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감상 기록 2 – [우주 생명의 푸가]
이번 장은 전에 읽었던 데니스 노블의 생명의 음악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이 한 곳에 모인 느낌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생명을 음악에 비유하는 관점과, 생명을 유전자 전달 과정으로 보는 관점이 한 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란히 놓인다. 생명을 음악에 비유한 사람이 노블이 처음은 아니었구나, 다만 생명 시스템을 음악으로 비유하는 깊이나 결이 조금씩 다를 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책의 사상이 코스모스라는 한 책 안에 함께 녹아 있는 내용들을 읽을 수 있었다.
[우주 생물이 들려줄 음악은 외로운 풀피리 소리가 아니라 푸가일 가능성이 높다… 10억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은하 생명의 푸가를 듣는다면, 지구 생물학자들은 그 화려함과 장엄함에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 인위 선택이 짧은 기간에 만들어 낸 변화를 떠올리면, 수십억 년 동안 자연 선택이 빚어 온 생물 세계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이 얼마나 엄청난 규모일지 짐작하게 된다. // 자연 선택이 영겁의 세월 속에서 생명의 소리를 더 아름다운 음악 작품으로 조탁해 왔다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게 느껴진다.]
[다윈과 윌리스의 저작물들은 어두운 밤에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한 줄기의 섬광이었다”(57쪽)] 어두운 밤에 길을 잃은 나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준 것은 문학이었다. 과학자와 연구자에게는 다른 과학자와 연구자의 발견이 그런 섬광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종의 기원의 핵심 사상을 완전히 이해했을 때 헉슬리가 느꼈다는 ‘참담함’은, “출구 없는 삶에 문을 그려 넣는 마음(김소연-걸리버)”의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깨달음은 동시에 참담함이자 출구이기도 하니까.
초파리 실험에 대한 대목(59쪽)을 읽을 때는 임솔아 작가의 초파리 돌보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소설을 읽을 때는 초파리에 관한 연구가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코스모스를 읽다 보니 유전자 계통 연구에 초파리가 활용되는구나 알게 되었다. 과학책의 한 대목에서 소설 속 장면을 다시 불러와 서로를 비춰 주는 경험을 한다.
“지구에서 일어난 진화는 어쩌면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생명 진화의 한 가지 전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부적인 면을 살펴본다면 지구의 생명 현상은 은하수 은하 그 어디에서도 기대할 수 없는, 지구 생명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나는 믿는다”(61쪽)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특히 뇌에서 이루어지는 신경학적 현상들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운 현상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동물과 식물이 서로가 내쉰 것을 다시 들이마시는 순환을 두고 “지구 차원에서 실현되는 인공호흡”에 비유하는 부분(67쪽)도 인상 깊었다. 나무가 있는 곳에서 산책을 할 수 있다면 웬만한 상황은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왔다. 내가 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숲에서 살아온 인류 조상의 흔적이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무는 햇빛을 생존의 동력으로 삼는 아름답고 위대한 기계이고, 나는 그 곁에서 숨을 주고받는 동물이다.
채식주의자에서 나무가 되고 싶어 하던 인물이나, “식물은 똥도 안 싸고 아름답고 울지도 않으니까요”라고 말하던 이물감 속 인물을 떠올리며, 이제는 굳이 나무가 되고 싶어 하거나 나무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명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참나무와 나는 거의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고, 동물인 나와 식물인 참나무의 조상은 결국 같은 갈래에서 시작했을 테니까. 나무를 계속 사랑하면서, 같은 푸가 안에서 함께 숨 쉬는 존재로 곁에 서 있으면 되겠다.
코스모스, 이제는 읽을 때가 되었다!
D-29
달하루
nina
지구를 일주하고자 나섰다 되돌아온 사람들은 대륙이 앞을 막어 회항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바닷길은 항상 거침없이 열려 있었건만 더 못가고 돌아온 까닭은 오로지 자신의 의욕 상실과 식량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대서양의 넓이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인도까지 바다를 타고 수월하게 갈 수도 있울 것이라 생각했다. 살기 적합한 땅이 온대 지방에 한두 개 정도 더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만약(세상 저편에) 누군가가 산다면 그들은 이 땅에 존재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아닐 것이니, 우리는 그곳을 또 다른 세계로 보아야 마땅하다. (53쪽)
기원전 지구 일주에 나서고 실패하는 과정과 미지의 땅에 대한 예측들이 지금 우리가 우주 탐험하는 상황과 닮았다고 느껴진다. 우주는 광활하게 열려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확신과 의지가 없다면 계속되는 실패에도 도전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에라토스테네스가 예상한 미지의 세계에서도 문명은 이어지고 역시나 새로운 세계로의 텀험이 이루어 지고 있었으며 피부색이나 언어면에서 달랐지만 인간이라는 공통점 또한 존재하며 지구 곳곳이 다 연결된 현재 지구상에서 소통되지 않을 영역은 없다.
하여, 고대 학자 남긴 지구 탐험의 글에서 저 너머 우주 어딘가에 지구와 같은 별이 한두 개 정도 더 존재하고 또 다른 존재가 세상에 있다 할 지라도 우주에서 태어나고 원초적 고향에 대한 갈망은 같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며 시간적으로 내가 겪을 수는 없을 가능성은 없지만 희미한 설렘을 느낀다.

말코손바닥사슴
@nina
말씀하신 것처럼 탐험과 도전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주는 설렘의 잔상이 있습니다.
지배와 통제, 정복에의 욕망으로 번져나가지만 않는다면
탐험과 도전이 열어젖히는 문은 뒤따라오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길잡이가 되는 것 같아요.
인간이 바다를 도전하고 탐험하면서 문화적 교류도 일구어 냈지만
전쟁으로 귀결되곤 했던 것처럼. 우주를 탐험하고 도전할 때도
욕망의 균형점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문득 듭니다.
GoHo
우리 조상들은 달 없는 밤,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이 사그라져 깜부기불이 되면 그 주위에 앉아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p107
닮은 듯 깜빡이는 밤하늘의 별들에서 깜부기불의 온기를 느꼈을 것도 같습니다..
3장의 제목이 좋았습니다..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저렿게 눈 속에 별을 담던 사람들이 우주의 원리를 찾아가는 길이 제목에 담긴 것 같아 마음이 몽클해지네요..
지상의 케플러라는 뉴턴이라는 그리고 별을 담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천상의 별들의 하모니..
요하네스 케플러는 미래의 하늘에는 "천상의 바람을 잘 탈 수 있는 돛단배들이" 날아다니고 우주 공간은 "우주의 광막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탐험가들로 그득할 것이라 했다. P153
Kepler로 시작되는 외계행성 수 2,784개.. ChatGPT
[5,000 Exoplanets : Listen to the Sounds of Discovery]
https://youtu.be/yv4DbU1CWAY?si=HVRqQdiQaS5K7B4r
https://naver.me/x0Utn1AK
달하루
코스모스 감상 기록 3 - [우주 생명의 푸가] 72페이지-진화는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DNA 중합체 효소가 복제 과정에서 실수를 범하면 돌연변이가 생긴다. 그러나 중합체 효소가 실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태양에서부터 오는 방사능 입자나 자외선 광자도 돌연변이의 요인이 된다. 또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높은 에너지의 우주선 입자나 주위 환경의 화학 물질 때문에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뉴클레오티드를 변화시키거나 핵산의 끈을 꼬거나 묶는다. 돌연변이율이 너무 높으면 40억 년 동안 공들여 쌓아 온 진화 유산의 탑이 송두리째 무너진다. 반대로 너무 낮으면 미래의 환경 변화에 적응할 새로운 종이 모자란다. 생물의 진화는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 사이의 정확한 균형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균형이 이루어질 때 새로운 환경에 놀랄 만큼 잘 적응하는 생물들이 탄생한다.
이번에 코스모스를 처음 읽으며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고 느껴, 김상욱 교수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이라는 책도 함께 읽고 있다. 그 책에서 보석이 지닌 색깔이 소량의 불순물 때문에 만들어진다는 내용을 읽었는데, 이 대목이 코스모스의 돌연변이 설명을 읽으며 떠올랐다. 불순물과 돌연변이는 흔히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어느 정도의 불완전함이 색을 만들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을 탄생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다.
진화의 돌연변이나 보석을 만드는 불순물이 인생의 고통과 바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이런 설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삶을 떠올리게 된다. 인간에게 부정적으로만 보이는 고통과 시련이 전혀 없는 삶이 과연 좋은 삶일까, 혹은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성장과 변화의 조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뒤따른다. 다만 책에서 말하듯 그 ‘정확한 균형’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가 궁금하다.
정확한 균형이라는 표현을 읽으며 내 고민도 떠오른다. 나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담임으로 학생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지낸다. 때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시련,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며 생각한다. 그것이 아이들의 고유성이나 인격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기를, 그저 부정적인 경험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성장과 성숙의 발판이 되기를.
이런 마음을 품은 채 아이들과 함께하지만, 가끔은 자문한다. 이 교육 구조와 현실에서 이런 가능성을 언제까지 기대할 수 있을까. 교사로서 나는, 아이들이 겪는 시련과 어려움 앞에서 어느 정도까지 곁에 서 줄 수 있을까. 진화가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 사이의 미묘한 균형 위에서 이루어지듯,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앞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단계가 되기를 바란다.
르시엘
“ 보통 사람 같으면 쉽게 지나쳐 버릴 관측 보고였다. 나무 막대기, 그림자, 우물 속의 비친 태양의 그림자, 태양의 위치처럼 단순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무슨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으랴? 그러나 에라토스테네스는 과학자였다. 그는 이렇게 평범한 사건들을 유심히 봄으로써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
『코스모스』 p49,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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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시엘
이 문장을 읽어보면서, 늘 위대한 발견은 사람들이 크게 관심도 없는것처럼 보이는곳에서 시작이 된다는것을 느낀것같습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위대한 업적들을 이루어놓고 또 새로운 발견들을 하고있으니 모든게 대단해보이지만, 이렇게 맨처음 이루어진것이 없던 그 시절, 이런 사소한 발견부터 시작할 당시에는 많은 주변의 핀잔도 많았을텐데 그런말들도 과학자들의 연구정신을 막을수는 없었다는걸 이 문장을 통해서 느껴볼 수 있었던것같습니다
가을문장
고등학교시절, 한참 별에 빠져있을 때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현재 전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지만, 당시 천문학자를 꿈꿀때는 왜 코스모스 책을 보지 않았는지 아쉬울뿐이다. 이 책의 광대함이 우주와 같아서 읽을수록 빠져들고 있다.
별은 희망이자 설렘이자 낭만이고 위로였다. 그렇게 밤하늘에 빠져드는 사람이 많았겠지.
그 역사속의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그들의 삶을 들어보는 듯하여 반갑다.
혜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데이비드 흄은 혜성을 행성계 생성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생식세포로 생각했고, 뉴턴은 혜성을 찾느라 몇날며칠밤을 뜬눈으로 지새워서 나중에 병이 날 지경이었으며, 고대 과학자들은 혜성이 지구 대기 내부현상이라고 했다.
같은 천문현상에 대하여 나중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까.
핼리혜성을 관측할 수 있는 다음 관측시기는 2061년 7월 28일로 예측 된다.
인생 첫 혜성 관찰이 될 수 있을 그 시기에 나는 아직도 지구에 생존해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을 기대하며 기다리게 된다. 그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GoHo
행성은 별들의 짝짓기를 통해서 태어나는데 혜성이 행성계의 생성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생식 세포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혜성이 장차 행성이 될 난자나 정자라는 제안이었다. p175
저는 이부분 보면서 호호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 같다 생각했습니다..^^
'옛날옛날에 이 별과 저 별이 살았는데..
눈부시게 길다란 꼬리로 두 별을 이어주는 혜성이라는 녀석이..
이 별과 저 별을 잇는 아기주머니를 만들어줘서..
귀염뽀짝한.. 새 별이 만들어졌단다..호호호.. ㅎ'
르시엘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실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개의 방편이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다" p65
대체 왜 외계인이라는것에 이렇게도 관심이 많은걸까? 라는 궁금증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던것같습니다. 마치 종교인들이 신에게 얻고자 하는것이 우리가 대체 왜 태어났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물어보고싶은것처럼, 과학자들은 외계생물의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어디서부터 온 존재들인지 그 진리를 탐구하기위해서 이렇게 외계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알게되며 놀라웠습니다.
달하루
그러네요. 대상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질문이네요. 세상이 다양한 만큼, 같은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방식도 다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GoHo
과거 45억 년의 역사를 통해서 수백만 개의 혜성들이 지구와 충돌해 왔듯이, 작은 혜성 하나가 지구와 충돌하는 사건이 오늘 발생한다면, 현대 지구 문명은 그 사건에 즉각적으로 잘못 반응하여 핵전쟁을 일으키고는 자기 파멸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p169
핼리 혜성 : 1531.1607.1682.1758.1835.1910.1986.2061
1835년 8월 22일 ~ 1835년 10월 22일 무인 혜성(彗星)이 저녁에 자미원(紫微垣) 천창성(天槍星) 곁에 나타났는데, 빛은 희고 꼬리의 길이는 2척(尺) 가량이었다. 북극(北極)과의 거리가 32도(度)였는데, 4경(四更)에 서쪽으로 사라졌다. 측후관(測候官)을 차하(差下)하여 윤번으로 숙직하게 하였다. [조선실록 [원전] 48집 439면]
1835년 9월 29일 ~ 1835년 11월 19일 을묘 혜성(彗星)이 없어졌다. [조선실록 [원전] 48집 440면]
[천문기록 검색]
https://astro.kasi.re.kr/almanac/pageView/24
[조선시대 관상감 국가 기관으로서 세계 최초로 핼리 혜성 관측 기록]
https://v.daum.net/v/20241115213602570

nina
나는 한갓 인간으로서 하루 살고 곧 죽을 목숨임을 잘 안다. 그러나 빽빽이 들어찬 저 무수한 별들의 둥근 궤도를 즐겁게 따라 가노라면, 어느새 나의 두 발은 땅을 딛지 않게 된다.
『코스모스』 119쪽,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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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인류의 미래는 우리가 오늘 코스모스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코스모스』 37,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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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하루
코스모스 독서 기록 4 - [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케플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결함과 능력을 함께 지닌 사람이고, 전쟁과 가난, 가족 상황 속에서 여러 번 시련을 겪었다. 그럼에도 행성 운동을 이해하려는 그의 몰두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 흐름을 따라 그는 행성 운동에 관한 세 가지 법칙을 발견한다.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생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며 케플러는 “어제는 하늘을 재더니, 오늘 나는 어둠을 재고 있다”고 적는다. 한계와 질곡이 많았던 그의 인생에서, 그가 이어 간 연구는 그를 행복하게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상적인 점은 그가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자전적 요소를 바탕으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식을 소재로, 허구의 이야기를 창작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자신의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주제로, 소설을 쓰는 일에 대해,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재능으로 하는 작업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의미있게 구현하는 필연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는 책들이 같이 떠올랐다.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 제나 히츠의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에서 말이다. 나는 주로 시를 쓰다가 이따금, 에세이를 썼는데, 어느 순간 삶에서 겪는 중요한 갈등을 재창작하여 담기 위해서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조회수나,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소설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소재로, 허구적인 이야기로, 창작하는 일에 대해 요즘 관심이 많아 이런 대목이 더 주목된 거 같다.

말코손바닥사슴
@달하루
자신의 삶이 투영된 독서 감상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내 삶의 자리에 따라 먼저 밟히는 대목들이 있지요..
시와 에세이를 종종 쓰시는군요! 내용에 맞는 형태로서 글의 장르는
언제나 무궁무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화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내용이라는 알맹이로 먼저 채워질 수도 있고, 때로는 문장과 문단의
뉘앙스가 먼저 떠오르는 껍질과 껍데기로서의 형태가 먼저 갖춰질 수도 있고,
내용과 형태의 변증법으로 글의 쓰기는 나아가는 건가 싶어요.
장르에 순수성이라는 위계-의미부여를 하는 건 언제나 부차적인 것 같구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케플러는 밤하늘을 보고 기록하는 '쓰기'를 하다가
보편적 법칙 을 구상하고 메모하며 정리하는 '쓰기'를 하다가
그 총제적인 하나의 세계를 그려내기 위하여 허구라는 형식을 빌리는 '쓰기'로 나아간 것 같네요.
달하루님의 다음 '쓰기'도 어떤 모습일지, 누구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곰의아이
늦게 시작한 만큼 일정에 잘 따라가며 읽어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코손바닥사슴
@곰의아이 반갑습니다 ^^ 짧은 발췌 문장도 환영하구요, 자유로운 독후 감상을 편하게 남겨주셔요~! 저도 얼마 전 여행지에서 찍은 책 인증샷을 남겨 봅니다.
송현정
382페이지입니다. 100여 개에 이르는 구상 성단들이 바로 우리 은하수 은하의 한가운데에 몰려 있는 막대한 질량 중심점을 궤도 운동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구상 성단들이 은하수 은하 안에서 하는 운동은 마치 그 중심 구역에 경의를 표하는 모습 같다.'는 글을 보고,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검색에는 실패했습니다 ^^;;
그 시대 사람들은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사실에도 큰 저항을 했던 걸로 보이는데, 우리 은하의 중심마저(!) 태양계가 아니라니(!) 이 충격을 어찌 추스르셨을까 궁금해지네요 ^^;;

말코손바닥사슴
@송현정
그러게요 별이 알고 보니 태양이라는 걸 알고 놀라워했던 어린 시절의 칼 세이건처럼
우주 초심자에게는 은하 중심마저 태양계가 아니라는 변두리에 변두리를
깊이 자각하는 것부터가 작은 난관이죠..ㅋㅋ
구상 성단 이미지를 같이 찾아볼까요?
https://science.nasa.gov/asset/webb/globular-cluster-m92-nircam-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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