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미 2번 코스모스를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울컥울컥하여 울면서 읽었어요.
제 좌우명이 코스모스에 나온 크리스티언 하위헌스의 문장을 따왔는데요,
"과학은 나의 종교이고 세계는 나의 조국이다"입니다.
3독은, 올 초 원서로 읽기 시도를 하다가 포기했는데 함께 읽기 모임을 시작하며 다시 원서로 도전 해봐야겠습니다. 이틀 늦었지만 이제 시작합니다!
코스모스, 이제는 읽을 때가 되었다!
D-29
바닷가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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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외계가나디님의 대화: 첫 독서 모임을 시작하며 코스모스의 서문부터 목차 1까지 읽었습니다. 평소 우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인데요, 전공은 천문학과 전혀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지만 다음생의 꿈이 천문학자일 만큼 우주를 사랑합니다.(그렇지만 아는 건 없습니다...) 코스모스 자체가 인문학 도서로도 유명하고 필독서로 많이 알려진 책인데 쉽게 도전하지 못 했던 것 같습니다. 두께 때문인지, 그냥 조금 지루할 것 같은 인상이었나봅니다. 쏙에서 제시한 리워드에 눈이 돌아 이참에 한 번 읽어보자, 하고 신청한 것 인데요. 첫 장을 읽고 든 생각은... '내가 바라던 내용이 바로 이거다!'였습니다. 뒤로 갈 수록 어려운 내용이 많아지겠지만 좋은 구절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보고 싶습니다. 원래 독서를 하며 좋았던 구절에 인덱스를 붙여 두는데 첫 장부터 인덱스를 마구마구 붙이고 있습니다. 너무 좋아서 머리를 빡빡 치며 읽었어요...
행성이나 별이나 은하를 전형적인 곳이라 할 수 없는 까닭은 코스모스의 대부분이 텅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에서 일반적인 곳이라 할 만한 곳은 저 광대하고 냉랭하고 어디로 가나 텅 비어 있으며 끝없는 밤으로 채워진 은하 사이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참으로 괴이하고 외로운 곳이라서 그곳에 있는 행성과 별과 은하 들이 가슴 시리도록 귀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코스모스의 어느 한구석을 무작위로 찍는다고 했을 때 그곳이 운 좋게 행성 바로 위나 근처일 확률은 10⁻³³이다. 우리가 살면서 일어날 확률이 그렇게 낮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 일에 매혹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p.40
이런 사실이 제가 우주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평소 갖고 있던 불안과 걱정이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이 되더라구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확률로 지구에서 태어난 우리가 하루하루를 걱정으로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인류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세상이 훨씬(으로도 표현이 부족하지만)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큰 설렘을 주는 것 같습니다. 여긴 우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일 듯 하여 신나게 적어보았습니다...
@외계가나디 학생이시군요! 꼭 저희 리워드까지 신청해주세요 :)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 이 모든 앎의 시작점일 테니 너무나 좋은 출발선에 서 계시는 것 같아요. '내가 바라던 내용이 바로 이거다!'라니 구체적 감상들이 더 궁금해집니다. 그러게요 책의 디자인이 워낙 화려한 시대이다 보니, 출간된 지 40년 된 코스모스의 굳건한 '외양'이 우리에게 주는 선입견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검은 바탕에 두꺼운 책이 주는 위압감에 선뜻 큰마음을 먹기 어려운 지점 이 있어요. 머리를 '빡빡'치며 읽으셨다는 대목 읽다가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인덱스 부분 꼭 알려주십시오!
말씀하신 대로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끼리 지지고 볶고, 미워하고, 갈등하는 모든 상황들을 어쩐지 관조하게 되는 것 같아요. 넓은 시야에서 작디작은 우리의 상황을 조감하면 서로를 해치는 방식의 생존법이 얼마나 조야한 생각인지 성찰하게 됩니다. 물론 책 읽는 순간에만 반짝, 마음이 넓어졌다가 책을 덮고 일상을 살아가면 다시 이런 제 마음도 옹졸해지는 순간이 반복되지만요. 코스모스 전체를 상상할수록, 우리 자신을 더 깊숙이 이해하게 되는 역설적 순간도 재밌습니다. 또 신나게 감상을 적어주셔요. 기다리겠습니다 :)


말코손바닥사슴
바닷가소년님의 대화: 저는 이미 2번 코스모스를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울컥울컥하여 울면서 읽었어요.
제 좌우명이 코스모스에 나온 크리스티언 하위헌스의 문장을 따왔는데요,
"과학은 나의 종교이고 세계는 나의 조국이다"입니다.
3독은, 올 초 원서로 읽기 시도를 하다가 포기했는데 함께 읽기 모임을 시작하며 다시 원서로 도전 해봐야겠습니다. 이틀 늦었지만 이제 시작합니다!
@바닷가소년
반갑습니다 :) 프로필에도 저 좌우명을 써놓으셨네요! 전혀 늦지 않으셨어요. 삼독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원문이 궁금한 문장이 있습니다!
<코스모스를 정관靜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한국어판 서문, 책의 가장 첫 쪽에 따로 발췌문으로 실려 있고, 본문 36쪽에도 있는 문장인데요. '정관하다'라는 동사가 참 생소해서 찾아봤었어요. '정관하다'의 사전적 정의가 <『철학』 무상한 현상계 속에 있는 불변의 본체적·이념적인 것을 심안(心眼)에 비추어 바라보다> 더군요. 원서의 문장이 궁금해지면서, 번역가께서 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까지 문득 궁금해졌어요.

말코손바닥사슴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지성에 관한 한 우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끝없는 무지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코스모스』 36쪽 토마스 헉슬리 아포리즘 중에서 ,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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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소년
말코손바닥사슴님의 대화: @바닷가소년
반갑습니다 :) 프로필에도 저 좌우명을 써놓으셨네요! 전혀 늦지 않으셨어요. 삼독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원문이 궁금한 문장이 있습니다!
<코스모스를 정관靜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한국어판 서문, 책의 가장 첫 쪽에 따로 발췌문으로 실려 있고, 본문 36쪽에도 있는 문장인데요. '정관하다'라는 동사가 참 생소해서 찾아봤었어요. '정관하다'의 사전적 정의가 <『철학』 무상한 현상계 속에 있는 불변의 본체적·이념적인 것을 심안(心眼)에 비추어 바라보다> 더군요. 원서의 문장이 궁금해지면서, 번역가께서 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까지 문득 궁금해졌어요.
Our feeblest contemplations of the Cosmos stir us—there is a tingling in the spine, a catch in the voice, a faint sensation, as if a distant memory, of falling from a height.
아무래도 이 문장을 옮기며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contemplations를 정관으로 옮긴 이유에 관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1. 번역자인 홍승수 선생님이 옛날분임
2. 고학력자임
=> 1970~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사회 전반적으로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 하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들었던 단어를 적어놓으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해당 원문 말고도 다른 부분도 좋게 말하면 고풍스럽고, 나쁘게 말해서는 고루하게 옛 언어풍으로 번역하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해당 번역이 마음에 들고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책 전반적으로도요!

말코손바닥사슴
오호 감사합니다.
feeblest contemplations -> 희미한 사색, 약한 정관, 이군요. 저도 홍승수 선생님의 고풍스러운 번역이 참 좋습니다. (그 밖에 덧붙여주신 분석에도 공감합니다 ㅎㅎ)
원서에서 찾아주신 원문을 거칠게 직역하면 해당 문장은
[코스모스에 대한 "가장 미약한 사색"은 우리를 휘젓는다, 전율시킨다] 에 가까워 보여요.
코스모스라는 거대한 실재가 주는 에너지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약간의 의식적인 자극만 가해도 - 사색은 사색인데 우주에 대해 약주 약간의 사색만 해도 - 인간이라면 누구나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의미로도 읽힙니다.
-------- (원문)
코스모스를 정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만다.
Our feeblest contemplations of the Cosmos stir us—there is a tingling in the spine, a catch in the voice, a faint sensation, as if a distant memory, of falling from a height.
--------
708쪽 옮긴이 후기를 보니, 처음 번역 의뢰를 받으셨을 때 이미 출간된 지 20년이 된 책이었기에 주저하셨다는 대목이 있더라구요. (이전 판본은 서광운 번역가의 '우주') 게다가 이 책은 '코스모스에서 인간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밝혀내는 데 초첨이 맞춰져 있고, 과학뿐 아니라 서양철학, 동양사상, 현대사회학, 정치심리학 등의 지식이 두루 필요했기에 코스모스 책의 번역은 <맨발로 가시밭길 걷기>였다고 묘사하셨어요. 고생이 느껴집니다 ㅎㅎㅎ
좀 더 홍승수 선생님을 파고들다 보니까 서울대 뉴스의 짧은 글을 발견했는데요. https://www.snu.ac.kr/snunow/snu_story?md=v&bbsidx=79776
칼 세이건을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인'이라고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더라구요.
아래는 홍승수 선생님이 정리한 코스모스의 저술 목적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세이건이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은, 우주와 생명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일반 대중에게 단순히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지구 문명의 미래를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고민하게 하는 데 있었다. 이 과정에서 천문학과 생물학의 지식이 지렛대의 구실은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저술 목적을 모두 달성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세이건은, 과학 뿐 아니라 신화, 종교, 역사, 정치, 심리, 군사, 생태환경 등을 아우르는 방대하고 다양한 지식을 이 책에 총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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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
책의 제목인 코스모스가 무슨 뜻인지,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를 대하는 자세가 어떠한지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코스모스 (미지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하는 것에서 깊은 울림을 느낀다는 걸 보니 칼 세이건은 미지의 것을 알아내고자 하는 열망이 무척 강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고난 과학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코스모스 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정관 靜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이 미지 未知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저/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2023, p. 36
"코스모스 Cosmos는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며 카오스 Chaos에 대응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내포한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저/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2023, p. 56
그리고 '코스모스'가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내포한다는 점은 아래 부분에서도 나타납니다.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은 곧 나와 타자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역사학에 더 가깝다.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잘 알아야 하고, 그것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야만 한다. [...] 그러나 생물학과 역사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타자 他者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저/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2023, p.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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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정
331페이지를 읽고 있습니다. '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아기의 웃음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 정도 그럴듯한 답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일지... 사는게 바빠서일지, 이런 자연스러운 질문에서 멀어진 채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큰 부분을 비워둔 채 살고 있는 건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어요. (이런 질문이 여전히 자연스러운 사람이 학자가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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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슬
저도 참여해볼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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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도도슬님의 대화: 저도 참여해볼래요 :)
@도도슬 환영합니다~! 완독 챌린지에 대한 공지는
https://soak.so/doscience/challenge/2
이곳에서 더 보실 수 있구요.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박힌 문장이나 떠오르는 잡감을 자유로이 남겨주셔요!

말코손바닥사슴
송현정님의 대화: 331페이지를 읽고 있습니다. '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아기의 웃음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 정도 그럴듯한 답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일지... 사는게 바빠서일지, 이런 자연스러운 질문에서 멀어진 채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큰 부분을 비워둔 채 살고 있는 건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어요. (이런 질문이 여전히 자연스러운 사람이 학자가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하하.)
@송현정
그러게요! 한가로운 몽상이 사치로 느껴질 만큼, 일상에 쫓길 때 특히 그런 허전함이 밀려오는 것 같아요. 그래도 코스모스를 읽으니 밤산책을 하다가 달이나 별을 보면 조금 더 물끄러미 멍~하게 보게 되더라구요. 질문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거의 같은 물질로 이루어졌네' '나는 코스모스에서 나왔네' 하는 멍 때림의 시간.
'별이란 무엇인가?' 하는 아주 일상적이고도 근본적인 질문. 앞으로 저희도 이런 질문을 가까이 하면서 살아보자구욧.. (덧붙여서, '아기의 웃음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표현이 참 좋았어요. 까르르 하고 웃는 소리의 자연스러움.)
달하루
코스모스 감상기록 1
[ 8쪽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많이 자라 코스모스와 멀리 떨어진 지 오래됐다. 이제 코스모스는 우리의 일상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별개의 세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학은 이와는 아주 다른 우주의 실상을 또한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주는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황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은 결코 아니다.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이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가 아니다.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돼 있다.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으며 인류의 장차 운명도 코스모스와 길게 관련돼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 있었던 대사건들뿐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까지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기원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우주적 관점에서 본 인간의 본질과 만나게 될 것이다. ]
그동안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었다. 그 자체로 좋고 즐거웠다. 문제는 소설만 많이 읽다 보니 내 안의 감각이 어느 한쪽으로만 예민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철학이나 사회과학, 에세이도 탐독해보았지만, 이미 한 방향으로 치우친 감각에 균형을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코스모스’를 읽으며 비로소 나에게 필요했던 감각을 찾은 듯한 기분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뉘앙스와 분위기, 의도 같은 문학적 요소에 주로 에너지가 쏠려 있었는데, 과학서를 통해 사실과 인과, 시행착오처럼 확인 가능한 감각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문학에서 발견했던 깨달음이나 주제가 시적 수사나 비유가 아니라 과학과도 통하는 것임을 확인하면서, 마치 귀로만 듣던 것을 눈으로 다시 보고, 눈으로 보던 것을 손으로 만져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10쪽 우리는 지나가는 말로, 대중의 무관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무언가 해야겠다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대중의 무관심은 그대로 둔 채 과학자들끼리, 또는 이 가치를 아는 사람들끼리만 우주의 기원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굳이 대중의 무관심까지 해결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산이나 탐사 추진을 위해 일정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서였을까. 이 질문은 다시 나에게로 이어졌다. 나는 왜 문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무관심을 무시한 채 혼자 연구하지 못하고, 문학의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알리고 싶어할까. 그렇게 연결해 보니 과학자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되었다. 그들이 대중의 무관심에 무관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과 거리가 멀던 나도 이 책을 통해 우주를 조금은 그려볼 수 있었던 것 같다.
[7쪽 인간이 여러 세대에 걸쳐 부지런히 연구를 계속한다면, 지금은 짙은 암흑 속에 감춰져 있는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곳에 빛이 비쳐 숨어 있는 진리의 실상이 드러날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40쪽 지금은 수많은 탐험대가 지구의 구석구석을 이미 다 거쳐 간 후다. 신대륙도, 잃어버린 땅도 지구에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황량하고 외딴 지역이라도 찾아가 탐사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환경에서도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는 인간이 과학 기술을 이용해 우주로 과감히 나아가 지구 바깥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 위대한 시대다. 자신들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던 지구를 바깥에서 내려다보는 기쁨은 얼마나 큰가?]
7쪽에서 암흑 속 우주에 빛이 비쳐 진리가 드러나는 장면을 상상하며 기대하다가, 40쪽의 신대륙 발견 장면을 떠올리며 갑자기 두려워졌다. 우주의 실상을 밝히고 이해하게 되는 순간, 인간은 과거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처럼 착취하고 학살하고 빼앗지는 않을까. ‘완전히 이해한다’와 ‘완전히 정복한다’가 이렇게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주의 실상이 드러나는 일이 과연 마냥 기쁜 일일 수 있을까.
과거를 배울 수 있고 역사를 기억할 수 있다면, 신대륙 발견과 우주의 실상 발견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저자처럼, 암흑 속 우주로 내딛는 첫걸음을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기뻐할 수 있을 텐데.

말코손바닥사슴
[쏙─SOAK] 리워드를 신청하세요!
@땅상어 @송현정 님.
1기 모임에서 20건 이상의 활발한 독서대화에 참여해주셨기 때문에
‘완독 챌린지’ 완수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리워드를 신청해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1wWHQG11mOhLPAUo3B05FzT4dTTWGfSdCmpVXI0y8N4c/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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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하루
송현정님의 대화: 331페이지를 읽고 있습니다. '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아기의 웃음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같은 질 문을 반복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 정도 그럴듯한 답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일지... 사는게 바빠서일지, 이런 자연스러운 질문에서 멀어진 채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큰 부분을 비워둔 채 살고 있는 건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어요. (이런 질문이 여전히 자연스러운 사람이 학자가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하하.)
제 경우에는 밤하늘의 별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없어 '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조차 생각 못 했던 것 같아요. 어쩌다 우연히 밤하늘에서 별 하나 발견했는데, 마침 시간이 주어져 그 별을 가만히 바라보게 되었을 때 많은 상념과 감정과 질문이 떠오르게 되더라고요. 코스모스 읽는 기간 동안, 별이 잘 보이는 곳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기의 웃음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라는 비유가 참 좋네요.
GoHo
말코손바닥사슴님의 대화: 오호 감사합니다.
feeblest contemplations -> 희미한 사색, 약한 정관, 이군요. 저도 홍승수 선생님의 고풍스러운 번역이 참 좋습니다. (그 밖에 덧붙여주신 분석에도 공감합니다 ㅎㅎ)
원서에서 찾아주신 원문을 거칠게 직역하면 해당 문장은
[코스모스에 대한 "가장 미약한 사색"은 우리를 휘젓는다, 전율시킨다] 에 가까워 보여요.
코스모스라는 거대한 실재가 주는 에너지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약간의 의식적인 자극만 가해도 - 사색은 사색인데 우주에 대해 약주 약간의 사색만 해도 - 인간이라면 누구나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의미로도 읽힙니다.
-------- (원문)
코스모스를 정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만다.
Our feeblest contemplations of the Cosmos stir us—there is a tingling in the spine, a catch in the voice, a faint sensation, as if a distant memory, of falling from a height.
--------
708쪽 옮긴이 후기를 보니, 처음 번역 의뢰를 받으셨을 때 이미 출간된 지 20년이 된 책이었기에 주저하셨다는 대목이 있더라구요. (이전 판본은 서광운 번역가의 '우주') 게다가 이 책은 '코스모스에서 인간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밝혀내는 데 초첨이 맞춰져 있고, 과학뿐 아니라 서양철학, 동양사상, 현대사회학, 정치심리학 등의 지식이 두루 필요했기에 코스모스 책의 번역은 <맨발로 가시밭길 걷기>였다고 묘사하셨어요. 고생이 느껴집니다 ㅎㅎㅎ
좀 더 홍승수 선생님을 파고들다 보니까 서울대 뉴스의 짧은 글을 발견했는데요. https://www.snu.ac.kr/snunow/snu_story?md=v&bbsidx=79776
칼 세이건을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인'이라고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더라구요.
아래는 홍승수 선생님이 정리한 코스모스의 저술 목적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세이건이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은, 우주와 생명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일반 대중에게 단순히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지구 문명의 미래를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고민하게 하는 데 있었다. 이 과정에서 천문학과 생물학의 지식이 지렛대의 구실은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저술 목적을 모두 달성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세이건은, 과학 뿐 아니라 신화, 종교, 역사, 정치, 심리, 군사, 생태환경 등을 아우르는 방대하고 다양한 지식을 이 책에 총 동원했다."
저는 해당 부분을 한자어 그대로 이해했습니다..
깊이나 강도, 강약 등이 없는 무념무상무음의.. 고요..
스스로가 그 고요의 상태가 되어 바라보는.. 마주하는..
생각만으로도 압도 되는 것 같네요..

말코손바닥사슴
GoHo님의 대화: 저는 해당 부분을 한자어 그대로 이해했습니다..
깊이나 강도, 강약 등이 없는 무념무상무음의.. 고요..
스스로가 그 고요의 상태가 되어 바라보는.. 마주하는..
생각만으로도 압도 되는 것 같네요..
@GoHo
깊이나 강도, 강약이 없는 무념무상무음의 고요 = 정관하다, 좋네요.
어제 저녁은 정말 너무 추웠는데요. 그래도 달을 슬쩍 보면서 '정관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려봤습니다. 고요하게 깊은 눈으로 바라보다, 라는 의미를 곱씹으며 언어를 써먹어본 것이죠. 하지만 이내 추워서 종종걸음으로 빠른 귀가..

권인
아는 만큼 보인다, 보이는 것만 안다는 말을 잘 설명해 주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아는 지식의 한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의 한계, 그리고 자신이 보고 자신이 아는 것에 근거하여 그릇된 판단을 하고 그 판단을 맹목적으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세상은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많고 넓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저/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2023, 198쪽
"그러나 눈의 한계 로 인해 인간은 가시광선이라고 하는 아주 좁은 띠 모양의 무지개를 편애하며 살아간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저/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2023, 199쪽
"불충분한 자료에 근거한 추론은 우리를 쉽게 오류의 늪에 빠지게 한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저/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2023, 203쪽
가을문장
'세이건이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은, 우주와 생명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일반 대중에게 단순히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지구 문명의 미래를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고민하게 하는 데 있었다. ' 홍승수 교수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세이건은 과학지식전달책이 아닌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게 하는 인문학책을 쓴것이다.
코스모스는 이토록 빛나는 재능을 가진 사람도 결국 이렇게 외롭고 고단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최고의 천재라고 불리던 뉴턴의 불운했던 삶과 관측을 기똥차게 잘 했던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의 다소 당황스러운 죽음 등의 인류 최고의 과학자 삶도 '위인'화 하지 않고 불운 마저 여과없이 보여준다.
천재성이라는 별빛은 그 자체로 밝지만, 그 빛은 때로는 한 사람의 내면을 눈부시게 비추어 고통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자아실현과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지만, 두 가지가 항상 자연스럽게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꿈꿔야하는 것은 성취와 평안을 적절히 조율하여 살아가는 삶일까.
칼 세이건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을 계속 따라가 본다.
유코
1장을 이제 읽었습니다! 쓰여진 지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낯선 단어들도 많고 한자어도 많아 오랜만에 사전도 곁에 두고 읽어보고 있는 중입니다. 문체라는 것이 참으로도 신기한 게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시절에 따라 이렇게나 더 깊이 있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저는 이북으로 읽은 터라 페이지 표시가 어려울 것 같아 문장들로만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칼이 우리 곁을 떠난 다음 행성 지구는 태양을 열 바퀴 돌았고...
-서문
> 10년이 지났다는 말을 이렇게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어휘가 정말 단편적이란 부끄러움을 책을 읽으며 항상 깨닫네요.
인류는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 지구를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주제에 코스모스의 크기와 나이를 헤아리고자 한다는 것은 인류의 이해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키는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1장.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 거대한 우주 앞에 나의 고민은 티끌 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작은 존재에게는 그 티끌이 너무나 큰 문제처럼 다가옵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다시금 해봅니다.
행성 지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푸른 질소의 하늘이 있고 바다가 있고 서늘한 숲이 펼쳐져 있으며 부드러운 들판이 달리는 지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지구는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고 귀한 세상이다.
-1장.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코스모스 하면 떠오르는 문장이기도 한 이 문장을 드디어 제 눈으로 바라본 순간은 마치 이름만 아는 별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네요. 매일 숨 쉬고 살아가는 지구를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들로 표현한 것은 정말 감동적이기까지 하는 문장입니다. 원서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아님 번역가의 아름다운 문장인 것일까요.
칼이 서술하는 아름다운 코스모스의 세계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봅니다!
유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서가에는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라는 천문학자가 쓴 책이 한때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구도 하나의 행성으로서 여타의 행성처럼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으며, 별들이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모두 다 옳았지만 이 사실을 재발견하기까지 인류는 거의 2000여 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 1.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이 문장을 읽으며 과연 그 때에 프톨레마이오스가 아닌 아리스타르코스의 이 의견이 주가 되었고 그 시절부터 지동설에 관한 연구가 이어졌다면 지금의 우주천문학은, 지금의 과학은 얼마나 발전했을지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해 봅니다. 만일 어딘가에 이런 평행세계가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ㅋㅋ 훨씬 더 많이 발전을 했을지, 아님 또 다른 난관에 부딪히며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합니다. 그래도 2000여 년 이라는 세월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싶네요.ㅋㅋ
혹시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라는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아시는 분이 계실까요...! 저는 얼마전에 이 애니메이션을 넷플릭스에서 너무 감명깊게 보았는데요, 천동설을 굳게 믿는 그 세상에서 지동설을 연구한 연구가들의 실화와 픽션을 넘나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며 이 작품이 더욱 진하게 떠오르는 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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