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을 읽으며 남녀 간의 성차가 키에서는 현저하게 나타나지만 그래도 겹치는 구간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외의 심리적 특질은 거의 차이가 없었네요.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자매라도 저것보다는 차이가 많이 나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 남자 답다 여자 답다는 구분도 그냥 약간의 신체적 차이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자본주의의 배경이었을까요. 저는 에전에 회사에서 세번째 손가락과 네번째 손가락의 비율로 여성성 남성성을 구분하던 실험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도 팀원 중 여자분들이 오히려 남성성이 높게 나오고 남자분들의 절반 정도는 여성성이 높게 나왔었거든요. 손가락 비율도 태아기에 엄마 뱃속에서 남성 호르몬 여성호르몬에 노출된 정도에 따른 과학적인 얘기라고 들었는데 그 정도로 겹치는 구간이 있었다는 것이 이제 연결이 되네요.
[사이언스북스/책 증정]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세계, 『자연스럽다는 말』 함께 읽기
D-29

Alice2023

Alice2023
느리지만 확실하게 근거에 기반해 믿음을 업데이트 하는 과학의 정신은 우리에게 멋지고 또 값진 기회를 선사한다.
『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이수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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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
과학동아 12월호에 자연스럽다는 말 책이 나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공유합니다~


라스카
@양지 님 감사해요. 어렸을 때 열심히 보던 과학동아에 홍보되다니, 두근거립니다. ^^
my쭈
속도가 많이 늦었네요ㅠㅠ
함께읽기 1주차부터 따라가보겠습니다.
Q1. 피임, 백신, 가족 형태, 성적 지향처럼 가치가 충돌하는 논의에서 ‘자연’이라는 말을 걷어내면 합의는 쉬워질까요, 아니면 더 어려워질까요? 그 빈자리를 어떤 기준으로 채워야 할까요?
- 같은 논거도 주장하는 이의 가치관, 선입견을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자연'이라는 말 자체보다는 각자의 편협한 생각이 합의를 어렵게 하는 더 큰 장애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말하듯 '자연이 우리의 선입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열린 텍스트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나와 다른 타인의 주장을 딱 내 생각만큼은 존중하는 태도, 이 안에서 우리의 논의는 발전적일 수 있지 않을까요?
Q2. ‘본성/자연’이라는 프레임이 돌봄과 권리 확대를 촉진하는 긍정적 변화로도 작용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그 조건은 무엇일까요?
- 그간 본성/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는 더 많이, 누군가에게는 더 적게 부여되었던 의무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돌봄 노동에는 더 많은 육체적 힘이 필요하죠. 육체적 힘은 보다 '자연스럽게'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크게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타고난 본성은 돌봄 노동에 적합한 이로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런 식의 의미 부여가 생각의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Q3. 백신, 피임, 그리고 공중 보건처럼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책임이 맞물리는 사안에서 우리는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할까요?
- 개인의 선택도, 공동체의 책임도 모두 중요한 가치들이죠. 둘 사이의 균형을 위해서는 개인의 선택에는 공동체의 무게가, 공동체의 책임에는 개개인의 그러한 동기를 이해하는 포용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my쭈
2주차
Q1. 3장에서 ‘핵심 노동’ 이야기를 하면서, 일과 존재에는 위계가 있다는 믿음을 지적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현실로 드러나곤 하는데, 여러분의 일상에서는 어떤 예가 있나요? 특히, 3장에서는 본질주의적 사고 (어떤 존재에는 변치않는 속성이 있다는 사고)가 위계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한다고 하는데, 여러분의 예에서도 'X 라서 원래 그냥 그런거야' 식의 사고가 작동한 경우가 있나요?
- 성별에 따라 이러저러한 특성이 있다는 말을 단정적으로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때때로 남자는 이러해야지, 여자는 이러이러해 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아요. 남자, 여자를 떠나 그냥 개인의 특성으로 말하면 될 일인줄 알면서도, 그러한 생각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생각을 생각없이 쫓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Q2. 4장은 협동 육아와 ‘아이를 낳지 않은 이들의 육아’를 중요한 장면으로 소개합니다.
여러분에게 ‘부모’나 ‘양육자’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혈연이 아니어도, 나를 키워 주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눠 주실 수 있나요?
- 혈연이기는 하지만, 저는 외할머니요. 제가 비교적 어릴 때부터 엄마가 일을 하셔서, 평일의 저를 돌봐주는 일은 주로 외할머니께서 해주셨습니다. 엄마 사랑을 고파할 때도 있었지만, 외할머니의 사랑과 헌신이 엄마가 곁에 없는 시공간을 살뜰히 채워주셨던 것 같습니다.
Q3. 5장은 밭일과 아이 돌보기를 비교하며 돌봄과 노동의 가치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돌봄 노동(육아, 간병, 집안일 등)은 어떻게 대우받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여자라서,남자라서, 특정 배경을 지니고 있어서” 당연한 일이라는 말을 들었거나, 그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 주세요.
- 한국 사회에서 돌봄 노동은 여전히 그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특정한 역할을 가진 이에게 그 돌봄이 더 많이 치우치고 있는 것도 현실인 것 같고요. '자연스럽다는 말'만큼이나 '당연하다는 말' 늘 경계하고 의심해야 하는 말인 것 같아요. 돌봄 노동의 당연한 주체는 없는 것이니까요.

Juju
Q1. 6장성별 고정 관념을 직접 경험한 순간이나, 반대로 깨지는 경험도 좋습니다.
아빠가 마당개를 키우시는데 숫컷 두 마리는 이름이 있고, 암컷 세마리는 이름이 없어요. 아예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듯..저는 직접적인 언어보다는 태도로 이런 경험을 많이 하는편.
Q2. 7장 그 기준은 어디에서 온 것 같나요?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상대도 나와 같은 완벽하고도 부족한 인간이란 존재임을 깨닫는데서 온다고 생각해요.
Q3. 8장 사람을 자연, 다른 동물, 혹은 어떤 '미개한' 존재로서의 타인과 구별하는 일상의 예가 있나요?
저는 오히려 " 동물보다 못한 인간" 으로 특정 동물을 인간과 동등하게 혹은 인간보다 위에 놓으려는 행위들을 보면 화가 나요. ㅂ한 인간이 소유한다고 착각하는 "애완동물" 이 한 인간의 존엄성보다 중요한가요?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식물, 동물 등 자연계와 분명히 구별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인간에 의해서 지정된 " 멸종동물" 을 위해서 그 지역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일들은 빈번하게 일어나죠. 이는 인간이 단지 " 자연" 을 이용해서 자신의 힘과 권력 그리고 가치관을 고집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사이언스북스
안녕하세요. @모임 여러분! 모임지기입니다.
어제는 눈이 많이 내렸는데, 다들 따뜻하고 안전하게 잘 보내셨을까요?
깊어지는 겨울 밤에, 사유를 넓혀주는 『자연스럽다는 말』 함께 읽기도 어느덧 마지막 회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또한, 그믐북클럽 여러분에게만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바로 12월 23일 저녁 7시 느티책방에서 열릴 저자 북토크에 그믐북클럽에 참여해 주신 분들을 무료로 초대하고자 하는데요. 신청 링크도 곧 함께 남겨드릴 테니, 북토크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자연스럽다는 말』을 함께 읽으며 나눠 주신 생각과 경험 덕분에
이 책을 훨씬 더 입체적으로, 그리고 각자의 삶과 닿아 있는 텍스트로 느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읽기 범위는 9장 「(안) 낳는 것이 옳다는 말」 ~ 「나오는 글」(202쪽까지) 입니다.
문제는 인구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자원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과 거기에 깃든 불평등의 구조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구조적인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소득 국가들의 발달이 함께 도모되지 않는다면, 세계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인구 폭발’ 시나리오보다 암울한 디스토피아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문제는 ‘너무 많은 인구’가 아니다.
(9장 「(안) 낳는 것이 옳다는 말」 159쪽)
9장은 ‘세계 인구는 너무 많고’, ‘한국 인구는 너무 적다.’는 두 명제를 나란히 놓고, 이 문제를 자원의 생산·소비 방식과 불평등, 그리고 그 속에 스며 있는 우생학적 시선에서 다시 묻게 합니다. 출산을 개인의 도덕 문제에서 떼어내, 누구의 삶을 존중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선택으로 바라보게 하는 장입니다.
사람과 (사람 아닌) 동물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라며 자신이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당시 통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을 편 다윈이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인종 차별, 여성 혐오와 공명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10장 「자연에 답이 있다는 말」 188쪽)
10장 「자연에 답이 있다는 말」은 인간의 기원을 파고든 진화론의 통찰과 그 언어를 빌려 정당화된 차별의 시선을 동시에 드러내는 장입니다. 과학은 엄연히 인간의 행위이며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은 언제나 역사적 상황과 개인적 조건 아래 놓인 존재이기에, 이 장은 더 다양한 사람이 과학에 참여할 때 비로소 ‘자연의 텍스트’를 더 넓고 공평하게 읽을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펼쳐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채롭고 변화무쌍해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지 않는 것이 자연이다. 게다가 우리 각자의 위치성 때문에, 자연 현상 — 특히 다양성(diversity)과 변이(variation)가 속성인 생명 현상 — 에 내가 믿고 원하는 바를 투사하는 데 그치기 쉽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자연에서, 그리고 때로는 자기 자신과 서로에게서 더 멀어진다. 까마귀에 대해 말할 뿐, 정작 까마귀와 만나지 못한다.
(「나오는 글」 201쪽)
연암 박지원의 까마귀 비유로 시작하는 「나오는 글」은 우리가 자연을 보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색과 의미를 정해 두는 존재임을 상기시키며, 그런 시선이 자연과 우리를 어떻게 멀어지게 하는지 비춥니다. 자연을(그리고 그 안의 우리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자연주의자의 태도를 독자에게 남기며 책을 맺는 글입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이번 회차에서도 우리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눠 보고자 합니다.
아래 질문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 주세요.
Q1. 9장은 ‘인구가 너무 많다’는 걱정과 ‘너무 적다’는 걱정을 한 자리에 함께 올려놓습니다.
한국 사회의 저출생 이야기나 세계 인구 과잉 이야기를 들을 때,
여러분은 어떤 장면이나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그 이야기 속에서 실제로 걱정하는 대상은 인구인가요,
아니면 일자리·주거·돌봄·환경 같은 다른 문제인가요?
또, 아이를 낳지 않거나 늦게 낳는 선택을 두고 “이기적이다/책임 있다” 같은 평가를 들은 적이나 혹은 직접 한 적이 있으신가요?
그 판단은 주로 어떤 “자연스러운 삶의 궤도”를 전제로 하고 있었던 것 같나요?
Q2. 10장은 “자연에 답이 있다.”라는 말의 그늘에 숨은 차별과 권력을 보여 줍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유전자 탓이다” 같은 말을 들었을 때,
한편으론 설득되면서도 또 한편으론 묘하게 불편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 그 말이 잘 설명해 주던 것은 무엇이었고,
반대로 가려 버린 것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셔도 좋을 것 같습습니다.
Q3. 책을 마무리하는 「나오는 글」 제일 마지막의 질문을 다시 던져 보려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자연스럽다고 여길 때, 어떤 행동을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정당화하거나 부정할 때, 우리는 어떤 자연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12월 12일(목)까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이번 마지막 질문에도 편하게 이야기 남겨 주세요.
이 모임이 끝난 뒤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연스럽다는 말”을 조금 천천히, 한 번 더 곱씹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마지막 회차도 즐거운 독서 되세요. :D

Alice2023
Q1. 9장을 읽으며 조금 부끄러웠죠. 전세계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데 왠지 저는 좁은 시각에서 한국 인구가 줄고 있다고 걱정하던 것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 깨달았다고 할까요. 국력은 인구 숫자라고 생각하는 저는 한국 인구가 감소하면 한국의 국력도 낮아질 거고 더 살기 힘들어질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은 세계시민처럼 한국에 이런 사람이 부족하면 어디서 도움을 받고 다 같이 살아가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었네요.
인구가 너무 많거나 적은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경제 성장이 이루어 지고 자원이 분재되는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에 정말 공감했어요. 아이를 낳지 않는 분들을 보고 저는 오히려 책임 있는 판단을 하는 구나 낳으면 어떻게든 크겠지 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신중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책에도 나오듯이 원하는 사람은 출산을 할 수 있고 태어난 아니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사회가 뭘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저출생의 해법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라스카
9장을 멋지게 요약하고 또 이해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Alice2023 님!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비난, 또 한편에서는 아이를 '너무' 많이 낳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 (주로 출산율이 높은 국가를 두고 말할 때). 너무 많고 적음을 따지는 것은 인구 문제의 해법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주먼지밍
[4주차]
Q1. 저는 이 책의 저자 이수지 선생님의 의견에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저는 세계 인구 숫자를 들으면 순식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세계의 인구는 80억을 넘었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우리 지구를 불타고 있다고 표현한다, 학자들은 인류세 시대라는 비공식 학명을 써야 할 정도라고 우려한다. 한편 이 80억 인구가 살아가는 모습은 제각기 다르다. 북반구 백인들이 하루에 쓰는 전기량과 수돗물 양은 남반구의 저개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일 년 치(? 기억이 가물가물해요..)에 해당한다. 이수지 선생님의 말처럼 단순히 인구가 80억이 넘었다가 지구에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80억 인구가 살아가는 방법,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생률이나 저출산이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 자체라 국가 내지는 권력의 필터를 거친 문제 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의 생산 동력이 되어야 할 어린아이들은 태어나지 않는데, 복지 비용이나 타먹고 있는 고령인구는 늘어난다는 해석이 괄호로 쳐져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Q2. 자연에 답이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등등 은 모두 인간의 해석을 거친 극도의 편향성을 가진 한낱 의견일 뿐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더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여러 책들 근처에 서성인 덕분에 과학적이다, 내지는 증명됐다, 증거가 있다 등의 언어로 치장하는 의견들이 얼마나 일시적이고, 위태롭고, 가변적인지 대강을 가지게 되었어요. ㅎㅎ
이 책 <자연스럽다는 말> 은 제가 그간 읽어온 책들을 종합 정리해 주고 있는 그런 책처럼 다가옵니다.
Q3.‘자연스럽다’ 등 주장이나 의견 속에 자연을 들먹이는 사람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를 늘 유념하면서 들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인간이 파악하는 자연이 얼마나 한계 가득하며 인간 중심적인지 이 책도 분명히 깨우쳐 줍니다. 겸손하고 겸허한 태도로 자연을 탐구하지 아니하고, 자연을 그저 본인의 의견 관철을 위한 도구 정도 삼는 사람들의 말잔치에 미혹되지 않게 늘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Alice2023
Q2. 사람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데 "진화론적으로 그렇다"라는 말로 남과 여를 단정할 때
더 이상의 반론이나 여지를 남겨 두지 않는 그 핑계가 가끔 너무 일방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동안 과학이나 의학의 주류는 당연히 중산층 이상의 남성, 대부분은 백인이었고 그들의 제한된 시각에서
제한되 사례로 내린 그 당시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학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많은 과학자, 공학자, 그리고 정치인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Alice2023
한 사람의 어깨가 아닌 여럿의 어깨를 나란히 한 위에 섰을 때,
우리는 더 많이 더 넓게 살필 수 있지 않을까.
『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이수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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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중
“ 자연에는 준거가 되는 종이 없이 다만 모두가 고유할 뿐이다. 그렇다. 사람은 고유하다. 그리고 그 고유함은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종도 똑같이 고유하다는 깨달음이 있을 때만 가치 있다. ”
『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p.65, 이수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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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중
일이 바빠 이번에 책 읽는 속도가 많이 느립니다ㅠㅠ
그래도 꾸준히 잘 읽고 있어요! 뼈속까지(?) 문과인 제게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지만, 중간중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필수적인, 혹은 중요한, 또는 가치있는 "일"을 언급한 부분도 그러했고, 위에 수집한 문장도 깊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중에 내 아이가 타인들이 말하는 소위 "블루칼라"의 직업을 원한다면 과연 내 아이의 꿈을 온전히 응원해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는 제 이중적인 모습을 들켜버린 것 같아 혼자 책을 읽으며 흠칫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준거가 되는 종이 없이 모두가 고유하다는 표현도 참 와닿았는데요. "고유함"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편하게 느껴지기는 또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어떤 표현으로도 고유하다는 말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사이언스북스
안녕하세요, @모임 여러분.
『자연스럽다는 말』 모임지기입니다.
『자연스럽다는 말』 출간 기념으로
북토크를 진행하는데, 그믐북클럽 분들 대상으로만
무료 초대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번 북클럽에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럼 『자연스럽다는 말』 마저 즐겁게 읽으시길 바라며,
북토크에도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믐북클럽 X『자연스럽다는 말』 북토크
: https://forms.gle/76hYPjSwjP6R36uc8
감사합니다. : )

레오니
잘 읽었습니다.
natural 혹은 unnatural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님을 비롯해 참여 하신 분들과 함께 정주행하지 못해 아쉽지만, 가까스로 일독을 마쳤습니다.^^


레오니
찰스 다윈을 조롱하는 풍자화.
『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178쪽, 이수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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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척성
Q1. 아이를 낳지 않거나 늦게 낳는 선택을 두고 “이기적이다/책임 있다” 같은 평가를 들은 적이나 혹은 직접 한 적이 있으신가요?
그 판단은 주로 어떤 “자연스러운 삶의 궤도”를 전제로 하고 있었던 것 같나요?
: 저는 결혼 후 공부와 경제적 이유로 늦게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른바 노산, 고위험군 산모였어요.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던 시기에는 "왜 아이를 갖지 않으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고, 그때마다 불편했습니다.
출생과 육아는 개인의 계획과 조건에 따라 선택해야 할 문제인데도, 결혼했으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을 '당연한 일'로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심지어 저는 '결혼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으면 온전한 성인이 아니고, 어른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 말이 더 충격적이었던 점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거였어요.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는 어른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성애 부부+자녀'만을 '정상 가족'으로 인정하는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부부로만 살아가는 2인 가족'은 온전한 가족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미완성 상태에 머문 사람들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이런 논리인 셈입니다.
"짐승도 짝을 지으면 새끼를 낳고 키우는데, 하물며 사람이 왜 자연에서 벗어나는 비정상적인 선택을 하느냐?"
결혼과 비혼, 동성애와 이성애, 동성혼과 이성혼, 출생과 비출생은
각자의 정체성, 가치관과 삶의 조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택의 문제를 '자연스럽냐, 비자연스럽냐'의 문제로 환원하는 순간,
자연은 하나의 잣대로 축소되고, 인간의 삶은 그 잣대에 맞춰 선별됩니다.
책에서도 지적하듯, 자연은 애초에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다양성과 예외, 변칙과 변이를 포함하고 있는 곳이 자연입니다.
그 복잡성을 무시하고 인간의 삶을 이분법으로만 가르는 것 자체가 이미 '자연주의적 오류'입니다.
비혼이나 동성애, 비출생을 선택하는 이들은 종종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는 공격을 받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 윤리가 없다는 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입니다.
저는 이 비난이 공동체를 위한 진지한 우려라기보다는,
자신의 혐오를 감추는 위선, 그리고 막연한 공포를 키우는 호들갑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의 재생산 책임을 몇몇 개인에게 떠넘기고, 그들을 도덕적으로 몰아붙이는 쪽이야말로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까요.
또한 양육 의지나 여건이 충분치 않은 사람에게 "그래도 낳아야 어른"이라며 출생을 강요하는 태도가 훨씬 더 무책임하고 위험합니다.
누구의 삶이 어떤 기준으로 '자연스럽다/ 비자연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문제일까요?
누군가의 선택이 타인과 공동체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최소한의 자유 의지로 이루어진 선택으로 존중되어야 마땅합니다.
그게 우리가 지켜야 할 예의이자, 진짜 책임 윤리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냥 놔두는 게 왜 그리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라스카
마치 <자연스럽다는 말> 의 또 다른 장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에 "그냥 놔두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는 이를 자연이라 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스로 그러한 것,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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