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으스스한 상상력이 확률 감각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어서야 어리석은 일이다. 그야 언제나 뭔가 있겠지만, 그 수가 적을 수도 있고 발생하는 사건들이 다 나쁘란 법도 없다. 지난 20년 동안 전쟁, 집단 살해, 테러가 줄었다는 것은 숫자가 보여 준 사실이다. 싹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많이 줄었다. 세계에 폭력의 할당량이 있다는 사고방식, 그래서 한 곳의 휴전이 다른 곳의 새로운 전쟁으로 환생한다는 생각, 막간의 평화는 군사적 긴장이 차올라서 분출구를 찾을 때까지 중간 휴식일 뿐이라는 생각은 사실에 비추어 틀렸다. 현재 세계 인구 중에서 수백만 명은 세상이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의 수준이었다면 틀림없이 벌어졌음 직한 내전과 집단 살해가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이 행복한 결과를 선호한 조건들이 - 민주주의, 풍요, 괜찮은 정부, 평화 유지 활동, 개방적 경제, 비인도적 이데올로기의 쇠퇴 -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것들이 하룻밤 새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물론 우리는 위험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내가 앞에서 강조했듯이, 역사의 통계적 이해에 따르면 폭력적 대재앙의 가능성은 무척 낮기는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낮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을 좀 더 희망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폭력적 대재앙의 가능성은 천문학적으로 낮지는 않을지언정 무척 낮기는 하다고.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러나 오늘날 소년들의 젠더는 캠프 지도원, 체육 교사, 변호사, 엄마들과의 오랜 전쟁에서 또다시 패배했다. 피구를 금지하는 학군이 속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스포츠 및 체육 교육 협회(NASPE)'의 성명서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틀림없이 이 글은 스스로 소년인 적이 없었던 사람, 나아가 평생 소년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한 사람이 썼을 것이다. -NASPE는 피구가 초중고교 체육 프로그램으로 부적절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아하는 아이도 있을지 모릅니다. 솜씨가 좋고 자신감이 있는 아이들은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배, 머리, 사타구니에 세게 공을 맞은 학생은 틀림없이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남을 아프게 해서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폭력을 쓰려는 유혹을 불명예의 낙인을 찍는 노력, 심지어 범죄시하려는 노력은 시민권, 여성권, 아동권, 동성애자 권리, 동물의 권리 등등 일련의 '권리' 운동들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런 운동들은 20세기 후반부에 서로 긴밀하게 뭉쳐서 진행되었으므로, 나는 이들을 권리 혁명(Rights Revolutions)으로 통칭하겠다. ... 용어들 중 시민권과 여성권을 시작부터 존재감이 있었다. 그런 사상들은 19세기부터 미국인의 의식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시민권은 1962~1969년까지 치솟았다. 미국 시민권 운동이 극적인 법적 승리를 쟁취한 시기였다. 그 곡선이 평탄해지자, 뒤이어 여성권이 상승했다. 아동권이 그 뒤를 따랐고, 1970년대에는 동성애자 권리가 전면에 나섰으며, 동물권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상승 곡선들에 시차가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각각의 운동은 선배 운동들의 성공에 주목하여 그 전술, 수사법, 더 중요하게는 도덕적 논거를 빌려 왔던 것이다. 200년 전 인도주의 혁명에서도 여러 개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줄이 등장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여러 고질적인 관습들을 지적으로 성찰한 결과였고, 피부색, 계층, 국적보다 그 속에 담긴 정신이 경험하는 행복과 고통을 더 중요하게 보는 인도주의 사상이 그 모두를 하나로 연결한 결과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개인의 권리라는 개념은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만약에 지각 있는 존재의 생명권, 자유권, 행복 추구권이 그의 피부색 때문에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면, 성별, 나이, 성적 지향, 심지어 종과 같은 다른 무관한 특징 때문에 제약되는 것도 안 될 말이 아닌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는 무딘 습관이나 완력 때문에 사람들이 이런 논리적 결론을 따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열린 사회에서는 그 추진력을 멈출 수가 없는 법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미국의 시민권 운동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20년에 걸쳐 벌어졌던 주목할 만한 사건들을 떠올린다. 시작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군대에서의 인종 차별을 끝낸 1948년이었다. 1950년대를 거치면서 운동은 속도를 냈다. 연방 대법원이 인종 분리 학교를 금지했고, 로자 파크스가 버스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 양보하기를 거부하다 체포되었고, 마틴 루서 킹이 그에 항의하는 보이콧을 조직했다. 클라이맥스는 1960년대 초였다. 20만 명의 시위대가 워싱턴을 행진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이라고 해도 좋을 킹의 연설을 들었다. 1965년에 투표권법이, 1964년과 1968년에 공민권법이 통과됨으로써 운동은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런 승리들에 앞서, 더 조용하되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승리들이 있었다. 킹은 1963년 연설을 이런 말로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 해방 선언에 서명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의 상징적 그림자 속에 서 있습니다. .... 그것은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위대한 희망의 봉화였습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도 흑인들은 여전히 자유롭지 않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100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던 이유는 폭력의 위협에 위축된 탓이었다. 정부가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법률을 집행하면서 그들에게 폭력을 쓴 데다가, 이른바 공동체 간 충돌 때문에라도 그들이 제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공동체 간 충돌이란 - 인종, 부족, 종교, 언어 등으로 규정된 - 한 시민 집단이 다른 집단을 표적으로 삼는 폭력을 말한다. 미국 곳곳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정은 쿠 클럭스 클랜(KKK)과 같은 조직적 폭력배의 협박에 시달렸다. 폭도가 공개적으로 특정 개인을 고문하고 처형한 사건이나 - 린치 - 폭도가 특정 공동체를 노려 재물 파괴와 살인의 향연을 벌인 사건이 - 인종적 포그롬(racial pogrom), 혹은 치명적 인종 폭동(deadly ethnic riot)이라고 부른다. - 수천 건이나 되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치명적 인종 폭동은 절대로 20세기의 발명품이 아니다. 포그롬은 러시아어인데, 19세기에 페일(제정 러시아의 유대인 집단 거주 지역 - 옮긴이)에서 자주 벌어졌던 반유대 폭동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것은 유럽 유대인을 대상으로 1000년 동안 자행된 공동체 간 살해에서 가장 최근의 물결일 뿐이었다. 17세기와 18세기 영국에서는 가톨릭교도를 표적으로 한 치명적 폭동이 수백 건 터졌다. 그 대응의 일환으로, 치안판사가 폭도 앞에서 즉각 해산하지 않으면 처형하겠다고 위협하는 경고문을 읽는 절차가 법률에 규정되었다. 요즘 우리는 '폭동법을 읽다(to read them the Riot Act)'라는 표현으로 당시의 군중 단속 조치를 기억하고 있다. 미국의 공동체 간 폭력 역사도 유구하다. 17세기, 18세기, 19세기에는 거의 모든 종교집단들이 치명적 폭동의 공격을 받았다. 필그림파, 청교도, 퀘이커, 가톨릭, 모르몬, 유대인은 물론이고 독일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아일랜드 인, 중국인 등의 이민자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6장에서 이야기했듯이,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공동체 간 폭력은 하도 철저했던 나머지 집단 살해로 분류될 지경이다. 연방 정부는 드러내 놓고 집단 살해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여러 차례 인종 청소를 자행했다. 일례로 정부는 '문명화된 다섯 부족'을 고향 남동부에서 현재의 오클라호마 지역으로 강제 추방했다. 원주민들은 이른바 눈물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질병, 굶주림, 비바람에 노출되어 수만 명이 죽었다. 훨씬 더 가까운 1940년대에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 10만 명을 강제 수용소에 넣었다. 교전국 사람들과 인종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종종 마주쳤던 이른바 시기의 역설이 이 경우에도 해당된다. 제일 두드러진 항의는 그 범죄가 벌써 감소세로 돌아선 지 한참 뒤에 등장한다는 역설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호로위츠는 서구에서 치명적 인종 폭동이 사라진 이유를 여러가지로 댔다. 첫째, 적절한 통치이다. ... 치명적 인종 폭동이 사라진 또 다른 원인은 좀 더 모호하다. 사람들이 폭력을 더 혐오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는 사고방식이라면 뭐든지 혐오하게 되었다. ... 다음으로, 배제 정책과 정반대로 설계된 정책을 상상해 보자. 소수 민족에게 불리한 법률을 샅샅이 지우는 것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나아가서 반(反)배제, 반(反)제거 조치를 명령하는 정책이다. 이를테면 통합 학교, 교육에서의 헤드 스타트(정부가 저소득층 미취학 아동의 교육을 돕는 사업 - 옮긴이), 그리고 정부, 기업, 교육 부문에서 인종 할당제나 우선권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보통 교정적 차별(remedial discrimination)이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적극적 우대(affirmative action)라는 표현으로 통한다. 이런 정책이 집단 살해와 포그롬으로의 회귀를 예방하는 데 얼마나 유효한지는 둘째치고라도, 이것이 과거에 심각한 폭력을 일으키거나 용인했던 배제 정책들에 대한 음화로 설계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려 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림 7-7(인종 간 결혼에 대한 미국 백인들의 태도, 1958~2008)을 보자. 1950년대 말에는 백인의 5퍼센트만이 인종 간 결혼을 지지했다. 1990년대 말에는 3분의 2가 지지했고, 2008년에는 거의 80퍼센트가 지지했다. "흑인도 아무 직업이나 가질 수 있어야 하는가?"와 같은 몇몇 질문들에 대해서는 1970년대 초에 이미 인종차별적으로 답한 응답률이 너무 낮아져서, 여론 조사 기관들이 아예 설문지에서 뺐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브랜다이스 대학교의 한 교수는 히스패닉에 대한 인종 차별을 주제로 한 수업에서 '웻백(wetback, 불법 입국 멕시코인을 가리키는 표현 - 옮긴이)이라는 표현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인종적 '둔감함'을 드러낸 사소한 사건 때문에 (가령 1993년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한 학생이 밤늦게 소란을 피우는 학생들에게 "물소 같은 녀석들아, 닥쳐"라고 고함질렀다. 학생의 모국어인 히브리어에서는 이것이 시끄러운 사람을 뜻하는 속어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새로운 인종적 욕설로 해석했다.) 학사 일정이 완전히 멎고, 집단적 고행, 속죄, 도덕적 정화의 고통스러운 의식이 이어진다. 이런 위선에 대한 유일한 변명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인종 간 예절을 지키는 대가로 그 정도는 기꺼이 지불할 만한 비용이라는 것이다(위선의 속성상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지만 말이다.). <빈 서판>에서 나는 우리가 인종적 적대감의 복귀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바람에 본성 - 양육 척도에서 양육 쪽에 인위적으로 힘을 실어 사회 과학을 왜곡시켰다고 주장했다. 인종적 차이와는 무관하고 종 전체에 보편적인 측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면에는 우리 본성에서 무엇 하나라도 선천적인 것이 있다면 인종이나 민족 간 차이도 선천적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거꾸로, 우리가 태어날 때 마음이 빈 서판과 같다면 모든 마음이 동등하게 텅 빈 채 태어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이유에서 본성을 부정하는 태도는 본성에 대한 어두운 이론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이란 자나 깨나 인종적 적의에 빠져들려고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문화 자원을 총동원하여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니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브라운은 강간이 인간의 보편 속성이듯이 강간에 대한 금기도 보편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강간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기록을 찾으려면, 역사와 문화를 오랫동안 열심히 살펴보아야만 한다. '강간하지 말지어다'는 십계명에 포함되는 계율이 아니다. 열 번째 계율이 당시 여성의 위치를 말해주기는 하는데, 여성은 남편의 소유물 중 하나로서 집보다는 뒤에, 하인과 가축보다는 앞에 거론된다. 성경의 다른 대목을 보면, 기혼의 강간 피해자는 간통을 저질렀다고 간주되어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었다. 이 판결은 오늘날의 샤리아 율법으로 이어졌다. 강간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에 대한 침해로 여겨졌다. 여자의 아버지나 남편에 대한 침해, 노예라면 그 소유주에 대한 침해로 여겨졌다. 전 세계의 도덕과 법체계가 강간을 이런 식으로 성문화했다. 강간은 여성의 아버지로부터 여성의 처녀성을 훔치는 행위였고, 여성의 남편으로부터 여성의 정조를 훔치는 행위였다. 강간범은 피해자를 아내로 사들임으로써 체면을 회복할 수 있었다. 강간 당한 책임은 여성에게 있었다. 강간은 남편, 영주, 노예 소유주, 하렘 소유자의 권리였으며, 전쟁의 정당한 전리품이었다. 중세 유럽 정부들이 사법 정의를 국유화하기 시작하면서, 강간은 남편이나 아버지에 대한 불법 행위에서 국가에 대한 범죄로 바뀌었다. 국가는 명목상 여성과 사회의 이해를 대변했지만, 현실에서는 정의의 저울이 피고인 쪽으로 기울었다. 강간은 거짓으로 고발하기 쉽고 고발에 대해 변호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 범죄 증명이라는 무거운 부담은 여성 소추자의 몫이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강간의 약 5퍼센트는 임신으로 귀결되므로, 강간범에게는 진화적 이득이 있는 셈이다. 따라서 강간을 일으키는 성향이 무엇이든 그것이 진화 과정에서 솎아질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유리하게 선택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모든 남자가 '태어날 때부터 강간범'이라거나, 강간범도 '어쩔 수 없었다'거나, 강간이 '자연적인' 행동이므로 불가피하고 용서할 만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만, 어째서 강간이 모든 인간 사회에서 고질로 존재해 왔는지 설명해 줄 뿐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미국에서는 페미니즘의 첫 물결이 1848년 세니커폴스 회의에서 시작되어 1920년 헌법 수정 19조의 추인으로 매듭지어짐으로써 여성들에게 투표할 권리, 배심원이 될 권리, 결혼해서도 재산을 유지할 권리, 이혼할 권리, 교육 받을 권리가 생겼다. 그러나 강간에 대한 처분이 혁명적으로 바뀐 것은 1970년대의 두 번째 물결에서였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3장에서 보았듯이, 1990년대에는 모든 종류의 범죄가 줄었다. 살인에서 자동차 절도까지 두루두루. 그렇다면 강간 감소도 페미니스트들의 근절 노력 때문이 아니라 전반적인 범죄 감소의 한 측면이 아닐까? ... 그래프를 보면, 강간의 감소 추이는 살인과는 다르다. 살인율은 1992년까지 오르락내리락하다가 1990년대에 떨어져 2000년대에 안정되었다. 반면에 강간율은 1979년 무렵부터 떨어지기 시작하여 1990년대에 급락했고, 2000년대에도 계속 낮아졌다. 2008년 살인율은 1973년 수준의 57퍼센트였지만 강간율은 20퍼센트까지 떨어졌다. ... ...어쩌면 강간 감소가 1990년대 전반적인 범죄 감소의 산물이었던 것 못지 않게, 전반적인 범죄 감소가 페미니즘 운동의 산물이었을지도 모른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범죄 탐닉이 정체기에 접어들자 페미니즘 운동이 나서서 여성에 대한 공격을 성토함으로써 길거리 폭력을 미화하는 시각을 폭로하고, 공공장소 안전을 권리로서 주장하고, 1990년대 재문명화 과정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강간범은 보통 남성이고, 피해자는 보통 여성이다. 강간 퇴치 운동이 힘을 얻었던 것은 여자들이 힘 있는 자리에 많이 밀고 들어가서 행정의 도구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바로잡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생각에는, 힘 있는 남자들의 주변에 여자가 많아짐으로써 남자들의 인식이 변한 것도 한몫했다. ... 강간은 남성 섹슈얼리티의 정상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러나 남성의 욕망이 섹스 상대를 무차별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상대의 내면에 무관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강간이 가능해진다. '상대'가 아니라 '대상'이 더 적합한 용어일 수도 있다. ... 우리는 전통 법률과 도덕 규범이 강간 피해자를 냉담하게 다뤘던 이유를 이런 성차로 좀 더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과거에 남성이 여성에게 무자비한 힘을 휘둘렀기 때문만은 아니고, 남성에게는 자신과는 다른 마음을 상상할 줄 모르는 편협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낯선 사람이 내가 요구하지도 않은 섹스를 불쑥 제안한다는 생각이 매혹적이기는커녕 불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와 함께 일하는 사회, 따라서 자신의 이해를 정당화하면서도 여자의 이해도 고려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그런 아둔한 무관심을 계속 갖고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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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는 1970년대에 여성을 남편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법률이 폐지되었다. 이혼법도 더 균형 잡힌 방향으로 바뀌었다. 남자는 이제 간통한 아내나 그 연인을 죽이고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 없었다. 아내를 완력으로 감금하거나 완력으로 가출을 막을 수도 없었다. 여자의 가족과 친구가 도망 나온 여자에게 피신처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은닉죄'를 선고 받는 일도 더 이상 없었다. ... 사람들의 태도도 바뀌었다. 과거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아내 구타를 결혼의 정상적인 요소로 여겼다. 17세기 극작가 보먼트와 플레처는 "자선과 구타는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경구를 남겼고, 20세기 버스 운전사 랠프 크램든은 "언젠가, 앨리스 ... 퍽! 하고 주둥아리를 때려 줄 테다."라는 대사를 남겼다. 가까이는 1972년에도 다양한 범죄들의 심각도를 물어본 설문 조사에서 배우자 폭력은 140개 항목 중 91위를 차지했다. (응답자들은 공원에서 낯선 사람이 강제로 저지르는 강간보다 LSD 판매가 더 나쁜 범죄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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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 다른 연구들을 보면, 요즘은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자기 알 바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이 옛날보다 줄었다. 1995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80퍼센트 이상이 가정 폭력을 '아주 중요한 사회적, 법적 문제'로 보았고(빈곤 아동 문제, 환경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87퍼센트는 여자가 다치지 않았더라도 남자가 아내를 때리면 주변에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99퍼센트는 남자가 아내를 다치게 할 경우 법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질문을 다른 시대에 물었던 조사 결과에서는 충격적인 변화가 잘 드러난다. 1987년에는 남편이 아내를 허리띠나 회초리로 때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절반에 지나지 않았지만, 10년 뒤에는 80퍼센트가 그런 행동은 언제나 잘못이라고 대답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여자들도 남자들과 같은 수준으로 가정 폭력을 저지른다는 놀라운 주장의 진위를 따져 보자. 사회학자 머리 스트라우스는 익명으로 비밀을 보장한 여러 차례의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들에게 파트너에게 폭력을 쓴 적이 있느냐고 물어, 남녀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 이 발견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가정 폭력의 정의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사실을 알고 보니, 흔한 부부 싸움이 폭력으로 발전하는 경우와 (로저스와 하트의 노래 가사처럼 '접시가 날아다니는 대화'이다.) 한쪽이 상대를 체계적으로 협박하고 강제하는 경우를 구별해야 했다. 사회학자 마이클 존슨은 폭력적 관계의 상호 작용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일반적으로 통제 전략은 여러 종류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커플들은 한쪽이 상대를 완력으로 위협하고, 가정의 자산을 통제하고, 상대의 행동을 제약하고, 자식이나 애완동물에 대한 분노와 폭력을 상대에게 돌리고, 칭찬과 애정은 전략적으로 아낀다. 이처럼 통제자가 있는 커플의 경우, 폭력적인 통제자는 거의 절대적으로 남자였다. 그러나 통제자가 아닌 쪽이 폭력을 쓰는 경우에는 거의 늘 여성이었다. 아마도 자신과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만일 어느 쪽도 통제자가 아니라면, 폭력은 싸움이 통제 불능일 때만 터졌다. 이때는 남자가 폭력을 쓸 가능성이 여자가 쓸 가능성보다 아주 약간 더 높았다. 이렇게 통제자와 흔한 부부 싸움을 구별하면, 비로소 성별 중립적인 폭력 통계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그 설문 조사의 데이터는 통제자가 없는 커플의 부부 싸움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이때는 여자도 받은 만큼 되갚는다. 그러나 쉼터 입소 기록, 법원 기록, 응급실 기록, 경찰 통계의 데이터는 통제자가 있는 커플의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때는 보통 남자가 여자를 폭력으로 협박하고, 여자가 가끔만 폭력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헤어진 커플은 비대칭이 더 심하다. 이때 스토킹, 협박, 위해를 가하는 쪽은 대부분 남성이다. 다른 연구 결과들을 보아도 만성적 위협, 심각한 폭력, 남성성은 함께 가는 경향이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세계 보건 기구는 최근 48개 나라의 심각한 가정 폭력 발생률 데이터가 뒤죽박죽 섞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전 세계 여성의 5분의 1에서 2분의 1 사이를 가정 폭력 피해자로 추정했고, 서유럽과 영어권 국가들 바깥에서 훨씬 더 심하다고 했다.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전해에 파트너에게 맞았다고 보고한 여성이 3퍼센트 미만이었지만, 다른 나라들은 단위가 하나 더 높은 수준이었다. 니카라과의 표본 집단은 27퍼센트, 한국의 표본 집단은 38퍼센트, 팔레스타인의 표본 집단은 52퍼센트였다. 배우자 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도 충격적으로 다르다. 남편에게 말대꾸하거나 순종하지 않는 아내를 때릴 권리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뉴질랜드는 약 1퍼센트, 싱가포르는 약 4퍼센트였다. 반면에 이집트 시골지역은 78퍼센트였고,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는 50퍼센트에 육박했고, 팔레스타인은 57퍼센트였다. 법률 개혁도 서구 민주 국가들에게 뒤진다. 서유럽 국가의 84퍼센트가 가정 폭력을 불법으로 규정했거나 할 계획이고, 72퍼센트는 배우자 강간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다른 지역들의 두 수치는 다음과 같다. 동유럽은 57과 39퍼센트,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51과 19퍼센트, 라틴 아메리카는 94와 18퍼센트,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은 35와 12.5퍼센트, 아랍 국가들은 25와 0퍼센트, 여기에 더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남아시아, 서남아시아는 21세기 서구에서는 드물거나 아예 사라진 체계적 잔학 행위들의 온상이다. 여아 살해, 생식기 절단, 아동 매춘과 성 노예 인신매매, 명예 살인, 순종하지 않거나 지참금이 적은 아내에게 산을 뿌리거나 석유로 태워 죽이는 일, 그리고 전쟁, 폭동, 집단 살해 중의 집단 강간 등등. 여성에 대한 폭력 면에서 서구와 다른 지역들의 차이는 마태 효과로 한데 묶인 다수의 건전한 요인들 중 하나일까? 달리 말해, 민주주의, 번영, 자유 경제, 교육, 기술, 괜찮은 정부와 함께 가는 현상일까? 전적으로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과 일본은 부유한 민주 국가인데도 여성에 대한 가정 폭력이 빈번한 편이다. 반면에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개발이 훨씬 덜 되었는데도 두 성의 폭력률이 좀 더 대등하고, 절대 발생률도 더 낮다. 덕분에 우리에게는 부를 고정했을 때 어떤 사회에서 여성이 더 안전한지 알아볼 수 있는 통계적 여지가 있다. 아처의 분석 결과, 정부와 전문 직종에서 여성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그리고 여성의 소득이 가정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큰 나라일수록, 여성이 배우자 학대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낮았다. 또한 개인주의로 분류되는 문화, 즉 누구나 스스로를 자신만의 목표를 추구할 권리가 있는 개인으로 생각하는 문화는 집단주의로 분류되는 문화, 즉 사람들이 스스로를 공동체의 일부로 느끼고 공동체의 이해가 자신의 이해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에 비해 여성에 대한 가정 폭력이 적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우리는 인간의 생명 연장 욕구에 반대되는 신생아 살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의사 래너 밀너는 전 세계 영아 살해를 조사한 권위적 저작 <마음의 무정함/삶의 가혹함>의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 ... 나는 이것이 자연스러운 방식이 병리적으로 특이하게 변질된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잖아도 생존이 지극히 민감한 균형에 달린 마당에, 자식을 죽이는 성향이 진화에서 보존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아 보였다. ...연구 결과는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제 자식을 자발적으로 죽이는 행위가 인간이 실시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임을 암시했다. 밀너의 혼란에 대한 대답은 생활사 이론(life history theory)이라고 불리는 진화 생물학의 하위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어머니가 모든 자식을 무한히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직관은 자연 선택 이론의 속뜻이기는커녕, 그 이론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자연 선택은 개체의 기대 수명 전체에 걸쳐서 생식적 산출을 극대화하려고 하므로, 자원을 새 자식에게 투자하는 것과 현재나 미래의 자식을 위해서 아껴 두는 것 사이에서 타협해야만 한다. ... 포유류는 새끼를 임신한 상태보다 낳아서 젖을 물릴 때의 칼로리 지출이 더 크다. 자연은 일반적으로 매몰 비용의 오류를 혐오하므로, 산모는 자식과 환경의 상태를 평가한 뒤에 좀 더 투자할지, 아니면 이미 태어난 자식이나 앞으로 태어날 자식을 위해 에너지를 아낄지 결정할 것이다. ... 생물학자에게 인간의 영아 살해는 바로 이런 선별 행위이다.... ...밀너의 역작은 19세기 인류학의 창시자였던 에드워드 타일러의 말에서 제목을 땄는데, 타일러는 이렇게 적었다. "영아 살해는 마음의 무정함(hardness of heart)이 아니라 삶의 가혹함(hardness of life)에서 비롯한다. "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자연스러운 애정'은 결코 자동적이지 않다. 데일리와 윌슨은, 그리고 나중에 인류학자 에드워드 하겐은, 산후 우울증과 그 약한 형태인 '베이비 블루스'가 호르몬 기능 부전의 문제가 아니라 산모가 아기의 생사를 결정하는 기간을 겪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후 우울증이 있는 산모들은 아기와 감정적으로 분리된 것처럼 느끼며, 아기를 해치는 생각을 자꾸 떠올린다. 최근에 심리학자들이 발견했듯이, 가벼운 우울증은 우리가 평상시에 즐기는 장밋빛 시각보다 삶의 전망을 더 정확하게 평가하도록 돕는다. 우울한 산모의 전형적인 심사숙고는 - "내가 이 부담을 어떻게 지지?" - 현재의 확실한 비극과 그보다 더 클지도 모르는 미래의 비극 사이에서 무거운 선택에 직면한 역사상 모든 어머니들의 정당한 질문이다. 많은 여성은 상황이 견딜 만해지고 우울이 흩어진 뒤에야 아기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그제서야 아기를 둘도 없이 멋진 한 인간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산후 우울증이 신생아 투자를 평가하는 시기라는 이론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겐은 산후 우울증에 관련된 정신과 문헌을 뒤져서 이론에서 도출되는 다섯 가지 예측을 확인해 보았다. 예상대로, 산후 우울증은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여성(미혼이거나, 별거 중이거나, 결혼이 불만족스럽거나, 부모와 관계가 먼 경우), 난산을 겪은 여성, 건강하지 않은 아기를 낳은 여성, 직업이 없는 여성, 직업이 없는 남편을 둔 여성에게 더 흔했다. 많은 비서구 인구 집단의 산후 우울증 기록에서도 동일한 위험 인자들이 확인되었다(다만 전통적인 친족 기반 사회에 대해서는 적절한 연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산후 우울증은 실제 측정된 호르몬 불균형과는 느슨한 관계가 있을 뿐이었다. 산후 우울증이 기능 부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설계상의 속성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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