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문장님의 대화: '역사상 네덜란드가 그때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는 없었다. 지혜와 꾀에 의존해서 살아야 했던 이 작은 나라의 외교 노선은 철저한 평화 정책이었다. 그들은 정통에서 벗어난 사조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했다. 마치 1930년대에 나치에게 쫓겨난 유럽 지식인들이 대거 망명해 오는 바람에 톡톡히 덕을 보았떤 미국처럼, 온갖 검열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받던 당시의 유럽 지성인들에게 네덜란드는 문자 그대로 이상향 이었다.
그래서 17세기의 네덜란드는 아인슈타인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의 안식처일 수 있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수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데카르트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 그리고 수학자 들이 홀랜드라는 땅에 그때처럼 넘쳐났던 시대는 아마 없을 것이다.' p.285
'네덜란드 인들은 기술을 존중했으며, 사회 전체가 발명가를 제대로 평가하고 예우하는 분위기였다. 기술의 진보는 지식 추구의 자유가 전제돼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네덜란드가 유럽 출판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외국어 저작물의 번역 출판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 판매가 금지된 서적이라도 네덜란드에서는 출판이 허용됐다. ' p.286
칼세이건은 과학이 번성하고 진리탐구가 꽃피우기 위해 어떤 사회적 문화적 조건이 필요한지를 보여주었다.
천문학의 발전은 단순히 '하늘을 보는 기술'이 아니라, 사상의 자유, 검열의 해체, 국제적 지성의 흐름과 같은 사회적 조건에서 이루어졌다. 과학은 단지 천재들 덕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천재들이 살 수 있는 '환경' 덕분에 일어난 것이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강국이 되고 싶어한다. 우수한 인재를 지원하고 연구개발 생태계를 혁신하고자 여러 정책을 핀다. 하지만 이공계 석박사 인력이 의대로 유출되고 해외로 나가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17세기 네덜란드 처럼 과학자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매력적인 생태계가 조성되기를 바라본다.
@가을문장
과학이 번성하기 좋았던 사회적 문화적 조건으로서
17세기 네덜란드를 끌어온 대목이 저도 참 좋았습니다.
기술을 우대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메이커스를 예우하는
환경 자체의 중요성을 곱씹다 보니,
역사에 이름을 남긴 소수 외에도, 저마다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떠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겠구나.
그리고 서로의 잠재력을 알아봐주는 밝은 눈이 필요하구나.
그런 눈을 키우는 문화가 중요하구나,
이렇게 생각이 뻗어가더라구요.
사상의 자유, 출판의 자유는
혐오의 자유와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가? 라는 식으로
오늘날 새로운 토론거리가 업데이트되곤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의 욕망과 생각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태도를
중시하는 것 같아요.
칼 세이건도 천문대에서 술취한 민원인 전화를 받으면서도
혜성에 대해서 입바른 이야기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죠.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본 것에 대해서 그대로 말할 수밖에 없는
진리 추구자에게 귀를 열어야,
모두가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가는 다음이 있는 것이고요.
새삼스럽게 곱씹게 됩니다. 열린 사회와 발화를 억누르지 않는 태도가
역시나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여기는 어떠한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