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플라워 '좋아요'를 여러 번 누르고 싶은 문장입니다. 엄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실제로 제가 태어난 이유와 목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의미를 만들어가는 게 우리에게 중요하다, 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우리에게 삶의 이유를 강력히 선언하는 듯한 이 문장이 좋았어요. 또한 코스모스와 '우리'를 연결했을 뿐인데, 마치 거대한 품으로 감싸안아주는 느낌이 드는 문장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샛말로 '가슴이 웅장해진다'는 표현과 비슷하달까요. 마음이 넓어지는 듯하구요.
코스모스, 이제는 읽을 때가 되었다!
D-29

말코손바닥사슴
선플라워
“ 다윈과 윌리스는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생각만큼 우리 마음에 들고 또 그만큼 인간적이지만,설계자의 존재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자연선택이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설명이었다. 자연선택은 영겁의 세월 속에서 생명소리를 더 아름다운 음악작품으로 조탁해 왔다 ”
『코스모스』 p76,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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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모임 오늘 유난히 추웠던 것 같습니다. 하루 잘 보내셨나요?
1기 모임을 마무리하고, 2기 모임을 시작하면서
애초에 <코스모스>를 함께 읽으려 했던 이유를 다시 상기해보았습니다.
물론 독서가로서 왠지 '정복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도
솔직한 독서의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과학플랫폼 쏙(SOAK)이 여러분과 함께 코스모스를 읽고자 하는 이유는 이 문장에 녹아 있는 것 같아요.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이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가 아니다.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되어 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다양한 감정에 젖어들었을 고대의 인류.
그리고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인지하기 시작한 과학.
우리는 여전히 이 사이를 질주하며 살고 있구나, 싶습니다.
저 밤하늘의 별빛과 내가 근본적인 의미에서 다르지 않다는 감각이
정서적 쾌락을 넘어, 실제라는 사실이 체감으로 다가올 때.
세상을 인지하는 관점이 넓어지고, 발아래로 깊이 뿌리내리는 감각이 솟더라구요.
이 느낌에 대해서 앞으로도 여러 문장을 발췌하며 또 나누게 될 것 같습니다.
초반에는 문학 못지 않게 문장과 문단 사이를 유려하게 점프하는
지식 스토리텔링에 푹 빠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려운 것을 쉽게' 전달하고 싶은
칼 세이건과 '코스모스' 팀의 열망은 어떤 것이었는지 곱씹을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아래에 방점을 찍고 읽어가보려고 합니다.
- 칼 세이건이 정보와 지식 외에 행간으로 구현한 과학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 회의주의
-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시의성.
- 여전히 공고한 과학 대중화에 대한 편견과 그것을 타파하는 것에 대한 의미.
- 과학 애호가 / 과학 초심자를 모두 아우르는 근본을 향한 욕구.
- 청자의 입장에 서서 지식을 전달하는 화자의 태도.
- 과학 지식을 받아들이는 사회/문화의 중요성
주지하다시피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와 동명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다큐는 1980년 9월 첫 방영 이후 PBS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올렸고, 이 책은 70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4시간 분량의 다큐와 이 책을 만드는 데 약 2년이 걸렸다고 해요. 대규모 제작진이 함께였고, 무려 820만 달러의 예산이 있었죠. 여담이지만 그의 화려한 커리어와 달리 인생사는 복잡한 사정에 처해 있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혼을 협의 중이었고, 아버지는 병환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죠.
세이건이 말한 이 다큐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각적으로 자극적이어서, 흥미가 없는 사람도 볼 시리즈였으면 좋겠다'.
작가의 외재적 맥락을 살포시 던져봅니다.
그럼 또 틈틈이 감상을 남기겠습니다. 1주차 이 책을 마주한 첫 느낌을 자유롭게 남겨주셔요~!
2주차, 3주차가 될수록 무르익고 발효해나갈 생각의 씨앗을 심는 느낌으로요.

마키아벨리1
생각보다 읽기가 쉽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분들도 지적 해주셨듯이 번역 문장이 고풍스럽고 과학책과는 거리가 좀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조금 힘들긴 한데, 진짜로 고전을 읽는 듯 느낌이 나서 나쁘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1~3장은 일반인들에게 과학하는 태도의 중요성과 과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 등을 소개하는 내용 위주인데,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둘레를 잰 것, 진화론을 일본 투구게의 사례로 설명하고 다윈의 이야기까지 나온 것, 그리고 케플러와 뉴턴을 통해 천문학의 서막을 이야기한 내용 등입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이긴 한데, 칼 세이건의 글과 홍승수 교수님의 번역을 통해 접하니 새로운 맛이 있습니다.

말코손바닥사슴
@마키아벨리1
'과학책과는 거리가 좀 있는 느낌'에 대한 감상의 차이가 조금씩 느껴지죠..!
한국의 과학교양서가 강의형 서술이 많다 보니, 주장에 대한 뚜렷한 출처와 근거를
책의 말미에 '찾아보기'에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풀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학술적 서술 방식에 더 신뢰를 느끼는 독자도 있고,
조금 더 정보의 밀도보다는 감각적인 묘사와 유려한 전달방식에
호감을 느끼는 독자도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책은 독자와 저자의 궁합이기에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고요..!
아마도 칼 세이건은 처음 이 책을 썼을 때 다큐멘터리 시각화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기에
그리고 과학 문외한에게도 최소한의 과학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쉬운 해법'으로서의
쓰기-화법을 궁리했기에 조금 더 문학적 필치에 가까워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계속 더 곱씹어볼게요 저도.

말코손바닥사슴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이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가 아니다.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되어 있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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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정
지난달에 이어 코스모스 완독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저는 이제 7장 -밤하늘의 등뼈-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코스모스 첫 완독에 6개월쯤 걸린 듯하니… 지금 나름 빛의속도(!)로 읽어나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코스모스는 우주를 담은 책이기도 하지만, 칼 세이건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기도 해서 (과학과는 거리가 먼) 제 눈으로도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329페이지,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에 그들이 가진 독특함이 완전히 잊혀지고 아주 평범한 것으로 취급받는 별들의 신세가 불쌍해 보였다.’고 하는 칼 세이건의 시선을 인간에게 돌려도, 길가의 잡초에게 돌려도 마찬가지인 듯해서 ‘깊이 있는 답’을 듣고 싶은 칼세이건과 비슷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길가의 풀들을 가만-히 길-게 들여다 보게 됩니다.

말코손바닥사슴
@송현정 오 나만의 속도로 책을 읽어나가고 계시는군요!
맞아요. 칼 세이건의 개인 이야기도 드문드문 있죠. '나의 이야기'를 했다가, '역사 이야기'를 했다가, '우주 이야기'를 했다가, '인물 이야기'를 하는데 이 분절적으로 보이는 주제들이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게 가이드해주는 맛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문장과 문장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의 폭넓은 격차는 논리적 구성을 넘어서 설득력으로 가닿는 것 같구요. 최근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등으로 다양한 과학교양서 집필 형식이 주목받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요, '개인회고'를 섞은 혼합형 논픽션이죠.. <면역에 관하여> <랩걸> 등을 보아도 지식교양서에 '마이스토리'를 적절하게 첨언하는 것, 즉 과학사 / 자기서사 / 철학적 통찰을 깊이 결부시킨 글쓰기가 영미권 도서에 조금 더 도드라지는 것 같습니다.

외계가나디
첫 독서 모임을 시작하며 코스모스의 서문부터 목차 1까지 읽었습니다. 평소 우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인데요, 전공은 천문학과 전혀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지만 다음생의 꿈이 천문학자일 만큼 우주를 사랑합니다.(그렇지만 아는 건 없습니다...) 코스모스 자체가 인문학 도서로도 유명하고 필독서로 많이 알려진 책인데 쉽게 도전하지 못 했던 것 같습니다. 두께 때문인지, 그냥 조금 지루할 것 같은 인상이었나봅니다. 쏙에서 제시한 리워드에 눈이 돌아 이참에 한 번 읽어보자, 하고 신청한 것 인데요. 첫 장을 읽고 든 생각은... '내가 바라던 내용이 바로 이거다!'였습니다. 뒤로 갈 수록 어려운 내용이 많아지겠지만 좋은 구절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보고 싶습니다. 원래 독서를 하며 좋았던 구절에 인덱스를 붙여 두는데 첫 장부터 인덱스를 마구마구 붙이고 있습니다. 너무 좋아서 머리를 빡빡 치며 읽었어요...
행성이나 별이나 은하를 전형적인 곳이라 할 수 없는 까닭은 코스모스의 대부분이 텅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에서 일반적인 곳이라 할 만한 곳은 저 광대하고 냉랭하고 어디로 가나 텅 비어 있으며 끝없는 밤으로 채워진 은하 사이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참으로 괴이하고 외로운 곳이라서 그곳에 있는 행성과 별과 은하 들이 가슴 시리도록 귀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코스모스의 어느 한구석을 무작위로 찍는다고 했을 때 그곳이 운 좋게 행성 바로 위나 근처일 확률은 10⁻³³이다. 우리가 살면서 일어날 확률이 그렇게 낮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 일에 매혹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p.40
이런 사실이 제가 우주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평소 갖고 있던 불안과 걱정이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이 되더라구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확률로 지구에서 태어난 우리가 하루하루를 걱정으로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인류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세상이 훨씬(으로도 표현이 부족하지만)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큰 설렘을 주는 것 같습니다. 여긴 우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일 듯 하여 신나게 적어보았습니다...

말코손바닥사슴
@외계가나디 학생이시군요! 꼭 저희 리워드까지 신청해주세요 :)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 이 모든 앎의 시작점일 테니 너무나 좋은 출발선에 서 계시는 것 같아요. '내가 바라던 내용이 바로 이거다!'라니 구체적 감상들이 더 궁금해집니다. 그러게요 책의 디자인이 워낙 화려한 시대이다 보니, 출간된 지 40년 된 코스모스의 굳건한 '외양'이 우리에게 주는 선입견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검은 바탕에 두꺼운 책이 주는 위압감에 선뜻 큰마음을 먹기 어려운 지점 이 있어요. 머리를 '빡빡'치며 읽으셨다는 대목 읽다가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인덱스 부분 꼭 알려주십시오!
말씀하신 대로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끼리 지지고 볶고, 미워하고, 갈등하는 모든 상황들을 어쩐지 관조하게 되는 것 같아요. 넓은 시야에서 작디작은 우리의 상황을 조감하면 서로를 해치는 방식의 생존법이 얼마나 조야한 생각인지 성찰하게 됩니다. 물론 책 읽는 순간에만 반짝, 마음이 넓어졌다가 책을 덮고 일상을 살아가면 다시 이런 제 마음도 옹졸해지는 순간이 반복되지만요. 코스모스 전체를 상상할수록, 우리 자신을 더 깊숙이 이해하게 되는 역설적 순간도 재밌습니다. 또 신나게 감상을 적어주셔요. 기다리겠습니다 :)

바닷가소년
저는 이미 2번 코스모스를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울컥울컥하여 울면서 읽었어요.
제 좌우명이 코스모스에 나온 크리스티언 하위헌스의 문장을 따왔는데요,
"과학은 나의 종교이고 세계는 나의 조국이다"입니다.
3독은, 올 초 원서로 읽기 시도를 하다가 포기했는데 함께 읽기 모임을 시작하며 다시 원서로 도전 해봐야겠습니다. 이틀 늦었지만 이제 시작합니다!

말코손바닥사슴
@바닷가소년
반갑습니다 :) 프로필에도 저 좌우명을 써놓으셨네요! 전혀 늦지 않으셨어요. 삼독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원문이 궁금한 문장이 있습니다!
<코스모스를 정관靜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한국어판 서문, 책의 가장 첫 쪽에 따로 발췌문으로 실려 있고, 본문 36쪽에도 있는 문장인데요. '정관하다'라는 동사가 참 생소해서 찾아봤었어요. '정관하다'의 사전적 정의가 <『철학』 무상한 현상계 속에 있는 불변의 본체적·이념적인 것을 심안(心眼)에 비추어 바라보다> 더군요. 원서의 문장이 궁금해지면서, 번역가께서 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까지 문득 궁금해졌어요.
바닷가소년
Our feeblest contemplations of the Cosmos stir us—there is a tingling in the spine, a catch in the voice, a faint sensation, as if a distant memory, of falling from a height.
아무래도 이 문장을 옮기며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contemplations를 정관으로 옮긴 이유에 관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1. 번역자인 홍승수 선생님이 옛날분임
2. 고학 력자임
=> 1970~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사회 전반적으로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 하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들었던 단어를 적어놓으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해당 원문 말고도 다른 부분도 좋게 말하면 고풍스럽고, 나쁘게 말해서는 고루하게 옛 언어풍으로 번역하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해당 번역이 마음에 들고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책 전반적으로도요!

말코손바닥사슴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지성에 관한 한 우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끝없는 무지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코스모스』 36쪽 토마스 헉슬리 아포리즘 중에서 ,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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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오호 감사합니다.
feeblest contemplations -> 희미한 사색, 약한 정관, 이군요. 저도 홍승수 선생님의 고풍스러운 번역이 참 좋습니다. (그 밖에 덧붙여주신 분석에도 공감합니다 ㅎㅎ)
원서에서 찾아주신 원문을 거칠게 직역하면 해당 문장은
[코스모스에 대한 "가장 미약한 사색"은 우리를 휘젓는다, 전율시킨다] 에 가까워 보여요.
코스모스라는 거대한 실재가 주는 에너지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약간의 의식적인 자극만 가해도 - 사색은 사색인데 우주에 대해 약주 약간의 사색만 해도 - 인간이라면 누구나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의미로도 읽힙니다.
-------- (원문)
코스모스를 정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만다.
Our feeblest contemplations of the Cosmos stir us—there is a tingling in the spine, a catch in the voice, a faint sensation, as if a distant memory, of falling from a height.
--------
708쪽 옮긴이 후기를 보니, 처음 번역 의뢰를 받으셨을 때 이미 출간된 지 20년이 된 책이었기에 주저하셨다는 대목이 있더라구요. (이전 판본은 서광운 번역가의 '우주') 게다가 이 책은 '코스모스에서 인간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밝혀내는 데 초첨이 맞춰져 있고, 과학뿐 아니라 서양철학, 동양사상, 현대사회학, 정치심리학 등의 지식이 두루 필요했기에 코스모스 책의 번역은 <맨발로 가시밭길 걷기>였다고 묘사하셨어요. 고생이 느껴집니다 ㅎㅎㅎ
좀 더 홍승수 선생님을 파고들다 보니까 서울대 뉴스의 짧은 글을 발견했는데요. https://www.snu.ac.kr/snunow/snu_story?md=v&bbsidx=79776
칼 세이건을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인'이라고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더라구요.
아래는 홍승수 선생님이 정리한 코스모스의 저술 목적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세이건이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은, 우주와 생명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일반 대중에게 단순히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지구 문명의 미래를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고민하게 하는 데 있었다. 이 과정에서 천문학과 생물학의 지식이 지렛대의 구실은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저술 목적을 모두 달성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세이건은, 과학 뿐 아니라 신화, 종교, 역사, 정치, 심리, 군사, 생태환경 등을 아우르는 방대하고 다양한 지식을 이 책에 총 동원했다."
GoHo
저는 해당 부분을 한자 어 그대로 이해했습니다..
깊이나 강도, 강약 등이 없는 무념무상무음의.. 고요..
스스로가 그 고요의 상태가 되어 바라보는.. 마주하는..
생각만으로도 압도 되는 것 같네요..

말코손바닥사슴
@GoHo
깊이나 강도, 강약이 없는 무념무상무음의 고요 = 정관하다, 좋네요.
어제 저녁은 정말 너무 추웠는데요. 그래도 달을 슬쩍 보면서 '정관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려봤습니다. 고요하게 깊은 눈으로 바라보다, 라는 의미를 곱씹으며 언어를 써먹어본 것이죠. 하지만 이내 추워서 종종걸음으로 빠른 귀가..
GoHo
춥습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심안心眼으로..ㅎ

권인
책의 제목인 코스모스가 무슨 뜻인지,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를 대하는 자세가 어떠한지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코스모스 (미지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하는 것에서 깊은 울림을 느낀다는 걸 보니 칼 세이건은 미지의 것을 알아내고자 하는 열망이 무척 강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고난 과학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코스모스 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 靜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이 미지 未知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저/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2023, p. 36
"코스모스 Cosmos는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며 카오스 Chaos에 대응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내포한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저/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2023, p. 56
그리고 '코스모스'가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내포한다는 점은 아래 부분에서도 나타납니다.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은 곧 나와 타자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역사학에 더 가깝다.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잘 알아야 하고, 그것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야만 한다. [...] 그러나 생물학과 역사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타자 他者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저/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2023, p. 103

말코손바닥사슴
@권인 언급해주신 부분은 이 책을 시작할 때, 독서의 방향성을 은근하면서도 분명하게 제시하는 방향키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각자가 아는 것이 전부인양 말하는 태도가 어느새 시대적 대세로 자리잡았기에, 앎에 대한 겸양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캠페인으로 다가옵니다. 40년이 지났으나 시의성이 느껴지네요.
'미지의 세계'를 마주함 =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
충분히 곱씹었다고 생각한 문장인데, 다시 새로워졌습니다.
책을 읽고 한 줄 한 줄에 담긴 정보를 머리에 꽉꽉 담아도 결국 우리의 앎은
드넒은 코스모스의 바다에서 아주 작은 점에 머물 뿐이겠죠.
그것을 마주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칼 세이건은 거듭 강조하는데.
'과학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과학인'으로서
'어려운 것을 쉽게' 전달하면서 나름의 문화적 흥행을 주도한 아이코닉한 '유명인'으로서
저 태도를 널리 퍼뜨리는 게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역설적으로 보면 앎을 둘러싼 오만, 이 눈에 밟혔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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