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남아 선호는 재산권이 왜곡된 시장에서만 발생한다. 부모가 아들을 소유하되 딸은 사실상 소유하지 못하는 시장이다. 호크스에 따르면, 수렵 채집인 중에서도 부계 거주 사회(딸이 남편을 따라 시댁으로 가서 사는 사회)가 모계 거주 사회(딸이 부모와 함께 살고 남편이 이사 오는 사회)나 부부가 마을대로 거처를 정하는 사회보다 여아 살해가 더 흔하다. 부계 거주 사회는 같은 부족의 이웃 마을끼리 지속적으로 싸우는 상황일 때 흔하다. 혈연으로 묶인 남자들이 한 마을에서 살며 함께 싸우는 것이다. 적이 다른 부족일 때는 그렇지 않다. 이때는 남자들이 부족의 영토 내에서 좀 더 자유롭게 이동한다. 내부 교적 사회는 게다가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남자들은 아내들이 아들을 얼른 많이 낳게 하기 위해서, 딸이 태어나면 몽땅 죽인다. 그래야 전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웃 마을을 습격하기가 좋고, 자기 마을을 습격으로부터 보호하기도 좋으며, 영아 살해로 격감한 여성 인구를 습격으로 보충하기도 쉽다. 호메로스 시대 그리스의 부족들이 이와 비슷한 덫에 걸렸다. 인도나 중국과 같은 국가 사회는 어떨까? 여아 살해를 실시하는 국가 사회에서도 부모는 아들은 소유하되 딸은 소유하지 못한다. 다만 군사적 이유가 아니라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호크스의 지적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인간 생명에 대한 터부는 나치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응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홀로코스트는 단계별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정신 지체자, 정신병 환자, 장애아를 안락사시키는 데서 시작하여, 다음에는 동성애자, 성가신 슬라브 족, 집시, 유대인으로 확장되었다. 홀로코스트의 기획자들과 그들에게 순응했던 시민들의 마음에서는 한 단계를 받아들이자 다음 단계도 괜찮게 느껴졌을 수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는 바이지만, 만일 그 위험한 경사로의 꼭대기에 선명한 구분선이 있었다면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타락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홀로코스트 이후 인간이 인간의 생사를 조작하는 일은 터부가 되었고, 그 때문에 영아 살해, 우생학,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공개 토론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터부가 그렇듯이, 인간 생명에 대한 터부도 현실의 일부 속성들과는 잘 맞지 않는다. 오늘날 생명 윤리를 둘러싼 맹렬한 논쟁의 핵심은 태아 발생(embryogenesis), 코마, 즉각적이지 않은 죽음 등 생명을 가르는 경계가 모호한 상황에서 현실과 터부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오늘날 서구에서 영아 살해가 수천 분의 일로 감소한 것은 부분적으로 풍요의 선물이다. 절박한 궁지에 몰린 산모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부분적으로 기술의 선물이다. 안전하고 믿음직한 피임과 낙태가 가능해져서 원치 않는 출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현상은 아이에게 부여하는 가치가 바뀌었음을 반영한다. ...사람들의 집단적 관심이 아이들의 이해까지 포함하도록 확장된 것 같다. 아이들이 살아남을 권리까지도.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임신이 낙태로 끝나는 비율은 예전에 영아 살해로 끝나던 비율과 비슷한 것이 사실이다. 서구 선진국들에서는 임신한 여성의 12~25퍼센트가 낙태를 한다. 과거 공산권 국가들에서는 절반을 넘기도 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낙태 반대자들은 한편으로는 모든 폭력이 줄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태아들이 죽는 이 상황을 엄청난 도덕적 위선으로 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불일치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있다. 현대인은 도덕적 가치를 논할 때 의식에 근거하도록 감수성이 변했다. 특히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는 의식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고, 그런 의식을 뇌 활동과 동일시하게 되었다. 이것은 도덕적 깨우침의 원천으로서 과거의 종교와 관습을 버리고 과학과 세속 철학을 택한 변화의 일부이다. 요즘은 심장이 아니라 뇌 활동이 정지한 순간을 법적 사망으로 정의하는 것처럼, 생명의 시작은 태아의 의식이 처음 깨어나는 순간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의식의 신경 기반에 관한 오늘날의 지식에 따르면 시상과 대뇌겉질 사이에 신경 활동이 일어나는 시점이 바로 그 순간이고, 그 순간은 잉태 후 26주째께 벌어진다. 더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태아를 완전한 의식을 지니지 않은 개체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심리학자 헤서 그레이, 커트 그레이, 대니얼 웨그너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태아가 로봇이나 시체보다는 무언가를 경험할 능력을 더 많이 갖고 있다고 보지만 동물, 아기, 아동, 성인보다는 덜 갖고 있다고 본다. 낙태의 압도적 다수는 뇌가 제대로 기능하기 전에 실시되므로, 사람들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생명의 가치를 이해하는 견해에 따라 그것이 영아 살해나 다른 폭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안전하게 개념화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생명의 파괴를 일반적으로 꺼리게 되었다면, 비록 낙태가 살인과 동일시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낙태를 차츰 꺼릴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그렇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낙태율은 세계적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 가장 가파르게 감소한 지역은 한 때 '낙태 문화'가 있었다고 이야기되는 옛 소련권이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낙태는 쉬웠지만 피임 기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느 공산품처럼 피임 기구도 수요 공급에 따라 분배되지 않고 중앙의 인민 위원들이 배급했기 때문에 늘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 미국, 아시아, 이슬람 국가들처럼 낙태가 합법인 나라들에서도 낙태는 드물어졌다. 인도와 서유럽에서만 줄지 않았는데, 원래 낙태율이 가장 낮았던 지역들이다. 감소 원인은 대부분 실제적인 것이다. 그동안 낙태보다 피임이 더 싸고 간편해졌다. 피임이 쉬우면, 그것을 이용할 만큼 선견지명이 있고 자기 통제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첫 번째 선택이 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부모-자식 간 갈등에서 아이가 쓰는 전략 때문에 부모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아이를 작은 악마라고 불렀고, 이후 기독교가 득세하자 타고난 방종과 원죄라는 종교적 신념이 그 생각을 비준했다. ... 삶의 전개에 대한 숙명론 때문에 사람들은 아이의 발달을 부모와 선생의 책임으로 보지 않고 운명이나 신의 뜻으로 보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존 로크의 <교육에 관한 성찰>에서 왔다. 1693년에 출간된 이 책은 금세 입소문을 탔다. 로크는 무릇 아이는 "흰 종이나 밀랍처럼 깨끗하여, 어떤 형태로든 빚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원칙은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빈 서판 이론이라고 불린다. 로크는 교육이 "인류에게 큰 차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고, 교사는 제자들에게 공감하면서 그들의 눈높이에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교사는 학생의 "성정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고, 학생이 공부를 즐기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어린아이에게 어른과 같은 "몸가짐, 진지함, 열중"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거꾸로 "아이에게 ... 나이에 맞고 어리석고 유치한 행동을 허락해야 한다." ... 또 다른 게슈탈트 전환은 루소에게서 왔다. 루소는 기독교의 원죄 개념을 원초적 순수성이라는 낭만적 개념으로 교체했다. 1762년 저작 <에밀, 또는 교육에 관하여>에서 루소는 이렇게 썼다. "세상을 쓰신 분의 손을 떠날 때는 모든 것이 선했지만, 인간들의 손에 와서 모든 것이 타락했다." 20세기 심리학자 장 피아제의 이론을 예견하듯이, 루소는 아동기를 각각 본능, 감각, 사상에 집중하는 연속 단계로 나누었다. 그리고 아이는 아직 사상의 나이에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어른처럼 사고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어른은 아이에게 선악의 규칙을 주입하는 대신, 아이가 자연과 상호 작용하면서 스스로의 경험에서 배우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아이가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망가뜨리더라도 그것은 해를 끼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순수함에서 나온 행동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계몽 시대에 이르러, 엘리트들은 아동 친화적인 빈 서판 이론과 원초적 순수함 이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아동에 대한 실제 대우가 바뀐 시점은 그보다 상당히 더 지난 20세기 초였다고 본다. 경제학자 비비아나 젤라이저는 187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서구 중상층 부모들 사이에서 아동기 '신성화'가 벌어졌다고 말한다. 그때 비로소 아이는 '경제적으로는 가치가 없지만 감정적으로는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현재의 지위를 얻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전문가들은 세 가지 이유에서 체벌에 반대한다. 첫째는 체벌이 아이의 나중 인생에까지 악영향을 미쳐 공격성, 범죄, 공감 결핍, 우울증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이가 체벌을 겪으면 폭력을 문제 해결 방법으로서 학습하게 된다는 인과 이론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체벌과 폭력성의 관계를 다르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폭력성을 타고난 부모에게서 폭력성이 강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일 수도 있고, 체벌을 용인하는 문화와 이웃은 다른 폭력들도 쉽게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 아이를 때리지 말아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체벌이 아이에게 잘못한 내용을 설명하고 꾸짖음이나 타임아웃과 같은 비폭력적 조치를 쓰는 것에 비해 나쁜 짓을 줄이는 데 딱히 더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는 아픔과 수치심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해 보지 않는다. 그리고 얌전하게 굴어야 할 이유가 오로지 벌을 피하려는 것뿐이라면, 아이는 부모가 딴 곳을 보는 순간 맘껏 말썽을 부릴 것이다. 그런데 체벌에 반대하는 이유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상징적 이유가 아닐까 싶다. 스트라우스는 절대로, 결코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되는 세 번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체벌은 가정과 사회에서 비폭력을 추구하는 이상에 모순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체벌 금지는 놀라운 변화이다. 과거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자식을 부모의 소유로 여겼고, 자기 자식을 어떻게 다루든 남이 알 바 아니라고 여겼다. 이 변화는 국가가 가정에 개입하는 다른 조치들과 맥을 같이하는데, 가령 의무 교육, 의무 예방 접종, 학대 가정으로부터의 분리, 부모의 종교적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에게 구급 조치를 실시하는 것, 유럽 국가들이 이슬람 이민자 공동체의 여성 생식기 절단을 금지하는 것 등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국가가 가족만의 친밀한 영역에 전체주의적인 힘을 행사하는 것이지만, 다르게 보면 개인의 자율권을 인식하게 된 역사적 흐름의 일부이다. 아이도 사람이고, 아이도 어른처럼 생명과 신체에 대한 (또한 생식기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고, 그것 역시 국가와의 사회적 계약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개인이 - 부모가- 그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 권리가 무효화될 수는 없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아동을 폭력에서 보호한다는 것이 그만 목표를 넘어 신성한 서약과 터부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한 경우도 있다. 그런 터부 중 하나로 심리학자 주디스 해리스가 양육 가설(Nuture Assump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로크와 루소는 보호자의 역할을 바꿈으로써 양육 개념을 혁신했다. 그들 덕분에 보호자는 체벌로 아이에게서 나쁜 행동을 몰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를 어떤 형태의 어른으로 빚어내는 사람이 되었다. 20세기 말에는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고 방치함으로써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옳은) 생각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부모가 아이의 지능, 성격, 사회성, 정신 질환도 빚어낸다는 (그릇된) 생각이 등장했다. 왜 그릇된 생각일까? 이민자 가정의 자식은 부모가 아니라 또래 친구들의 억양, 가치, 규범을 지닌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아이는 가족보다 또래 집단에 의해 사회화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입양아들에 대한 연구를 보면, 입양아의 성격과 지능 지수는 혈연관계가 없는 양부모의 자녀들과는 상관관계가 없고, 생물학적 형제들과 상관관계가 있다. 이것은 성인기의 성격과 지능이 유전자와 우연에 의해 형성되지만 (일란성 쌍둥이라도 그 상관관계가 완벽하진 않기 때문이다.), 부모에 의해 형성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적어도 부모가 모든 자식에게 행하는 행동과는 관계없다는 말이다. 이런 반박에도 불구하고, 양육 가설은 전문가들의 뇌리에 뿌리 내렸다. 그들은 엄마에게 24시간 양육 기계가 되라고 조언한다. 엄마에게는 자신이 돌보는 작은 빈 서판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사회화하고, 인성을 발달시킬 의무가 있다고 다그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2008년, 뉴욕에 사는 저널리스트 레노어 스케나지의 아홉 살 난 아들이 혼자 지하철로 귀가하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다. 그녀는 허락했고, 아이는 무사히 집으로 왔다. 그녀는 이 일화를 <뉴욕 선> 칼럼에 썼는데, 그러자 삽시간에 언론의 관심이 광풍처럼 몰아닥쳤다. 언론은 그녀를 '미국 최악의 엄마'로 명명했다('아홉 살 아이를 혼자 지하철로 귀가시킨 엄마: 칼럼리스트, 아동 독립성 실험으로 논란 일으키다.' 따위의 기사 제목이었다.) 그녀는 이에 대응하여 캠페인을 시작했고 - '어린이 풀어 키우기' - 어른의 지속적인 감독 없이 아이들 스스로 노는 법을 가르치자는 취지에서 '아이를 공원으로 데려가 내버려 두는 날' 제정을 제안했다. 스케나지는 미국 최악의 엄마가 아니다. ... 그녀는 사실을 살펴 보았다. 우유갑에 인쇄된 실종 아동의 압도적 다수는 변태, 인신 매매범, 몸값 사기꾼의 꾐에 넘어가 차에 탄 것이 아니었다. 가출한 십대이거나, 이혼한 부모 중 한쪽이 불리한 양육권 결정에 화가 나서 아이를 무턱대고 데려간 경우였다. 낯선 사람에 의한 납치는 1990년대에 연간 200~300건 사이였지만, 지금은 약 100건이다. 그중 절반 가량이 살해된다. 미국에서는 5000만 명의 아동이 있으니, 연간 100만명당 1명 정도 살해되는 셈이다. 이것은 익사 확률의 20분의 1쯤 되고, 교통사고 사망률의 40분의 1쯤 된다. 작가 워릭 케언스의 계산에 따르면, 아이가 낯선 사람에게 납치되어 하룻밤 억류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이를 75만 년 동안 집 밖에 버려두어야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대꾸할지도 모른다. 아이의 안전은 너무나도 귀중하므로, 이런 조치가 연간 한 줌의 목숨만을 구할지라도 그만한 불안과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인생의 좋은 것을 위해서 부득이 안전을 양보하며 살아간다. 돈이 생기면 집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대신 아이의 대학 학자금으로 저축하고, 아이들이 안전한 침실에서 여름 내내 비디오 게임이나 하며 놀게 두는 대신 함께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납치로부터의 완벽한 안전을 추구하는 운동은 다른 대가를 무시하는 것이다. 유년기의 경험이 축소되는 것, 아동 비만이 증가하는 것, 직장 여성들이 만성적으로 불안해 하는 것, 젊은이들을 겁주어 아이를 갖지 않도록 만드는 것 등등. 설령 위험의 최소화가 정말로 삶에서 유일하게 좋은 것일지라도, 통계를 제대로 모르고 만든 안전 조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안전 조치 중에는 범죄학자들이 범죄 통제 극장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하는 사례가 많다. 범죄 통제 극장이란 실효는 없지만 아무튼 무언가 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것으로, 우유갑 광고가 대표적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진정한 (진화의) 수수께끼는 동성애 성향이다. 왜 이성과의 짝짓기 기회보다 동성과의 짝짓기를 일관되게 선호하는 남녀가 세상에 존재할까? 왜 반대 성과의 짝짓기를 아예 꺼리는 남녀가 존재할까? 적어도 남성의 경우에는, 동성애 성향이 선천적인 듯 하다. 게이들은 보통 사춘기 직전에 처음 성적 흥분을 느낄 때부터 동성에게 끌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란성 쌍둥이보다 일란성 쌍둥이끼리 동성애 성향이 더 일치하는 편이므로, 공통 유전자가 모종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여담이지만, 동성애는 본성-양육 논쟁에서 '본성'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견해에 해당하는 드문 사례이다.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동성애가 선천적 성향이라면, 개개인이 게이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므로 그 생활 방식을 비난할 수 없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계몽 시대 들어 사람들은 본능적 충동이나 종교 교리에 기반한 도덕률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동성애도 다시 보게 되었다. 몽테스키외와 볼테르는 동성애를 도덕적인 행위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탈범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85년에 제레미 벤담은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를 도덕적인 것으로 보는 공리주의 추론을 써서, 동성애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동성애는 비도덕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혁명 이후 동성애를 탈범죄화했고,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다른 소수의 나라들이 뒤를 따랐다. 그림 7-23을 보라. 탈범죄화 추세는 20세기 중반에 박차를 가했고, 1970년대와 1990년대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인권 개념이 동성애자 권리 운동에 기름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는 나라가 120개 가까이 되지만, 다른 80개 나라에서는 여전히 법률로 금지한다. 주로 아프리카, 카리브해, 오세아니아, 이슬람권 국가들이다. 게다가 모리타니,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예맨, 나이지리아의 일부, 소말리아의 일부, 이란의 전 지역에서는(비록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는 자기 나라에 동성애는 없다고 말하지만) 동성애에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림 7-23을 보면, 미국에서는 동성애 탈범죄화가 좀 늦게 시작되었다. 1969년까지도 일리노이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동성애가 불법이었다. 경찰들은 야간에 따분하다 싶으면 게이들이 모이는 곳을 습격해서 해산시키거나 단골들을 체포했다. 가끔은 경찰봉도 동원했다. 그러나 1969년에 그리니치 빌리지의 게이 댄스 클럽이었던 스톤월 인이 습격 당하자 사흘에 걸쳐 항의 폭동이 일어났고, 그 일로 전국의 게이 공동체들이 자극을 받았다. 동성애를 범죄시하거나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법률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로부터 10여 년 만에 절반 가까운 주들이 동성애를 탈불법화했다. 또 한 번 집중적으로 탈불법화가 진행된 직후였던 2003년, 연방 대법원은 텍사스의 동성애 금지법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당시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대법원 다수 의견을 설명하면서 자율의 원칙을 이유로 들었다. 종교적 신념이나 전통 관습을 강제하기 위해서 정부가 힘을 사용하는 것은 변호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 자유는 개인의 자율성을 상정한다. 여기에는 생각, 신념, 표현, 특정 사적 행위들의 자유가 포함된다. ...... 물론, 지난 수백 년 동안 동성애 행위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비난하는 강력한 목소리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종교적 신념, 옳고 용납할 만한 행동에 대한 관념, 전통적 가정을 존중하는 마음이 그런 비난을 형성했다. ..... 그러나 그런 고려들은 우리 앞에 놓인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는다. 작금의 문제는, 형법의 작동을 통해 사회 전체에게 그런 견해를 강제하기 위해서 다수가 국가의 힘을 사용해도 좋으냐 하는 것이다. 1970년대에 여러 지역에서 처음으로 동성애가 합법화된 때부터 15년 뒤에 남은 법률들마저 붕괴하기까지, 동성애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는 현격한 변화를 겪었다. 1980년대에는 AIDS 확산을 계기로 동성애자 활동가 단체들이 결집했다. 많은 유명 인사가 동성애자임을 공개했고, 사후에 공개된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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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수에게 실험 설명을 들을 때부터 뭔가 꺼림칙하다고 느꼈다. 과정이 완벽하게 진행되더라도, 쥐는 12시간을 끊임없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실험이 늘 완벽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았다. 교수는 극단적인 행동주의자였기 때문에, '쥐의 입장은 어떨까?'라는 질문은 그에게는 말이 안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나는 쥐도 통증을 느낀다고 의심의 여지없이 믿었다. 나는 교수의 요청으로 실험실에서 일하게 된 것이었고, 내가 이 실험을 거절하더라도 불이익은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런데도 나는 실험을 실시했다. 윤리적으로 미심쩍지만 심리적으로 안심되는 원칙, 즉 그것이 표준 관행이라는 사실에 의지하여. 이 일화는 20세기의 몇몇 역사적 사건들과 무서울 정도로 비슷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이런 냉담함은 실험 상자 밖으로도 번졌다. 듣자 하니 어느 연구자는 성질이 나면 실험에 쓰이지 않은 쥐 중에서 제일 가까운 녀석을 집어 벽에 내던진다고 했다. 또 다른 연구자는 내게 과학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여 주면서 냉혹한 농담을 공유하려고 했다. 쥐가 털북숭이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충격을 피하면서 앞발로 먹이 레버를 누르는 법을 익힌 모습에 '침대에서 아침 식사를'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안도하면서 보고하는 바, 그로부터 불과 5년 뒤에는 과학자가 동물의 안녕에 그토록 무관심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아예 불법이었다. 1980년대부터 과학자가 연구와 교육에 동물을 이용할 때는 국제 실험동물 운영 위원회(IACUC)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아무 과학자나 잡고 물어도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위원회는 절대로 무턱대고 승인 도장을 찍어 주지 않는다. 동물 우리의 크기, 먹이의 양과 질, 수의사의 보살핌, 운동과 사회적 접촉의 기회 등이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연구자들과 조수들은 동물 실험 윤리에 대한 강좌를 들어야 하고, 일련의 공개 토론회에 참석해야 하고,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동물에게 불편이나 고통을 가하는 실험은 특별 규제 대상으로 분류되고, '과학과 인류 복지에 더 큰 이득을' 안길 가능성이 있음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역시 어느 과학자에게 물어도 확인할 수 있을 텐데, 과학자들 자신의 태도도 변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동물 연구자들은 거의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실험동물이 통증을 느낀다고 믿는다. 오늘날 과학자가 실험동물의 안녕에 무관심하다면 동료들의 경멸을 산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동물의 대우를 논할 때, 근대 철학은 시작이 나빴다. 데카르트는 동물이 태엽 장치와 같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그 속에는 고통이나 쾌락을 느낄 존재가 없다. 우리에게 괴로운 비명처럼 들리는 소리는 경적이나 기계 소리처럼 소음 장치의 출력일 뿐이다. 데카르트는 동물과 인간의 신경계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가 인간에게는 의식을 부여하면서 동물에게는 부정했는지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신이 인간에게 영혼을 하사했다고 믿었고, 의식은 그 영혼에 깃든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의식을 내성(內省)한 뒤에 이렇게 썼다. "나는 내 자신에게서 어떤 부속을 구별하지 못했고, 나 자신의 명백한 하나의 전체로 파악할 뿐이다. ... 나의 일부분에 대해서 의지, 감각, 인식 등의 능력을 논할 수는 없다. 의지, 감각, 이해는 온전한 전체로서의 마음을 동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 데카르트는 언어 또한 더이상 나눌 수 없는 그 무엇, 우리가 마음 혹은 영혼이라고 부르는 그 무엇의 능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동물은 언어가 없으니 영혼도 없고, 따라서 의식도 없다. 인간의 몸과 뇌도 동물처럼 태엽 장치에 불과하지만,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다. 데카르트는 영혼이 솔방울샘이라는 뇌 구조를 통해서 뇌와 상호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현대 신경 과학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우리는 의식이 속속들이 뇌의 생리적 활동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어와 나머지 의식이 분리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뇌졸중 환자가 언어 능력은 잃을지언정 지각없는 로봇으로 변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면 분명하다. 그러나 실어증은 1861년에야 처음 기록되었기 때문에(데카르트의 동향 프랑스 사람인 폴 브로카가 발견했다.) 당시에는 데카르트의 이론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의학 실험실에서는 동물을 생체 해부하여 연구했다. 사람 시체 해부는 교회가 금지했기 때문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공장식 사육도 20세기의 현상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돼지를 '브로닝'하는 방법, 즉 살찌우는 방법은 "좁아터진 방에 가둬 돼지들이 돌아다니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돼지들은 늘 배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기록했다. "돼지들은 고통 속에 먹었고, 고통 속에 앉아 있었고, 고통 속에 잠을 잤다." 가금류와 엽조는 캄캄한 곳에 가둬 살을 찌웠다. 아예 눈을 멀게 하기도 했다. ...... 거위는 물갈퀴를 바닥에 못으로 박아 두면 살이 찐다고 했고, 17세기 주부들은 산 가금류의 다리를 자르면 살이 더 연해진다고 믿었다. 1686년, 로버트 사우스웰 경은 "소들이 한 여물통에서 계속 먹고 마셔서 도살하기 알맞은 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외양간"을 발명했다고 선전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완전 채식으로 나아간 문화들도 동기는 가지각색이었다.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는 삼각형의 변을 재는 것 말고도 많은 일을 하는 종교를 창시했다. 피타고라스와 그 추종자들은 고기를 꺼렸다. 그들은 영혼이 몸에서 몸으로 환생한다고 믿었으며 동물의 영혼도 마찬가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840년대에 채식주의자(vegetarian)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에는 고기와 생선을 절제하는 식단을 가리켜 '피타고라스 식단'이라고 불렀다. 힌두교의 채식도 환생 원리에 입각하는데, 마빈 해리스 같은 냉소적인 인류학자들은 좀 더 평범한 설명을 제시했다. 인도에서 소는 소고기 커리의 재료로 쓰일 때보다 밭을 갈거나 젖과 똥(연료와 비료로 쓰인다.)을 공급하는 동물로서 더 소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힌두교 채식주의의 영적 논리는 불교와 자이나교에게 전달되었고, 이들은 비폭력 철학에 기반하여 좀 더 명시적으로 동물을 배려했다. 자이나교 수도승은 곤충을 밟지 않기 위해서 빗자루로 발밑을 쓸면서 걷는다. 미생물을 들이마시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도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러나 채식과 인도주의가 나란히 간다는 직관은 20세기 초에 산산이 깨어졌다. 나치가 동물을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히틀러와 여러 심복들은 채식주의자였다. 단 동물에 대한 연민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순수함에 대한 집착, 다시 흙과 이어지고 싶다는 신화적 욕망, 유대교의 인간 중심주의 및 육식 의례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인간의 도덕 감정 구획화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나치는 산 사람들에게는 형언할 수 없이 잔인한 실험을 자행하면서도 실험동물에 관해서는 유럽 역사상 유례없이 강력한 보호 법률을 제정했다. 법률에 따르면 농장, 영화 촬영장, 식당에서도 동물을 인도적으로 다루어야 했다. 가령 식당에서는 조리 전에 생선을 마취해야 했고, 바닷가재는 신속히 죽여야 했다. 동물 권리의 역사에서 가장 기이한 이 장이 펼쳐진 뒤, 채식 옹호자들은 육식이 사람의 공격성을 높이고 채식이 사람을 평화롭게 만든다는 오래된 주장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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