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그런지 제가 쓴 댓글이 문장이 여기저기 잘려서 붙여져 있네요.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에서 오류가 난 것 같습니다. 아래 다시 써봅니다).
사회문화적으로 기대되는 행동의 반경이 있고, 그 안에서 일련의 행동들을 수행한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직장 생활은 퍼포먼스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지요. 서로 상처주고 싶지 않다는, 함부로 대하고 싶지 않다는 좋은 뜻도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지나칠 경우 오히려 나 자신으로부터도 소원해질 수 있겠지만요.
"저는 독후감을 쓸 때 일부러 ‘인간 동물’이라는 표현을 의식해서 사용합니다. 좋은 책들 덕분에 제가 그간 얼마나 인간 중심적으로 살아왔는지 깊게 깨달았습니다." 두 번 세 번 다시 읽고 공감합니다. ^^
[사이언스북스/책 증정]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세계, 『자연스럽다는 말』 함께 읽기
D-29

라스카

Alice2023
3장에서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는 말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한 것이 꼭 뛰어나게 진보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말,
인간중심적인 의인화의 위험성 등에 대해 보면서 많이 반성했어요.
그리고 필수 인력이라고 부르는 직종들이 오히려 위험하고 상대적으로 보수는 낮은 그 모순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특히 코로나 19 기간에 고생하신 의료진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지 못하고 박수나 치는 감상적인 토닥거림을 읽으며 그래도 박수를 안 치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 박수를 치더라도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는 있어야 겠구나 하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하이라이트는 "호모 사피엔스로 가는 길" 이라는 삽화였죠. 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있는 너무나도 흔한 삽화인데 여기서는 인간에 가까워질수록 피부색이 밝은 백인 남성에 가깝게 그려진 것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백인남성 중심적인 시각인지 예전에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이 책은 제가 그동안 당연시 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 준다는 점에서 너무 좋은 책인것 같아요.

라스카
진화는 진보가 아닌데도, 그 둘은 너무나 쉽게 혼동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과학 교과서에서는 "호모 사피엔스로 가는 길" 삽화가 사라졌을까요? 대중 문화에서뿐만 아니라 교과서에도 여전히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시선으로 인간의 진화가 그려지고 있다고 하네요. 몇년 전 나온 논문 정보를 공유합니다: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10.1002/evan.21978

Alice2023
논문까지 공유해 주시고 감사합니다. 이런 논의가 되고 있다는 것 만으로 세상이 진보하고 있는 것이겠죠? ㅎㅎ

Alice2023
5장에서는 제가 평소 고민하던 부분이 다뤄져서 특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일하던 워킹맘으로 아이가 15개월때부터 어린이 집에 맡겼는데 회사에서 "아이는 세살까지 엄마와 있는게 중요하다" 라고 말하고 모성애를 강조하면 제가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인 것 같아 굉장히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그 뒤에 숨은 정치 적 경제적 맥락은 몰랐네요. 이 책에서 나오듯이 엄마 만으로도 부족한 것이 육아 입니다.
조부모도 필요하고 아빠도 필요하고 또래 집단과의 관계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접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육아 라는 것인데 저는 그동안 왜 혼자서 힘들어 했을까요. 지금이라도 주변에 육아와 커리어로 고민하는 후배, 친구들에게 그리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르신들에게 꼭 이 이야기를 해 줘야 겠어요.

라스카
네, 왜 굳이 아이는 '세살'까지 그것도 '엄마'와 있어야 할까요? 그 엄마는 누구인 걸까요? 입양을 해서 아이를 키우는 사례를 보면 '생물학적 엄마'여야만 한다는 인식 또한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꾸로 친자식을 아프게 하는 부모들도 있고요.
안타, 왜 굳이 아이는 '세살'까지 그것도 '엄마'와 있어야 할까요? 그 엄마는 누구인 걸까요? 입양을 해서 아이를 키우는 사례를 보면 '생물학적 엄마'여야만 한다는 인식 또한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꾸로 친자식을 아프게 하는 부모들도 있고요.

라스카
흠, 다시 보니 같은 말이 새 문단에 반복되었네요... 왜 이런 오류가 난건지 ^^;

Alice2023
육아는 엄마라는 하나의 고립된 원보다는
공동체라는 동심원 속에서 이루어졌다.
『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이수지 지음
문장모음 보기

Alice2023
6장을 읽으며 남녀 간의 성차가 키에서는 현저하게 나타나지만 그래도 겹치는 구간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외의 심리적 특질은 거의 차이가 없었네요.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자매라도 저것보다는 차이가 많이 나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 남자 답다 여자 답다는 구분도 그냥 약간의 신체적 차이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자본주의의 배경이었을까요. 저는 에전에 회사에서 세번째 손가락과 네번째 손가락의 비율로 여성성 남성성을 구분하던 실험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도 팀원 중 여자분들이 오히려 남성성이 높게 나오고 남자분들의 절반 정도는 여성성이 높게 나왔었거든요. 손가락 비율도 태아기에 엄마 뱃속에서 남성 호르몬 여성호르몬에 노출된 정도에 따른 과학적인 얘기라고 들었는데 그 정도로 겹치는 구간이 있었다는 것이 이제 연결이 되네요.

Alice2023
느리지만 확실하게 근거에 기반해 믿음을 업데이트 하는 과학의 정신은 우리에게 멋지고 또 값진 기회를 선사한다.
『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이수지 지음
문장모음 보기
양지
과학동아 12월호에 자연스럽다는 말 책이 나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공유합니다~


라스카
@양지 님 감사해요. 어렸을 때 열심히 보던 과학동아에 홍보되다니, 두근거립니다. ^^
my쭈
속도가 많이 늦었네요ㅠㅠ
함께읽기 1주차부터 따라가보겠습니다.
Q1. 피임, 백신, 가족 형태, 성적 지향처럼 가치가 충돌하는 논의에서 ‘자연’이라는 말을 걷어내면 합의는 쉬워질까요, 아니면 더 어려워질까요? 그 빈자리를 어떤 기준으로 채워야 할까요?
- 같은 논거도 주장하는 이의 가치관, 선입견을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자연'이라는 말 자체보다는 각자의 편협한 생각이 합의를 어렵게 하는 더 큰 장애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말하듯 '자연이 우리의 선입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열린 텍스트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나와 다른 타인의 주장을 딱 내 생각만큼은 존중하는 태도, 이 안에서 우리의 논의는 발전적일 수 있지 않을까요?
Q2. ‘본성/자연’이라는 프레임이 돌봄과 권리 확대를 촉진하는 긍정적 변화로도 작용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그 조건은 무엇일까요?
- 그간 본성/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는 더 많이, 누군가에게는 더 적게 부여되었던 의무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돌봄 노동에는 더 많은 육체적 힘이 필요하죠. 육체적 힘은 보다 '자연스럽게'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크게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타고난 본성은 돌봄 노동에 적합한 이로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런 식의 의미 부여가 생각의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Q3. 백신, 피임, 그리고 공중 보건처럼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책임이 맞물리는 사안에서 우리는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할까요?
- 개인의 선택도, 공동체의 책임도 모두 중요한 가치들이죠. 둘 사이의 균형을 위해서는 개인의 선택에는 공동체의 무게가, 공동체의 책임에는 개개인의 그러한 동기를 이해하는 포용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my쭈
2주차
Q1. 3장에서 ‘핵심 노동’ 이야기를 하면서, 일과 존재에는 위계가 있다는 믿음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현실로 드러나곤 하는데, 여러분의 일상에서는 어떤 예가 있나요? 특히, 3장에서는 본질주의적 사고 (어떤 존재에는 변치않는 속성이 있다는 사고)가 위계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한다고 하는데, 여러분의 예에서도 'X 라서 원래 그냥 그런거야' 식의 사고가 작동한 경우가 있나요?
- 성별에 따라 이러저러한 특성이 있다는 말을 단정적으로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때때로 남자는 이러해야지, 여자는 이러이러해 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아요. 남자, 여자를 떠나 그냥 개인의 특성으로 말하면 될 일인줄 알면서도, 그러한 생각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생각을 생각없이 쫓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Q2. 4장은 협동 육아와 ‘아이를 낳지 않은 이들의 육아’를 중요한 장면으로 소개합니다.
여러분에게 ‘부모’나 ‘양육자’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혈연이 아니어도, 나를 키워 주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눠 주실 수 있나요?
- 혈연이기는 하지만, 저는 외할머니요. 제가 비교적 어릴 때부터 엄마가 일을 하셔서, 평일의 저를 돌봐주는 일은 주로 외할머니께서 해주셨습니다. 엄마 사랑을 고파할 때도 있었지만, 외할머니의 사랑과 헌신이 엄마가 곁에 없는 시공간을 살뜰히 채워주셨던 것 같습니다.
Q3. 5장은 밭일과 아이 돌보기를 비교하며 돌봄과 노동의 가치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돌봄 노동(육아, 간병, 집안일 등)은 어떻게 대우받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여자라서,남자라서, 특정 배경을 지니고 있어서” 당연한 일이라는 말을 들었거나, 그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 주세요.
- 한국 사회에서 돌봄 노동은 여전히 그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특정한 역할을 가진 이에게 그 돌봄이 더 많이 치우치고 있는 것도 현실인 것 같고요. '자연스럽다는 말'만큼이나 '당연하다는 말' 늘 경계하고 의심해야 하는 말인 것 같아요. 돌봄 노동의 당연한 주체는 없는 것이니까요.

Juju
Q1. 6장성별 고정 관념을 직접 경험한 순간이나, 반대로 깨지는 경험도 좋습니다.
아빠가 마당개를 키우시는데 숫컷 두 마리는 이름이 있고, 암컷 세마리는 이름이 없어요. 아예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듯..저는 직접적인 언어보다는 태도로 이런 경험을 많이 하는편.
Q2. 7장 그 기준은 어디에서 온 것 같나요?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상대도 나와 같은 완벽하고도 부족한 인간이란 존재임을 깨닫는데서 온다고 생각해요.
Q3. 8장 사람을 자연, 다른 동물, 혹은 어떤 '미개한' 존재로서의 타인과 구별하는 일상의 예가 있나요?
저는 오히려 " 동물보다 못한 인간" 으로 특정 동물을 인간과 동등하게 혹은 인간보다 위에 놓으려는 행위들을 보면 화가 나요. ㅂ한 인간이 소유한다고 착각하는 "애완동물" 이 한 인간의 존엄성보다 중요한가요?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식물, 동물 등 자연계와 분명히 구별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인간에 의해서 지정된 " 멸종동물" 을 위해서 그 지역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일들은 빈번하게 일어나죠. 이는 인간이 단지 " 자연" 을 이용해서 자신의 힘과 권력 그리고 가치관을 고집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사이언스북스
안녕하세요. @모임 여러분! 모임지기입니다.
어제는 눈이 많이 내렸는데, 다들 따뜻하고 안전하게 잘 보내셨을까요?
깊어지는 겨울 밤에, 사유를 넓혀주는 『자연스럽다는 말』 함께 읽기도 어느덧 마지막 회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또한, 그믐북클럽 여러분에게만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바로 12월 23일 저녁 7시 느티책방에서 열릴 저자 북토크에 그믐북클럽에 참여해 주신 분들을 무료로 초대하고자 하는데요. 신청 링크도 곧 함께 남겨드릴 테니, 북토크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자연스럽다는 말』을 함께 읽으며 나눠 주신 생각과 경험 덕분에
이 책을 훨씬 더 입체적으로, 그리고 각자의 삶과 닿아 있는 텍스트로 느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읽기 범위는 9장 「(안) 낳는 것이 옳다는 말」 ~ 「나오는 글」(202쪽까지) 입니다.
문제는 인구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자원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과 거기에 깃든 불평등의 구조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구조적인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소득 국가들의 발달이 함께 도모되지 않는다면, 세계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인구 폭발’ 시나리오보다 암울한 디스토피아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문제는 ‘너무 많은 인구’가 아니다.
(9장 「(안) 낳는 것이 옳다는 말」 159쪽)
9장은 ‘세계 인구는 너무 많고’, ‘한국 인구는 너무 적다.’는 두 명제를 나란히 놓고, 이 문제를 자원의 생산·소비 방식과 불평등, 그리고 그 속에 스며 있는 우생학적 시선에서 다시 묻게 합니다. 출산을 개인의 도덕 문제에서 떼어내, 누구의 삶을 존중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선택으로 바라보게 하는 장입니다.
사람과 (사람 아닌) 동물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라며 자신이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당시 통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을 편 다윈이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인종 차별, 여성 혐오와 공명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10장 「자연에 답이 있다는 말」 188쪽)
10장 「자연에 답이 있다는 말」은 인간의 기원을 파고든 진화론의 통찰과 그 언어를 빌려 정당화된 차별의 시선을 동시에 드러내는 장입니다. 과학은 엄연히 인간의 행위이며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은 언제나 역사적 상황과 개인적 조건 아래 놓인 존재이기에, 이 장은 더 다양한 사람이 과학에 참여할 때 비로소 ‘자연의 텍스트’를 더 넓고 공평하게 읽을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펼쳐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채롭고 변화무쌍해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지 않는 것이 자연이다. 게다가 우리 각자의 위치성 때문에, 자연 현상 — 특히 다양성(diversity)과 변이(variation)가 속성인 생명 현상 — 에 내가 믿고 원하는 바를 투사하는 데 그치기 쉽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자연에서, 그리고 때로는 자기 자신과 서로에게서 더 멀어진다. 까마귀에 대해 말할 뿐, 정작 까마귀와 만나지 못한다.
(「나오는 글」 201쪽)
연암 박지원의 까마귀 비유로 시작하는 「나오는 글」은 우리가 자연을 보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색과 의미를 정해 두는 존재임을 상기시키며, 그런 시선이 자연과 우리를 어떻게 멀어지게 하는지 비춥니다. 자연을(그리고 그 안의 우리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자연주의자의 태도를 독자에게 남기며 책을 맺는 글입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이번 회차에서도 우리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눠 보고자 합니다.
아래 질문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 주세요.
Q1. 9장은 ‘인구가 너무 많다’는 걱정과 ‘너무 적다’는 걱정을 한 자리에 함께 올려놓습니다.
한국 사회의 저출생 이야기나 세계 인구 과잉 이야기를 들을 때,
여러분은 어떤 장면이나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그 이야기 속에서 실제로 걱정하는 대상은 인구인가요,
아니면 일자리·주거·돌봄·환경 같은 다른 문제인가요?
또, 아이를 낳지 않거나 늦게 낳는 선택을 두고 “이기적이다/책임 있다” 같은 평가를 들은 적이나 혹은 직접 한 적이 있으신가요?
그 판단은 주로 어떤 “자연스러운 삶의 궤도”를 전제로 하고 있었던 것 같나요?
Q2. 10장은 “자연에 답이 있다.”라는 말의 그늘에 숨은 차별과 권력을 보여 줍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유전자 탓이다” 같은 말을 들었을 때,
한편으론 설득되면서도 또 한편으론 묘하게 불편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 그 말이 잘 설명해 주던 것은 무엇이었고,
반대로 가려 버린 것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셔도 좋을 것 같습습니다.
Q3. 책을 마무리하는 「나오는 글」 제일 마지막의 질문을 다시 던져 보려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자연스럽다고 여길 때, 어떤 행동을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정당화하거나 부정할 때, 우리는 어떤 자연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12월 12일(목)까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이번 마지막 질문에도 편하게 이야기 남겨 주세요.
이 모임이 끝난 뒤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연스럽다는 말”을 조금 천천히, 한 번 더 곱씹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마지막 회차도 즐거운 독서 되세요. :D

Alice2023
Q1. 9장을 읽으며 조금 부끄러웠죠. 전세계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데 왠지 저는 좁은 시각에서 한국 인구가 줄고 있다고 걱정하던 것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 깨달았다고 할까요. 국력은 인구 숫자라고 생각하는 저는 한국 인구가 감소하면 한국의 국력도 낮아질 거고 더 살기 힘들어질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은 세계시민처럼 한국에 이런 사람이 부족하면 어디서 도움을 받고 다 같이 살아가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었네요.
인구가 너무 많거나 적은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경제 성장이 이루어 지고 자원이 분재되는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에 정말 공감했어요. 아이를 낳지 않는 분들을 보고 저는 오히려 책임 있는 판단을 하는 구나 낳으면 어떻게든 크겠지 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신중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책에도 나오듯이 원하는 사람은 출산을 할 수 있고 태어난 아니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사회가 뭘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저출생의 해법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라스카
9장을 멋지게 요약하고 또 이해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Alice2023 님!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비난, 또 한편에서는 아이를 '너무' 많이 낳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 (주로 출산율이 높은 국가를 두고 말할 때). 너무 많고 적음을 따지는 것은 인구 문제의 해법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주먼지밍
[4주차]
Q1. 저는 이 책의 저자 이수지 선생님의 의견에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저는 세계 인구 숫자를 들으면 순식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세계의 인구는 80억을 넘었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우리 지구를 불타고 있다고 표현한다, 학자들은 인류세 시대라는 비공식 학명을 써야 할 정도라고 우려한다. 한편 이 80억 인구가 살아가는 모습은 제각기 다르다. 북반구 백인들이 하루에 쓰는 전기량과 수돗물 양은 남반구의 저개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일 년 치(? 기억이 가물가물해요..)에 해당한다. 이수지 선생님의 말처럼 단순히 인구가 80억이 넘었다가 지구에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80억 인구가 살아가는 방법,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생률이나 저출산이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 자체라 국가 내지는 권력의 필터를 거친 문제 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의 생산 동력이 되어야 할 어린아이들은 태어나지 않는데, 복지 비용이나 타먹고 있는 고령인구는 늘어난다는 해석이 괄호로 쳐져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Q2. 자연에 답이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등등 은 모두 인간의 해석을 거친 극도의 편향성을 가진 한낱 의견일 뿐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더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여러 책들 근처에 서성인 덕분에 과학적이다, 내지는 증명됐다, 증거가 있다 등의 언어로 치장하는 의견들이 얼마나 일시적이고, 위태롭고, 가변적인지 대강을 가지게 되었어요. ㅎㅎ
이 책 <자연스럽다는 말> 은 제가 그간 읽어온 책들을 종합 정리해 주고 있는 그런 책처럼 다가옵니다.
Q3.‘자연스럽다’ 등 주장이나 의견 속에 자연을 들먹이는 사람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를 늘 유념하면서 들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인간이 파악하는 자연이 얼마나 한계 가득하며 인간 중심적인지 이 책도 분명히 깨우쳐 줍니다. 겸손하고 겸허한 태도로 자연을 탐구하지 아니하고, 자연을 그저 본인의 의견 관철을 위한 도구 정도 삼는 사람들의 말잔치에 미혹되지 않게 늘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Alice2023
Q2. 사람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데 "진화론적으로 그렇다"라는 말로 남과 여를 단정할 때
더 이상의 반론이나 여지를 남겨 두지 않는 그 핑계가 가끔 너무 일방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동안 과학이나 의학의 주류는 당연히 중산층 이상의 남성, 대부분은 백인이었고 그들의 제한된 시각에서
제한되 사례로 내린 그 당시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학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많은 과학자, 공학자, 그리고 정치인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