고 상상했다. 그러나 실제로 생물체에게는 통계적으로 자신의 유전적 친척일 가능성이 높은 다른 개체들을 돕는 성향만 있으면 그만이다. 사람이라는 복잡한 생물에게는 그 성향이 형제애라는 감정으로 갖춰져 있다. ... 진화 이론이 밝혀낸 인간 심리의 모든 측면이 그렇듯이, 이때도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제 유전적 연관성이 아니라 연관된다고 느끼는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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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윌리엄 맨체스터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해병대원으로 복무했던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선에 선 남자들은 내 가족이자 내 집이었다. .... 그들을 죽게 내버리고 나만 살아남아서 어쩌면 그들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느니, 나도 그들과 함께여야 했다. 나는 이제 안다. 사람은 국기나 국가를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해병대나 영광이나 다른 어떤 추상을 위해서 싸우지도 않는다. 사람은 서로를 위해서 싸운다. 20년 뒤, 역시 해병대원이었다가 작가가 된 윌리엄 브로일스는 베트남에서의 경험을 비슷하게 회상했다. -전쟁에서 가장 영속적인 감정, 다른 것이 모두 희미해졌을 때까지 남는 감정은 전우애이다. 전우는 당신이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생명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 극우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사실 우리 대부분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유토피아이다. 전쟁에서는 개인의 소유와 이득이 아무것도 아니다. 집단이 전부이다. 내가 가진 것을 전우들과 공유해야 한다. 그것은 딱히 선택에 따르는 과정이 아니다. 그 사랑은 이유가 필요 없고, 인종적 성격과 교육을 초월한다. 평화 시에는 서로 간의 차이를 빚어낼 만한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내세 이데올로기는 틀림없이 도움이 된다. 9/11 납치범들에게 사후의 플레이보이 맨션이 약속되었던 것을 떠올려 보라. ... 그러나 현대의 자살 테러를 완성시킨 것은 그들보다는 타밀 반군인데, 이들은 환생을 약속하는 힌두교를 믿으면서 자라기는 했지만 집단 자체의 이데올로기는 세속적이었다. ... 그러니 즐거운 내세에 대한 기대가 비용-편익 저울에 대한 인식을 한쪽으로 살짝 기울일 수는 있을지라도(무신론자 자살 폭탄범은 상상하기 어려우니까), 그것이 유일한 심리적 추동력은 아니다. 인류학자 스콧 애트런은 임무에 실패했거나 향후 수행할 예정인 자살 테러리스트들을 면담하여, 그들에 대한 세간의 흔한 오해를 반박했다. 그들은 무지하고, 가난하고, 허무주의적이고, 정신에 문제가 있기는커녕 오히려 교육을 잘 받았고, 중산층이고, 도덕심이 있고, 뚜렷한 정신 이상 소견이 없었다. 애트런은 그들의 동기가 혈연 이타주의에서 나올 때가 많다고 결론지었다. 타밀 반군의 사례는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들은 대오 종결자에 비견할 만한 전략을 쓴다. 자살 직전 수행자를 선발한 뒤, 그에게 발을 빼면 가족을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하마스를 비롯한 다른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들의 방법은 이보다 약간 덜 교활하다. 그들은 채찍보다 당근을 쓴다. 테러리스트의 가족에게 후한 연금, 일시불 보상금, 공동체에서의 막대한 명예를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또 애트런은 이런 직접적 유인책이 없어도 자살 테러리스트를 모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청년들을 순교로 끌어들이기에 가장 효과적인 미끼는 행복한 형제들의 무리에 합류할 기회이다. ... 집단에의 헌신은 종교를 통해 더욱 강렬해진다. 말 그대로 천국을 믿어서라기보다는 어떤 성전, 소명, 전망 추구, 지하드(이슬람교도가 이교도와 벌이는 성전 - 옮긴이)에 푹 빠짐으로써 느끼는 영적인 경외감 때문이다. ... 그리고 알카에다는 중앙 집중적 모집책이라기보다는 분산된 조직망을 독려하는 세계적 브랜드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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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테러리즘도 시들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있을까? 확실히 그렇다. 그들이 이스라엘에서 지속적으로 벌인 민간인 공격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와 동일한 결과를 가져왔다. 즉 대중의 공감과 협조 의향을 잃었다. ... 알카에다의 운명은 이보다 더 큰 이야기이다.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해 온 전직 CIA요원 마크 세이지먼에 따르면, 2004년에는 서구를 표적으로 한 심각한 계획이 10건이었지만 (이라크 침공에 자극 받은 것이 많았다.) 2008년에는 고작 3건이었다. 알카에다의 아프가니스탄 기지가 소탕되었고 지도부가 격감했음은 물론이거니와 (2011년에 빈 라덴도 죽었다.) 이슬람권의 여론에서도 호의적인 의견은 진작 가라앉았고 부정적인 의견이 대두했다. 지난 6년 동안 무슬림들은 갈수록 허무주의적인 야만 행위로 보이는 사건들에 반감을 느꼈다. ... 이슬람권 전역의 여론 조사 결과에서도 분노가 드러난다. 요르단,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방글라데시에서 자살 폭탄을 비롯한 민간인 대상 폭력을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 수는 2005~2010년까지 묵직하게 가라앉아, 종종 10퍼센트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이조차 야만적으로 높은 수치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까 봐, (데이터를 취합한) 정치학자 파와즈 게르게스는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겨냥한 폭탄이나 기타 공격도 자주 혹은 가끔 정당화 될 수 있다."는 문항에 미국인 24퍼센트 가량이 그렇다고 답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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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평화란 냉전 종식 후 20년 넘게 전쟁, 집단 살해, 테러가 가끔 덜컥거리면서도 꾸준히 정량적으로 감소한 현상을 말한다. ... 내 요지는 인류가 물병좌의 시대에 접어들어 (물병좌의 시대는 자유, 평화, 우애의 시대라는 통념이 있다. - 옮긴이) 지구 상 최후의 일인까지 영원히 평화롭게 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내 요지는 폭력이 실제로 상당히 줄었다는 것이고, 이 현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폭력 감소는 특정 문화에서 특정 시점에 갖춰진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조건들 때문이었다. 그 조건들이 역전되면, 폭력은 언제라도 다시 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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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상승세에 역행하려는 듯, 이슬람 국가들은 4분의 1만이 선거로 정부를 뽑는다. 그런 나라들조차 대부분 민주주의라고 부르기에 미심쩍다. 통치자들은 우스울 만큼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다. 그들에게는 반대자를 투옥하고, 반대 당을 불법화하고, 의회를 정지시키고, 선거를 취소시킬 권력이 있다. 어쩌다 보니 이슬람 국가들에게 독재의 위험 인자, 가령 나라가 크거나, 가난하거나, 석유가 풍부하거나 하는 인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인자들을 고정한 채 회귀 분석을 해도, 무슬림 인구가 많은 나라일수록 국민의 정치적 권리가 적다. 정치적 권리는 당연히 폭력의 문제이다.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회합해도 감옥에 끌려가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국가들의 법과 관행은 인도주의 혁명의 수혜를 입지 못한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국제 사면 위원회에 따르면, 이슬람 국가의 4분의 3 가까이가 범죄자를 처형하는 데 비해 비이슬람 국가는 3분의 1만 그런다. .... 이슬람 국가들은 노예제를 제일 늦게 폐지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1962년, 모리타니아니아는 1980년), 지금까지 인신매매가 이뤄지는 국가 중 다수가 이슬람 국가이다. 많은 이슬람 국가는 마녀 행위를 법전에 범죄로 기재할 뿐만 아니라 흔히 기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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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늘 이런 것은 아니었다. 중세 이슬람 문명은 의문의 여지없이 기독교 세계보다 세련되었다. 유럽인이 고문 기구 설계에 창의성을 발휘하느라 여념 없을 때, 무슬림은 고전 그리스 문화를 보존하고, 인도와 중국 문명의 지식을 흡수하고, 천문학, 건축, 지도 제작법, 의학, 화학, 물리학, 수학을 발전시켰다. 그 시대가 남긴 상징적 유산으로 아라비아 숫자(인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가 있고, 알코올, 알제브라(대수), 알케미(연금술), 알칼리, 아지무스(방위각), 알렘빅(증류기), 알고리즘 등의 차용어도 있다. 서구는 과학에서 이슬람을 역전해야 했듯이, 인권에서도 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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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어쩌다 선두를 놓쳤을까? 어째서 이성의 시대, 계몽 시대, 인도주의 혁명을 갖지 못했을까? 일부 학자들은 코란의 호전적인 구절들을 탓한다. 그러나 서구의 집단 살해적 경전과 비교했을 때, 코란의 모든 구절도 교묘한 주해와 진화하는 규범으로써 얼마든지 그 내용을 비틀 여지가 있다. 루이스는 그 대신 역사적으로 모스크와 국가가 분리되지 않았던 점을 지목했다. 마호메트는 영적 지도자인 동시에 정치, 군사 지도자였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신정 분리 개념 자체가 최근에 등장했다. 종교라는 안경이 지적을 기여할 잠재력이 있는 사상들을 모두 거르다보니 , 새로운 사상을 흡수하고 통합할 기회가 사라졌다. 루이스가 지적했듯이, 철학과 수학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아랍어로 번역되지만 시, 희곡, 역사 작품은 번역되지 않았다. 풍요롭게 발달한 그들만의 문명사가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웃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문명들에게 무관심했고, 자신의 이교도 선조들에게도 무관심했다. 고전기 이슬람 문명의 계승자인 오스만 제국은 기계식 시계, 표준 도량형, 실험 과학, 근대 철학, 시와 픽션의 번역, 자본주의 금융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점은 인쇄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코란이 아랍어로 씌어졌다는 점 때문에, 아랍어를 인쇄하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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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무슬림은 최근 몇 십 년 동안 세계를 휩쓴 자유화 물결에 정말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을까? 2001~2007년까지, 세계 이슬람 인구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35개 이슬람 국가에서 사람들의 태도를 조사한 대규모 갤럽 여론 조사가 대답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 결과는 이슬람 국가들이 조만간 세속적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될 리는 없다는 짐작을 확인해 주었다. 이집트, 파키스탄, 요르단, 방글라데시의 무슬림 대다수는 이슬람 법률의 근간인 샤리아 율법이 입법의 유일한 출전이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다수의 응답자는 샤리아가 최소한 여러 출전 중 하나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미국인의 대다수도 성경이 법률의 출전 중 하나여야 한다고 믿지 않는가. 그런다고 해서 일요일에 일하는 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릇 종교는 모호한 알레고리, 아무도 안 읽는 텍스트에 대한 감정적 애착, 그밖의 여러 무해한 위선들에 기반하여 융성한다. 성경에 대한 미국인의 헌신처럼, 샤리아에 대한 무슬림의 헌신은 그들이 자기네 문화에서 최고라고 여기는 도덕적 태도들에 대한 상징적 유대감에 지나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간통한 여인을 돌로 쳐죽이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샤리아를 자유주의적 목적에 맞게 창의적, 편의주의적으로 읽어 낸 해석이 억압적인 근본주의적 해석에 우세하곤 한다. 대부분의 무슬림이 샤리아와 민주주의 사이에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대다수 무슬림은 겉으로는 샤리아에 대한 애착을 공언하면서도 종교 지도자들이 헌법 기안 행위에 직접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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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들이 대체로 미국을 불신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서구에 대한 전반적인 반감이나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 아니다. 많은 무슬림은 미국이 이슬람권에 민주주의가 전파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리 없는 생각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미국은 이집트, 요르단,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독재 체제를 후원했고,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선출된 하마스 정부를 거부했고, 1953년에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 전복을 거들었으니까. 프랑스와 독일에 대한 평가는 좀 더 호의적이다. 무슬림의 20~40퍼센트는 서구 문화의 '공정한 정치 체계, 인권, 자유, 평등에 대한 존중'을 높이 산다고 응답했다. 90퍼센트 이상은 자국 헌법에 표현의 자유를 명시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응답했고, 종교와 결사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응답자도 많았다. 주요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상당한 규모의 다수 응답자가 여성이 남성의 영향 없이 투표해야 하고, 어떤 직업이든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남성과 동일한 법적 권리를 누려야 하고, 정부 고위직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이, 이슬람 세계의 압도적 다수가 알카에다의 폭력에 반대했다. 갤럽 응답자의 7퍼센트만이 9/11 공격을 지지했다. 그것도 알카에다의 인기가 결딴나기 전인 2007년까지만 그랬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심리학자들이 결합의 오류(conjunction fallacy)라고 부르는 이 실수는 우리의 각종 추론에 흠을 입힌다. 배심원들은 피고인이 고용인을 그냥 죽인 상황보다는 피고인이 수상쩍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고용인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죽인 상황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변호인들은 이런 오류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배심원들이 시나리오를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가설적인 세부 사항을 한껏 덧붙이는 것이다. 사실 수학적으로는 그럴수록 오히려 확률이 낮아지는데도.) 예보 전문가들은 그럴싸하지 않은 결과가 그냥 주어졌을 때보다 (가령 석유 소비가 줄 것이다.) 그럴싸한 이유가 곁들여졌을 때 (유가가 상승하여 기름 소비가 줄 것이다.) 확률을 더 높게 매기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모든 원인을 보장하는 비행 보험보다는 테러 피해를 보상하는 비행 보험에 더 기꺼이 돈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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