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작가 윌리엄 맨체스터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해병대원으로 복무했던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사선에 선 남자들은 내 가족이자 내 집이었다. .... 그들을 죽게 내버리고 나만 살아남아서 어쩌면 그들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느니, 나도 그들과 함께여야 했다. 나는 이제 안다. 사람은 국기나 국가를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해병대나 영광이나 다른 어떤 추상을 위해서 싸우지도 않는다. 사람은 서로를 위해서 싸운다. 20년 뒤, 역시 해병대원이었다가 작가가 된 윌리엄 브로일스는 베트남에서의 경험을 비슷하게 회상했다. -전쟁에서 가장 영속적인 감정, 다른 것이 모두 희미해졌을 때까지 남는 감정은 전우애이다. 전우는 당신이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생명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 극우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사실 우리 대부분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유토피아이다. 전쟁에서는 개인의 소유와 이득이 아무것도 아니다. 집단이 전부이다. 내가 가진 것을 전우들과 공유해야 한다. 그것은 딱히 선택에 따르는 과정이 아니다. 그 사랑은 이유가 필요 없고, 인종적 성격과 교육을 초월한다. 평화 시에는 서로 간의 차이를 빚어낼 만한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내세 이데올로기는 틀림없이 도움이 된다. 9/11 납치범들에게 사후의 플레이보이 맨션이 약속되었던 것을 떠올려 보라. ... 그러나 현대의 자살 테러를 완성시킨 것은 그들보다는 타밀 반군인데, 이들은 환생을 약속하는 힌두교를 믿으면서 자라기는 했지만 집단 자체의 이데올로기는 세속적이었다. ... 그러니 즐거운 내세에 대한 기대가 비용-편익 저울에 대한 인식을 한쪽으로 살짝 기울일 수는 있을지라도(무신론자 자살 폭탄범은 상상하기 어려우니까), 그것이 유일한 심리적 추동력은 아니다. 인류학자 스콧 애트런은 임무에 실패했거나 향후 수행할 예정인 자살 테러리스트들을 면담하여, 그들에 대한 세간의 흔한 오해를 반박했다. 그들은 무지하고, 가난하고, 허무주의적이고, 정신에 문제가 있기는커녕 오히려 교육을 잘 받았고, 중산층이고, 도덕심이 있고, 뚜렷한 정신 이상 소견이 없었다. 애트런은 그들의 동기가 혈연 이타주의에서 나올 때가 많다고 결론지었다. 타밀 반군의 사례는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들은 대오 종결자에 비견할 만한 전략을 쓴다. 자살 직전 수행자를 선발한 뒤, 그에게 발을 빼면 가족을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하마스를 비롯한 다른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들의 방법은 이보다 약간 덜 교활하다. 그들은 채찍보다 당근을 쓴다. 테러리스트의 가족에게 후한 연금, 일시불 보상금, 공동체에서의 막대한 명예를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또 애트런은 이런 직접적 유인책이 없어도 자살 테러리스트를 모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청년들을 순교로 끌어들이기에 가장 효과적인 미끼는 행복한 형제들의 무리에 합류할 기회이다. ... 집단에의 헌신은 종교를 통해 더욱 강렬해진다. 말 그대로 천국을 믿어서라기보다는 어떤 성전, 소명, 전망 추구, 지하드(이슬람교도가 이교도와 벌이는 성전 - 옮긴이)에 푹 빠짐으로써 느끼는 영적인 경외감 때문이다. ... 그리고 알카에다는 중앙 집중적 모집책이라기보다는 분산된 조직망을 독려하는 세계적 브랜드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이슬람 테러리즘도 시들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있을까? 확실히 그렇다. 그들이 이스라엘에서 지속적으로 벌인 민간인 공격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와 동일한 결과를 가져왔다. 즉 대중의 공감과 협조 의향을 잃었다. ... 알카에다의 운명은 이보다 더 큰 이야기이다.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해 온 전직 CIA요원 마크 세이지먼에 따르면, 2004년에는 서구를 표적으로 한 심각한 계획이 10건이었지만 (이라크 침공에 자극 받은 것이 많았다.) 2008년에는 고작 3건이었다. 알카에다의 아프가니스탄 기지가 소탕되었고 지도부가 격감했음은 물론이거니와 (2011년에 빈 라덴도 죽었다.) 이슬람권의 여론에서도 호의적인 의견은 진작 가라앉았고 부정적인 의견이 대두했다. 지난 6년 동안 무슬림들은 갈수록 허무주의적인 야만 행위로 보이는 사건들에 반감을 느꼈다. ... 이슬람권 전역의 여론 조사 결과에서도 분노가 드러난다. 요르단,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방글라데시에서 자살 폭탄을 비롯한 민간인 대상 폭력을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 수는 2005~2010년까지 묵직하게 가라앉아, 종종 10퍼센트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이조차 야만적으로 높은 수치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까 봐, (데이터를 취합한) 정치학자 파와즈 게르게스는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겨냥한 폭탄이나 기타 공격도 자주 혹은 가끔 정당화 될 수 있다."는 문항에 미국인 24퍼센트 가량이 그렇다고 답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새로운 평화란 냉전 종식 후 20년 넘게 전쟁, 집단 살해, 테러가 가끔 덜컥거리면서도 꾸준히 정량적으로 감소한 현상을 말한다. ... 내 요지는 인류가 물병좌의 시대에 접어들어 (물병좌의 시대는 자유, 평화, 우애의 시대라는 통념이 있다. - 옮긴이) 지구 상 최후의 일인까지 영원히 평화롭게 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내 요지는 폭력이 실제로 상당히 줄었다는 것이고, 이 현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폭력 감소는 특정 문화에서 특정 시점에 갖춰진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조건들 때문이었다. 그 조건들이 역전되면, 폭력은 언제라도 다시 늘 수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민주주의의 상승세에 역행하려는 듯, 이슬람 국가들은 4분의 1만이 선거로 정부를 뽑는다. 그런 나라들조차 대부분 민주주의라고 부르기에 미심쩍다. 통치자들은 우스울 만큼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다. 그들에게는 반대자를 투옥하고, 반대 당을 불법화하고, 의회를 정지시키고, 선거를 취소시킬 권력이 있다. 어쩌다 보니 이슬람 국가들에게 독재의 위험 인자, 가령 나라가 크거나, 가난하거나, 석유가 풍부하거나 하는 인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인자들을 고정한 채 회귀 분석을 해도, 무슬림 인구가 많은 나라일수록 국민의 정치적 권리가 적다. 정치적 권리는 당연히 폭력의 문제이다.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회합해도 감옥에 끌려가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국가들의 법과 관행은 인도주의 혁명의 수혜를 입지 못한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국제 사면 위원회에 따르면, 이슬람 국가의 4분의 3 가까이가 범죄자를 처형하는 데 비해 비이슬람 국가는 3분의 1만 그런다. .... 이슬람 국가들은 노예제를 제일 늦게 폐지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1962년, 모리타니아니아는 1980년), 지금까지 인신매매가 이뤄지는 국가 중 다수가 이슬람 국가이다. 많은 이슬람 국가는 마녀 행위를 법전에 범죄로 기재할 뿐만 아니라 흔히 기소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과거에도 늘 이런 것은 아니었다. 중세 이슬람 문명은 의문의 여지없이 기독교 세계보다 세련되었다. 유럽인이 고문 기구 설계에 창의성을 발휘하느라 여념 없을 때, 무슬림은 고전 그리스 문화를 보존하고, 인도와 중국 문명의 지식을 흡수하고, 천문학, 건축, 지도 제작법, 의학, 화학, 물리학, 수학을 발전시켰다. 그 시대가 남긴 상징적 유산으로 아라비아 숫자(인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가 있고, 알코올, 알제브라(대수), 알케미(연금술), 알칼리, 아지무스(방위각), 알렘빅(증류기), 알고리즘 등의 차용어도 있다. 서구는 과학에서 이슬람을 역전해야 했듯이, 인권에서도 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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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어쩌다 선두를 놓쳤을까? 어째서 이성의 시대, 계몽 시대, 인도주의 혁명을 갖지 못했을까? 일부 학자들은 코란의 호전적인 구절들을 탓한다. 그러나 서구의 집단 살해적 경전과 비교했을 때, 코란의 모든 구절도 교묘한 주해와 진화하는 규범으로써 얼마든지 그 내용을 비틀 여지가 있다. 루이스는 그 대신 역사적으로 모스크와 국가가 분리되지 않았던 점을 지목했다. 마호메트는 영적 지도자인 동시에 정치, 군사 지도자였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신정 분리 개념 자체가 최근에 등장했다. 종교라는 안경이 지적을 기여할 잠재력이 있는 사상들을 모두 거르다보니 , 새로운 사상을 흡수하고 통합할 기회가 사라졌다. 루이스가 지적했듯이, 철학과 수학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아랍어로 번역되지만 시, 희곡, 역사 작품은 번역되지 않았다. 풍요롭게 발달한 그들만의 문명사가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웃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문명들에게 무관심했고, 자신의 이교도 선조들에게도 무관심했다. 고전기 이슬람 문명의 계승자인 오스만 제국은 기계식 시계, 표준 도량형, 실험 과학, 근대 철학, 시와 픽션의 번역, 자본주의 금융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점은 인쇄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코란이 아랍어로 씌어졌다는 점 때문에, 아랍어를 인쇄하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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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무슬림은 최근 몇 십 년 동안 세계를 휩쓴 자유화 물결에 정말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을까? 2001~2007년까지, 세계 이슬람 인구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35개 이슬람 국가에서 사람들의 태도를 조사한 대규모 갤럽 여론 조사가 대답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 결과는 이슬람 국가들이 조만간 세속적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될 리는 없다는 짐작을 확인해 주었다. 이집트, 파키스탄, 요르단, 방글라데시의 무슬림 대다수는 이슬람 법률의 근간인 샤리아 율법이 입법의 유일한 출전이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다수의 응답자는 샤리아가 최소한 여러 출전 중 하나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미국인의 대다수도 성경이 법률의 출전 중 하나여야 한다고 믿지 않는가. 그런다고 해서 일요일에 일하는 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릇 종교는 모호한 알레고리, 아무도 안 읽는 텍스트에 대한 감정적 애착, 그밖의 여러 무해한 위선들에 기반하여 융성한다. 성경에 대한 미국인의 헌신처럼, 샤리아에 대한 무슬림의 헌신은 그들이 자기네 문화에서 최고라고 여기는 도덕적 태도들에 대한 상징적 유대감에 지나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간통한 여인을 돌로 쳐죽이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샤리아를 자유주의적 목적에 맞게 창의적, 편의주의적으로 읽어 낸 해석이 억압적인 근본주의적 해석에 우세하곤 한다. 대부분의 무슬림이 샤리아와 민주주의 사이에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대다수 무슬림은 겉으로는 샤리아에 대한 애착을 공언하면서도 종교 지도자들이 헌법 기안 행위에 직접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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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들이 대체로 미국을 불신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서구에 대한 전반적인 반감이나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 아니다. 많은 무슬림은 미국이 이슬람권에 민주주의가 전파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리 없는 생각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미국은 이집트, 요르단,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독재 체제를 후원했고,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선출된 하마스 정부를 거부했고, 1953년에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 전복을 거들었으니까. 프랑스와 독일에 대한 평가는 좀 더 호의적이다. 무슬림의 20~40퍼센트는 서구 문화의 '공정한 정치 체계, 인권, 자유, 평등에 대한 존중'을 높이 산다고 응답했다. 90퍼센트 이상은 자국 헌법에 표현의 자유를 명시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응답했고, 종교와 결사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응답자도 많았다. 주요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상당한 규모의 다수 응답자가 여성이 남성의 영향 없이 투표해야 하고, 어떤 직업이든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남성과 동일한 법적 권리를 누려야 하고, 정부 고위직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이, 이슬람 세계의 압도적 다수가 알카에다의 폭력에 반대했다. 갤럽 응답자의 7퍼센트만이 9/11 공격을 지지했다. 그것도 알카에다의 인기가 결딴나기 전인 2007년까지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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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이 결합의 오류(conjunction fallacy)라고 부르는 이 실수는 우리의 각종 추론에 흠을 입힌다. 배심원들은 피고인이 고용인을 그냥 죽인 상황보다는 피고인이 수상쩍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고용인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죽인 상황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변호인들은 이런 오류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배심원들이 시나리오를 더 생생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가설적인 세부 사항을 한껏 덧붙이는 것이다. 사실 수학적으로는 그럴수록 오히려 확률이 낮아지는데도.) 예보 전문가들은 그럴싸하지 않은 결과가 그냥 주어졌을 때보다 (가령 석유 소비가 줄 것이다.) 그럴싸한 이유가 곁들여졌을 때 (유가가 상승하여 기름 소비가 줄 것이다.) 확률을 더 높게 매기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모든 원인을 보장하는 비행 보험보다는 테러 피해를 보상하는 비행 보험에 더 기꺼이 돈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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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스한 상상력이 확률 감각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어서야 어리석은 일이다. 그야 언제나 뭔가 있겠지만, 그 수가 적을 수도 있고 발생하는 사건들이 다 나쁘란 법도 없다. 지난 20년 동안 전쟁, 집단 살해, 테러가 줄었다는 것은 숫자가 보여 준 사실이다. 싹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많이 줄었다. 세계에 폭력의 할당량이 있다는 사고방식, 그래서 한 곳의 휴전이 다른 곳의 새로운 전쟁으로 환생한다는 생각, 막간의 평화는 군사적 긴장이 차올라서 분출구를 찾을 때까지 중간 휴식일 뿐이라는 생각은 사실에 비추어 틀렸다. 현재 세계 인구 중에서 수백만 명은 세상이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의 수준이었다면 틀림없이 벌어졌음 직한 내전과 집단 살해가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이 행복한 결과를 선호한 조건들이 - 민주주의, 풍요, 괜찮은 정부, 평화 유지 활동, 개방적 경제, 비인도적 이데올로기의 쇠퇴 -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것들이 하룻밤 새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물론 우리는 위험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내가 앞에서 강조했듯이, 역사의 통계적 이해에 따르면 폭력적 대재앙의 가능성은 무척 낮기는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낮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을 좀 더 희망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폭력적 대재앙의 가능성은 천문학적으로 낮지는 않을지언정 무척 낮기는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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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날 소년들의 젠더는 캠프 지도원, 체육 교사, 변호사, 엄마들과의 오랜 전쟁에서 또다시 패배했다. 피구를 금지하는 학군이 속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스포츠 및 체육 교육 협회(NASPE)'의 성명서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틀림없이 이 글은 스스로 소년인 적이 없었던 사람, 나아가 평생 소년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한 사람이 썼을 것이다. -NASPE는 피구가 초중고교 체육 프로그램으로 부적절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아하는 아이도 있을지 모릅니다. 솜씨가 좋고 자신감이 있는 아이들은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배, 머리, 사타구니에 세게 공을 맞은 학생은 틀림없이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남을 아프게 해서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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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쓰려는 유혹을 불명예의 낙인을 찍는 노력, 심지어 범죄시하려는 노력은 시민권, 여성권, 아동권, 동성애자 권리, 동물의 권리 등등 일련의 '권리' 운동들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런 운동들은 20세기 후반부에 서로 긴밀하게 뭉쳐서 진행되었으므로, 나는 이들을 권리 혁명(Rights Revolutions)으로 통칭하겠다. ... 용어들 중 시민권과 여성권을 시작부터 존재감이 있었다. 그런 사상들은 19세기부터 미국인의 의식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시민권은 1962~1969년까지 치솟았다. 미국 시민권 운동이 극적인 법적 승리를 쟁취한 시기였다. 그 곡선이 평탄해지자, 뒤이어 여성권이 상승했다. 아동권이 그 뒤를 따랐고, 1970년대에는 동성애자 권리가 전면에 나섰으며, 동물권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상승 곡선들에 시차가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각각의 운동은 선배 운동들의 성공에 주목하여 그 전술, 수사법, 더 중요하게는 도덕적 논거를 빌려 왔던 것이다. 200년 전 인도주의 혁명에서도 여러 개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줄이 등장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여러 고질적인 관습들을 지적으로 성찰한 결과였고, 피부색, 계층, 국적보다 그 속에 담긴 정신이 경험하는 행복과 고통을 더 중요하게 보는 인도주의 사상이 그 모두를 하나로 연결한 결과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개인의 권리라는 개념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만약에 지각 있는 존재의 생명권, 자유권, 행복 추구권이 그의 피부색 때문에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면, 성별, 나이, 성적 지향, 심지어 종과 같은 다른 무관한 특징 때문에 제약되는 것도 안 될 말이 아닌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는 무딘 습관이나 완력 때문에 사람들이 이런 논리적 결론을 따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열린 사회에서는 그 추진력을 멈출 수가 없는 법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미국의 시민권 운동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20년에 걸쳐 벌어졌던 주목할 만한 사건들을 떠올린다. 시작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군대에서의 인종 차별을 끝낸 1948년이었다. 1950년대를 거치면서 운동은 속도를 냈다. 연방 대법원이 인종 분리 학교를 금지했고, 로자 파크스가 버스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 양보하기를 거부하다 체포되었고, 마틴 루서 킹이 그에 항의하는 보이콧을 조직했다. 클라이맥스는 1960년대 초였다. 20만 명의 시위대가 워싱턴을 행진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이라고 해도 좋을 킹의 연설을 들었다. 1965년에 투표권법이, 1964년과 1968년에 공민권법이 통과됨으로써 운동은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런 승리들에 앞서, 더 조용하되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승리들이 있었다. 킹은 1963년 연설을 이런 말로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 해방 선언에 서명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의 상징적 그림자 속에 서 있습니다. .... 그것은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위대한 희망의 봉화였습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도 흑인들은 여전히 자유롭지 않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100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던 이유는 폭력의 위협에 위축된 탓이었다. 정부가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법률을 집행하면서 그들에게 폭력을 쓴 데다가, 이른바 공동체 간 충돌 때문에라도 그들이 제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공동체 간 충돌이란 - 인종, 부족, 종교, 언어 등으로 규정된 - 한 시민 집단이 다른 집단을 표적으로 삼는 폭력을 말한다. 미국 곳곳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정은 쿠 클럭스 클랜(KKK)과 같은 조직적 폭력배의 협박에 시달렸다. 폭도가 공개적으로 특정 개인을 고문하고 처형한 사건이나 - 린치 - 폭도가 특정 공동체를 노려 재물 파괴와 살인의 향연을 벌인 사건이 - 인종적 포그롬(racial pogrom), 혹은 치명적 인종 폭동(deadly ethnic riot)이라고 부른다. - 수천 건이나 되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치명적 인종 폭동은 절대로 20세기의 발명품이 아니다. 포그롬은 러시아어인데, 19세기에 페일(제정 러시아의 유대인 집단 거주 지역 - 옮긴이)에서 자주 벌어졌던 반유대 폭동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것은 유럽 유대인을 대상으로 1000년 동안 자행된 공동체 간 살해에서 가장 최근의 물결일 뿐이었다. 17세기와 18세기 영국에서는 가톨릭교도를 표적으로 한 치명적 폭동이 수백 건 터졌다. 그 대응의 일환으로, 치안판사가 폭도 앞에서 즉각 해산하지 않으면 처형하겠다고 위협하는 경고문을 읽는 절차가 법률에 규정되었다. 요즘 우리는 '폭동법을 읽다(to read them the Riot Act)'라는 표현으로 당시의 군중 단속 조치를 기억하고 있다. 미국의 공동체 간 폭력 역사도 유구하다. 17세기, 18세기, 19세기에는 거의 모든 종교집단들이 치명적 폭동의 공격을 받았다. 필그림파, 청교도, 퀘이커, 가톨릭, 모르몬, 유대인은 물론이고 독일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아일랜드 인, 중국인 등의 이민자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6장에서 이야기했듯이,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공동체 간 폭력은 하도 철저했던 나머지 집단 살해로 분류될 지경이다. 연방 정부는 드러내 놓고 집단 살해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여러 차례 인종 청소를 자행했다. 일례로 정부는 '문명화된 다섯 부족'을 고향 남동부에서 현재의 오클라호마 지역으로 강제 추방했다. 원주민들은 이른바 눈물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질병, 굶주림, 비바람에 노출되어 수만 명이 죽었다. 훨씬 더 가까운 1940년대에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 10만 명을 강제 수용소에 넣었다. 교전국 사람들과 인종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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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종종 마주쳤던 이른바 시기의 역설이 이 경우에도 해당된다. 제일 두드러진 항의는 그 범죄가 벌써 감소세로 돌아선 지 한참 뒤에 등장한다는 역설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호로위츠는 서구에서 치명적 인종 폭동이 사라진 이유를 여러가지로 댔다. 첫째, 적절한 통치이다. ... 치명적 인종 폭동이 사라진 또 다른 원인은 좀 더 모호하다. 사람들이 폭력을 더 혐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는 사고방식이라면 뭐든지 혐오하게 되었다. ... 다음으로, 배제 정책과 정반대로 설계된 정책을 상상해 보자. 소수 민족에게 불리한 법률을 샅샅이 지우는 것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나아가서 반(反)배제, 반(反)제거 조치를 명령하는 정책이다. 이를테면 통합 학교, 교육에서의 헤드 스타트(정부가 저소득층 미취학 아동의 교육을 돕는 사업 - 옮긴이), 그리고 정부, 기업, 교육 부문에서 인종 할당제나 우선권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보통 교정적 차별(remedial discrimination)이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적극적 우대(affirmative action)라는 표현으로 통한다. 이런 정책이 집단 살해와 포그롬으로의 회귀를 예방하는 데 얼마나 유효한지는 둘째치고라도, 이것이 과거에 심각한 폭력을 일으키거나 용인했던 배제 정책들에 대한 음화로 설계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려 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림 7-7(인종 간 결혼에 대한 미국 백인들의 태도, 1958~2008)을 보자. 1950년대 말에는 백인의 5퍼센트만이 인종 간 결혼을 지지했다. 1990년대 말에는 3분의 2가 지지했고, 2008년에는 거의 80퍼센트가 지지했다. "흑인도 아무 직업이나 가질 수 있어야 하는가?"와 같은 몇몇 질문들에 대해서는 1970년대 초에 이미 인종차별적으로 답한 응답률이 너무 낮아져서, 여론 조사 기관들이 아예 설문지에서 뺐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브랜다이스 대학교의 한 교수는 히스패닉에 대한 인종 차별을 주제로 한 수업에서 '웻백(wetback, 불법 입국 멕시코인을 가리키는 표현 - 옮긴이)이라는 표현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인종적 '둔감함'을 드러낸 사소한 사건 때문에 (가령 1993년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한 학생이 밤늦게 소란을 피우는 학생들에게 "물소 같은 녀석들아, 닥쳐"라고 고함질렀다. 학생의 모국어인 히브리어에서는 이것이 시끄러운 사람을 뜻하는 속어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새로운 인종적 욕설로 해석했다.) 학사 일정이 완전히 멎고, 집단적 고행, 속죄, 도덕적 정화의 고통스러운 의식이 이어진다. 이런 위선에 대한 유일한 변명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인종 간 예절을 지키는 대가로 그 정도는 기꺼이 지불할 만한 비용이라는 것이다(위선의 속성상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지만 말이다.). <빈 서판>에서 나는 우리가 인종적 적대감의 복귀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바람에 본성 - 양육 척도에서 양육 쪽에 인위적으로 힘을 실어 사회 과학을 왜곡시켰다고 주장했다. 인종적 차이와는 무관하고 종 전체에 보편적인 측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면에는 우리 본성에서 무엇 하나라도 선천적인 것이 있다면 인종이나 민족 간 차이도 선천적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거꾸로, 우리가 태어날 때 마음이 빈 서판과 같다면 모든 마음이 동등하게 텅 빈 채 태어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이유에서 본성을 부정하는 태도는 본성에 대한 어두운 이론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이란 자나 깨나 인종적 적의에 빠져들려고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문화 자원을 총동원하여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니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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