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하루님의 대화: 코스모스 감상 기록 7 - [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
퍼시벌 로웰의 전 생애에 걸친 최대 관심사는 화성이었다. 그는 대규모 천문대를 설립하고, 화성 생명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관측과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관측 일지를 보면 망원경 앞에서 수년 동안 이어진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로웰이 화성과의 평생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도 스키아파렐리 같은 이들이 운하 비슷한 것들을 관측한 적이 있었다. 스키아파렐리는 그것을 ‘가냘픈 홈’이라는 뜻으로 카날리라고 불렀지만, 로웰은 이를 행성을 대규모로 개조하고 있는 지적 생명의 흔적으로 해석했다.
인간은 감정이 개입되면 스스로를 기만하기도 한다는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로웰이 운하라고 믿었던 지형적 특징이, 실제로 화성에 있었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설명을 읽으며,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보인다’는 말이 떠올랐다. 부유했고 누구보다 화성 탐사에 열정을 쏟았지만, 그 열정만큼 그의 한계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여기에 더해 사전 계획에 치우쳐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던 마르스 3호의 실패가, 이후 바이킹 착륙선의 성공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한계를 안고 최선을 다한 누군가의 흔적이 다음 세대, 다음 시도, 다음 사람에게 출발선이 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웃 행성에 지성을 갖춘 존재가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보다 더 인간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지 않겠는가? … 언젠가 화성의 지구화가 실현된다면 화성에 영구 정착해서 화성인이 된 인간들이 거대한 운하망을 건설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바로 우리가 로웰의 화성인인 것이다.”
코스모스가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방식으로 쓰인 하나의 문학 작품처럼 느껴졌다. 앞서 다른 분들의 감상 기록을 보면서는 그 이유가 번역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 문장을 읽고 나서는 저자의 개성이 더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김상욱 교수가 쓴 책들에서도, 내가 미디어를 통해 보아 온 그의 유머와 가치관이 그가 쓴 문장에 그대로 배어 있다고 여겼다.
소설가들은 하나의 부류로 묶지 않고 개별적인 문체와 스타일을 구분해 보면서, 과학자들은 으레 비슷한 특성을 가진 집단으로만 생각해 온 인식의 게으름을 돌아보게 된다. 과학자 역시 각자의 언어와 리듬을 가진 개별적인 저자라는 사실을, 코스모스를 읽으며 새삼 배우는 중이다.
@달하루 @GoHo
오..
"과학자 역시 각자의 언어와 리듬을 가진 개별적인 저자라는 사실을,
코스모스를 읽으며 새삼 배우는 중이다."
라고 쓰신 부분을 읽으며 무릎을 쳤습니다.
과학자-작가의 파이 자체가 작기 때문에
글로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작가'들 중에서도
과학자-작가의 문체/개성을 깊이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게으르게 생각을 중지하는 경향이 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호프 자런, 로빈 윌 키머러, 닐 타이슨 등 특유의 문체를 가진
과학대중서 작가들이 대두되면서 크고 작은 팬층이 생겨나고 있기는 하지만요.
여튼 저도 덕분에 배웁니다 후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