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자연스럽다는 말』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2주차 질문이 올라올 때가 된 것 같아서; 1주차 질문에 대한 생각을 한 번 정리해 봤습니다.
Q1. ‘자연’이라는 말을 걷어내면 합의는 쉬워질까, 어려워질까?
돌아보면 저도 이런 주제 이야기할 때 “원래 그런 거잖아요.” “다 그렇게 사는 거죠.” 이런 식으로 말해 온 게 꽤 많더라고요.
그게 정말 논리적으로 맞아서라기보다, 그동안 익숙하게 배워 온 방식에 기대기 편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다’는 말을 빼고 나면 결국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나 차이가 더 또렷하게 드러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직한 대화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에너지 소모도 크고 합의까지 가는 길은 길어질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Q2. ‘본성/자연’ 프레임이 권리 확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까?
“남자들은 양육을 못 하기는커녕 다른 종과 비교했을 때 더 잘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솔직히 좀 위로가 됐습니다.
아이 양육에 참여하려 하다가도
“남자는 원래 서투르다”,
이런 말을 듣다 보면 괜히 한 발 물러나게 될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남성도 돌봄과 양육에 참여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말은
저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장벽을 낮춰 주는 말이 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Q3. 개인 선택과 공동체 책임의 균형은 어디쯤일까?
저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 선택의 결과가 다른 사람의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의 규칙과 합의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라스카
두번 째 답변이 특별히 와 닿습니다. 자연에 대한 얕은 관찰, 편견에 기반한 관찰에 기대어 발달한 서사가 남자들에 대해 부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 남자들은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공격적이다, 남을 이기는 데만 연연한다 등. 이런 식의 병리화하는 말하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연을 좀 더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서는 아빠들의 육아가 매우 두드러지게 진화했거든요.
열 명의 아이를 둔 찰스 다윈의 아버지로서의 면모 또한 잘 알려져 있지요. 일과 아이 돌봄을 병행하고, 아픈 자식을 위해 먼 걸음을 마다하고 병원에 찾아가거나 딸의 죽음을 오래도록 슬퍼하는 아버지 다윈과 관련된 자세한 일화들은 이곳에서 읽어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darwinproject.ac.uk/people/about-darwin/family-life/darwin-and-fatherhood
우주먼지밍
Q1. 피임, 백신, 가족 형태, 성적 지향처럼 가치가 충돌하는 논의에서 ‘자연’이라는 말을 걷어내면 합의는 쉬워질까요, 아니면 더 어려워질까요? 그 빈자리를 어떤 기준으로 채워야 할까요?
: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듯 ‘자연스러움’이란 인간이 각자의 가치 판단을 거친 지극히 정치적이고 주관적이며 변덕스러운 합의입니다. 손쉬운 합의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이 책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어요. 빈자리를 어떤 기준으로 채울 수 있는 ‘단일한 기준이란 없다는 것’, 여러 기준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이 강조하는 내용이 아닐까요?
Q2. ‘본성/자연’이라는 프레임이 돌봄과 권리 확대를 촉진하는 긍정적 변화로도 작용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그 조건은 무엇일까요?
: 그 조건은 ‘본성’, ‘자유’ 라는 인간이 만들어 낸 언어에 대한 전복적인 사고, 기존의 언어 밖에 존재하는 사례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사유, 조사 등의 선행이라고 봅니다. 이 과정을 거쳐 비로소 ‘본성’, ‘자유’가 두터운 의미를 가지게 있을 때, 이 언어와 관련된 논의 속에서 긍정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Q3. 백신, 피임, 그리고 공중 보건처럼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책임이 맞물리는 사안에서 우리는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할까요?
: 최근 무척 인상 깊게 읽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떠오릅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은 반드시 타인(공동체)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요. 그렇다면 타인(공동체)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경계란 어디까지일까요? 너무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끝없이 토론하고 대화하고 이 부단하고 피곤하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어렵게 도달하는 그때의 일시적인 합의점이 균형점이 아닐까 해요. ‘일시적’이라 한 이유는 그다음 대화와 타협을 통해 또 변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세상에 명쾌한 결론, 모두가 만족하는 균형점이란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라스카
자연스러움에 대해 말함으로써, @우주먼지밍 님께서 표현하신대로 명쾌한 결론 혹은 정답이 존재한다는 신기루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신기루를 거두어 냈을 때 마주하는 '명쾌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첫 걸음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밀의 『자유론』을 읽으셨다니! 고문에 번역문인 글임에도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군요. :)
양지
Q1. 피임, 백신, 가족 형태, 성적 지향처럼 가치가 충돌하는 논의에서 ‘자연’이라는 말을 걷어내면 합의는 쉬워질까요, 아니면 더 어려워질까요? 그 빈자리를 어떤 기준으로 채워야 할까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자연스럽다'라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이를 제외하는 것이 가치가 충돌하는 문제들의 합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기준은 사회, 문화적인 합의를 통해 세워 나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공동체에서 각기 다른 기준이 세워질 수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Q2. ‘본성/자연’이라는 프레임이 돌봄과 권리 확대를 촉진하는 긍정적 변화로도 작용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그 조건은 무엇일까요?
'본성/자연' 프레임이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명확하게 정의되고, 나아가 사회적으로 합의된다면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책에서 나온 것처럼 '공격성은 남성의 본성이다' 라는 고정관념 위에 씌워진 의도나 믿음을 자연의 반례들을 통해 걷어낼 수 있습니다. 여성 양육이 자연스럽다는 수많은 고정관념들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아직은 느리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부모의 육아 참여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제도의 수정 보완과 더불어 프레임의 명확한 재설정이 있다면 더욱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3. 백신, 피임, 그리고 공중 보건처럼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책임이 맞물리는 사안에서 우리는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할까요?
가능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되, 사회구성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경우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합니다. 가령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백신을 맞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지만 직종에 따라 의료진이나 교사는 필수 접종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이 달려 있는 사안이므로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의 책임이 우선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라스카
"프래임의 명확한 재설정"에 무릎을 쳤습니다. 여기에는 자연으로부터 얻는 과학적 근거들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말씀하신 공격성의 예라든가 @hugo1boss 님 답변에서처럼 남성의 육아에 대한 부분처럼, 사실 자연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생각해왔던 '인간 본성' 을 다시 볼 기회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내고 또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네요.
Juju
Q1.
'자연'이라는 말이 지워지면, '전통', '믿음','상식'이라는 말로 또 또 가치가 충돌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길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듯, 사람들이 다니면서...많이 다닌 곳에 길이 나는 것 같아요. "옳음과 옳지 않음"이 아닌 그냥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하는것이 그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Q2.
돌봄과 권리 확대의 촉진은 좋은 것일까요? 누구에 대한 돌봄과 어떤 권리의 확대인지 되돌아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당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사람에 따라, 사회에 따라 그리고 문화에 따라 그 기초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여성과 여성성, 남성과 남성성, 인간과 인간성...이러한 생물학적인 차이와 이러한 차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맥락속에서 형성된 "성질들"을 구분을 나누어서 잘 살펴보아야 할 것 같아요.
Q3.
코로나 시기에 개인의 신념에 따라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냥 감기처럼 앓고 넘어가면 되지 않냐며, 굳이 테스트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생명을 잃었고 특히 노인들이 많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저는 백신도 맞고, 테스트도 열심히 해서 양성이 나오면 집에 콕 틀어박혀 있었지요. 요즘은 코로나에 걸려도 테스트를 하고 병가를 낼 것인지는 본인의 결정에 달려 있어요. 결국은 개개인이 놓인 상황과 문화에서 서로 다른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겠죠. 모든 사회가 하나의 똑같은 막대저울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라스카
자연스러움의 말들이 전통, 상식으로 통용된다는 @Juju 님의 지적에 공감합니다. 자연은 여기서 '참고 문헌'이고요. 문제는 자연은 사람보다 훨씬 큰 실체여서 사람이 걸어온 길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은데, 우리는 그 길 위에 서서 자연을 말하니, 결국 우리가 가져다 쓰는 자연이라는 참고 문헌은 그리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두 번째 답변에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의 기초가 사회나 문화에 따라 다르다고 하셨는데요. 우리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가치들의 기초는 없을까, 생각해보다 문득 '자연법'이 생각났어요. 자연법(自然法, 라틴어: ius naturale, lex naturalis, 영어: natural law)은 자연히 존 재해 언제 어디서나 유효한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법칙입니다 (위키피디아 정의.) 이를 자연법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흥미롭습니다.
Q1.
피임, 백신, 가족 형태, 성적 지향처럼 가치가 충돌하는 논의에서 '자연'이라는 말을 걷어내면 합의는 쉬워질까요, 아니면 더 어려워질까요? 그 빈자리를 어떤 기준으로 채워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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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 백신, 가족 형태, 성적 취향과 같은 첨예한 논쟁에서
'자연'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걷어 내는 것은 합의를 쉽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합의가 필요한 영역'과 '침범해서는 안 되는 권리의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피임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생존권에 직결하는 문제이며,
가족 형태와 성적 지향은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입니다.
이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적인 영역이므로, 애초에 사회적 합의나 허락을 구해야 할 사안이 아닙니다.
반면, 백신 거부는 이물질 주입에 대한 의구심과 자연 치유를 믿는다는 그릇된 신념에서 출발하는데,
우리가 백신을 권장해야 하는 이유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안전과 공동체의 생존이라는 공리적 가치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백신 접종은 타인에 대한 책임 같은 것입니다.
가치가 충돌할 때 '자연'을 논거로 삼는 자체가 오류일 뿐이라고 저자가 지적했듯이,
자연이라는 잘못된 기준을 걷어낸 빈자리는 다수결의 폭력적인 '합의'가 아니라,
개인의 존엄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라는 시민 윤리로 채워져야 합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섣불리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라스카
합의라는 게 쉽게, 섣불리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지적에 깊이 공감합니다. 모든 사안에 합의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요. 생식과 관련된 분야는 @비화척성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타인에 해를 끼치지 않는 사적인 영역으로서 굳이 합의가 필요한지부터 생각해봐야 하겠네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생식과 관련된 분야에 대해 '자연스러움'의 언어가 빈번히 적용되는 것을 봅니다.
사이언스북스
안녕하세요. @모임 여러분! 모임지기입니다. : )
다들 깊이 읽어 주시고, 여러분의 귀한 생각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자연스럽다는 말』 같이 읽기 2주차 분량은
3장 ‘자연에는 질서가 있다는 말’부터 5장 ‘여자라서 그렇다는 말’(98쪽)까지입니다.
폐쇄된 대학 캠퍼스에서 ‘필수적인’ 일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되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교정의 눈을 치우고 시설이 상하지 않게 돌보고 기숙사에 남은 학생에게 음식을 제공하며 이 일을 하는 이들이 집과 일터 사이를 오갈 수 있도록 교통 시설을 유지, 운영하는 일. 대학 캠퍼스로 출근할 필요는 없지만 이들이 일하는 동안 가족을 돌봐 주는 일, 자녀가 다니는 학교나 어린이집을 유지, 운영하는 일도 ‘필수적인’ 일에 포함될 것이다. 하루 이틀 쉬어 갈 수 없고 눈이 오든 안 오든 지속되어야만 하는, 필수 불가결의 노동이 하얗게 덮인 세상 위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3장 「자연에는 질서가 있다는 말」 48쪽)
3장은 폭설 속 ‘필수적인 일’ 이야기를 시작으로 ‘핵심 노동’이나 ‘위대한 모성’ 같은 행동이 왜 자연의 이치처럼 취급되는지, 그 당연함 뒤에 어떤 위계와 가치 판단이 숨어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협동 육아는 엄마를 도와주는 육아가 아니다. 말 그대로 협동해서 아이를 키우는 육아다. 엄마나 아빠가 없더라도 — 더 정확히는 생물학적 부모가 양육자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더라도 — 아이의 삶은 그 가능성이 닫히지 않도록 말이다. 따라서 누가 엄마인지, 친모인지 아닌지, 이름 붙이기에 연연하는 육아가 아니다. 양육자의 범위를 유연하게 정의함으로써 양육의 혜택을 최대화한 인간의 협동 육아는, 지난 30만 년에 걸쳐 이루어진 인간 진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4장 「낳아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 82쪽)
4장에서는 사람을 대형 유인원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번식하게 한 요인이 “엄마에게 육아를 전담시키지 않은 것”, 다시 말해 친족과 친구까지 이어지는 협동 육아였음을 보여 줍니다.이를 통해 “낳아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 놓치고 있는, 출산과 양육의 실제 얼굴을 함께 생각하게 합니다.
출산을 앞둔 필자에게 할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있다. “우리 때는 밭에 가서 김맬래, 집에서 아이 볼래 하면 십중팔구 밭에 나가겠다고 했어.” 유독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그런데 요즘 너흰 나갈 밭도 없고 어떡하누.” 하시며 손녀 걱정을 덧붙인 할머니. 증손녀가 태어난 지 몇 달 뒤 세상을 떠나셨다.
(5장 「여자라서 그렇다는 말」83쪽)
5장에서는 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밭일(임금 노동)과 아이 돌보기(가사·돌봄 노동)의 위치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뒤바뀌었는지 돌아봅니다. “여자라서 그렇다”라는 말은 정말 ‘본성’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어 온 사회의 선택이었을까요?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이번 주에도 책을 넘어 우리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눠 보고자 합니다. 아래 질문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눠 주세요.
이번 주 함께 생각해 볼 질문
Q1. 3장에서 ‘핵심 노동’ 이야기를 하면서, 일과 존재에는 위계가 있다는 믿음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현실로 드러나곤 하는데, 여러분의 일상에서는 어떤 예가 있나요? 특히, 3장에서는 본질주의적 사고 (어떤 존재에는 변치않는 속성이 있다는 사고)가 위계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한다고 하는데, 여러분의 예에서도 'X 라서 원래 그냥 그런거야' 식의 사고가 작동한 경우가 있나요?
Q2. 4장은 협동 육아와 ‘아이를 낳지 않은 이들의 육아’를 중요한 장면으로 소개합니다.
여러분에게 ‘부모’나 ‘양육자’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혈연이 아니어도, 나를 키워 주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눠 주실 수 있나요?
Q3. 5장은 밭일과 아이 돌보기를 비교하며 돌봄과 노동의 가치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돌봄 노동(육아, 간병, 집안일 등)은 어떻게 대우받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여자라서,남자라서, 특정 배경을 지니고 있어서” 당연한 일이라는 말을 들었거나, 그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 주세요.
11월 27일(목)까지 첫 번째 답변을 남겨 주세요!
좋았던 문장이나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도 자유롭게 올려 주셔도 좋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즐겁게 읽어가시기를 바라며,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
감사합니다.
우주먼지밍
Q1. 3장에서 ‘핵심 노동’ 이야기를 하면서, 일과 존재에는 위계가 있다는 믿음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현실로 드러나곤 하는데, 여러분의 일상에서는 어떤 예가 있나요?
(Q1-1 질문의 답) 아직 제가 읽은 책들은 극히 미미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분명해지는 것이 있어요. 바로 인류 역사상 모든 것들에는 ‘가치’ 내지는 ‘값어치’가 매겨졌고, 이에 따라 위계가 존재하였다는 것을요.
수렵채집 시절, 사유재산이 생기기 이전, 수렵채집 시절 등 문자로 그 기록이 남겨지지 않은 시절에는 인간 무리가 나름 평등하게 살았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문자발명 이후 인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위계의 기록들, 소수가 다수를 착취하는 기록들, 인간문명 자체가 소수가 다수를 착취한 결과 얻어낸 잉여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저는 매 순간 위계를 의식합니다. 착취의 대상이자 착취하는 대상인 제 존재를 의식합니다.
특히, 3장에서는 본질주의적 사고 (어떤 존재에는 변치않는 속성이 있다는 사고)가 위계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한다고 하는데, 여러분의 예에서도 'X 라서 원래 그냥 그런거야' 식의 사고가 작동한 경우가 있나요?
(Q1-2 질문의 답) 갑자기 저희 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베이비붐 세대이신 저희 아버지는 제가 직장에서 아직도 커피를 타는지 아세요. 제 성별을 바탕으로 직장에서 무슨 중요한 일을 하겠냐며, 제가 일로 힘들다고 하면 여자가 하는 일이 뭐가 힘드냐며 저를 다그치십니다. ㅎㅎ
Q2. 4장은 협동 육아와 ‘아이를 낳지 않은 이들의 육아’를 중요한 장면으로 소개합니다.
여러분에게 ‘부모’나 ‘양육자’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혈연이 아니어도, 나를 키워 주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눠 주실 수 있나요?
(Q2에 대한 답) 여성, 모성 등에 대하여 꾸준히 읽습니다. 제 주위에 존재하는 사랑하는 여성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성과 모성(의 신화), 가부장제, 재생산 폭력 등에 대해 반드시 읽어야 했거든요.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여성들이 일을 위해 도시로 모여들면(즉, 친정과 물리적으로 먼 곳에 떨어져 살게 되면서)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연구가 곳곳에 있습니다. 즉 협동 육아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처한 여성들은 버거운 삶을 버텨내기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됩니다.
한편 저의 주된 양육자는 어머니(아버지는 없습니다) 이루어졌어요.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의 접촉 경험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국민학교를 다녔는데요~ 국민학교를 다니기 전 저는 동네의 또래들과 어울려 살았습니다. ㅎㅎ
부모님은 일에 너무나 바빴고, 아이들은 원래 알아서 크는 것이라 겪고 자란 세대입니다.
Q3. 5장은 밭일과 아이 돌보기를 비교하며 돌봄과 노동의 가치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돌봄 노동(육아, 간병, 집안일 등)은 어떻게 대우받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여자라서, 남자라서, 특정 배경을 지니고 있어서” 당연한 일이라는 말을 들었거나, 그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 주세요.
(Q3에 대한 답) 돌봄 노동에 대한 책을 참 많이 읽었습니다. ‘친정 엄마’의 육아 지원, 등하교 지원 없이 제 친구들은 직장 생활을 버텨내지 못했어요.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참도록 하겠습니다.
“여자라서, 남자라서, 특정 배경을 지니고 있어서”와 관련된 이야기는 제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겪었어요.
우선 어린 시절 저는 제 성별 덕분에 집안 제사에 음식 준비만 거들고 제사에는 참여하지 못했어요. 가부장제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여겨지는 그 지역(지역감정을 일으킬까 봐 언급은 자제하겠습니다)에서 태어난 남성을 아버지로 두고 있습니다. 조부모께서 살아계셨던 시절, 명절에 모이게 되면 성별을 나누어 밥상을 차렸습니다. 당연히 남성의 밥상은 푸짐하고 여성의 밥상은 그 외 남은 것들로 차려지지요.
사회에서는 출신과 성별 학벌로 나누어지는 많은 것들을 겪었네요. 이것도 너무 구구절절해서 언급을 생략하겠습니다. :)
그래서 제가 책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나 봐요. 우리 사회의 온갖 본질주의적 사고, 인간 중심적 사고, 착취의 구조를 언어로 이해하고 싶었어요. 감정의 언어가 아닌 정돈된 언어로요.
라스카
@우주먼지밍 님의 두 번째 답변에서 우리가 잊기 쉬운 또래 친구들의 중요성이 언급되어 반가웠습니다! 책의 5장 "여자라서 그렇다는 말"에서 소개한 해리 할로우 (Harry Harlow) 박사 연구팀의 유명한 원숭이 실험에서도 결국 또래와함께 자라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후속 결과를 내놓았지요. 저도 생각해보면 저를 키운 것은 가족뿐만 아니라 여러 연령의 친구들이기도 했어요.
소또
[2주차 질문]
Q1. 3장에서 ‘핵심 노동’ 이야기를 하면서, 일과 존재에는 위계가 있다는 믿음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현실로 드러나곤 하는데, 여러분의 일상에서는 어떤 예가 있나요? 특히, 3장에서는 본질주의적 사고 (어떤 존재에는 변치않는 속성이 있다는 사고)가 위계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한다고 하는데, 여러분의 예에서도 'X 라서 원래 그냥 그런거야' 식의 사고가 작동한 경우가 있나요?
블루칼라보다 화이트칼라가 학창시절에 더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에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한거다? 그래서 제가 직업군을 고려할 때도 사무직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구요. 하지만 블루칼라 일도 사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일이잖아요. 오히려 일머리가 더 필요한 부분들도 있고. 그런 부분들이 떠오르네요.
Q2. 4장은 협동 육아와 ‘아이를 낳지 않은 이들의 육아’를 중요한 장면으로 소개합니다.
여러분에게 ‘부모’나 ‘양육자’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혈연이 아니어도, 나를 키워 주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눠 주실 수 있나요?
저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랐고 또래 아이들끼리 자주 놀 수 있는 구조였어요. 옆집에 가서 볼풀에 놀았던 기억,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탔던 기억들이 희미하게 남아있네요. 돌아보면 그게 협동육아였을까요. 또 고등학생 때 친구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엄마가 그 친그를 챙기며 먹을거를 갖다줬던 기억들도 남아있어요. 돌이켜보면 그 순간도 협동육아였을지 모르겠네요.
Q3. 5장은 밭일과 아이 돌보기를 비교하며 돌봄과 노동의 가치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돌봄 노동(육아, 간병, 집안일 등)은 어떻게 대우받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여자라서,남자라서, 특정 배경을 지니고 있어서” 당연한 일이라는 말을 들었거나, 그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 주세요.
그래도 이전보다는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아요. 아빠는 "도와주는"거지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니까요. 여자라서/남자라서는 특히 저희 엄마가 많이 쓰는 말인데 "남자들은 눈치가 없다"거나 "남자들은 하나 밖에 못한다, 멀티태스킹이 안된다"라는 말들? 그런 말들을 들을 때 마다 성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는건 옳지 못하다고 얘기하지만 엄마의 경험과 그 시대에서는 그런 말이 당연시되는 것 같아 잘 안고쳐지더라구요.
늦지만 바지런히 따라가는 중입니다. 뭔가 잘 적은건가? 싶네요. 다른 분들 답변도 읽어보고 싶은 질문들이라 2주차 질문 답변들도 시간되면 읽어야 겠네요.
[📚수북탐독]9. 버드캐칭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8. 쇼는 없다⭐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기(첫 시즌 마지막 모임!)[📕수북탐독] 7. 이 별이 마음에 들⭐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6. 열광금지 에바로드⭐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책을 직접 번역한 번역가와 함께~
[도서증정][번역가와 함께 읽기] <꿈꾸는 도서관> <번역가의 인생책> 이평춘 번역가와 『엔도 슈사쿠 단편선집』 함께 읽기<번역가의 인생책> 윤석헌 번역가와 [젊은 남자] 함께 읽기[브릭스 북클럽]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1, 2권 함께 읽기[도서증정][번역가와 함께 읽기] <전차 B의 혼잡>
❄겨울에는 러시아 문학이 제 맛
[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
독서모임에 이어 북토크까지
[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스토리 수련회 : 첫번째 수련회 <호러의 모든 것> (with 김봉석)[책증정] 저자와 함께 읽기 <브루클린 책방은 커피를 팔지 않는다> +오프라인북토크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요리는 배를 채우고, 책은 영혼을 채운다
[밀리의서재]2026년 요리책 보고 집밥 해먹기[책걸상 함께 읽기] #23.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도서 증정] 소설집『퇴근의 맛』작가와 함께 읽기[책증정][1938 타이완 여행기]
12월 18일 오후 8시 라이브채팅 예정!
독자에게 “위로와 질문”을 동시에 던지는 이희영
[도서 증정] 『안의 크기』의 저자 이희영 작가님,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이희영 장편소설 『BU 케어 보험』 함께 읽어요![선착순 마감 완료] 이희영 작가와 함께 신간 장편소설 《테스터》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