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혼자 읽기

D-29
평등주의를 지지하는 좌파 작가들과 자수성가를 지지하는 우파 작가들은 오래전부터 지능 개념 자체와 그것을 측정할 수 있다는 도구를 폄훼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인간의 개인차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능이 측정 가능한 특질이라는 데 사실상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지능은 개인의 삶에서 평생 안정되게 유지되는 편이고, 학문적 성공과 직업적 성공을 거의 모든 차원에서 정확하게 예측하는 지표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플린 효과는 과학계에 떨어진 폭탄이었다. 행렬과 유사성 분야의 점수 상승에 집중할 경우, 수십 년 동안 일반 지능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분야는 일반 지능을 가장 순수하게 측정하는 지표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한 수험자가 다른 다양한 검사들에서 얻는 점수와 비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그 경향성을 g라고 부르며, g의 발견은 심리 검사의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간주되곤 한다. 사람들에게 상식적인 의미의 지능을 요구하는 검사를 무엇이든 시켜 보면 - 수학, 어휘, 기하학, 논리, 텍스트 이해, 사실적 지식 등등 - 한 검사에서 뛰어난 사람은 다른 검사에서도 뛰어난 편이다. 이것은 당연한 결론이 아니다. 말재간이 부족한 수학의 명수, 수표책에 절절매는 유창한 시인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여러 종류의 지능들이 뇌에서 자원을 경합하기 때문에 수학에 신경 조직이 더 많이 할당되면 언어에는 덜 할당되는 상황, 혹은 그 역의 상황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나 상대적으로 언어를 잘하는 사람은 있지만, 인구 전체와 비교했을 때는 두 재능이 -지능 개념과 결부시킬 수 있는 다른 어떤 재능도- 비례하는 편이다. 게다가 일반 지능은 유전율이 대단히 높고, 가정 환경의 영향은 대체로 받지 않는다(물론 문화적 환경의 영향은 받을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진짜 폭탄은 플린 효과가 거의 틀림없이 환경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자연 선택의 한계 속도는 세대 단위로 측정되지만, 플린 효과는 수십 년이나 수 년 단위로 측정된다. 플린은 자기 이름이 붙은 효과의 설명으로서 영양, 전반적 건강 상태, 이계 교배(자기 지역 사회 바깥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기각했다. 플린 효과를 추진한 요인이 무엇이든, 그것은 유전자, 식단, 백신, 짝짓기 풀 때문이 아니라 인지적 환경 때문이었다. 플린 효과의 수수께끼를 푸는 돌파구는 IQ의 상승이 일반 지능의 상승 때문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었다. 일반 지능의 상승이 원인이라면 어휘, 수학, 기억력을 비롯하여 모든 하위 검사들의 점수가 높아졌을 테고, 그 정도는 각 검사와 g의 상관관계에 비례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사성이나 행렬 같은 분야에만 점수 상승이 집중되었다. 의문의 환경 요인이 무엇이든, 그것은 지능의 어떤 요소를 향상시킬지를 대단히 까다롭게 고르는 셈이다. 그것은 두뇌 능력을 전체적으로 높이지 않고, 추상적 추론에 해당하는 하위 검사들의 점수를 잘 받는 데 필요한 능력만 높인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플린은 새롭게 향상되고 있는 그 지능을 (과학 이전과 대비되는) 과학 이후(postscientific) 사고방식이라고 명명했다. IQ 검사 중 유사성 분야의 전형적인 질문은 이렇다. '개와 토끼의 공통점은?' 답은 둘 다 포유류라는 것이다. 요즘 우리에게는 이 답이 명백해 보이지만, 1900년대 미국인이라면 '개를 써서 토끼를 잡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플린에 따르면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과학의 범주들로 자동적으로 분류하기 때문인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옳은' 대답은 난해하고 부적절한 대답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플린이 상상했듯이, 1900년에 검사를 받은 사람은 "둘 다 포유류이든 말든 무슨 상관이죠?"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그의 관점에서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항목이다. 공간과 시간의 방향, 무엇이 유용한가, 무엇이 자신의 통제 하에 있는가 등이 중요할 뿐이다." ... 플린은 이렇게 적었다. "(순수한 가설적 사고방식을 거부한) 농부들이 전적으로 옳다. 그들은 분석적 명제와 종합적 명제의 차이를 이해한다. 순수한 논리는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다. 오로지 경험만이 알려 준다. 그러나 이런 통찰은 오늘날의 IQ 검사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현재의 IQ 검사는 추상적, 형식적 추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좁은 세상에 기반한 편협한 지식에서 벗어나는 능력, 순수한 가설적 세계에서 공리의 의미를 탐구하는 능력을. 플린은 사람들이 '과학적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커진 것이 플린 효과의 대부분을 설명한다고 주장했는데, 그가 옳다면 그 안경을 가져온 외생적 원인은 또 무엇이었을까? 한 명백한 요인은 학교 교육이다. 학교 교육은 청소년들이 피아제가 말한 구체적 조작의 단계에서 형식적 조작의 단계로 나아가도록 안내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플린은 과학적 사고 방식이 속기적 추상화(shorthand abstraction)의 형태로 일상의 담론에 침투했다고도 지적했다. 속기적 추상화란 어렵사리 익혀야 하는 기술적 분석 도구로서, 일단 그것을 익히면 추상적 관계들을 쉽게 조작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따로 과학이나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가벼운 독서와 대화와 언론을 통해서 추상적 개념을 무수히 흡수했을 것이다. 비례, 퍼센트, 상관관계, 인과 관계, 통제군, 플라세보, 대표 표본, 거짓 양성, 경험적, 인과 오류, 통계적, 중간값, 변이성, 순환 논증, 교환 관계, 비용 편익 분석 등등. 그러나 - 퍼센트처럼 우리에게는 제2의 본능처럼 느껴지는 - 이런 개념들도 원래는 학계와 상류층에서 유통되다가 아래로 흘러내렸고, 20세기에 더 자주 인쇄되면서 점차 대중화되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도덕적 플린 효과도 있을까? ... 이것은 터무니 없는 생각이 아니다. 플린 효과에서 가장 많이 향상된 인지 능력, 즉 직접 경험의 구체적 세부 사항으로부터 추상화를 해내는 기술은 우리가 타인의 관점을 취하고 도덕적 고려의 범위를 넓힐 때 발휘해야 하는 바로 그 기술이다. 플린도 아일랜드 출신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를 회상하며 그 연관성을 지적했다. 1884년 생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상당히 지적이었지만 학교 교육은 못 받은 사람이었다. - ..."아버지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피부색이 검게 바뀌었다면 어떻겠어요? 그런다고 아버지가 인간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아버지는 쏘아붙였다. "내 평생 네가 그렇게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건 처음 듣는구나. 하룻밤 새 피부가 까맣게 바뀌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든?"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심리학자 마이클 사전트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지 수요'가 큰 사람일수록 - 즉, 정신적 도전을 즐기는 사람일수록 - 형사 정의에 대해 징벌적인 태도를 덜 취하는 편이었다. 연령, 성별, 인종, 교육, 소득, 정치 성향을 모두 고려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플린 효과의) 정상성 점검의 나머지 절반은, 우리의 최근 조상들이 정말로 도덕적 지체 상태였는지 묻는 것이다. 기꺼이 논쟁할 자세로 답하건대, 나는 정말로 그랬다고 본다. 물론 그들은 완벽하게 기능하는 뇌를 지닌 점잖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속했던 문화의 집단적인 도덕 세련도를 오늘날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당시의 광천수 온천이나 특허 의약품을 현대 의학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만큼 원시적으로 보인다. 그들의 믿음은 그저 괴상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어리석은 것이 많았다. 그런 믿음들은 지적 검증을 견디지 못할 것이고, 스스로 주장했던 다른 가치들과 일관성이 없다고 드러날 것이다. 과거에 그것들이 존속했던 까닭은 당대의 폭 좁은 지성의 스포트라이트가 그것을 자주 비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나는 1960년대 초에 어머니가 나와 누이에게 다음과 같은 온화한 교훈을 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비슷한 교훈을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받았다. "나쁜 백인도 있고 착한 백인도 있는 것처럼, 나쁜 흑인도 있고 착한 흑인도 있단다. 사람을 피부색만 보고는 착한지 나쁜지 알 수 없단다.""그 사람들의 행동이 이상해 보이기는 하지. 그렇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우리 행동이 이상해 보인단다." 이런 교훈은 세뇌가 아니다. 추론의 길잡이를 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충분히 납득되는 결론에 도달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100년 전 위대한 정치가들의 신경 회로에도 틀림없이 이런 추론 능력이 존재했을 테지만,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인지적 도약을 장려 받고 그렇게 얻은 지식을 제2의 본성으로 습득한다는 점이 다르다. 표현의 자유, 관용, 인권, 시민권, 민주주의, 평화적 공존, 비폭력 같은 속기적 추상들은 (인종주의, 집단 살해, 전체주의, 전쟁 범죄 같은 그 안티테제들도) 그 기원인 정치 담론에서 점점 더 바깥으로 확산되어 결국 모든 사람의 정신적 도구가 되었다. 이 과정을 지능 상승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고, 지능 검사에서 추상적 추론 점수를 끌어올린 변화도 이와 완전히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또 중요한 점으로 (이성의) 에스컬레이터 가설은 이성(rationality)의 영향을 말하는 것이지 - 즉, 사회의 추상적 추론 수준 - 지식인(intellectuals)의 영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 에릭 호퍼의 말을 빌리자면, 지식인은 "실온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지식인들은 대담한 견해, 꾀바른 이론, 포괄적 이데올로기, 20세기 내내 말썽을 일으켰던 형태의 유토피아적 전망에 흥분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도덕 감수성을 넓힌 이성은 그런 장대한 지적 '체계'가 아니라 논리, 명료함, 객관성, 비례 개념의 적용에서 나온다. 어느 시점이든 이런 심적 습관은 인구에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지만, 플린 효과는 모든 사람들의 수준을 높이므로 엘리트이든 평범한 시민이든 다들 크고 작은 계몽의 파고를 겪었다고 보아도 좋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경제학자 개럿 존스는 지능과 죄수의 딜레마를 다른 경로로 연결했다. 그는 1959~2003년까지 대학에서 수행된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실험들을 모조리 수집했다. 총 피험자 수가 수천 명인 36개 실험을 분석한 결과, 평균 수학 능력 시험 점수가 높은 학교일수록 (이 점수는 IQ와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학생들이 더 기꺼이 협동했다. 요컨대, 서로 다른 두 조사의 결과는 일치했다. 이득을 예상할 수 있는 전형적인 상황에서 지능은 상호 협동을 장려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똑똑한 사회일수록 더 많이 협동하는 사회일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경제학자 브라이언 캐플런은 역시 종합 사회 조사 데이터에서 똑똑한 사람일수록 경제학자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교육, 소득, 성별, 정당, 정치적 지향을 통계적으로 제어하고도.). 똑똑한 사람일수록 이민, 자유 시장, 자유 무역에 공감했고, 보호주의, 일자리 창출 정책, 정부의 기업 규제에 덜 공감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이 놓인 영역을 더 넓게 조망하면, 이 입장에서 지능과 비례하는 방향일수록 역사적으로 더 평화로운 방향이었다고 주장할 만하다. 왜냐하면 경제학자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온화한 상업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입장은 교역의 포지티브섬 수익은 물론이거니와 확장하는 협동의 그물망에 뒤따르는 부수적 편익을 장려한다. 그리고 세상의 부를 제로섬 게임으로 간주하고자 한 집단이 부유해지려면 다른 집단이 희생되어야 한다고 보는 대중주의, 민족주의, 공산주의 사고방식과 대비된다. 역사적으로도 경제 지식이 부족하면 종종 민족적, 계층적 폭력으로 이어졌다. 못 가진 사람들은 가진 사람들의 재물을 강제로 몰수하고 그들의 탐욕을 처벌해야만 운명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7장에서 보았듯이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특히 서구에서는 인종 폭동과 집단 살해가 줄었는데, 어쩌면 이것은 경제에 대한 통찰이 증가한 현상과 관계있을지도 모른다(오히려 최근에는 그 시절에 비해 경제학 연구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보스턴 공립 도서관의 '준비된 민주주의' 이론(그곳 엔타블러처에는 이런 고무적인 문장이 새겨져 있다. "국가는 질서와 자유의 보호 장치로서 대중의 교양을 필요로 한다.")은 아직까지 사실로 확인된 바 없다. 성숙한 민주주의일수록 시민들이 더 학식있고 더 똑똑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려진 현상이지만, 성숙한 민주주의는 그 밖에도 좋은 것을 뭐든지 더 많이 갖고 있다.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더 민주적인 국가일수록 더 부유해서 더 많은 학교와 도서관을 갖추고, 덕분에 시민들이 더 많은 교육을 받아 더 똑똑해질지도 모른다. 똑똑함이 민주주의에 앞서지 않고 말이다. 심리학자 하이너 린데르만은 상호 지연 상관관계 분석이라는 사회 과학 기법으로 이 매듭을 풀었다(똑똑한 아이가 계몽된 성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던 영국의 연구도 이 기법을 썼다.). 여러 나라들의 민주주의 수준과 법치 수준에 점수를 매긴 데이터 집합이 여럿 존재한다. 각 나라 어린이들이 교육 받는 햇수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부 나라들에 대해서는 널리 쓰이는 지능 검사의 평균 점수를 알 수 있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수학 능력 검사들의 점수도 알 수 있다. 린데르만은 두 점수를 통합하여 하나의 지적 능력 지표를 산정했다. 그리고 나라마다 특정 시기 (1960~1972년)의 교육과 지적 능력이 다음 시기(1991~2003년)의 번영, 민주주의, 법치 수준을 얼마나 잘 예측하는지 확인해 보았다. 보스턴 공립 도서관 이론이 옳다면, 설령 앞 시기의 경제적 부와 같은 다른 변수들을 통제하더라도 상관관계가 강하게 나타나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점으로, 이 상관관계는 앞 시기 민주주의 및 법치와 다음 시기 교육 및 지적 능력의 상관관계보다도 더 강해야 한다. 과거가 현재의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 보스턴 공립 도서관의 조각가들에게 경의를 표하자! 다른 요인들이 같을 때, 과거의 교양과 지적 능력은 최근의 민주주의와 법치 수준을 (더불어 번영을) 잘 예측했다. 대조적으로, 과거의 부는 현재의 민주주의를 예측하는 지표가 되지 못했다(법치 수준은 약하게나마 예측했다.). 이때 학교 교육 기간보다는 지적 능력이 더 강력한 예측 지표였다. 린데르만에 따르면, 학교 교육은 지적 능력과 상관관계가 있을 때만 예측 지표가 된다. 그렇다면 교육을 통한 추론 능력 함양이 적어도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민주주의를 강화했다고 결론지어도 크게 무리가 아닐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정치학자 클레이턴 타인은 6장에서 보았던 제임스 피어론과 데이비드 레이틴의 데이터 집합 중 160개 나라와 49개 내전의 데이터를 골라 분석했다. 그 결과, 국가의 교육 수준을 나타내는 네 지표의 점수가 높을수록 - 국내 총생산에서 일차 교육에 투자하는 비율, 학령층 인구 중 일차 교육 기관에 등록한 비율, 청소년 인구 중 이차 교육 기관에 등록한 비율(특히 남성),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었지만)성인의 문해 능력 - 이듬해의 내전 가능성이 낮았다. 효과는 작지 않았다. 일차 교육 기관 등록률이 평균보다 표준 편차 이상 높은 나라들은 평균보다 표준 편차 이상 낮은 나라들보다 이듬해에 내전을 겪을 확률이 73퍼센트 더 낮았다. 물론 과거의 전쟁 경력, 일인당 소득, 인구, 산악 지형, 석유 수출, 민주주의와 준민주주의 수준, 인종 분열과 종교 분열 등등의 요인을 고정한 결과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발언의 IQ라는 것은 없지만, 테틀록을 비롯한 여러 정치 심리학자들은 통합 복잡성이라는 변수로 발언의 지적 균형, 뉘앙스, 세련됨을 평가한다. 통합 복잡성이 낮은 구문은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고 그것을 줄곧 강조할 뿐, 뉘앙스나 증거가 부족하다. 연구자들은 절대적으로, 언제나, 확실히, 분명히, 전적으로, 영원히, 반박할 수 없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의심할 수 없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등등의 표현이 쓰인 횟수를 헤아림으로써 최소 수준의 복잡성을 정량화한다. 보통, 거의, 그러나, 하지만, 아마도 등등의 단어가 쓰인 구문은 좀 더 미묘한 편이므로, 통합 복잡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판단된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관점을 보여 주는 구문은 점수가 더 높고, 연관성이나 교환 관계나 타협을 논하는 구문은 그보다 더 높고, 그보다 더 상위의 원칙과 체계를 끌여들여 그런 관계를 설명하는 구문은 가장 점수가 높다. 구문의 통합 복잡성은 그것을 쓴 사람의 지능과는 다른 문제이지만, 둘 사이에 상관관계는 있다. 사이먼턴에 따르면 적어도 미국 대통령들에서는 그랬다. 통합 복잡성은 폭력성과 관계가 있다. 평균적으로 통합 복잡성이 낮은 언어를 쓰는 사람일수록 좌절에 폭력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고, 전쟁 게임에서 쉽게 전쟁에 돌입한다. 테틀록은 심리학자 피터 슈에드펠드와 함께 20세기 정치적 위기들 중 평화롭게 끝난 사례(1948년 베를린 봉쇄, 쿠바 미사일 위기 등)와 전쟁으로 끝난 사례(제1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등)를 골라 당시 지도자들의 발언에서 통합 복잡성을 따져 보았다. 그 결과 통합 복잡성이 낮으면 전쟁이 따르기 쉬웠다. 특히 아랍과 이스라엘의 발언에서, 그리고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발언에서 수사적 단순성과 군사적 맞대결은 강한 연관 관계를 보였다. 이 상관관계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고집이 센 사람일수록 합의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 떠올릴 수도 있고, 아니면 호전적인 사람일수록 자신의 완고한 입장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일부러 단순한 수사를 동원할 수도 있다. 테틀록은 실험실과 현실의 연구들을 모두 검토하여, 두 역학이 모두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그런데 한 분야에서만큼은 정치인들이 정말로 플린 효과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 선거 토론이다. 2008년 텔레비전 토론을 시청했던 사람들은 단 두 마디로 내용을 요약할 수 있었다. '배관공 조'(오바마 대통령의 유세에서 세금 정책을 비판하는 말을 한 것이 방송을 타서 일약 유명인이 되었던 사람의 별명 - 옮긴이). 심리학자 윌리엄 고턴과 제니 딜스는 1960~2008년까지 토론에 나선 후보자들의 언어에 점수를 매겨, 경향성을 정량화했다. 그 결과 1992~2008년까지 전반적 세련도가 낮아졌고, 경제 관련 발언은 그보다 이른 1984년부터 질이 낮아졌다. 얄궂게도, 대선 토론의 세련도가 후퇴한 것은 정치 전략가들의 세련도가 발전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유세 기간의 막판에 벌어지는 텔레비전 토론은 부동층을 겨냥하는데, 그들은 유권자 중에서도 정보가 제일 없고 관심도 제일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인상적인 한 마디나 재치 있는 한 구절을 근거로 선택하기 때문에, 전략가들은 후보자에게 목표를 낮게 잡으라고 조언한다. 2000년과 2004년에는 부시에 맞선 민주당 후보들이 평범함에 평범함으로 맞대응한 탓에 토론 수준이 더욱 낮아졌다. 미국 정치 체계에 이렇게 악용할 수 있는 취약점이 있다는 사실은 평화가 증진되는 현대에 미국이 오히려 두 번의 지리한 전쟁에 말려든 까닭을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이성은 어떻게 이런 요구들을 만족시킬까? 그것은 이성이 무제한적인 조합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새로운 발상을 무수히 생성할 수 있는 엔진이다. 우리가 일단 기초적인 자기 이익 추구 능력과 타인과의 소통 능력을 갖추면, 다음에는 이성 고유의 논리가 이성을 더욱 추진한다. 그러다가 때가 무르익으면, 이성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이해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과거의 추론에서 결함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현재에 맞게 개선하는 것도 늘 이성의 몫이다. 여러분이 지금 내 논증에서 흠을 발견한다면, 그 흠을 지목하고 대안적 견해를 구축하게 만드는 것도 이성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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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다른 시나리오를 상상하자. 이번에는 우리에게 선택지가 주어진다. 내 새끼손가락 하나를 잃는 것과 중국인 1억 명이 죽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스미스는 이때 괴물 같은 선택을 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예상했다.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낯선 사람에 대한 감정 이입은 개인적 불행에 대한 괴로움보다 설득력이 한참 떨어지는 게 사실일진대, 왜 우리는 괴물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일까? 스미스는 이렇게 묻고, 우리의 선한 천사들을 비교함으로써 역설에 답했다. - 따라서, 자기애라는 최고의 강력한 충동에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성의 부드러운 힘들이 아니다. 자연이 발휘되는 것은 좀 더 강한 힘, 더 강력한 동기이다. 이성, 원칙, 양심, 짐승 속에 거하는 존재, 내면의 인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위대한 재판관이자 결정권자가 그것이다. 그는 우리가 타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할 때마다 나서서, 우리의 가장 몰염치한 충동마저 깜짝 놀라게 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이른다. 우리는 무수한 사람들 중 하나일 뿐, 어떤 면에서도 남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우리가 무조건 뻔뻔하게 자기만을 선호한다면 마땅히 남들의 분노, 혐오, 증오를 받을 것이라고. 우리는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자신과 자신에게 관계된 모든 일이 사실 얼마나 하찮은지를 깨우친다. 우리는 오로지 그 공평무사한 관찰자의 눈을 통해서만, 그릇된 자기애의 표출이라는 타고난 성향을 바로잡을 수 있다. 우리에게 관용의 타당성과 불의의 추악함을 보여 주는 것도 바로 그다. 남들이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자신의 가장 큰 이득마저도 단념해야 적절하다는 것을, 자신의 최대의 이득을 얻고자 남들을 해치는 일은 아무리 작은 피해라도 추한 짓이라는 것을, 바로 그가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10장. 천사의 날개를 타고
자원 경쟁은 역사의 핵심적 역학이었지만, 폭력의 거시적 경향성에 관해서는 별다른 통찰을 주지 못한다. 지난 500년 동안 가장 파괴적이었던 분쟁들은 자원이 아니라 종교, 혁명, 민족주의, 파시즘, 공산주의 등등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불붙었다(5장). 그런 분쟁들이 알고 보면 텅스텐이나 다른 자원 때문이라는 주장을 누구도 완벽하게 반증할 수는 없겠지만, 자원 결정론은 아무리 증명하려고 노력해 봤자 괴짜 음모론으로 비칠 뿐이다. 힘의 균형에 대해서는,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나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처럼 판이 뒤집힌 상황이라도 세상이 미친 듯한 쟁탈전에 돌입하지는 않았다. 그런 사건은 선진국들의 긴 평화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개발 도상국들에게는 새로운 평화의 전조가 되었다. 두 사건의 뜻밖에 유쾌하게 끝났던 것도 자원의 발견이나 재분배와는 무관했다. 개발 도상국의 자원은 오히려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석유와 광물이 풍부한 나라들은 국민에게 나눠 줄 파이가 더 큰데도 가장 폭력적인 나라에 속했다(6장). ... 자원 경쟁은 자연의 상수가 아니다. 그것은 폭력을 비롯한 여러 사회적 힘들의 그물망에 내재된 요인이다. 사람들은 사회의 하부 구조와 사고방식에 따라 어떤 시기와 장소에는 완성품의 포지티브섬 교환을 선택하고, 또 다른 시기와 장소에는 원재료의 제로섬 경쟁을 선택한다. 후자는 사실상 네거티브섬 경쟁이다. 약탈한 원료의 가치에서 전쟁 비용을 빼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캐나다를 침공하여 오대호 항로나 귀중한 니켈 매장량을 압수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교역으로 그 편익을 누리는 마당에 굳이 왜 그러겠는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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